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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해바라기,너에게
작가 : 신정
작품등록일 : 2019.10.18

평범한 여대생 진연두 이야기

 
해바라기,너에게 11
작성일 : 19-10-18 08:56     조회 : 239     추천 : 0     분량 : 12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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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지수가 중요해?”

 대답하지 않았다. 날 노려보다시피 하는 이해민 시선을 똑바로 마주한 채 받아쳤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는 또 다시 놀란 기색을 드러내더니 피식 웃으며 시선을 내렸다.

 “좋아. 알았어. 이지수는 어쩌면, 내가 진연두를 죽이려고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럴 거야.”

 전혀 뜻밖이었다. 생각지도 못한 대답이었다. 잘못 들을 리가 없지만, 정말 잘못 들은 것 같았다.

 ‘그런데 왜?’

 “죽이다니? 날 죽인다고?”

 “그렇게 놀랄 것 없어. 어떤 식으로든 내가 모델을 망가뜨린다거나 하는 일 없을 거야. 죽인다는 표현은 좀 그렇고, 아무튼 그런 짓 따위 절대 저지르지 않을 테니까. 여태 물론 없었고 앞으로도 그런 일은 없어.”

 이해민은 알 수 없는 표정으로 그렇게 대답했다. 그러면서 더 물어볼 거 있으면 말해보라는 듯 입을 다물었다. 여전히 날 뜯어보고 있었다.

 ‘대체 뭘 보는 걸까. 뭘 관찰하는 거지.’

 

 아까부터 계속해서 손 안에 잡고 있던 잔이 이제 미적지근했다. 초침 소리가 유난하게, 똑, 딱, 똑, 딱, 똑. 가쁜 숨을 들이키는 것처럼 시끄러웠다. 난 이해민에게 한 가지 더 물어보려고 입을 열었다. 그런데 초희가 먼저 말했다.

 “연두야, 우리가 온….”

 “진연두, 더 없어?”

 “그만 해.”

 약간 화난 기색인 초희를 향해 이해민은 무표정한 얼굴 그대로 목소리 또한 그렇게 말했다.

 “아직 몇 개 더 있는 것 같은데.”

 저 목소리, 신경 쓰였다. 확인하고 싶다는 말 궁금한 거 아직 남아있다는 말은 정말이었다. 바싹 마르는 목이 마치 타는 듯해서 미지근해진 잔을 들어 한 모금을 들이켰다. 쓰다. 정신이 바짝 들도록 쓴 맛이었다. 잔을 가만히 내려놓고, 차 세 잔 사이 가운데에 놓여있는 상아를 집어 들었다. 난 오른손에 들린 상아를 식탁 위에 대고 세운 다음 겉표지를 넘겨보았다. 그런 내게 이해민이 물었다.

 “근데 그걸 왜 네가 갖고 있어? 원래 연구실에 있었는데.”

 “연구실에 있었다고?”

 “응. 원래 연구실에 있었어. 진짜 이걸 어디서 어떻게 얻은 거야? 네가 들어와 가져갔을 리는 없는데. 지수가 갖다 줬을 리도 없고. 설마 박사님이? 아니지. 그럴 리가 없어. 연두야 정말, 이 책 어디서 어떻게 구한 거야?”

 초희는 정신이 없어보였다. 나와 눈을 마주치며 고개를 갸웃거리며 홀로 묻고 대답하고 다시 되묻고는 이해민을 쳐다보더니 시선을 내리깔았다가 다시 날 보았다. 그러더니 잔을 들어 한 모금 마시고는 잔뜩 표정을 찡그렸다. 그런 그녀에게 말했다.

 “여기 나오는 상아가 몇 번째 상아인지 말해줘.”

 고개 돌려 이해민을 쳐다보았다. 그러자 마치 기다리고 있던 것처럼 이해민은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대답해주었다.

 “서지은 박사님 일지에 등장하는 ‘상아’ 말하는 거지? 알다시피 연구모델이고, 스무 번째이기도 하고 스물여섯 번째이기도 해.”

 연구모델이라는 단어가 귀에 꽂혀 들어왔다. 분명 그는 좀 전에 스스로 모델을 망가뜨리는 일 따위 절대 없을 거라 말했다.

 “근데 그 ‘연구모델’이라는 게 대체 뭐야?”

