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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일반/역사
승려 포청천
작가 : 설매1
작품등록일 : 2019.10.18

저는 자연이 수려한 강릉에서 태어나 죽을 때까지 강릉을 사랑하며 살 것이기에 이곳에 대한 글을 썼습니다. 현제의 삶에서 과거의 삶에 도전하는 <승려포청전>은 이어질 것입니다.
이번 제 4회 대한민국 창작소설 공모대전에 출품하기로 한 장편소설은 처음부터 두렵고 두려운 작품었습니다. 모든 것이 선에서 이루어진 신의 세계는 생각지도 못했던 사의 세계를 이야기로 전게되면서 그럴 수 있다는 공감대가 있었습니다. 역사적 인물 고려왕건의 일대기는 누구나 잘 알고 있는 영웅의 실화입니다. 그럼에도 그 영웅의 사후 세계에 있음직한 죄를 다루게 되었고 그 영웅의 부인 29명에 대한 올곧지 못한 점을 찾아 세상에 이슈가 되었던 미투에 접목 시켰습니다.
그것을 풀어가는 과정에서 왕건시대 전쟁으로 억울하게 죽은 귀신들의 반란을 안정시키는데 탁월한 엄변으로 변론하여 왕건죽음 49일 동안 그의 죄가 타당함을 밝혀 하늘세상의 옥황상제 품으로 올려 보내는 과정이 주목 할 만 한 스토리가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저는 불가에 입문하여 수 십 년 동안 의심을 풀기위한 목적으로 부처 가까이에 항상 있어야 한다는 이유가 일상속에 합께 하였습니다. 신의 세계를 평정하는 승려 일현은 불현듯 마음에서 일어나는 한 생각에 모든것을 초개 처럼 버리고 슬려의 길을 살면서 망자가 돤 왕건의 죄를 풀어가는데 반전과 반전의 기회를 적절하게 하여 소설의 재미를 느낄 수 있도록 노력 하였슴니다. 감사합니다.

 
1화
작성일 : 19-10-18 21:07     조회 : 256     추천 : 0     분량 : 156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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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왕의 딸 용녀가 팔세에 깨달음을 얻었다.

  미봉사 뜰에 핀 복사꽃이 53 선지식을 거치지 않았음에도 아름다운 것은 한 겨울 동안거에 들었던 까닭이다. 서릿발 같은 계율이 무색이면 붉어져도 무방할 것이 눈을 관통해 보이는 물질의 실체는 인식의 속도가 빠르다는 거다. 깊은 골짜기에 흐르는 물소리가 아름답고 청아한 것은 그 주위 모든 것을 대변하는 표현이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혼자 조용한 가운데 내면의 질서를 유지하는 데는 자질을 논하게 되는 중요한 과제다.

  이렇게 또 시작 하려니 진실이란 단어에 충실하여야 한다. 믿어지지 않은 화두의 답을 기록하는데 어려움은 있다. 하지만 그게 진실이어야 하기에 용기를 내어 본다.

  이십대 후반 젊은 나이에 남편을 따라 사택에서 살았던 적이 있다. 그해 가을쯤인 것 갔다. 오랜 세월이 지났는데 그때의 일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사택 울밑에 하수구가 있었는데 물도 없는 곳에 살모사 인지 독사인지 뱀이 나타났었다. 애들도 있어서 그랬겠지만 남편이 뱀을 잡았다. 징그러운 뱀을 약탕기에 넣어 보신탕으로 남편이 먹었다. 한동안 마음에 남아 있었지만 아이들을 키우는 엄마로 기억을 지우려 했었던 생각이 난다.

  그때 그 뱀의 일이 왜 지금 이 순간 무섭게 소름이 돋는가. 정말로 알 수 없는 일이다. 다리를 이불속에 넣어 잠을 청하여도 그때 그 뱀의 얼굴이 강하게 다가옴에 무섭고 소름이 돋는다.

  화두를 챙겨 공부하는 게 항상 그렇듯이 안으로 살피는 일이다. 뱀의 정체는 점점 또렷한 기억으로 살아나더니 위협으로 원수를 갑을 듯 덤볐다. 잠시잠깐의 시간에 그런 두려움은 처음이다. 화두를 챙김으로 금방 사라졌다. 뱀의 공포를 느꼈던 순간 원수 갚으려고 덤빈다는 착각에 시시 비를 가려내야 했다. 마음이 청정하다면 모든 경계를 넘을 수 있다. 상대가 덤벼들 찰라 빠르게 자신을 꿰뚫어 들어가야 한다.

  그 무서운 순간을 나는 넘겼다. 그 다음 단계는 정해져 있다. 무슨 영문인지 알아야 하고 그 원인을 알아가는 과정은 진실 해야만 상대를 꺾을 수 있기 때문이다.

  누가 죽였던 징그러운 뱀의 허물을 벗겨주었으면 고마운 일이다. 안으로 대화를 하였다. 뱀의 허물을 벗어 낸 게 언제인데 어리석게 아직도 뱀이라는 습으로 냉기를 뿜어 괴롭히냐. 알아듣도록 이야기를 하였다. 그 순간 신기하게도 몸에서 무서운 습기가 다 빠져 나가는 느낌이 있었다. 몸에 온기가 돌아오는 것인가. 다리를 내어놓고 몸을 관찰해 보아도 다리가 뽀송해지는 것을 느꼈다.

