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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해바라기,너에게
작가 : 신정
작품등록일 : 2019.10.18

평범한 여대생 진연두 이야기

 
해바라기,너에게 10
작성일 : 19-10-18 08:55     조회 : 253     추천 : 0     분량 : 1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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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속이 상할 대로 상한 상태였지만, 도서관에 도착해서 우선 날짜를 제대로 기억하고 있는지 확인했다. 내가 기억하기로는 10월18일, 바로 내일까지였다.

 “저, 제가 빌린 책 언제까지 반납해야 되는지 확인해주실 수 있나요?”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진연두요.”

 “저기, 책 안 빌리셨다고 나오는데, 이미 반납하신 거 같은데요.”

 “반납했다고요?”

 상아는 이미 반납되어 있는 상태로 대여 가능한 도서라는 설명이었다. 다른 곳에서 빌린 거 아니냐며, 이미 반납하셨다고 착각하신 것 같다고 말하고 있었다. 난 황당할 따름이었다.

 “정말요? 그 책 어디 꽂혀있어요?”

 “잠시 만요. 387.6-한21ㅅ입니다.”

 “387.6이요? 감사합니다.”

 

 안쪽으로 들어가서 380번대 책꽂이를 찾았다.

 387, 387… 손가락으로 책들을 쭉 따라가며 여러 번 훑어보고 한 권 한 권 확인해봤지만 진녹색 표지는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딱 걸리는 책이 한 권 있었다. 387.6-한21ㅅ, ‘상아’라는 제목이 구불구불한 글씨체로 쓰여 있는 책이었다. 내가 찾는 진녹색 표지는 아니었지만, 한 번 빼들어 보았다. 표지에 선명하게 화려한 색감으로 인쇄된 표지그림이 시선을 확 끄는 소설이었다. 글쓴이도 서지은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었다. 책꽂이엔 그렇게 ‘상아’라는 제목을 가진 같은 책 두 권이 나란히 꽂혀있었다. 하지만 글쓴이가 서지은인 진녹색 ‘상아’는 없었다. 이게 어찌된 일인지 상아를 빌릴 때 옆에 같이 있었던 지수에게 확인해보고 싶었다. 그런데 난 바로 좀 전에 사실대로 말할 생각이 들기 전까지 연락할 생각도 하지 말라고 지수에게 소리 지르고 붙잡는 손을 뿌리치고는 돌아섰다.

 고민하다가 결국 지수에게 연락해 물어보지는 않기로 했다. 마음이 심란했다. 간단하게 가라앉힐 수가 없었다. 잊어버렸던 것들 전부 기억해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는 사실, 내 착각이었을 뿐 난 아직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정말, 난 뭔가 잘못 기억하고 있었다.

 

 한창 강의 중인데도 강의내용과는 전혀 상관이 없고 쓸데도 없는 생각만 머릿속이 가득 차 있었다. 그렇게 딴생각만 가득한 상태로 오후 강의는 듣는 둥 마는 둥 했다.

 “다녀왔습니다.”

 강의가 끝나자마자 곧장 집으로 돌아왔을 때, 난 약간 허기져있었다. 뭐라도 먹고 뱃속을 채워야할 것 같아서 부엌으로 들어가 여기저기를 두리번두리번 훑어보았다. 마침 쌀통 위에 라면이 놓여 있었다. 냄비를 찾는데, 그때부터가 문제였다. 대체 냄비를 어디에 두었는지 아무데도 보이지 않았다.

 “엄마, 작은 냄비 어디 있어요? 손잡이 길게 달린 작은 냄비!”

 안 들릴까 싶어서 목청껏 소리 질러 크게 말하는데도, 전혀 안 들리는지 아무 대답도 없었다. 계속 그렇게 소리를 지르면서 찬장을 차례대로 하나하나 열어보고 있었다. 그런데 여기저기 다 열어볼 필요 없이 두 번째 열어본 문 뒤에 냄비가 있었다. 먼저 쌀통 위에 놓여있는 라면을 옆에다 갖다놓고, 냄비에 물을 받아서 가스레인지에 올리고 불을 켰다.

