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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일반/역사
광무의 꿈
작가 : 백두혼
작품등록일 : 2019.10.22

대한제국의 마지막 모습을 제대로 살펴보려면 홍종우의 삶을 보면 된다. 조선인 최초로 프랑스로 건너가 근대화를 통한 조국 조선의 부국강병의 길을 도모한 자. 김옥균 등을 수괴로 한 친일 매국노들과 벌인 흉험한 싸움. 헤이그 만국 평화회의 밀사는 이용익이었고 그의 곁에는 홍종우가 있었다. 근대사 전체를 통째로 뒤집는 위험한 이야기를 시작한다.

 
1. M.M 르 사할리엔.
작성일 : 19-10-22 17:20     조회 : 259     추천 : 0     분량 : 55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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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M.M 르 사할리엔.

 

 

 

 

 1890년 일본 고베 항. 그 홍종우는 불란서 국영 선사인 메싸쥬리 마리팀(Messageries Maritimes)사의 사할린호가 들어오면 항구에 나가보곤 했다.

 짙은 남청색으로 칠해진 거대한 배. 길이 130.75미터. 너비 12.08미터. 만재 중량 4,050톤. 세 개의 실린더를 가진 2,000마력 증기 기관과 세 개의 돛대로 13.5노트로 항해. 승선 승객 수는 일등선실 89인. 이등선실 50인. 삼등선실 36인.

 그는 그 삼등선실에 몸을 싣기 위해 일본에서 이미 2년을 일했다. 불란서 마르세이유까지의 삼등선실 선표 가격은 편도 650프랑, 왕복 980프랑. 그 배가 그의 꿈이었다.

 

 그러던 오늘 1980년 11월 2일. 그는 하얀 두루마기에 망건을 제대로 두르고 챙 넓은 흑립을 머리에 얹고 집을 나섰다.

 일본으로 온 지 이미 이 년. 통 입지 않았던 조선의 복색을 오늘에야 챙겼다. 오늘은 배를 구경하러 나온 것은 아니다. 짐은 간소했다. 가죽 짐가방 하나와 갓을 챙겨 넣을 갓통 하나.

 

  며칠 전 메싸쥬리 마리팀(Messageries maritimes)사의 고베 지점에서 마르세이유행 편도 선표를 구입했다. 그 선표 한 장과 조선 정부에서 발행한 여권 하나가 지금 그의 인생 전부였다. 아니 그 외에 두 장의 편지가 있었다.

 

 일본 최초의 근대적 정당인 자유당의 지도자 이타가키 다이스케가 프랑스의 유력 정치인 조르쥬 클레망소에게 보내는 추천장과 한양에서 얻은 파리 외방전교회 뮤텔 주교로의 추천 편지. 하지만 그 인생의 향방을 그로서는 아직 알지 못했다.

 

  하늘과 바다가 온통 파란 색이고 하얀 갈매기들이 평화롭게 넘나드는 11월의 맑은 일요일 오후, 그는 고베 항의 일본 관헌에게 출국 신고를 하고 사할린 호에 올랐다. 이제 이 배에 최소 40일 간 몸을 맡겨야 한다.

 

  국제법 상 배에 오르는 순간 그는 이미 불란서의 국토에 발을 디딘 셈. 생소한 냄새와 생소한 언어를 가진 사람들에게 선표와 여권을 내밀자 그의 선실로 안내 되었다.

 

 두 개의 침대가 위 아래로 달린 것이 양쪽에 하나씩 박혀서 네 명이 한 방을 쓰게 되어 있는 삼등 객실. 아주 좋은 꽃향기가 나고 침대의 침구는 눈부시게 하얗고 깨끗했다. 객실의 중간, 바다 쪽으로 난 창가 밑에는 세수를 할 수 있는 대야가 고정되어 있고 깨끗한 세숫물을 담은 하얀 법랑 주전자가 담겨 있었다. 삼등 객실이 이렇게 좋을 수가 있나 하고 놀라긴 했지만 그가 정말 놀란 것은 선실에 켜진 등불을 보고서다.

