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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해바라기,너에게
작가 : 신정
작품등록일 : 2019.10.18

평범한 여대생 진연두 이야기

 
해바라기,너에게 1
작성일 : 19-10-18 08:40     조회 : 405     추천 : 0     분량 : 9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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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하교

 

 차가운 공기가 반쯤 언 채 가득 차오르면서 연두가 내쉬는 숨을 하얗게 얼리고 있었다. 빨간 귓불과 차게 식은 손끝이 언 수박처럼 굳어 둔해져있었다.

 버스 왜 이렇게 안 오는 거지.

 

 회색 언덕으로 넘어오는 버스들이 파란선 안에 줄줄이 내려온다. 그러나 연두가 탈 버스는 아직 눈에 보이지도 않는다. 신호등이 주황색으로 옮겨가더니, 곧 빨개진다. 그리고 버스가 멈춰 선다. 어느새 옆의 승용차, 화물차도 멈춰서있었다. 입에서 증기 꽃이 하얗게 피어나고 있었다. 그렇지만 따갑게 내리쬐는 태양이 순식간에 입에서 피어오르자마자 투명하게 말리고 가져가버렸다. 연두는 자동차 신호등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어깨에 걸친 가방 끈을 잡고서 주먹을 쥔 채 다리를 가볍게 흔들고 있었다.

 추워.

 아픈 발을 들었다 내려놓으면서도 계속 신호등 빨간색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러다 버스 앞으로 가로지르는 차들이 멈출 기색 없이 달려가는 모습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 다음 시끄러운 경적소리. 그리고 좌회전 신호. 연두는 이제 당장이라도 신경질적인 기질이 튀어나올 것 같았다. 그래서 입을 앙다물었다가, 힘을 풀고는 중얼거렸다.

 “대체 언제 바뀌는 거야. 아, 추워. 진짜 춥다.”

 길게만 느껴지던 신호등이 빨강에서 주황으로 옮겨갔다. 그리고 초록이 되었다.

 그 다음은 정해져 있었다. 가로질러 달려가던 차들이 일제히 멈춰서고 나면, 파란선 안쪽으로 늘어선 버스들이 다시 연두가 서있는 쪽으로 달려오기 시작했다. 곧 전용차로 안쪽으로 달려오던 버스들이 정류장 앞 도로에 죽 늘어섰다. 하지만 네 대 모두 연두가 탈 버스는 아니었다. 그렇게 다섯 대가 더 지나가고 나서야 드디어 227, 기다리던 버스가 저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연두는 달려오는 버스가 멈춰 서려 속도를 줄이면서 점점 더 가까이 다가오는 모양을 지켜보았다. 버스가 어디쯤 멈춰 설지 가늠하여 미리 그 자리에 서있으려는 심산이었다. 하지만 버스는 연두가 기다리고 있는 자리에 서지 않았다. 서있는 곳보다 훨씬 앞까지 가서야 멈춰 서는 버스를 향해 연두는 뛰어야했다.

 

 버스에 올라 카드단말기에 가방을 들이밀었다. 환승입니다. 문이 덜거덕 닫히고, 버스가 출발한다. 버스 안은 따뜻했다. 연두는 덜컹거리며 좌우로 흔들리는 버스에서 비틀거리다가 운전석 뒤 청록색 기둥을 붙잡았다. 발이 아픈 탓인지 발가락 아래쪽 발바닥 가운데, 발가락 사이사이 땀이 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열이 살짝 올라오는 등은 오히려 상쾌했다. 연두는 비어있는 자리가 없는지 두리번두리번 살펴보았다. 그러다 뒤에서 두 번째에 비어있는 자리를 보고 그리로 가서 앉았다.

 창밖에 태양이 눈을 찌른다. 눈동자에 갈색이 확 조여들고, 점처럼 조여든 동공이 더욱 까매진다. 힘주어 펴서 손가락을 딱 붙인 왼손을 눈썹위에 바싹 경례자세로 들어 올려 갖다 붙이고 창밖을 내다보았다. 그러다 고개를 돌려 앞을 보았다. 확 조여들었던 갈색이 살짝 풀어진다. 창밖에 휙휙 빠르게 지나쳐가는 풍경 정류장 사이사이로 안내방송이 끼어들고 있다.