  이런저런 일이 처음은 아니지만 뱀의 영혼이 원수를 갚겠다고 달려드는 일은 처음이라 순간 무서웠다. 순발력 있게 대처했기에 생각했다. 수시로 겪었던 중 특이한 일이라 적어본다. 뱀이 된 동기가 무엇인지 차근히 알아볼 일이다. 세상에는 웃지 못 할 일들이 많이 있지만 이런 이야기를 기록한다는 게 쉽지 않아서 어찌 풀어 나가야 하는지 의문이다. 뱀의 몸이 되기 전에 어떠한 삶을 살았는지 어느 시대 사람인지 어떤 일을 하고 살았는지 살펴볼 일이다.

  영화 “장마”에서 주인공인 황정순이 천지간에 외아들을 전쟁에 잃고 그 허황한 마음을 어디에 두지 못하고 목숨 부지를 하고 살았는데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장마철 마루 한쪽에 쭈그리고 앉아 풋 콩을 꺾어다 까고 있었다. 꼬투리에 달린 콩을 그릇에 담아야 하는데 외아들을 잃은 어미는 바른 정신일 수가 없다. 혼이 나간 주인공은 치마폭에 떨어지는 콩을 의식하지 못하였다. 주룩주룩 철석거리며 내리는 여름 장마 비는 마당 저 끝 소슬 대문 쪽에도 주룩주룩 떨어진다. 비는 나뭇잎 무게를 누르고 흑 바닥 돌 위를 굴리며 내리고만 있었다. 행낭 어멈으로 집일을 맡아 보는 아들 잃은 어머니는 바람 빠진 허리를 굽혀 바라보는 곳이 있었다. 주룩주룩 기와 장 사이를 타고 내리는 비는 아들 잃은 어미의 마음을 더욱 슬프게 하여 아들 그리는 마음이 배가 되었다. 하염없이 대문 쪽을 바라보던 어머니는 아들의 죽음에 대한 확실 증을 무시하여 무엇으로 믿는단 말인가. 시퍼런 군복을 입고 금방이라도 대문을 들어와 어미를 찾을 것 같은 착각에 황청이 들리는 듯 대문 쪽으로 귀를 곤 두 세우고 있었던 것이다. 애절하고 애틋하고 원통한 기다림은 무엇에라도 의지하고 싶은 것이다.

  대문만 바라보던 어미의 눈에 구렁이 한 마리가 마당으로 들어왔다. 물끄러미 바라보던 어미는 치마폭에 담았던 콩을 쏟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구렁이를 보는 순간 아들이 죽어 구렁이 몸으로 집을 찾아온 것이라 스스로 인정하여 맨발로 아들을 맞으려 비속을 나선다.

  “어 여 돌아 왔구나, 내 아들이 어 여 오니라, 어미다.”

  이미 제 정신이 아니다. 죽은 아들이 돌아왔다고 인정하는 순간 구렁이는 아들이 죽어 집을 찾아 돌아온 영혼이라 믿었다. 전쟁에 외아들을 잃은 어미의 안타까운 마음이 고스란히 드러난 <장마>의 한 장면이다.

  비속을 바라보며 정신 줄을 놓고 있었던 어미는 구렁이의 출현에 참고 억눌렸던 감정이 행동으로 표출되었다. 아들 혼백이라 생각한 어미는 뱀의 가는 길을 열어줌으로 아들죽음을 인정하려 하는 애련함이 거짓만은 아닐 것이다. 그와 같은 일이 여기 책속에서 벌어지고 있다. 물어야 했다.

  ‘당신은 누구십니까? 부처 공부를 하셨나요. 어느 시대 사람인가요.’

  ‘씨발,’

  정체를 들켰다고 생각하니 자존심이 뭉개지나보다.

 ‘고려 사람이요! 천천히 숨 좀 돌려가며 합시다. 열심히 공부 했는데, 뱀이 되다니, 씨 발’ 한숨과 욕이 나온다. ‘당신과 해인사에 함께 있었지’

  해인사라면

  “정법스님?”

  ‘씨 발 ’

  그의 가슴에 울화가 일었다. 들키고 싶지 않은 자존심이 욕으로 일관 하였다. 무슨 이런 일이, 나는 당황하여 놀랐다. 전생과 현생을 연재소설로 이어가는 마당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자의 마음을 이해하게 되었다.

  “어쩌다.”

  이렇게 만날 줄 몰랐다. 창피하지만 반갑다. 공부를 제대로 못한 게 업보라며 불가를 운운하는 자체가 우습지만 무엇 때문에 만났는지 말 좀 해 주시겠소?

  되물어 왔다. 나는 무어라 할 말이 없다. 이런 일도 있구나, 하는 서글픔이 있었다. 이건 분명 전설 속 이야기다. 믿기지 않은 일을 풀어야 한다. 뱀이란 업을 벗어내지 못하고 살았던 정법스님이 본연의 마음을 찾았다. 같은 도반에 자신의 추한 모습을 들켜 버렸으니 얼마나 수치스러울까. 뱀의 허물을 벗었음에도 느끼지 못하고 아직도 뱀인 듯 어리석게 굴었던 자신이 진절머리가 났을 것이다. 그러기에 창피하고 억울하여 수시로 욕이 나왔다. 사람의 마음으로 돌아오고 보니 하필이면 왜, 함께 해인사에서 동문수학 했던 도반의 몸에 들었단 말인가. 생으로 잡혀 불속에 들어가 생죽음의 고통을 겪었던 일이 생생하게 떠오르는 바람에 앞 뒤 생각도 없이 앙심을 품었던 어리석은 자신이 용서가 되지 않아 욕이 나왔다. 복수극이 악으로 변하려던 찰라 마음을 잡아준 동문수학을 함께했던 (나의 전생 이름) 일현이 아니었던가. 그는 정신이 점점 맑아졌다. 뱀으로 죽었던 자신이 생각 할수록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지나갔다.

