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 풍물패 강화 훈련 2
한울림 풍물패 회원들이 강화 훈련을 하러 내려 온지도 어느새 나흘째가 되었다. 그들은 ㅈ대 운동장에서 신명난 장단을 연주하며 춤을 추고 있었다. 그들이 연습을 시작한지는 이미 3시간이나 지나 있었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빚어내는 음악에 취해 힘든 줄을 잊은 채 연습에 몰두하고 있었다. 중간에 조금씩 쉬는 시간이 주어졌지만 3시에 시작된 연습은 8시가 넘어서야 끝이 났다.
“그만 돌아가지.”
회장이 말했다. 회장의 말에 회원들은 묵고 있는 숙소로 돌아가기 위해 악기를 챙겼다.
“이제야 끝이 났군. 가끔은 말이야. 내가 왜 사서 이 고생을 하는지 모르겠다니까.”
민이가 말했다.
“그 말엔 나도 전적으로 동감이다.”
재수가 말했다.
“어쩐 일이냐? 너희 둘이 의견을 같이 할 때도 있고.”
준석이 놀랍다는 듯이 말했다.
“쟤네 둘은 알고 보면 잘 어울린다니까.”
희연이 미소를 띠며 말했다.
“야, 넌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내가 이런 머저리랑 잘 어울린다니? 이런 머저리랑 어울리고 싶은 생각은 조금도 없다고. 어울리고 싶으면 너나 어울려.”
“나도 너보단 희연이가 훨씬 좋아. 희연아, 이참에 나랑 사귈래?”
재수가 농담을 던졌다.
“됐어요.”
희연은 연기자 뺨치게 아주 정색을 하며 말했다.
“통쾌해. 역시 희연이 니가 최고다. 그래, 사랑하는 사람한테 거절당한 기분이 어떠냐?”
“누가 누구를 사랑한다는 거야? 넌 농담도 구별 못하냐?”
재수가 목소리를 높이며 말했다.
“원래 민이 쟤가 EQ가 좀 떨어지잖아? 그러니 니가 이해해.”
희연이 말했다.
“야, 넌 지금 누구 편이야? 왜 이랬다 저랬다 해?”
민이가 목소리를 높였다.
“내 생각엔 이랬다 저랬다 하는 게 아니라 너희 둘 갖고 노는 거 같은데.”
준석이 말했다.
“뭐?”
“뭐?”
재수와 민이가 동시에 말했다.
“깡패, 넌 어떻게 생각해?”
재수가 제법 심각한 목소리로 물었다.
“글쎄,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으이그, 완전 바보 커플이 따로 없다니까.”
준석이 한심해 하며 말했다.
“야, 우린 커플이 아니라고 했잖아?”
“야, 우린 커플이 아니라고 했잖아?”
민이와 재수가 또 동시에 소리쳤다.
희연과 준석, 그리고 아무 말 없이 옆에서 듣고 있던 유진까지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회원들은 모두 묵고 있는 숙소로 돌아왔다. 다들 지쳐서 방에 뻗었지만 2학년 회원들은 그 날 저녁 당번이어서 저녁을 준비해야 했다.
“야, 깡패, 그만 누워 있고 저녁 준비 하러 가자고. 희연이 혼자서 수돗가에서 쌀 씻고 있다고.”
재수가 말했다. 재수의 말에 민이는 몸을 일으켰다.
“다른 애들은?”
“먼저 갔어.”
재수와 민이는 수돗가로 갔다. 수돗가에선 유진과 준석이 희연이 일하고 있는 것을 가만히 보고만 있었다.
“너흰 뭐 하는 거냐? 안 도와주고.”
민이가 유진과 준석한테 한 소리 했다.
“희연이가 도와 줄 필요 없다고 해서.”
준석이 대답했다.
“민이, 너만 도와주면 돼.”
“야, 넌 그게 무슨 말이야? 왜 나만 남으라고 하는데.”
“넌 여자잖아? 요리는 여자가 하는 거라고.”
“야, 그런 말도 안 되는 말이 어딨어? 유진아, 쟤 왜 저러냐?”
“희연인 어렸을 때부터 그랬어. 그리고 사실 내가 있어 봤자 별로 도움 안 되는 거 사실이기도 하고.”
“그럼 내가 있을 필요도 없겠네. 나도 요리는 하나도 못 하니까 있어 봤자 도움 안 될 거 뻔한데.”
