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ading...
1일간 안보이기 닫기
모바일페이지 바로가기 > 로그인  |  ID / PW찾기  |  회원가입  |  소셜로그인 
스토리야 로고
작품명 작가명
이미지로보기 한줄로보기
   
 
자유연재 > 판타지/SF
해바라기,너에게
작가 : 신정
작품등록일 : 2019.10.18

평범한 여대생 진연두 이야기

 
해바라기,너에게 2
작성일 : 19-10-18 08:44     조회 : 255     추천 : 0     분량 : 9336
뷰어설정 열기
뷰어 기본값으로 현재 설정 저장 (로그인시에만 가능)
글자체
글자크기
배경색
글자색
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6. 연구실

 

 순간 마치 눈앞이 뒤로 멀어지거나 앞으로 밀려오는 기분으로 어지럼증을 느끼며 발끝에다 시선을 맞춘 채 집중했다. 소독약 냄새가 났다. 다시 교수님 얼굴을 쳐다보았다.

 “봐주는 것도 한계가 있어. 너, 계속 이런 식이면 과제건 시험이건 상관없이 이대로 낙제야. 다른 방법이 없어. 매 강의시간마다 네가 안 졸고 멀쩡히 깨어있는 걸 본 적이 별로 없어. 거기다 벌써 지각이 두 번째야. 이걸 대체 어떻게 생각해야 되지?”

 “죄송합니다.”

 “됐어, 어쨌거나, 너 이런 식으로는 도저히 안 돼. 그러니까 남은 시간만이라도 잘 하란 말이야. 알겠어?”

 “네.”

 “정말이야. 이렇게 말하는 것도 이번이 마지막이야. 이제 더는, 봐주는 거 없어.”

 “네. 열심히 하겠습니다.”

 “정말 두고 볼 거야. 나가봐.”

 “감사합니다. 안녕히 계세요.”

 

 

 7. 카페

 

 테이블마다 소곤거리는 소리들이 불분명한 형태를 띠고 음악에 뒤섞이며 어울려들고 있었다. 연두는 메뉴를 살펴보고 있었다.

 머핀? 티라미스. 라즈베리무스. 수플레. 마실 거 뭘 시켰더라.

 지수가 주문하기 위해 계산대 앞에 줄서서 기다리고 있는 쪽을 보았다. 한 명 한 명 사람들이 줄어들고 곧 지수 차례가 되었다. 연두는 점원에게 말하고 있는 지수에게서 시선을 돌려 다시 메뉴를 살폈다. 약간 속이 비어 있었는데, 사실 배가 좀 고팠다. 그런데, 마실 걸 뭘 시켰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주문하고 계산을 마친 지수가 벨을 들고 연두 맞은편 자리에 앉았다.

 “뭐 또 시킬 거 있어?”

 “아니.”

 “뭐 먹고 싶은데.”

 “아니, 우리 방금 뭐 주문했지?”

 

 지수 이마가 시작되는 선부터 눈썹아래 눈동자 절반정도에 이르는 동공. 순간 검은빛이 빠르게 살며시 그렇지만 선명하게 스치고 지나가는 듯했다. 그런데 정말 찰나에 불과한 순간에 벌어진 일이라, 제대로 보았는지 착각인지 알 수가 없었다. 연두는 좀 어리둥절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렇게 생각했다. 이 순간 왠지 지수에게 변명해야할 필요가 있었다.

 “난 그냥….”

 “뭐 주문했냐고? 핫초코랑 카페모카. 너 핫코초 마시고 싶다며.”

 “아…그랬지, 참.”

 여전히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런데도 지수에게 기억난 척 대답하고 웃었다. 왠지 모르게 우스웠고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연두는 방금 전 왜 변명하려고 했는지 생각해보았다. 그런데 그때 어디서 전화벨 울리는 소리가 들렸다. 곧 지수가 잠깐만, 하더니 휴대전화를 꺼내들고는 몸을 돌려 손으로 가리고 전화를 받았다.

 “여기 시끄러워서 잘 안 들리잖아. 나가서 받고 오는 게 나을 텐데.”