  그래, 또 천 년 전으로 들어가 보는 거야. 내, 전생 이름이 일현이 었지. 고려 사람이기도 하니까 고려를 이어 시작해보자. 어머니의 장례를 마치고 돌아가던 때가 좋으리라.

  일현은 가족을 뒤로하고 빠른 걸음으로 길을 재촉하였다. 돌아볼 용기도 없었다. 누가 가지 말라고 잡아 본다든가, 함께 강원도로 가자던가, 따라간다고 나서는 가족도 없다. 그 자리를 빨리 떠나 그들과 멀리하고 싶은 생각뿐이다. 어머니는 죽어서 강원도 하슬라에 손자를 따라 좋아라. 가실까? 어머니가 죽어 남긴 뼈 가루를 절에 모셔도 될 일이지만 속가 아들이 모셔간다는데 무어라 할 말이 없었다.

  불가에 귀의 한 몸이 쓰 잘 떼기 없는 사사로운 정이 마음을 어질러 벗어나려 하였다. 모든 걸 잊으려 걸음을 빨리하였다. 이틀에 서라벌에 당도 했다. 마음도 그러하여 주막에서 묵어가기로 하였다. 할 일을 모두 마무리 짖고 보니 마음도 여유로웠다. 주막집 여인네가 반겨주었다. 어머니를 만나 어머니 마지막 길을 함께했던 나는 며칠 밤을 새워 피곤 할 만도 한데 마음이 홀가분하였다. 날이 저물려면 시간이 남아있다. 처음 왔을 때 한번 와 보았던 서라벌 냇가로 발길을 옮겼다.

  여름 장마에 힙 쓸려간 버드나무 밑 퉁이 물살에 벗겨져 있기도 하고 잎이 누렇게 가지에 걸려 바람에 흔들린다. 서라벌에서 어머니를 만난 게 기적이다. 더욱이 어머니 마지막 길을 함께 했다는 것에 부처님께 감사드렸다. 마지막으로 어머니를 모시고 서라벌 시장을 돌았던 일이며 정신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어머니는 아들이 자랑스러워 장터상인들에게 당신의 건제함을 보이던 그 기운이 눈에 선하다.

  죽음 앞에 선 순간까지도 삶의 모습이 고왔던 어머니를 다시는 볼 수 없다는 게 그리움으로 아리다. 이제 옆에 아무도 없다. 오직 불법을 펴 희랑스님의 뒤를 이어갈 책임만 남았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만났을까. 서라벌 지리산 산신이 되신 아버지최치원은 분명 어머니미향을 만났을 것이다. 그들의 인연은 그것으로 끝일수가 없다. 그러한 생각들을 하며 붉게 물들이는 저녁노을을 바라보았다.

  이 소설의 본질은 거짓도, 꿈임도 없는 진실로 이어 저야 한다. 삼생을 환생한 주인공의 독특한 캐릭터에 사업의 이름을 걸고 시작하였다. 사업은 시작되었고 건물 3층에서 4층의 재료가 완성 되었다. 아무것도 아닌 것에서 일어나는 불꽃이 무섭다. 속으로 삼켰던 눈물 한 방울 한 방울이 헛되지 않아 고맙다. 두 달에 걸쳐 지어지는 한 채의 건물은 기적이다. 그 기적은 언제까지 몇 층의 건물을 올 릴 것인지 기대되고 두렵다. 책 한권의 건물이 나올 때마다 그 순간의 고통들을 잊는다. 오래된 언어들이 차례로 표출되어질 때 놀랍다. 그것은 분명 아라한의 경지에서 나온 것이리라.

  보현보살의 총지진언이 이렇게 일치 될 줄 정말 몰랐다. 보현보살의 총지에서 이루어낸 경지이다. 멋대로 사업이라고 칭하는 것은 한 채의 설계비가 적자이기 때문이다. 4층의 건물을 지으면서 나는 승가의 괴멸을 실현하고 승가의 잘못을 없애는 일에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어떠한 역습이 온다 해도 고통으로 인내한 것에 비하지는 못하리라.

 

  보현보살 총지진언

 

 아견을 없애고 소아를 없애고

 아방 편을 버리면 평화로울 것이라

 마음이 유연하게 행위도 유연하게 원활하게 하리라

 붓다를 관하면 모든 총지를 차례로 돌리고

 모두 회전시켜 승가의 괴멸을 실현하고 승가의 잘못을 없애고

 모든 가르침을 배워 일체중생의 소리를 깨달으면

 사자가 노니는 것처럼 자유자제로 삼세에 걸쳐

 무한하게 진리를 차례로 펼쳐 가리라.

