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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언하모닉 베네딕투스
작가 : 대홍수
작품등록일 : 2019.9.22

제국의 멸망 이후 120년. 전란 속에서 사람들은 황제의 귀환을 꿈꾼다.

 
EP.3 암살자와 원용(2)
작성일 : 19-10-22 15:52     조회 : 221     추천 : 0     분량 : 7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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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힌돌은 기쁜 표정으로 노아를 찾아왔다. 하지만, 무언가에 후두려 맞아 퉁퉁 부은 파말과 사말의 얼굴을 보고 기쁨을 숨겨야 할까 잠시 고민했다. 파말이 피 섞인 침을 뱉었다.

 

 “웃어도 돼요. 멍청해서 맞은 거니까.”

 “아, 그래?”

 “네. 얼마간 잘 안 보이더라니 아내분이 임신하셨나 보네요. 축하합니다.”

 

 코를 풀어 엉긴 핏덩어리를 뽑아낸 사말의 말에 턱을 부여잡고 눈살을 찌푸리던 파말과, 호흡 한 번 흐트러지지 않고 자리에 앉은 채 히죽대던 노아가 똑같은 표정으로 경악하며 힌돌을 바라보았다. 힌돌이 씩 웃으며 가슴팍을 가리켰다. 옷 사이로 떨어져 나간 껍질에서 분홍빛 진액이 흐르고 있었다. 웅퉁몸의 전통이다. 아내가 임신하면 남편은 가슴팍의 껍질을 뜯어낸 뒤, 그 껍질을 자식처럼 보호한다.

 아내가 가장 취약해지는 시기에 남편의 약점을 만드는 전통을 현명하지 못하다고 생각하던 노아였지만, 기쁜 날에 전투 종족의 지능과 인내심을 동시에 시험할 생각은 없었다.

 

 “축하합니다. 스톤두 가문의 새로운 주춧돌이 자라나는군요.”

 

 노아의 축사에 힌돌이 흥겹게 웃었다.

 

 “고맙네, 고마워. 너는 우리 애를 못 보고 떠나겠네. 그건 좀 아쉽구만.”

 “보기만 하고 떠나는 것도 웃기잖아요? 언젠가 돌아오면 그때 소개해주세요.”

 “그러려면 12년 안에 와야겠네.”

 

 노아가 떫게 웃었다. 10년에 한 번씩 있는 웅퉁몸의 껍질깨기는 언제나 5번째에서 웅퉁몸에게 자연사를 선사한다. 노아는 자신의 나이를 50에서 한 해씩 지워 나가는 웅퉁몸의 계산법에서 시한부 환자의 고통을 느꼈다. 힌돌은 노아가 느끼는 것을 느끼지 못하고 손뼉을 쳤다.

 

 “아, 그래. 쟤네들이 너와 함께 하산하고 싶어서 뭔가 준비하던데. 어때, 셋이 같이 떠나는 거야?”

 “아무래도 머리가 더 크면 받아줄 생각인 모양입니다.”

 

 사말이 퉁퉁 부은 자신의 볼때기를 가리키며 푸념했다. 힌돌이 더 크게 웃었다.

 

 “그래, 그렇게 보이네. 완벽한 우회법이야.”

 

 노아는 가볍게 손을 터는 시늉을 했다.

 

 “자기네들 욕심입니다. 이제 세상 밖으로 나가면 전 암살자들에게 쫓기면서 밤이슬 맞고 살거나, 저를 혐오하는 약자를 위해 강자와 맞서는 삶을 계획하고 있는데 자기 마음대로 저를 황제 후보로 생각하더군요.”

 “세상에나, 그런 아름다운 장밋빛 인생을 버리고 황제 같은 끔찍한 운명을 강요하니 그렇게 개 패듯 두드려도 할 말이 없지. 너희들이 잘못했네.”

 “놀리지 마시죠.”

 

 파말이 쏘아붙이고 턱을 똑바로 맞췄다. 턱을 몇 번 흔들어 만족스럽게 맞춘 것을 확인한 파말이 노아를 가리켰다.

 

 “다음에는 활 들고 붙자.”

 “그럼 나도 활 든다.”

 “......목검으로 하자. 창이나.”

