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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언하모닉 베네딕투스
작가 : 대홍수
작품등록일 : 2019.9.22

제국의 멸망 이후 120년. 전란 속에서 사람들은 황제의 귀환을 꿈꾼다.

 
EP.3 암살자와 원용(9)
작성일 : 19-10-22 15:55     조회 : 200     추천 : 0     분량 : 3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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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아이와 도란이 무슨 대화를 했는지는 알 수 없었다. 노아는 자신이 들은 이야기만을 감당하기에도 충분히 벅찼다.

 하지만 도란이 살의를 감춘 것은 매우 마음에 들었다. 도란은 아이와 무슨 대화를 나눴는지 더는 노아에게 적의를 드러내지 않았다.

 노아는 도란에게 별다른 관심을 두지 않았고, 도란 역시 필요하지 않으면 노아에게 말을 걸지 않았지만 그건 증오보다는 어색함처럼 보였다.

 

 그아참실다는 노아가 중독되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해독을 위해 노력했지만 실패했다. 그리고 노아의 의심의 눈초리에 변명하듯 말했다.

 

 “살인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죽은 자를 살리는 건 아무도 못 해. 중독보다 해독이 훨씬 어렵다고. 어차피 저 도적질 하는 녀석이 해독제를 만들 수 있다며? 잘 두드려서 해독제를 받아내. 아니, 내가 두드려 줄까?”

 

 다행인지 불행인지 노아가 해독제 조합을 알고 있었기에 그아참실다가 도란을 두드리는 일은 없었다.

 

 폭설이 오랫동안 지속하였기에 노아와 도란은 사흘을 내리 산에서 지냈다. 아이는 식사를 마치면 기타를 연주하곤 했다. 시내였다면 그 앞에 모자만 놓아둬도 한 사람 먹고살 만큼은 벌 만한 실력이었다.

 아이를 향한 평가가 바뀔 것은 없었다. 인간으로서는 정당화할 수 없는 최악의 범죄자고, 장이로서는 당연히 할 일을 한 평범한 사람이다. 그리고 아이는 장이다. 노아는 대화 속에서 자신이 뭘 원하는지 알 수 없었다.

 

 처음으로 흡혈귀에게 피가 빨린 체험을 한 것도 그 무렵이었다. 늑대인간들은 흡혈귀에게 별다른 거리낌 없이 팔을 내줬다. 늑대인간의 수가 더 많고, 흡혈귀의 식사량이 적은 편이기에 단체 빈혈에 걸리는 일은 없었다.

 

 “목을 무는 줄 알았는데.”

 “그러면 죽죠.”

 

 여성 흡혈귀가 무신경하게 말하며 노아의 팔을 깨물었다. 따끔하고 피가 쭉 빠져나갔다.

 트레드밀이 말했다.

 

 “예전에는 그랬습니다. 우리는 많은 피를 먹지 않아요. 그러니 피를 빨아봐야 약간 피곤하고 말죠. 하지만 아시잖아요? 피를 빼앗긴다는 그 두려움이요. 자발적인 동의를 얻지 못하면 우리는 굶어 죽거나 폭력에 의존하는 수밖에 없고, 정기적인 식사가 불가능하니 사람을 붙잡으면 최대한 많은 피를 빨기 위해 목을 무는 겁니다.”

 

 식사를 마친 흡혈귀가 노아의 팔에서 입을 뗐다. 입을 다물고 있기 때문인지 피는 보이지 않았다. 트레드밀의 말대로 그리 몸에 무리가 가지는 않았다.

 흡혈귀 레미안이 고개를 숙여 인사해 감사를 표했다. 문득 인사말로 ‘잘 먹었습니다.’ 같은 소리를 하면 어땠을까 생각했지만, 곧 고개를 저었다. 장기적으로는 불쾌할 인사다.

 

 “늑대인간을 설득하기도 쉽지 않았습니다. 흡혈귀가 아닌 아이님이 설득했으니 조금 더 공평해 보였고, 늑대인간들 역시 여기서 멸종의 위기를 겪고 있으니 어느 정도 서로의 아픔에 공감함에도 거부감을 이기기 힘들었기에 아이님은 몇 번이나 혈액 부족으로 죽을 뻔했습니다.”

 

 노아는 과장이라고 생각했다. 강함과 교활함과 집요함을 동시에 지닌 장이가 생명이 위험하다는 건 상상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이제 아이는 그 종족의 기준이 되었다.

 모든 장이는 여자다.

 모든 장이는 사람들 간의 공존을 원한다.

 모든 장이는 인류의 적이다.

 모든 장이는 노아를 지지한다.

 모든 장이는 십이산맥의 한 산에 살고 있다.

 어쩌면 모든 장이는 노아의 생각과 다른 사람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푸른 하늘을 향한 강렬한 향수가 우울증으로 진화할 무렵 마침내 폭설이 그치고 길이 열렸다.

 아이는 점심을 먹던 중 갑작스럽게 말했다.

 

 “이거 먹고 마을로 돌아가도록 해. 내가 산 아래까지는 안내하지. 그곳에서 지내다 겨울이 끝나면 여길 떠나. 동남쪽에 꽤 비옥한 땅이 있어. 미원 후작은 평판이 좋고 겸허한 사람이니 네 기반을 다질 때 도움이 될 거야.”

 “알겠습니다.”

 

 노아는 잠깐 침묵한 뒤 대답했다. 옆에서는 수괴 에린이 몸으로 갈빗대를 통째로 덮어 안에서부터 녹이고 있었다. 노아는 마을로 돌아온 뒤에는 꿈에서 깨어난 사람이 현실에 돌아올 때처럼 이 광경을 잊어버리지 않을까 생각했다.

