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ading...
1일간 안보이기 닫기
모바일페이지 바로가기 > 로그인  |  ID / PW찾기  |  회원가입  |  소셜로그인 
스토리야 로고
작품명 작가명
이미지로보기 한줄로보기
 
 
자유연재 > 판타지/SF
언하모닉 베네딕투스
작가 : 대홍수
작품등록일 : 2019.9.22

제국의 멸망 이후 120년. 전란 속에서 사람들은 황제의 귀환을 꿈꾼다.

 
EP.3 암살자와 원용(7)
작성일 : 19-10-22 15:54     조회 : 208     추천 : 0     분량 : 7745
뷰어설정 열기
뷰어 기본값으로 현재 설정 저장 (로그인시에만 가능)
글자체
글자크기
배경색
글자색
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7)

 

 [장이는 사라진 수많은 사람 종족 중 가장 최근에 사라진 부류이다.

 외형적으로 가장 기묘한 차이를 보이는 박회나 웅퉁몸과 달리 장이는 내면적으로 가장 기묘한 차이를 보이는 종족이라 알려져 있다. 물론 인물학에 한쪽 발가락이라도 담근 사람이라면 장이의 외형 역시 내형 못지않게 특이한 종족임을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장이는 일생의 단 하나의 목표만을 쫓게 된다. 목표는 어떤 분야에서 최고가 되는 것에서, 어떤 업적을 최초로 이루는 등 다양한데, 이 목표를 ‘빛’이라 부른다. 빛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게 된 이유는 단순하다. 장이는 빛을 정하지 않으면 앞을 보지 못한다. 태어나면서 장님으로 태어나는 장이는 자신의 목표를 정하는 순간 갑자기 눈이 뜨이게 된다. 눈을 뜨는 시간은 언제나 태양이 떠 있을 때뿐이다.

 빛을 향한 장이의 집착은 무서울 정도다. 만약 최강의 전사를 꿈꾼다면 그들은 그 의지만으로 몸이 부풀고 맨몸으로 웅퉁몸의 껍질을 부술 수 있을 정도로 근육이 단단해진다. 최고의 도둑을 꿈꾼다면 그들은 몸집이 작아지고 피부가 어둠에 맞게 어두워질 것이다. 역사학자를 목표로 한 장이는 그 자신이 역사가 되도록 하디보다 장수할 수도 있다.

 빛을 움켜쥐는 데에 도움이 되는 것은 육체뿐만이 아니다. 어떤 장이는 자신의 빛을 위해 한 마을을 만들 수도 있고, 어떤 장이는 그 마을을 파괴할 수도 있다.

 만약에 어린 자식의 목을 비틀어야 자신의 빛을 이룰 수 있다면 그들은 고통스러워하는 대신 자식이 어려 저항하지 못함에 기뻐하며 단번에 그 목을 비틀고 혹시 오른쪽으로 비틀었어야 했는데 왼쪽으로 비튼 것이 아닌지 고민할 것이다.

 장이는 그 집착만큼 이뤄낸 업적도 까마득히 많다. 만약에 어떤 사물을 가리키는 어원이 인간의 것이 아니라면 장이가 발견하거나 발명한 것이다.

 흔히 특정 분야에 열중하거나, 어느 정도의 경지에 오른 사람을 장이인, 혹은 장인이라고 부르는데 이 단어는 장이에서 따온 것이다.

 재밌게도 그들이 멸망하게 된 원인 역시 이런 집착 때문이었다. 한 장이가 ‘가족을 꾸리면 앞도 못 보는 자식놈 키우는데 시간이 너무 낭비되는데 그냥 가족을 꾸리지 않으면 빛을 움켜쥘 시간을 아낄 수 있으니 엄청난 이득 아닌가?’ 하는 의견을 냈다. 다른 어떤 종족도 어처구니없는 소리라고 했겠지만, 장이는 그 장이의 천재성에 갈채를 보내며 그 세대에 모조리 멸종했다.

 태양과 장이의 신 이카루스는 마지막 남은 두 장이를 남녀로 둠으로 장이에게 마지막 희망을 안겨 주었지만, 장이는 그 본성을 포기하지 못했다.

