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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해바라기,너에게
작가 : 신정
작품등록일 : 2019.10.18

평범한 여대생 진연두 이야기

 
해바라기,너에게 9
작성일 : 19-10-18 08:54     조회 : 230     추천 : 0     분량 : 106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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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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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식탁을 붙잡고 앉은 자세 그대로 움직이지 않는 날 보며 엄마는 재촉하는 듯 내 손을 잡아끌었다. 난 잡아끄는 대로 몸을 일으켜 엄마 맞은편 자리 의자를 빼내어 앉았다. 그리고 엄마 얼굴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방금 전보다는 많이 진정된 눈빛이었다. 하지만 얼굴에 여전히 창백한 기색이 남아있었다.

 “엄마, 어디 안 좋은 거죠. 어디가 아픈데.”

 “아니야, 정말 괜찮아. 근데 연두야. 그 꿈 얘기 좀 다시 해볼래? 혹시 사람들이 뭐라고 하는지 들은 거 있어?”

 “꿈? 꿈은, 음, 꿈에서 누가 뭐라고 하는지 거의 못 알아들어요. 몸을 움직이지도 못하고, 어떤 때는 눈도 안 떠지고, 뭐라고 하는지도 거의, 아예 못 알아들어. 아, 저번에는 무슨, 오류라고 하는 단어를 들은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한데 확실하지는 않아요. 그리고 그냥, 그러다가 끝나요. 침대에 누워 온힘을 다 쓰다가,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꿈속에서 잠들어 버리는데, 그러면 그때 그렇게 꿈이 끝나는 것 같아.”

 깊이 생각에 잠긴 표정으로, 엄마는 진지하게 듣고 있었다. 나는 말하기를 멈추고 엄마 얼굴을 살펴보았다. 이제 조금 심각하게 느껴지는 표정을 짓고 있을 뿐 얼굴에 창백한 기색은 완전히 가셔있었다. 그 얼굴을 보자 평소 때처럼 멀쩡해진 것 같아 마음이 놓였다. 그런데 무슨 생각을 하는지 엄마는 내가 말하기를 멈춘 지도 모르고 있다가 한참 뒤에야 찬찬히 들여다보고 있는 날 알아차리고는 흠칫하는 모습이었다.

 “응? 왜 그래? 벌써 다 했어? 더 없어?”

 왠지 꿈 얘기를 괜히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난 살짝 웃어 보이며 말했다.

 “엄마. 이상한 꿈 꿨다고 하니까 걱정 돼? 그냥, 개꿈이야. 비슷한 꿈을 여러 번 꾸니까 좀 신경이 쓰여서 이러는 것뿐이지. 걱정 말아요. 그냥 꿈인데 뭐.”

 내 말에 엄마는 미간을 찌푸리며 근심이 가득 담긴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그래. 그냥 꿈이니까, 너도 걱정 말고.”

 꽤나 심각해 보이는 엄마 모습에 난 약간은 부자연스럽게 어딘가 어이없어져서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엄마는 나름 심각한데 이러면 안 되는 건지도 모르지만, 전혀 생각지도 못하게 심각한 반응이 아닌가 싶어서 웃음이 나왔다.

 쿡쿡거리다가, 엄마가 창백해져서는 의자에 앉던 모습과 심각한 표정으로 꿈에 대해 물었던 순간이 떠오르자, 킥킥킥. 큭큭큭큭. 풋, 하하하하하.

 “근데 그게 그렇게 심각한 일이야? 내가 한 번만 더 꿈 꿨다간 우리 엄마 그 날로 쓰러지겠네.”

 엄마가 쉽사리 웃음을 멈추지 못하는 나를 째려보더니 이마에 꿀밤을 먹였다. 여유를 되찾은 듯 꽤나 느긋한 손짓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어딘지 모르게 불안해 보였다. 나는 그런 엄마 얼굴을 보며 약간 어색하게 웃었다.

 “연두야, 또 그런 꿈꾸면, 엄마한테 꼭 말해줘. 그냥 꿈이라고 하지만 노파심 때문에 그러니까. 알았지, 진연두?”

 갑자기 몸이 떨렸다.

 “네.”

