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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기록되지 않은 쐐기용사의 영웅담
작가 : SolaR
작품등록일 : 2019.9.1

인류는 ‘이레귤러의 시대’라 불리는 최악의 시대와 맞서며 끔찍한 고통을 견디어내고 있었다.
언제부터인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정체불명의 괴물들, 생태계를 뒤바꿔버릴 정도로 지독한 이상기후, 그로 인해 인간으로서의 도리를 저버린 인간들까지.
그러나 도무지 출구가 보이지 않는 고통의 나날들 속에서도 누군가는 희망의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이 이야기는 기록되지 않을 누군가의 영웅담이다.

 
2장 불을 잃어버린 대장간의 대장장이(7)
작성일 : 19-10-19 12:02     조회 : 216     추천 : 0     분량 : 7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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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뭐야? 거기 누구 있어?”

 

 바리가 묻자 어수선한 인기척이 술렁거렸다. 어수선함은 이내 소란스러움으로 바뀌었고, 소란스러움은 요란스러워졌다.

 

 슬쩍 벌어졌던 문이 드르륵하고 열리며 조그만 사람 그림자 하나가 우당탕탕 바닥을 굴렀다.

 

 “뭐야, 꼬맹이 놈들이잖아?”

 

 열린 문으로 들어온 것은 골목대장이었다. 그 뒤로는 어설프게 몸을 숨긴 다른 꼬마들이 보였다.

 

 “걸렸다! 도망쳐!”

 

 발각당한 꼬마들은 대장을 내버려 두고 그 길로 도망쳐버렸다.

 

 한순간에 혼자 남겨진 골목대장은 자기를 버리고 간 부하들의 뒤통수에 대고 씩씩거리며 성질을 냈지만 들릴 리가 없었다.

 

 굴러들어온 골목대장과 그런 그를 한심하게 지켜보는 바리와 진. 골목대장은 어쩔 수 없이 머쓱한 표정으로 바리와 마주 서야 했다.

 

 “몸은 좀 괜찮아?”

 “괜찮습니다. 울보 대장님.”

 “누가 울보 대장이냐! 나에게는 아론이라는 멋진 이름이 있다고!”

 “그럼 울보 아론님.”

 “울보를 빼라고!”

 “있잖아. 진. 이 녀석이 얼마나 꼴사납게 울어댔는지 알아?”

 “아악! 말하지 마! 말하지 마!”

 

 아론은 팔까지 휘저으며 필사적으로 바리의 입을 막으려고 애썼다.

 

 “뭘 그렇게 부끄러워하는 거야. 상대는 이레귤러야. 괴물이라고. 무서운 게 당연하지.”

 “그, 그런가? 하긴 고놈들이 얼마나 무섭게 생겼는데. 우는 것도 절대 부끄러운 게 아니야. 그렇지?”

 “아니, 아무리 그래도 콧물까지 질질 흘리는 건 부끄러운데.”

 “아! 짜증 나! 나 이만 갈래!”

 

 분한 마음에 얼굴이 시뻘게진 아론은 씩씩거리며 돌아가려고 했다.

 

 그런 그의 뒷덜미를 진이 낚아챘다.

 

 “잠깐. 아론. 여기에 온 이유를 잊은 거 아니니?”

 “하, 하지만!”

 “아론!”

 

 따끔하게 다그치자 기가 죽은 아론이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자존심 강한 골목대장도 진에게는 꼼짝 못하는 것 같았다. 아론이 정말 싫은 표정으로 비척거리며 바리의 앞에 섰다.

 

 결심을 한 듯 침을 꼴깍 삼킨 아론은.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공손하게 허리를 접으며 인사를 했다.

 

 그 모습을 멀뚱히 지켜보던 바리가 자지러지게 웃었다.

 

 “고맙다는 말을 하려고 그렇게 뜸을 들인 거야? 아이고. 배꼽이야!”

 

 굴욕으로 일그러진 아론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처음에 당했던 수모가 한 번에 날아가는 것 같았다.

 

 바리가 자지러지게 웃자 아론의 얼굴이 눈에 띄게 붉어졌다. 심상치 않게 붉어진 얼굴은 분함을 넘어 분노를 표출하고 있었다.

 

 아론이 진에게 항변했다.

 

 “봐봐요. 누님. 내가 이럴 줄 알았다고요. 그래서 싫다고 했던 건데.”

 “떽! 상대가 아무리 철이 늦든 철부지라고 해도 사과를 해야 할 때는 제대로 해야 한다고.”

 “잠깐!? 진?!”

