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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무협물
천무행
작가 : 백두혼
작품등록일 : 2019.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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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통 무협소설이다. 무협소설은 결국 초인에 관한 이야기로서 그 초인이 무엇인지 따져보려 한다. 물론 역사와 운명의 굴레 바퀴를 피할 수 있는 초인은 절대 없다.
천륜과 인륜이 교차하는 강호 천하의 모든 은원이 어떤 식으로 생기고 해소되는지 정교하게 엮어보았다. 대의를 위해 자식을 없애야 하는 아버지, 또 다른 대의를 위해 그 부친을 넘어서야 하는 아들. 나름의 대의를 위해 그 둘 사이를 이용하고 이간하는 절세의 협객. 사랑을 위해 모든 것을 던져야 하는 가인. 정의가 무엇인지 진정한 사랑은 무엇인지...

 
4. 연화루(蓮花樓)
작성일 : 19-10-23 16:27     조회 : 365     추천 : 2     분량 : 7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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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연화루(蓮花樓)

 

 

 연화루는 생각보다 컸고 화려했다. 연화루는 그들이 만난 운장 대로를 거슬러 올라가다가 현청이 자리 잡은 동화로로 꺾어 들어간 다음의 초입에 위치했다. 아직 홍등이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색색으로 칠하고 황동으로 장식을 달아 놓은 대문부터 이미 화려했고 대문 안에는 몇 채인지 알 수 없는 크고 작은 전각들이 늘어서 있었다.

 

 대문을 키지는 문지기들이 네 명이었는데 그들 모두 자못 무공 수련의 흔적들이 제법이었고 전각 사이를 다니고 있는 일꾼들과 시비들의 걸음도 다들 정연한 것이 역사와 연륜이 묻어났다.

 

 낮부터 마신 화주에 꽤나 거나하게 취해서 거칠게 걷고 말하던 장총관이 어느 작은 전각 앞에 서자 어느 새 취기를 숨겼다. 그리고 선우용에게 몸을 돌렸다.

 

 “이 곳이 루주님의 거처요. 내 먼저 루주님께 들어가서 말씀 올리겠소. 귀한 분을 모시고 왔다고. 잠시만 여기서 기다려주시오.”

 

 그렇게 장총관이 먼저 들어간 다음 잠시 후 나이 어린 시비가 나와 그에게 인사를 올렸다.

 

 “루주께서 기꺼이 모시라 전하셨습니다. 부디 따라 오시지요.”

 

 선우용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그들을 시비의 뒤를 따르기 시작했다.

 

 루주가 기다리고 있는 방은 고아했다. 잡다한 장식 없이 붉은 빛 도는 자단으로 짠 서가가 세 방향의 벽을 채웠고 역시 자단으로 짠 서탁과 다탁이 수수한 모양새로 놓여 있었다. 게다가 이렇다 할 그림 한 점 없고 오래 된 서책 향기만 가득하다 보니 기루의 주인이 자리하는 곳이라기보다 어쩌면 이름 높은 학자의 서실 같기도 했다.

 

 하지만 그들을 기다리는 사람은 분명히 여자였다. 그것도 삼십대 후반으로 보이는 아주 아름다운 신색의 중년 미부였다. 세월의 흐름을 벗어나지 못해 나이가 느껴지는 눈가의 주름은 어쩔 수 없었지만 이목구비가 수려하고 피부가 하얀데다가 깊은 눈마저 아름다웠다. 그리고 화려하지 않은 색의 비단 옷을 차려 입고 별다른 장신구도 착용한 바 없었지만 그녀에게선 은은하게 고급스러운 향기가 났고 눈빛은 반짝였다.

 

 장총관은 술 기운 하나 없이 루주의 옆에 시립해 서서 선우용에게 눈짓을 보냈다.

 선우용이 두 손을 모아들고 읍하며 인사를 했다.

 

 “합비 사람 용이라 합니다. 성은 선우를 씁니다. 오늘 루주님을 뵙게 되어 참으로 반갑습니다.”

 

 가만히 앉아 그를 올려보던 루주가 그제서야 천천히 고개를 숙여 답례를 했다.