 

 

 43. 오류 되먹임

 

 서지은은 이제 벌써 16년째 20J와 함께 지내면서, 거의 딸이나 다름없게 대하고 있었다. 그녀에게 ‘상아’는 정말 소중한 아이였고 착한 딸이었다.

 필연적으로 20J 역시 면역계거부반응에 의한 신체이상증세를 맞이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당시 20J를 담당하고 있던 그녀는 20J 본체가 망가지지 않도록 매번 잘 관리해냈다. 본인이 보살펴서 ‘상아’가 죽지 않고 살아났다고 말하는 그녀에게 이미 20J는 포기할 수 없는 자식이나 마찬가지였다. 아니 그 이상이었다.

 

 상아20J가 신체에 이식되고 나서 만으로 3년여 시간이 흘렀을 때였다. 지금껏 모든 연구모델들이 비슷한 시점에 면역계거부반응을 일으켰다. 그리고 모든 모델이 그 위기를 잘 넘기지 못하고 녹아내리거나 타버리고 말았는데, 그 현상이 20J에도 찾아왔다. 과부하에 의한 면역계 거부반응으로 나타나는 신체이상증세는 ‘상아’ 역시 피할 수 없었다.

 20J는 갑자기 신체에 국부적으로 열이 난다면서 통증을 호소하기도 했고, 시각 체계에 이상을 느끼거나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기도 했다. 극도로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며 심한 소음에 의한 고통을 호소하기도 했는데, 물론 그건 20J만이 들을 수 있었다. 면역계거부반응이 일어날 때 느끼는 이상감각은 연구모델에 있어서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증상이었다. 20J에도 그러한 일반적 증세에 속하는 환시와 환청 등의 증상이 나타났을 뿐이었고, 그렇게 나타난 증상은 곧 운동장애로까지 이어졌다.

 운동장애는 과부하에 의한 면역계거부반응으로써 나타나는 신체이상증세의 거의 마지막 단계였다. 감각이상을 호소하던 모델이 운동장애를 일으키게 되면, 이식된 본체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했다고 보고 수술을 통해 본체상태가 어떤지 확인하게 된다. 그렇게 확인했을 때 더는 가망이 없을 만큼 본체상태가 엉망이라면 그땐 연구모델을 포기하는 수밖에 없었다.

 상아연구에서는 내규로써 오로지 실험대상으로만 연구모델을 대하기로 정해놓고 있었다. 또한 연구수칙으로써 심각한 문제가 발생해 모델을 포기해야하는 사태에 이르게 된다면, 적출과 초기화라는 절차로 신체에서 본체를 분리해내도록 정해놓고 있었다.

 

 

 44. 오류 되먹임.1

 

 “초희야, 생각해보니까 나 예전에 너랑 만난 적 있는 것 같아. 우리 예전에 어디서 만난 적 있지 않아?”

 “나 예전에 저 남자 본 적 있는 것 같아. 머리 부딪히기 전에 말이야. 혹시 그 전에 만난 적 있나?”

 “예전부터 아는 사이였던 것처럼 익숙하네요. 누구에요?”

 “잘은 모르겠는데, 분명 아는 곳이야. 정말이야. 여기에 와본 적이 있는데.”

 “사실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는데, 갑자기 지수가 무섭게 화내는 모습이 떠오르기도 해. 근데 생각해보면, 지수는 내 앞에서 화낸 적이 단 한 번도 없거든. 말이 좀 이상하다. 그런데 정말로, 분명 지수가 내 앞에서 화낸 적은 없는데, 평소엔 상상도 못할 만큼 무섭게 화내는 모습이, 정말 선명하게 떠오르기도 하거든. 정말 이상하지? 근데 사실이 그런 걸 어떡해. 나 아직, 완전히 회복이 안 됐나봐. 기절까지 했으니까, 어쩌면 정말 몸이나, 머리에 어떤 이상이 있는 건지도 모르잖아.”

 “얼마 전에 학교에서 사진 한 장을 봤어. 처음 본 사진이고 처음 보는 사람들인데도, 굉장히 익숙하게 느껴지는 거야. 신기하죠? 정말 그랬다니까요. 그러고 보니까 왠지, 엄마랑 비슷했어. 어, 진짜 웬일이야. 정말 엄마랑 많이 닮았어. 엄마도 아마 그 사진 보면 신기해서 놀랄 거야.”

