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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해바라기,너에게
작가 : 신정
작품등록일 : 2019.10.18

평범한 여대생 진연두 이야기

 
해바라기,너에게 7
작성일 : 19-10-18 08:51     조회 : 239     추천 : 0     분량 : 105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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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15 17 19 21

 

 황당하지도 않았고, 화가 나지도 않았다. 그냥 일어서서 서둘러 문밖으로 빠져나왔다. 그리고 잠시 문 옆 차가운 벽에 기대서서 마음을 가라앉혔다. 전혀 아무렇지 않은 건 아니었다. 약간 슬펐다. 연두는 차게 식어있는 복도에서 건물 밖으로 빠져나가 내리쬐는 햇볕 아래로 들어섰다.

 

 이럴 때면 어쩌면 사람도 광합성을 할 수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따뜻한 온기 자체인 볕이 피부 밑으로 찌르고 스며드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이런 온기 속에서는 때때로 정말 진짜 광합성을 하는 식물이 된다면 어떨지 상상해보기도 했다.

 의외로 꽤 괜찮을 지도 몰라.

 눈앞에 보이는 의자에 앉아 잠시 동안이라도 그 온기를 만끽하고 싶었다. 그렇게 햇볕을 내리쬐고 있는 시간이 길게 늘어져 흘러가면 갈수록, 가라앉았던 기분이 좋아지고 몸 전체에 기운이 솟아났다.

 이럴 땐 역시 광합성이 특효야.

 햇볕에 대해서 생각해보면, 어딘지 모르게 연두가 좀 유난스럽다싶긴 했다. 하지만 그건 그만큼 햇볕 쬐기를 좋아하기 때문이었다. 다른 무엇보다도 햇볕을 내리쬐면 기분이 좋아지고 기운이 솟아난다는 사실이 중요했다.

 

 의자에 앉아 햇볕을 쬐다가 따사로움에 물든 채 스르르 단잠이 들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다시 정신을 차리고 깨어나서 가만히 눈뜨고 일어났다. 몇 시인지 확인하려 휴대전화를 꺼내들었다. 01:42. 그런데, 잠깐 잠들어있던 사이에 문자가 7통이나 와있었다. 거의 지수가 보낸 것들이었다.

 지금 어디야. 이거 보면 바로 전화 줘.

 지수에게서 똑같은 내용으로 무려 5통이나 문자가 와 있었다.

 무슨 일 있나?

 그 다음 2통은 모르는 번호였다. 그런데 내용을 보니 아무래도 초희인 것 같았다. 미안하다고 나중에 얘기하겠다고 써 보냈는데, 도통 이해할 수 없는 말이었다.

 연두는 휴대전화를 가방에 집어넣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데 초희가 보낸 게 분명해 보이는 문자를 생각하니 갑자기 화가 치밀었다. 분명 그전까지는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초희가 보낸 문자를 보니 화가 났다. 하지만 그렇게 화나는 것보다도 지수가 먼저였다. 얼마나 급한 일이기에 똑같은 내용으로 다섯 통이나 보냈는지 걱정되었다. 게다가 지수에게서는 이미 부재중 전화까지 여러 통 와있었다. 연두는 지수와 자주 가는 카페 쪽으로 걸음을 옮기면서 전화를 걸었다.

 뚜. 뚜. 뚜. 뚜.

 신호음은 계속 가는데, 전화를 받지 않았다. 결국 전화는 연결되지 않고 신호음이 끊겼다. 뒤이어 음성사서함에 대해 안내해주는 컴퓨터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연결이 되지 않아 삐 소리 후…. 전화를 끊고, 휴대전화를 주머니에 넣었다.

 

 카페 앞에 도착해서 지수에게 한 번 더 전화해볼까 하다가 그만두고 우선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이미 안에서는 주문하기 위해 다섯 사람이나 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주문 도와드리겠습니다.”

 “연유머핀이랑 핫초코요.”

 “드시고 가실 건가요?”

 “네.”

 “5800원입니다.”

 만 원짜리를 내밀었다.