 

 사말이 웃다가 또다시 코피를 쏟고 신음했다. 노아는 지난 겨울 간의 재활이 충분히 효과를 발휘한다는 생각에 만족했다.

 그때 내린이 노아의 이름을 비명으로 지르며 달려왔다.

 

 “아저씨! 노아 아저씨!”

 “오늘 대련은 끝이야. 난 두 명 어치만큼 더 붙었거든.”

 

 사말이 허리를 꼿꼿이 펴고, 일방적이지만은 않은 혈투를 벌인 척 허세를 부렸다. 내린은 자신이 달려온 방향을 가리키며 외쳤다.

 

 “사람이 죽었어요!”

 

 *****

 

 “란아, 란아! 아이고 우리 딸 이를 어째!”

 

 원일의 아내 소로는 차갑게 식은 딸 란이를 끌어안고 오열했다. 원일은 소로와는 조금 달랐다. 마치 마음에 들지 않는 연극에 억지로 끌려 나온 배우처럼 아무런 영혼이 담기지 않은 웅얼거림을 내뱉으며 멍하니 서 있을 뿐이었다.

 노아는 사람들의 술렁임에 담긴 단편적인 정보로 사태를 대략 파악할 수 있었다. 원일이 딸을 데리고 산책하러 나갔다. 얼마 뒤 차갑게 식은 딸의 시체를 안고 마을로 돌아왔다.

 

 으어어

 

 짜증이 한껏 나 있던 내린은 그 모습을 그저 원일이 딸에게 장난치며 괴물 흉내를 내는 것이라고 생각했기에 원일이 지나쳐 가도록 몸을 비켰다. 그리고 원일은 내린에게 란이를 내밀며 단호하게 말했다.

 

 어어어

 

 내린은 그제야 그 표정이 딸과의 소꿉놀이에 동참하기를 권하는 아버지의 얼굴과는 조금 다르다는 것을 눈치챘다. 내린은 무심코 란이를 받으려 했고, 원일을 내린을 밀고 란이를 꼭 껴안았다.

 

 아아아!

 

 그리고 내린은 란이의 목이 뒤로 축 늘어지는 것을 보고 심상치 않은 기류를 느끼고 비명을 질렀다.

 

 노아는 내린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잘했어. 충분히 잘 한 거야.”

 “대체, 이 어린 애가 왜 갑자기......”

 

 내린이 떨리는 두 손을 겨드랑이 사이에 끼웠다. 한기와 두려움이 내린의 몸을 기묘하게 갉아댔다.

 소로가 원일에게 외쳤다.

 

 “당신! 대답 좀 해봐!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냐고!”

 

 원일은 여전히 제대로 된 대답 대신 모음의 연장선만을 읊조리며 아내의 시선을 흘렸다. 소로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도움을 요청하는 눈빛이다. 노아는 소로가 요청하는 도움이 자신만이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너 때문이야! 너 때문에 우리 딸이 죽었어!”

 

 소로의 선언에 사람들이 노아에게 시선을 돌렸다. 논리는 필요하지 않았다. 그저 피해자의 눈물만이 필요했다.

 

 “내 딸 살려내! 당장!”

 “아니, 이봐요......”

 “원망하게 둬. 어차피 헤어질 사람이면 증오하는 게 작별하기 쉽지.”

 

 노아가 반발하려는 사말을 말렸다. 그리고 원일에게 다가갔다. 원일은 노아와 상수리나무의 차이를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처럼 굴었다. 그리고 노아는 자신이 상수리나무보다는 버드나무에 가까움을 증명했다. 노아의 팔이 부드럽게 치솟았다가 그대로 원일의 따귀를 때렸다.

 원일이 멍한 얼굴로 노아를 바라보았다. 아직 눈빛이 온전히 돌아오지 않자 노아가 또다시 따귀를 때렸다. 노아는 원일의 오른쪽 뺨만을 집요하게 때렸다. 마침내 고통이 슬픔을 넘어가며 노아가 팔을 들어 올리자 원일이 몸을 움츠렸다. 노아가 팔을 내리고 말했다.

 

 “자, 이제 말해요. 원일씨 대체 어떻게 된 거죠?”

 “노아......”