 “금방 끝나.”

 통화 중인 지수를 쳐다보던 시선이 자연스레 메뉴판 붙어있는 쪽으로 돌아갔다가 다시 돌아왔다. 보아하니, 아무래도 금방 간단히 끊기 어려워 보이는 모습이었다. 드르르 벨이 진동했다. 연두는 벨을 들고 일어났다. 지수 시선이 일어서는 연두를 따라왔다. 왜 그러냐는 표정을 짓는 지수에게 빨간 불이 깜빡거리는 벨을 들어 보이고는 주문대 쪽으로 갔다.

 

 “주문하신 핫초코 하나, 카페모카 하나 나왔습니다.”

 컵에 빨대를 꽂은 뒤, 쟁반을 들고 자리로 돌아와서 어느새 통화를 마친 지수 앞에 카페모카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핫초코를 들어 입 가까이로 가져가다가 지수 앞에 내려놓았다. 그러자 지수는 연두를 멀뚱하게 쳐다보았다. 손을 뻗어 말없이 지수가 들고 있는 카페모카를 한 입 빨아먹었다. 황당하다는 듯 헛웃음을 터뜨리는 모습. 연두는 그 모습을 쳐다보며 빨대를 입에 문 채 킥킥거리다가 사레가 들렸다.

 기도로 들어선 카페모카 몇 방울이 격한 기침으로 이어졌다. 입을 가리고 몸을 숙인 채 대여섯 차례 크게 기침했다. 그런데도 쉽게 나아지지 않고 기침이 계속 나왔다. 그러자 지수가 물을 따라와 건네주었다.

 “그러니까 네 꺼나 잘 마실 일이지.”

 등을 살살 두드려주면서 괜찮은지 물어보는 지수의 팔을 밀어내며 살짝 눈을 흘겼다. 그리고 컵을 받아들어 담긴 물을 벌컥벌컥 한 번에 들이켰다.

 “아, 이제 좀 괜찮아졌어.”

 “연두야, 좀 조심 좀 해. 근데, 모카는 그냥 너 마셔라.”

 “왜, 딱 반 모금밖에 안 마셨는데.”

 “마시다가 도로 뱉었잖아. 그런 걸 어떻게 먹어.”

 “야, 내가 언제!”

 얼굴이 화끈거렸다. 하지만 결국 카페모카는 연두가 마시기로 했다. 본래 마시려고 했던 핫초코는 자연스레 지수가 마시고 있었다.

 “지금 몇 시야?”

 “열한시 사십분인데, 나 배고프다. 우리 뭐 좀 먹자.”

 

 

 8. 도서관

 

 “뭐해.”

 화들짝 놀라서 엎드려있던 몸을 일으켜 주변을 둘러보았다. 오른쪽. 왼쪽. 지수가 왼쪽에 서 있었다. 자연스럽게 책을 덮고 가방을 챙겨 일어났다.

 “지금, 꿈이었나.”

 “꿈? 그새 꿈씩이나 꿨어?”

 “너랑 도서관에 있는 줄 알았어. 근데 아니야.”

 지수가 웃었다.

 “무슨 바보 같은 소리야. 여기 도서관 맞아. 더 볼 책 없지? 이제 나갈까?”

 1시54분이다. 강의가 2시인데.

 “어떡해. 늦었다. 두 시에 강의 있는데.”

 “뭐? 빨리 가자 그럼. 아직 안 늦었어.”

 얼굴 밑에 깔려 있는 책을 빌리려고 했는지 그냥 보려고 들고 왔는지 잘 모르겠다. 연두는 일어서려다가 베게삼아 얼굴 밑에 깔고 잤던 책을 한 번 다시 펼쳐 보았다. 놀라웠다. 아니 이상했다. 그런데 정말 펼쳐 본 쪽수에는 숨 막히는 수식이 계속 이어내려가고 있었다. 그런 수식이라면 연두로서는 도저히 알아볼 수도 없었고, 정말 난생 처음 보는 문자일 따름이었다. 두 쪽을 거의 다 채우며 쓰여 있는 수식은 당황스럽기만 했다.