 딩동, 딩동, 딩동.

 연두는 비틀대며 일어서서 벨을 누르고 카드단말기가 매달려있는 기둥을 붙잡았다. 고개를 내밀어 점점 더 정류장이 가까워 오는 모습을 보면서 카드단말기에 가방을 들이밀었다. 감사합니다. 버스가 멈춰 섰고, 드르륵 문이 열렸다. 훅 끼쳐오는 찬 공기가 숨을 들이키는 폐부 깊숙이 파고들었다. 하늘에서 내리쬐어오는 태양은 따갑고 따뜻했다.

 집에 가는 길 이제 꽤 긴 내리막길을 따라 내려가기만 하면 된다. 그런데 연두는 버스를 타고 오는 내내 잔뜩 부어있는 발에 열이 올라 있어서인지 그다지 좋지 않았다. 내려갈 길이 막막했다.

 구두 때문인가?

 아픈 발을 참으며 어찌어찌 가파르게 급경사인 내리막길을 따라 내려가다가 오른쪽으로 방향을 꺾어 들어갔다. 집에서는 엄마가 TV를 보고 계셨다.

 “다녀왔습니다.”

 “응, 왔어? 저녁은, 먹었어?”

 “아뇨. 아직 이요.”

 

 

 집에 들어오자마자 급히, 서둘러 바쁘게, 곧바로, 다시 나갈 준비를 한다.

 “밥 안 먹을 거야?”

 “괜찮아요. 시간 없어요. 늦었어요.”

 “조금이라도 먹고 가지. 이거라도 가져가. 너무 늦지 말고!”

 거칠게 가방을 낚아채듯 집어 들어 어깨에 걸치려다가 책상 모서리에 손등을 부딪치고 말았다. 입에서 작게, 곧바로 절로 신음성이 튀어나왔다. 하지만 확인할 새도 없이 빠르게 주방을 지나쳐 미끄러지면서 현관에 털썩 주저앉고는 신발 속으로 발을 밀어 넣었다. 그렇게 대충 발만 쑤셔 넣은 신발을 제대로 고쳐 신지도 않은 채로, 급히 현관문을 밀치며 뛰어 나갔다. 턱까지 숨이 차도록 끝까지 오르막길을 뛰어올라 큰길가로 나와서야, 몸을 숙여 신발 끈을 다시 고쳐 맸다. 그제야 연두는 발끝을 톡톡, 뒤꿈치를 톡톡, 발목을 이리저리 꺾어 돌리며 운동화 신은 발을 다듬을 수 있었다.

 

 

 2. 강의 끝나고

 

 강의를 들을 때면 항상 끄트머리 15분을 남겨두고 꾸벅꾸벅 끄덕끄덕 거리고 있었다. 턱을 받치고 있는 손에서 스륵 미끄러지는 얼굴이 앞 의자에 부딪히려다 튕기듯 다시 들리곤 했다.

 예전에 한 번, 키 큰 사람이 바로 앞자리에 앉았을 때, 연두는 그 사람 뒤통수에 이마를 들이받았다. 그때 잠이 확 달아나고, 깜짝 놀라서 일순간 눈을 번쩍 떴다. 그리고 무엇이 이마를 이렇게 딱딱하게 내리친 건지 확인하려했다. 고개를 번쩍 치켜들어 주변을 둘러보려고 했다. 그런데 생각지 못하게 정말 민망하게도, 고개를 드는 두 눈에 앞 사람이 뒤돌아보며 어색하게 웃고 있는 모습이 비쳐들었다. 죄송합니다. 연두는 어색하게 웃고 있는 그에게 사과하면서 미안한 마음에 어찌할 바를 몰랐었다.

 

 다음 강의까지 두 시간이 비는데.

 가늘게나마 눈꺼풀을 들어 올릴 수 있을 때마다 시계를 똑바로 쳐다보며 정신을 차리려고 했고, 고개를 바로 세우려고 안간힘을 썼다.

 다음 강의까지 두 시간 빈다.