 그렇게 전화하고 문자까지 보내놓고는 왜 안 받는 거야.

 “거스름돈 4200원입니다. 앉아서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다음 분 주문 도와드리겠습니다.”

 점원이 건네주는 거스름돈과 영수증과 벨을 받아들고 빈자리에 가서 앉았다. 그런데 한가하던 카페에 갑자기 손님들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연두는 밖에서 전화하지 않고 그 전에 먼저 들어오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게 들어가서 앉은 자리는 주문하는 곳에서 가장 가까운 바로 앞자리였다. 보나마나 그 자리에 앉아있으면서 점점 불편해지리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 자리는 주문하는 곳 바로 앞에 붙어있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어쩌면 주문하려고 길게 늘어선 채 본인 차례를 기다리는 중인 사람들이 앉은 자리 바로 옆으로 곧 닿을 것 같았다. 이렇게 여러 명이 줄서서 기다리고 있을 때면 정말 신경이 쓰이고 불편하기 그지없는 자리였다. 조금이라도 빨리빨리 주문이 끝나고 늘어선 줄이 사라지기만을 기다리면서 테이블 위에 놓인 벨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그러다가 문득 주머니에 넣었던 휴대전화를 꺼내들고는 지수에게 다시 한 번 전화를 걸어보았다.

 뚜. 뚜. 뚜. 뚜. 뚜. 뚜…

 [PM13:57]

 드르르르르. 빨간색이 번쩍이면서 진동이 울렸다. 연두는 앉은자리에서 일어서서 주문하는 곳 쪽으로 돌아섰다. 연유머핀과 핫초코가 올려진 쟁반 안쪽으로 벨을 내려놓고, 쟁반을 들어 줄선 사람들 사이로 지나쳐서 다시 한 발짝 뒤에 있을 뿐인 테이블로 돌아가 앉았다. 옆쪽에 여전히 기다리고 서있는 사람들을 보면서 좀 불편한 기분으로 머핀 한 입을 떼어먹었다.

 이렇게 되자 초희에게도 지수에게도 화가 났다. 뭐가 미안하다는 건지, 대체 뭘 얘기한다는 말이며, 문자는 보내놓고 왜 전화를 안 받는지 말이다. 화풀이하듯 머핀을 포크로 푹 찔러 덩어리째 집어 들고는 입으로 가져가 크게 한 입 떼어먹었다. 그런데 그때 줄 서서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 틈에서 한 사람이 빠져나오더니, 연두 쪽으로 다가와 앞에 서며 불렀다.

 “진연두.”

 마주보이는 벽에 걸려있는 꽃시계, 14:00.

 

 생전 처음 보는 사람이 다가와 익숙하게 이름을 부르면서 말을 걸었다. 놀라고 당황하여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되물었다.

 “네? 저요?”

 “연두 씨, 맞으시죠?”

 “네. 제가 진연두인데, 누구세요?”

 앞에 서서 말을 거는 사람을 올려다보았다.

 “역시 맞으시군요. 연두 씨, 안녕하십니까. 제 시간에 맞춰 오려고 했는데, 늦고 말았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대신 보상은 확실하게 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연초희 대신 오게 된 이해민이라고 합니다. 연초희에게, 연두 씨가 ‘진연두’라는 이름으로 두 시에 예약하셨다는 말을 전해 들었습니다. 이렇게 대리로 오게 된 점 죄송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한 보상 역시 충분히 만족하실 수 있을 만큼 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연초희? 초희요?”

 어리둥절하고 혼란스러웠다.

 ‘오후 두 시 예약’이라는 메모가 바로 이거였나?

 그런데 여전히 그 내용이 뭔지는 전혀 기억나지 않았다. 그런데 이 얼굴은, 분명 이 남자는 어디선가 본 적이 있었다. 정확하게 기억나지는 않지만 분명 낯익은 얼굴이었다.

 

 찰칵.

 

 “저, 괜히 하는 말이 아니고 정말 궁금해서 그러는데, 혹시, 전에 어디서 저랑 만난 적 있으세요?”