 “이름이 이해민이었던가? 아무튼 전에 키 큰 남자 한 명을 봤는데, 지수랑 잘 아는 사이 같았거든. 물어봐야겠어. 그런데, 뭐지? 그 남자, 처음엔 초희 남자친구라고 하더니만 지난번에는, 그냥 사무적으로만 대하면서 시치미 뚝 떼고 아무 내색도 안 했잖아. 초희랑 둘이서 짜고 장난치느라 일부러 그랬나?”

 “이상하다. 저번에 본 책이 어디로 갔지? 혹시 본 적 있어요? 대체 어디다 내버려뒀지? 생각이 안 나. 분명 그냥 책상 위에 놔둔 것 같은데. 혹시 누가 빌려갔는데 내가 잊어버렸나? 차라리 그런 거면 다행이지만, 내가 산 것도 아니고 도서관에서 빌린 책이라서 잃어버리면 안 된단 말이에요. 빨리 찾아야 되는데, 어디 있지? 어디다 둔 거야 대체.”

 “근데 너, 정말로 예전에 나 만난 적 없어? 이상하게 생각하지는 마. 내가 요즘 이것저것 좀 이상하긴 한 것 같지만. 나 며칠 전에 쓰러졌었잖아. 근데 쓰러졌다가 다시 깨어났을 때 그전부터 도무지 생각해내지 못했던 거, 잊어버렸던 거, 바로 어제 일인데도 전혀 내가 한 적도 없는 것 같았던 일들이 전부 다 기억났거든. 진짜로, 정말이야. 신기했어. 갑자기 그 모든 기억들이 한꺼번에 확 떠오르는데, 그렇게 전부 다 한꺼번에 기억나니까 진짜 신기하더라. 전에는, 내가 자꾸 잊어버리는 게 무슨 일인지는 모르지만, 어쩌면 기억나지 않는 그 일들로 큰 충격을 받아서 나 스스로 잊어버리려는 건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적도 있거든. 근데 다시 생생하게 기억난 일들이 모조리, 정신적인 충격 때문에 일부러 잊어버렸다고 하기엔 사소하고 평범했어. 죄다 별 것 아닌 일들이었어. 신호등을 놓치지 않으려고 뛰었는데 횡단보도 앞에 서니까 빨간불로 딱 바뀌어서 괜히 뛰었다고 후회했던 일 같은 거 있잖아. 거의 다 그런 거였어. 근데, 그런 게 그렇게 갑자기 한꺼번에 생각난다니, 생각하니까 그것도 좀 웃긴 것 같아.”

 

 

 45. 의문

 

 눈을 떴다. 꿈속에서 들려오던 말들은 모두 정말이었다. 한꺼번에 기억난 그 모든 일들은 전부 별 내용도 없고, 시시껄렁하고, 시답잖은 일들이었다. 뭔가 별다르다거나 중요하다고할 만한 일은 없었다.

 며칠이 지나간 후에도 믿기 어려운 사실이 하나 있긴 했다. 쓰러져서 기절했다가 눈 뜨고 깨어났을 때 난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걸어 다닐 수 있었다. 정말 아무렇지 않게 아무 문제없이 멀쩡하게 몸을 일으켰고, 건강한 모습으로 정말 아무렇지 않게 말 그대로 그냥 하룻밤 푹 잘 자고 일어난 것처럼 집안을 돌아다녔다.

 여전히 초희가 마음에 걸렸다. 전에 얼떨결에 같이 카페에 가서 갑작스럽게 친해지고 강의시간이 가까워져 헤어진 이후부터, 더는 초희를 보지도 만나지도 못하고 있었다. 쓰러지기 전 카페에서 키 큰 남자를 통해 초희에 대해 간단한 소식을 전해 들었을 때가 마지막이었다. 그 때문인지 요 며칠 동안 나는 아침에 눈 뜨자마자 초희 생각부터 하고 있었다.