 최후의 남자 장이인 버독은 제국군의 대장군이 되었고, 최후의 여자 장이인 아이는 제국을 무너뜨린 자, 대홍수의 두 번째 홍수가 되어 버독의 목을 잘랐다.

 대홍수가 실종하고 아이 역시 함께 사라졌기에 사람들은 아이가 죽었고, 장이가 온전히 사라졌다고 하지만 아이의 빛이 뭔지 모르는 이상 그건 성급한 발상일지도 모른다.

 물론 아이가 마지막 장이임은 분명하겠다.

 

 -언 너캐의 '수집된 이야기들' 중에서]

 

 노아가 아이의 말을 듣자마자 검을 뽑지 않은 것은 자신을 내려다보며 언제든지 밟아 죽일 수 있는 원용 그아참실다 때문이 아니었다. 그저 검이 없기 때문이다.

 30미터 정도 떨어진 벽에 세워진 자신의 검을 바라본 노아는 짧게 안도했다. 무의식중에라도 검을 뽑았더라면 노아는 그아참실다에게 밟혀 즉사했을 것이다.

 노아는 목소리에 두려움을 담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아이(I). 마지막 장이라고요? 그렇게 자의식 강한 이름을 가진 장이는 하나밖에 모르는데요.”

 “아직 잊히지 않은 이름인가 보네.”

 

 아이는 노아에게는 별 관심도 주지 않은 채 도란을 부축하고 얼굴을 살피며 말했다.

 

 “맞아, 그 아이. 어린이 말고 이름이 아이지. 나와 대장이 죽인 인간이 2천만이 조금 넘었나. 잊기 힘든 사건이기는 하겠네.”

 

 노아는 아이의 말을 과장으로 받아들일 수 없었다. 버독이 이끄는 120만 대군은 키르키 평야에서 대홍수의 일곱 군단과 대회전을 치렀다. 두 군대의 전쟁 끝에 패배한 것은 키르키 평야였다. 키르키 협곡으로 개명하게 되었으니까. 제국의 병사들은 한 사람도 패배감을 느끼지 못했다. 패배감은 생존자의 감정이니까.

 

 아이는 별다른 감정이 담기지 않은 얼굴이었다. 의미는 너무 단순했다.

 과거의 죽음들은 내 목적을 위해 필요했다. 시간을 되돌린다 한들 같은 짓을 또 저질렀을 테니 사과는 무의미하다. 널 죽이는 건 내 목적과는 별 상관이 없는 듯하니 그냥 두겠다. 그러니 적대하지 않아도 된다.

 

 노아는 이 암울한 상상 속에서 유일하게 불확실한 부분이 마지막 두 문장이라는 점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상대가 장이라면 그저 남녀의 구조적 차이를 알기 위해 해부학적 연구용 인형 두 개를 주워 왔다고 생각해도 놀랄 일은 아니다.

 

 아이는 도란의 목을 짚고 몸을 쿡쿡 찔렀다. 흔들어 깨운 건지, 아니면 혈을 찌르기라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도란은 아이를 끌어안고 비명을 지르며 기절에서 깨어났다.

 

 “워워워......원용!”

 “안녕?”

 

 그아참실다가 도란에게 앞발을 흔들었다.

 별 효과는 없었다. 도란은 그 앞발이 자신의 몸을 짓누르기라도 한 것 같은 얼굴로 다리에 힘을 줬다.

 아이가 도란을 몸에서 떼어냈다.

 

 “걱정 마 얘야. 그아참실다 언니는 내 친구야. 난 아이라고 해. 넌 이름이 뭐니?”

 

 아이의 이름을 들은 도란의 또 다른 발광을 예측한 노아는 난장에서 시선을 돌려 굴을 바라보았다.

 굴은 습하지도 않았고, 어둡지도 않았다. 노아는 천장에서 은은한 빛이 도는 것을 발견했다. 아이가 도란을 데리고 여기로 들어왔다. 벽의 재질 때문에 여기가 굴이라고 부르기는 했지만, 기절한 도란을 눈밭에 파묻으려 했던 게 아닌 이상 이런 굴이 여러 방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말일 것이다.

 구름이 산 정상을 가렸다는 말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거대한 규모에 노아는 깨달은 듯 말했다.