 이게 뭐야.

 

 책장 넘기는 소리 책 꽂는 소리 펜 놀리는 소리 지퍼 여는 소리 가방 챙겨드는 소리. 도서관에는 공부하는 학생, 책을 들여다보고 있는 학생들로 가득했다.

 자리에서 일어나 문 가까이에 서서 보니, 연두가 앉았던 자리에 이미 다른 사람이 자리 잡고 앉아 책을 꺼내고 있었다. 어쩌면 강의에 늦을지도 모를 만큼 급한 상황이었다. 그렇지만 고개 밑에 베게처럼 놓여있던 책을 좀 더 훑어보고 싶었다. 그런데 일어난 자리에 곧바로 다른 사람이 앉아버렸다. 괜히 일어났다 싶었다. 연두는 주변을 둘러보며 기대서 읽을 만한 곳이 있는지 살펴보았다. 그렇게 여기저기 둘러본 끝에 도서관 입구 쪽으로 가장 바깥쪽에 세워져있는 책장 안쪽이 적당하다싶어 그쪽으로 돌아섰다. 그런데 지수가 붙잡았다.

 “왜 또. 뭐 있어? 늦었다며. 빨리 가자.”

 “이 책 좀 보다 가려고.”

 “무슨 소리야. 늦어도 괜찮아?”

 그냥 가자.

 

 

 9. 저녁식사

 

 한 숟갈 떠먹었다. 밥알을 하나하나 씹는다. 물기 없이 된밥 낱알하나하나가 입 안에서 굴러다니며 씹히고 있다. 숟가락을 들어 계란찜을 한 숟갈 떠냈다. 입으로 밀어 넣고 밥과 함께 씹다가 목 뒤로 삼켰다. 부드러운 식감. 은은한 파 향. 간간하다.

 “맛있지?”

 “네. 맛있어요.”

 저녁식사 중이었다. 오랜만이었다. 상 위에 오른 계란찜은 오래전에 맛보았을 때와 똑같은 맛이었다.

 

 아침 같은 경우 일찍 일어나야 제대로 먹을 수 있었다. 늦게 일어나 마음만 바쁘고 허둥지둥 정신이 없을 땐 아예 거르고 말거나, 이 맛인지 저 맛인지 짠지 쓴지 단지 느끼지도 못하고 무조건 위장으로 밀어 넣기도 했다. 때로는 무른 진흙을 씹는 기분으로 식사하게 되는 경우도 있었다.

 “오늘 늦어?”

 “네. 과제 때문에, 좀 늦을 수도 있어요.”

 “피곤하니까, 너무 늦게까지 하지 말고.”

 식사를 마치고 일어나려는데, 계란찜을 담은 그릇이 왼편에 있고 열무가 오른편에 놓여있는 위치가 시야에서 유난스럽게 두드러져보였다. 계란찜을 담은 그릇에 들어 있는 숟가락이 연두 시야에서 그 다음 차례가 돌아가듯 주장하기 시작했다. 그 다음은 젓가락 두 짝이 아무렇게나 내던져놓은 모양으로 밥그릇 옆에 놓여 있는 광경이었다. 그러더니 접시에서 밥그릇으로 이어지는 선을 그리며 상 위로 방울방울 열무김치국물 흘려놓은 모양이 그 뒤를 이었다. 가만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면서 또 다시 엉뚱하게도 이전에 본 적이 있는 장면이라는 기분에 사로잡혀 있었다. 연두는 미간을 찌푸린 채 살짝 인상을 쓰면서 잘 떠오르지 않는 기억을 더듬어보았다.

 모르겠어. 사진 같은 이 장면 하나뿐이야.

 머릿속에 일어나는 이런저런 의문들을 떨쳐내고, 나갈 채비를 했다.

 

 

 10. 수첩

 

 가방 안을 더듬는 손에 느껴지는 감각.