 어딘지 우습기도 하지만, 초희는 내게 해명하겠다는 한 마디 짧은 문자 한 통을 보낸 이후로는 아무런 연락도 없을 뿐더러 모습도 드러내지 않고 있었다. 그래서 문자에 함께 찍혀 온 발신번호로 전화해보기도 했는데 좀 황당했다. 난 이 번호는 없는 번호라고 떠드는 컴퓨터 전자음밖에 들을 수 없었다.

 도서관에서 빌린 책 상아에 대해서도 계속해서 생각했다. 이제 반납해야하는데 어디다 두었는지도 잊어버리고, 아직까지 찾지 못하고 있었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내가 기억하기로 반납 기한은 분명 18일이었다.

 

 그럼 바로 내일이잖아. 근데 별 쓸데없는 건 전부 다 기억나는데 책 어디다 뒀는지는 왜 기억이 안 나지. 아직까지 어디다 뒀는지 전혀 감도 못 잡고 있으니. 한 번 확인해봐야겠어.

 

 누워있던 자리를 정리하고 일어나야했다.

 난 멀쩡한 정신으로 눈뜨고 나서도 곧바로 일어나려 하지 않았다. 한참동안 이리 뒤척거리고 저리 뒤척거리며 이 생각 저 생각하면서 광합성으로 식사 중인 식물이라도 되는 양 햇볕을 쬐다가, 참다못한 엄마가 학교 안 가냐고 소리 지르고 다그칠 때야 미적거리면서 서서히 몸을 일으켰다.

 학교 갈 준비라면 이렇듯 이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한 가지 매일같이 눈뜨기도 전에 거의 본능적으로 떠올리며 찾곤 했던 햇볕을 더는 찾지 않는다는 사실이 좀 다르긴 했다. 그 외에 달리 바뀐 점은 없었지만 확실히 다르긴 달랐다. 어쨌거나 급히 서둘러야했다. 정신없이 씻고, 대충 옷을 걸치고, 가방을 낚아채고, 양말을 찾아다니느라 분주했다. 덮고 잔 이불은 둘둘 말아 구석에 밀어두었다. 시계를 보았다.

 

 이대로라면 버스를 놓칠 확률 97%. 왠지 지각 일보직전 같다. 이불 같은 건 그냥 펴 놓아도 별 상관없을 텐데 그걸 두고 보지 못 하겠다고 하니까. 개켜두지 않으면 내다버리겠다고 하는데 말아놓기라도 해야지. 아, 너무 바쁘다. 이러다 정말 또 지각하겠어.

 

 현관으로 죽 미끄러지데 엄마가 불러 세웠다.

 “아침 안 먹니?”

 “아아, 시간 없어. 늦었어요.”

 이어지는 말, 항상 듣는 말.

 “너무 늦지 말고, 일찍 와라.”

 난 대답할 정신도 없이 운동화를 꿰어 신고서 급히 밖으로 나섰고, 오르막길을 전력 질주했다. 또 지각했다가 무슨 일이 있을지 모르는 일이었다. 이번엔 정말 낙제판정을 받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었고 어쨌거나 뛰어야했다. 그런데 횡단보도에서 빨간 신호등 때문에 멈췄다. 신호가 바뀔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약간 초조해하면서 기다리고 있는데, 도로 언덕 저편에서 227번 버스가 달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결국 버스 한 대를 놓치고 말았다.

 버스를 놓치고 나니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다. 조금 더 늦어지겠지만 이미 버스를 놓친 이상 달리 방법도 없었다. 내가 타야 하는 버스는 15분마다 한 대씩 있었다. 그런데 눈앞에서 한 대를 놓치고 말았으니, 아무래도 집에서 예상했던 시간보다 그만큼은 더 늦어지지 않을까. 정말 지각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약간 슬픈 기분으로 그럼 학교엔 언제쯤 도착하게 될지 가늠해보는데, 초록으로 신호등이 바뀌고 화살표가 하나씩 내려가기 시작했다. 어차피 늦은 마당이었다. 난 천천히 횡단보도를 건너서 느긋한 걸음으로 정류장까지 갔다. 그런데 정류장 뒤쪽 그늘진 곳에 지수가 서있었다.

 “왜 이제야 나와. 또 지각하고 싶어?”