 

  법화경에 나오는 보현보살 진언이다. 누구나 이 진언을 갖기를 원한다. 이 진언을 받아 지녔다. 처음에 무슨 말인지 그냥 외우기만 했다. 보현의 진언을 터득하고 보니 거짓이 없다는 걸 알았다. 얼마나 깊은지도 모르고 엉뚱한 것에 대비시키기도 하였었다. 지금 고층건물을 세우는 일에 자제를 제공해주고 기억을 돌려주고 과거와 현제를 넘나들 수 있게 해 주었다. 그러한 일에 동참하게 된 동기는 진실이 바탕이 된 정의다. 가르침대로 이행하고 믿었기에 진실은 거짓이 없다. 진리는 속이지 않는다. 진리의 대가는 곧 무한이다. 이사업에 기본 재산이 없으니 망할 일은 없다. 튼튼하게 지어서 모든 이가 쉬어가는 시간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

  나에 대한 탐구를 치열하게 하였다. 한 가지에만 목숨을 걸었다고 할 수 있다. 그 막바지에 지금껏 해왔던 것에 대한 대가로 전생을 알게 되었다. 첫 생은 신라 하대의 최치원의 서자로 태어났었다. 두 번째 환생은 조선 중기에 중종 24년에 태어났다가 지금은 여인의 몸으로 탄생 하였다. 그것을 증명하는데 신라에서, 고려에서, 조선에서의 있음직한 일에 대한 거짓 없이 언어로 표출하는데 어려웠다.

  말로만 들었던 전생을 접하면서 묻고 의심하고 확인하는 작업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인간의 능력이 한계가 없다는 것을 실감하면서 진리의 진정성에 모든 것을 의지하여 배운 대로 진리를 섬겼고, 진리를 위해 마음을 다했으며 진리를 탐구하는데 게으르지 않았다. 진리는 순한 양이 되어야 얻어 지는 것이다. 한 생을 산다는 것이 하룻밤 이슬과 같다고 말은 하지만 분명 그것이 아니었다. 시간을 허비하지 않은 수많은 일들이 뇌리 속에 잠제 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것은 무한을 다 바친 대가성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과거와 현재를 바라보는 나는 누구인가? 금강인가, 일현 인가,

  주막에서 하룻밤을 자고 해인사로 향했다. 한 달여 만에 돌아오는 것이다. 해인사 마당에 들어서자 마당을 쓸고 있던 행자스님이 먼저 소리를 높였다.

  “주지스님께서 오십니다!”

  정법스님이 방에서 나왔다. 이제 뒤 돌아볼 일이 없어졌으니 마음은 가볍고 내 집에 들어오는 기쁨이다. “먼 길에 고생이 많으셨죠.” 비~잉 둘러 출타해 돌아온 일현에게 삼배를 올렸다. 해인사 도량에 들어서기 전만 해도 가족의 뒷모습을 생각하느라 속가에 있었던 일들을 회상해 보기도 하였다. 고려시대 동희의 이름으로 살았던 강원도 명주하슬라에 미련이 남은 건 아니지만 가족이었던 그들과 헤어진 여운이 해인사 마당에 들어서면서 사라졌다.

  왕건이 처음 실행하였던 과거에 급제하여 한 달여 시간의 여유가 있었다. 그때 동희는 아버지 최치원의 행방을 찾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해인사로 찾아 들어 처음으로 해인사 주지인 신라 고려를 이어온 희랑대사를 만났던 일이 인연이 되었다. 일현은 해인사 희랑선사를 만났던 일이 어제 일 같았다.

  “모두 별일 없었는지요. 저는 잘 다녀왔습니다. ”

  속가의 일을 굳이 말할 필요는 없었다. 그리고 어머니 미향의 제를 준비하여야 하기에 제상에 올릴 것들을 대강 준비하여 챙겨온 탓에 행자에게 넘겨주었다.

  “내일부터 49제 제 올릴 준비를 해 주시게. 속가 인연인 어머니가 돌아가셔서 마지막 길을 보고 오는 길입니다.”

  둘러섰던 스님들이 놀랐다. 어찌 알고 미리 가셨는가를 굳이 묻지 않아도 일현스님의 법력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입고 있었던 옷을 벗었다. 며칠 동안 옷 한 벌로 지냈던 탓에 새 법복으로 갈아입고 대웅전에 엎드렸다. 어머니가 평소 입고 계시던 옷 한 벌을 승려주머니에 챙겨왔기 때문에 그것을 곱게 접어 보자기에 새로 싸들고 영단 아래에 모셔두었다. 정법스님이 따라 들어와 일현의 마음을 헤아려 함께 부처님 전에 예를 갖췄다. 정법스님은 다시 예를 갖추며, “참으로 큰일을 하고 오셨습니다. 스님의 급한 행로가 그런 일인지도 모르고 무심하였습니다. 어머니는 잘 모시고 오셨습니다.” 상을 치루고 돌아온 마음을 헤아려 위로하는 것이다. 알고 간 것은 아니며,

  “기적이 따로 없었습니다. 강원도에 계실 줄 알았던 어머니가 서라벌에 와 계신 줄 몰랐으니까요.”

  일현은 미향을 만나 죽음을 지켰으며 장례동안 가족과 만난 것도 기적이었다. 어머니를 모시고 왔으니 49일 동안 왕생극락을 빌어 언제다시 또 자식과 부모의 인연으로 만나기를 소원하였다. 아득히 먼 곳을 바라보듯 법당에 앉아 있었다. 뒤에 따라들어 와 마음을 전하는 정법스님이 고마웠다. 49일 동안 어머니를 안심시키고 그동안 키워준 은혜를 감사하였다. 마지막 제가 있던 날 아버지인 최치원이 어머니 미향이 가는 길에 도움을 주었다. 살아서 다 이루지 못한 사랑이 죽어서 다시 만나 이루어 졌는지 알 수 없다. 그러한 일이 끝나고 해인사의 주지를 정법에게 물려 준지도 여러 해가 되었다. 희랑선사가 입적하시기전에,

  “해인사 주지는 일현에게 넘긴다.”