“그럼 나 혼자 할 테니까 가서들 쉬어.”
“25명이나 되는 회원들 걸 혼자 한다고?”
재수가 놀라며 물었다.
“뭐, 그 정도쯤이야.”
“그만 돌아가자.”
유진이 말했다.
“정말 안 도와 줄 거야?”
재수가 놀라며 물었다.
“희연이 고집은 아무도 못 꺾어. 어렸을 때부터 그랬으니까.”
유진은 자리를 떠났다. 유진이 자리를 떠나자 재수와 준석도 유진이를 따라가서 민이만 혼자 남았다.
“저래서 남자들은 안 된다는 거야. 근데 넌 정말 너 혼자 요리를 다할 생각이야?”
“응. 니가 안 도와주니 별 수 없잖아?”
“나 말고도 도와 줄 사람은 많잖아? 솔직히 나 보다는 재수가 더 나을 걸. 저 번에 과 MT 갔을 때 보니까 재수 요리 잘 하던데.”
“남자는 요리 하는 거 아니라니까.”
“도대체 그런 삐뚤어진 생각은 어디서 배운 거냐?”
“삐뚤어진 생각이라니? 내가 가장 존경하는 할아버지한테 배운 건데. 할아버지가 남자는 요리 하는 거 아니랬거든.”
“할아버지? 아무래도 내가 그 할아버지 한 번 만나봐야겠다. 애한테 아주 못된 생각을 심어 놨다니까.”
“우리 할아버지 만날 순 없을 거야. 내가 초등학교 4학년 때 돌아가셨으니까. 근데 도와 줄 거야 말 거야?”
“도와주고 싶어도 솔직히 난 아무 것도 할 줄 모른다고.”
“그럼 너도 가서 쉬어.”
“정말 너 혼자 다 할려고?”
“응. 난 요리하는 거 좋아하니까 괜찮아.”
희연이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
식사 준비가 다 끝나자 풍물패 회원들은 방 한가운데에 모여 앉았다. 버섯탕과 부대찌개에 갖은 밑반찬들이 놓여 있었다. 회원들은 처음 보는 탕을 한 술 떠 먹어 보고서는 그 맛에 감탄했다.
“이건 무슨 요리야? 맛이 정말 죽여주는데.”
회장인 경철이 물었다.
“버섯탕이에요.”
희연이 대답했다.
“이 부대찌개도 정말 맛있는데. 이건 누가 한 거야?
풍물패 6기인 영철이 부대찌개를 한 술 떠 먹어 보고는 물었다.
“그것도 희연이가 했어요. 여기 있는 요리 다 희연이가 했어요.”
재수가 대답했다.
“이걸 다?”
풍물패 6기인 효진이 놀란 얼굴을 했다.
“너희 희연이 왕따 시키냐? 이걸 다 혼자 하게 하고.”
경철이 물었다.
“우리가 왕따를 하는 게 아니라 쟤가 우리를 왕따 시키는 거라고요. 도와 줄려고 했는데 한사코 자기 혼자 하겠다고 하면서 우리를 쫓아낸 거라고요. 쟤는요 사고방식이 이상해요.”
민이가 억울하다는 듯이 말했다.
“제가 입회해서 그 동안 느낀 바에 의하면 누나 사고방식이 더 이상한 것 같은데요.”
풍물패 8기 회원이며 1학년인 수철이 말했다.
“야, 너!”
“정말 이해할 수가 없단 말이야. 집안도 좋은 데다 이쁘고 착하고 공부 잘 하고 요리도 잘 하는데 왜 남자 친구가 없는지......”
회장과 같은 학년이자 같은 동기인 영민이 말했다.
“원래 물이 너무 맑으면 고기가 안 모이는 법이에요. 희연 언니는 어쩜 평생 결혼 못할지도 몰라요.”
풍물패 8기인 수정이 말했다.
“넌 아주 악담을 해라.”
희연이 한소리 했다.
“근데 정말 여태까지 너한테 너랑 사귀고 싶다고 고백한 남자가 한 명도 없었어?”
경철이 물었다.
“예.”
희연은 거짓말을 했다. 희연이한테 고백한 남자는 한 명 있었다. 도현이의 친구인 장철민이었다. 하지만 풍물패 회원들 중에 그 사실을 아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소꿉친구로 자란 유진이도 물론 모르고 있었다. 희연은 그런 일이 있었다는 것은 유진이한테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