 

 등잔도 아니고 촛불도 아니고 그냥 저 혼자서 밝게 빛나고 있는 등불, 바로 전기로 빛을 밝히는 전등불이었다. 일본에 몇 년 전에 들어오긴 했다 들었지만 직접 보기는 처음이었다. 더구나 선상이었다. 만져볼까 싶어 손을 가까이 대자 너무 뜨거웠다. 불은 불이구나. 짐을 대충 정리해 놓고 다시 앞 갑판으로 나갔다.

 

  배가 출항하려면 아직 한 시간이 남았다. 그는 뱃전에 기대어 부두의 환송 인파들을 헤쳐 보았다. 그를 환송하러 나온 사람은 당연히 없었다. 이틀 전 아사히 신문사의 조판국 직원들과 조촐하게 송별회를 했고 일주일 전엔 약간의 교분을 나누던 조선 출신의 인사들과 술자리를 가진 것으로 이별의 과정을 마무리했다. 일본은 그에게 경유하는 장소에 불과했다.

 

  그는 지난 1885년 봄이 떠올랐다. 김만식과 김윤식. 사촌 형제인 두 사람과의 만남이 이 모든 것의 시작이었다. 동도서기론에 동의하는 소장파 유생들의 모임을 이끌던 김윤식 대감의 서촌 사저에서 그들을 처음 보았다. 동도서기론에 기본적으로 동의하지만 모화주의와 척족 세도 정치를 제일 먼저 척결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겁 없는 그를 두 사람은 아까워했다.

 

 “홍군. 이제 무엇을 하려는가?”

 “이끌어 주십시오. 갈 바를 아직 알지 못하겠습니다.”

 

 그리고 그는 김윤식 대감의 개인 비서 역으로 조선 정부의 외교 업무를 지켜볼 수 있었다. 특히 1886년의 조불 수호통상 조약 체결 시에는 통리교섭통상사무아문독판(統理交涉通商事務衙門獨判) 김만식 대감의 비서로서, 1887년의 비준 시에는 외무독판(外務獨判) 김윤식 대감의 비서 자격으로 그 자리에 섰다. 명백한 불평등 조약이었지만 어차피 평등을 요구할 처지도 아니었다. 아니 평등을 경험해 본 적 조차 없는 조선의 외교관들이었다.

 

 그 자리에서 그는 조르쥬 코고르당(Georges Cogordan)과 빅토르 꼴렝 드 플랑시(Victor Colin de Plachy)를 각각 만났다. 그들이 그의 앞날에 어떤 식의 인연이 될지는 그도 아직 모르는 일이었다.

 

  크게 기적이 울었다. 박동하는 증기기관의 진동이 강해지고 사할린 호가 서서히 고베 항의 선착부두를 떼어냈다. 환송하는 이들과 떠나는 이들의 손짓이 시나브로 잦아들고 이제 주위는 온통 바다였다.

 

 그는 선실로 다시 내려갔다.

 선실에는 일본인 남자 승객이 한명 앉아 있었다. 그들은 간단히 통성명을 하고 서로의 행선지를 물었다. 상하이까지 간다는 일본 남자는 불란서까지 간다는 그의 말을 들은 후 놀란 표정을 짓고는 여러 가지 질문을 쏟아냈다. 그는 건성으로 대답하다가 스스로에게 물었다.

 

 “무엇 때문에 가는 건가? 언제나 돌아올까?”

 

 그로서도 알 수 없는 질문이었다.