  하고 유언으로 남기신 다음 정법스님에게 미안하였었다. 정법스님이 받아야 할 자리를 뺏은 것은 아니지만 미안하여 열심히 해인사의 발전에 심려를 기울려 노력 하였다. 그 즈음 고려 왕건의 정치가 안정이 되어가고 있을 때였다.

  왕건은 고려 초기에 있었던 일을 생각하게 되었다. 멀리 떨어져 있는 강원도와 신라의 잔재들을 염려 하였다. 심려를 기우려 과거를 치렀던 것은 왕건의 집권을 굳건히 하기위한 첫 과거에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한 동희가 자진하여 강원도로 간다는 바람에 어렵지 않게 왕건의 시대를 열어갈 수 있었다. 그 애숭이 책사 동희가 강원도의 역사를 놀라 게 변화시켰던 것이며 고려를 세우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는 걸 잊을 수 없었다. 또한 그 어미의 미모가 왕건의 뇌리에 있었던 것이다. 그동안 전쟁으로 삼국을 통일하면서 동분서주 하였던 고려가 하나로 기틀이 잡혀있었다. 다음 왕권을 이어 갈 왕자는 대 고려의 운명이다.

  중안 정계 왕실은 분주하였다. 왕건의 시대가 종결 되려는 시기에 왕건은 지난날을 회상하고 동희를 생각하게 되었다. 동희는 젊은 나이에 아찬벼슬까지 올랐었다. 강원도 명주군 역사에 남을 큰일을 남겼고, 더욱이 왕건의 총애를 받기도 했었다. 그러한 동희는 하슬라 최고의 자리인 아찬 벼슬에 올랐지만 초개처럼 버리고 사라졌던 일이 아쉬움으로 남았던 지난 일을 생각하다, 그 장계를 받았던 왕건은 놀랐다. 그 아비가 신라의 대 학자 최치원이라는 소문도 들었다. 신라의 학자 최치원을 알고 있었기에 그의 아들인 동희의 행동에도 말 못할 사연이 있었으리라는 판단을 하였다. 그 애숭이에 대해 한동안 궁금했던 적도 있었다. 그 뛰어난 재질을 가진 동희는 아찬 벼슬을 버리고 아버지 최치원처럼 불가에 귀의 했을 것이라고 소문이 있었다. ‘세월도 많이 갔구나, 그를 한번 만나보고 싶구나.’ 하던 마음이 그랬었는데 갑자기 동희 행방에 대한 궁금증이 생겼다. 동희를 생각할 때 왕의 자리도 연연할 것이 못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여봐라! 내금위장을 불러라.”

  고려를 세우는 과정에서 왕건의 여인으로 29명이나 부인을 맞이했으니 여인에 대한 신비함은 없었다. 다만 강원도에서 보았던 미향의 모습이 아련하게 떠오른다. 참으로 귀하게 보였는데. 왕건은 조용하게 사색을 하였다. 어제의 영화도 한낮 번개 불과 같구나. 고려를 굳건히 한다는 명목으로 29명의 부인을 얻어 자식이 30명이 넘었다. 왕 씨 성은 왕가를 이루어 놓았다. 자신이 지나온 길을 회상해 보니 저 많은 자식들이 왕권을 두고 피 흘릴 생각을 하니 어찌 눈을 감는단 말인가. “대왕전하, 내금위장이 들었습니다.”

  “너는 지금 강원도로 내려가 고려를 개국할 때 아찬 벼슬까지 올랐던 김동희를 찾아보아라. 살았는지 죽었는지 명주 관아는 알고 있을 것이다. 이 세상을 하직하기 전에 한번 만나보고 싶구나. ”

  태조 왕건은 강원도 보현사 주지, 랑원 대사도 머리에 떠올려 보았다. 아흔 아홉 구비를 넘어야 한양으로 갈 수 있고 아흔 아홉 구비를 넘어야 신비로운 하슬라의 땅을 밟을 수 있었다. 대관령 굽이굽이 보부상들의 발자취가 차곡차곡 발길로 묻어나고 질러가다가 똥 싼다는 옛길 반정에는 주막의 길손이 끈이지 않았다.

 

  나는 정법에게 주지자리를 물려주고 뒤로 물러나 선의 도리를 탐구하는데 게으르지 않았다. 무한으로 도의 경지에 들기 위해서다. 그리 신나게 경전을 설했던 것도 부질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깨달음의 경지는 자연을 그대로 보는 눈과 그 이치를 아는 것인데 그리도 분주하게 살았던가, 아찬의 벼슬과 가족을 초개처럼 버리게 하여 산으로 들게 했던 것은 무엇이란 말인가. 어머니 가슴을 아프게 했던 나는 누구였단 말인가. 마음에 끌려 상원사 보궁을 3년을 오르고 내리게 하였던 나는 누구란 말인가. 해인사에 가라던 울림의 소리는 누구의 명령이란 말인가. 그런 것들을 탐구하며 낮에도 밤에도 참선의 길에 게으르지 않았다. 무 란, 없는 것도 아니고, 있는 것도 아니고, 없어서도 안 되고, 있어서도 아니 되는 바람이고, 허공이니 걸림이 없음이다. 도란 참 나를 찾아가는 가없는 경지.

