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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현대물
슈퍼비틀
작가 : 백점토끼
작품등록일 : 2019.8.31

슈퍼비틀이라는 사슴벌레에서 발견한 당뇨병 완치제(GLP-K2 유사체)를 강탈하려는 일본과 한국 정보기관의 흥미진진한 대결이 펼쳐집니다.

 
제28화 - 탈출
작성일 : 19-10-18 16:29     조회 : 201     추천 : 0     분량 : 80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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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정은 식당에서 최대한 먼 곳을 향해 달려가다가 눈앞에 보이는 시내버스에 무작정 올라탔다. 손에 잡히는 지폐 두 장을 꺼내 시내버스 요금 통에 집어넣고는 거스름돈을 받을 생각은 하지도 못한 채 뒤쪽으로 가 앉았다. 귓가에는 아직도 총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핏자국이 난무했던 조금 전의 상황이 눈앞에 선했다. 창정은 시내버스가 빨리 그곳을 벗어나기만을 간절히 바랬다. 대한민국에서 총격전이라니 창정은 믿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눈앞에서 일어난 생생한 상황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만 했다. 창정은 시내버스가 달리는 동안 창밖을 바라보지 못했다. 누군가가 시내버스를 잡으려고 달려올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시내버스가 정차할 때마다 자신을 노리는 낯선 남자가 탈까봐 두려움에 떨었다. 창정은 식당에서 달아나려던 순간 눈앞에서 마주친 두 명의 남자가 누구였는지 궁금해졌다. 그들은 자신에게 총을 쏘려한 게 아니라 자신을 죽이려던 세 명의 남자를 노린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사슴벌레를 빼앗으려는 또 다른 무리가 있었다고 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얼굴은 물론이고 온몸이 쑤시고 아파왔다. 구역질이 날 만큼 심장이 울렁거렸다. 피곤했지만 잠을 청할 수 없었다.

 시내버스는 종점을 향해 계속 달렸다. 하염없이 창밖을 바라보고 있는데 공중전화부스가 스쳐 지나갔다. 창정은 갑자기 아내가 생각났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뒷주머니에 손을 갖다 댔는데 휴대폰이 없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경산에서 그놈들에게 납치된 이후로 휴대폰이 어떻게 되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삐!"

 창정은 바로 일어나서 하차버튼을 눌렀다. 잠시 후 버스에서 내린 창정은 조금 전 보았던 공중전화 부스로 뛰어갔다. 공중전화 부스로 들어가 주머니를 뒤졌는데 만 원짜리 한 장밖에 없었다. 근처에 있는 편의점으로 달려가 껌을 하나 사고는 동전을 바꿔서 돌아왔다.

 "뚜- 뚜- 뚜- 뚜-"

 늦은 밤이라 모두 자고 있는지 전화를 받지 않는다. 창정은 재발신 버튼을 누른 후 다시 전화를 걸었다.

 "뚜- 뚜- 뚜- 철컥! 여보세요?"

 잠에서 깬 아내의 목소리였다.

 "나야 여보!"

 "수영아빠? 어디에요 지금? 집에 안 오고 뭐하는 거야?"

 "응! 그, 그렇게 됐어. 근데 혹시 누구 찾아온 사람 없었어?"

 "예, 없어요."

 "여보! 빨리 수영이 깨워서 집에서 나가."

 "아니 왜요?"

 "그럴 일이 있어. 설명할 시간 없으니까 일단 집에서 나가."

 "이 밤중에 어딜 간단 말이야. 내일 출근은 어떡하고?"

 창정은 모든 상황을 설명할 수 없어 답답했고 화가 치밀어 올랐다.

 "말 좀 들어 제발! 다 죽고 싶어 지금? 날 그렇게 못 믿어? 빨리 좀 가란 말야! 제발!"

 창정은 공중전화 부스가 떠나갈 듯 고함을 치며 다그쳤다.

 "아, 알았어요."

 집사람은 생전 처음 들어보는 창정의 고함소리에 반쯤 울음 섞인 목소리로 대답했다.

 "장모님댁이나 고모님댁으로 가요 어서. 참 그리고 아무 전화도 받으면 안 돼. 절대 받으면 안 돼. 알았지?"

 "예!"