 연두가 묻는 말에 그 사람은 좀 놀란 듯 얼굴빛이 살짝 달라졌다.

 “아뇨, 처음 만나 뵙는 겁니다. 원래 연초희가 오기로 되어있었지만, 개인적으로 피치 못할 사정이 생기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대신 오게 되었습니다.”

 초희에게 무슨 예약을 했다는 거지. 정말 모르겠어. 대체 뭐야.

 “근데, 지금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전혀 모르겠어요. 난 예약한 적 없어요. 아무것도요. 정말 예약되어있으면, 그 내용이 뭔지 말해주세요.”

 앉은 자세 그대로 앞에 서있는 사람을 올려다보며 물었다. 하지만 그는 그에 대한 대답은 하려고 하지 않고 계속해서 연두를 재촉하기만 했다.

 “연두 씨,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같이 가시죠.”

 예약한 것에 대해서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고 있는데 어디로 왜 가야 하는지 물어봐도 말해주지도 않고 재촉만해서 당황스러울 뿐이었다. 설명해달라는 말에는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고 재촉하는 모습이 의심스럽기만 했다. 그런 사기꾼 같은 사람 뒤를 오라는 대로 따라가고 싶지 않았다.

 “지금 친구랑 약속이 있어서 그 친구 오길 기다리고 있는 중인데요.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냥 예약은 취소하는 걸로 해주세요. 보상은 해 주실 필요 없으니까 그 걱정은 안 하셔도 돼요. 초희한테는 연두 씨 개인적인 사정으로 예약이 취소되었다고 전해주시고요. 그래도 되죠?”

 대답을 듣고 나서 그 남자는 미묘하게 경직된 표정으로 연두 앞에 서있는 그 자세 그대로 굳어버린 것 같았다. 그런데 바로 앞에 서서 처음 이름을 부를 때부터 그 남자는 어딘지 모르게 화난 사람처럼 딱딱하게 굳어있는 모습이었다. 다시 말하면서 그가 작게 중얼거리는 목소리에 지금 꽤나 다급해하는 기색이 묻어났다.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어. 지금 가지 않으면 또….”

 

 주문하기 위해 줄 서있는 사람들이 한 명씩 줄어들면 그만큼 채워 넣기라도 하는 것처럼 맨 뒤쪽에 한 명씩 다시 줄 서는 상황이었다. 차례를 기다리고 늘어선 줄이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고 그대로 그 길이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는 그 줄 바로 옆으로 서있으면서 줄서서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자꾸 밀리고 치이는데도 빠져 나갈 생각을 않고 있었다. 오히려 뭔가 결심하기라도 한 듯이 연두 맞은 편 의자를 빼내더니 그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진연두 씨, 그 친구에게는 나중에 사정을 설명하고 일단 따라 움직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좀 이상하네요. 본인이 취소하겠다고 하는데 왜 그러세요? 꼭 따라가야 한다는 법이라도 있나요? 뭘 예약했다는 말인지 기억도 안 나지만, 그게 뭐든 상관없어요. 그냥 취소해주세요. 그리고 저한테 아무것도, 보상해주실 필요도 없어요.”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눌러 빙빙 돌리며 말했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냥 뭔가 놀라서 멍해진 표정이었다. 당장 그 자리를 피하고 싶었다. 더 이상 정체불명 불청객과 마주앉아있고 싶지 않았다. 연두는 쟁반을 들고 일어섰다. 그런데 곧장 튕기듯 그 사람이 뒤따라 일어났다. 그걸 애써 무시하면서 정해진 자리에 쟁반을 올려놓았다. 그리고 그날따라 유난히도 북적거리는 카페에서 급히 빠져나갔다.

 가방은 오른쪽 어깨에 걸치고 있었다. 머핀을 담은 종이봉투는 왼손으로 집어 들고 빨대 꽂은 핫초코 한 잔을 오른손으로 들고 한 번 빨아 마시고는 급하게 정문 쪽으로 걸어갔다. 그런데 그 사람이 연두가 걸어가는 두세 걸음 뒤쪽으로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마치 미행이라도 하는 것처럼 따라붙어 쫒아오고 있었다.