 정오로 가는 중인 해에서 내리쬐고 있는 빛이 창문 아래로 좁고 긴 직사각형을 이루며 내리뻗고 있었다. 아무래도 거기에서 빠져나오는 잠이 연두를 그 직사각형 속으로 끌고 가려고 하는 것 같았다.

 “진연두.”

 “예?”

 갑자기 무릎을 펴고 일어서려다가 접이식 책상에 단단히 부딪히고 말았다. 연두는 무릎 옆을 문지르지도 못하고 약간 뒤틀린 자세로 서서 저 앞 강단 쪽을 쳐다보다가 교수님 이마로 시선을 옮겨 맞추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교수님과 눈을 마주치게 되었다.

 “인사는 그만하면 충분하니 이제 그만해도 될 것 같은데.”

 “네?”

 “두 시간동안 한 걸로 충분하다고. 설마, 아직도 부족해?”

 킥킥거리는 소리가 번지더니, 풋, 우흡, 큭.

 연두는 교양국어 강의 끝에 마치는 인사를 도맡아 하고 있었다.

 오늘은 여기까지.

 

 그렇게 강의가 끝나고, 잠에서 벗어나 눈을 번쩍 떴다.

 이상하게도 신기하게도 오늘은 여기까지, 다음 시간에 봅시다, 교수님의 입에서 떨어지는 강의마침종과 같은 말들은 바로 눈앞에 입을 갖다 대고 말하는 것 같았다. 머릿속에 움직이는 입술 이미지가 교수님 목소리 위로 겹쳐지면서 귀 바로 옆에 대고 말하는 것처럼 콱 박혀 들어오면, 암회색이었던 하늘에서 한꺼번에 소나기로 쏟아부어내고 어느 순간엔가 순식간에 걷혀버리는 먹구름처럼 잠이 떠나버리곤 했다.

 졸면서 손에 펜을 쥔 채로 온몸을 끄덕거린 흔적이 책상 위 책에 그대로 남아있었다.

 이게 뭐야, 이게.

 연두는 서둘러 책을 덮었다. 가방을 챙겨 들고 자리에서 일어서서 지수를 찾았다. 다른 학생들은 다들 우르르 문밖으로 빠져나가고 있었다. 지수도 그들에 섞여있었는데, 올라가다 중간에 방향을 틀었다.

 “이지수.”

 “딱 보니까 보나마나 또 졸았지? 내가 옆에 앉았어야 되는데. 이제 그만 좀 졸아. 너, 그 교수한테 완전히 찍혔다는 거 몰라?”

 “아, 몰라. 모르겠어. 졸린 걸 어떡하라고.”

 연두는 크게 하품하면서 손으로 입을 살살살살 두드렸다.

 “그렇게 자고도 또 자고 싶어?”

 “무슨, 끝에 잠깐, 한 십분 정도밖에 안 졸았어. 잔 것도 아니야.”

 “그거야 네 생각이고.”

 지수는 가방을 챙겨들며 두 시간 동안 뭐 할 거냐고 물었다.

 정말 두 시간 동안 뭐하지?

 그때 지수가 말했다.

 “산책하자.”

 “산책?”

 “응. 그냥 걷자고. 잠도 깰 겸?”

 “그래. 오늘 날씨도 좋고, 딱 좋네.”

 “그럼, 가자.”

 

 연두는 지수와 함께 밖으로 나가다가 건물 입구에서 잠시 멈췄다. 잠깐, 하더니 가방을 뒤져보던 지수가 깜빡하고 강의실에 놓고 온 게 있다며 강의실 쪽으로 다시 들어갔기 때문이다.

 그늘진 곳에 서서 지수를 기다리며 화창한 밖을 내다보다가 나뭇가지 위에 앉아있는 잠자리 한 마리에 시선이 가 닿았다. 사뿐히 가지 끝에 앉아 있다가, 그대로 다시 날아올라 하늘에 궤적을 그리며 한 바퀴 돌아서 다시 그 자리에 잠깐 내려앉아있다가, 이전에 그렸던 궤적을 따라 미끄러지듯 매끄럽게 비행하고 그 자리에 내려앉기를 반복하는 모습이었다.