 늦은 밤에, 영문도 모른 채 집에서 나가야 하는 아내는 막무가내로 쏘아붙인 자신을 원망하고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창정은 아내의 직장이나 수영의 유학보다 먼저 지켜야 할 게 있었다. 사람이 죽어나가는 마당에 그 까짓 게 무슨 소용이냐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든지 자신이 겪은 일을 똑같이 겪게 된다면 같은 심정으로 말을 했을 것이다. 창정은 수화기를 내려놓고 공중전화 부스 안에서 밖을 살펴보았다. 감시하는 사람은 없는 것 같았다. 가족들을 대피시켰으니 일단 큰 불을 껐다는 생각을 했다. 공중전화부스 밖으로 나오니 싸늘한 기운이 느껴졌다. 어깨는 오그라들고 허기가 졌다. 길 건너 찜질방이 보였다.

 "얼마죠?"

 "싸우나 5,000원, 찜질 8,000원요."

 주머니를 탈탈 터니 8,550원이 나왔다. 창정은 황토색 찜질복을 들고 3층 남자 목욕탕으로 올라갔다. 3층에 오른 후 창정은 목욕탕에 바로 들어가지 않고 숨을 죽여 아래쪽을 내려다봤다. 찜질복을 입고 나오던 사람들이 자신을 이상한 눈으로 쳐다봤지만 마지막으로 한 번 더 확인을 해야 안심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30초 정도 아래를 지켜보았는데 따라 올라오는 사람은 없었다. 창정은 안심하고 남자 목욕탕으로 들어갔다. 라커를 열고 옷을 벗었다. 실밥이 터지고 군데군데 먼지가 묻은 옷을 보며 그 동안 고생했던 일들을 잠시 떠올랐다. 팬티를 벗는데 오른쪽 허벅지가 불편했다. 허벅지 바깥쪽에 작고 빨간 상흔이 있었는데 난리 통에 뾰족한 물건에 찔린 것 같았다. 팬티를 코에 갖다 대니 지린내가 진동을 했다. 속옷을 언제 갈아입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오랜만에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근 후 4층 찜질방으로 올라왔다. 삼삼오오 모여 있는 가족들을 보니 아내와 수영이가 보고 싶었다. 설움이 밀려왔다. 창정은 자신이 가족과 함께 있을 자격도 없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참 가족들을 보살피고 챙겨야 할 나이에 이러고 돌아다니는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졌다. 넓고 따뜻한 바닥에 앉아 구운 달걀을 까먹고 음료수를 마시며 웃고 떠드는 저 사람들에게 더 이상 무슨 금은보화가 필요하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황토방, 보석방, 숯가마……. 잠을 청할 곳을 찾아 두리번거리고 있는데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이런 상태로는 도저히 잠이 오지 않을 것 같았다. 그 지독한 놈들이 하루 종일 한 끼도 안 먹이고 자신을 괴롭혔다는 생각하니 잘 죽었다는 말이 입에서 절로 나왔다. 넓은 홀 한쪽에 포장마차처럼 생긴 간식코너가 보였다. 10살쯤 되는 꼬마가 엄청난 소리를 내며 라면가락을 입안으로 빨아 당기고 있었다. 오뎅 500원, 구운 달걀 3개 1000원, 컵라면 2000원, 김밥 2000원, 냉커피 2000원, 냉녹차 2000원, 감식초 2500원……. 입에 침이 고여 미칠 것 같은데 주머니 속에 있는 550원으로는 배를 채울 수 없었다. 창정은 잠시 고민하다가 구운 달걀을 하나 사고 오뎅국물을 얻어 먹는 것이 최선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오뎅을 하나 먹어버리면 구운 달걀은 맛을 볼 수 없기 때문이었다.

 "아줌마! 저 계란 얼마죠?"

 창정은 구운 달걀 3개 1000원이라는 메뉴를 보고도 일부러 물어봤다.

 "구운달걀예?"

 "아! 구운달걀이구나."

 "여기 적혀 있잖아예. 3개 1000원."

 아줌마는 다 적혀있는 걸 왜 물어보느냐는 듯 가격표를 가리키며 창정에게 말했다.

 "음, 저거 낱개로는 안 팔아요? 저희 집 갓난 애기가 먹고 싶다 하는데 3개는 너무 많아서요."

 "예? 갓난 애기가 달걀을 먹어예?"

 "아! 애기가 아니고 꼬마예요. 다섯 살짜리. 애들이 참 빨리 크더라구요."

