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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일반/역사
승려 포청천
작가 : 설매1
작품등록일 : 2019.10.18

저는 자연이 수려한 강릉에서 태어나 죽을 때까지 강릉을 사랑하며 살 것이기에 이곳에 대한 글을 썼습니다. 현제의 삶에서 과거의 삶에 도전하는 <승려포청전>은 이어질 것입니다.
이번 제 4회 대한민국 창작소설 공모대전에 출품하기로 한 장편소설은 처음부터 두렵고 두려운 작품었습니다. 모든 것이 선에서 이루어진 신의 세계는 생각지도 못했던 사의 세계를 이야기로 전게되면서 그럴 수 있다는 공감대가 있었습니다. 역사적 인물 고려왕건의 일대기는 누구나 잘 알고 있는 영웅의 실화입니다. 그럼에도 그 영웅의 사후 세계에 있음직한 죄를 다루게 되었고 그 영웅의 부인 29명에 대한 올곧지 못한 점을 찾아 세상에 이슈가 되었던 미투에 접목 시켰습니다.
그것을 풀어가는 과정에서 왕건시대 전쟁으로 억울하게 죽은 귀신들의 반란을 안정시키는데 탁월한 엄변으로 변론하여 왕건죽음 49일 동안 그의 죄가 타당함을 밝혀 하늘세상의 옥황상제 품으로 올려 보내는 과정이 주목 할 만 한 스토리가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저는 불가에 입문하여 수 십 년 동안 의심을 풀기위한 목적으로 부처 가까이에 항상 있어야 한다는 이유가 일상속에 합께 하였습니다. 신의 세계를 평정하는 승려 일현은 불현듯 마음에서 일어나는 한 생각에 모든것을 초개 처럼 버리고 슬려의 길을 살면서 망자가 돤 왕건의 죄를 풀어가는데 반전과 반전의 기회를 적절하게 하여 소설의 재미를 느낄 수 있도록 노력 하였슴니다. 감사합니다.

 
1화
작성일 : 19-10-18 21:05     조회 : 270     추천 : 0     분량 : 250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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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왕의 딸 용녀가 팔세에 깨달음을 얻었다.

  미봉사 뜰에 핀 복사꽃이 53 선지식을 거치지 않았음에도 아름다운 것은 한 겨울 동안거에 들었던 까닭이다. 서릿발 같은 계율이 무색이면 붉어져도 무방할 것이 눈을 관통해 보이는 물질의 실체는 인식의 속도가 빠르다는 거다. 깊은 골짜기에 흐르는 물소리가 아름답고 청아한 것은 그 주위 모든 것을 대변하는 표현이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혼자 조용한 가운데 내면의 질서를 유지하는 데는 자질을 논하게 되는 중요한 과제다.

  이렇게 또 시작 하려니 진실이란 단어에 충실하여야 한다. 믿어지지 않은 화두의 답을 기록하는데 어려움은 있다. 하지만 그게 진실이어야 하기에 용기를 내어 본다.

  이십대 후반 젊은 나이에 남편을 따라 사택에서 살았던 적이 있다. 그해 가을쯤인 것 갔다. 오랜 세월이 지났는데 그때의 일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사택 울밑에 하수구가 있었는데 물도 없는 곳에 살모사 인지 독사인지 뱀이 나타났었다. 애들도 있어서 그랬겠지만 남편이 뱀을 잡았다. 징그러운 뱀을 약탕기에 넣어 보신탕으로 남편이 먹었다. 한동안 마음에 남아 있었지만 아이들을 키우는 엄마로 기억을 지우려 했었던 생각이 난다.

  그때 그 뱀의 일이 왜 지금 이 순간 무섭게 소름이 돋는가. 정말로 알 수 없는 일이다. 다리를 이불속에 넣어 잠을 청하여도 그때 그 뱀의 얼굴이 강하게 다가옴에 무섭고 소름이 돋는다.

  화두를 챙겨 공부하는 게 항상 그렇듯이 안으로 살피는 일이다. 뱀의 정체는 점점 또렷한 기억으로 살아나더니 위협으로 원수를 갑을 듯 덤볐다. 잠시잠깐의 시간에 그런 두려움은 처음이다. 화두를 챙김으로 금방 사라졌다. 뱀의 공포를 느꼈던 순간 원수 갚으려고 덤빈다는 착각에 시시 비를 가려내야 했다. 마음이 청정하다면 모든 경계를 넘을 수 있다. 상대가 덤벼들 찰라 빠르게 자신을 꿰뚫어 들어가야 한다.

  그 무서운 순간을 나는 넘겼다. 그 다음 단계는 정해져 있다. 무슨 영문인지 알아야 하고 그 원인을 알아가는 과정은 진실 해야만 상대를 꺾을 수 있기 때문이다.

  누가 죽였던 징그러운 뱀의 허물을 벗겨주었으면 고마운 일이다. 안으로 대화를 하였다. 뱀의 허물을 벗어 낸 게 언제인데 어리석게 아직도 뱀이라는 습으로 냉기를 뿜어 괴롭히냐. 알아듣도록 이야기를 하였다. 그 순간 신기하게도 몸에서 무서운 습기가 다 빠져 나가는 느낌이 있었다. 몸에 온기가 돌아오는 것인가. 다리를 내어놓고 몸을 관찰해 보아도 다리가 뽀송해지는 것을 느꼈다.

  이런저런 일이 처음은 아니지만 뱀의 영혼이 원수를 갚겠다고 달려드는 일은 처음이라 순간 무서웠다. 순발력 있게 대처했기에 생각했다. 수시로 겪었던 중 특이한 일이라 적어본다. 뱀이 된 동기가 무엇인지 차근히 알아볼 일이다. 세상에는 웃지 못 할 일들이 많이 있지만 이런 이야기를 기록한다는 게 쉽지 않아서 어찌 풀어 나가야 하는지 의문이다. 뱀의 몸이 되기 전에 어떠한 삶을 살았는지 어느 시대 사람인지 어떤 일을 하고 살았는지 살펴볼 일이다.

  영화 “장마”에서 주인공인 황정순이 천지간에 외아들을 전쟁에 잃고 그 허황한 마음을 어디에 두지 못하고 목숨 부지를 하고 살았는데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장마철 마루 한쪽에 쭈그리고 앉아 풋 콩을 꺾어다 까고 있었다. 꼬투리에 달린 콩을 그릇에 담아야 하는데 외아들을 잃은 어미는 바른 정신일 수가 없다. 혼이 나간 주인공은 치마폭에 떨어지는 콩을 의식하지 못하였다. 주룩주룩 철석거리며 내리는 여름 장마 비는 마당 저 끝 소슬 대문 쪽에도 주룩주룩 떨어진다. 비는 나뭇잎 무게를 누르고 흑 바닥 돌 위를 굴리며 내리고만 있었다. 행낭 어멈으로 집일을 맡아 보는 아들 잃은 어머니는 바람 빠진 허리를 굽혀 바라보는 곳이 있었다. 주룩주룩 기와 장 사이를 타고 내리는 비는 아들 잃은 어미의 마음을 더욱 슬프게 하여 아들 그리는 마음이 배가 되었다. 하염없이 대문 쪽을 바라보던 어머니는 아들의 죽음에 대한 확실 증을 무시하여 무엇으로 믿는단 말인가. 시퍼런 군복을 입고 금방이라도 대문을 들어와 어미를 찾을 것 같은 착각에 황청이 들리는 듯 대문 쪽으로 귀를 곤 두 세우고 있었던 것이다. 애절하고 애틋하고 원통한 기다림은 무엇에라도 의지하고 싶은 것이다.

  대문만 바라보던 어미의 눈에 구렁이 한 마리가 마당으로 들어왔다. 물끄러미 바라보던 어미는 치마폭에 담았던 콩을 쏟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구렁이를 보는 순간 아들이 죽어 구렁이 몸으로 집을 찾아온 것이라 스스로 인정하여 맨발로 아들을 맞으려 비속을 나선다.

  “어 여 돌아 왔구나, 내 아들이 어 여 오니라, 어미다.”

  이미 제 정신이 아니다. 죽은 아들이 돌아왔다고 인정하는 순간 구렁이는 아들이 죽어 집을 찾아 돌아온 영혼이라 믿었다. 전쟁에 외아들을 잃은 어미의 안타까운 마음이 고스란히 드러난 <장마>의 한 장면이다.

