귀남은 숙직실에서 세상모르고 자고 있었다.
" 야 귀남아! 신귀남! 빨리 일어나 봐."
동일이 급하게 귀남을 깨웠다.
" 어 왜? 벌써 정리 다 끝났어?"
" 야 핸드폰은 왜 꺼 놨어!"
" 핸드폰 꺼졌냐? 배터리 다 됐나 보네."
" 야 빨리 일어나 봐."
" 아 왜? 요새 통 못 잤더니 피곤해 죽겠다."
동일은 몸을 낮춰서 동일의 귀에다 대고 말했다.
" 야 사…… 사장인 오셨어. 빨리 일어나!"
귀남은 일어나지도 않고 벽을 보며 말했다.
" 사장님? 사장님이 왔다고?
이건 또 무슨 소리야?
PD란 놈이 참신하지가 못해."
" 야……."
" 직접 오시라고 그래."
" 그럴 줄 알고 내가 직접 왔네."
동일은 안 되겠다 싶었는지 종아리를 꼬집어 비틀었다.
"아아아 아!!!!!
일어날게 일어날게!!
왜 그러는데?"
그제야 일어난 귀남은 사장님과 눈이 마주쳤다.
너무 놀라 일어나지도 못하고 눈만 끔벅거렸다.
" 사……사장님…… 아……안녕하십니까!"
" 그래요. 신PD."
" 어……어쩐 일로 오셨습니까?"
"잠깐 얘기 좀 할 수 있을까 싶어서 왔는데."
" 네. 가능합니다. 네네."
" 둘만 얘기를 좀 하는데……."
" 아 넵넵 그러세요. 전 올라가 보겠습니다."
동일은 총총 거리며 사무실로 올라갔다.
" 휴게실로 갈까요?"
" 아네……."
# 휴게실.
" 무슨 일이신지요?
제가 또 무슨 잘못을 했는지……."
" 아니에요.
그냥 궁금한 것이 몇 가지 있어
확인 차 신 PD님과 얘기를 좀 하고 싶어서
불쑥 찾아 왔습니다."
" 네. 물어 보십시오."
" 알다시피 지금 저희 방송국이 좀 곤란해졌어요.
당선 확률이 거의 없던 후보자가 당선이 되었고
일전에 신PD가 방송 중에 했던 일도 있고
이걸 하나로 묶어서 보는 사람들이 있더라고요.
그것에 그치지 않고 방송국도 특정 후보자를
지지 했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어요. "
" 네. 매우 송구스럽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모두 억측입니다.
전 진심으로 정치적으로 개입할 의사가 없었습니다.
그저 개인의 단순 방송 사고라고 봐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네. 물론 그렇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상황이 그리 간단하지 않습니다.
현재 계속해서 방송국으로 연락이 오는 상황이고
광고주들도 움직이기 시작했어요.
지금 이렇게 된 상황에서 우리가 가만히 있으면
또 다른 의문만 남기게 되고
끊임없이 우릴 공격할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신PD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혹시 이 일을 책임지라는 말씀이신가요?"
" 맞아요.
누군가는 이 의문을 확실히 불식시켜야 합니다."
" 그만 두라는 말씀을 둘러서 말씀하시네요.
뭐 알겠습니다.
최대한 빨리 인수인계하고 나가겠습니다.
잘못한 건 인정하지만 직원 하나 케어 못하는
회사 더 다니고 싶지 않습니다. "
귀남의 말에 사장은 웃어 보였다.
" 혹시 저도 PD 출신 이라는 걸 알고 있나요?"
"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더 섭섭합니다."
귀남은 마음이 좋지 않았다.
여러 생각들이 스쳐 지나갔다.
사실 명예는 중요하지 않았다.
아직 까마득하게 남은 아파트 대출금이
가장 큰 문제였다.
" 우리 같은 방송쟁이들은 방송으로 보여줘야 합니다."
" 네?"
" 신PD님 동영상이 필요합니다.
아니라는 것을 증명 해 보세요.
제가 특별 편성 할 수 있도록
관리자 회의를 하겠습니다."
" 증명이요?"
" 필요한 인원과 기획서 준비해서 보고 부탁드립니다."
" 아니. 사장님. 그래도 이건 좀……
저 그냥 조사 받겠습니다.
법적으로 조사를 받는 게 나을 것 같아요."
" 왜요? 증명할 자신이 없어요?"
" 아니 뭐로 증명할까요?"
귀남은 사장이 말도 안 된다는 소리를 한다고 생각했지만
한편으로는 증명이 가능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확신 할 수 없었지만 말이다.
" 일단 시간을 갖고 한번 기획을 해보세요."
사장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자리를 떠났다.
" 이건 또 무슨 일이야?