 

 예상치 못한 진의 기습에 깜짝 놀란 바리가 소리쳤다.

 

 아무리 하소연해봤자 고지식한 진에게는 통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 아론이 부드득 이를 갈며 바리를 노려보았다.

 

 하지만 바리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분노에 찬 아론의 시선을 천연덕스럽게 받아넘기며 과장스럽게 엄살을 부렸다.

 

 “아야야. 누구 때문에 다친 갈비뼈가?!”

 “엄살 부리지 마! 그 정도는 나도 다쳤다고! 자 봐!”

 

 그러고 보니 아론의 양쪽 무릎도 검붉은 피가 물든 거즈로 덮여 있었다.

 

 “어라? 넌 왜 다쳤어? 한 일이라고는 눈물 콧물 흘려가며 엉엉 운 것이 전부잖아.”

 “........”

 

 쉽게 입을 떼지 못하고 우물거리는 아론을 대신하여 진이 대답했다.

 

 “나무에서 떨어지면서 다쳤나 봐요. 가벼운 부상이라고 하네요.”

 

 바리가 또다시 자지러진 것은 당연했다.

 

 눈가에 고인 눈물까지 닦아내는 바리를 보며 아론은 억울하다는 듯이 따졌다.

 

 “내가 그런 상황에 처한 게 누구 때문인데!”

 “누구 때문인데?”

 “이게 다 단봉이 부러져서 그런 거야! 우리는 단봉을 대신할 나무를 구하러 갔다가 그 꼴을 당한 거라고!”

 “단봉? 혹시 내가 부러뜨린 그 나무 막대기를 말하는 거야?”

 “나무 막대기가 아니야! 단봉이라고! 단봉!”

 “그거야 자업자득이지. 다짜고짜 덤벼든 것은 너희들이잖아.”

 “윽!”

 “진아. 그거 알아? 이 꼬마 놈들이 나를 습격했던 거?”

 

 아론과 진의 관계를 간파해낸 바리는 한껏 애처로운 표정을 꾸미고 하소연을 했다.

 

 “아론. 그게 진짜니?”

 “그, 그게.......”

 

 차갑게 얼어붙은 얼굴로 추궁하자 아론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죄, 죄송합니다!!”

 

 진의 싸늘한 눈빛을 견디지 못한 아론은 결국 허둥지둥 도망치고 말았다. 먼지 구름과 함께 멀어지는 아론의 뒷모습을 보며 진은 조그맣게 한숨을 내쉬었다.

 

 “죄송해요. 마을의 어른들이 자리를 비우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제가 아이들을 맡게 되었는데........ 아무래도 부족했던 거 같네요. 대신 사과드릴게요.”

 “에이, 그게 어떻게 네 탓이니?”

 “아니요. 필요에 따라 자존심을 버리는 것은 어렸을 때부터 훈련해야 한다고요.”

 “엥? 혹시 나를 습격한 게 아니라, 제대로 사과하지 못한 걸 반성하는 거야?”

 “물론이죠. 그래야 사회생활에 도움이 되니까요.”

 

 영업과는 도통 연이 없을 것 같은 농가의 아이에게 그런 것이 과연 필요할까 싶었지만 굳이 꼬집지는 않았다.

 

 “아 참. 언니 이거 받으세요. 빌헬름님이 언니에게 전해달라고 부탁하셨어요.”

 

 진은 문득 떠올랐다는 듯이 무언가를 건넸다.

 

 “빌헬름이? 이게 뭔데?”

 “글쎄요? 전해달라는 부탁만 받았지 내용물에 대해서는 귀띔이 없으셔서.”

 

 건네받은 것은 자그마한 두루주머니였다. 주머니를 열어보니 그 안에는 완벽한 구체를 띄고 있는 물건과 쪽지 한 장이 들어 있었다.

 

 “이건 엠브리오잖아? 이걸 왜?”

 

 빌헬름이 남긴 것은 이전에 꺼내 보인 적이 있던 엠브리오였다. 알쏭달쏭한 표정으로 쪽지를 펼쳐보니 거기에는 빌헬름 상단을 상징하는 인장과 빌헬름의 서명만이 적혀 있을 뿐이었다.

 

 “장난을 치고 싶었던 걸까?”

 “글쎄요?”

 “그보다 빌헬름은 어디 가고 네가 이걸 전해주는 거야?”

 “빌헬름 님이요? 언니가 정신을 잃은 사이에 이미 떠나셨어요.”

 “뭐라고? 뭐가 그리 바쁘다고 인사도 없이 그냥 갔대?”