  비속을 바라보며 정신 줄을 놓고 있었던 어미는 구렁이의 출현에 참고 억눌렸던 감정이 행동으로 표출되었다. 아들 혼백이라 생각한 어미는 뱀의 가는 길을 열어줌으로 아들죽음을 인정하려 하는 애련함이 거짓만은 아닐 것이다. 그와 같은 일이 여기 책속에서 벌어지고 있다. 물어야 했다.

  ‘당신은 누구십니까? 부처 공부를 하셨나요. 어느 시대 사람인가요.’

  ‘씨발,’

  정체를 들켰다고 생각하니 자존심이 뭉개지나보다.

 ‘고려 사람이요! 천천히 숨 좀 돌려가며 합시다. 열심히 공부 했는데, 뱀이 되다니, 씨 발’ 한숨과 욕이 나온다. ‘당신과 해인사에 함께 있었지’

  해인사라면

  “정법스님?”

  ‘씨 발 ’

  그의 가슴에 울화가 일었다. 들키고 싶지 않은 자존심이 욕으로 일관 하였다. 무슨 이런 일이, 나는 당황하여 놀랐다. 전생과 현생을 연재소설로 이어가는 마당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자의 마음을 이해하게 되었다.

  “어쩌다.”

  이렇게 만날 줄 몰랐다. 창피하지만 반갑다. 공부를 제대로 못한 게 업보라며 불가를 운운하는 자체가 우습지만 무엇 때문에 만났는지 말 좀 해 주시겠소?

  되물어 왔다. 나는 무어라 할 말이 없다. 이런 일도 있구나, 하는 서글픔이 있었다. 이건 분명 전설 속 이야기다. 믿기지 않은 일을 풀어야 한다. 뱀이란 업을 벗어내지 못하고 살았던 정법스님이 본연의 마음을 찾았다. 같은 도반에 자신의 추한 모습을 들켜 버렸으니 얼마나 수치스러울까. 뱀의 허물을 벗었음에도 느끼지 못하고 아직도 뱀인 듯 어리석게 굴었던 자신이 진절머리가 났을 것이다. 그러기에 창피하고 억울하여 수시로 욕이 나왔다. 사람의 마음으로 돌아오고 보니 하필이면 왜, 함께 해인사에서 동문수학 했던 도반의 몸에 들었단 말인가. 생으로 잡혀 불속에 들어가 생죽음의 고통을 겪었던 일이 생생하게 떠오르는 바람에 앞 뒤 생각도 없이 앙심을 품었던 어리석은 자신이 용서가 되지 않아 욕이 나왔다. 복수극이 악으로 변하려던 찰라 마음을 잡아준 동문수학을 함께했던 (나의 전생 이름) 일현이 아니었던가. 그는 정신이 점점 맑아졌다. 뱀으로 죽었던 자신이 생각 할수록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지나갔다.

  그래, 또 천 년 전으로 들어가 보는 거야. 내, 전생 이름이 일현이 었지. 고려 사람이기도 하니까 고려를 이어 시작해보자. 어머니의 장례를 마치고 돌아가던 때가 좋으리라.

  일현은 가족을 뒤로하고 빠른 걸음으로 길을 재촉하였다. 돌아볼 용기도 없었다. 누가 가지 말라고 잡아 본다든가, 함께 강원도로 가자던가, 따라간다고 나서는 가족도 없다. 그 자리를 빨리 떠나 그들과 멀리하고 싶은 생각뿐이다. 어머니는 죽어서 강원도 하슬라에 손자를 따라 좋아라. 가실까? 어머니가 죽어 남긴 뼈 가루를 절에 모셔도 될 일이지만 속가 아들이 모셔간다는데 무어라 할 말이 없었다.

  불가에 귀의 한 몸이 쓰 잘 떼기 없는 사사로운 정이 마음을 어질러 벗어나려 하였다. 모든 걸 잊으려 걸음을 빨리하였다. 이틀에 서라벌에 당도 했다. 마음도 그러하여 주막에서 묵어가기로 하였다. 할 일을 모두 마무리 짖고 보니 마음도 여유로웠다. 주막집 여인네가 반겨주었다. 어머니를 만나 어머니 마지막 길을 함께했던 나는 며칠 밤을 새워 피곤 할 만도 한데 마음이 홀가분하였다. 날이 저물려면 시간이 남아있다. 처음 왔을 때 한번 와 보았던 서라벌 냇가로 발길을 옮겼다.

  여름 장마에 힙 쓸려간 버드나무 밑 퉁이 물살에 벗겨져 있기도 하고 잎이 누렇게 가지에 걸려 바람에 흔들린다. 서라벌에서 어머니를 만난 게 기적이다. 더욱이 어머니 마지막 길을 함께 했다는 것에 부처님께 감사드렸다. 마지막으로 어머니를 모시고 서라벌 시장을 돌았던 일이며 정신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어머니는 아들이 자랑스러워 장터상인들에게 당신의 건제함을 보이던 그 기운이 눈에 선하다.

  죽음 앞에 선 순간까지도 삶의 모습이 고왔던 어머니를 다시는 볼 수 없다는 게 그리움으로 아리다. 이제 옆에 아무도 없다. 오직 불법을 펴 희랑스님의 뒤를 이어갈 책임만 남았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만났을까. 서라벌 지리산 산신이 되신 아버지최치원은 분명 어머니미향을 만났을 것이다. 그들의 인연은 그것으로 끝일수가 없다. 그러한 생각들을 하며 붉게 물들이는 저녁노을을 바라보았다.

  이 소설의 본질은 거짓도, 꿈임도 없는 진실로 이어 저야 한다. 삼생을 환생한 주인공의 독특한 캐릭터에 사업의 이름을 걸고 시작하였다. 사업은 시작되었고 건물 3층에서 4층의 재료가 완성 되었다. 아무것도 아닌 것에서 일어나는 불꽃이 무섭다. 속으로 삼켰던 눈물 한 방울 한 방울이 헛되지 않아 고맙다. 두 달에 걸쳐 지어지는 한 채의 건물은 기적이다. 그 기적은 언제까지 몇 층의 건물을 올 릴 것인지 기대되고 두렵다. 책 한권의 건물이 나올 때마다 그 순간의 고통들을 잊는다. 오래된 언어들이 차례로 표출되어질 때 놀랍다. 그것은 분명 아라한의 경지에서 나온 것이리라.

  보현보살의 총지진언이 이렇게 일치 될 줄 정말 몰랐다. 보현보살의 총지에서 이루어낸 경지이다. 멋대로 사업이라고 칭하는 것은 한 채의 설계비가 적자이기 때문이다. 4층의 건물을 지으면서 나는 승가의 괴멸을 실현하고 승가의 잘못을 없애는 일에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어떠한 역습이 온다 해도 고통으로 인내한 것에 비하지는 못하리라.

 

  보현보살 총지진언

 

 아견을 없애고 소아를 없애고

 아방 편을 버리면 평화로울 것이라

 마음이 유연하게 행위도 유연하게 원활하게 하리라

 붓다를 관하면 모든 총지를 차례로 돌리고

 모두 회전시켜 승가의 괴멸을 실현하고 승가의 잘못을 없애고

 모든 가르침을 배워 일체중생의 소리를 깨달으면

 사자가 노니는 것처럼 자유자제로 삼세에 걸쳐

 무한하게 진리를 차례로 펼쳐 가리라.

 

  법화경에 나오는 보현보살 진언이다. 누구나 이 진언을 갖기를 원한다. 이 진언을 받아 지녔다. 처음에 무슨 말인지 그냥 외우기만 했다. 보현의 진언을 터득하고 보니 거짓이 없다는 걸 알았다. 얼마나 깊은지도 모르고 엉뚱한 것에 대비시키기도 하였었다. 지금 고층건물을 세우는 일에 자제를 제공해주고 기억을 돌려주고 과거와 현제를 넘나들 수 있게 해 주었다. 그러한 일에 동참하게 된 동기는 진실이 바탕이 된 정의다. 가르침대로 이행하고 믿었기에 진실은 거짓이 없다. 진리는 속이지 않는다. 진리의 대가는 곧 무한이다. 이사업에 기본 재산이 없으니 망할 일은 없다. 튼튼하게 지어서 모든 이가 쉬어가는 시간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

  나에 대한 탐구를 치열하게 하였다. 한 가지에만 목숨을 걸었다고 할 수 있다. 그 막바지에 지금껏 해왔던 것에 대한 대가로 전생을 알게 되었다. 첫 생은 신라 하대의 최치원의 서자로 태어났었다. 두 번째 환생은 조선 중기에 중종 24년에 태어났다가 지금은 여인의 몸으로 탄생 하였다. 그것을 증명하는데 신라에서, 고려에서, 조선에서의 있음직한 일에 대한 거짓 없이 언어로 표출하는데 어려웠다.