 짐짓 놀라는 표정. 이해민은 눈을 크게 치켜떴다. 초희는 왠지 모르게 불안해 보이는 모습이었다. 여전히 잔은 미지근한 상태였다. 내 손과 비슷한 온도로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았다. 반 모금을 다시 한 번, 쓰디 쓴 맛을 들이켰다.

 

 잔을 내려놓으며 찌푸리는 귀에,

 “진연두, ‘상아’에 대해 아는 대로 말해.”

 “‘상아’는 신체이식용으로 제작된 인공뇌의 일종으로 인공뉴런과 칩의 회로연결기술을 일컫는다. 개발자 서지은 박사가 이름을 붙였으며 상아연구에서 연구 개발 중으로 기계와 신체 간 유기적 결합을 전제로 하여 진행되는….”

 몸 전체를 뒤흔드는 딸꾹질과 함께 역한 냄새가 올라왔다.

 

 ‘토할 것 같아.’

 

 까맣게 꺼졌다가 정신이 들었을 때 서있었다. 난 언제부턴가 서있었다. 이해민이 앉아있는 쪽을 쳐다볼 수 없었다. 눈 감은 채 다시 앉아서 고개를 들었다. 천천히 눈을 뜨고, 꺼져드는 목소리로 초희에게 물었다.

 “그럼 대체 그 ‘상아’가 누구지?”

 초희는 가만히 얼어붙은 표정으로 나와 눈을 맞추며 마주보고 있었다. 그녀는 입만 우물거리고 있었다. 이해민이 고개를 돌려 쳐다보면서 몇 마디 할 때까지도 그녀는 아무 말 않고 가만히 있었다. 왠지 말하기를 망설이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내가 말할까?”

 “아니. 아니야. 괜찮아. 내가 말할게.”

 여전히 나는 이해민 쪽으로 고개 돌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머릿속에 떠오르는 바를 말해볼까 고민하고 있었다. 그때 난처한 표정으로 초희가 망설이듯 말을 꺼냈다. 그런데 늘어놓는 말들은 질문에 대한 답이 아니었다.

 “연두야, 상아는 ‘상아연구’ 그 자체나 마찬가지야. 네 말이 맞아. 일종의 인공두뇌라고 할 수 있어. 그러니까, 박사님 일지에 나오는 ‘상아’라면 인공뇌 상아를 이식한 연구모델이라고 할 수 있지.”

 초희 말을 들으면서도 계속 나는 속으로 되묻고 있었다. 대체 내가 왜 이해민 쪽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있는지 왜 이렇게 놀라는지 아깐 왜 충격 받은 채 서있었는지.

 두 사람 모두 주의 깊게 살펴보고 있었다. 난 관찰하는 시선을 느끼며, 입을 꾹 다문 채로 가만히 앉아 뒤이어 들려올 내용을 기다렸다.

 “인공두뇌 ‘상아’를 심은 신체를 간단히 모델이라고 부르는 거고, 네가 아는 상아가 바로 그렇게 탄생된 연구모델 ‘상아’인 거지. 그리고 이 노트에 등장하는 ‘상아’는 그 중 스무 번째 모델인 거야. 상아라는 이름이 중복되어 쓰여서 좀 헷갈릴 지도 모르겠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모델 ‘상아’는 일상에서 불리는 ‘상아’라는 이름 말고도 ‘20J’라는 모델명을 갖고 있었어.”

 “그럼, 스무 번째 연구모델인 ‘상아’는 지금 잘 지내고 있어? 전에 보니까 무슨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는데. 전부터 계속 그게 궁금했거든. 그리고….”

 우물쭈물하고 있으려니 초희가 말해보라고 했다. 하지만 그만두었다. 고개를 내저으며 말했다.

 “아니, 그냥, 상아, 잘 지내냐고.”

 “물론 잘 지내고 있지. 20J에 대한 소식이라면 아마, 누구보다도 네가 가장 잘 알고 있을 거야.”

 어딘가 의미심장한 어조로 대답하는 이해민 목소리를 들었을 때 난 왠지 모를 두려움으로 고개를 푹 숙였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들었다. 굉장히 어색해 보일 것 같았지만 놀란 척하며 말했다.

 “그러니까 그 말은, 내 주변 사람들 중에 스무 번째 ‘상아’가 있다는 뜻이지? 혹시 우리 과 학생 중에 있는 거야? 설마, 이선이?”