 

 “여긴 지하군요. 지상에 세워진 지하에요.”

 

 그아참실다가 몸을 숙여 노아와 시선을 맞췄다. 턱이 땅에 닿았음에도 그아참실다의 눈은 노아의 눈보다 높이 있었기에 결국 올려다보고 내려다보는 구도는 변하지 않았다. 그아참실다가 만족스럽게 콧김을 뿜었다.

 

 “똑똑하네. 맞아. 산을 파내서 공간을 만들었지.”

 “어떻게 산을 무너뜨리지 않고 이런 공간을 파는 것이 가능하죠? 마법으로 모든 걸 감당할 수 있나요? 원용의 팔이 이런 섬세한 작업에 어울리지는 않을 것 같은데요.”

 “그건...... 이따가 이야기하자. 이 완용만도 못한 쉐끼가!”

 

 그아참실다의 살기에 움찔한 노아가 도란과 아이를 바라보았다. 역시 아이를 보고 놀란 도란이 독침이 담긴 바람총을 입에 물고 뒷걸음질을 치고 있었다.

 도란이 독침을 쏘려는 순간 휘몰아치는 바람에 도란이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어느새 아이와 도란 사이를 그아참실다가 가로막고 살벌한 눈빛으로 노려보고 있었다.

 

 흔히 이야기에 나오는 장면처럼 바람총을 입에 물고 놀라 숨을 들이쉰다고 자신이 중독되거나 하는 일은 없다. 하지만 숨을 들이쉬고 나면 내쉬어야 하는 것이 인간의 생리고, 크게 들이쉰 만큼 크게 내뿜은 숨이 바람총의 침으로 튀어 나왔다.

 짐새의 맹독을 담은 탐 가문의 자랑스러운 뼘창은 명예로운 죽임을 당했다. 당황한 도란의 미성숙한 명중률 덕에 ‘맞지 않았으니 원용에게 통할지 안 통할지는 아직 모른다!’는 주장을 계속해나갈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아침실다가 도란의 몸을 터뜨릴 듯 앞발을 들었다. 도란을 구한 사람은 아이였다.

 

 “진정해. 안 죽었잖아?”

 “하지만 죽이려 했지. 내 이 빌어먹을 놈들을 당장에!”

 “언니, 친구로서 부탁할게. 일단 둘 다 살려주지 않겠어? 난 저 아이들과 할 이야기가 있거든.”

 

 아이의 말에 도란과 얼떨결에 놈‘들’에 포함된 억울한 노아는 10년은 늙은 기분이 들었다.

 노아는 여전히 분노에 찬 원용의 눈동자를 보고 무언가 정정할 필요를 느꼈다. 노아가 그아참실다에게 말했다.

 

 “혹시나 해서 말하는데 저는 놈‘들’에 포함되지 않고, 쟤랑 적입니다. 아니, 그냥 지금 저 여자를 죽이면 안 될까요? 손을 더럽히기 싫다면 제가 할 수도 있는데요.”

 

 그아참실다는 구미가 땅긴다는 얼굴로 노아를 바라보았고, 대답은 그아참실다의 궁둥이에서 나왔다.

 

 “안 돼. 너희 다 살릴 거야.”

 

 아이의 거절에 그아참실다가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그래, 네가 데려온 애들이니 알아서 하게 둬. 하지만 무기는 압수해야겠네. 가지고 있는 거 다 내려놔. 무슨 갯장어 뼈 바르는 것도 아니고 날붙이가 왜 이리 많아?”

 

 이번에는 아이도 별말을 하지 않았다. 도란은 짧게 고민했지만, 코앞의 원용과 그 뒤의 장이 만큼의 설득력이 도란에게는 없었다.

 도란은 자신이 두려워한다는 티를 내지 않기 위해 노력하며 품 안의 무기를 모두 바닥에 내려놓았다. 단검 세 자루와 채찍, 바람총과 뼘창 한 다발이 깔끔하게 바닥에 내려졌다.

 

 “자, 맨몸. 됐어요?”

 

 원용의 몸을 빙 돌아 도란의 앞에 선 아이가 양 허리에 손을 받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깔끔하고 좋네. 그럼 우리 밥부터 먹을까?”

 

 아이의 말에 노아는 잊고 있던 시장기가 돌아왔다.