  말로만 들었던 전생을 접하면서 묻고 의심하고 확인하는 작업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인간의 능력이 한계가 없다는 것을 실감하면서 진리의 진정성에 모든 것을 의지하여 배운 대로 진리를 섬겼고, 진리를 위해 마음을 다했으며 진리를 탐구하는데 게으르지 않았다. 진리는 순한 양이 되어야 얻어 지는 것이다. 한 생을 산다는 것이 하룻밤 이슬과 같다고 말은 하지만 분명 그것이 아니었다. 시간을 허비하지 않은 수많은 일들이 뇌리 속에 잠제 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것은 무한을 다 바친 대가성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과거와 현재를 바라보는 나는 누구인가? 금강인가, 일현 인가,

  주막에서 하룻밤을 자고 해인사로 향했다. 한 달여 만에 돌아오는 것이다. 해인사 마당에 들어서자 마당을 쓸고 있던 행자스님이 먼저 소리를 높였다.

  “주지스님께서 오십니다!”

  정법스님이 방에서 나왔다. 이제 뒤 돌아볼 일이 없어졌으니 마음은 가볍고 내 집에 들어오는 기쁨이다. “먼 길에 고생이 많으셨죠.” 비~잉 둘러 출타해 돌아온 일현에게 삼배를 올렸다. 해인사 도량에 들어서기 전만 해도 가족의 뒷모습을 생각하느라 속가에 있었던 일들을 회상해 보기도 하였다. 고려시대 동희의 이름으로 살았던 강원도 명주하슬라에 미련이 남은 건 아니지만 가족이었던 그들과 헤어진 여운이 해인사 마당에 들어서면서 사라졌다.

  왕건이 처음 실행하였던 과거에 급제하여 한 달여 시간의 여유가 있었다. 그때 동희는 아버지 최치원의 행방을 찾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해인사로 찾아 들어 처음으로 해인사 주지인 신라 고려를 이어온 희랑대사를 만났던 일이 인연이 되었다. 일현은 해인사 희랑선사를 만났던 일이 어제 일 같았다.

  “모두 별일 없었는지요. 저는 잘 다녀왔습니다. ”

  속가의 일을 굳이 말할 필요는 없었다. 그리고 어머니 미향의 제를 준비하여야 하기에 제상에 올릴 것들을 대강 준비하여 챙겨온 탓에 행자에게 넘겨주었다.

  “내일부터 49제 제 올릴 준비를 해 주시게. 속가 인연인 어머니가 돌아가셔서 마지막 길을 보고 오는 길입니다.”

  둘러섰던 스님들이 놀랐다. 어찌 알고 미리 가셨는가를 굳이 묻지 않아도 일현스님의 법력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입고 있었던 옷을 벗었다. 며칠 동안 옷 한 벌로 지냈던 탓에 새 법복으로 갈아입고 대웅전에 엎드렸다. 어머니가 평소 입고 계시던 옷 한 벌을 승려주머니에 챙겨왔기 때문에 그것을 곱게 접어 보자기에 새로 싸들고 영단 아래에 모셔두었다. 정법스님이 따라 들어와 일현의 마음을 헤아려 함께 부처님 전에 예를 갖췄다. 정법스님은 다시 예를 갖추며, “참으로 큰일을 하고 오셨습니다. 스님의 급한 행로가 그런 일인지도 모르고 무심하였습니다. 어머니는 잘 모시고 오셨습니다.” 상을 치루고 돌아온 마음을 헤아려 위로하는 것이다. 알고 간 것은 아니며,

  “기적이 따로 없었습니다. 강원도에 계실 줄 알았던 어머니가 서라벌에 와 계신 줄 몰랐으니까요.”

  일현은 미향을 만나 죽음을 지켰으며 장례동안 가족과 만난 것도 기적이었다. 어머니를 모시고 왔으니 49일 동안 왕생극락을 빌어 언제다시 또 자식과 부모의 인연으로 만나기를 소원하였다. 아득히 먼 곳을 바라보듯 법당에 앉아 있었다. 뒤에 따라들어 와 마음을 전하는 정법스님이 고마웠다. 49일 동안 어머니를 안심시키고 그동안 키워준 은혜를 감사하였다. 마지막 제가 있던 날 아버지인 최치원이 어머니 미향이 가는 길에 도움을 주었다. 살아서 다 이루지 못한 사랑이 죽어서 다시 만나 이루어 졌는지 알 수 없다. 그러한 일이 끝나고 해인사의 주지를 정법에게 물려 준지도 여러 해가 되었다. 희랑선사가 입적하시기전에,

  “해인사 주지는 일현에게 넘긴다.”

  하고 유언으로 남기신 다음 정법스님에게 미안하였었다. 정법스님이 받아야 할 자리를 뺏은 것은 아니지만 미안하여 열심히 해인사의 발전에 심려를 기울려 노력 하였다. 그 즈음 고려 왕건의 정치가 안정이 되어가고 있을 때였다.

  왕건은 고려 초기에 있었던 일을 생각하게 되었다. 멀리 떨어져 있는 강원도와 신라의 잔재들을 염려 하였다. 심려를 기우려 과거를 치렀던 것은 왕건의 집권을 굳건히 하기위한 첫 과거에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한 동희가 자진하여 강원도로 간다는 바람에 어렵지 않게 왕건의 시대를 열어갈 수 있었다. 그 애숭이 책사 동희가 강원도의 역사를 놀라 게 변화시켰던 것이며 고려를 세우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는 걸 잊을 수 없었다. 또한 그 어미의 미모가 왕건의 뇌리에 있었던 것이다. 그동안 전쟁으로 삼국을 통일하면서 동분서주 하였던 고려가 하나로 기틀이 잡혀있었다. 다음 왕권을 이어 갈 왕자는 대 고려의 운명이다.

  중안 정계 왕실은 분주하였다. 왕건의 시대가 종결 되려는 시기에 왕건은 지난날을 회상하고 동희를 생각하게 되었다. 동희는 젊은 나이에 아찬벼슬까지 올랐었다. 강원도 명주군 역사에 남을 큰일을 남겼고, 더욱이 왕건의 총애를 받기도 했었다. 그러한 동희는 하슬라 최고의 자리인 아찬 벼슬에 올랐지만 초개처럼 버리고 사라졌던 일이 아쉬움으로 남았던 지난 일을 생각하다, 그 장계를 받았던 왕건은 놀랐다. 그 아비가 신라의 대 학자 최치원이라는 소문도 들었다. 신라의 학자 최치원을 알고 있었기에 그의 아들인 동희의 행동에도 말 못할 사연이 있었으리라는 판단을 하였다. 그 애숭이에 대해 한동안 궁금했던 적도 있었다. 그 뛰어난 재질을 가진 동희는 아찬 벼슬을 버리고 아버지 최치원처럼 불가에 귀의 했을 것이라고 소문이 있었다. ‘세월도 많이 갔구나, 그를 한번 만나보고 싶구나.’ 하던 마음이 그랬었는데 갑자기 동희 행방에 대한 궁금증이 생겼다. 동희를 생각할 때 왕의 자리도 연연할 것이 못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여봐라! 내금위장을 불러라.”

  고려를 세우는 과정에서 왕건의 여인으로 29명이나 부인을 맞이했으니 여인에 대한 신비함은 없었다. 다만 강원도에서 보았던 미향의 모습이 아련하게 떠오른다. 참으로 귀하게 보였는데. 왕건은 조용하게 사색을 하였다. 어제의 영화도 한낮 번개 불과 같구나. 고려를 굳건히 한다는 명목으로 29명의 부인을 얻어 자식이 30명이 넘었다. 왕 씨 성은 왕가를 이루어 놓았다. 자신이 지나온 길을 회상해 보니 저 많은 자식들이 왕권을 두고 피 흘릴 생각을 하니 어찌 눈을 감는단 말인가. “대왕전하, 내금위장이 들었습니다.”