 명함 절반 크기 정도 밖에 안 되는 조그마한 수첩이 연두 오른손에 들려 있었다. 작은 크기에 비해 꽤나 두꺼운 수첩이었다. 처음 보는 수첩이어서 오른손에 수첩을 들고, 왼손으로 한 장씩 넘겨보았다. 그런데 맨 앞 첫 장을 빼면, 그 뒤부터는 아예 넘겨보지도 않은 모양이었다. 사용한 흔적이라곤 전혀 없이 깨끗한 새 수첩이었다. 수첩을 덮었다가 맨 앞에 뭐라고 쓰여 있었는지 확인하기 위해 다시 겉장을 넘겨 확인했다.

 오후 두 시 예약.

 

 

 11. 저녁에 나가는 버스 안

 

 이렇게 덜거덕거리면서 왼쪽으로 오른쪽으로 쏠리는 버스 안에서 앉은 채 흔들리고 있다는 사실, 뒤에서 두 번째 운전석 쪽 창가 자리에 이렇게 앉아있다는 사실이 순간 뜬금없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런 상황을 믿을 수가 없어서 몸을 일으키려고 했다. 그러다 과속방지턱을 거칠게 넘어가는 버스 때문에 다시 털썩 엉덩방아를 찧듯 내려앉고 말았다.

 저 멀리서 전화벨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그런데 지금 연두는 황당한 기분에 사로잡혀있는 탓에 귓속으로 들려오는 벨소리가 환청인지 실제 들리는 소리인지 의심스러웠다. 하지만 벨소리는 저 먼 곳 어딘가가 아니라, 연두 바로 아래쪽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어쩌면.

 전화벨은 버스가 과속방지턱을 넘어가면서 몸이 털썩 내려앉았을 때 엉덩이 밑으로 깔리게 된 가방 속에서 울리고 있었다. 밑에 깔고 앉은 가방을 꺼내들었다. 그러자 전화 왔다고 알리는 소리가 더 크게 들렸다. 웃음이 나왔다. 휴대전화를 꺼내들어 누구에게 전화가 왔는지 확인했다. 그런데 받으려는 순간 전화가 끊어졌다. 작은 창에 부재중 전화를 알리는 물음표로 전화 왔었다는 흔적만이 남아 있었다.

 집에서 나와 학교로 가는 중이었다. 전화가 올 만한 일은 없는데, 확인해보니 부재중 전화로 남아있는 번호는 과사무실 번호였다. 어째서인지 과사무실로 전화를 걸어 볼까하다가 그냥 두고 도로 가방 안에 집어넣으려고 했다. 그런데 또 전화가 왔다. 이번에는 엄마였다.

 “여보세요.”

 “연두야, 오늘 일찍 올 수 있어?”

 “무슨 일 있어요?”

 “네가 도와줄 일이 좀 있는데, 9시까지 올 수 있어?”

 “네. 알았어요.”

 통화를 끝내고 창밖을 내다보는데, 몇몇 아침에 봤던 사람들이 아침과 똑같은 자리에 똑같은 모습으로 서있는 장면. 하지만 빠르게 지나쳐갔다. 정말 이상했다. 아마도 착각일 텐데. 분명 그렇지 않을 텐데 말이다. 연두는 이러한 느낌에 대해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아침에도 이렇게 생각하고, 그 전에 어제도 며칠 전에도, 이렇게 오늘도 생각하고 있었다. 분명히 본 적 있는 장면이었다.

 내릴 때가 가까워져 덜컹거리는 의자에서 곧 일어날 것처럼 앞에 있는 의자를 붙잡고 있을 때 안내방송이 흘러나왔다.

 이번 정류장은 은화대입구입니다. 다음 정류장은…

 연두는 의자를 붙잡은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벨을 누르고, 내리는 문 앞에 서서 기둥을 붙잡았다. 이윽고 버스가 정류장에 멈춰 섰다.