 연두는 잠자리 나는 모습에 집중하면서 때때로 지수가 들어간 건물 안쪽으로 고개 돌려 살펴보았다. 그렇게 나오는지 아닌지 확인하고 나서는 다시 잠자리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몇 차례 그렇게 하기를 반복하다 다시 한 번 건물 안쪽을 살펴보았을 때, 마침 지수가 걸어 나오는 중이었는지 안쪽을 살피며 서있는 연두와 눈이 마주쳤다. 그러자 걸어 나오던 지수는 얼굴 가득 미소 지으며 살살 뛰어나왔다.

 

 지수와 그늘로 햇빛으로 천천히 걸어 다니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날씨가 딱 놀러가야 할 날인데. 아, 참. 저번에 소개받은 사람이랑은 잘됐어?”

 “아니.”

 “왜?”

 “저번 주 금요일에 만났는데―”

 “응.”

 “뭐라더라. 얼마 전에 찍은 사진이 있는데 아무데도 안 올렸다고 혹시 봤냐고 하면서 잘 나왔다느니 어디가 어떻다느니, 아니, 아무데도 안 올린 사진이라면서 봤냐고 물어보는 건 또 뭐야. 그거밖에 생각이 안 난다.”

 “그래서?”

 “그래서는 무슨. 그러다 그냥 일어났지.”

 “그게 끝이야?”

 “뭐, 그때 이후로 연락한 적 없으니까.”

 

 내리쬐는 햇볕이 따갑고 따스한 게 꼭 어제 같았다. 옆에서 계속 영화 얘기를 하는 지수 말에 응, 응, 맞장구를 치면서 걷고 있었다. 사실 지수 목소리가 툭툭 끊어지는 일부분으로 중간에 짤막한 토막처럼 끊겨서 들리는 탓에, 뭐라고 말하는 건지 정확히 알아들을 수 없었다. 연두는 무조건 응, 응, 거리고 있었다. 그런데 괜히 입 안 가득 염증으로 부풀어 오르는 듯 불편했고, 눈앞이 어둡게 가라앉는 듯했다. 지수가 뭔가 이상하다고 느꼈는지 갑자기 하던 말을 멈추고 연두 얼굴을 들여다보며 물었다.

 “왜 그래? 어디 아파?”

 “아니야, 괜찮아.”

 날씨가 좋아서인지 다른 사람들도 학생들도 많이 거닐고 있었다. 왠지 모르게 둔하고 무거운 마음으로 연두는 주변을 휙 둘러보았다. 책으로 햇빛을 가리며 걸어가는 사람, 어디론가 뛰어가고 있는 사람, 그늘에 앉아 수다를 떨고 있는 사람들, 전화하면서 급히 뛰다시피 하는 사람, 그 모두가, 시야에 들어오는 이 풍경. 꼭 이전에 한 번 본 적 있는 사진 같았다.

 

 

 

 3. 기상

 

 “진연두.”

 

 몸을 벌떡 일으켰다. 이제 막 떠오른 아침 해가 창을 통해 네모진 모양으로 벽에 노랗게 내려오고 있었다. 등을 덮치는 찬바람에 바싹 소름이 돋아났다. 추워서 양팔을 서로 문지르며 뒤를 돌아보았다. 햇볕이 드나드는 창이 한 뼘 정도 열려 있었다. 열린 창으로 들어오는 겨울바람이었다.

 사방에 먼지가 가볍게 떠다니는 모습을 보면서 이불 끝을 잡아 목 위까지 끌어당기며 그 아래로 파고들었다. 그리고 베개에 얼굴을 대고 옆으로 누워서 다리에 이불을 휘어 감싸고는 몸을 웅크렸다.

 따뜻해.

 눈앞에 아무렇게나 쌓여있는 책들이 보였다. 어제 집에 와서 그 위로 걸쳐놓듯 가방을 얹어두었는데, 그 역시 그대로였다. 다시 스르르, 졸리는 눈이 자꾸 감기려했다.

 지금 몇 시지.

 몇 시일까 확인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밀려드는 잠 앞에서 그런 생각은 사막에 떨어진 고운 먼지처럼 가볍게 쓸려가고 다시 눈꺼풀이 내려앉았다.