  “너는 지금 강원도로 내려가 고려를 개국할 때 아찬 벼슬까지 올랐던 김동희를 찾아보아라. 살았는지 죽었는지 명주 관아는 알고 있을 것이다. 이 세상을 하직하기 전에 한번 만나보고 싶구나. ”

  태조 왕건은 강원도 보현사 주지, 랑원 대사도 머리에 떠올려 보았다. 아흔 아홉 구비를 넘어야 한양으로 갈 수 있고 아흔 아홉 구비를 넘어야 신비로운 하슬라의 땅을 밟을 수 있었다. 대관령 굽이굽이 보부상들의 발자취가 차곡차곡 발길로 묻어나고 질러가다가 똥 싼다는 옛길 반정에는 주막의 길손이 끈이지 않았다.

 

  나는 정법에게 주지자리를 물려주고 뒤로 물러나 선의 도리를 탐구하는데 게으르지 않았다. 무한으로 도의 경지에 들기 위해서다. 그리 신나게 경전을 설했던 것도 부질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깨달음의 경지는 자연을 그대로 보는 눈과 그 이치를 아는 것인데 그리도 분주하게 살았던가, 아찬의 벼슬과 가족을 초개처럼 버리게 하여 산으로 들게 했던 것은 무엇이란 말인가. 어머니 가슴을 아프게 했던 나는 누구였단 말인가. 마음에 끌려 상원사 보궁을 3년을 오르고 내리게 하였던 나는 누구란 말인가. 해인사에 가라던 울림의 소리는 누구의 명령이란 말인가. 그런 것들을 탐구하며 낮에도 밤에도 참선의 길에 게으르지 않았다. 무 란, 없는 것도 아니고, 있는 것도 아니고, 없어서도 안 되고, 있어서도 아니 되는 바람이고, 허공이니 걸림이 없음이다. 도란 참 나를 찾아가는 가없는 경지.

  “차를 내가 마셨습니까, 마음이 마셨습니까. ”

  “가슴이 아픈 것은 마음입니까, 나입니까.”

  자신을 뚫어 보는 철학은 시작된다. 철학이란 엄청난 학문인 듯 하지만 불교를 아는 것이 철학이다. 마음을 교화 하여 어떻게 살았느냐에 따라 인문학이 완성 되는 것이다.

  부처의 시대에도 5백 도둑의 무리가 있었다. 그 5백의 도둑무리들을 5백 나한이라 한다. 흔희 집안이 어지럽게 널려있는 것을 보고 오방난한장이라 하는 것도 5백 도둑의 무리들 마음을 표현하는 말이다. 5백 도둑의 마음이 다 다르다는 걸 석가모니부처님은 간파하고 도둑의 마음을 하나로 교화 하였다. 자신을 찾아 가는 길 그것이 무엇이든 인간의 삶과 생각은 다르다. 수시로 변하는 마음을 꾀 뚫어 보는 눈과 국 집을 소멸시켜 집착에서 벗어나는 것이 2~3천년 동안 내려오는 부처의 진리다. 공부 했다는 증거는 마음을 볼 줄 아는 것이고 소멸시키고 걸러낸 뒤에 진정으로 의롭고 의심이 없다는 것이 마음을 항복받는 일이다.

  나의 전생의 삶과 현생의 삶이 닮아있다는 것을 느끼고 산다.

  ‘ 지금까지 옥죄어 살았던 피부조직을 풀어 털구멍마다 숨통을 트이게 할 것이며 잠도 적당히 자고 마음의 여유를 가져라. 너 는 불교의 기둥이 될 것이니 서둘지 마라, 32상은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화관을 가출 수 있도록 여유를 가져라. 여여 할 것이니,

  “누구십니까?” 광명 지. 도반을 만나 기쁜 일이지~ 오고가는 마음에 선법의 묘미를 공감하게 하는 차원 속 공감대는 다리를 틀고 앉아 이어지는 선의 경지를 감당해 내노라면 내 형제와 자식과 내 손자들 이름을 나보다 더 또렷하게 부르는 당신은 누구십니까? 거칠었던 인생길을 누르고 눌러 다듬어 세워준 당신은, 내 몸의 운전대를 잡고 긴긴 시간 자식의 어미로 의롭게 살게 했던 당신은 내게 그리 보듬어 주셨나요? 물었다.

  하나 되는 순간 외롭지 않은 경계 말이다. 그렇게 기를 세워 일어났던 욕심과 허망과 억울함의 긴 터널도 느껴지지 않는 순간의 경계를.

 

  고려시대 내 어머니 미향은 국제무역업으로 무진장 벌었던 재산을 아들 동희를 위해 하슬라에다 투자하였다. 재해를 만나 어렵던 서민들에게 손수 옷을 만들어 입혔고 임영관 99채를 지어 하슬라에 조건도 없이 주었다.

  그리 통 큰 미향은 아들 옆에 있고 싶어 고향인 서라벌을 떠나 강원도에 왔었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과 오래 살고 싶어 찾아 왔던 것이다. 그리던 어머니를 만나 언제까지 살고자 했던 마음에 떠나야 한다는 소임은 새벽이슬을 밝고 어딘지 모르게 길을 재촉하는 아들의 마음을 눈으로 바라보아야 하는가. 미향은 보고도 잡지 못하고 멍한 정신이 되어 뒷모습만 안타까이 바라보며 눈물을 흘렸다. 그 마음을 알지 못한 채 떠나는 아들을 따라갈 수 없는 미향은 달리 마음 추수 릴 곳이 없어 손녀인 수인을 데리고 서라벌로 돌아왔다. 통 큰 손은 어디에 있어도 기회를 만난다. 미향은 한 남자를 위해 죽을 때 까지 절개를 지켰고 흔들림 없이 사업에 이익분배의 룰을 세워 정도를 지켜 많은 상인들의 존경을 받았다.

  천년신라가 망해가는 마지막을 보는 것이 안타까워 눈멀고 귀먹어 외면해야만 했던 신라 영웅 최치원을 만나 아들 동희를 낳았다. 5년의 짧았던 사랑에 평생 그리워하며 흐트러짐 없이 외아들을 지켜냈다. 그럼에도 아들이 귀한 만큼 사랑의 무게를 내면으로 다스렸다. 그 외아들 동희가 과거에 급제하여 천리가 넘는 강원도 하슬라에 간다고 자원 했다는 소리에도 섭섭함과 놀라움을 안으로 감추었다. 아들이 가는 길에 부담을 주지 않으려 인내했고 어미를 염려하는 아들 마음이 편해야 한다고 천지간에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보내주었다.

  미향의 미모에 고려왕건도 기억하였다. 미향은 신하 된 도리를 지켰을 뿐 아니라 왕건과 마주섰을 때 대장부다운 안목을 보일 정도로 왕의 방문을 기쁘게 하였다. 동희 또한 나랏일에 정도를 지켰다. 망한 신라 백성이 고려에 이입 되도록 고려 주춧돌이 되어 김주원 왕가의 위력을 꺾고 슬기롭게 고려의 백성임을 알렸다. 왕건이 하지 못한 일을 동희가 해냈던 것이다. 국가가 안정되고 왕건시대가 끝나가는 시점에서 하슬라에서 큰일을 해 냈던 동희의 안부를 마지막으로 알고 싶었던 왕건은 동희를 찾게 되었다.

 하슬라에 파발을 갔던 병사가 돌아왔다. 하슬라 명주관아에서 들은 대로 동희 가족을 만나 사실을 알고 급히 중앙으로 달려 왔던 것이다.

  개국 26년의 세월이 흘러갔다. 태조 왕건의 나이 67세에 정계를 물러나 새로운 고려왕이 된 혜종이 왕권을 이어 고려를 재정비하는 시대가 되었다.

  하슬라에 갔던 병사가 돌아 왔다는 전갈을 받았다. 몸과 마음이 땅으로 갈아 않는 듯 하여 눈을 감고 누웠던 왕건은 귀를 세워 일어나 앉았다. 갔던 일은 어찌 되었느냐고 물었다. 그 가족을 만나 알아본 결과 “아찬 벼슬을 하던 동희 대감은 스님이 되어 떠난 지 20년이 되었다고 아뢰었다. 그래 지금 어디에 있다고 하더냐. 파발을 다녀온 병사는 아는 대로 동희 대감의 법명은 일현 스님이고 그의 어머니 미향이 얼마 전에 죽었고 그녀 죽음에 함께 있었다는 가족의 말을 전했다. 그리고 해인사에 주지로 있다는 이야기도 하였다. 왕건은 짐작으로만 믿었던 동희 그 애숭이가 스님의 길을 걷는다는 말을 듣고, 허허허 소리 내어 웃었다. 그리 영특하더니 불법에 귀의 하였다. 그 세월동안 많은 것을 깨달았겠구나. 보고 싶구나. 병사를 내려다보며 하루 이틀 쉬었다가 해인사로 가 일현 스님을 모셔오라는 어명을 내렸다. 그를 꼭 데려오라는 엄명을 내렸다.