 

 

 12. 어느 오전

 

 매일 밟고 다니는데도 낯설게 느껴지는 보도블록에서 플라타너스 가로수만이 익숙할 따름이었다. 지나치게 선명한 탓에 조각조각 날카롭게 부서져버리는 햇볕이 땅으로 내리꽂히면서, 바늘처럼 따갑게 보도블록 위로 박혀들고 있었다. 연두가 보기에 바닥에 깔린 보도블록 틈새에서 피어난 싹이 그런 햇볕을 둥글게 깎아내고 녹여 내려 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강한 햇볕아래 싹은 힘없이 쳐져버리고 심지어 플라타너스 나뭇잎처럼 바싹 말라 안으로 말려들고 있었다. 보도블록틈새에 낀 흙가루 돌가루 그 밑에서 어린 싹은 아직 뿌리가 살아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비가 내려 흠뻑 적셔주기 전까지는 다시 생기 있게 싹을 틔우지 못할 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점점 더 어긋나는 시야가 둘로 갈라지는 것 같더니 그와 동시에 플라타너스 가로수들이 점점 위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높이 솟은 만큼 아래쪽으로, 아니 그보다 더 깊게 뻗어나간 뿌리를 볼 수 있었다. 보도블록은 조각조각 아래로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가루들이 뒤섞여 보도블록틈새를 메우고 있던 어린 싹 터전은 부서지고 끊어지고 떨어져나간 모습으로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연두는 작은 조각 위에 겨우 발을 디디고 서있었다.

 

 

 13. 등교

 

 버스에서 내려 학교로 뛰어가는 길은 차라리 마음 편히 느긋하게 지각하고 말 걸 하는 일말의 후회를 남겼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지각하지 않기 위해 그만큼 열심히 뛰었다는 사실이 만족스러웠다.

 열심히 달리고 뛰어가는 앞쪽으로 횡단보도가 나타났다. 그런데 횡단보도 앞에 도착하기 전부터 이미 신호등은 붉은색이었다. 대체 언제 바뀌나 발을 동동 구르면서 일초라도 빨리 초록색. 초록색. 마음을 가라앉히고, 초록배경에 걸어가는 중인 그림자로 바뀌기를 기다렸다.

 잠시 후 드디어 불이 바뀌고, 빠르게 횡단보도를 건너가기 시작했다. 좀 덜 늦든 좀 더 늦든 지각인 건 마찬가지였지만 그래도 조금이라도 더 빨리 가야했다. 그런데 빨리 가지 못하고 있었다.

 솟아나는 열이 찬 공기에 닿자마자 식은땀처럼 피부에 달라붙었다. 빨리 걸어가자 몸에서 열이 나기 시작했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뛰고 있었다. 그러다 숨이 차서 잠깐 멈춰 쉬며 심호흡으로 숨을 가라앉히고 다시 걸으려고, 오른발을 내딛으려고 했다. 하지만 어지럼증이 일어 가까운 의자로 가 앉았다. 열을 식혀줄 찬 공기가 아쉽기만 했다.

 바람 불면 좋을 텐데. 찬바람 불었으면 좋겠다.

 바람은 없었다. 대신 해가 의자에 걸터앉은 연두 위로 여과 없이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구두를 벗어두고 발을 앞뒤로 차올리기 시작했다. 찬바람을 일으키는 방법으로 손부채질을 하는 방법으로 그렇게 조금이나마 열을 식혀보려고 했다.

 그때 지수에게서 문자가 왔다. 고등학생 때 몰래 보내던 실력이 아직 녹슬지 않았는지, 지수는 엄청나게 날카로운 눈초리의 소유자인 교수님 눈을 피해 능력껏 잘도 보내고 있었다. 당장 뛰어오라는 내용이었다. 지수에게 답문을 보내고 기다렸다. 잠시 후, 드르르, 문자가 또 도착했다. 차 밀리더라는 변명이 그대로 먹혀들 가능성이라면 상당히 낮으리라고 짐작하고 있었다. 하지만 정말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그 말을 믿는 눈치냐고 물으니, 지수는 ‘어쩌면 빨리 와서 해명하면.’이라고 했다. 아래를 내려다보면서 어지럼증도 부은 발도 충분히 가라앉고 식은 것을 확인하고는, 벗어 놓은 구두를 다시 신었다.