 

 *****

 

 바깥이 보이지 않기에 지금 먹고 있는 끼니가 어느 시간대인지 짐작할 수 없었지만, 노아는 인생에서 가장 불편한 식사 자리에 앉았다고 생각했다.

 우선 원용 그아참실다는 친구를 공격하려 한 도란을 향한 분노가 덜 풀렸는지 조금이라도 허튼짓이 보이면 이렇게 씹어버리겠다고 말하는 듯 커다란 연어를 뼈째 물어뜯으며 도란을 노려보았다. 뜯어먹는다는 말보다 부숴먹는다는 말이 어울릴 우악스러운 식사였지만 놀랍게도 바닥은 흘리는 찌꺼기 없이 깔끔했다.

 도란은 그아참실다의 시선을 피해 주위를 둘러보다 좋은 시선 집중소를 찾았다. 도란은 도리를 죽인 노아를 노려보았다. 그아참실다처럼 생선을 머리부터 부숴먹기는 무리였지만 대신 식사용 나이프를 들고 매끄럽게 농어의 배를 가르고 그 내장을 발라내 노아에게 보여주려는 듯 푹 찔렀다.

 얹힐 것 같은 기분 속에서 노아는 문득 여기서 자신이 아이를 째리면 어떨까 생각했다. 아이는 모든 사람의 적이라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으니 여기서 자신이 아이를 노려본다 한들 별로 이상할 일은 없으리라.

 노아는 지긋이 아이를 노려보았다. 산나물을 한 젓가락 가득 밥숟가락에 얹어 입에 넣으려던 아이는 노아의 시선을 느끼고 뒤이어 도란과 그아참실다의 시선의 방향까지 차례로 보았다.

 

 “응? 아!”

 

 잠시 멍하니 생각하던 아이는 깨달았다는 얼굴로 손가락을 튕겼다. 그리고 그아참실다를 노려보면서 완벽한 순환을 만들었다.

 아이의 행동에 자신의 행동이 바보 같아졌다고 느낀 그아참실다가 콧김을 뿜었다.

 

 “됐어, 밥이나 먹자. 이제 얌전히 먹을게.”

 “그래, 내가 얼마나 힘들게 낚았는데 그런 얼굴로 보면 생선이 슬퍼한다?”

 

 노아는 꽤나 이상한 말이라고 생각했다. 농어 등뼈를 가르던 노아가 문득 말했다.

 

 “그런데 여기서 가장 가까운 바다도 1000킬로미터는 떨어져 있지 않습니까? 설마 산을 판다고 그 밑에 바다가 나오지는 않을 텐데요.”

 “그건 저 언니가. 나는 낚시만 해.”

 

 포슬포슬한 식빵으로 입가심을 하던 그아참실다가 아이의 말에 앞발을 들어 발톱으로 원을 그렸다. 무슨 이해하기 어려운 비유법인가 생각한 노아는 원 반대편의 공간에서 갈매기 소리를 들었다.

 잠시 후 갈매기 한 마리가 자연스럽게 공간을 열고 날아왔다. 당황한 갈매기가 천장을 빙글빙글 돌며 날카롭게 울자 그아참실다는 새로운 공간을 열었다. 익숙한 고향 냄새를 맡은 갈매기는 다급히 원래의 집으로 돌아갔다.

 

 “물고기는 이렇게 쉽게 끌어오지는 못하지. 물속에 문을 열면 여기가 물바다가 될 테니. 그래서 수면에 문을 연 뒤에 내가 낚시를 하는 거고.”

 

 아이는 평범한 낚시 기술을 알려주는 것처럼 태연하게 말했다. 노아는 경악했다.

 

 “이게 가능하다고요? 공간 조작은 하디에게도 불가능한 일일 텐데! 그게 가능하면 현존하는 전략의 8할이 쓰레기가 되었을 텐데 왜 몰랐죠?”

 “하디는 ‘지금은’ 못 하지. 하지만 곧 녀석들도 해낼 거야. 어차피 나도, 하디도 보통 너희들 전쟁에 끼어들지는 않잖아? 걱정 마. 너희들의 전쟁은 앞으로도 변함없이 비참하고 미개할 테니.”