 “네, 노아입니다. 이제 말해 보시죠.”

 

 원일은 쓰러지듯 노아에게 안겼다. 얼떨결에 원일을 안은 노아는 원일의 다음 대사에 몸이 저리는 것을 느꼈다.

 

 “노아...... 탐씨야.”

 

 노아는 원일을 잡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원일을 잡고 흔들어 방금 이야기를 세세하게 다시 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생각은 구현되지 않았다. 노아는 저린 몸에서 배를 중심으로 감각이 살아나는 것을 느꼈다. 원일이 단검으로 노아의 배를 찔렀다.

 

 “탐씨라고 노아. 너...... 때문에 내 딸이 죽었어.”

 

 노아의 배를 찌른 원일은 정신을 잃고 바닥에 쓰러졌다. 노아가 원일에게 무슨 짓을 저질렀다고 생각한 사람들은 노아에게 고함을 지르려다 노아의 배에 난 구멍을 보고 비명으로 전환했다. 노아는 가까스로 균형을 잡고 사말을 붙잡았다. 왠지 쓰러지면 안 될 것 같다는 기분이 들었다.

 

 ‘나 때문에 아이가 죽었다. 나 때문에......?’

 

 노아의 생각은 오래 흘러가지 못했다. 사말이 노아의 상의를 벗기고, 어느샌가 가져온 달궈진 쇠붙이가 노아의 환부를 지지자 노아는 비명을 지르며 의식을 잃었다.

 

 *****

 

 륜은 노아를 지키다가 죽었다. 웅퉁몸의 주먹을 빗겨맞은 노아는 바닥을 굴렀고, 그 틈을 타 노아의 목을 치려던 적장 형도를 발견한 륜은 결국 자신을 지우고 적의 목을 찌르는 암살자의 전투법을 포기해야 했고, 형도의 칼에 심장을 찔렸다.

 

 할이는 노아가 지키지 못해 죽었다. 전쟁에 익숙한 노아는 득실이 철저한 차가운 전술만을 알았고, 그저 쾌락을 위해 사람을 죽이는 미치광이는 익숙하지 않았다. 그 살인마는 노아를 조롱하듯 눈앞에서 할이의 목을 졸랐다.

 

 아린은 노아의 손에 죽었다. 노아는 아린을 묶어 산채로 불구덩이에 집어넣었다. 그러는 편이 치료법을 찾기보다 더 안전하기 때문이었다.

 

 초랭이는 노아를 원하는 사람에게 죽었다. 하디 주리틀은 노아를 허수아비 황제의 자리에 앉히기 위해 마을 사람들을 죽였고, 그중에는 20도 넘지 못한 아이도 있었다.

 

 란이는...... 란이는 왜 죽었을까?

 

 노아는 숨이 넘어갈 것 같을 정도로 웃었다. 그리고 자신이 숨을 쉬지 않고 있기에 숨넘어간다는 개념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노아는 자신이 부상으로 의식을 잃었음을 자각했다. 아니, 노아의 의식은 여기 있었다. 노아는 의식을 잃은 것은 사람들이 지켜보고 있을 자신의 몸이고, 자신은 육신을 잃었다고 표현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생각했다.

 

 “무력하고 무력하고 또 무력했는데 이제는 더 무력해졌네.”

 

 노아의 의식이 신경질적인 웃음을 터뜨렸다. 나쁘지 않은 삶이라고 생각했건만, 주마등 속 노아는 너무나도 하찮고 무가치한 존재였다.

 눈시울이 뜨겁다고 느낀 노아는 자신의 눈이 없다는 것을 자각하고 다시 웃었다. 하지만 자신에게는 허파도 없었기에 노아는 곧 웃음을 멈췄다.

 

 “깨어나지 말자.”

 

 노아는 결정했다. 영원히 이 상태로 깨어나지 못하고 그냥 죽어버리자. 그러면 탐 가문에서는 암살에 성공했으니 물러날 테고, 원일은 나름의 방법으로 복수에 성공했다고 생각하고 마음을 추스를 것이다. 그리고...... 다시는 노아 때문에 누군가가 죽지는 않을 것이다.

 마음을 정한 노아는 존재하지 않는 눈을 감고 자신을 부정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런 행동은 전쟁을 겪은 사람답지 않은 태도였다.