 “진연두! 안 일어날래!!”

 정신이 번쩍 들었다. 연두는 목까지 끌어올려 덮고 있던 이불을 이마 너머까지 끌어올려 덮고, 똑바로 누워 발버둥 쳤다.

 아으, 왜, 왜!

 밀려오는 짜증을 털어내듯 덮고 있던 이불을 거칠게 펄럭거렸다. 그런데 그때 반쯤 열려 있는 문이 벌컥 쿵 소리를 내며 벽에 부딪혔다. 곧바로 퍼뜩 불길한 예감이 들어서 이불을 움켜쥔 손에 잔뜩 힘을 주었다. 하지만 강한 손아귀 힘으로 연두 손에서 애처롭게 뜯겨나간 이불은 저 먼 곳, 저 아래 무릎까지 내려가고 말았다.

 “추워. 춥다고.”

 빗금 같은 햇빛사이로 이불처럼 펄럭이는 먼지가 반짝이면서 허공에 떠다니고 있었다.

 “진연두. 학교 안 갈 거야? 너 오늘 9시까지 가야 되잖아!”

 9시. 화요일. 음악 감상.

 

 찌릿 전기가 오는 것 같아 몸을 벌떡 일으켰다. 8:10. 얼토당토않게 왜 지금 깨웠냐고 신경질을 부리며 급하게 화장실로 들어갔다. 엄마목소리가 등 뒤에 꽂혀 오지만, 신경 쓸 겨를이 없다. 안 그래도 전에 몇 차례 지각해서 교수님한테 미운 털 제대로 박혔는데, 정말 또 늦을 수는 없었다.

 어떻게 하는지도 모를 만큼 모든 준비 과정이 정말 잽싸게 착착 진행되었다. 정신없이 후딱 씻고 눈에 보이는 대로 걸치고 나서, 구겨져있는 이불을 둘둘 말아 한쪽 구석으로 밀어두고 가방을 챙겨 들었다. 마지막으로 바지 뒷주머니에 휴대전화를 밀어 넣은 뒤 현관 쪽으로 죽 미끄러졌다.

 “아침은, 또 안 먹어?”

 “시간 없어요. 늦었어요.”

 “일찍 들어와. 뭐라도 꼭 챙겨 먹고.”

 연두는 엄마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운동화에 왼발을 밀어 넣으려고 왼쪽 신발을 집어 들다가, 가만, 바지 뒷주머니에 밀어 넣은 휴대전화를 꺼내 들었다. 버튼을 눌렀다. 8:30.

 안 그래도 서두르고 있었지만 숫자를 확인한 순간 갑자기 다급해졌다. 시간을 확인하고 나서 그대로 왼쪽 바닥에 휴대전화를 내려놓은 채 오른발에 신발을 끼웠다. 그리고 일어서서 현관문을 벌컥 열고 문 밖 복도를 디뎠다.

 아, 핸드폰. 시간도 없는데. 급한데, 버스 놓치면 어떡하지.

 어쩔 수 없이 다시 돌아서서 바닥에 놓여있는 휴대전화를 잽싸게 낚아채들고 다시 문을 나섰다. 정신없이 오르막길을 뛰어 올랐다. 뛰다가 멈춰서 가슴을 짚으며 가쁘게 숨 쉬다가, 뛰다가 서다가, 그렇게 큰길가에 있는 정류장에 다다랐다. 버스 오는 쪽을 바라보며 숨을 고르려 여러 차례 크게 들이쉬고 내쉬었다. 그런데 뛰어올라온 보람도 없었다. 이제 바로 올 시간인데도 5분이 지나가도록 버스가 나타나지 않고 있었다.

 길게만 느껴지는 시간을 기다린 끝에, 안내방송이 흘러나왔다. 227번 버스가 곧 도착합니다. 타려고 했던 버스가 늦은 건지 그 다음 버스가 일찍 온 건지 가운데 끼어서 어중간한 시간이었다. 그래도 버스를 보니 마음이 놓였다. ‘그래도 다행’이라고, 안도하며 가슴을 쓸고 가볍게 웃었다. 곧 227번 버스가 연두 앞에 멈춰 섰다.