  이 시간 이후 소설 속에서 잠깐 미처 보려고 한다. 그 이유란 태조 왕건을 미 투에 동참시켜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그러기에 소설 속 팻말 을 세워야 한다.

  “삼국을 통일한 영웅이라도

  미 투를 벗어 날수 없다.”

  삼국을 하나의 나라를 세우려던 시대 일이지만 소설 속 인물이 된 이상 언론이 자유로운 대한민국 후손으로 집고 넘어가야 한다는 생각이다. 권력의 희생양이 된 왕건의 부인중 미투를 벗어낼 수 없는 왕비가 있을 것이다.

  꿈 많던 하나의 인생을 부모의 정약 적 혼인에 희생이 된 귀하디귀한 여인들의 대변인이 되어 보리라.

  평범한 가정을 갇고 행복을 누려보지 못한 고려의 소녀들이 한 남자로 인해 인생을 허비한 그 이름도 화려한 왕비를 소설 속에 초대해 그 진실을 파헤쳐 볼 기회를 삼아 보려는 것이 고금에 없을 기발한 스토리가 아니겠는가.

  29명의 여인들은 자신의 운명에 대한 억울함을 하소연이라도 한번 해 본적이 있었을까.

  사람들은 시대적 희생양이라 대변 한다면 그들의 생각 속에 들어가 알아보아야 한다. 진정 부모 원망도 안했을까. 나라 원망도 해 보았을 것이다. 영웅 왕건을 남편으로 두었으니 그 수 만큼 밤의 바라기를 어찌 견디어 냈으며 사랑 바라기 애타는 마음을 어디에다 의지 하였을까.

  29명이다. 입으로 헤아리기도 어려운 숫자다. 역사는 그 이상으로 부풀려 우려먹어도 영웅담은 세세생생 그 기본은 변하지를 않으리라.

  나는 여인의 섬세한 눈물을 말하려는 것이다. 유토피아가 상상의 극치라면 하 극으로 내려가 보자. 태조 왕건은 진정 삼국을 통일한다는 목적으로 여인을 취했을까. 그 많은 소녀들을 말이다. 권력과 압력으로 무릎 꿀인 적은 없었을까. 그 부인의 얼굴을 모두 제대로 알고나 살았을까. 29명의 여인은 행복했다고 말 할 수 없을 것이다.

  그가 이제 여인들을 남겨두고 67세 나이에 영웅적 역사의 막을 내리려한다. 새 역사 속에 들어가 젊음을 태웠던 영웅왕건은 눈을 감고 아직도 진행 중인 양 북방을 넓히고 삼국을 통일할 때의 그 화려했던 시절을 회상 하고 있다. 몸은 쇠하여 가지만 꿈만 같았던 영웅담은 회춘의 기회로 삼아보려는 심리다. 그러나 죽음 앞에서는 모든 것을 내려놓으려는 순간 동희가 그리운 것은 무슨 조화란 말인가. 어린 게 과거에 급제하여 알지 못하는 먼 곳을 자원 했을 때부터 왕건의 뇌리에 동희라는 이름이 각인되어 있었던 것인가. 옆에 불러 인생 마지막을 함께 하고 싶은 것이다. 속세를 떠나지 않았다면 아마 오래도록 왕건의 옆에서 훌륭한 재력가로 왕건을 도왔을 것이다.

 

  적막을 넘어 고요가 지속되는 숲속에 둘러싸여 해인사 방에 앉아 귀에 들리는 새소리, 바람소리, 나무 잎 흔들리는 소리에 귀를 열어 자연을 마음으로 느끼며 안으로의 산책에 깊어진다. 멀리 들려오는 듯 산짐승들 소리는 바람의 음 율에 동화되어 안으로 음미하기도 하고 그 많은 알음아리가 생각을 일으켜 어지럽게 하려는 순간순간을 체험하고 있다.

  팔만 사천의 경전 속 언어들이 질서를 유지하고 아름 아리로 알아질 때 기쁨은 환희의 바다를 경험하였다. 그랬던 언어들을 모두 지우려 무에서 시작해야 참다운 지혜를 깨닫는다는 팔만사천의 언어들을 머릿속에서 털어 버렸다. 이미 경전으로 배를 만들어 험한 바다 길을 건넜기에 뒤돌아 볼 일이 없음이다. 경전을 전 할 때 걸림이 없었다.

  화엄경 속 선재가 깨달음을 얻기 위해 53 선지식을 찾아가는 내용이지만 진리를 배우는 자의 소임이 그 많은 인간사를 경험하고 체험 한다 말합이다. 선재의 공부에는 여인과의 신비로운 육체관계를 맺는 장면도 선재의 지식에 들어있다. 그 만큼 모든 세계를 경험해야만 인간의 마음 즉 자신이 우주라고 말할 수 있는 공감대를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듣는 이가 선재의 행로를 즉시 알아들을 수 있는 경지에 들어 있다면 강의 하는 강사와 듣는 이는 합일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선의 지혜는 책속의 언어와 차원이 다르다. 언어로 전하는 것은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선에서 얻어지는 지혜는 누구에게 선득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너무나 세밀하여 입을 통해 밖으로 나오는 순간 듣는 이에 따라 이해할 수 없는 귀신의 말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팔만사천의 경전 내용은 부처님의 방편설이라고 부처님께서 간파한 증거다. 부처의 깨달음을 말로 전할 수 없어서 고심 끝에 글자로서 이해를 시키려고 노력하지만 거의가 방편설이다. 선의 경지는 보이지 않는 먼지 속으로 들어가 그 이치를 깨달기 때문에 설명할 수가 없다. 그러기에 일현은 경전의 경지에 있었던 알음아리를 지워내고 있었다.

  깨달음의 길에 마음을 시험대에 올려놓고 여러 가지 형태로 혼란시키는 방해꾼에 요동 없이 얼굴엔 땀방울이 매친다. 그것을 관찰하는데 집중하여 들어가는 선의 경계는 경을 해석하여 설하며 환희했던 것과는 길이 다르다.

  어머니 미향의 49제가 끝난 지도 오래되었고 그토록 애절하게 그리워하던 아버지 최치원에 대한 그리움의 집착도 벗어 낸지 오래 되었다. 불효라는 것조차 잊고 살았던 어머니에 대한 죄스러움도 49일 동안 다 풀어 버렸다.

  속가의 아들이 미향의 뼈, 가루를 고향으로 모셔 간다고 하였을 때 한마디의 말을 못했다. 어머니의 장례일 동안 속가의 아들과 부인에게 눈 한 번도 맞추어주지 않았다. 떠나올 때 가족에게 한마디 이해도 구해보지 못하고 떠나 온지도 오래다. 가족은 한으로 맺혀 할 말도 많았겠지만 눈 한번 주지 않은 남편과 아버지에게 할 말을 일었다. 그리 무심하게 가족과 헤어진 일현은 마음에 어머니를 모시고 해인사로 함께 걸어 왔었다. 49일 마지막 날까지 세상과 이별하는데 미련 없었다는 걸 증명해 주었다. 어머니를 홀홀 떠나보낸 자리에 자식은 할 일을 다 하였다는 허전함을 마무리를 하였다. 불교와 멀었던 어머니를 위해 시간마다 마음으로 경전을 설해 천도의 길을 열어 주었던 것이다. 최치원이 마지막 떠나는 날 하늘에서 인도 하였던 것처럼 미향의 이별도 기쁨으로 아들의 손을 놓을 수 있었다. 어머니를 보내던 날 일현도 눈물을 흘렸다. 미향은 아들에 대한 집착을 감당 할 수 있는 통 큰 인물이었지만 그렇게 가볍게 아들의 손을 놓고 떠나가리라 작은 근심을 하였던 것이다.

  그날은 날씨도 좋았다. 새들이 소리 높이 지저귀고 모인 사람들은 무언가 모르게 기분이 좋았다. 살아있었던 모습처럼 미향의 모습을 볼 줄은 몰랐다. 신과 인간의 세계는 같으면서 다르다는 걸 인식하고 좋은 인연을 맺었던 부모자식간이 어느 생에 또 만날 수 있을 것이라는 호기심도 생겼다. 그 이후 책임 지워져 있던 주지의 허울을 정법 스님에게 넘겨주는데 주저 하지 않았다. 주지의 책임감에서 자유로워지는 기분은 표현 할 수 없을 정도로 좋았다. 법 납도 그리 만치 않은 나이에 해인사 주지를 맡아 큰스님 희랑선사가 맡겨 준 중책에 노력하였고 속가를 떠났던 것처럼 주지의 자리를 벗어놓고 자유로웠다.