 물론 그러지 않을 것이다.

 

 식사를 마치고 준비를 끝내자 아이는 노아와 도란을 데리고 산 바깥으로 나왔다. 맑게 갠 산꼭대기에서 내려다보자 마을의 전경이 작게 보였다. 아이가 익숙하게 앞장서 걸었다.

 아이는 산에서 내려가며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필요한 말은 이미 다 했다는 투였다. 노아는 자신이 아이의 말을 잊어버리거나 소홀히 생각했으면 어쩌려는 건가 하는 생각을 했다.

 물론 노아는 잊지 않았다.

 

 아이가 걸음을 멈췄다.

 

 “여기서 1시간이면 마을로 돌아갈 거야.”

 

 아이가 두 팔을 벌려 노아에게 다가갔다. 놀란 노아가 무언가 말을 하기도 전에 아이가 노아의 목이 가는 목걸이를 채웠다.

 값싸고 흔하게 생겼지만 특이하게도 목걸이에는 작은 호루라기가 붙어 있었다. 푸르스름한 옥으로 만든 예쁜 물건이었다.

 

 “호루라기는 눈속임이야. 심심할 때 불면 소리는 좋을걸. 우리와 연락하고 싶으면 이걸 부숴. 그러면 가능한 한 빠르게 네게 도움이 갈 거야. 신중하도록 해. 이건 만드는데 시간이 꽤 걸리니까.”

 “아, 예.”

 

 노아는 그 눈속임이 얼마나 도움이 될지 회의적이었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고맙습니다.”

 “네가 죽으면 곤란하니까. 이건 튕기는 말이 아니야. 네가 손에 넣은 힘의 대가로 짊어지게 된 종족이 셋이야. 그 무게를 이해하길 바란다.”

 

 아이는 자연스럽게 장이를 제외했다. 이미 사라진 종족이니까. 사흘간 적응한 노아는 놀라지 않았다.

 노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달리 할 말은 없었다.

 아이가 도란을 바라보았다. 도란이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노아와 그 주변 인물에 대한 어떤 적대 행위도 하지 않겠습니다. 봄이 되면 곧바로 본가로 돌아가 그대의 제안을 전하겠습니다.”

 

 꽤 품위 있는 태도였지만 그리 고무적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품위는 그릇이다. 내용물이 빈약하면 가치가 빛을 잃는다.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말을 한다면 품위가 살아날 수 없는 게 당연하다.

 

 “잘 생각했어.”

 

 아이는 기대도, 실망도 담지 않은 평범한 미소로 화답했다. 그리고 산을 다시 올랐다. 아이의 모습이 나무 사이로 감춰질 때까지 기다린 도란이 노아에게 손을 내밀었다.

 노아가 눈썹을 치뜨고 그 손을 바라보았다. 아이가 말했다.

 

 “화해하자. 앞으로 한 달간은 한마을에서 함께 살아야 할 테니.”

 

 노아는 아이와 한 대화를 떠올렸다.

 

 {“저 아이는 죽이지 마.”

 “제 손으로 저 암살자의 가족을 죽였고, 저 녀석도 절 죽일 뻔했습니다. 죽이지 않으면 죽을 수밖에 없을 텐데요.”

 “날 믿어.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할게.”}

 

 노아는 오른손을 오므렸다. 그리고 마침내 손을 뻗어 도란을 향했다.

 

 {“분노는 감정입니다. 이성적으로 풀릴 때도 있지만 기대할 수 있는 건 아니죠.”

 “그래도 기회를 주지 않겠어? 누구에게나 기회는 받을 자격이 있잖아.”}

 

 노아의 손이 가까워지자 도란의 눈동자가 비틀거렸다.

 천천히 다가가던 노아의 손이 불현듯 뛰쳐나와 도란의 손목을 움켜쥐고 비틀었다. 도란의 손등에서 칼날이 튀어나왔다.

 도란이 낭패라는 표정으로 힘을 줬지만, 노아는 놓아주지 않았다.

 

 {“좋습니다. 기회를 주면 되겠죠. 하지만 그 뒤에도 절 죽이려 하면요?”

 “그럴 일은 없어.”

 “그럴 일이 생기면 죽이겠습니다. 그럴 일이 없다고 장담했으니 그 말에 책임은 질 수 있어야죠.”

 “그래, 알겠어.”}

 

 노아는 피식 웃었다. 문득 불에 타 몸부림치는 아린이 떠올랐다.

 노아는 웃음이 나왔다. 아이도 결국 이상이 현실을 가리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노아는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무고한 죽음을 일으켜야 할지 생각했다. 그리고 자신이 걸을 피와 죽음의 길에 암살자 하나 추가된다고 문제 될 일은 없으리라.

 노아는 말했다.

 

 “지금이라도 화해할 생각은 없겠지? 내가 널 어떤 마음으로 죽여야 할지 생각해 보려고.”

 

 도란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도란이 떨리는 목소리로 독설을 던졌다.

 

 “화해할 생각이 있다고 하면 네가 죄책감에 아파할까?”

 “아니, 참 뻔뻔한 년 잘 죽였다고 생각하겠지.”

 “젠장.”

 

 도란이 품에 손을 집어넣었다. 동시에 노아의 허리춤의 검이 뽑혔다.

 

 *****

 

 겨울이 끝났다.

 봄이 찾아왔다.

 노아는 마을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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