  “차를 내가 마셨습니까, 마음이 마셨습니까. ”

  “가슴이 아픈 것은 마음입니까, 나입니까.”

  자신을 뚫어 보는 철학은 시작된다. 철학이란 엄청난 학문인 듯 하지만 불교를 아는 것이 철학이다. 마음을 교화 하여 어떻게 살았느냐에 따라 인문학이 완성 되는 것이다.

  부처의 시대에도 5백 도둑의 무리가 있었다. 그 5백의 도둑무리들을 5백 나한이라 한다. 흔희 집안이 어지럽게 널려있는 것을 보고 오방난한장이라 하는 것도 5백 도둑의 무리들 마음을 표현하는 말이다. 5백 도둑의 마음이 다 다르다는 걸 석가모니부처님은 간파하고 도둑의 마음을 하나로 교화 하였다. 자신을 찾아 가는 길 그것이 무엇이든 인간의 삶과 생각은 다르다. 수시로 변하는 마음을 꾀 뚫어 보는 눈과 국 집을 소멸시켜 집착에서 벗어나는 것이 2~3천년 동안 내려오는 부처의 진리다. 공부 했다는 증거는 마음을 볼 줄 아는 것이고 소멸시키고 걸러낸 뒤에 진정으로 의롭고 의심이 없다는 것이 마음을 항복받는 일이다.

  나의 전생의 삶과 현생의 삶이 닮아있다는 것을 느끼고 산다.

  ‘ 지금까지 옥죄어 살았던 피부조직을 풀어 털구멍마다 숨통을 트이게 할 것이며 잠도 적당히 자고 마음의 여유를 가져라. 너 는 불교의 기둥이 될 것이니 서둘지 마라, 32상은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화관을 가출 수 있도록 여유를 가져라. 여여 할 것이니,

  “누구십니까?” 광명 지. 도반을 만나 기쁜 일이지~ 오고가는 마음에 선법의 묘미를 공감하게 하는 차원 속 공감대는 다리를 틀고 앉아 이어지는 선의 경지를 감당해 내노라면 내 형제와 자식과 내 손자들 이름을 나보다 더 또렷하게 부르는 당신은 누구십니까? 거칠었던 인생길을 누르고 눌러 다듬어 세워준 당신은, 내 몸의 운전대를 잡고 긴긴 시간 자식의 어미로 의롭게 살게 했던 당신은 내게 그리 보듬어 주셨나요? 물었다.

  하나 되는 순간 외롭지 않은 경계 말이다. 그렇게 기를 세워 일어났던 욕심과 허망과 억울함의 긴 터널도 느껴지지 않는 순간의 경계를.

 

  고려시대 내 어머니 미향은 국제무역업으로 무진장 벌었던 재산을 아들 동희를 위해 하슬라에다 투자하였다. 재해를 만나 어렵던 서민들에게 손수 옷을 만들어 입혔고 임영관 99채를 지어 하슬라에 조건도 없이 주었다.

  그리 통 큰 미향은 아들 옆에 있고 싶어 고향인 서라벌을 떠나 강원도에 왔었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과 오래 살고 싶어 찾아 왔던 것이다. 그리던 어머니를 만나 언제까지 살고자 했던 마음에 떠나야 한다는 소임은 새벽이슬을 밝고 어딘지 모르게 길을 재촉하는 아들의 마음을 눈으로 바라보아야 하는가. 미향은 보고도 잡지 못하고 멍한 정신이 되어 뒷모습만 안타까이 바라보며 눈물을 흘렸다. 그 마음을 알지 못한 채 떠나는 아들을 따라갈 수 없는 미향은 달리 마음 추수 릴 곳이 없어 손녀인 수인을 데리고 서라벌로 돌아왔다. 통 큰 손은 어디에 있어도 기회를 만난다. 미향은 한 남자를 위해 죽을 때 까지 절개를 지켰고 흔들림 없이 사업에 이익분배의 룰을 세워 정도를 지켜 많은 상인들의 존경을 받았다.

  천년신라가 망해가는 마지막을 보는 것이 안타까워 눈멀고 귀먹어 외면해야만 했던 신라 영웅 최치원을 만나 아들 동희를 낳았다. 5년의 짧았던 사랑에 평생 그리워하며 흐트러짐 없이 외아들을 지켜냈다. 그럼에도 아들이 귀한 만큼 사랑의 무게를 내면으로 다스렸다. 그 외아들 동희가 과거에 급제하여 천리가 넘는 강원도 하슬라에 간다고 자원 했다는 소리에도 섭섭함과 놀라움을 안으로 감추었다. 아들이 가는 길에 부담을 주지 않으려 인내했고 어미를 염려하는 아들 마음이 편해야 한다고 천지간에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보내주었다.

  미향의 미모에 고려왕건도 기억하였다. 미향은 신하 된 도리를 지켰을 뿐 아니라 왕건과 마주섰을 때 대장부다운 안목을 보일 정도로 왕의 방문을 기쁘게 하였다. 동희 또한 나랏일에 정도를 지켰다. 망한 신라 백성이 고려에 이입 되도록 고려 주춧돌이 되어 김주원 왕가의 위력을 꺾고 슬기롭게 고려의 백성임을 알렸다. 왕건이 하지 못한 일을 동희가 해냈던 것이다. 국가가 안정되고 왕건시대가 끝나가는 시점에서 하슬라에서 큰일을 해 냈던 동희의 안부를 마지막으로 알고 싶었던 왕건은 동희를 찾게 되었다.