 뒤따라오는 사람을 돌아보면서, 그만 따라오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것도 소용없었다. 그러자 미행하는 거냐고 더 따라오면 신고하겠다고 사방에 다 들리도록 크게 소리 지르는 편이 훨씬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결심하고 뒤돌아섰는데, 뒤쪽에서는 언제 어디서 온 건지 지수가 그와 마주보고 서있었다.

 왠지 두 사람은 서로 잘 사이인 것처럼 보였다. 지켜보고 있으려니 서로 몇 마디가 오가는 모양이었다. 그런데 지수가 험악한 표정을 짓고서 소리를 지르든 멱살을 잡든 할 것처럼 상대를 노려보기 시작했다.

 무슨 일이야? 왜 저러는 거지?

 

 갑자기 머릿속에 이명이 가득 찼다. 소리를 지르기 시작한 지수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다. 다른 소리 또한 마찬가지였다. 머릿속엔 오로지 이명뿐이었다. 그러더니 잠들려고 할 때 서서히 흐려지고 꺼져가는 것처럼 시야가 부옇게 흐려지고 어두워졌다가 다시 돌아왔다.

 어지럼증에 고개를 들어 뒤로 젖혔다. 그리고 그 순간 해를 바로 볼 수 있었다.

 

 바로 보는 태양은, 빛을 발산하고 있는 청록색 어두운 점이었다.

 뒤로 넘어갔던 고개를 바로 하여 다시 정면을 향하도록 목에 힘을 주었다. 다시 한 번 시야가 점점 부옇게 흐려지더니, 이내 시야에 가득한 온갖 색들이 쪼개지고 갈라져나가면서 마치 번개 치는 것처럼 지지직거리기 시작했다. 수직으로 내리치는 번개가 하나였다가 두 개로, 또 세 개로 하나씩 더해져갔다.

 이리저리 유연하게 휘어지는 화면을 휙 잡아 좌우로 빠르게 한 바퀴 돌리는 것처럼, 가운데가 푹 꺼져들었다가 깜짝할 새 원상 복귀되는 시야에도 이명이 가득했다.

 바로 눈앞에 엉망으로 뒤엉켜버리긴 했지만 지수처럼 보이는 형상이 나타나 꿈틀거리고 있었다. 그런데 그 형상은 어느 새 지글지글 끓어오르면서 갈라져나가는 모습으로 일그러지는 모양을 하고 있었다.

 자꾸 다리에 힘이 빠지려고 하는 탓에 계속 무릎이 꺾였다. 그래서 허리를 숙인 채 무릎을 짚으며 바로서고, 또 바로서기를 반복했다. 무릎관절과 그 아래 발가락까지 이명이 퍼져나가 울리는 듯했다. 그 와중에 연두는 지수가 뭐라고 소리를 지르더니 키 큰 남자 멱살을 잡아 흔들기 시작하는 걸 알 수 있었다.

 

 한 번도 아픈 적이 없었던 목 안쪽이 온통 부어오른 상태인데다, 설상가상 그 안쪽으로 갑자기 잔뜩 가래가 낀 것 같았다. 목소리가 제대로 나오기나 할지 의심스러웠고 소리 내어 말하기도 힘든 상태였지만, 있는 힘껏 소리쳐 지수를 불러보았다. 그런데 지수를 부르고 있는 목소리가 어떤지 들을 수 없었다. 목에서 느껴지는 떨림으로 보아 분명 소리가 나오고 있긴 하다는 사실 정도를 알 수 있을 따름이었다. 이렇게 말하려고 했었다.

 지수야, 그만 해.

 지지직거리는 시야가 좀 전보다는 얌전하게 잦아든 상태였다. 그래서 느릿느릿 비척이며 지수일 것으로 추정되는 형태를 향해 움직여 갔다.