퇴사하라는 것도 아니고."
동일이 뒤에서 불쑥 튀어 나왔다.
" 아 깜짝이야! 너 안 올라갔냐?"
" 너 어떡하냐! 이제?"
" 아니 갑자기 이런 걸 만들라고 하는 게 말이 되냐?"
" 너 어차피 차장님한테 다큐멘터리
찍을 거라고 했다며?"
" 야 그건 그냥 세상도 싫고 사람도 다 싫으니까
동물들이나 찍을 생각이었지.
사자의 하루 뭐 이런 거."
" 한국에 사자가 있냐?"
" 사자가 어디 있냐?
아예 외국으로 뜨려고 했지."
" 근데 사장님이 왜 저렇게 나서시지.
저런 모습 처음 보는데?"
" 그러게. 원래 이런 걸로 터치 안하셨잖아?
혹시 뭐 정치권에서 압력 넣은 거 아냐?"
" 설마. 요즘은 권력층도 방송에 대해
함부로 못해."
" 야 우린 일개 회사원이니까 모르는 거야."
" 그런가?"
" 근데 이거 진짜 좀 어려워졌는데?"
" 잘해 봐.
오랜만에 보도에서 벗어나서
다른 분야에 도전하는 거지 뭐"
" 남의 일처럼 말한다?"
" 응원한다. 친구야."
" 너 사장님이 방금 필요 인원이랑 기획서 작성해서
보고 하란 말 못 들었냐?"
" 들었지……."
귀남은 동일을 보면서 미소를 보냈다.
" 야 너 설마?"
" 친구야. 네가 있어 다행이다 진짜."
" 야 나 빼 줘라. 제발 부탁한다.
이거 완전 그냥 늪에 기어 들어가는 거야.
절대로 빠져 나올 수가 없는 늪이야!"
" 야. 내가 너희 어머니 어? 이충복 여사님
이장까지 한 사람이야. 너 이러기냐?"
" 아니 그건 그거고. 이건 좀."
" 그냥 짧게 만들면 돼."
" 아니 이게 무슨 일이야 진짜……."
" 일단 기획 회의부터 하자. "
" 생각할 시간을 좀 주면 안 되냐?"
" 그럴 시간 없어. 빨리 끝내자."
# 회의실
" 작가도 있어야 하냐?"
" 당연한 거 아냐?
야, 이거 그래도 방송으로 나갈 거야.
장난치듯이 하면 안 되지."
" 카메라는 용범이 부른다?"
" 용범이? 걔 좀 대충 찍지 않냐?"
" 아 무슨 작품을 찍으시려고 그래?
빨리 찍고 끝내자. "
" 그래도 처음으로 TV에 얼굴 나오는데."
" 뭐가 처음이야? 두 번째지."
" 아니 그땐 미친 놈 처럼 나온 거고.
지금이 중요해 이미지를 개선해야 한다고."
" 알겠어. 다른 인원은 네가 짜 봐.
근데 너 어디까지 오픈 할 거야?"
" 무슨 오픈?"
" 어쨌든 네가 생방송 도중에 뛰쳐나간
이유를 설명하려면 어느 정도 오픈을 해야 할 거잖아."
" 그러게……."
" 사실 난 그냥 다 오픈 하는 게 좋을 것 같아."
" 어디까지?"
" 사실 지금 제대로 오픈 안하면 끝까지
입방아에 오를 수 있는 문제야."
" 야 그러면 우리 어머니가 무당이라
내가 어느 정도 피를 물려받았다고 까지 말해야 하냐?"
"응."
동일이 의미심장한 표정을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 미쳤냐? 그렇게 못하지.
내 눈에 가끔씩 귀신이 보인다고 어떻게 말하냐?"
" 불가피하다."
" 야 그냥 때려치우자.
차라리 내가 신우현 당선자를
존경하고 있었다고 말하자.
그래서 그게 만약 선거법 위반이면
내가 처벌 받으면 되는 거고.
이게 무슨 지금 내 사생활까지 까발리면서
해명할 거리나 되냐?"
" 아니 사실 이게 내가 PD의 관점에서 보자면."
" 갑자기 여기서 무슨 PD의 관점이 나와."
" 들어봐라 좀."
" ……."
" 이게 진짜 엄청난 소스라는 거지."
" 소스?"
" 그렇지. 이게 네 해명 방송이라고 하면
사람들이 우리 보고 꼴값한다고 생각 할 거야.
사실 관심 없는 사람도 많을 테고."
" 아 핵심만 말해 봐."
" 네가 가진 것들을 조금씩 오픈하는 순간
사람들은 분명 관심을 가질 거야."
" 내가 가진 게 뭔데?"
" 야 사실 네가 내 친구라서 그렇지.