  언어를 놓아버려야 하는 기로에서 새로운 깨달음에 도전하는 길에 성취해야 한다는 절박감에 고통의 순간들이 따랐다. 망상이 화두의 힘을 방해 하고자 마음의 거울에 앞 다투어붙었다 떨어지고 집요하게 방해하는 것을 들여다보며 빙긋 웃어 넘기다보면 거울도 없고 마음도 없고 앉아 있는 물건이 부처였다.

  시간의 지루함은 청각이 사라난다. 들쥐가 지나가고, 썩은 냄새가 방안을 돌아 문틈으로 사라지는가 하면 무아의 세계를 방해하는 자도 없고 주지를 찾는다는 문 두드리는 사람이 없어 자유로웠다.

  썩은 냄새의 원인인가. 감정 이입도 되지 않았는데 몸에서 일어나는 욕정이 참으로 귀의하여 그 실체를 관여 하려다 은연중 부처의 부름이라 여기고 단걸음에 상원사에 달려갔던 생각이 나타난다. 3년 후 마음의 소리에 해인사로 자리를 옮겨 왔던 일도, 저잣거리에서 혹사한 다리를 물에 씻으려 우물가로 갔었던 일, 우물가에서 세 여인을 만나 이야기하다 해인사에 갗이 올라갔던 일이 무아의 속으로 들어온다.

  그때 세 여인에게 지어준 불, 법, 승, 의 이름은 참으로 기발한 생각이었다. 해인사에 있으며 그녀들로 하여금 많은 도움을 받았다. 해인사 주지자리를 내려놓았다는 데 세 여인은 얼마나 아쉬워했던가. 그 이후 스스럼없이 웃어 반기던 여인 얼굴은 경내에서 자주보지 않아도 되었다. 이제 주지가 된 정법스님과 가깝게 지낼 것이다. 해인사 마당에서 일현스님을 만날 수 없다는 세 여인은 해인사 마당에 들어오면 주위를 두 리 번 거려야 했다. 혹시라도 볼 수 있을까하는 기대를 하면서 말이다. 그 여인들 셋이서 공부하는 머릿속에 들어와 떠나지를 않는다. 괴이한 일이라고 생각이 들었지만 공부하다보면 모든 것들이 공부의 대상이라는 것을 알기에 그냥 지나가기를 바랐다. 허상에 시달려 고생하는 경우를 아는지라 무시하고 무시하였다. 그 환상을 벗어내기 위하여 얼굴에 땀방울이 흘렀다.

  그들이 사라지자, 주지를 넘겨준 정법스님 모습이 마음에 들어 왔다. 정법스님은 행복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세 여인들이 나타나 그 사이에 정법스님이 있었다. 세 여인은 정법스님 무릎에 앉아 상상할 수 없는 행동을 하고 있었다.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망측한 환상이란 말인가!’

  세 여인들은 차례로 정법스님과 정사를 벌이고 있는 것이 아닌가. 너무나 어이없는 환상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 날 뻔하였다. 이것이 무엇이냐! 도저히 믿을 수 없는 환상이라고 화를 내었지만 심각한 건 그러한 광경을 접하는 일현의 마음이 흔들리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껏 잠잠하게 살았던 육신의 발란이 시작 되었다. 정법과 정사의 행위를 하는 사람은 다름 아닌 세 여인에게 불명을 주었던 불, 법, 승 중 불, 이름을 붙여준 여인이었다. 불 여인은 성격이 활발하고 집안이 행세께나 한다고 들었다. 승가의 일과 불사가 있을 때는 앞장서서 솔선수범하는 해인사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사람이었다. 말도 안 되는 환상에 대해 화를 내고 욕지거리를 해댔다. 앉음 새를 고처 앉았다. 정사의 장면이 각인이 된 마음은 진정이 되지 않았다. 그것이 거짓이든 진실이든 관계없이 몸에서 열이 나고 견딜 수 없는 성욕이 그를 곤욕스럽게 하였다. 마음을 다잡아 앉음새를 고처앉아 보아도 가슴이 펄떡거리고 얼굴에 열이 나고 아랫도리가 팽창하여 그대로 앉아 있을 수가 없다. 몸을 일으켜 세웠다. 문을 열고 나왔다. 누가 보는 사람이 없어서 다행이라 생각했다.

  정말 괴이한 현상에 저녁을 먹었는지 점심을 먹었는지, 시간 개념을 잊고 있었다. 밖의 공기는 훈훈하고 기분이 좋았다. 나뭇잎 흔들리는 소리가 또렷이 들린다. 바람이 이산 저산을 건너가는 소리도 들린다. 벌레 울음소리도 귓전에 요란스럽다. 화두를 챙겨 걸었다.

  ‘설마 정법스님이, 그런 것은 아니겠지, 다 허상이야. 하면서도 의심을 하게 되었다. 평소 일현의 마음에 들어오지도 못했던 가족이 떠오른다. 인연의 책임을 팽개치고 자식과 부인의 정을 무 자르듯 잘라 버렸던 자신의 행동에 죄의식이 느껴진다. 하루아침에 아버지를 잃고 남편을 잃고 어찌 살았을까. 지난번 만났던 속가의 가족에게 눈길 한번을 주지 않았던 자신이 아닌가. 어머니 장례를 핑계로 살 부비고 살았던 부인과 말 한마디 나누지 않았으니 매몰차기로 말하면 죽일 놈이 아니던가. 그리 무심하였던 몸인데 어쩌자고 이 욕정은 무엇이란 말인가. 딸 수인이가 멀지 않은 거리 서라벌에 있다. 할머니를 잃고 얼마나 외로웠을까. 그러한 가족의 생각으로 자신의 몸을 다스려 보았다.

  정법 스님은 어려서 불가에 귀의 했다고 했다. 먹을 것이 없어 절에 맡겨졌다고 했다. 적막 산속에 청, 소년기를 보낸 정법이 여인을 알았겠는가. 엄한 계율로 가르쳤던 희랑 큰스님이 돌아가시고 당연지사 차례로 자기가 대를 이어 주지가 되어야 마땅하다는 걸 알았을 것인데 희랑선사가 정법의 법력이 약하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기에 마지막 유언으로 일현을 주지로 천명 하는 바람에 속으로 정법은 너무나 화가 나 중이고 뭐고 떠나고 싶었다. 여직 공부한 것에 억울하여 울분을 누르지 못하는 자신이 더 화가 났다. 그래도 의지하고 살았던 정을 생각하여 큰스님 다비식이 끝나면 떠나리라. 큰스님 마지막 가는 길에 그러면 안 될 것 같아 그 힘에 울분을 내리고 참았다. 선사의 다비식은 여러 날이 걸렸다.

  세여인은 희랑선사가 입적하고 다비식까지 절 안에 모든 책임을 도맡아 거들며 집에 내려가지 못하고 안채의 모든 일을 책임 의식으로 하게 된 것이 너무 고맙고 좋아서 몸을 아끼지 않았다. 평생 한 번 만날 수 없을 큰일에 동참하는 자체가 자랑스러웠다. 언제부턴가 해인사 살림을 맡아 보아온 불, 여인은 어려서부터 총명하였고 집에서 언문을 깨우쳐 고려의 여성답게 대가 집 자손과 혼인하여 자식 낳고 허물없이 사는 넉넉한 집안의 여인이었다. 어쩐 일인지 딸만 났고 아들이 없어 점집에서 말하는 대로 부처의 원력으로 아들하나 점지해 주기를 간절히 바라며 승가의 일을 도왔던 것이다. 해인사에 불사가 있을 때 마다 솔선하여 금전과 쌀을 아끼지 않고 도우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 마침 달거리도 끝난 상태라 가벼운 기분으로 큰일을 도울 수 있다는 것에 모두가 부처님의 은혜라고 자청하면서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고 큰일을 치루고 있었다.