 스무 번째 상아일지도 모를 사람들을 떠올리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손에 잡힌 잔 안을 들여다보니, 한 모금 조금 더 되게 남아있었다. 계속 잔을 들여다보면서 기억나는 얼굴이란 얼굴들을 모조리 떠올려보고 있었다. 그런 내 귀로 이해민이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선명하게 흘러들었다.

 

 “진연두.”

 먹먹한 머릿속에 벼락이라도 내리친 것처럼 정신이 번쩍 들었다. 누군가 이름을 이렇게 부를 때면 누구든 어떤 상황에 어떤 시간이든 상관없이, 순식간에 머릿속이 정렬된다. 나란하게 정렬되면서 깨끗해진다. 알 수가 없다. 하지만 무언가 확실해진다.

 

 ‘그러고 보니, 때때로 지수도 나를 저렇게 부르곤 했는데.’

 그렇게 지수가 ‘진연두’라고 확실하고 또박또박한 목소리로 부를 때, 매번 난 몇 초쯤 흐른 후 머릿속 깊이 그 세 글자로 심어 넣듯 뿌리내리며 파고드는 것 같다고 느끼곤 했다. 그리고 그렇게 느끼는 까닭이라면 이름 부르는 목소리가 지수이기 때문이리라고 여기고 있었다. 분명 지수를 대할 때면 알게 모르게 설레기 때문이리라고 믿어왔다.

 두 손을 갖다 댄 잔은 이제 완전히 식어 온기도 빠져나가고 차가워져있었다.

 

 갑자기 내 앞에 앉아있는 두 사람과 나, 식탁을 제외한 집 전체가 반시계방향으로 서서히 돌아가는 듯했다. 그렇게 움직이기 시작한 집에 곧 가속이 붙었다. 점점 더 주변 모두 어지러워할 만큼 계속 빨라지고 있었다.

 핑그르르,

 세상이 정신없이,

 셋이 둘러앉은 탁자를 중심으로 빠르게 돌고 있었다.

 주의하지 않으면 힘없이 떨어뜨릴 것만 같았다. 조심스럽게 잔을 들어 바닥에 남은 차를 입으로 들이부었다. 혀에 일어나는 그 쓴 맛이 어지럽게 돌아가던 것 모두를 순간 붙잡아 세웠다. 그렇게 멈춰서고 나 또한 쓴 맛에 번쩍 붙들렸을 때, 불쑥 내 입에서 말이 튀어나왔다.

 “알겠어. 둘이서 하려던 말, 그러니까, 내가 그 ‘상아’라는 거지? 내가 그럼, 연구모델이라는 말이야? 혹시 내가….”

 불쑥 튀어나온 말을 쉽게 잇지 못하고 있는데, 나를 대변하려는 듯 이해민이 즉각 정리해서 말해주었다.

 “맞아. 네가 그 상아야. 이 책에 나오는 스무 번째 모델 ‘상아’가 바로 ‘진연두’야. 7년 전부터 ‘상아’ 그러니까 20J는 몇 차례 본체에 수정보완 작업을 거치면서 튼튼해지기도 했고 성능도 향상됐어. 그러다 저번에는 몇몇 기능을 추가하면서 본체명이 ‘상아26J’로 바뀌었고, 연구모델도 ‘진연두’로 바꿨지.”

 저 말은, 정말 내가 바로 스무 번째 ‘상아’라는 뜻이었다. 내가 그 ‘상아’였다.

 

 뒤이어 들을 수 있었던 말을 통해 몇 가지 더 알게 되었다. 지수가 연구원으로 있던 시절 5년간 나를 전담했었다는 사실과 엄마로 알고 있는 임희아 박사가 현재 ‘진연두’ 담당자라는 사실 등.

 “그럼 난 왜 17년 동안이나 담당자로서 살피고 딸처럼 여겨 키우다시피 한 서지은 박사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거지?”