 

 

 14. 도서관.1

 

 가방을 열어 책을 넣고 단단히 닫은 후, 지수를 재촉했다.

 “빨리 가자.”

 “다시 급해졌네.”

 늦을 것 같아 계단을 뛰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바닥을 때리는 구두에서 나는 소리가 뾰족하고 딱딱하게 울렸다. 굉장히 시끄러웠고 귀에 거슬렸다. 하지만 별 수 없이 급하게 뛰어 내려가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너 전화 온 거 아니냐면서 옆에 같이 따라 내려가던 지수가 멈추더니 연두를 붙잡아 세웠다.

 “안 그래도 늦었는데 왜.”

 “일단 누군지 확인은 해야 될 거 아냐.”

 과사무실에서 걸려온 전화였다. 긴장했다.

 “여보세요.”

 -응, 연두야, 나 은조언닌데, 2시에 음악 감상 있잖아. 그거 교수님 급한 사정 때문에 다음 주 수요일 오후로 옮겨서 보충하신다고 하셨어.

 긴장이 탁 풀렸다.

 “왜요? 교수님 무슨 일 있으신 거예요?”

 -아, 교수님 개인적인 사정이 생기셔서. 음, 혹시, 너 서지은 박사님이라고 알아? 그 분이 원래, 아무튼 우리 교수님 부인이시거든. 결혼하신지 꽤 되셨으니까 넌 모를 수도 있겠다. 아무튼, 그런데 그 분이 쭉 병원에 계셨는데 갑자기 상태가 안 좋아지셨대. 교수님께서 강의 들어갈 준비하는데 병원에서 연락이 왔다고 그러시더라고. 큰일이야. 얼마나 걱정되실까. 난 말씀하시는 목소리 듣는데, 손이 다 떨리더라니까. 아무튼 교수님은 그 연락 받으시고 바로 중환자실로 가셨어.

 “그럼 원래 지병이 있으셨던 거예요?”

 -정확히는 나도 잘 모르겠어. 교수님이 그런 얘길 안 하시니까. 근데 교수님 목소리 정말 안 좋더라. 완전히 기운이 쭉 빠져서 힘이 하나도 없고. 아무튼 정말, 별 일 아니어야 할 텐데 걱정이야. 어쨌든 두 시 강의 취소됐으니까, 연두 너는, 또 늦어서 뛰어오는 중이었으면 그럴 필요 없다고.

 “네….”

 -그나저나, 그러고 보니까 오늘 음악 감상이 마지막이었구나? 연두야, 그럼 잘 들어가고, 내일 보자.

 “네. 안녕히 계세요.”

 

 부드럽고 둔탁하면서도 급하게 느껴졌던 지수 발걸음 소리가 아직도 계단에 울리고 있는 것처럼 귓가에 생생했다. 그 소리에 뒤섞이던 딱딱하고 바쁜 울림을 떠올려보았다. 지수가 옆에서 걱정스러운 눈길로 쳐다보며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누군데. 무슨 일이야?”

 “강의 취소 됐대. 다음 주 수요일 오후로 옮긴다고 그러셨대. 교수님 부인 되시는 분이 병원에 계시는데, 갑자기 상태가 악화되었다고 연락 왔다는데? 그래서 병원에 가셨다는데 상태가 많이 안 좋으신가봐.”

 어떤 표정인지 짓는 듯 마는 듯 지수는 알 수 없게 슬픈 것 같아 보이면서도 미묘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그래? 정말 걱정되시겠다.”

 전화를 끊고 나서부터 왠지 마음이 무거워서 한 계단씩 천천히 내려갔다. 그런데 문득 제대로 살펴보지 못하고 그냥 들고 나온 책을 자세히 읽어보고 싶어졌다. 잡히는 대로 펼쳤을 때 복잡하게 알아볼 수 없는 수식만 가득했지만 그냥 한 번 죽 넘겨본 책 뒷부분은 아니었다. 누가 어떤 내용을 써놓았는지 궁금했다. 그래서 천천히 한 계단씩 내려가던 걸음을 되돌려 도서관으로 다시 올라가기 시작했다. 다시 되돌아서 올라가려는 연두 뒤로 지수가 곧장 뒤따라 돌아서면서 말했다.