 “연두야.”

 “엄마?”

 따다다다다—

 파랗게 가스불이 들어오고 라면 봉지를 뜯으려고 할 때, 뒤에서 엄마 목소리가 들려 돌아보았다. 근데 엄마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꿈 얘기를 할 때와 똑같지는 않았지만, 엄마 표정에서 배어나는 분위기는 그때와 상당히 비슷하게 느껴졌다.

 “왜, 뭐 이상해요?”

 “아니. 난 또, 너 어디 다쳤나 해서.”

 “아무 일도 없는데, 괜히 다치긴 왜 다쳐. 멀쩡해요.”

 여전히 어딘가 걱정스럽다는 표정이었다.

 “엄마. 설마 나 쓰러졌던 것 때문에 아직도 걱정돼서 그래요? 그럼 마음 푹 놔요. 나도 신경 안 쓰기로 했으니까. 이제 아무렇지도 않은데 뭐. 의사선생님도 별거 아니라고 했다며.”

 약간 불안한 듯 걱정하는 기색이 엄마 얼굴에서 쉽게 거두어지지 않았다. 난 오히려 그런 엄마가 더 걱정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가라앉은 분위기를 환기시키려는 듯 엄마가 살짝 힘 들어간 목소리로 뭐 먹으려고 했냐고 물었다. 그러다 불을 켠 가스레인지 옆에 놓인 라면을 보았는지 무슨 라면이냐면서 금방 밥 차려줄 테니 조금만 기다리라고 했다. 문제는 나였다. 정말 이상한 일이긴 한데, 더 이상 배가 고프지 않았다. 정말 방금 전까지만 해도 속이 텅텅 비어서 허기져 있었는데, 어쩌다 보니 이렇게 되었는지 마치 위장이 그러한 사실을 잊어버렸거나 뭔가 배불리 먹었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정말로 이상한 일이지만, 왠지 밥 먹고 나서 한 시간도 채 지나지 않은 것처럼 속이 든든한 상태였다.

 “근데 엄마, 방금 전까지 나 진짜 엄청 배고팠는데, 지금은 아니에요. 좀 이따 배고프면 그때 먹을게요.”

 “그래? 그래, 그럼. 이따 배고프면 말해.”

 

 

 46. 확인

 

 방으로 올라가니 잠시 잊고 있었던 생각들이 다시 떠올랐다. 분명 난 상아를 어디로 들고 나간 적도 없고 방 안에서만 꺼내보았다. 그런데 도서관에 가서 확인해보니, 내가 책을 이미 반납했거나 애초에 빌리지 않았다고 했다. 집에 와서 방을 몇 번이나 뒤졌는데도 역시 아무데서도 나오지 않고 있었다. 정말 난 뭔가를 잘못 알고 있었다. 그깟 책 하나 쯤 사실 별로 중요하지 않을 수 있었다. 하지만 마음에 걸렸다. 어디쯤에서 잘못되었는지 지수에게 연락해서 확인해봐야 했다. 그 외에 다른 방법은 잘 떠오르지 않았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내가 도서관에서 책 빌릴 때 그 자리에 같이 서있던 사람은 사서와 지수뿐이었다. 그러니 이제 지수한테 물어보는 수밖에는 내가 어떻게 잘못알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왜 그랬는지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이해민과 초희에 대해 물어봤을 때에도 모른다고 했는데, 상아에 대해 지수가 사실대로 말해줄까? 지수도 모른다고 하면, 내가 상아를 빌린 적 없다고 하거나 옆에 같이 있던 적도 없다고 하면 어떡하지? 정말 내가 빌리지도 않은 책을 빌렸다고 착각하면서 그 내용까지 기억하고 있는 경우라면, 뭐가 어떻게 되는 거지? 그런데 지수는 왜 초희랑 이해민을 전혀 모르는 사람이라고 하는 거지?

 

 일단 전화해보기로 했다. 물어보지도 않고 이렇게 온갖 의문에 추측만 하고 있기보다는 한 번이라도 더 직접 물어보고 확인해 보기로 했다.