 “언니가 며칠이나 잠들어 있었는지 아세요? 3일을 계속 잠만 잤다고요.”

 “내가 그렇게 오래 잤나?”

 

 3일이라는 말에 잠시 놀랐지만 이내 납득할 수 있었다. 부상의 정도를 생각하면 크게 이상한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빌헬름에게 내심 서운함이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엠브리오와 쪽지를 두루주머니 속에 갈무리하여 넣으며 주머니를 어디에 걸까 고민하고 있는데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노크 소리를 따라 시선을 돌려보니 아론이 열고 나간 문에 대고 새삼스레 노크를 하는 아이작을 볼 수 있었다.

 

 “흠흠. 들어가도 되겠는가?”

 “아, 물론이죠. 들어오세요.”

 

 아이작이 들어오자 진은 눈치껏 자리를 피해주었다.

 

 어색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밀짚모자를 벗은 아이작은 어색한 헛기침을 하는 것으로 운을 뗐다.

 

 “자네의 활약은 빌헬름 단장에게 전해 들었다네. 마을을 대표해서 고마움을 전하지.”

 “쫓아낼 때는 언제고? 생각보다 뻔뻔하시네요 대머리 촌장 씨.”

 “크흠. 그 대머리 촌장 씨라는 호칭은 어떻게 안 되겠나?”

 “그럼 뭐라고 부를까요? 대머리 촌장님? 문어머리 촌장님? 떠오르는 두 번째 태양?”

 “두 번째 태양은 제법 마음에 들지만 그냥 아이작 촌장이라 부르게.”

 “그러죠.”

 

 형식적으로 예를 갖추기는 했지만 정작 하고 싶은 말은 따로 있는 것인지 아이작의 주름진 입가는 안절부절 못하고 달싹거리기 바빴다.

 

 "뭐예요? 뭐 하고 싶은 말이라도 있어요?”

 “그렇게 티가 났나?”

 “그렇게 우물거리고 있으면 누구라도 안다고요.”

 “그런가?”

 

 어울리지 않는 행동으로 속내가 들켰다는 것이 민망한 것인지 그제야 풍채에 어울리는 너털웃음을 지었다.

 

 “그럼 체면 불구하고 말하겠네. 우선 자네에게 대장장이님의 대장간을 소개해주겠네.”

 “어라? 위험인물한테는 알려줄 수 없다며 쫓아낸 사람이 있었는데. 누구더라?”

 

 의뭉스럽게 대꾸하자 아이작은 겸연쩍은 표정으로 변명 아닌 변명을 했다.

 

 “그야 자네가 짓궂은 농을 하지 않았나.”

 

 어라? 짓궂은 농담 같은 것을 했던가?

 

 확실히 짚고 넘어가자면 바리는 농담을 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자네라는 사람의 됨됨이를 알게 되었네. 어느 악인이 생면부지의 아이를 위해 목숨을 던지겠는가?”

 

 이렇게 직설적인 칭찬을 듣고 있자니 아무리 바리라도 코끝이 간질거리는 것은 어쩔 도리가 없었다.

 

 “무엇보다.”

 

 아이작이 바리의 머리맡에 있는 검을 꺼내 들었다.

 

 여기저기 이가 나가 있는 것은 물론이고, 워터리시 팬서의 타액으로 부식된 부분은 이레귤러에 대한 위험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었다.

 

 바리의 검은 끔찍한 고철로 전락해 있었다.

 

 “마을의 새싹을 지켜준 검을 어찌 나 몰라라 할 수 있겠는가.”

 “........”

 “내가 검에 대한 조예가 그리 뛰어나지는 않지만 이 검은 태생부터가 그리 좋은 검은 아닌 것 같네만.”

 

 그녀의 검은 어린 시절부터 한푼 두푼 모아가면서 간신히 장만한 검으로, 사실 잡철로 만들어진 잡동사니에 가까웠다. 그런 검이 주인의 각별한 사랑을 받아 그렇게나 반짝였던 것이다.

 

 바리가 의혹을 가득 담아 아이작을 흘겨보았다.

 

 “그래서 제게 원하는 게 뭐죠? 이야기를 듣자 하니 맨입으로 알려주겠다는 것은 아닌 것 같은데.”

 “거 눈치가 빨라서 좋구먼.”

 

 호탕하게 웃은 아이작은 별것 아니라는 투로 말했다.

 

 “그저 내 부탁 하나만 들어주면 된다네.”

