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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기타
엄마, 그 인간, 그리고 나린
작가 : 세가잘놀
작품등록일 : 2016.10.5

'가난'이란 한 단어로 정의하기엔 조금은 부족한 듯한,
지금은 평범한 직장인 85년생 나린이의 굴곡진 삶.
과거를 지나 현재까지의 우리, 우리 부모님 이야기.

 
1_5
작성일 : 16-10-08 14:29     조회 : 448     추천 : 3     분량 : 4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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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마가 나를 혼자 남겨두고 돈을 벌러 나가는 날이 많아졌고 그런 날이면 난 방 한가운데 몸을 옹크려 누워서 숫자를 셌다. 한글을 못 뗀 나였지만 숫자를 세는 법은 배워 혼자서 천까지 셀 줄 알았다. 천 다음에도 천일, 천이, 하고 계속 세어나갔다. 구천구백구십구까지 세자 더는 할 일이 없었다. 엄마가 오자마자 “구천구백구십구 다음이 뭐야?”하고 물었다. 엄마는 피로에 쩔은 몸을 바닥에 뉘이곤 한숨을 섞어 “만”이라고 했다. “만 다음은?” “만 일.” “아니, 구만구천구백구십구 다음엔 뭐냐고.” 엄마는 내가 구만구천구백구십구를 한숨에 말하자 살짝 놀란 듯하더니 “십만 그다음은 백만.”하곤 하품을 했다. 엄마가 곧 죽은 듯 잠을 잘 거란 것을 아는 난 엄마 머릿밑에 베개를 놓아주곤 그 옆에 누워 나직이 복습했다. “만, 십만, 백만.” 엄만 내 머릴 쓰다듬으며 “우리 착하고 똑똑한 나린이.” 했다. 난 손가락을 꼬불거리며 백만에 영이 몇 개인지 세어보았다. “백만은 정말 많은 거네.” 엄마는 스르르 눈을 감으며 말했다. “그럼. 많은 거지.” “내가 나중에 돈 많이 벌어서 백만 원 줄게 엄마.” “진짜?” 난 엄마의 퉁퉁 부은 새끼손가락에 내 손가락을 걸고 “진짜지. 약속할게. 백만 원.” 했다. 엄마가 볼웃음을 지었다. 엄마가 웃자 나도 기분이 좋아졌다.

 

 현실은 백 원도 여유가 없었다. 그는 새벽에 일을 나갈 때 내가 인사를 잘하면 아주 가끔 오십 원씩 주곤 했는데, 난 그 돈을 꼭 쥐고 구멍가게에 가서 소시지를 사 엄마와 나눠 먹었다. 그런 날은 하루 종일 하늘을 나는 기분이 들었다. 하루는 오십 원이 너무 받고 싶어서 일 나가는 그를 집 밖까지 마중했다. 오십 원 달라는 말은 차마 못 하고 “아버지 안녕히 다녀오세요.” “아버지 조심해서 다녀오세요.”를 반복했다. 그는 눈치가 없는 건지, 오십 원이 없는 건지, 껄껄 웃으며 내 머리만 쓰다듬었고, 보다 못한 엄마는 평소 돈을 숨겨놓던 이불 밑에서 오십 원을 꺼내 소시지를 사 먹으라 했다.

 

 난 항상 배가 고팠다. 하루 세 번 끼니는 꼬박꼬박 챙겨 먹었던 것 같은데 김치에 콩나물뿐인 반찬 때문인지 아침에 일어나면 머리가 핑 도는 게 바로 배가 고팠다. 내가 그 지경이었으니, 몸 쓰는 일을 하는 그나 엄마는 더 빼쩍 말라갔다. 달걀이 너무 먹고 싶어 엄마 몰래 울었던 날도 있다. 사람은 자기 몸에 결핍된 영양소가 들은 음식을 먹고 싶어 하니까 필히 단백질이 부족해서였을 거다. 당시 먹어 본 단백질이 들은 음식이라곤 달걀뿐이었으니 고기가 아니라 달걀이 먹고 싶었을 테고. 엄마에게 말해 봤자 달걀이 나올 것 같지 않아 엄마를 조르지 않았는데, 엄마가 우는 날 발견했다. 손톱만 한 방에서 나만의 시간을 갖는 건 불가능했다. 엄마가 무슨 일이냐고 다그쳐 묻자 난 괜히 억울한 기분이 들어 “삶은 달걀이 먹고 싶어.”하며 절규했다. 엄마는 또 이불 밑에서 돈을 꺼내서 달걀 두 개를 사 왔다. 그날 밤 엄마와 그는 참 오래 싸웠다.