 

  고베를 떠난 지 이틀 째 되는 날 사할린 호는 세토 내해를 빠져 나가 시모노세키 해협을 지났다. 그리고 그 다음 날 그는 조선의 끝자락 제주도의 남단을 볼 수 있었다. 오후 4시쯤 삼등 선실의 급사 노릇을 하는 인도인 선원이 그를 손으로 불러냈다. 꼬레, 제주. 그의 말을 알아 들을 수는 없었지만 그 두 단어를 모를 수는 없었다. 그는 급히 갑판으로 올라가 엷은 바다 안개 너머로 희미하게 보이는 섬의 윤곽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그리고 주위가 완전히 어두워질 때까지 갑판에 서서 제주도 방향에 고정된 시선을 움직이지 못했다.

 

 그는 그 어둠이 두려웠다. 이제 완전한 미지의 세계로 그는 나아가고 있었다. 무엇을 위해, 무엇을 얻으려고 그는 이 멀고 낯선 길을 떠난 것인지 그조차도 아직 알지 못했다. 다만 그곳에 무엇인가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와 그의 조국을 구원할 어떤 것이 있기를 기대했다. 그 막연한 것을 기대하고 그는 막연한 길을 떠났다.

 

  사할린 호는 완전하게 서구의 세계였다. 그를 놀라게 한 건 전기 등불만이 아니었다. 우선 그를 당혹시킨 것은 걸터앉는 방식의 수세식 화장실의 변기였다. 단 한 번도 그렇게 앉아 용변을 본 적이 없는 그는 편안하게 용변을 보기까지 꽤 시간이 걸렸다.

 음식 문제도 심각했다. 그가 산 선표에는 그가 마르세이유에 내릴 때까지의 식음료 가격도 포함이었다. 일등선실과 이등선실에서 어떤 것들을 먹는지는 몰랐지만 삼등선실의 음식도 나쁘지는 않았다. 커피 한 잔과 버터와 잼을 곁들인 빵으로 아침을 먹고 야채를 곁들인 고기나 생선 요리로 간단히 먹는 점심 식사. 그리고 세 가지 코스의 요리와 치즈가 나오는 저녁 식사. 하루 세끼가 정확히 꼬박꼬박 제공 되었다. 물론 아침을 제외한 점심과 저녁에는 포도주도 제공되었고 저녁 식사 후엔 독한 증류주도 한두 잔 마실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쌀밥을 구경할 수는 없었다. 제공되는 음식은 모두 서양식 음식이었다.

 그가 사십 평생을 주식으로 삼아 온 쌀밥을 먹을 수 없다는 건 고문이었다. 일본에 체류한 약 이 년 간의 시간 동안 심각하게 느끼지 못했던 이질감과 소외감은 바로 이런 식생활에서 가장 크게 느껴졌다. 그는 포크와 나이프의 사용법부터 배워야 했다. 젓가락과 수저는 당분간 이별이었다.

 

  낮 시간에 그는 주로 삼등 객실의 응접실에 나가 있었다. 가끔 갑판으로 산책을 가곤 했지만 주로 응접실에서 책을 읽었다. 무릇 선비의 본분은 책을 읽고 스스로를 깨우치는 것. 그 응접실에는 간단한 서가가 마련되어 있었고 서른 권 안팎의 책이 꽂혀 있었다. 일본어 책이 두 세권, 중국어 책이 역시 두 세권, 영어책이 약 예닐곱 권. 나머지는 모두 불란서 말로 찍힌 책들이었다. 그가 선택한 책은 세 권이었다. 성경 책 두 권과 에밀 졸라라는 사람이 쓴 ‘제르미날’라는 소설이었다.

 

 선택의 여지가 많지도 않았지만 그가 그 책들을 선택한 이유는 간단했다. 서양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서 기독교를 이해해야 하며 그 중 가장 정확한 방법이 성경을 읽는 것이라는 점. 그리고 정말 중요한 점은 같이 비치 된 일본어 성경과 불란서 성경 두 권을 갖다 놓고 사전을 펴서 비교해 가며 읽는 것이 가장 쉽고 정확한 불어 공부 방법이라는 것이었다.