 

 

 4. 아침 버스

 

 바람 빠지는 소리와 로봇 관절이 꺾이는 소리가 절묘하게 어우러지면서 버스 문이 열렸다. 계단을 밟고 올라서 카드를 찍은 후 버스 안을 죽 살펴보았다. 빈자리 하나 없이 서 있는 사람들까지 여러 명이었다. 연두는 서 있을 만한 자리로 움직였다. 왼손을 들어 삼각형 진회색 손잡이를 붙잡고, 오른손으로 앞에 있는 의자 등받이를 붙잡았다. 동시에 버스가 흔들거리며 달리기 시작했다. 잠시 후 버스기사아저씨가 라디오를 틀었다.

 뉴스입, 지지직, 현재 경기 일부지, 지직, 비교적 맑은 날씨를, 취익, 산불이나 화재 예방에 주, 지직, 웃음소리, 치익, 지지직, 지상파 가요프로에, 취이익, 니다. 3주 연속 1위의 주인공인, 취이익, 지익, 마암을 주고오,

 문득 지수가 떠올랐다.

 몇 시에 만난다고 했지? 해를 충분히 못 봐서 그런가. 피곤해. 지수가, 아마, 며칠 전에 소개팅이 있던 걸로 기억하고 있는데.

 눈앞으로 빠르게 지나가는 풍경을 내다보았다. 며칠 전에 보았던 사람이, 며칠 전에 입었던 것과 같은 차림으로 빠르게 지나쳐가는 횡단보도 앞에 서있었다. 가로수로 휙휙 빠르게 지나가고 있었다.

 

 플라타너스 탁한 흙색으로 바싹 마른 채 땅으로 떨어져 굴러다니고 있었다. 가는 잎맥이 한 줄기로 모여서 가지로 이어져 들어가는 연약한 관절까지 수분을 잃고 말라버리면, 잎이 곧 바닥으로 떨어져 내린다.

 플라타너스 가지에서 잎이 하나씩 서너 개씩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그 잎들은 바닥에 뒹굴며 이리저리 방향을 잃고 헤매다가, 회오리치는 바람을 따라 처음 땅에 디딘 그 자리로 되돌아오고 있었다. 이리저리 치이며 눌리고 부서지고 잎끼리 부딪히기도 하고 그렇게 바스라지면서.

 

 

 5. 강의실

 

 두 정거장이 지나면 학교에 도착한다.

 정말 조금 늦게 일어났을 뿐이었다. 연두는 아침엔 어쩔 수 없이 바쁠 수밖에 없나 생각하면서 지난 생일에 선물 받은 목걸이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지난 생일, 별로 좋은 기억은 없었지만 생일 다음 날, 아니 며칠 뒤였던 것 같다. 지수가 목걸이를 주었다. 마름모꼴 붉은 돌이 예쁜 펜던트.

 하고 다닌 지 오래됐는데 꼭 방금 전에 받은 것 같아.

 딩동 소리에 뒤이어 안내 방송이 흘러나오며 연두 내릴 때가 되었다고 알려주었다.

 벨을 누르고, 잠시 후, 드르륵.

 확 끼쳐오는 찬 공기가 상쾌했다. 그런데 한 계단씩 내려가는 발뒤꿈치가 딱딱하게 부딪쳐왔다. 스펀지 같은 보도 위에 내려서서는 지그시 내리누르고 있는 느낌이었다. 이상했다. 발을 내려다보니, 구두가 신겨져있었다. 연두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침에 분명, 운동화 신은 것 같은데?

 흘러내리는 가방을 다시 제대로 걸치고, 다각다각, 불편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걸어가면서 시간을 확인했는데, 믿고 싶지 않아서 눈 비비고 다시 한 번 확인 해봐도 잘못 본 게 아니었다. 시계바늘은 이미 9시를 훌쩍 넘어가고 있었다.

 정말, 이번 학기 어떻게 되는 걸까. 이러다가는 진짜, 안 돼.