 

 자신을 긍정하는 자도 전쟁터에서 목이 잘리면 죽는다. 그리고 자신을 부정하는 자도 부상이 적절한 치료를 받으면 살아날 수 있다.

 

 “정신이 들어 노아?”

 “후, 시발.”

 

 노아는 사말의 얼굴을 보자마자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찔리는 순간 상처가 별로 깊지 않음을 인식하고 있었기에 노아는 상처가 깊지 않으니 큰 문제는 없을 거라는 사말의 말을 듣고도 별다른 감흥을 얻지 않았다.

 

 “란이는?”

 “원일씨네 집에. 이미 숨을 거뒀지만, 가족들은 장례를 거부하고 있어. 겨울이라 시체가 썩으려면 시간이 걸릴 테니 갑작스러운 죽음에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은 줘야지.”

 

 사말이 쓰게 말했다.

 

 “원일씨는?”

 “일단 힌돌씨가 원일씨네 집에 가뒀어. 우리 마을에는 감옥도 없고, 원일씨도 딸을 잃어 심란할 테니까.”

 “그리고 내가 찔리는 건 그럴 만하다고 생각할 테니까.”

 

 사말이 한숨을 쉬었다.

 

 “노아, 마을 사람들이 널 미워한다고 모든 원인을 너로 귀결할 필요는......”

 “탐 가문이 찾아왔어. 그놈들이 란이를 죽였어. 그리고 원일씨를 통해 내게 말을 걸었어.”

 

 사말이 입을 다물었다. 노아는 깊은 한 숨을 쉬고 확인하듯 다시 말했다.

 

 “놈들이 여기에 왔어.”

 “대체...... 어떻게? 네가 여기에 온 걸 알려줄 사람은 없어. 주리틀도 죽었잖아.”

 “주리틀도 내가 여기 있는 것을 어떻게든 알아냈어. 아마 비슷한 방법을 썼을지도 모르지. 그게 뭔지는 모르지만.”

 

 사말이 침음했다.

 

 “이런 말이 위로가 되지는 않겠지만 넌 정말 죽음을 부르는구나.”

 “인정하겠어. 그래서 나도 그냥 죽고 싶었는데. 네가 살려버렸잖아.”

 “의료인은 환자를 죽게 두지 않는 법이야.”

 “의료인? 네가?”

 

 사말이 채 아물지 못한 코를 쓰다듬으며 눈을 찌푸렸다.

 

 “그래, 의료인. 이 마을에 있기 전에는 나도 나쁘지 않은 의학자였으니까.”

 “아, 그래? 그러고 보니 네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었네.”

 “궁금해?”

 “아니.”

 

 자신의 기구하고 화려한 일생을 털어놓고 노아와 함께 청운의 꿈을 휘어잡는 상상을 하며 눈을 빛내던 사말은 노아의 한 마디에 다시 눈빛을 죽였다.

 

 “아무튼, 힌돌씨만 안된 일이지. 출산일까지는 늘 함께 있고 싶을 텐데.”

 “출산일이 끝나고 아기를 품에 안으면 그 욕망이 더 커질걸. 차라리 지금 터진 게 다행이지.”

 “그건 그렇네.”

 

 노아는 이마를 짚었다. 수많은 전쟁으로 죽음과 죽임에 무뎌진 수비대의 노아와 아무런 힘이 없는 어린아이를 죽인 것에 분노하는 마을 주민 노아가 충돌하며 현실성을 모호하게 했다.

 

 사말이 몸을 일으켰다.

 

 “우선 촌장님한테 이야기해야겠네. 탐씨가 있다고.”

 

 사말도 원일도 상대를 암살자 대신 탐씨라고 불렀다. 탐 가문은 암살자치고는 유명하지만 그래도 암살자다. 암살자가 유명하다면 가치를 잃고, 애초에 평민들은 암살자를 고용할 일이 없기에 탐 가문 암살자의 위용에 대해서는 야사로나 전해지곤 했다. 하지만 마을에 정착하며 노아가 풀어낸 이야기보따리 중에는 탐 가문과 관련된 것도 있었고, 그 때문에 마을 사람들 대부분이 탐 가문에 대해 알고 있었다.