 뚜, 뚜, 뚜 이어지는 소리 사이로 떠오른 기억.

 지수 단축번호가 8이 된 이유. 지수 생일은 8월31일이다. 8월31일을 831번으로 지정할 수 없어서 월수만 따져 8이 되었는데, 왜 8번이냐고, 그렇게 설명을 해줘도 대체 왜 내가 8번이냐며, 내가 왜 8번이냐고 계속 따지던 지수 모습이 떠올랐다. 절로 웃음이 났다.

 뚜, 뚜, 뚜, 뚜…

 짧은 회상이 끝날 때까지도 전화는 연결되지 않았다. 일정하게 이어지는 전화 연결 대기음만 들려올 따름이었다. 그러자 문득, 어쩌면 지수가 전화를 안 받으려고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대로 털어놓을 생각 들기 전까지는 연락도 하지 말라고 쏴붙이고 그 자리에 지수 혼자 내버려두고 도망쳤으니 말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왠지 정말로 안 받을 것 같았다. 그래서 끊으려고 귀에서 손을 떼어내는데, 뚜, 뚜, 뚜, 뚜 툭. 딸깍.

 

 약간 기운이 빠진 채 가라앉은 목소리였다.

 -여보세요.

 “지수야.”

 -지, 연두야? 잠깐, 먼저 정말,

 크게 내쉬는 지수 한숨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지수 모습이 눈에 선하게 비쳐 보이는 듯했다. 정말 바로 옆에 있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지수야, 근데.”

 -어?

 “나랑 예전에 도서관 갔을 때 내가 책 빌린 적 있잖아. 생각나?”

 -책? 무슨 책?

 “상아라는 책인데, 진녹색 표지에, 그때, 도서관에서 그랬잖아. 내가 그 책 꺼내 와서 한 번 펴보더니 그냥 베고 자버리더라고 그랬잖아. 그 책 말이야.”

 -상아, 라고?

 “응. 모르겠어? 내가 그 책 읽을 거라고 하니까 두꺼워서 다 읽을 수 있겠냐고도 했었는데.”

 그런 적이 있는가 생각해보고 있는지 지수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꽤 오랜 시간 지수가 대답하기를 기다렸다. 그렇게 기다리다 팔을 바꿔서 왼쪽 귀에 갖다 대고 있던 걸 오른쪽 귀로 갖다 댈 때까지였다. 그렇지만 대답 없는 침묵만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지수가 모르겠다고 기억나지 않는다고 하면 어떻게 해야 하나 초조한 마음이었다. 난 기다리는 동안 마르는 목으로 침만 삼키고 있었다.

 -근데. 그 책이 왜?

 “무슨 책인지 알겠어? 기억났어?”

 바로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지수는 한참 뜸을 들이다가 말했다.

 -응. 네가 빌린 줄도 모르고 다시 빌리겠다고 했던 책 말이지?

 그러고 보니 그랬었다. 그때 강의 시간에 늦을까봐 뛰어나오다가 교수님 사정으로 강의가 취소되었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러고 나서 이미 빌렸다는 사실도 잊어버린 채 상아를 빌리려고 뛰어 내려가던 발길을 되돌려 다시 올라갔었다.

 “맞아. 그 책이야. 기억하고 있었네. 역시.”

 -근데 그 책은 왜?

 “아니, 내가 그 책을 잃어버렸는데.”

 -잃어버렸다고? 어디서.

 “아무래도 집에서 잃어버린 것 같아. 밖에 들고 나간 적 없거든. 근데 아무리 찾아봐도 아무데도 안 보여. 엄마한테 여쭈어도 못 봤다고 하시고. 그래서 도서관에 갔었는데.”

 -도서관에는 또 왜.

 “빌린 책을 잃어버렸잖아. 어떡해야 되는지 물어봐야지.”

 -아, 응. 그래서?