 

 “참으로 반갑습니다. 선생의 말씀 우뢰와 같이 들었습니다. 이 연화루의 주인 영영(盈盈)이라 합니다. 가문의 성은 정(鄭)이고 고향은 이곳 성도랍니다. 자, 이리로 앉으시죠.”

 

 선우용은 그제서야 들고 있던 양 손을 풀고 다탁에 앉았다.

 

 “장총관에게 선생의 고명한 탄금 솜씨에 대해 들었습니다. 제가 비록 배운 바 없는 여자이나 부디 먼저 한 곡 청해 들었으면 합니다. 제대로 아는 바 없으나 금의 소리라면 자다가도 일어나는 버릇을 갖고 있답니다.”

 

 선우용은 등에 매고 있던 금을 내려 보를 풀어헤친 다음 천천히 다탁에 올렸다.

 이 정영영이라는 사람은 사천 제일의 기루 주인답게 절대 만만한 사람이 아니었다. 돌려 말하는 바는 있었지만 단도직입적으로 당장 실력을 내보이라는 얘기였다. 그리고 그 솜씨가 흡족하지 않다면 어떤 결정을 할 것인지도 명확했다.

 선우용은 잠시 숨을 가다듬은 다음에 곧 금을 타기 시작했다. 그런데 뜻밖에도 그가 연주하기 시작한 곡은 이제까지 길에서 즐겨 타던 부드럽고 서정적인 곡이 아니었다. 그 유명한 적벽부(赤壁賦)였다.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 중 한 사람이자 이곳 사천이 낳은 중화 최고의 시인 소동파(蘇東坡)가 호북성 황강현으로 유배를 가 지은 이 적벽부라는 절창은 곡으로도 만들어져 많이 연주하기는 했지만 금으로 연주하는 바는 무척 희귀했다.

 잠시 후 그 방에는 호호탕탕한 전주 후에 누런 강물이 휘몰아치고 빗발치는 불화살이 난무하고 칼질로 죽어가는 병사들의 끔찍한 절규가 칠현금의 운률로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당연히 그 곡을 듣는 두 사람의 안색이 그 귀를 파고드는 곡조의 변화에 따라 확연히 변해갔다. 부드러운 안색과 여유로운 미소는 간데없고 악귀라도 씌인 듯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변해갔다.

 잠시 후 짧지 않았던 탄주가 끝나자 겨우 버티고 있던 장총관은 다리에 힘이 풀린 듯 그 자리에 주저앉았고 침중한 안색의 루주는 잠시 신색을 고르는 듯 고개를 숙인 채 침묵을 지켰다.

 선우용은 그들을 무시한 채 비단 천 쪼가리를 꺼내 금의 줄을 한 차례 닦아 내고는 보에 다시 싸고 등에 매었다. 그리고 일어섰다. 마치 당장이라도 나갈 것처럼,

 

 그때 마침 고개를 들던 루주가 그런 선우용의 모습을 보고 벌떡 일어나더니 양손을 모아 왼쪽 허리에 대고 무릎을 굽힌 채 고개를 숙여 인사를 올렸다. 그것이야말로 그야말로 스스로를 낮추고 상대를 올리는 예법이었다.

 

 “본 바 없고 들은 바 없는 제가 고인을 몰라 뵙고 정말 큰 결례를 했습니다. 고인께서는 부디 노여움을 거두시고 자리에 앉으셔서 제 사죄를 받아 주십시오.”

 “허허... 별 말씀을요. 그저 제 금 소리가 고명하신 루주님의 귀를 어지럽히지나 않았는지 걱정이군요,.”

 

 두 사람이 다시 앉고 장 총관은 다시 일어섰다.

 

 “총관께서는 이제 나가셔서 안팎의 영업 채비를 돌봐 주셔야죠. 그리고 나가는 길에 이곳으로 차와 과일을 들이라고 전해주세요.”

 

 장 총관이 루주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는 방을 나서자 루주가 다시 사과의 인사를 전했다.

 

 “차 한 잔 올리지도 않고 고인의 솜씨를 능멸했으니 이 얼마나 어처구니 없는 추태인지 모르겠네요. 부디 크게 욕하지 마시고 용서해주시기 바랍니다.”