  희랑 선사의 다비식이 시작 되었다. 용머리를 풀어 날리는 검은 연기는 바람이 마음대로 불길을 이쪽저쪽으로 날려 하늘을 향해 오른다. 모여 섰던 많은 사람들이 선사의 왕생극락을 염원하는 염불소리로 산천을 울렸다. 불꽃이 밤이 이슥하도록 타 오르다가 수그러지고 있다. 시간이 오래된 관계로 모였던 사람들은 거의 마을로 내려가고 귀하게 걸음한 정계의 사람들도 일현과 정법에게 그동안 후덕을 치하 하며 떠났다. 마을사람 몇 그곳을 지킬 의무를 발휘하여 밤을 새워야 한다는 책임감으로 아직 타다 남은 불길을 관리하고 있었다.

  희랑선사는 신라가 망하고 새 고려가 탄생하는 혼란한 시기에 나라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을 어찌하지 못하고 해인사에서 출타하지 않았다. 고려의 출현은 선사를 슬프게 하였다. 시절이 바뀌고 고려왕건의 시대가 정착되면서 난데없이 해인사를 찾아온 최치원의 아들 동희를 만나면서 불교의 인연을 느꼈었다.

  희랑선사가 입적할 때를 기다리며 뒷전에 물러앉아 있을 때 동희가 머리를 삭발하고 일현이라는 불명을 들고 나타났다. 그를 기다린 선사는 마음이 놓였다. 주지 자리를 노치 않고 지켜온 것도 그런 속의 까닥이었다. 그 이후 3년 만에 희랑선사는 입적하였다.

  그 오랜 세월동안 선승으로 살았던 희랑선사의 법음의 결과로 다비식에 참석한 귀빈들이 하나둘 만장을 들고 모여들었던 것이다. 울긋불긋한 만장의 수가 골을 외워 꼬리를 물고 돌아갈 때는 산천이 다 춤을 추었고 모인사람들 마음도 슬픔을 잊은 호화로운 광대들 놀이 같았다. 다비의 불꽃이 한풀 꺾이어 무아의 침묵 속에서 염불소리도 끝났다.

  무심마저 잃어버리고 서 있던 사람들은 옥음으로 새겨 가슴으로 들었던 희랑선사의 말씀을 기억하여 만장에 써 넣어 흔들고 흔들었다. 새벽 동쪽 하늘이 붉어질 무렵 한 사람이 들고 있던 만장을 불 속에 던졌다. 진리의 말씀은 선사와 함께 불속에 던 저져 자자들던 불꽃이 다시 활옷처럼 한 바탕 주위를 밝혀 일어나 날리더니 대나무 만장에 매달렸던 진리의 글 귀 한마디 한마디가 바람으로 오르는가 싶더니 희랑선사의 복음소리인 듯 불꽃을 피웠다.

  그 곳을 떠나지 않고 아쉬운 듯 바라보던 정법스님의 얼굴에 불꽃이 반사 되면서 붉어진 얼굴에 슬픔이 가득했다. 희랑선사와 함께했던 지난 어린 시절을 상기하며 불꽃의 아름다움에 마냥 서 있었다. 잠시 잠깐 미운 마음을 가지고 해인사를 떠나리라 마음먹었던 자신이 부끄러웠다. 마음을 다스리고 보니 스승의 고마움과 떠나보내는 이별자리에 서있는 자신이 슬펐다. 아름답게 불꽃 속으로 사라지는 선사의 인생이 정법스님과 함께 하였다는 자부심은 그 누구보다 이별의 서러움은 아쉽고 그리워 눈물이 흘렀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참회 하였다.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지난 날 흔적을 더듬어 보았다. 어린 시절 부모를 떠나 스승님의 훈계를 받으며 배웠던 부처의 법을 그릇이 못되어 받지 못했음을 인정 하여야 했다. 일현 스님을 미워하지 않을 것이라고 큰 스님 다비식 날 맹세 하였다. 가슴이 텅 빈 것같이 가볍다. 미웠던 마음을 벗어내니 갑자기 소피가 마려웠다. 정법스님은 눈물로 붉어진 얼굴을 두 손으로 부비며 그들 속에서 빠져나와 해우소를 찾았다. 얼마를 참았는지도 모를 소피를 시원하게 보고 돌아섰다 .우물가로가 손을 씻었다. 안으로 보이는 희미한 불빛을 따라 가던 정법의 눈길이 멎은 곳에 뒷설거지를 혼자서 하고 있는 여인의 뒤태를 보았다. 모두가 다비식에 나와 있을 법 했는데 불, 여인이 혼자서 뒷정리를 하느라 그곳에 있었다. 평소에 불, 여인을 볼 때 정법스님은 시대를 앞서가는 여인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일 처리하는 솜씨가 남정네 보다 활달하여 절 내부에서도 그 여인이 절에 올라오는 날을 세며 기다릴 정도로 그녀가 절에 출현하는 날에는 조용하였던 절 내부가 활기에 차 있는 날이다. 그러한 불, 여인을 정법은 마음속으로 좋아했었다. 평소에는 서로 마주 처 지나가도 눈길 한번 주지 못했지만 가끔씩 그녀에 대한 마음을 감추어야 했었다.

  희미한 불빛 속으로 자신도 모르게 다가가고 있었다. 일현 과는 아무런 허물이 없이 대화를 주고받는데 정법스님은 자기의 마음을 들킬까 그녀를 바로 처다 볼 수 없어서 안타까워 했었다. 그녀에게 속은 들키지 않았지만 안으로 흔들리는 속마음을 다잡는데 공부가 되었던 것 같았는데 이 깊은 밤에 그녀 곁으로 다가가고 있었다.

  모두가 다비식에 참석하여 선사의 마지막 길을 슬퍼하며 밤을 새울 것이다. 오직 불 여인이 그곳에 가지안고 뒷설거지를 도맡아 하고 있다. 고마운 마음에 인사라도 해야지, 하며 용기를 내어 가까이 다가갔다. 갑자기 가슴이 방망이질 한다. 얼굴이 붉어진다. 그런 자신이 무슨 짓이라도 한다면 불 여인은 다시는 승가의 마당에 들어서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내 친 걸음은 그녀 앞에 섰다. 주위는 어둡고 깊었다.

  “으 아~아”

  무심으로 일하던 불, 여인은 깜짝 놀랐다. 어두운 곳에서 갑자기 나타난 검은 그림자에 소스라쳐 넘어지려던 몸을 비틀거리며 중심을 잡느라 애를 섰다. 그녀는 자기 때문에 정법스님이 놀랐을까 더 걱정이 되어 웃으며 자리를 비켜 주었다.

  “여기와 좀 쉬세요, 힘드시죠?”

  서로 처다 보며 웃었다. 어둠속에 비추는 그녀의 하얀 이가 유난이 눈부시다. 주위 분위기도 갈아 앉은 적막한 산골에 이를 드러내 웃는 여인을 떨리는 가슴으로 처다 본다. 여인은 자리를 마련하느라 돌아섰다. 돌아선 여인의 태를 보고 있으려니 마음에만 두었던 여인에 대한 그리움이 속구 친다. 망설이면 기회는 없다. 돌아서 있는 여인의 손을 잡았다. 어디서 그러한 용기나 일어났는지 생각할 겨를이 없다. 오래도록 참아왔던 여인에 대한 연정이 가슴에서 폭 팔 한다. 가슴에서 나는 소리가 천둥번개 같이 귀를 때린다. 여인이 들으면 안 되었다. 억지로 태연을 가장한 부드러움으로 그녀의 손을 끌고 어두운 밖으로 나왔다. 어디로 갈 것인가, 머리로는 이미 정한 곳이 있었다. 그곳에 가면 그녀와 밀어를 나누어도 아무도 모르는 장소가 이미 있었다. 아무런 말도 없이 그녀의 손을 꼭 쥐고 걸었다. 여인은 평소에 정법을 믿었기에 그 순간도 아무런 생각도 의심도 머리에 떠오르지 않았다.

  해인사 깊은 산 주위는 희랑선사와 오래도록 함께 지내왔던 주위의 모든 것 들이 다비식을 지켜보는 사람과 같이 신들도 구름처럼 모였으리라. 하늘 신, 허공 신, 나무 신, 땅 신, 삼신 신, 바람 신, 바위 신, 길 신, 여인을 탐내는 신, 사랑하고 싶은 신이 누구라 할 것 없이 신이란 신은 희랑선사의 법음을 들으려 그 자리를 지켜보고 있었으리라. 정법의 마음에 신이 개입된 것이 분명하다. 불, 여인의 마음에도 그러 했으리라. 아무런 경계를 느끼지 못하게 압력의 힘이 작용 했으리라. 그들은 다비식이 끝나고 선사의 비석이 세워질 때의 시간까지 매일저녁 만났다.