 

 

 **

 

 다섯 대의 캐러밴들이 줄을 맞춰 숲을 지나고 있었다. 이 캐러밴들은 낙타나 말에 의존하는 대신 엠브리오에서 발생하는 힘을 동력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캐러밴 천막 위에 자리를 잡고 누운 빌헬름은 따스한 햇살을 즐기며 콧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었다.

 

 “흐음. 시스터 바리라.......”

 

 바리가 보여준 무위(武威)는 쉽게 잊히지 않았다. 비록 아직 갈고닦을 부분은 많았지만, 약관의 수녀가 그 정도의 무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놀라웠다.

 

 그때 누군가가 빌헬름이 타고 있는 캐러밴 위로 훌쩍 뛰어올라왔다.

 

 빠르게 달리고 있는 캐러밴에 올라탄 것은 긴 장발을 가지런히 내려 묶은 차가운 인상의 청년이었다.

 

 “단장님. 곧 사막 지역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그만 캐러밴으로 드시지요.”

 “샤바타이. 네가 봤을 때는 어때? 바리라는 수녀 말이야.”

 “글쎄요. 직접 보지 못해 뭐라 평하지는 못 하겠지만.......”

 

 샤바타이가 어깨를 으쓱했다.

 

 “게부라 씨나 단장님께서 이렇게까지 말하는 것을 보면 상당한 검술을 익히고 있나 보군요.”

 

 벌떡 일어난 빌헬름이 상기된 목소리로 말했다.

 

 “아니, 검사로서의 완성도를 따지자면 아직 멀었어. 검사라고 부르기도 민망할 정도지.”

 “그렇다면?”

 “하지만 그 나이의 여자아이가 제대로 된 스승도 없이 그 정도의 성취를 이루었다는 것이 놀라워.”

 “아. 그렇군요.”

 

 눈치가 빠른 샤바타이는 빌헬름의 의중을 빠르게 읽어내었다. 빌헬름 상단의 젊은 단장은 시스터 바리가 아닌 그녀를 키워낸 수녀원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습관적으로 턱수염을 쓰다듬은 빌헬름이 눈을 빛냈다.

 

 “분명 크로우베리 수녀원이라고 했어.”

 

 하지만 샤바타이의 반응은 다소 회의적이었다.

 

 “종교단체들이 혼란기를 맞아 무력을 갖추는 것은 흔한 일입니다.”

 “그것은 나도 알아. 하지만......”

 

 빌헬름은 은은한 빛을 두르고 있던 바리의 모습을 떠올렸다. 어딘가에서 그와 비슷한 힘의 존재를 들었던 것 같았다.

 

 “그게 신경 쓰인다는 것이지........”

 “그것이요?”

 “아니, 별거 아니야. 그저 조금 흥미가 생겨서.”

 “알겠습니다. 그럼 다음 경유지에서 분대원들을 데리고 크로우베리라는 수녀원으로 떠나도록 하겠습니다.”

 “아니, 크로우베리 수녀원에는 내가 간다. 장소도 직접 들었겠다. 직접 가보고 싶군.”

 “네, 알겠습니다.”

 

 사실 샤바타이는 빌헬름을 말리고 싶었다.

 

 빌헬름이 상단의 단장을 맡기 전까지만 해도 빌헬름 상단은 몰락이라는 단어가 적절할 만큼 쇠퇴해 있었다. 지금은 빌헬름의 뛰어난 수완 덕분에 과거의 위상을 어느 정도 되찾았지만 여전히 많은 노력이 필요한 시기였다.

 

 그렇기에 샤바타이는 빌헬름이 상단의 일에 집중해주길 바랐지만 호기심 많은 젊은 단장은 한 번 관심을 가진 것에 대해서는 좀처럼 포기하는 법이 없었다. 그것은 빌헬름의 장점이자 단점이기도 했다.

 

 앞으로의 계획을 머릿속으로 그리던 샤바타이는 문득 떠올랐다는 듯이 말했다.

 

 “그러고 보니 시스터 바리는 찾던 인물이 아니었나 보군요.”

 “응. 맞아.”

 

 빌헬름 상단의 이번 상행에는 숨겨진 목적이 있었다.

 

 그중 하나는 최근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신출귀몰한 여류 검사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는 것이었다.

 

 검희(劍姬)라는 별칭으로 불리는 그녀에 대한 정보는 극히 적었다. 약관의 나이와 나이에 걸맞지 않는 높은 수준의 검기(劍技)를 갖추었다는 것 외에는 인상착의까지 불분명했다.

 

 그렇기에 사막에서 쓰러져 있던 바리에게 일말의 기대를 품었던 것도 사실이다. 이레귤러의 시대에 세상을 떠도는 인간은 딱 두 종류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스스로의 실력에 자신이 있거나 아니면 주제 파악을 못하는 머저리거나.