 “도서관에 물어봤더니, 거기선 내가 책을 빌린 적도 없다고 했어. 아직 다 읽지도 않은 책인데, 내가 이미 반납을 했다는 거야. 분명 빌리고는 반납한 적이 없는데 현재 대출 중인 책이 없다니까, 좀 이상하잖아. 그러면서 상아라는 책은 다 꽂혀있다고 하더라고. 그래서 그럼 그 책 어디에 있냐고 물어보고 내가 빌렸던 책이 맞는지 확인했지.”

 -그래서? 그 책이었어?

 “아니, 아니었어. 내가 빌렸던 책은 없었어. 왜 그렇게 놀라? 아무튼, 내가 빌린 상아가 아니라, 제목만 똑같은 책이었어. 저자도 아니었어. 그 사람이 쓴 책이 아니었어.”

 -그럼, 네가 찾는 책은 누가 쓴 건데? 누가 썼는지 알아?

 “서지은. 이름이 서지은이었어.”

 

 지수에게 연락해 확인해 보면서 내가 기억해낸 것들이 전부 잘못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인하니 마음이 놓이면서 안심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더 의문스러워졌다. 왜 도서관에 책 빌린 적이 없다고 되어있는가 말이다. 그리고 왜 서지은이 쓴 상아가 애초부터 도서관에 없는 책인 것처럼 장서 목록에도 없고, 책꽂이에도 안 꽂혀있는지.

 없는 책?

 정말 별 것 아니라고, 그냥 책 한 권인데 잃어버렸을 뿐이고, 도서관에서 착각했다면 물어줄 일 없게 되었을 뿐이라고, 잘 된 일이라고 하려고도 했다. 하지만 신경 쓰였다. 지수가 내게 말하지 않는다고 여기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렇게 지수에게 연락해서 확인했는데도 생각 끄트머리에 자꾸 물음표가 따라붙었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나는 상아가 어떻게 잘 지내고 있는 지 궁금했다. 내용이 일기형식을 띠어서인지, 왠지 단순히 지어낸 이야기 같지 않았다. 어린 나이에 수술을 했다는 점 때문에도 마음이 쓰였다. 어쩌면 정말 상아가 실존 인물이고, 그 책도 단순히 지어낸 이야기가 아니라 정말 일기일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어쩌면 그런 생각을 하고 있어서 더 신경이 쓰이는 모양이었다.

 상아가 도서관에 없다면, 한 권 사서라도 읽고 싶었다. 인터넷에 상아를 검색해보았다. 그런데 내가 찾는 진녹색표지에 저자가 서지은인 상아는 검색결과에서 곧바로 쉽게 찾기 힘들어보였다. 거의 모든 분야에 걸쳐서 ‘상아’라는 단어가 포함되어 있다면 정말 다양하게 거의 다 나온 것 같았다. 하지만 내가 찾는 상아는 없었다. 여러 군데 사이트에서 검색 해봐도 결과는 크게 다르지 않았고, 거기서 거기로 모두 마찬가지였다. 검색되는 책들은 내가 도서관에서 보았던 소설 상아와 제목 일부에 상아라는 단어가 들어간 책들뿐이었다. 검색결과 중엔 정말 엉뚱하고 속만 더 답답하게, 밀렵되는 코끼리들에 관한 책과 밀거래되는 상아에 관해 서술해놓은 웹문서들까지 심심찮게 섞여있었다.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으니 정말 답답했다. 난 더 찾아보기를 멈추고 검색결과로 뜬 웹문서들 중에 혹시 도움이 될 만한 정보는 없는지 차례대로 열어보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상아연구’라는 단어를 발견했다. 어쩌면 상아가 ‘상아연구’와 연관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상아연구에 관한 웹문서를 한 줄씩 읽어 내려갔다. 읽어나갈수록 왠지 모르게 내가 찾던 서지은이 상아연구 서지은 박사인 것 같았다. 거의 다 읽었을 때는 설마 설마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상아 글쓴이가 박사 서지은과 동일인물이라는 데 점점 더 확신이 들었다. 하지만 내가 찾는 상아가 상아연구의 상아이고 이러한 내용이 정말이라도 의문스런 점은 남아있었다.