 "한개 오백원예."

 "예? 3개 1000원인데?"

 "원래 한개는 안팔거든예"

 창정은 500원을 내밀었다. 아줌마는 창정의 얼굴은 쳐다보지도 않고 500원을 받아 양철로 된 노란색 통에 툭 던져 넣었다. 창정은 의자에 앉아 구운 달걀 껍질을 깠다. 껍질의 크기와는 달리 내용물은 작게 쪼그라들어 있었다. 게다가 공기주머니가 있는 부분은 누가 베어 먹은 듯 심각하게 함몰되어 있었다. 창정은 아쉬움을 달래려고 아줌마의 눈치를 한번 본 후 깨소금을 푹 찍었다. 그리고 한 입 깨물었다. 혓바닥에 닿은 달걀덩어리는 약간 비릿한 향이 나는 듯 했지만 씹으면 씹을수록 구운 달걀 특유의 구수한 감칠맛이 살아났다. 창정은 달걀이 분해되지 않고 계속 입안에 머물러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꼬마 준다카더만……."

 아줌마는 퉁명스럽게 말했다. 창정은 고개를 푹 숙인 채 그냥 계속 달걀을 씹었다. 목이 메었다.

 "저기 사장님!"

 "와예?"

 "오뎅국물 조금 먹으면 안 되나요?"

 "오뎅을 사야 먹을 수 있어예."

 창정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남은 달걀을 깨소금에 다시 푹 찍어 입안에 넣었다. 창정은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달걀의 잔해를 다시 꺼집어내어 씹고 또 씹었다. 그 와중에 옆에 있는 꼬마는 제 머리만한 새우탕 컵라면 통을 붙들고 엄청난 흡입음을 내며 국물을 쪽쪽 빨고 있었다.

 "꼬마야!"

 꼬마는 국물을 끊고 창정을 쳐다봤다. 창정은 언젠가 컵라면 용기를 전자레인지에 돌리면 발암물질이 생긴다는 기사를 본 기억이 났다.

 "너 큰일 나! 뉴스 못 봤어? 컵라면 그릇에 발암물질이 많아서 국물 마시면 안돼요. 선생님이 이야기 안 해줬구나?"

 "안 해줬어요."

 "큰일인데? 너 그거 많이 먹으면 머리 다 빠져서 대머리 된다고 방송에 크게 나왔어. 내 친구들도 몇 명이나 대머리 됐는데? 너 어릴 때 특히 조심해라? 대머리되면 여자 친구들도 싫어하거든."

 창정은 아무 이상이 없는 컵라면 용기가 발암물질이 되고 발암물질이 라면국물이 되는 새로운 공식을 만들어 꼬마를 위협했다. 꼬마는 창정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컵라면을 천천히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창정은 꼬마가 포장마차에서 멀어지는 것을 확인한 후 새우탕 용기를 집어 들고 국물을 들이켰다. 짭쪼롬한 해물 맛이 입 안 가득 퍼졌다. 콧구멍 으로 시원한 새우향이 밀려 들어왔다. 정말 황홀했다. 창정은 수영에게 이렇게 맛있는 새우탕을 왜 먹지 못하게 했는지 반성하지 않을 수 없었다. 국물을 다 마시고 컵라면 용기를 내려놓는데 아줌마가 창정을 쳐다보고 있었다. 포장마차에서 걸어 나오는 동안 창정은 뒤통수가 화끈거렸다.

 창정은 이 곳 저 곳을 기웃거리다가 보석가마로 들어갔다. 황토방과 숯가마는 너무 뜨거워서 잠을 잘 수 없었다. 보석가마에는 사람도 거의 없고 온도도 적당했다. 목침을 베고 바닥에 누우니 등짝이 따뜻해져 왔다. 마음 편히 다리를 쭉 뻗고 누워있다는 게 꿈만 같았다. 천장엔 자수정, 홍수정, 옥, 비취 등 온갖 원석들이 박혀 있었다.

 '나는 왜 보석이 되지 못했을까?‘

 공중전화에서 아내에게 큰 소리를 친 일이 생각났다. 아내와 수영에게 따뜻한 찜질방에서 도란도란 이야기 나눌 일상을 주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밀려들었다.

 '그냥 다니던 직장이나 열심히 다닐 걸…….'