 “그건 순전히 이지수 때문이야. 이지수가 담당자로 있을 때 데이터를 삭제해서 그래. 전 담당자인 서지은 박사와 지내면서 축적된 데이터들을 제멋대로 편집해버렸어. 사실 그렇게, 연구모델에 어떤 문제도 일어나지 않도록 데이터를 편집하다니 정말 대단한 성과야. 그 점만은 감탄하고 있어. 하지만 그때 무사히 넘어갔기에 망정이지, 아주 작은 부분이라도 실수했더라면 넌 지금 이 자리에 앉아있을 수도 없었어. 단순입력과 편집은 다르거든. 그 일 때문에 이지수는 확실히 능력을 인정받을 수도 있었지만, 또 그 때문에 네 담당자 자리를 내놓게 됐다고 할 수 있어.”

 텅 빈 듯했던 몸속에 우물거리던 두려움은 어디로 사라져버리고, 어느 순간 난 똑바로 마주보고 있었다. 이해민은 대놓고 마음에 안 든다는 기색을 내비치고 있었다.

 “그때 이지수는, 네 기억을 그렇게 편집해버리고 그 방법에 대해서도 편집한 데이터에 대해서도 아무것도 말할 수 없다고 했어. 그러고는 그대로 나가버린 거야.”

 기분이 좋지 않았다. 낯설고 불쾌했다.

 “혹시 기분 나쁜 거냐? 기분이 나쁘다…. 뭣 때문인지는 몰라도 그렇게 불쾌해할 건 없어. 너 같은 경우 그때 이것저것 또 다른 오류들이 나타나고 있었어. 뭐, 어차피 데이터 편집하는 기술이라면 이지수 없이도 이제 거의 완성 단계니까, 나도 이제 와서 굳이 기분나빠할 필요는 없는 거고.”

 

 더 이상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았다. 물어보고 싶지도 않았다. 두 사람과 나 사이에 거대한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판이 움직여 다른 대륙으로 갈라진 땅위에 마주보고 있는 듯했다.

 ‘인공뇌를 이식해 넣은 연구대상….’

 내리쬐는 태양 아래로 나가 서있고 싶었다. 하지만 날이 흐렸다. 내 입에서 나지막이 한 마디가 흘러나왔다.

 “햇볕 쬐고 싶어.”

 지금 내 얼굴이 어떤 표정일지 알 수 없다. 다만 내가 기억하는 이래로 단 한 번도 지어본 적 없는 표정이라는 것만은 확실했다. 어쩌면 이미 삭제된 데이터가 찌꺼기처럼 남아 흔적으로 어딘가 숨어있는 표정일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런 데까지 생각이 미치자 마치 좁은 틈에 꽉 끼어있는 것처럼 갑갑했고 답답했다.

 마주 앉은 초희는 이제 별 생각도 없고 더 할 말도 없다는 듯 흐린 표정이었다. 그런 초희를 마주 쳐다보고 있다가 문득 생각 없이 내려다본 잔에 아직 반 모금 차게 식은 차가 남아있었다. 손에 잡고 있는 잔으로 완전히 주의를 돌려 식은 차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런데 살짝 불편하게 느껴지는 어조로 말하는 이해민 목소리가 들렸다.

 “햇볕 쬐고 싶다니까 그냥 참고하라고 말해주는 건데, 현재 연구가 진행 중인 모델들은 모두 광합성으로 에너지 합성하는 일이 가능해. 볕을 쬐어 포도당을 만들어내고 내부에 축적해 두었다가 에너지가 고갈된다거나하는 상황에 처했을 때 곧장 생체에너지로 활용할 수 있는 기능을 갖고 있어. 그냥 알고나 있으라고. 네가 너 자신에 대해 전부 알게 됐으니까. 근데 그야 어찌되었건, 우리가 너한테 찾아온 본래 목적도 이제 말할 때가 된 것 같다.”

 

 반 모금 바닥에 깔려 있던 차를 전부 입으로 털어 넣었다. 햇볕 쬐는 일은 ‘본체’에 내장된 기능.

 “얼마 전에 갑자기 쓰러졌던 일, 기억하고 있을 거야. 그건 일단 이식된 본체인 ‘상아26J’에 일어난 오류 때문이야. 많은 연구원들이 이제 네 머릿속에 들어있는 ‘상아26J’가 버틸 만큼 버텼다고들 해. 정말이야. 그 정도면 진짜 오래 버틴 거야. 그다지 좋은 설명방법은 아니지만, 인간으로 치자면 분명하게 증세가 나타났으니 자세한 검진을 하고 그에 따른 치료도 해야 하는 시점이 ‘또’ 왔다는 말이야. 이미 심어 넣은 본체에 대해 그렇게 검사하고 고칠 수 있는 것도 한도가 있어. 근데 넌 이번이 마지막이야. 거의 확실해. 이지수와 임희아 박사를 제외한 연구원 모두는 이번 오류에 대해 그렇게 판단하고 있어. ‘상아26J’는 상당히 오래되었기 때문에, 이러다 정말 갑자기 언제 꺼져버릴지 모르는 일이다. 그래서 위험해. 정말 상아연구로서는 시급하게 해결해야하는 문제지.”