 “너무 괘념치 마십시오. 제 나이 아직 어려서 그런 과례는 받들기 참 어렵군요.”

 “천만에요. 예술과 학문과 무공의 조예를 따지는데 노소가 무슨 상관이겠습니까? 저도 아주 어렸을 때부터 금을 익혀 이제 삼십 년을 손에 두었습니다마는 선생님의 솜씨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수준이군요. 참으로 다행스럽게도 장 총관이 이런 귀인을 알아 뵙고 이리 모셨으니 이 모두 이 사람의 홍복 아닐까 싶습니다.”

 

 방문이 열리고 아까의 시비가 갖가지 과일이 담긴 그릇과 각종의 다구가 담긴 쟁반을 들고 들어와서 다탁에 올렸다. 시비는 그대로 물러났고 뜻밖에도 차를 우리고 과일을 깍아 담고 하는 일은 루주가 직접 손을 쓰기 시작했다.

 잠시 후 정성스레 깍아 담은 과일 접시와 향기로운 찻잔이 그의 앞에 놓였다.

 

 “부족한 솜씨를 부려 봤습니다. 부디 흉타 책하지 마시고 즐겨 드시기 바랍니다.”

 

 말과는 달리 과일과 차의 맛은 극상이었다. 선우용은 말없이 찻잔을 비우고 과일을 먹었다. 그러는 중에 루주가 말을 이었다.

 

 “이 곳 연화루가 비록 천하고 누추하지만 고인을 모시고 싶습니다. 감히 손님을 받는 방에 모실 생각은 할 수도 없고, 그저 저와 이 집의 여러 아이들에게 선생의 고절한 악법을 전수해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물론 그럴 생각으로 이 곳으로 걸음을 한 겁니다. 루주께서는 기탄없이 말씀해 보십시오.”

 

 선우용은 물론 외모와 달리 세상 물정 모르는 백면서생이 아니었다. 무려 두 갑자하고도 반의 세월을 살아 온 세상살이의 백전노장이었다.

 

 “물론 저희는 선생을 저희들의 사부로 모시겠습니다. 별채에 따로 모실 것이며 매월 은자 열 냥을 드리겠습니다. 드시고 마시고 입으시는 것들은 이 곳 연화루에서 부족하나마 최선을 다해 올릴 겁니다. 그리고 해가 가고 오는 때를 맞이할 때는 따로 은자 오십 냥을 드려서 갖가지 소용에 쓰시도록 하겠습니다.”

 

 은자 열 냥은 일반 백성들 일가족이 일 년을 먹고 살만한 돈이었다.

 

 “그렇게나 환대해 주시니 이 선우모는 부족함을 모르겠습니다. 그럼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이렇게 그는 연화루에 자리를 잡게 되었다. 그가 운남의 대나무 숲 속의 모옥을 떠난 지 한 달 반 만이었다.

 

 

 

 5. 별채의 금사부(琴師父)

 

 

 그가 자리잡은 별채는 연화루의 영업장이 되는 본관 건물의 뒤쪽 정원에서도 안쪽으로 한참 들어가 자리잡고 있었다. 주변에 기화요초가 심어져 있었고 본관 정원의 연못에 이르는 작은 물길이 별채 옆을 지나는지라 물 흐르는 소리가 작게 들리며 자못 풍취가 있었다. 또한 세 칸짜리 와옥(瓦屋)이지라 작은 대청을 사이에 두고 침실과 서실이 따로 있었다.

 

 그의 일과는 단순했다. 매일 일어나면 시비가 가져다주는 세숫물로 세수를 하고 머리를 빗어 올리고 간단히 차를 끓여 마신 다음 잠시 서실의 서책을 들여다보노라면 아직 머리를 올리지 않은 연화루의 동기들이 열 명 정도 금을 배우러 온다.

 겨우 열 살부터 제법 여자 티가 나는 열 서너 살의 아이들에게는 금의 가장 기본적인 운지법(運指法)과 탄지법(彈指法) 정도를 가르치고 가장 쉬운 음계를 눌러가며 앳된 소리 나마 내도록 하는 것이 그의 일이었다.