 노아는 고개를 저었다.

 

 “안 그러는 게 낫겠어. 어차피 저들은 막을 수 없어. 괜한 공포만 가중할 뿐이야. 원일씨가 입을 다문다면 우리도 조용히 있는 게 상책이야.”

 

 노아는 생각에 잠겼다. 노아는 이 마을에서 거의 무방비로 살고 있었다. 물론 마을 사람들에게는 편집증적으로 보일지도 모르지만 탐 가문에게는 문을 열어놓고 있는 기와집처럼 보일 것이다. 애초에 검을 머리맡에 두지 않고 상자에 담아 마루 밑에 두는 것부터가 밤중의 습격에 기꺼운 마음으로 죽어주겠다는 선언과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저들은 밤중에 찾아와 노아의 목을 찌르고 사라지는 대신 마을의 어린아이를 죽였다. 그리고 노아의 이름을 내밀고 자신을 소개했다.

 노아는 문가를 바라보았다. 깊은 밤이다. 문득 불안해진 노아는 문을 열고 마루 밑에 손을 집어넣었다.

 

 “뭐해?”

 “기왕 살았으니 조금 더 발버둥.”

 

 상자를 꺼낸 노아는 검을 꺼내 머리맡에 내려놓았다. 상자 뚜껑을 닫으려던 노아는 뚜껑에 붙은 쇳조각을 발견했다. 사말이 노아가 떼어낸 쇳조각을 바라보았다. 한 뼘 길이의 가는 침처럼 생겼지만 침치고는 두꺼웠다. 노아는 소름이 돋았다. 노아는 이와 비슷한 물건을 본 적이 있었다.

 

 “이게 뭐야? 의사가 침술로 사람 죽이려고 만든 것 같네.”

 “뼘창이야. 비슷한 거지만 의사가 아니라 탐 가문이 만들었지.”

 

 노아는 뼘창의 둥근 끝부분에 음각으로 새겨진 작은 글자를 발견했다.

 

 “酖. 짐새의 깃털에서 독을 뽑아서 끝에 발랐다는 표시야. 탐 가문의 상징물이기도 하지.”

 

 노아가 상자 밑에 깔린 천을 조심스레 찢어 뼘창을 감쌌다.

 

 “널 암살하려고 한 걸까?”

 “그랬으면 손잡이 뒤쪽에 눈에 띄지 않는 방식으로 붙였겠지. 아니, 애초에 이런 복잡한 방법 대신 오늘 낮에 이걸 내 뒤통수에 직접 쏴버렸겠지. 오히려 내가 실수로라도 찔리지 않도록 뚜껑에 붙여놨어. 아마도 내가 뭔가 알아채길 원하는 모양인데.”

 “글쎄다. 주리틀 사건이 있잖아. 암살황 같은 걸 꿈꾸고 있는 자들일지도 모르지.”

 

 노아는 고개를 저었다.

 

 “박씨는 드물기는 하지. 대홍수의 난에서 대부분이 죽었고, 살아남은 사람들도 보통 가문을 포기하거나 다른 야망가들에게 이용당하다가 죽었을 테니까. 하지만 탐씨가 날 굳이 살려둬야 할 정도로 드물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는데.”

 “그건 3년 전, 아니 이제 4년 전 이야기지. 주리틀이 발견한 박씨가 네가 최초였을까? 그리고 그 박씨들을 살려뒀을까? 주리틀 같은 사람이 주리틀 뿐이었을까? 그사이에 얼마나 많은 박씨가 사라졌을까?”

 “그건 너무 비약이야.”

 “맞아, 그런데 그거 말고 다른 가능성이 있기는 해?”

 “끙......”

 

 노아가 긍정과 부정 사이의 어딘가에서 신음했다.

 

 “고민해봐야 소용없겠지. 일단은 직접 만나서 대화를 나눠봐야겠어.”

 

 노아가 몸을 일으켰다. 배가 저릿했지만, 걷기에 지장이 갈 정도는 아니었다.

 

 “어디로 가야 하는 줄 알고?”

 “뼘창이 가리키는 방향이 북쪽이었지. 아마 마을 북쪽에 숨어있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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