 “그럼, 지수랑 엄마는….”

 “이지수와 네 엄마가 반대하는 건, 네가 사라질지도 모르기 때문이야. 지금 그대로인 너는 죽고 없어질 거라는 말이지. 근데, 진연두. 잘 들어. 내가 장담하는데, 방금 말한 방법을 취한다면 그럴 일 절대 일어나지 않아. 물론 일부 기억에 손상이 있을 수도 있어. 하지만 본체를 신체에서 완전히 적출하자는 것도 아니고 완전히 초기화하는 것도 아니라고. 근데 지금의 네가 사라지는 일이 벌어질 리 없지. 아무도 그렇게 되길 바라지는 않아. 나도 그렇고.”

 

 

 48. 예시N

 

 -지수야.

 “네. 박사님.”

 툭, 뚜, 뚜, 뚜, 뚜, 뚜, 뚜…

 지수는 다른 사람이 아닌 임희아 박사가 쭉 연두 담당자를 맡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다행이고 정말 잘 되었다고 생각했다. 임희아 박사가 연두 담당을 맡은 후부터 이제까지 연두 엄마로서 연두를 잘 키우고 보살펴주고 지켜주었고, 그 자신도 정말 진짜 어머니에게 하듯이 연두 엄마를 믿고 의지할 수 있었다. 특히 연두에 관한 문제라면, 그가 믿고 맡길 수 있고 의지할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통화 중에 전화가 끊어졌다.

 그는 버튼을 누르려고 하다가 그만두었다. 그리고 손에 쥐고 있는 휴대전화를 계속해서 이리 돌리고, 저리 돌리기 시작했다. 소리가 나지도 않았는데 혹시 딴 생각 하다 전화 온 걸 모르고 못 받지 않았는지 확인했다. 시계를 보고, 다시 이리 돌렸다가 저리 돌리기를 반복하면서 휴대전화를 쥐고 있는 손에 땀이 차도록 멈추지 않고 계속했다. 그러다 그렇게 기다리고 기다렸던 벨소리가 흘러나오기 시작했을 때는, 놀라서 그만 바로 전화를 받지 못하고 떨어뜨릴 뻔했다. 그는 손에 꽉 쥐고 있다가 곧 끊어질 것처럼 따르릉 소리가 잦아들 것 같았을 때 황급히 통화버튼을 누르고 귀로 가져갔다.

 “…….”

 -지수야?

 “네.”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목소리가 푹 가라앉아있었다. 침착하지만 지나치게 고요한 어조였다. 소름이 돋아나며 털이 곤두서고 있었다. 그는 쿵쾅쿵쾅 온몸이 쿵쾅쿵쾅 거리는 것을 억누르면서 그 진동으로 자기 목소리마저 떨리지 않도록 입술을 한차례 세게 깨물고는 목에 잔뜩 힘을 주었다.

 “어떻게, 됐어요? 빨리요.”

 지수는 ‘초기화’라는 단어를 머릿속에 떠올리고 있었지만 입 밖으로 내지 않았다. 초조해하고 있었다. 절로 꼴까닥 소리가 나도록, 침을 크게 삼켰다. 절로 커지는 목소리.

 “박사님.”

 -지수야, 수술, 안 하기로 했다. 우선 좀 더 두고 보기로 했어. 연두 집으로 보냈으니까 가봐.

 “연두 지금 집에 있다고요?”

 -그래. 아마 방에 있을 거야. 해민이가 안전하게 ‘옮겨놓겠다’고 나서더라. 잘 했겠지만, 그래도 네가 가서 확인 좀 해줄래?

 “걱정 마세요. 바로 가볼게요.”

 분명 두 귀로 들었다. 그런데도 그는 제대로 실감할 수 없었다. 당장 연두가 움직이고 말하는 모습을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해야만 마음을 놓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는 이미 벌떡 일어서 있었고, 걱정 말라고 하면서 뛰고 있었다.