 웹문서에 있는 내용을 보면 은화대에서 상아연구를 지원했다고 되어있는데, 난 은화대에 다니면서 단 한 번도 ‘상아’라는 단어조차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리고 서지은이라는 이름 역시 단 한 번도 들어본 적 없었다. 나와 통화하면서 지수 역시 상아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지수는 서지은이라는 이름을 듣고서도 전혀 모르는 눈치였다. 만약 정말 상아가 상아연구에서 말하는 그 ‘상아’라면, 내가 빌린 상아는 서지은 박사 연구일지일 가능성이 높았다.

 만약 정말 그렇다면 내가 알고 있는 상아는 몇 번째 상아인지 궁금했다. 하지만 그보다는 서지은 박사가 일기처럼 써내려간 내용이 담긴 일지가 왜 도서관에 등록도 되지 않은 채로 꽂혀 있었는지 이상했다. 그리고 한 가지가 더, 상아를 처음 본 날 도서관에서 나는 강의에 늦을까봐 급한 마음으로 상아를 손에 든 채 그냥 빠져나갔었다. 그대로 계단을 뛰어 내려가다가, 갑자기 강의가 취소되었다는 연락을 받고 들고 있는 책 빌리려 도서관으로 다시 올라갔었다. 그런데 사서는 자리에 없었고, 지수는 내게 그 책 도서관에서 나오기 전에 네가 이미 빌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책 빌릴 때 자기가 옆에 같이 있었다고, 분명 그렇게 말했었다.

 

 

 47. 인식

 

 아까 모르는 새 밀려나버린 듯 뱃속에서 떠났던 허기가 다시 되돌아오는지 꼬르륵 배가 고팠다. 이제 저녁 먹어야겠다고 중얼거리면서 부엌으로 갔다. 꼬르륵거리는 소리가 서두르라고 재촉하는 듯 요란했다. 빈 배를 살살 문지르며 냉장고를 열어보는데, 누군가 초인종 누르는 소리가 들렸다.

 현관으로 걸어 나가 누가 왔는지 확인하는 순간 난 깜짝 놀라고 말았다. 이해민이었다. 초희 남자친구, 강의 듣던 중에 졸다가 머리를 부딪치기도 했고 예약이니 뭐니 하며 날 데려가려 했던 사람 말이다. 집까지 무슨 일로 찾아왔는지 문을 열어줘야 하는지 말아야하는지 아예 없는 척을 해야 하는지 판단이 잘 서지 않았다. 그런데 혼자인줄 알았던 이해민 등 뒤 쪽으로 초희가 함께 서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연두야, 잠깐 문 좀 열어봐. 꼭 해줄 말이 있어서 그래. 너 우리한테 궁금한 거 많지 않아?”

 “아니. 그냥 내가 나갈게. 지금 엄마 주무시고 계셔.”

 “네 어머니 아마 지금쯤 집에 안 계실 텐데.”

 정말 이해민은 자연스럽고도 친숙하게 ‘네 어머니’라고 말했다. 그런데 낯설게 들리는 단어가 어색했고, 이상한 기분이었다. 문득 나는 집 안쪽으로 돌아서서 엄마를 크게 불러보았다. 조용한 집안 어디에서도 대답하는 엄마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그때 문득 카페로 이해민이 날 찾아왔던 때가 떠올랐다. 불안한 마음으로 방문을 열어보았다. 방은 비어있었다. 대체 언제 나갔는지 엄마 모습은 보이지 않았고 아무리 둘러봐도 집에는 나뿐이었다.

 ‘안 계신지 어떻게 알았지?’

 일단 문을 열어주었다. 난 두 사람에게 들어오라고 말했다.

 

 초희와 이해민이 함께 들어오는 모습, 그렇게 두 사람이 현관으로 들어서는 모습부터 이 상황 자체까지 불편하고 어색하기만 했다. 이 두 사람이 어떻게 우리 집을 알고 찾아왔는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내가 정신을 잃고 쓰러졌던 날 두시 무렵 이해민은 나 있는 곳을 알고 찾아왔었다. 어떻게 알았는지까지는 모르지만 그 카페에 내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내고는 내가 앉아있는 그 자리 바로 앞에 나타났었다.