 행복은 멀리 있지 않다는 말이 실감났다. 아침에 일어나서 직장에 가고, 저녁에 퇴근하고, 주말에 가족과 찜질방에 와서 쉬는 것은 자신이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아무리 길어도 백년도 살지 못할 거면서 꿈이니 이상이니 손에 잡히지도 않을 성공을 쫓다가 결국 가족까지 잃을 뻔 했다. 아내와 수영이가 다른 곳으로 잘 갔을지 궁금했지만 쏟아지는 피곤을 감당하지 못하고 잠이 들었다.

 

 * * *

 

 박문석 팀장은 가쁜 숨을 꾹 참으며 신주쿠스시로 들어갔다. 자세를 낮춰 식당 안 이 곳 저 곳을 권총으로 겨누었다. 식당 안은 쥐 죽은 듯 조용했다. 홀에 하정욱 요원이 의식을 잃고 쓰러져 있는 게 보였다. 하정욱 요원의 주변엔 피가 흥건했다.

 "안쪽! 어떻게 됐어?"

 "……."

 "김광진?"

 "……."

 다른 두 요원들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박팀장은 예감이 좋지 않았다. 홀에 있던 하정욱 요원은 이미 숨을 쉬지 않았다. 식당 안 테이블과 기둥을 은폐물 삼아 주방으로 진입한 박 팀장은 주방 안쪽 입구에 쓰러져 있는 두 요원을 보았다. 그리고 먼발치에 쓰러져 있는 세 남자도 확인했다. 뒤따라온 요원들에게 숙소 쪽을 조사하라고 명령한 후 박팀장은 요원들의 생사를 확인했다.

 "야! 김광진! 정신차려!"

 "……."

 "이규진! 이규진!"

 "……."

 박팀장은 두 요원의 목에 차례대로 손가락을 갖다 댔다. 김광진 요원은 사망한 듯 보였고 이규진 요원의 맥박은 약하게 뛰고 있었다.

 "규진아! 정신차려! 이규진!"

 박팀장의 소리를 들은 듯 규진은 무언가를 말하려는 듯 입술을 움직였다. 박팀장은 규진의 얼굴로 귀를 갖다댔다.

 "한…… 창…… 정……."

 멀리서 앰뷸런스 소리가 들렸다. 박팀장은 이규진 요원을 들쳐 업고 밖으로 뛰어나갔다.

 잠시 후. 신주쿠스시 안쪽 숙소에서 박팀장은 일본 요원들이 남겨 둔 전자장비를 확인하고 있었다.

 "위치추적기인가?"

 "베리칩 같습니다."

 "베리칩? RFID?"

 "위치뿐 아니라 체온, 혈액형, 심장박동수까지 모니터링 되는 걸로 봐서 최첨단 베리칩이 확실합니다."

 박팀장은 지금 순간 위치를 추적당하고 있을 사람은 한창정 뿐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한창정이야! 가장 가까이 있는 지구대 찾아서 빨리 출동시켜."

 박팀장과 요원들은 추적기를 들고 급히 신주쿠스시를 빠져나갔다.

 

 * * *

 

 '활화산찜질방' 1층 입구에는 사복을 입은 두 명의 경찰이 한창정의 사진을 들고 서 있었다. 박팀장과 요원들은 주인의 협조를 구하고 4층으로 올라갔다. 4층 찜질방에 들어서자 창정의 RFID 신호는 더 강하게 수신되었다. 자정을 훌쩍 넘긴 시각이라 찜질방 안은 무척 조용했다. 분식집 아줌마는 양복을 입고 찜질방에 들어온 사람들을 이상하다는 듯 쳐다보았으나 요원들이 조용히 하라는 신호를 주자 금 새 분위기를 알아차렸다. 신호에 따라 발걸음을 옮기던 박팀장과 요원들은 보석가마의 문을 열었다. 커플로 보이는 젊은 남녀와 따로 남자 한명이 잠을 자고 있었다. 박팀장은 코를 골며 혼자 자고 있는 남자의 어깨를 툭툭 쳤다.

 "한창정씨? 한창정씨!"

 창정은 자신이 이름을 몇 번씩이나 부르는 것 같은 소리를 들으며 천천히 눈을 떴다.

 "헉!"

 창정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찜질방 안에서 양복을 입은 세 남자가 창정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거기다 뒤에 있는 한 남자의 손에는 창정이 묶여있던 방에서 보았던 이상한 기계가 들려있었다. 그 놈들과 한패거리가 분명했다.