 [연두야 뭐야 왜 이래 어떻게 괜찮아]

 

 몸 전체에 가득 차서 울리고 있는 이명 때문인지 다른 소리는 들리지가 않았다. 지수가 뭐라고 말하는지, 비척이며 다가가 어깨를 짚고 돌아서는 지수 얼굴을 보기 전까지는 뭐라고 소리를 지르는지 알 수 없었다. 시간이 지나도 목소리를 들을 수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 내용이라면 파악해볼 수 있을 정도였다. 신기하게도 지수가 말하는 모습을 관찰하여 뭐라고 말하는지 알아들을 수 있었다. 그럴 수 있다니 신기하기만 했다.

 어떻게 갑자기 지수가 말하는 모습만 보고 뭐라고 말하는지 알 수 있게 된 거지?

 힘껏 얼굴근육을 끌어올려 수축시키면서 지수에게 대답했다. 괜찮다고 그런데 몸이 좀 이상하긴 하다고, 하지만 목소리가 어떻게 흘러나가고 있는지 확인할 수는 없었다. 곧 울 것처럼 지수 얼굴이 일그러지면서 걱정으로 가득해졌다.

 [연두야]

 지수야, 나 집에 데려다줘.

 지수에게 더 걱정 끼치고 싶지 않았다. 계속해서 꺾이는 무릎을 다시 펴 세우고 또 세우면서 바로 서 있으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지수 옆에 서있던 사람이 말했다.

 [진연두, 무릎이 꺾이면 그냥 버티지 말고 앉아라]

 정말 당신 대체 누구야.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하는데]

 [그만 해라]

 지수야. 나,

 부르는 목소리가 제대로 나오긴 나온 건지 모르겠다. 그런데 지수가 굳어있던 얼굴 가득 걱정이 실려서 다시 연두 쪽을 돌아보며 말했다. 지수는 다리가 꺾여 주저앉으려는 걸 옆에서 붙잡아 부축해주며 말하고 있었다. 그런데 키 큰 남자가 그런 지수 팔을 붙잡으며 연두를 쳐다보았다.

 갑자기 조금 나아졌단 싶었던 시야가 그전보다 훨씬 더 심하게 지지직거리더니 색을 잃고 흑백화면이 되었다가, 팟, 켜지면서 까맣게 갈라지기 시작했다. 이내 지수 얼굴부터 얼룩 같은 흑백모자이크처럼 깨지고 갈라져나갔다.

 곧 지수가 말을 하는 건지 마는 건지도 정확하게 분간하기 어려워졌다. 시야 전체가 흑백 점으로 갈라지고 깨져나가기 시작하면서, 누가 누군지 지지직거리는 타원으로 뭉개진 두 사람 얼굴을 전혀 분간할 수 없게 되었다. 갑자기 감당 못할 졸음이 밀려들었다. 하품할 새도 없이 마치 전원을 내리는 것처럼, 의식이 사라졌다.

 

 

 38. 상아26J

 

 수술대 앞에서 ‘진연두’를 내려다보며 연초희가 입을 열었다.

 “정말 어쩌면 해민이 말대로 초기화해야 될지도 모르겠는데요? 이대로 가다가 본체가 손상되기라도 하면….”

 “초기화하는 문제라면 이미 오래전부터 얘기 나오고 있었잖아? 그리고 이제는 다들 하자는 쪽으로 기울고 있는 거 아니었어? 그러니까 수술을 누구한테 맡겨야 하는지 말들까지 나왔던 거고. 어차피 할 거라면 말이야.”

 중간에 끼어들며 이해민이 하는 말에 수술대를 둘러싸고 서있던 연구원들이 하나둘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 무리에서 뚝 떨어진 채로 이지수는 벽에 등을 기댄 채 홀로 서있었다. 그런데 팔짱을 낀 자세로 약간 무심한 듯이 그렇게 지켜보고만 있던 그가 눈을 치켜뜨며 팔짱을 풀고 기대있던 자세에서 바로 선 것은, 이해민이 다른 연구원들에게 하는 말을 듣고 난 직후였다.

 “수술이라니, 반대야. 안 돼. 초기화에 적출이라니, 절대로 안 될 말이야.”