 

 정류장에 도착해 버스를 기다리면서 그는 계속해서 이것저것 온갖 생각들로 어지러웠다. 얼굴을 보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아니 연두를 보면 어떻게 해야 할지, 이렇게 생각하고 있지만 연두 얼굴을 보면서 지금 떠올려 보는 그대로 할 수나 있을지. 어떤 반응을 보일지. 버스를 타기 전까지 버스에서 내릴 때까지 쭉.

 버스를 타고 연두 집에 점점 더 가까워지다가 내리기 전 한 정거장만 남았을 무렵에야 가까스로 평정을 되찾았다. 그리고 버스에서 내려서면서, 학교 정문에서 마주쳤을 때 이해민이 했던 말을 떠올리고 있었다.

 “쓰러졌던 일도 그냥 꿈이야. 하룻밤 자고 일어난 거나 마찬가지라는 말이야.”

 이해민이 한 말이 정말이라면,

 마주쳤을 때 살아 움직이는 연두를 다시 볼 수 있다고 기쁜 대로 마음껏 좋아할 수도 없었다. 안 그래도 연두는 요즘 들어 나타나는 증상들 때문에 곤두서 있었고, 이상하게 여기고 있는 참이었다. 그래서 지수는 초인종을 누르기 전 마음을 가다듬었다. 연두에게 아무렇지 않은 척 내색하지 않아야겠다고 다시 한 번 다짐했다. 하지만 전자음 멜로디가 울리고 문이 열려 안으로 들어서서 멀쩡하게 서있는 연두와 마주섰을 때, 지수는 도저히 평정심을 유지할 수 없었다. 그는 빠른 걸음으로 다가가 힘주어 꽉 끌어안았다.

 “….”

 “잘 잤어?”

 아무런 반응도 없는 모습에 당황하여 허둥대면서 지수는 급하게 팔을 풀고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그는 그녀 얼굴을 살폈다. 그리고 마음을 꾹꾹 눌러 다지면서, 잘 잤느냐고 다시 가볍게 한 마디 내뱉었다. 그녀는 입을 벙긋거리는 듯했지만 다물었다. 한 손으로 제 목을 부여잡더니, 무심하게 남 대하듯 이지수 곁을 지나쳐 방으로 들어갔다. 그러곤 곧바로 침대에 누워 이불을 뒤집어썼다.

 “….”

 “뭐야. 뭘, 어떻게 해놓은 거야 지금.”

 

 삼십분쯤 전, 이지수는 전화를 끊고 정신없이 뛰고 있었다. 그러다 정문에서 이해민과 마주쳤다. 잠깐 멈춰 섰고 몇 마디 말이 오갔다. 다시 뛰어 때맞춰 온 버스에 올라타고 나서는 두근거림을 진정시키느라 혼이 났다. 그리고 내리막길 바로 옆 정류장에서 내려 연두 집 쪽으로 걸어가고 있을 때 그 머릿속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말, 들었던 말, 그 목소리.

 멍해진 지수 뇌리에 그때보다 더 커진 목소리가 다시 떠오르더니 얼굴과 함께 맴돌기 시작했다.

 

 “이지수, 잠깐만. 진연두 말인데, 어느 정도 편집은 불가피했어. 요즘 데이터편집 어떻게 해야 할지 연구하고 있었다는 건 알지? 그래도 그냥 하룻밤 자고 일어났다고 바꾼 정도야. 바이러스 제거하고 다시 감염되지 않게 하려는 조치 정도니까, 그러지는 않겠지만 혹시 앞뒤 안 맞는 말을 하더라도, 알아서 잘 대답하라고. 알지?”

 급히 어디로 가던 중이었는지 이해민은 뭔가 물어볼 여유를 주지 않고 서있던 방향 그대로 뛰어가 버렸다.

 

 

 49. 가능성

 

 연두는 어딘지 멍해져서 터벅터벅 걸어 나왔다. 보도블록 위로 눈부시게 내리쬐는 태양, 피부에 따스하게 닿는 태양 아래에서 눈을 감고 심호흡을 하며 그 온기를 한껏 받아들였다.

 그때 나무로 된 긴 의자가 눈에 띄었다. 햇볕을 그 길이만큼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나무의자였다.