 하슬라에 파발을 갔던 병사가 돌아왔다. 하슬라 명주관아에서 들은 대로 동희 가족을 만나 사실을 알고 급히 중앙으로 달려 왔던 것이다.

  개국 26년의 세월이 흘러갔다. 태조 왕건의 나이 67세에 정계를 물러나 새로운 고려왕이 된 혜종이 왕권을 이어 고려를 재정비하는 시대가 되었다.

  하슬라에 갔던 병사가 돌아 왔다는 전갈을 받았다. 몸과 마음이 땅으로 갈아 않는 듯 하여 눈을 감고 누웠던 왕건은 귀를 세워 일어나 앉았다. 갔던 일은 어찌 되었느냐고 물었다. 그 가족을 만나 알아본 결과 “아찬 벼슬을 하던 동희 대감은 스님이 되어 떠난 지 20년이 되었다고 아뢰었다. 그래 지금 어디에 있다고 하더냐. 파발을 다녀온 병사는 아는 대로 동희 대감의 법명은 일현 스님이고 그의 어머니 미향이 얼마 전에 죽었고 그녀 죽음에 함께 있었다는 가족의 말을 전했다. 그리고 해인사에 주지로 있다는 이야기도 하였다. 왕건은 짐작으로만 믿었던 동희 그 애숭이가 스님의 길을 걷는다는 말을 듣고, 허허허 소리 내어 웃었다. 그리 영특하더니 불법에 귀의 하였다. 그 세월동안 많은 것을 깨달았겠구나. 보고 싶구나. 병사를 내려다보며 하루 이틀 쉬었다가 해인사로 가 일현 스님을 모셔오라는 어명을 내렸다. 그를 꼭 데려오라는 엄명을 내렸다.

  이 시간 이후 소설 속에서 잠깐 미처 보려고 한다. 그 이유란 태조 왕건을 미 투에 동참시켜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그러기에 소설 속 팻말 을 세워야 한다.

  “삼국을 통일한 영웅이라도

  미 투를 벗어 날수 없다.”

  삼국을 하나의 나라를 세우려던 시대 일이지만 소설 속 인물이 된 이상 언론이 자유로운 대한민국 후손으로 집고 넘어가야 한다는 생각이다. 권력의 희생양이 된 왕건의 부인중 미투를 벗어낼 수 없는 왕비가 있을 것이다.

  꿈 많던 하나의 인생을 부모의 정약 적 혼인에 희생이 된 귀하디귀한 여인들의 대변인이 되어 보리라.

  평범한 가정을 갇고 행복을 누려보지 못한 고려의 소녀들이 한 남자로 인해 인생을 허비한 그 이름도 화려한 왕비를 소설 속에 초대해 그 진실을 파헤쳐 볼 기회를 삼아 보려는 것이 고금에 없을 기발한 스토리가 아니겠는가.

  29명의 여인들은 자신의 운명에 대한 억울함을 하소연이라도 한번 해 본적이 있었을까.

  사람들은 시대적 희생양이라 대변 한다면 그들의 생각 속에 들어가 알아보아야 한다. 진정 부모 원망도 안했을까. 나라 원망도 해 보았을 것이다. 영웅 왕건을 남편으로 두었으니 그 수 만큼 밤의 바라기를 어찌 견디어 냈으며 사랑 바라기 애타는 마음을 어디에다 의지 하였을까.

  29명이다. 입으로 헤아리기도 어려운 숫자다. 역사는 그 이상으로 부풀려 우려먹어도 영웅담은 세세생생 그 기본은 변하지를 않으리라.

  나는 여인의 섬세한 눈물을 말하려는 것이다. 유토피아가 상상의 극치라면 하 극으로 내려가 보자. 태조 왕건은 진정 삼국을 통일한다는 목적으로 여인을 취했을까. 그 많은 소녀들을 말이다. 권력과 압력으로 무릎 꿀인 적은 없었을까. 그 부인의 얼굴을 모두 제대로 알고나 살았을까. 29명의 여인은 행복했다고 말 할 수 없을 것이다.

  그가 이제 여인들을 남겨두고 67세 나이에 영웅적 역사의 막을 내리려한다. 새 역사 속에 들어가 젊음을 태웠던 영웅왕건은 눈을 감고 아직도 진행 중인 양 북방을 넓히고 삼국을 통일할 때의 그 화려했던 시절을 회상 하고 있다. 몸은 쇠하여 가지만 꿈만 같았던 영웅담은 회춘의 기회로 삼아보려는 심리다. 그러나 죽음 앞에서는 모든 것을 내려놓으려는 순간 동희가 그리운 것은 무슨 조화란 말인가. 어린 게 과거에 급제하여 알지 못하는 먼 곳을 자원 했을 때부터 왕건의 뇌리에 동희라는 이름이 각인되어 있었던 것인가. 옆에 불러 인생 마지막을 함께 하고 싶은 것이다. 속세를 떠나지 않았다면 아마 오래도록 왕건의 옆에서 훌륭한 재력가로 왕건을 도왔을 것이다.

 

  적막을 넘어 고요가 지속되는 숲속에 둘러싸여 해인사 방에 앉아 귀에 들리는 새소리, 바람소리, 나무 잎 흔들리는 소리에 귀를 열어 자연을 마음으로 느끼며 안으로의 산책에 깊어진다. 멀리 들려오는 듯 산짐승들 소리는 바람의 음 율에 동화되어 안으로 음미하기도 하고 그 많은 알음아리가 생각을 일으켜 어지럽게 하려는 순간순간을 체험하고 있다.