 연구원들 시선이 이제 초기화에 반대의견을 내놓는 이지수 쪽으로 돌아가 있었다. 수술대를 둘러싼 사람들 사이에서 ‘진연두’ 오른편 어깨가 놓인 위치에 서있던 이해민은 이지수 말에 거부의사를 밝히며 경고하듯 다시 한 번 강하게 말했다.

 “이지수. ‘진연두’에 대해서 너는 아무런 발언권도 없어. 교수님께서 들여보내주시긴 했지만, 쫓겨나고 싶지 않으면 그 자리에 방금처럼 가만히 서서 듣고만 있는 게 좋을 거야. 넌 이번 연구와 아무런 상관이 없는 사람이라는 거 잊지 마. 너한테는 미안한 말이지만, 이제 ‘진연두’는 본체적출은 물론이고 초기화까지도 더는 피할 수 없을 지경까지 이르렀어. 그게 현실이야.”

 이지수는 앞으로 한걸음 내딛었던 걸음을 멈추고 주춤하면서 노려보기 시작했다. 그때 ‘진연두’ 머리 위쪽에 서있던 교수는 어느 쪽으로도 고개를 돌리지 않은 채 가만히 듣고 있었다. 교수는 본체가 이식되어있을 내부를 뚫어보기라도 할 기세로 그 이마만을 내려다보면서 두 사람에게 말했다.

 “둘 다 동작 그만. 이해민 말이 맞다. 이지수 넌 발언권이 없어. 난 네가 한 쪽에서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겠다고 해서, 그 조건으로 참관을 허락했다. 그만 서있던 자리로 돌아가. 그리고 이해민, 너도 마찬가지야. 집중해.”

 교수 말이 떨어지자 이지수는 늘어뜨린 팔에 힘을 주고 주먹을 쥐며 수술대 쪽을 뚫어져라 쳐다보면서 말했다.

 “죄송합니다.”

 “주의하겠습니다.”

 다시 의자에 앉는 이지수를 보며 이해민 역시 처음 서있던 그 자세로 돌아섰다.

 

 ‘진연두’는 지금 수술대 위에 눕혀 놓은 상태이다. 눈꺼풀은 위로 올라간 모양을 하고 있다. 동자 둘레를 사방으로 감싸는 흰자위가 보일만큼 눈이 크게 뜨여있는 모습이다. 물기 없이 마른 눈이다. 그 눈에 깊이 없이 불투명한 눈동자가 박혀있다. 불투명하게 가로막힌 두 눈 아래쪽으로는 단정하게 뻗어나가는 콧날과 힘 빠진 일자로 가볍게 다물어져있는 입술이 놓여있다.

 파란색으로 그늘진 가운들이 옆으로 나란히 늘어서서 ‘진연두’가 올려져있는 수술대를 가리고 서있었다. 이지수는 사람들 몸에 가려진 수술대 위가 보이기라도 하는 것처럼 그 쪽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그런데 곧 이리저리 고개를 기울이며 눈을 떼지 못한 채 엉거주춤 움찔거리면서, 한 자세로 서있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교수 옆에 서서 마찬가지로 뚫어져라 ‘진연두’를 내려다보고 있던 연초희가 스쳐가듯 안절부절 못하는 그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가 거두어들였다. 그때 교수가 말했다.

 “어차피 점심때도 되었으니 다들 좀 쉬었다가, 정확히 한 시간 뒤, 연구실에서 모이는 걸로.”

 말을 마치고 수술실 밖으로 나서는 교수를 비롯하여 하나둘씩 다른 연구원들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어느 새 이지수는 벽에 기대어 쪼그려 앉은 자세로 팔꿈치를 무릎에 기댄 채, 양손으로 고개 숙인 이마를 받치고 있었다.