 “너야말로 왜 이 시간에 여기에 있어? 벌써 학교에 도착하고도 남았을 텐데.”

 “학교에 잘 찾아오기나 할지 걱정돼서 와 봤다. 같이 가주려고.”

 “진짜? 그냥 전화로 하면….”

 “야, 전화기도 꺼놓고는 무슨.”

 그럴 리 없다고 하면서 가방을 뒤졌다. 휴대전화를 꺼내 확인해보았는데, 정말 꺼져있었다. 그제야 일주일이 넘도록 충전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쓰러지고 나서부터 지금까지 아예 휴대전화 존재자체를 잊어버리고 있었다. 그러니 충전해야겠다는 생각도 못하는 게 당연했다. 난 배시시 웃으며 지수에게 말했다.

 “이런지 몰랐네. 미안.”

 그러자 옆에서 지수는 왜 꺼놨냐고 짐짓 심각하게 따져 물었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얼굴은 웃고 있는 표정이었다. 지수 얼굴을 보면서 난 뭐라고 대꾸하지 않았다. 그냥 피식거리면서 버스 오는 쪽을 쳐다보았다.

 곧 227번이 달려와 정류장에 멈춰 섰다. 버스에 올라타서 지수와 나는 태양 드는 쪽으로 보고 나란히 서서 갔다. 가는 내내 난 창밖을 내다보면서, 쓰러졌다가 막 깨어났을 때를 떠올리고 있었다.

 

 이유도 없이 쓰러졌다가 깨어났을 때 난 침대에 누워있었다. 튕기듯 일어나서 왜 쓰러졌던 건지 의사가 뭐라고 했는지 엄마에게 물었다. 그러자 의사 말로는 피로가 쌓이고 쌓여서 잠시 기절했을 뿐이라며 다른 이상이 있지는 않아 보이니 걱정 말라고만 했다고 말했다. 그 말에 나 역시 특별히 몸에 이상이 있지는 않다니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진연두.”

 

 귀 가까이에 대고 부르는 소리에 흠칫 놀라서 잔뜩 소름이 돋았다.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지수가 날 빤히 쳐다보며 서있었다.

 아, 깨어나고 나서는 지수 처음 만났는데.

 “무슨 생각을 하는데 불러도 듣지도 못하고, 창밖에 뭐 있어? 도대체 뭘 보는데? 너 쓰러지고 나서 우리 처음 보는지는 알고 있어?”

 “미안. 아직 정신이 없나봐. 막 깨어났을 때 생각하고 있었어.”

 내 말에 지수는 짐짓 궁금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어땠는데? 깨어나기도 전에 퇴원했다고 들었는데.”

 “응. 깨어났을 때 내 방이었어. 근데 꼭 자고 일어난 것처럼 가뿐해서, 바로 일어나서 아래로 내려가서 막 돌아다녔어. 신기하지?”

 이 말에 지수는 좀 놀라는 것 같았다.

 “깨고 나서, 그냥 바로 일어나서, 막 돌아다녔다고?”

 “응. 아무렇지도 않았거든. 힘도 넘치고, 몸도 멀쩡하고. 정말 그냥 한숨 푹 잘 자고 일어난 것 같았어.”

 내 말을 듣는 지수 얼굴에 점점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나타나고 있었다. 그때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진행자 목소리를 뚫고 딩동 소리가 들렸다.

 “어머닌 뭐라고 하셔?”

 어머니?

 “내가 멀쩡히 내려갔는데도 별로 놀라는 것 같지는 않았어. 그냥 웃으면서, 다행이라고, 잘 됐다고 했어. 근데 엄마도 그냥 내가 한숨 자고 일어났을 때처럼, 평소 때처럼 대했어. 별로 놀라는 눈치가 아니었어.”

 지수는 피식거리며 대꾸했다.

 “그래서, 그게 불만이었어?”

 한 번 더 딩동. 이번 정류장은 은화대입니다. 다음 정류장은-

 안내방송이 흘러나오고, 피식거리며 대꾸한 지수가 벨을 누른 후에 내리는 문 쪽으로 자리를 옮겨갔다. 나도 그 옆으로 다가가 기둥을 붙잡고 서며 말했다.