 두 사람이 현관에 들어서서 신발을 벗었다. 안으로 들어서서 자리에 앉을 때까지, 초희도 이해민도 나도 그 어떤 말도 아무 말도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내 뒤로 따라 들어와서 초희와 이해민이 의자에 앉는 모습을 확인한 뒤, 그 둘에게 잠깐만 앉아 기다리라고 했다. 난 찻물을 올리려고 가스레인지 쪽으로 돌아섰다. 주전자에 물을 한가득 받아 가스레인지에 올리고 불을 켰다. 따다다다다다다. 따다다다다다. 두세 번 돌리고 나자 불이 붙었다. 나는 파란 선으로 이어지며 푸우우 불꽃이 올라오는 모양을 괜히 뚫어져라 유심히 살펴보고 있었다.

 침묵 속에 차곡차곡 내 등 뒤로 긴장이 차오르고 있었다. 그렇게 견뎌내고 싶지 않아서 일단 다시 몸을 움직였다. 바로 눈앞에 있는 찬장 문을 열어 티백이 담긴 상자를 꺼냈다. 티백을 세 개 꺼내놓고 상자를 닫아 올려놓았다. 그때 가운데 칸에서, 맨 아래 차를 넣어두는 칸 바로 위 칸에서 보았다. 익숙한 진녹색이 길게 누워 있었다.

 ‘설마.’

 나는 상아가 맞는지 그 기다란 진녹색을 왼손으로 슬쩍 들춰보았다.

 ‘상아다.’

 순간 난 굳었다. 어리둥절하다가, 그대로 멈춰 있다가, 물 끓는 소리가 들려서 급히 가스레인지 앞으로 돌아섰다. 불을 끄고 주전자를 받침 위에 내렸다. 잔을 꺼내서 티백을 하나씩 집어넣은 후 가스밸브를 잠갔다. 잔 속 티백 위로 물을 끼얹고 부었다. 아직 안 닫고 열어둔 찬장 문을 밀어 닫았다. 그들 맞은편 자리에 앉으며 앞에 한 잔씩 놓아주었다. 그러고 나서 내가 내민 잔을 한참동안 말없이 내려다보고 있던 초희가 그제야 입을 열었다.

 “궁금한 거 많을 거야. 아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싱크대 위 찬장에 놓여있는 상아를 본 순간, 몇 시간 전 냄비를 찾으려고 찬장 문 하나하나 열어가며 살펴봤을 때를 떠올렸다. 머릿속에서 한 장면만이 계속해서 되풀이되고 있었다. 여기저기 찬장을 열어 냄비를 찾고 있는 나에게 엄마가 보였던 행동과 표정들이 눈가에 주름하나까지도 세세하게 생생하게 떠올랐다. 이해민이 초희 다음 차례로 바통을 이어받듯 말했다.

 “임희아 박사님 지금 연구실에 가 계셔.”

 당황한 표정으로 초희가 이해민 쪽을 쳐다보았다. 나도 당황했다.

 “이해민.”

 “분명 너도 여기 오면서 나랑 같이 오는 데에 상관없다고 했어. 그건 내가 뭘 어떻게 말하든 상관없다는 뜻 아니었어?”

 할 말이 있다더니, 초희와 이해민은 저들끼리만 알아듣고 난 통 알 수가 없게 떠들고 있었다. 그런데 이해민에게 초희가 뭔가 대꾸하려는 것 같아서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잠깐, 대체 무슨 말이야. 엄마가 연구실에 있다니. 임희아 박사님이라니, 난 처음 듣는 소린데.”

 목소리가 뜻하지 않게 약간 비틀려서 튀어나왔다. 난 말할 때 초희를 쳐다보고 있었다. 다만 그녀가 왜 당황하는지 알 수 없어서 쳐다봤을 뿐이었다.

 “연두야, 네 어머니, 임희아 박사님이….”

 “쓸데없이 이런저런 말할 것 없이,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지 뭐. 진연두, 상아연구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어?”