 

 노아는 주리틀을 떠올렸다. 주리틀은 누군가를 위해 자신과 마을을 공격했다.

 물론 하디가 적극적인 전쟁에는 참전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노아는 ‘전쟁을 준비할 때 고려하지 않은 위험요소는 필연이 되어 돌아온다.’라는 버독의 어록을 알고 있었다.

 

 아이가 즐거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식사 자리는 이렇게 시답잖아야지. 즐겁지 않니? 도란아 너도 아무 말이나 해 봐. 뭐 궁금하거나 하고 싶은 말 없어?”

 

 생선 내장을 노아의 것인 양 나이프 옆면으로 정성껏 으깨던 도란이 흠칫 놀라 말했다.

 

 “아? 아. 당신. 아이가 그 아이지? 대홍수의 군단장.”

 “우리끼리는 홍수라고 불렀지만.”

 “대체 왜 그런 짓을 저지른 거지? 우리는 같은 사람이 아니었나?”

 

 노아는 분위기가 싸해질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아이는 천진난만하게 웃었다.

 

 “여장은 가장 남자다운 행동이야. 남자만이 할 수 있으니까. 전쟁은 가장 사람다운 행동이지. 인간과 거북곰이 전쟁을 벌이나? 그냥 사냥이나 구제라고 부르지. 거북곰이 공격해도 그건 그냥 해수 피해지. 돈 받고 사람 죽이는 일을 가업으로 삼는 사람에게 이런 말을 듣고 하는 게 웃기기는 하지만.”

 

 마지막 문장에 도란의 얼굴이 붉어졌다. 노아가 피식 웃었다.

 

 “이렇게 말하면 괜히 서로 분위기만 더러워지겠지? 얼굴 펴. 어차피 여긴 살인자들의 식탁이잖아? 노아, 넌 몇 명이나 죽였지?”

 “......세어본 적은 없군요. 전쟁에서 그걸 다 세고 있지는 않습니다.”

 “하긴, 그거야 나도 마찬가지지. 언니는?”

 “212명. 그중에 길을 헤매다 잘못 들어온 놈들이 일곱 가족이고 151명은 원용을 죽여 이름을 좀 날려보고 싶다는 얼간이였지. 인간이 제일 많긴 했네.”

 “봐봐, 네가 제일 적게 죽였을걸? 암살자에게는 별로 자랑스럽지 않나?”

 

 머릿속으로 자신의 살인 횟수를 세던 도란은 아이가 자신에게는 묻지 않자 그냥 잊어버리기로 했다. 어차피 아이 말이 맞을 것이다.

 노아가 말했다.

 

 “좋아요, 전쟁은 사람다운 일이라고 칩시다. 하지만 모든 투쟁에는 목적이 있죠. 한두 명이 얽혀서 치고받는다면 단순히 자존심이나 쾌락을 위해서로도 충분하겠지만, 수십에서 수백이 얽히려면 물리적인 득실이 필요합니다.

 당신들은 수천에 접미사로 만을 붙여야 하는 수를 죽였어요. 대체 어떤 이유가 붙어야 그게 가능해지죠?

 대홍수는 전쟁이 끝나고 곧 사라졌습니다. 그건 목적을 이뤘기 때문입니까, 아니면 결국 실패한 겁니까?

 대홍수는 인간입니까? 하디입니까? 살았습니까? 죽었습니까?”

 

 아이는 인내심 있게 노아의 이야기를 들었고, 대답은 그아참실다가 했다.

 

 “당신‘들’이라니. 나는 그 전쟁에 없었는데?”

 “와, 언니 이제 와서 꼬리 자르기는 너무하지 않아?”

 

 아이가 그아참실다의 옆구리를 가볍게 찔렀다. 그아참실다가 입술을 푸르릉대며 웃었다.

 

 “우리 대장이 살아있는지는 나도 몰라. 그건 솔롱고가 알 거야. 솔롱고가 어딨는지는 나도 모르고.”

 

 솔롱고는 대홍수의 일곱 홍수 중 다섯째이자 유일하게 이름만이 알려진 자이다. 노아는 전설처럼 남겨진 역사를 자연스럽게 말하는 아이의 말에서 아득한 시간을 느꼈다.