 어깨에 걸치고 있는 가방을 손으로 꽉 잡아들고, 잠시잠깐 멈춰 섰던 걸음을 재촉해 불편하게 각이 지는 뜀박질을 시작했다. 그런데 그렇게 뛰려다가, 몇 걸음 앞, 바로 앞에서 멈춰서버렸다. 발이 너무 아팠기 때문이다. 그래도 슬슬 걸어보려 했지만, 도저히 발을 뗄 엄두도 낼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결국 아픈 발을 질질 끌며 가까운 의자에 가 앉아서 한 번 더 시간을 확인했다. 9:13.

 애가 탔다. 답답한 마음에 지수한테 문자를 보냈다. 출석 어떻게 됐어?

 바로 답장이 온다. 했어. 지금 어디야?

 발이 뜨겁게 부어오른 상태였다. 구두를 벗어두고 발에 찬바람을 쐬어주었다. 다시 문자가 왔다.

 지금 바로 뛰어와. 차 엄청 밀리더라고 했어.

 물장구치듯 앞뒤로 발을 흔들어 식히면서 답장을 보냈다. 믿어?

 빨리 와서 네가 직접 말한다면, 어쩌면.

 그새 발이 식으면서 통증이 약간 가라앉았다. 연두는 구두 속으로 다시 발을 밀어 넣고 일어섰다.

 

 건물 안까지 들어서는 데에는 별 문제없이 순조로웠다. 승강기 없는 건물에 강의실이 4층이라는 점이 문제라면 문제였다. 연두는 계단 난간을 붙잡아 의지하며 답답해도 한 계단씩 올라가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2층으로 올라가는 중간 지점에서 잠깐 멈췄다. 그러다 답답하고 급한 마음에 구두를 벗어 양손에 하나씩 든 채로 두 계단씩 뛰어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4층에 도착해서 다시 구두를 신고 옷매무새를 다듬은 뒤, 마지막으로 시간을 확인했다. 9:19. 머릿속이 아찔했다. 강의실 뒷문을 정말 바늘귀만큼 열고, 반 바퀴 돌아가 있는 손잡이를 그대로 꽉 붙잡은 채 분위기를 살폈다.

 저쪽으로 돌아갔을 때 들어가야겠다.

 안쪽을 살펴보니 앞에서 두 번째 줄에 지수가 앉아있었다. 전에 그랬듯 연두는 틈을 노리다 문에서 가까운 뒤에서 두 번째 줄, 문에서 가장 가까운 분단으로 들어가야 했다. 심호흡한 뒤 문 열고 들어가려 발뒤꿈치를 들다가, 아차, 구두를 다시 벗어들고 몸을 약간 숙여서 살금살금 발끝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런데 자리에 앉으려는 순간 교수님과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웃지도 울지도 못하는 기분으로 어쩔 도리 없이 일그러지게, 웃으려 노력하면서 고갯짓으로 인사하고는 자리에 앉았다. 그런데 걱정과 달리 교수님은 자리에 앉는 연두 모습을 잠시잠깐 쳐다보았을 뿐 별다른 지적을 하시지는 않았다.

 

 “이번 시간에…들…이……. …지. 진연두!”

 “네?”

 연두는 자리에 앉아서 펜을 찾아 가방을 뒤지다가 이름을 들었다. 엉겁결에 엉거주춤 영문도 모른 채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뭐라고 하신 거지.

 “굳이 일어날 필요까지는 없어. 앉아서 대답만 해.”

 그러나 이미 연두 머릿속은 백지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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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해바라기,너에게 9 2019 / 10 / 18 231 0 10666   
8 해바라기,너에게 8 2019 / 10 / 18 245 0 13285   
7 해바라기,너에게 7 2019 / 10 / 18 238 0 10580   
6 해바라기,너에게 6 2019 / 10 / 18 231 0 11626   
5 해바라기,너에게 5 2019 / 10 / 18 243 0 10733   
4 해바라기,너에게 4 2019 / 10 / 18 227 0 10688   
3 해바라기,너에게 3 2019 / 10 / 18 224 0 11420   
2 해바라기,너에게 2 2019 / 10 / 18 252 0 9336   
1 해바라기,너에게 1 2019 / 10 / 18 406 0 9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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