 여전히 초희는 분명 이해민과는 다른 분위기로 사뭇 당황한 기색이었다. 그렇지만 별다른 말은 하지 않고 가만히 내 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왜?”

 “역시 알긴 알고 있었어. 그럼 언제 알았지? 진연두, 정확히 어디까지, 어느 정도 알고 있는 거야?”

 “진연두, 정말 상아연구에 대해 알고 있었어?”

 두 사람이 동시에 내 이름 부르는 목소리를 들었을 때, 어지럼증이 일면서 목 아래 붙어있는 성대가 경련하는 듯했다. 겨우겨우, 난 다만 가만히 침착하게 말하고 싶었다. 무의식중에 불쑥 대답이 튀어나오려는지 목 아래 어쩌면 기관지부터 떨리고 있었다. 떨리는 입술을 꽉 다물고 억누르며 겨우 참고는 한 번 숨을 내뱉고 말했다.

 “그래. 알아.”

 “그렇군. 근데 초희야, 저번에도 느꼈지만, 확실히 느리지 않아? 그냥 느린 정도가 아니라 더 느려졌어. 아아, 걱정 마. 이건 네 얘긴 아니야. 근데 네가 알고 있었다니, 대충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정말 놀랍다. 어차피 우리가 말하려던 것도 상아연구에 관해서긴 하지만.”

 굉장히 날카로운 눈빛이었다. 약간 놀랍다는 듯이 말하면서부터 이해민은 내 얼굴을 일일이 정말 부위별로 잡아 뜯을 듯 쳐다보고 있었다. 그런데 별로 불쾌하지 않았다. 의아할 뿐이었다. 이상하지만, 아무렇지 않았다.

 

 차를 한 모금 마셨다. 적당히 따뜻했는데, 제때 티백을 건져내지 않아서 씁쓸했다. 입 안이 썼다.

 잔을 내려놓고, 엉덩이를 뒤로 밀어 의자에서 일어났다. 아까 차를 꺼내려고 열었던 찬장 앞으로 가서 다시 열었다. 초희와 이해민 시선이 내가 움직이는 대로 따라오고 있었다. 난 뒤돌아선 등에 꽂히는 시선을 크게 의식하면서 두 번째 칸에 누워있는 상아를 꺼내들었다. 나도 모르게 잡는 손에 힘이 들어갔다.

 흐으읍, 후우….

 난 다시 의자에 앉아 상아를 식탁 위 가운데에 올려놓았다.

 “이건….”

 책으로 돌아갔던 두 사람 시선이 다시 내 쪽으로 향했다. 이해민이 상아를 집어 들더니 쓱쓱 넘겨보기 시작했다. 초희는 입맛이 쓰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상아를 넘겨보면서 의혹에 찬 눈빛인 이해민과 가만히 앉아있는 나와 번갈아가며 쳐다보고 있었다. 그런데 이해민이 상아를 덮어 식탁 위로 내려놓으며 말했다.

 “이거, 분명 서지은 박사님 노트인데. 언제 어디서 구했어? 설마, 이미 오래전부터 다 알고 있었어?”

 쳐다보는 눈이 심상치 않았다.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난 떨리는 몸으로 경련하는 성대를 억누르며 참고 있었다.

 “해민아, 데이터는 있는 그대로 누락되는 일 없이 전부 보고된다는 거 잊었어? 지나친 기대도 상상도 하지 말라고 했던 사람은 바로 너야.”

 ‘무슨 소리야.’

 

 잔을 내려다보며 가만히 말하는 초희 목소리가 꽤나 가라앉아있었다. 할 말을 끝내고 날 쳐다보는 표정 또한 그다지 좋아 보이지 않았다. 난 다시 한 번 잔을 들어 반 모금을 들이켰다. 쓰디 쓴 입맛으로 시선을 내리깔며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름을 내뱉었다.

 “지수, 지수는?”

 갑자기 지수가 떠오르는데, 왠지 모르게 슬펐다. 지수에 대해 물으면서 내가 고개를 들었을 때 초희가 침착한 얼굴로 되물었다. 이해민은 의자 등받이에 기댄 채 가만히 쳐다보고 있었다.