 아이들은 생각보다 무척들 밝고 명랑했다. 다들 어리지만 수려한 외모는 기본에다가 입혀 놓은 의복들도 모두 질 좋은 비단으로 솜씨 좋게 지어진 것들이니 그냥 봐서는 어디 고관대작이나 부호의 여식들 같기도 했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시간은 선우용에게 가장 즐겁고 행복한 시간이기도 했다. 맑고 밝은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오히려 금의 소리보다 듣기 좋았다.

 

 아이들의 공부 시간이 끝나면 다들 같이 일어나 본관 옆에 자리 잡은 식당으로 가 점심을 먹었다. 어린 것들이 나름대로 사부를 모신다면서 식당에서의 자잘한 수발을 들어주는 게 너무 고맙고 기특했으며 재잘재잘 같이들 떠들어가며 먹는 식사도 무척이나 즐거웠다.

 

 이 곳 연화루에서 그의 위치는 특별했다. 루주의 스승으로 모셔지는 지라 루 내의 어느 누구도 그를 함부로 대하지 못했고 깍듯이 공경했다. 식당의 주부(廚夫)들도 그에겐 가장 좋은 음식과 술을 원하는 대로 올렸고 그가 식사하러 나와 있는 동안 그의 거처는 시비들이 들어 가 깨끗이 소제하고 정리했다.

 

 아이들과 즐겁게 점심을 마친 후 그들이 돌아가면 홀로 연화루 내부의 정원을 한 바퀴 산책하고 돌아왔고 그 후에야 정식으로 기명을 얻은 기녀들이 늦잠에서 일어나 준비가 되는 대로 두세 명씩 조를 지어 그에게 왔다. 각각의 금 실력에 맞춰 그가 짜 준 조였다. 물론 루 내의 모든 기녀들이 오는 것은 아니었고 특별히 금에 조예가 있고 관심이 있는 예기들에 한해 베풀어지는 공부였다. 하지만 물론 그에게 금을 배우러 오는 기녀들이야말로 이곳 연화루에서 재색이 가장 뛰어난 이들이었다.

 간밤에 그들이 어떤 생활을 했는지 그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간혹 지난밤에 술을 과하게 마셔서 고통스러워하는 기녀들이 있었고 잠이 부족해 눈이 붉고 신색이 무척 피곤해 보이는 기녀들도 있었다. 그럴 때야 이 곳이 기루라는 것을 되새겼지만 그는 크게 개의치 않았다. 접해 본 바, 이 곳 연화루에 일하는 이들은 모두 스스로의 일에 자부심을 갖고 있었고 일상도 평온하고 즐거운 모양이었다.

 바깥 세상에는 아직도 굶어 죽는 이들이 많고 돈 때문에 여아를 창굴에 팔아먹는 일이 흔한 시절이었다. 그러고 보면 어쩌면 이곳 연화루는 험한 세상에 핀 그나마의 연꽃일지도 몰랐다. 그리고 이런 행복들은 아마도 루주인 정영영의 영향인 듯 했다. 그녀는 비상한 수완과 냉정한 사업 능력을 지녔지만 꽤나 따뜻한 심성을 가진 모양이었다. 어떻게 아느냐고? 그야 일하는 사람들을 보면 그 주인을 아는 것이 세상의 이치니까.

 하지만 문제는 있었다. 선우용 그의 외모와 분위기가 너무나 뛰어났다. 절세의 미남자라 해도 지나칠 것이 없는 외모에 탈속한 듯 고고하면서도 부드러운 언행과 신의 경지에 든 칠현금 솜씨는 그에게 금을 배우는 모든 기녀들의 방심을 흔들 수밖에 없었다. 비슷한 연배로 보이는 그에게 모두들 깍듯이 사부의 예를 갖추고는 있었지만 그를 바라보는 뜨거운 눈빛들까지 숨길 수는 없었다.