  팔만 사천의 경전 속 언어들이 질서를 유지하고 아름 아리로 알아질 때 기쁨은 환희의 바다를 경험하였다. 그랬던 언어들을 모두 지우려 무에서 시작해야 참다운 지혜를 깨닫는다는 팔만사천의 언어들을 머릿속에서 털어 버렸다. 이미 경전으로 배를 만들어 험한 바다 길을 건넜기에 뒤돌아 볼 일이 없음이다. 경전을 전 할 때 걸림이 없었다.

  화엄경 속 선재가 깨달음을 얻기 위해 53 선지식을 찾아가는 내용이지만 진리를 배우는 자의 소임이 그 많은 인간사를 경험하고 체험 한다 말합이다. 선재의 공부에는 여인과의 신비로운 육체관계를 맺는 장면도 선재의 지식에 들어있다. 그 만큼 모든 세계를 경험해야만 인간의 마음 즉 자신이 우주라고 말할 수 있는 공감대를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듣는 이가 선재의 행로를 즉시 알아들을 수 있는 경지에 들어 있다면 강의 하는 강사와 듣는 이는 합일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선의 지혜는 책속의 언어와 차원이 다르다. 언어로 전하는 것은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선에서 얻어지는 지혜는 누구에게 선득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너무나 세밀하여 입을 통해 밖으로 나오는 순간 듣는 이에 따라 이해할 수 없는 귀신의 말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팔만사천의 경전 내용은 부처님의 방편설이라고 부처님께서 간파한 증거다. 부처의 깨달음을 말로 전할 수 없어서 고심 끝에 글자로서 이해를 시키려고 노력하지만 거의가 방편설이다. 선의 경지는 보이지 않는 먼지 속으로 들어가 그 이치를 깨달기 때문에 설명할 수가 없다. 그러기에 일현은 경전의 경지에 있었던 알음아리를 지워내고 있었다.

  깨달음의 길에 마음을 시험대에 올려놓고 여러 가지 형태로 혼란시키는 방해꾼에 요동 없이 얼굴엔 땀방울이 매친다. 그것을 관찰하는데 집중하여 들어가는 선의 경계는 경을 해석하여 설하며 환희했던 것과는 길이 다르다.

  어머니 미향의 49제가 끝난 지도 오래되었고 그토록 애절하게 그리워하던 아버지 최치원에 대한 그리움의 집착도 벗어 낸지 오래 되었다. 불효라는 것조차 잊고 살았던 어머니에 대한 죄스러움도 49일 동안 다 풀어 버렸다.

  속가의 아들이 미향의 뼈, 가루를 고향으로 모셔 간다고 하였을 때 한마디의 말을 못했다. 어머니의 장례일 동안 속가의 아들과 부인에게 눈 한 번도 맞추어주지 않았다. 떠나올 때 가족에게 한마디 이해도 구해보지 못하고 떠나 온지도 오래다. 가족은 한으로 맺혀 할 말도 많았겠지만 눈 한번 주지 않은 남편과 아버지에게 할 말을 일었다. 그리 무심하게 가족과 헤어진 일현은 마음에 어머니를 모시고 해인사로 함께 걸어 왔었다. 49일 마지막 날까지 세상과 이별하는데 미련 없었다는 걸 증명해 주었다. 어머니를 홀홀 떠나보낸 자리에 자식은 할 일을 다 하였다는 허전함을 마무리를 하였다. 불교와 멀었던 어머니를 위해 시간마다 마음으로 경전을 설해 천도의 길을 열어 주었던 것이다. 최치원이 마지막 떠나는 날 하늘에서 인도 하였던 것처럼 미향의 이별도 기쁨으로 아들의 손을 놓을 수 있었다. 어머니를 보내던 날 일현도 눈물을 흘렸다. 미향은 아들에 대한 집착을 감당 할 수 있는 통 큰 인물이었지만 그렇게 가볍게 아들의 손을 놓고 떠나가리라 작은 근심을 하였던 것이다.

  그날은 날씨도 좋았다. 새들이 소리 높이 지저귀고 모인 사람들은 무언가 모르게 기분이 좋았다. 살아있었던 모습처럼 미향의 모습을 볼 줄은 몰랐다. 신과 인간의 세계는 같으면서 다르다는 걸 인식하고 좋은 인연을 맺었던 부모자식간이 어느 생에 또 만날 수 있을 것이라는 호기심도 생겼다. 그 이후 책임 지워져 있던 주지의 허울을 정법 스님에게 넘겨주는데 주저 하지 않았다. 주지의 책임감에서 자유로워지는 기분은 표현 할 수 없을 정도로 좋았다. 법 납도 그리 만치 않은 나이에 해인사 주지를 맡아 큰스님 희랑선사가 맡겨 준 중책에 노력하였고 속가를 떠났던 것처럼 주지의 자리를 벗어놓고 자유로웠다.

  언어를 놓아버려야 하는 기로에서 새로운 깨달음에 도전하는 길에 성취해야 한다는 절박감에 고통의 순간들이 따랐다. 망상이 화두의 힘을 방해 하고자 마음의 거울에 앞 다투어붙었다 떨어지고 집요하게 방해하는 것을 들여다보며 빙긋 웃어 넘기다보면 거울도 없고 마음도 없고 앉아 있는 물건이 부처였다.

 

 
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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