 “왜 그렇게 웃어. 그냥 그런 거 같았단 말이야. 병원에서 아무 이상이 없다고 하니까 아예 마음을 놓고 완전히 안심하고 있었나봐.”

 “아, 병원에서 아무 문제도 없다고 했어?”

 “응. 그냥 피로가 쌓이고 쌓이면서 그대로 누적되다보면 그럴 수 있다고, 의사선생님이 그러셨대. 어쨌거나 아무 문제없이 멀쩡하니까 뭐.”

 “아무 문제없으니까, 의사선생님도 이상 없다고 했겠지. 설마 이상이 있는데 없다고 하겠어?”

 은화대 정류장에서 버스가 멈추고 내리는 문이 열렸다.

 

 태양이 정말 눈부시게 따스했다. 이 정도면 지수는 너무 강하다고 싫어하겠지만, 난 마냥 좋기만 했다. 볕 아래에선 기운이 솟고, 기분도 좋아졌다. 안 먹어도 배부른 기분이 들기까지 할 때도 있었다.

 계단 아래로 내려서면서, 또 한 번 그렇게 생각했다. 물론 지수는 바로 뒤에서 투덜거리고 있었지만 말이다. 혼자서 뭐라고 하는지 뒤따라 내리는 지수 쪽을 돌아보았다. 지수는 왼손을 들어 올려 눈썹 아래로 그늘을 만들고는 얼굴을 잔뜩 찌푸리고 있었다. 그러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엄살이 가득 실린 말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너무 내리쬔다. 이렇게 10분만 있으면 살 다 익겠는데? 어휴, 나는 눈도 제대로 못 뜨겠는데 괜찮아?”

 “왜, 난 좋기만 한데. 근데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야. 우리 지각했어. 몰라? 지금 대체 몇 시야?”

 몇 시인지 확인하려고 가방을 뒤지는데, 또 다시 피식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지수가 걱정 말라고 했다. 그러면서 음악 감상 강의가 취소되었는데 내게 말하지 않았다고 했다. 느긋하게만 보이는 모습에 어쩐지 이상하다싶었는데, 강의취소였다.

 

 어찌어찌 학교까지 오긴 했지만, 오후 2시가 될 때까지는 시간이 비어있었다.

 “우리 도서관 가자. 나 뭐 좀 확인할 거 있어.”

 여기저기 둘러보던 지수는 그러자고 하면서, 도서관 쪽으로 빠르게 걷기 시작했다. 시간도 많은데 좀 전과는 다르게 일부러 그러는지 굉장히 급한 것처럼 구는 지수 모습이 우스워보였다. 난 서두르는 지수를 따라가면서 킥킥거리다가 무심코 뒤돌아보았다. 그런데 순간 스쳐가듯이, 하지만 분명하게 저기 멀리에 이해민이 걸어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 옆으로 한 사람이 더 서 있었다. 이해민에 가려져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아무래도 초희 같았다. 분명 초희였다. 난 한 걸음 앞에서 걸어가고 있는 지수 팔을 붙잡았다.

 “지수야, 잠깐만.”

 지수는 돌아보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멈춰 있었다. 난 지수 팔을 놓지 않고 붙잡은 채로 다시 키 큰 남자가 서있던 쪽을 돌아보았다. 그런데 그새 어디로 가버렸는지, 이해민 모습은 어디론가 감쪽같이 사라져있었다. 이해민도 초희도 어디론가 가버려서 보이지 않았다. 머릿속에 저번에 지수와 같이 걷다가 초희를 봤을 때가 떠올랐다. 본관 앞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려 놓치고 말았던 기억이 떠오르면서 겹치고 있었다.

 그땐 내가 뭔가 잘못 봤다고 생각했는데, 그렇다면 이번에도 내가 잘 못 보고 착각했다는 말이야?

 붙잡고 있던 팔을 놔두고 키 큰 남자가 서있던 곳으로 뛰어가려고 했다. 지수가 뛰어가려는 날 부르면서 붙잡았다.

 “왜 그래?”

 어딘지 모르게 긴장한 듯이 물어보는 지수 목소리에, 약간 굳어서 대답했다.