내 주위에 너처럼 태생부터 미스터리한 사람 없어.
설마 네가 평범하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
" 나 안 평범해?"
" 너 인마 기인열전 뭐 그런데 출연해도 안 이상해."
" 그러니까 이번 기회에 오픈하자."
" 뭘 위해서?"
" 넌 해명해서 좋고 그리고 우리 마을에서
서울로 학교 간 사람도 우리 둘이고
방송국에서 일한다고 얼마나 자랑스러워하는데
우리가 방송국 차 딱 타고 가서 마을도 촬영하면
어깨 딱 피고 다닐 수 있잖냐.
분명히 어머니도 좋아하실 거야."
" 이거 완전 미친 놈 아냐?
너 방송국 다닌다고 잘난 척 하고 싶어서
친구를 파는 거야?"
" 팔기는 무슨.
님도 보고 뽕도 따는 거지.
이번 기회에 너 유명해질 수 있어.
혹시 아냐? 스카우트 되서 나갈지."
" 말도 안 돼. 어머니도 허락 안 하실 거야."
" 대체 왜? 너 아직도 어머니 창피하냐?"
" 왜 창피해? 우리 어머니가 왜?"
" 그러니까 하자고.
네가 200년 대대로 무당이 탄생한
집안에서 태어난 걸 확인 시켜 주자고."
" 아니 그게 뭐 또 대단한 자랑이라고 그걸 사람들이 믿겠냐?"
" 내가 말 안하려고 했는데
사실 내가 진짜 이런 거 잘 안 믿는데
너랑 너희 어머니는 내가 믿어.
신기방기 하다니까.
진짜 시청률도 자신 있다."
" 이거 공중파에서 미신 조장한다고
말 나올 것 같은데?
차장님께 상의해야 되는 거 아냐?"
" 지금 사장님이 오더 내린 거야 .
누가 이걸 막아."
귀남은 생각에 잠겼다.
어릴 때부터 아킬레스건이었던
집안 사를 선뜻 꺼낸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번 기회에 확실히 극복하고 싶다는
생각은 있었다.
" 해 볼 거지? 귀남아 하자 이거."
' 그래 피똥 싸도 고다!"
# 사장실
사장실 앞에서 갈팡질팡하는 귀남과 동일.
" 이거 통과 안 될 것 같은데?"
" 너 네가 확신했잖아.
시청률도 대박 날 것 같다며?"
" 제작이 되고 방송이 되면 그렇다는 거지."
" 화내시는 거 아냐?"
" 그럴 수 있어. 사장님 교회 다니신데."
" 야 그럼 안 되겠다. 그냥 가자.
그냥 접자. "
동일은 귀남을 사장실로 밀어 넣었다.
그리고 문을 닫았다.
귀남은 어쩔 수 없이 사장님께 다가갔다.
" 사장님. 방송 제작 기획서 들고 왔습니다."
" 어 그래요.
빨리 해주셨네요."
사장은 기획서를 받아서 훑어보기 시작했다.
" 제작 내용이 흥미롭네요."
" 네. 좀 놀래셨죠?"
" 생각했던 것 보다 놀랍습니다."
사장은 예상하지 못했다는 듯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었다.
"진행해 보세요."
" 네?"
" 뭐 이게 다 사실이라면 제작 해보세요."
" 믿으시는 거예요?"
" 설마 저한테 거짓으로 기획서를 주겠어요?"
" 아네. 그렇긴 하죠."
귀남은 너무 쉽게 떨어진 허락에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 뭐 더 필요한 거 있으신가요?"
" 저…… 뭐 딱히 필요한 건 없습니다."
" 알겠습니다. 그럼 수고 해 주세요."
" 네. 아 그런데 사장님."
" 네?"
" 한 가지 부탁드릴 것이 있습니다. "
" 하세요. 부탁."
" 이 프로그램이 끝까지 제작돼서
방송될 수 있도록 책임져 주시기 바랍니다."
" 그러겠습니다."
" 어떤 방해가 와도 저를 믿고 도와주십시오."
" 알겠습니다."
사장은 귀남의 배짱에 웃음으로 답했다.
" 그럼 나가 보겠습니다."
# 복도
" 야 어떻게 됐냐?"
" 하래."
" 하래? 아무것도 안 물어 보셔?"
" 어 그냥 하래."
" 근데 우릴 뭘 믿고 그렇게 하시지?"
" 그러게."
" 이렇게 쉽게 기획안이 통과 된 적이 있었냐?
어째 좀 불안하다."
" 야 이제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야.
전쟁 통에 나가서 카메라 들이 밀라는 것도 아닌데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고 그냥 해보자."
" 어째 구멍 난 배에 올라탄 기분인데?"
" 걱정 마라 그 배에 선장이 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