 그러나 선우용은 냉정하기 이를 데 없는 남자였다. 도무지 청년의 나이라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을 만큼 그는 기녀들의 미색에 동요하지 않았다. 사천성 전체를 통틀어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만 모아 놨다고 소문난 연화루에서도 최고로 꼽히는 예기들을 매일 눈앞에 두고도 그의 눈빛은 차갑고 고요하기만 했다. 그는 심지어 그에게 배우는 기녀들의 이름조차 묻지도 않았고 외우지도 않았다.

 연화루 안에서는 곧 그가 여색에 전혀 관심이 없는 걸 보니 혹시 남색을 즐기는 자가 아닌가 하는 뒷담화도 도는 모양이었지만 곧 그것이 말도 안 된다는 것을 누구나 알 수 있었다. 그는 남자들에게는 더욱 더 차가웠기 때문이다. 장총관을 제외하고는 누구와도 쉽게 이런 저런 말을 섞는 경우가 없었다. 그저 용건만 간단하고 정확히 나눌 뿐이었다. 당연히 연화루 내에서 그의 존재는 아주 특이하지만 존재감은 느껴지지 않는 모양새였다.

 오후 늦게 모든 예기들이 돌아가면 간혹 루주가 직접 금을 들고 와 가르침을 청하는 바가 있었지만 자주 있는 일은 아니었다. 루주 정영영의 금 솜씨는 사실 절정에 달해 있었다. 천하를 통틀어서도 쉽게 들을 수 없는 솜씨였다. 그러니 그녀가 처음 그에게 그렇게 냉담하게 대한 바도 이해가 가는 일이었다. 당금의 천하에서 그녀에게 금으로 가르침을 내릴 사람은 사실 거의 없다고 봐야 했으니까.

 루주가 와서 금을 타면 그는 그저 듣기만 했고 그녀의 연주가 끝나면 그녀가 연주한 곡의 특정 일부분만 다시 연주해 들려줬다. 그러면 끝이었다. 그녀는 곧 알아듣고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고 돌아가고는 했다.

 별로 이야기가 필요 없는 일과였다. 다만 금을 들고 별채에 드나들수록 정영영의 태도는 더욱 더 정중해졌고 선우용을 바라보는 눈길은 깊어져 갔다.

 때로 금을 한참이나 타고는 별채를 벗어날 때면 간혹 선우용에게 뭔가 얘기를 꺼낼까 망설이는 경우도 있었지만 차갑게 외면한 채 자기의 금을 손질하고 있는 선우용의 옆얼굴을 잠시 일별하고는 자리를 뜨곤 했다.

 

 하루의 일과가 끝나면 역시 식당에 들러 저녁을 먹으며 간단히 술을 한 잔 하고는 별채로 돌아왔다. 이때부터가 그가 진정으로 스스로를 위해 쓰는 시간이었다. 그는 밤이 시작되면 기감을 조절하여 금을 타기 시작했다. 금을 타지만 아무런 소리가 나지 않는 경우가 많았고 간혹 소리를 내도 그의 별채 밖으로 나가는 경우는 없었다.

 

 그의 탄금은 단순한 탄금이 아니었다. 이미 우화등선을 마친 그의 몸과 정신은 특별히 별도의 운공과 수련이 필요한 단계가 아니었다. 다만 탄금을 통해 스스로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우주의 기운과 교감할 뿐이었다. 그것으로 그는 그가 지닌 스스로의 능력과 한계를 가늠해 보고 그 지평을 넓혀가고 있었다.

 

 지금 그에게 가장 절실한 것은 천명(天命)이었다. 도대체 하늘은 어떤 이유로 그에게 새로운 삶을 허락한 것인가, 그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이고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이미 오래 전에 세상과의 모든 인연과 은원을 끊어낸 그였다.

 그는 일단 현재의 안온한 일상을 즐기기로 했다. 무엇보다 연화루의 음식이 맛있었고 나이어린 동기들의 웃음소리가 듣기 좋았으니까.

 

 하지만 이 곳 연화루도 엄연히 강호의 일부분이었고 강호의 굴곡은 여기 연화루라 해서 비껴갈 리가 없었다. 그 일은 그가 평소처럼 소리도 없이 금을 타고 있던 늦은 밤에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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