 “그냥 나가자. 왜 다시 올라가는데.”

 “이 책. 아까 제대로 보지도 못하고 늦을 까봐 급하게 나왔잖아. 어차피 강의 취소됐으니까, 올라가서 읽어보려고.”

 “책? 무슨 책. 지금 들고 있는 거?”

 “응. 좀 읽어보고 싶어.”

 “근데 너 아까 그 책 들고 자리에 앉았을 때, 한 번 펼쳐보고는 바로 덮고 엎드려 잤잖아.”

 “그런 것 같긴 해. 그냥 한 번 읽어보고 싶어서 그래.”

 

 도로 올라갔는데 사서가 자리를 비운 채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두리번거리며 사서를 찾고 있으려니 옆에서 지수가 말했다.

 “그 책 정말 읽으려고?”

 지수는 두리번거리고 있는 연두에게 다 읽기 힘들 거라고 몇 장 못 읽을 거라고, 얼마나 읽을 수 있겠냐고 계속 말을 걸었다.

 “그만 좀 해. 근데 여기 어디 갔지?”

 “왜?”

 “이거 빌리려고.”

 “그거 이미 빌렸잖아.”

 “이미 빌렸다고? 언제?”

 책 빌린 기억은 없었다. 그런데 지수는 그 책 빌릴 때 자기가 옆에 있었다고 했다. 나가기 전에 빌렸다고 계속 우기고 있었다. 아까 연두가 그 책을 들고 일어서서는 곧장 문 쪽으로 가기에 뒤따라갔더니 책을 빌리고 있었다면서 말이다. “아까 내가 오늘 빌리면 언제까지 반납해야 되는지 물어봤잖아. 그러니까 10월18일까지 반납하면 된다며.”

 “진짜? 빌린 적 없는 것 같은데, 이상하다.”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지수는 입구 쪽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이 책 빌린 거 맞아. 아까 저기 나갈 때 아무 소리도 안 났잖아. 도서관에서 안 빌린 책 그냥 들고 나가면 경고음 울려. 근데 우리 나갈 때 안 울렸잖아.”

 “응. 진짜, 그러고 보니까, 빌리지도 않고 그냥 나가는데 왜 아무 소리도 안 났지?”

 “그냥 들고 나가는데 안 울린 게 아니라, 이미 빌린 책이니까 안 울린 거야.”

 

 

 

 
 

NO 제목 날짜 조회 추천 글자
11 해바라기,너에게 11 2019 / 10 / 18 243 0 12514   
10 해바라기,너에게 10 2019 / 10 / 18 257 0 12110   
9 해바라기,너에게 9 2019 / 10 / 18 235 0 10666   
8 해바라기,너에게 8 2019 / 10 / 18 252 0 13285   
7 해바라기,너에게 7 2019 / 10 / 18 242 0 10580   
6 해바라기,너에게 6 2019 / 10 / 18 235 0 11626   
5 해바라기,너에게 5 2019 / 10 / 18 245 0 10733   
4 해바라기,너에게 4 2019 / 10 / 18 227 0 10688   
3 해바라기,너에게 3 2019 / 10 / 18 225 0 11420   
2 해바라기,너에게 2 2019 / 10 / 18 256 0 9336   
1 해바라기,너에게 1 2019 / 10 / 18 419 0 9827   
이 작가의 다른 연재 작품
에나멜
신정
       

    이용약관   |   개인정보취급방침   |   이메일주소 무단수집거부   |   신고/의견    
※ 스토리야에 등록된 모든 작품은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 본사이트는 구글 크롬 / 익스플로러 10이상에 최적화 되어 있습니다.
(주)스토리야 | 대표이사: 성인규 | 사업자번호: 304-87-00261 | 대표전화 : 02-2615-0406 | FAX : 02-2615-0066
주소 : 서울 구로구 부일로 1길 26-13 (온수동) 2F
Copyright 2016. (사)한국창작스토리작가협회 All Right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