 

 엄마가 이불 밑에 모은 돈은 내가 여섯 살 때 건물 안에 화장실이 있는 지하 단칸방의 보증금이 되었다. 겉보기엔 옆으로 길쭉한 단독 주택 같이 생긴 건물의 지하에 열 세대의 셋방이 일렬로 따닥따닥 붙어있었고 좁은 복도의 반대편에는 열 개의 부엌 겸 화장실이 또 빽빽이 있었다. 복도만 건너면 우리만의 화장실이 있었다는 것, 그리고 한켠에 있던 연탄불에서 밥을 해먹을 수 있다는 게 달라진 점이었지, 방은 그전보다 두세 뼘 커진 게 다였다. 동네도 수유리 옆의 우이동이었으니, 이는 엄마가 꿈에 그리던 이사는 아니었다. 그래도 엄마가 이사를 감행했던 건 그즈음 그가 트럭 한 대를 할부로 마련해서 이사를 공짜로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빚은 절대 안 된다고 했던 엄마였지만 어차피 돈을 못 갚으면 차를 돌려주고 말면 된다는 그의 말에, 그리고 트럭으로 서울과 부산을 한번 오고 가면 10만 원에서 20만 원까지 벌 수 있다는 그의 말에 넘어갔다. 그 20만 원 안 되는 돈에서 기름값 빼고 차 할부금 빼고 하면 크게 남는 장사는 아니라는 걸 깨달았을 땐 이미 늦었었다. 장거리 운전은 고달팠고 한번 집을 나가면 하루 이틀은 차에서 자야 하는 신세였지만, 그는 노가다보다는 낫다고 좋아했다. “노가다는 무거운 걸 하루 종일 들고 다녀야 하는 기고, 이건 무거운 건 짐 실을 때랑 내릴 때 딱 두 번만 들면 되니까 훨씬 이득이다.”

 

 그의 사정이야 어찌 됐거나 난 그냥 화장실 가려고 밖에 안 나가도 되는 게 좋았다. 화장실이라 봤자 연탄아궁이 겸 부엌에 딸려 있는 변기와 수도꼭지 하나가 다였지만, 신발을 신고 춥거나 더운 밖에 나가지 않아도 문 열고 복도 너머 다른 문만 열면 볼일을 쉽게 해결할 수 있다는 게 너무 좋아 방방 뛰었고, 그런 나를 엄만 안쓰럽고 억울한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게다가 앉아서 쌀 수 있는 변기였다. 자그마한 데다가 다리에 힘이 없어 쪼그리고 앉아 일을 보다가 수세식 변기에 발이 빠진 경험이 많은 나에게 양변기는 신세계였다. 그 변기가 너무 좋아서 거기에 앉아서 엄마가 연탄을 갈거나 밥을 하는 것을 구경하곤 했다. 엄마가 가끔씩 달걀 프라이 하나를 나에게만 만들어 주거나, 연탄불에 갓 구운 김 한 장을 먹으라고 쥐여주면, 변기에 앉아 세상을 다 가진 기분으로 그것들을 먹었고, 엄마는 제발 변기에서 내려와서 먹으라고 성화면서도 날 위해 항상 변기를 깨끗이 청소했다.

 

 방안의 작은 버너 하나에 의존하던 엄마도 자기만의 부엌을 가진 게 맘에 들었었나 보다. 부엌엔 엄마만의 자그마한 마술 항아리들이 있었다. 거기서 엄마는 고추장도 꺼내고 된장도 꺼냈다. 엄마가 만든 그것들은 맛이 좋아 맨밥에 고추장 된장만 먹어도 밥 한 공기를 뚝딱 할 수 있었다. 김치도 두세 가지 종류로 항상 있었다. 내가 깍두기를 워낙 좋아하니까 엄마는 가을에 무가 쌀 때 무를 왕창 사서 깍두기를 많이 담아 항아리에 넣어두었다. 엄만 나 때문에 김장을 두 번 하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은 거다. 언젠가 오징어 값이 폭락했을 땐 오징어 젓갈을 반 항아리 정도 담아놓기도 했는데, 난 그 오징어 젓갈 한 숟가락만 가지고도 물에 만 밥을 두 공기씩 비웠다. 가끔씩 난 고기 값이 뚝 떨어져 그 항아리들 안에 고기가 가득 들어있는 걸 상상하기도 했다.