 “그 남자 봤어. 이해민.”

 내 말을 듣고 나서 지수가 놀랐는지 어쨌는지는 잘 알 수 없었다. 어색하게 약간 굳은 얼굴이었지만, 어찌 보면 아무런 변화가 없어 보이기도 했다.

 “누굴 봤다고?”

 “이해민 말이야. 나 쓰러질 때, 너랑 싸울 것처럼 노려보고 있었잖아. 둘이 아는 사이 아니었어?”

 계속 지수 표정이 신경 쓰였다. 자연스럽지가 않았다. 분명 어딘가 어색했고, 뭔가 단단히 불편해하는 얼굴이었다.

 “이해민이 누구야? 키 큰 남자라니? 꿈에서 본 거 아니야?”

 “아니야. 나 쓰러진 날, 이해민이라는 사람이 내가 두 시에 예약한 것 때문에 왔다고 하면서 어떻게 알았는지 내가 있는 카페까지 찾아왔었어. 그런데, 분명 그게 뭐든 예약이라는 걸 하지를 않았거든. 근데 무슨 예약이 잡혀 있다니까 황당하기도 하고, 왠지 좀 사기꾼 같잖아. 그래서 취소할 테니까 그냥 가라고 했어.”

 지수는 굉장히 진지하게 귀 기울여 듣고 있었다. 난 깊은 숨을 내쉬고, 이어서 말했다.

 “몇 번 대꾸하다가 그냥 밖으로 나가버렸는데, 그 남자가 내 뒤를 계속 따라오는 거야. 그러다 네가 나타났어. 근데 네가 그 남자랑 싸우는 것 같았어. 제대로 못 봐서 잘 모르겠는데, 아무튼 둘이 그러고 있는 모습 보다가 그대로 쓰러진 것 같아. 근데 생각해보니까 이해민이라는 사람 말이야, 내가 음악 감상 강의 때 졸다가 머리 부딪친 적 있다고 했잖아. 그 사람이야. 저번에 초희는 그 사람이 자기 남자친구라고 했어. 그런데 좀 이상해. 이해민은 그날 분명 카페에서 나한테, 날 처음 본다고 했어. 난 그때 그 말을 곧이곧대로 들었어. 정말 처음 보는 얼굴 같았거든. 근데 카페 밖으로 나와서 쓰러졌다가 방에서 깨어나고 나서는 잊어버렸던 게 몽땅 다 기억났어. 이지수 너, 이해민이랑 아는 사이 맞지. 아니라고 할 생각 마. 그때 너랑 이해민이 싸우면서 무슨 말 하는지, 다 들었어.”

 지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표정도, 별 변화가 없었고 오히려 아무렇지도 않아 보였다. 그렇지만 목소리만은 약간 가라앉아있었다.

 “진연두. 다 기억나지 않은 거 아냐? 아니면 네가 잘못 기억하고 있거나, 꿈꾼 내용을 실제라고 착각하는 건지도 모르잖아. 나 그날 종일 도서관에 있었어. 네가 쓰러졌다는 소식은 나중에야 들었는데 무슨 소리야.”

 

 갑자기 소름이 돋는 바람에 눈을 꾹 감았다 떴다. 현기증이 일었다. 아무래도 후유증인가.

 “지수야, 내가 그렇게 바보인줄 알아? 너 초희랑 이해민이랑 아는 사이 맞잖아. 아니라고 해도 소용없어. 너, 사실대로 말할 생각 없으면 앞으로 나 봐도 아는 척 하지 마. 알았어? 왜 모르는 사이라고 했는지 말할 마음 생기면, 그때 연락해.”

 이유를 알 수 없게 갑자기 스스로 놀랄 만큼 화가 나 있었다. 이래저래 어이가 없었다. 정말 제대로 잔뜩 화가 나서는 딱 굳어서, 지수를 밀치고 도서관 쪽으로 움직였다. 그때 지수가 말없이 한 차례 내 팔을 붙잡았다. 난 머리끝까지 화가 치민 상태였다. 말없이 가지 말라고 힘없이 붙잡는 지수 손을 사정없이 뿌리치고는 그대로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그러고 나니 지수도 더 이상 날 붙잡으려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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