 

 “대장이 원한 건 실패했어. 만약에 성공했으면 나와의 약속을 지켰겠지. 배신당했다고 생각하기에는 대장은 너무 갑작스럽게 사라졌고.”

 

 아이가 손을 깍지 껴 기지개를 켜며 불평했다.

 

 “수명이 짧은 아이들은 너무 슬퍼. 시답잖은 이야기에도 이렇게 집요하게 정보를 캐내려고 하잖아. 난 ‘좋아하는 음식이 뭐에요?’나 ‘남자친구 있어요?’ 같은 대화를 기대했단 말이지.”

 

 노아는 ‘그래서 그 남자친구의 목을 자른 게 누구죠?’ 같은 질문을 하지는 않았다. 원용이 눈을 부라리고 있을 때는 용기를 내기 어렵다.

 

 “가장 처음 질문. 어떤 이유가 붙어야 그런 규모의 전쟁이 성립하는가? 그건 너희를 살린 이유와 같아.”

 

 예상치 못한 대답에 노아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추가적인 설명을 요구하는 노아에게 아이가 젓가락으로 식탁을 가리켰다.

 

 “보여줄 게 있어. 우선 밥 먹고, 그 뒤에 보면서 이야기하지.”

 

 

 

 

 

 

 

 
 

NO 제목 날짜 조회 추천 글자
24 곁다리 이야기: 믿음이 꺾이지 않는다는 것 2019 / 10 / 22 198 0 5720   
23 EP.3 암살자와 원용(9) 2019 / 10 / 22 200 0 3900   
22 EP.3 암살자와 원용(8) 2019 / 10 / 22 206 0 6359   
21 EP.3 암살자와 원용(7) 2019 / 10 / 22 209 0 7745   
20 EP.3 암살자와 원용(6) 2019 / 10 / 22 183 0 6742   
19 EP.3 암살자와 원용(5) 2019 / 10 / 22 218 0 5690   
18 EP.3 암살자와 원용(4) 2019 / 10 / 22 206 0 6607   
17 EP.3 암살자와 원용(3) 2019 / 10 / 22 201 0 6453   
16 EP.3 암살자와 원용(2) 2019 / 10 / 22 221 0 7238   
15 EP.3 암살자와 원용 2019 / 10 / 22 199 0 6755   
14 곁다리 이야기: 교씨 3대 2019 / 10 / 22 202 0 6847   
13 EP.2 거북곰과 하디(8) 2019 / 10 / 13 192 0 6653   
12 EP.2 거북곰과 하디(7) 2019 / 10 / 12 211 0 8383   
11 EP.2 거북곰과 하디(6) 2019 / 10 / 12 211 0 6434   
10 EP.2 거북곰과 하디(5) 2019 / 10 / 12 209 0 5558   
9 EP.2 거북곰과 하디(4) 2019 / 10 / 12 207 0 7001   
8 EP.2 거북곰과 하디(3) 2019 / 10 / 12 198 0 6850   
7 EP.2 거북곰과 하디(2) 2019 / 10 / 11 202 0 6853   
6 EP.2 거북곰과 하디(1) 2019 / 10 / 9 205 0 5953   
5 곁다리 이야기. 수비대 노아 2019 / 10 / 7 212 0 5436   
4 EP.1 일각수(完) 2019 / 10 / 6 207 0 5473   
3 EP.1 일각수(3) 2019 / 10 / 5 191 0 7361   
2 Ep.2 일각수(2) 2019 / 10 / 4 200 0 7389   
1 EP.1 일각수(1) 2019 / 10 / 3 374 0 6851   
이 작가의 다른 연재 작품
등록된 다른 작품이 없습니다.

    이용약관   |   개인정보취급방침   |   이메일주소 무단수집거부   |   신고/의견    
※ 스토리야에 등록된 모든 작품은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 본사이트는 구글 크롬 / 익스플로러 10이상에 최적화 되어 있습니다.
(주)스토리야 | 대표이사: 성인규 | 사업자번호: 304-87-00261 | 대표전화 : 02-2615-0406 | FAX : 02-2615-0066
주소 : 서울 구로구 부일로 1길 26-13 (온수동) 2F
Copyright 2016. (사)한국창작스토리작가협회 All Right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