 "왜, 왜요?"

 "한창정씨 맞으시죠? 저희랑 같이 나가시죠."

 남자는 다른 사람들을 의식한 듯 낮은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왜요. 왜, 왜 이러는데요?"

 "확인할 게 있습니다. 잠시 같이 가시죠."

 남자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뒤에 있던 두 남자가 창정을 좌우로 붙들고 일으켰다. 창정은 저항해 볼 정신도 없이 그들에게 붙들려 보석가마에서 나왔다. 찜질방의 가운데 홀에는 많은 사람들이 제 각각 자리를 잡고 누워 있었다. 가끔 담요를 배에 두른 사람도 있었으나 대부분 찜질방에서 주는 옷만 걸친 채 잠을 자고 있었기 때문에 마치 널부러져 있는 시체들을 보는 것 같았다. 사형 집행 전날, 사형수들에게 최고의 만찬을 제공한다고 했다. 창정은 어제 자신이 먹었던 구운 달걀 하나와 라면국물 그리고 보석가마에서의 짧았지만 따뜻했던 잠자리가 세상이 자신에게 준 마지막 호의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입고 있는 황토색 찜질복은 마치 교수형에 처할 죄인이 입은 수의 같았다. 분식집 아줌마는 '분명히 이상했다!'라는 눈으로 창정을 흘겨보고 있었다. 창정은 아내와 수영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닌지 걱정이 됐다.

 "가족은 살려주세요."

 창정은 오른쪽에서 자신을 붙들고 있는 남자에게 나즈막히 말했다. 하지만 남자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가족은 살려 달라구요."

 창정은 다시 왼쪽의 남자에게 말했다. 하지만 그 남자도 역시 대답을 하지 않았다. 창정은 이들이 새로운 장소로 자신을 데리고 가서 엄청난 고문을 가하고 가족들에게도 같은 고통을 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 때문에 이들의 동료가 죽었고 결론적으로 자신이 속이고 달아난 꼴이 되어 버렸으니 불신이 가득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창정은 가던 길을 멈추고 저항했다.

 "제발 가족은 살려줘요!"

 보석가마에서 말을 걸었던 남자가 뒤에서 조용히 말했다.

 "일단 가서 이야기 하시죠."

 이대로 끌려 나가 찜질방 밖에서 기다리는 저들의 차에 오르게 되면 그때부터는 정말 모든 게 끝날 것만 같았다.

 "불이야! 불이야! 불이야!"

 창정은 뱃속에 있는 모든 기운을 토해내며 '불이야!'를 외쳤다. 순간 찜질방은 아수라장으로 돌변했다. 바닥에 누워있던 사람들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우왕좌왕 탈출구를 찾아 헤맸다. 잠에서 덜 깼는지 균형을 잡지 못하고 자빠지는 사람들도 여럿 보였다. 창정은 윗옷이 훌러덩 벗어 던지면서 자신을 붙들고 있던 남자들을 뿌리쳤다. 가마에서 쏟아져 나오는 사람들 사이에 끼어 아래로 도망치던 창정은 복도 소화전에 있는 비상벨을 눌렀다. 귀를 찌르는 듯한 '따르릉'소리가 찜질방 건물 구석구석 울려 퍼졌다. 창정은 사람들을 비집고 계단을 달려 내려왔다. 남자들은 달아나는 창정을 뒤따랐지만 찜질방에서 먼저 탈출하려는 사람들 때문에 쉽지 않았다. 맨발에 찜질복 바지만 달랑 입은 창정은 죽을 힘을 다해 사람들을 비집고 전진했다. 출입구가 가까워오자 공간이 조금 여유로워졌다.

 "저기! 저 사람! 빨리 잡아!"

 뒤에서 창정을 잡으러 오던 한 남자는 입구에 있던 다른 두 남자에게 창정을 가리키며 고함쳤다. 창정은 인파에 떠밀려 포수 미트에 공이 빨려들 듯 그들의 품에 안기고 말았다. 창정은 발버둥을 쳤지만 뒤따라온 남자들까지 합류하여 찜질방 앞에 세워둔 차에 창정을 태우고 바로 출발했다.

 

 * * *

 

 혼다는 찜질복장을 한 채 사라지는 카니발 승용차를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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