 “연두야, 설마 지수에 대해서도 다 아는 거야?”

 대체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었기 때문에,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그저 시선을 다시 상아로 돌려 쳐다볼 뿐이었다. 지수 얘긴 그만두고 상아에 대해 물어보려고 했다. 그런데 이해민이 의자를 당겨서 자세를 고치고 바로 앉더니 말했다.

 “이지수는 지금 임희아 박사님과 상아연구실에 있을 거다 아마. 이건 모르고 있었겠지만, 네 어머니 임희아 박사님은 상아연구 수석연구원이야. 이지수는 지금은 아니지만 한때 연구원이었어. 초희와 나 역시 그렇고. 이제 궁금한 점이라든가 물어볼 거 있으면 뭐든 물어봐. 알려줄 수 있는 한도 내에서, 아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전부 말해줄 테니까.”

 

 반 모금 또 한 번, 차를 들이켰다. 좀 더 식은 차가 혀를 쓸어내리며 목 뒤로 넘어갔다. 삼킬 땐 몰랐는데 뒤늦게 입맛이 쓰다. 문득 잔 너머로 넘겨다보니 두 사람은 아직까지 잔을 입에 갖다 대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런데 때마침 초희가 잔을 들어 한 모금 마셨다.

 

 “그래. 연두야, 궁금한 거 있으면 물어봐. 그리고 어쩌면 변명처럼 들리겠지만, 이제야 너한테 찾아오게 된 건 우리도 어쩔 수 없는 사정이 있었어. 임희아 박사님, 그러니까 네 어머니와 지수는 나나 해민이가 너랑 만나는 거 별로 안 좋아하거든. 너 찾아가려고 할 때마다 반대하고 못 만나게 하려고 막는 바람에 올 수가 없었어. 널 만나려면 박사님과 지수 눈을 피해서 몰래 찾아오는 수밖에 도리가 없었어.”

 “그럼, 여기 오려고 둘이서 일부러 엄마랑 지수가 연구실로 가게 만들었다는 말이야?”

 “아니, 그건 아니야. 박사님은 연구실에 볼 일이 있어서 가신 거야. 지수는 그냥 박사님 뒤를 따라간 거고. 나랑 해민이는 이때다 싶어서 찾아왔을 뿐이야. 이럴 때 아니면 너랑 제대로 얘기할 일도 없을 것 같아서.”

 난 초희가 하는 말을 다 듣고 나서 이해민 얼굴로 시선을 돌렸다. 그는 별다른 말없이 다시 기대앉은 자세로 지켜보고 있었다. 눈이 마주쳤을 때 그에게 말했다.

 “지수는? 그때 왜 싸우려고 했어? 둘이 친구 아니야?”

 대답하려고 하는 초희 모습에 눈을 질끈 감고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 아니. 초희 말고.”

 나는 감았던 눈을 뜨고 다시 그를 쳐다보았다. 아까부터 이해민은 날 관찰하는 것처럼 유심히 살펴보고 있었다. 여전히 기대앉은 자세 그대로 살짝 미간을 찌푸린 채 날 쳐다보며 아까부터 뭔가 관찰하고 있는 듯했다.

 “나랑 이지수는 선후배사이라고 할 수 있어. 이지수가 나랑 초희 후배가 되는, 뭐 그런 관계지.”

 난 이해민에게 다시 물어보았다.

 “그럼 내가 물어봤을 때 지수는 왜 너희들이랑 모르는 사이라고 했을까?”

 “그거야 나도 모르지. 아마도 네가 우리에 대해 모르고 지내기를 바란 모양인데. 그러니까 그렇게 너랑 못 만나게 하려고 기를 쓰고 그랬겠지.”

 “그러니까, 왜 그런 것 같으냐는 말이야.”

 

 멀리 두고 관찰하며 뜯어보는 시선 놀라움 감탄 흥미로움으로 물든 시선을 마주하고 있었다. 이해민 뿐만이 아니라 초희도 마찬가지였다. 여기부터 이상했다. 아무렇지 않았다.

 난 그냥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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