  다비식의 모든 행사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온 불 여인은 늘어져 정신을 잃고 쓰러져 자고 있었다. 집에 돌아와 늘어진 불 여인의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남편이 안쓰러운 생각이 들어 자리를 펴고 그녀를 편하게 하였다. 자고 있는 부인의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기다렸던 며칠이 아쉬워 그날 밤 그녀를 품었다. 여인은 꿈속에서 지나간 며칠 밤을 회상하며 남편인지 정법스님인지 가름하기 어려웠어도 예외 없이 남편은 며칠 만에 부인을 흡족하게 마음껏 안아 주었다. 그 이후 여인은 달거리가 없었고 3개월이 되자 태기가 있어 입덧이 심했다. 자식을 못 볼 나이려니 생각했었던 여인은 열 달 후 아들을 낳았다. 열 달 동안 여인은 배안의 씨앗을 낙태를 시켜 보려고 며칠을 굶어 보기도 하고 높은 곳에서 뛰어 내려 보기도 하면서 못된 짓을 다 생각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 남편의 열정에 동조하였던 밤을 생각한다면 모두가 부처님의 가피라는 엉뚱한 마음을 주입시켜 새 생명에 대한 고귀함을 지키기로 마음의 노력을 하였다.

  딸이든 아들이든 틀림없이 아비를 닮을 것인데 이 노릇을 어찌하나 싶어 얼굴이 바싹 말랐다. 태어난 아들은 다행히 어미를 닮아 집안에 경사가 났다고 잔치를 할 정도로 새끼를 꼬아 금줄을 달았다. 처마 밑에는 빨간 고추가 주렁주렁 열렸다. 마지막 힘이 가해졌을 때 이미 아기 나오는 길은 세 딸로 하여 닥아 논길이 기에 배속의 아기는 쉽게 세상 밖으로 나왔다. 지켜보던 진정 어머니가,

  “야! 야!! 아들이다. 아들이야! 어미야, 너를 쏙 빼 닮았구나, 몇 번을 변하는 것이 아기라는데 아비를 안 담고 너를 닮아 다야!”

  하던 친정어머니의 말이 그녀로 하여금 시름을 걷어갔다. 함께 했던 법, 승, 두 여인의 의심을 피해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은 또 다른 그리움으로 그녀 얼굴 붉히는 일이다. 아무튼 귀한 아들을 얻은 집안은 며칠을 두고 사람들이 구경 하려 들고 날고 하였다.

  잘도 생겼네, 그리도 애타게 기다리더니 아들을 낳았어. 시어머니의 그 말에 며느리 얼굴은 또 붉어졌다. 아기를 보고 있으려니 정법에 대한 그리움이 사무친다.

  배가 불러 오는 동안 그녀는 안절부절 마음을 진정할 수가 없었다. 이제 틀림없이 쫓겨 날 것이라고 친정부모 형제에게 얼굴에 똥칠을 하였다고 손가락질을 받을 생각을 하니 죽고 싶었다. 그러나 마음대로 끊을 수 없는 것이 목숨이라, 그길로 해인사에 가는 발길을 뚝 끊어 버리고 집안일에 여염하였다. 정법을 1년 동안 못 보았다. 이제 가슴 조이던 일도 해결되다보니 엉뚱하게 그가 그립다는 생각이 들었다. 삼총사 두 여인이 일주일이 지난 어느 날 불, 여인의 아들을 보러 들렀다. 아기의 옷 한 가지씩 들고 와 귀한 집 귀한 자손이 새 끈 거리며 자고 있는 갓난아기의 얼굴을 이리저리 살폈다.

  형님, 큰일을 했습니다. 두 사람은 서로 처다 보며 아기를 뚫어 져라 바라보았다. 형님을 쏘옥 빼 닮았네, 갓난아기가 이목구비가 뚜렷한 것이 한 인물 하겠어요! 형님. 해인사에 열심히 다닌 복이지요. 이제 아기 키우려면 한동안 올라가지 못하겠네. 두 여인은 서로 처다 보며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아기얼굴을 뚫어져라 관찰하였다.

  그들을 통해 정법의 안부를 듣고 싶어서다. “고마워, 와 줘서.” 못가는 대신 자네 둘이 열심히 다녀오라고 하면서 두 여인의 얼굴을 똑바로 처다 볼 수가 없다. 아들이 반가운 것이 아니라 가족에게 죄 지은 일을 생각하면 가시방석에 앉아 사는 게 사는 것이 아니었다. 아기가 생긴 것을 알았을 때 정법의 아이라는 걸 알고 천정 벽력같은 이일을 어찌 할 것인가 고민하여 입덧이 심하지도 않았는데도 죄의 올가미에 걸려 제대로 먹지를 못했었다. 그동안 해인사에는 발길을 끊었지만 지금쯤 아들을 낳았다는 소식이 올라갔을 것이다. 정법은 소문을 듣고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니 가슴이 두근거리고 그리움에 손끝이 저리다. 정법도 그러 할 것이다.

  정법은 그날 저녁에 자기가 행한 행동에 대해 반성보다도 자신에 대해 대견하다는 생각으로 기쁨의 웃음이 떠나지를 않았다. 그러나 그러한 마음을 감추고 여인에 대한 신비함을 되새겨 보느라 억지로 입술을 물었다. 어둠속에서 여인의 살을 더듬던 그 기막힌 장면이 정신을 못 차리게 하였다. 큰스님의 일을 책임지고 마무리 지어야 하는데 제 정신을 차릴 수 없어 빨리 또 밤이 오기를 기다렸다.

  “저를 용서 하세요. 오래전부터 당신을 좋아 했습니다. 저의 마음을 받아주십시오.” 불 여인에게 내 뱉었던 소리를 되씹어본다. 꿈같은 밤이었다.

  불 여인은 영문도 모르고 정법 손에 이끌려 어딘지 당도한 곳은 바닥이 평평한 넓은 곳이었다. 달이 있었는지 숲속은 그늘이 지어져 있었지만 해인사 마당만 한 숲속 한 곳에는 둘레가 훤히 밝아 앉아 놀기에 좋은 곳으로 보였다. 정법은 일어나는 욕정을 참을 수 없어 이런 저런 절차에 기운을 소모할 시간이 없었다. 여인을 눕혔다. 사내의 힘에 뒤로 넘어진 여인은 무방비 상태였다.

  불, 여인은 아무런 경계도 없이 정법 손에 잡혀 가면서도 무심으로 생각하였다. 무슨 속마음을 털어 놓을 것이 있나보다. 그런 아니한 마음으로 그가 끄는 대로 따라 갔었다. 평소에 일현과 가까이 지냈지만 정법이 주지의 차례에서 밀려났을 때 정법에 대한 연민이 있었다. 끌려가면서 지나간 일이 생각이 났다. 가던 발길이 멈추는가. 했는데 정법이 무지막지하게 힘으로 다리에 촉을 걸어 불, 여인을 넘어 드렸다. 순간 버텨보려고 힘을 써 보았지만 이미 속살을 더듬는 손길에 뜨거움을 느꼈고 거칠어 옷이 라도 찢어 버릴 것 같은 불같은 행동에 평소의 모습이 아닌 정법에 놀라 소리라도 지르고 싶었다. 소리를 지른다고 듣는 이도 없으려니와 누구에라도 발각이 된다면 창피한 것은 자기라는 급박함 상황에서 머리가 잘 돌았다. 이상하다고 생각이 드는 것은 아무런 저항의 힘을 가하지 않기로 무엇인가 가담하고 있는 것 같았다.

  정법은 어려서 산에 들어와 중노릇 하느라 여자의 속살 한번 만져보지 못하고 산속에서만 살았으니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힘을 주어 봤자 소용이 없을 것 같아 그냥 수능하기로 마음먹었다. 남편밖에 몰랐던 여인이 갑자기 덤벼드는 사내의 힘을 어찌 감당할 것인가. 꿈속에서도 생각해 보지 못했던 이 순간을 그녀는 그리 생각하기로 마음을 내렸다. 그런다고 성욕에 굶주린 사내를 밀어낼 힘도 소리를 지른다고 뛰어올 사람도 없다는데 다른 방도도 없었다. 그들은 그렇게 산천초목이 희랑선사의 마지막 길을 슬퍼하는 가운데 또 하나의 생명을 잉태하려는 시도에 적극 게을리 하지 않았다.

 

 
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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