 수술실에서 나갈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연구원들은 문 앞으로 한꺼번에 우르르 몰려있었다. 연구원들은 한 사람씩 빠져나가고 있었다. 그런데 문밖으로 나서기 전에 다들 한쪽에 쪼그려 앉아있는 이지수를 한 차례는 흘긋거렸다. 그 중 연초희와 이해민은 다른 사람이 빠져나가고 나서도 마지막까지 남아 있었다. 쪼그려 앉아 고개 숙인 자세 그대로 굳어버린 것처럼, 그 자리에서 일어날 생각이 없어 보이는 이지수 또한 마찬가지였다.

 “지수야, 일어나. 우리도 이제 나가야 돼.”

 그는 일어나라고 말하는 쪽을 올려다보았다. 그러고는 가만히 일어서면서 말했다.

 “알잖아. 이대로 초기화는 안 된다는 거.”

 말을 마치고나서 그는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싼 채 허리를 푹 숙이더니 튕기듯 벌떡 일어섰다. 그리고 수술대 쪽으로 빠르게 다가가 ‘진연두’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어쨌거나 초기화는 정말, 절대 안 돼. 내가 이번 연구에서 빠지게 된 건 맞아.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초기화는 안 될 말이야. 연구에서 빠진지 꽤 오래 되었다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래도 5년간 ‘진연두’담당이었어. 연구에 참여하지 않기로 했다고 해서 아예 의견도 낼 수 없다니 말이 안 돼. 본체 적출에 초기화라니 정말, 그럴 수는 없어. 그건 지금까지 잘 진행되어 온 연구를 단번에 무너뜨리는 거나 마찬가지야.”

 초기화에는 무조건 반대한다고 말하면서 이지수는 그 표정도 못지않게 단호했다. 그는 굳은 표정 아래 수술대에 가만히 눕혀져있는 ‘진연두’를 보더니 그 머리칼을 부드러운 손길로 쓰다듬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이해민이 입술 한 쪽 끝을 끌어올리며 다 들으라는 듯 코웃음을 쳤다.

 “네가 하는 말이 네 감정 때문이 아니라 ‘상아’를 위해, 현재 진행되고 있는 연구를 위해 내린 결정이라고 하지만, 별로 믿을 수가 없다. 그리고 초기화한다고 연구를 무너뜨리는 거나 마찬가지라는 말은 대체 무슨 소리냐?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릴 하면서 쓸데없이 분란 일으킬 생각이라면, 이 근처에 오지도 마. 연구모델 머릿속에 심어놓은 본체 하나 초기화한다고 해서 상아연구가 중단될 것 같아?”

 “설마 너, 연두가 다른 연구모델과 똑같다고 여기는 건 아니겠지. 멀리 갈 것도 없이 ‘22M’을 보면 쉽게 알 수 있을 텐데. 아무런 진척도 없이, 재설정하면 재설정하는 대로 새 프로그램이 깔리면 또 그냥 그대로, 결국에는 설정과 지시에 따라서만 움직이게 되었다는 거 말이야. 네가 담당이었으니까 누구보다도 잘 알겠지. ‘22M’은 거듭된 업데이트에도 불구하고, 나중엔 주어질 명령만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어. 그런데 ‘22M’ 담당자였던 네가 연두에 관해 그렇게 말할 수 있어?”

 “너….”

 말끝에 표정 없이 입을 굳게 다물며 쳐다보는 이지수를 마주 노려보고 있던 이해민 얼굴이 붉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그렇게 서로 노려보고 서있는 두 사람 간에 심상치 않은 분위기가 형성되려하자 연초희가 불안한 눈초리로 말리려는 듯 끼어들었다.

 “이제 그만 해. 연두에 관한 건, 여기서 이렇게 얘기할 문제는 아니야. 일단 밖으로 나가자. 해민아, 그만하고 나가자. 빨리.”

 연초희는 두 사람이 수술대에서 떨어지도록 끌어당겼다. 그리고 순순히 끌려오는 두 사람 등을 떠밀며 수술실 문 밖으로 밀어내더니 수술대 쪽을 한 번 돌아보고는 자신도 문 밖으로 빠져나가면서 불을 껐다.

 불 꺼진 수술실에, 그대로 수술대 위에 가만히 올려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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