 

 결과적으로 바리는 분명 전자에 속하는 인물이었다. 세상 물정에는 굉장히 어두웠지만 그 정도 실력이면 어지간한 역경은 충분히 헤쳐 나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검희라고 불리기에는 부족했다.

 

 패기도 있고 신체도 잘 단련되어 있었지만, 검술에 투박한 면이 있었고 결정적으로 경험이 너무 부족했다.

 

 그만큼 ‘검희’라는 별칭은 쉽게 받을 수 있는 이름이 아니었다.

 

 “그래도 단원들의 어깨를 밟고 날아오를 때는 정말 놀랐었지.”

 “그런 일이 있었습니까?”

 “있었지. 네가 그 장면을 못 본 것이 아쉬울 따름이야.”

 

 바리의 활약을 떠올리며 눈을 빛내는 빌헬름을 보자니 이 이야기는 앞으로 몇 번이고 더 들을 것 같았다.

 

 “그렇다면 다른 건은 어떻게 처리할까요?”

 

 상행의 또 하나의 목적.

 

 그것은 언제인가 시장에 풀렸던 농기구의 제작자를 찾는 것이었다.

 

 경매장에서 우연히 그 농기구들을 발견했던 빌헬름은 깜짝 놀랐다. 품질 때문에 놀란 것은 아니었다. 품질 자체도 나쁘지 않았지만, 농기구치고는 지나치게 날을 벼려놓아 원래의 사용목적과는 괴리가 느껴졌다.

 

 빌헬름이 놀란 것은 제련 방식이었다.

 

  제 꼬리를 물고 있는 뱀이 상징적으로 새겨져 있는 농기구는 일반적인 제련 방식과는 크게 동떨어진 방식으로 제작된 게 틀림없었다.

 

 빌헬름은 그 특징적인 제련 방식을 소문으로나마 접한 적이 있었다. 만약 그 소문이 사실이라면 그 농기구를 만든 대장장이는 빌헬름이 품고 있는 목표에 한 걸음 더 다가가게 해줄 인물임이 틀림없었다.

 

 그렇기에 그 농기구를 만든 대장장이를 필사적으로 수소문했다.

 

 대장장이를 수소문하는 과정에서 많은 돈과 인력이 투입되었지만, 대장장이의 꼬리는 좀처럼 잡을 수가 없었다.

 

 게다가 유일한 단서인 농기구들마저 어느 시점을 기준으로 시장에서 모습을 감춰버렸다.

 

 “그런데 설마 그런 곳에서 찾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지.”

 

 그렇게 대장장이에 대한 것을 잊어갈 무렵, 정말 의외의 장소에서 우연히 단서를 찾아낼 수 있었다.

 

 조부와의 인연으로 말미암아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원조를 하게 된 사막의 이름 없는 마을. 바로 그곳에서 대장장이의 단서를 찾은 것이다.

 

 빌헬름은 기뻤지만 결코 내색하지는 않았다.

 

 그 이름 없는 마을의 주민들이 대장장이의 존재를 숨기려고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마을 주민들의 신뢰와 환심을 사기 위해 물심양면으로 노력을 기울였다. 고가의 이레귤러 벨을 설치하기도 하고, 아이들에게 봉술을 가르치기도 했다.

 

 그때부터는 더 이상 의무가 아닌 투자였다.

 

 “마을에는 이동 수단이 없으니 그 대장장이는 분명 도보로 오갈 수 있는 장소에 기거하고 있을 거야.”

 “그럴 확률이 높죠.”

 

 빌헬름이 내놓은 가능성에 샤바타이 또한 동의를 했다.

 

 “샤바타이.”

 “네.”

 “너는 상단의 지부로 돌아가서 마을에 얼굴을 비춘 적 없는 단원들을 소집하도록 해. 그다음은 알지?”

 “네. 알겠습니다.”

 

 대답을 한 샤바타이는 올라탈 때와 마찬가지로 달리는 캐러밴 위에서 훌쩍 뛰어내렸다.

 

 줄을 맞춰 달리던 다섯 대의 캐러밴 중 네 대의 캐러밴이 대열을 이탈하여 어디론가 사라졌다.

 

 “아이작 촌장을 상대로 괜한 촌극을 하다 거절당하긴 했지만. 뭐 어때. 결과적으로는 잘 된 일이지.”

 

 능글맞게 웃은 빌헬름은 캐러밴의 어두운 천막 안으로 모습을 감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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