 

 따갑게 내리쬐는 아래로 걸어가는 사람들이 있었다. 주변에서 사람들은 책으로 손으로 모자로 가방으로 양산으로 우산으로 신문으로 갖가지 가릴만한 무언가로 차양을 만들어 얼굴을 가리고 그늘을 만들어 지나치게 따가운 볕을 피하고 있었다. 연두는 눈부신 태양이 스며든 보도블록 위로 왼발을 디뎠다. 그리고 두 걸음, 붉은 보도블록 위로 오른발을 디뎠다.

 세 걸음, 다시 회색 보도블록에 왼발을 디디면서 아래에 살짝 발을 받치고 있는 보도블록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저 앞에 나무의자는 한쪽 모서리 끝부분에 살짝 그늘이 걸쳐 있는 모습이었다. 그 의자를 고른 이유는 바로 그 때문이었다. 왠지 모르게 그 의자는 마치 태양을 마음껏 있는 대로 흡수하려는 것처럼 보였다.

 

 한 발 앞에 두고 의자에 가 앉기 전에 차렷 자세로 섰다.

 다시 한 번 태양을 바로 올려다보려고 했다. 지금까지 그런 적 없다고 느낄 수 있을 만큼 가득 차고 넘치게, 한 걸음 앞 의자처럼 태양이 내리쬐는 온기와 에너지를 온전하게 흡수하고 싶었다. 눈감고 선 자세로 해를 향해 고개를 치켜들었다. 그런데 뒤에서 누군가 어깨를 툭 치며 불렀다. 연두는 감았던 눈을 번쩍 뜨며 뒤돌아보았다. 이선이었다.

 “연두야.”

 유이선은 편안하게 웃고 있었다.

 “응.”

 “여기서 뭐해. 이런 땡볕에서 설마 나무 흉내 내는 거야?”

 괜히 머쓱해져서 바로 뒤돌아 의자에 털썩 앉았다. 그런데 유이선은 그다지 앉고 싶지 않은지 연두 옆으로 비스듬히 해를 등진 채 섰다. 연두는 앉은 자리 옆을 톡톡 치면서 이리 와서 여기 앉으라고 말했다. 그렇지만 별 반응 없이 이선이는 비스듬한 자세 그대로 서있기만 했다. 그래서 좀 더 세게 그 자리를 툭툭 두드리며 말했다.

 “여기 와서 앉아. 다리 아프잖아. 따뜻하고 좋아.”

 이선이는 해가 바로 보여서 싫다고 말했다. 너무 눈부시다고 했다.

 

 의자에서 일어나고 싶지 않았다. 오히려 이선이가 싫다고 하는 그 이유로 이 의자에 앉았기 때문에.

 “여기가 따뜻하고 좋은데. 그늘이 더 좋아?”

 “아니. 그렇진 않은데, 마주보는 바로 앞면에 떠 있잖아. 너무 눈부셔.”

 연두는 앉을 생각이 없어 보이는 이선에게서 시선을 돌리고 정면을 보았다. 그러다 몸에 힘을 뺀 채 등받이에 완전히 기대고서 눈을 감았다.

 감은 눈 안쪽으로 태양이 비쳐드는데 순간 선홍빛이었다. 곧바로 노란 빛이 가운데 번지더니 한가운데에 청록색 멍든 파랑이거나 보랏빛으로 물들어 번지기 시작했다. 그러다 눈을 번쩍 떴을 때 온 세계가 하얗게 가득 차있었다. 잠깐 동안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곧 정상으로 돌아왔다. 눈을 깜빡거리고 있는데 옆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물론 이선이었다.

 아직 환한 눈으로 옆에 앉는 이선을 보며 웃었다.

 “따뜻하지?”

 “응. 나도 간만에 광합성 좀 해야겠다. 생각해보니까, 요즘 너무 햇볕을 멀리했어. 적당히 햇볕도 쬐어줘야 하는데.”

 이선이 하는 말에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럼, 그럼. 광합성 해줘야 돼. 그래야 기운도 나고, 기분도 좋아지고, 안 그래? 이선아, 난 이렇게 햇볕 내리쬐고 있으면, 없던 기운도 막 생겨. 기분이 안 좋다가 다시 좋아지기도 하고, 이미 좋았다면 정말 더 좋아지고. 진짜야. 슬프거나 화났다가도 잠깐 햇볕 쬐고 있다 보면 그냥 풀리기도 하고 그래.”