 그는 한자로 제작된 성경을 이미 읽은 바 있었다. 그는 성경을 경전으로 대하지 않았다. 교재일 뿐이었다. 그리고 제르미날, 그는 이 책을 쓴 에밀 졸라의 이름을 일본 자유당의 지도자 이타가키 다이스케에게 들었다. 그가 불란서의 급진적 공화주의자인 조르쥬 클레망소에게 소개하는 추천 서신을 적어 주면서 언급했던 바로 그 이름이었다. 프랑스에 가게 되면 그의 저서들을 꼭 읽어보고 가능하다면 그를 만나보도록 그에게 권한 이름이 에밀 졸라였다. 그 에밀 졸라의 이름을 서가에서 발견한 그는 망설임 없이 그 책을 빼서 자기의 선실에 가져갔다.

 

 

  별 일 없이 사할린 호는 상하이, 홍콩, 싱가포르, 콜롬보를 거쳐 아프리카 대륙의 지부티에 닿았고 홍해를 거쳐 수에즈 운하에 접어들었다. 사막이라는 것도 처음이었지만 그 하얀 사막 사이에 사람의 힘으로 거대한 바다 물길을 내서 그 물길로 이 큰 배가 지나는 것은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그러나 그의 시선은 운하의 초입과 마지막에 세워진 요새에 걸린 깃발이 프랑스의 삼색기라는 것을 놓치지 않았다. 이 운하를 건설했고 지금 운영하는 회사가 바로 프랑스 국영회사라는 것을 상징하는 바였다. 비록 이 지역이 국제법상 어느 나라의 국토도 아닌 중립 지역이고 운하 주변과 운하 자체를 무력으로 관리하는 나라가 영국이고 수에즈 주식회사의 상당 주식을 영국이 사들였다지만 이 운하가 프랑스의 자본과 기술력으로 만들어졌고 그 운영회사가 프랑스 국적의 회사인 것만은 변할 수 없는 일이다.

 

 그는 19세기말 세계 문명의 변경 끄트머리에서 그 중심으로 항해하고 있었다. 조선에서 출발해 일본을 거쳐 중국, 인도, 중동, 아프리카를 거쳐 유럽을 향해 다가가고 있었다. 그는 그를 압도해 오는 거대한 힘을 느꼈다. 조선에서 느꼈던 막연한 서구 제국들의 힘이 아니고 강철과 증기 기관과 대포로 상징되는 실제의 힘을 느끼기 시작한 것이다. 이 힘이 우리에게 있다면, 이 같은 힘을 어떻게 우리가 가질 수 있을까? 그는 수에즈 운하에서는 한 줄의 책도 읽을 수 없었다.

 

 

  겨울 초입의 지중해는 거칠었다. 검푸른 바다에서 며칠이나 뒹굴던 사할린 호가 오늘 1890년 12월 23일 오후 2시에 불란서 마르세이유 항에 도착했다. 짐을 챙겨들고 다시 조선의 의관을 정제한 그가 한 손에 조선의 여권을 들고 배에서 내렸다. 그 동안 그가 친밀하게 지내던 인도인 선급 등 몇몇 선원들과 인사를 나눈 뒤였다.

 

 마르세이유 항구를 비치는 겨울 오후의 햇빛은 거만하지 않았지만 선창에 줄줄이 늘어 선 마차들의 말들은 자못 크고 거만한 모양새였다. 조선에서 보아 온 작은 체구에 선한 눈빛의 말들과는 아예 달랐다. 그는 마차 호객꾼들을 피해 마르세이유 기차역의 방향을 묻고는 역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너무 오랜만에 밟는 땅의 거죽이 너울너울 울렁거렸다. 그는 그 울렁거림을 차근차근 즐기며 사암 재질의 화려한 석조 건물들이 늘어 선 오르막 길을 걸어서 올랐다.

 

 낯선 바람과 낯선 냄새와 낯선 사람들과 낯선 풍물들 사이로 그의 모습이 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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