 

 여름이 되자 왜 이곳 집값이 같은 조건의 다른 곳보다 쌌는지 이해가 됐다. 비가 오면 부엌 겸 화장실에 있는 하수구에서 오수와 오물이 그 역겨운 냄새와 함께 역류했다. 조금이라면 코를 막고 다시 하수구로 흘러내려 가길 기다리겠는데, 이게 좁은 복도 건너 방안까지 들어오는 건 순식간일 정도로 엄청난 속도와 양으로 솟아올랐다. 비만 오면 똥오줌 물로 수해가 난 거다. 엄마와 난 이곳으로 이사 오자고 한 그 인간과 이런 사태를 뻔히 알며 말을 안 해준 집주인을 욕하며 바가지로 똥물을 퍼다 날랐다. 장마철이 끝날 무렵, 나와 엄마의 손과 발엔 똥독이 뻘겋게 올라있었다. 어린 나이에도 난 내가 평생 남의 똥냄새만 맡고 사는 게 아닌가, 내 팔자는 왜 이런가, 하는 고민을 했고 밤에 잘 때는 똥물에 빠져 숨을 못 쉬는 꿈만 꿨다. 요즘도 내가 비를 싫어하고 비만 오면 코에서 똥냄새가 나는 것 같은 건 이때의 기억 때문일 거다.

 

 건물 삼 층에는 집주인이 살았다. 엄마보다 한참 못생긴 주제 항상 화장을 떡칠하고 다녔던 그년 – 엄마가 집주인을 부르던 이름이었다. – 과 밤색 정장을 입고 다니던 그년의 남편에겐 나와 동갑인 사내아이가 있었다. 그 아이는 키도 나보다 한 뼘은 컸고 살도 오동통하니 잘 올라있었다. 걔는 아침마다 샛노란 유치원복을 입고 제 몸통보다 더 커 보이는 가방을 멘 채 병아리처럼 강중강중 유치원 버스에 올라탔다. 일찍 일어나는 날이면 난 현관에 앉아 유치원 가는 아이를 구경했다. 부럽다는 생각보다는 궁금했다. 저런 아이는 뭘 먹고 다니는지. 저 유치원이란 데서는 도대체 뭘 하는지.

 

 하루는 유치원 갔다 돌아오는 아이에게 “그 가방엔 뭐 들었냐?” 물었더니 아이는 못 볼 꼴이라도 본 것처럼 날 거지 보듯 쳐다보더니 “엄마가 지하에 사는 애들하곤 말하지 말랬어!” 하곤 팩 돌아 계단을 올라갔다. 난 한 번도 오르지 못한 그 계단을 바라보며 우리가 같이 말을 하면 안 되는 이유가 저 계단 위에 있나보다고 추측했다. 난 한 번도 계단 위에서 살아 본 적 없으니까. 난 항상 계단을 내려가야 하는 데서 살았으니까. 엄마에게 이 일을 말하자 엄마는 나직이 “미친년, 꼴값을 해도 유분수지.” 했다. 당장 삼 층에 올라가 그년을 잡아먹을 듯한 엄마의 표정에 난 걔네 엄마가 왜 그런 말을 했는지 물어볼 엄두도 못 내고 맘속으로 새로 배운 단어들을 되뇌었다. ‘미친년.’ ‘꼴값.’ ‘유분수.’

 

 내가 학교 들어갈 때가 가까워지자 엄마와 그의 싸움에 내가 더 자주 등장했다. 엄마는 내게 책 한 권 사 줄 형편이 못 되는 게, 내가 유치원도 못 가고 하루하루를 똥물이나 퍼 나르며 지내는 게 싫다고 했다. 난 속으로 ‘난 엄마 아빠가 싸우는 게 제일 싫어.’ 했다. 그의 할부 트럭은 의외의 방향에서 우리 가정에 숨통을 불어넣어 줬다. 장거리 일거리가 자주 없자 그는 이삿짐 일에도 손을 댔고 사람들이 이사하며 버리는 물건들을 주워왔다.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건 ‘건진’ 거였다. 그가 건진 물건은 분명 누군가가 버리는 물건이었지만 우리 가족에게는 비싸서 못 사는 물건이었다. 그는 작은 냉장고를 건졌고 내 앉은뱅이책상을 건졌다. 여기저기 찢어진 책이며 낡고 부서진 장난감들을 건져온 그에게 난 태어나서 처음으로 “아빠 너무 좋아!”를 외쳤다.

 

 초등학교에 들어가는 날, 엄마는 내 어깨를 아플 정도로 단단히 부여잡고 말했다. “선생님 말씀 단디 듣거레이. 한 마디도 놓치지 말고.” 난 정말로 한마디라도 놓치면 큰일이 나는 줄 알고 선생님 하시는 말씀을 하나도 빠짐없이 받아 적었다. 엄마는 내가 초등학교 선생님이 되기를 바랐다. 그땐 90년대 초였고 교대 커트라인이 하늘을 찌르기 전이었으니, 엄마는 시대를 앞서 생각했던 건지 모르겠지만, 그 이유는 똑같았다. 학비도 적고 안정적이라고. 난 학교에서 하는 장래희망 조사에서 조금의 고민도 없이 ‘선생님’이라고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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