 이선이는 처음 어깨를 툭 치면서 불렀을 때처럼 웃고 있었다. 연두는 웃는 얼굴을 마주보며 따라서 같이 웃었다.

 “햇볕이 그렇게 좋아?”

 “응. 그래서 이러고 있기도 좋아해.”

 “그럼 이렇게 광합성 할 때가 제일 좋아?”

 

 이선이가 던진 질문을 들었을 때, 순간 혼란스러워서 말문이 막혔다. 햇볕을 두고 다른 무언가와 비교해 어떤 우선순위를 매겨보려고 했던 적은 없었다. 좋으니까 좋아할 뿐이었다. 왠지 잘못 들은 것 같아 다시 확인하려 되물었다.

 “세상에서 제일 좋으냐고?”

 “응. 세상에서 광합성 하는 게 제일 좋아?”

 “그건, 아닌 것 같아.”

 분명 모르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불쑥 아니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이선이는 그렇구나, 그냥 수긍하는 모습이었다.

 

 잠시잠깐 시선을 내리깐 채 둘 다 말없이 앉아있었다. 그런데 이선이가 갑자기 고개 돌려 쳐다보더니 말했다.

 “실은 나도 광합성 진짜 좋아했어. 예전엔, 세상에서 광합성 하길 제일 좋아할 정도였어. 그래서 날 좋을 때 하루 종일 햇볕만 쬐고 있던 날도 있었어.”

 “하루 종일? 아….”

 이선이가 하는 말을 들으며 머릿속에 그려보면서 기분이 좋아졌다. 절로 웃음이 나왔다.

 “그럴 줄 알았어. 전부터 나 왠지 네가 광합성을 좋아하는 모양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거든. 해 짱짱할 때, 아까처럼 고개 들고 있는 모습 본 적 있어.”

 “진짜?”

 “응.”

 신기하기도 하고, 놀랍기도 했다. 그때 한결 홀가분하게 가벼워진 어조로 말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연두야. 나 다음 학기 휴학 신청했다.”

 이선이는 마치 숨겨놓은 보물을 살짝 내보이며 자랑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비밀스럽게 몸을 낮추고는 속삭이듯 말하고 있었다.

 “휴학이라니, 왜? 무슨 일이라도 있어?”

 말없이 좀 기운 없는 표정으로 웃는 모습이었다. 다시 물었다.

 “다음 학기만?”

 “글쎄, 사실, 나는, 아무래도 한 학기 쉬고 복학해야겠지?”

 앞으로 훨씬 더, 많이 친해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다음 학기를 휴학한다고 하니 아쉬웠다. 미미하게 끄덕이는데 이선이가 다시 말했다.

 “연두야, 이번 학기 끝나면 나랑 같이 여행 갈래?”

 “여행? 가고는 싶은데, 휴학은 좀 힘들 것 같은데?”

 몇 초간 이선이는 일시 정지한 것처럼 멈춰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손뼉까지 치면서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정말 그러네. 난 휴학하니까, 휴학 안 하면 나랑 같이 못 가는 구나. 그래도 혹시 마음 바뀌면 말해. 이번 학기 끝날 때까지는 강의 때마다 만날 테니까. 근데, 굳이 꼭 휴학할 필요까지는 없잖아. 같이 갈 수 있으면 얘기해.”

 

 갑작스레 같이 여행가자고 해서 얼떨떨한 기분이었지만, 일단 알았다고 했다. 그런데 그런 연두에게 이선이는 다시 한 번 더 같이 가자고 당부하듯 말하면서, 또 다시 한 번 더 물었다. 생각 바뀌면 꼭 말하라고 덧붙이기까지 했다. 그러면서 왼쪽 손목을 들여다보더니 말했다.

 “아, 이럴 수가. 연두야, 더 있을 거야? 나 먼저 일어나야 될 것 같은데. 약속 있는 걸 깜빡했어.”

 

 이선이가 일어서는 뒷모습을 보며, 연두는 안녕 잘 가라고 내일보자고 인사했다.

 머릿속에 이선이가 했던 말들을 되뇌면서 다시 의자에 등을 기대앉았다. 그리고 가만히 눈을 감으며 지수를 떠올렸다.

 “지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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