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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히드레아 향기가 풍기는 섬
작가 : 광선
작품등록일 : 2019.9.12

식물학자 은제린이 새로운 향수 개발을 위해 꼭 필요한 꽃, 히드레아가 피는 섬으로 가서 그 나라 왕과 펼치는 사랑이야기.

 
5화
작성일 : 19-10-17 13:49     조회 : 212     추천 : 0     분량 : 9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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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조금은 어지러운 상태에서 첫 발을 디딘 유스피아 섬의 감상은 그냥 정신이 없을 뿐이었다. 하지만, 묘한 것은 은은히 코끝에 번져오는 향이었다. 이상하리 만치 안정적인 기분을 주었다. 얼마나 많이 있으면 이토록 향이 그윽하고 진할지 그 생각만이 머리 안을 가득 채웠다. 오돌오돌 아직 완전히 가시지 않은 오한에 쩔쩔매고 있자, 라미가 곁으로 다가와 부축해 주었다. 회사사람들은 왕이 보낸 군병들의 호위를 받으며 사장을 앞에 세워 많은 물자와 물건들을 챙겨 궁전으로 향해가고 있었다.

 

  나도 맨 뒤에서 그들을 따라 가고 있을 때, 좀전보다 더 심하게 풍기는 향에 매료되어 그 정체가 궁금한 나머지 라미에게 잠시 3분 정도 쉬다가 따라 갈 테니, 먼저 가라고 해서 보낸 뒤에 향기가 물씬 풍기는 곳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온전치 못한 몸이어서 하늘이 빙글빙글 돌고 머리는 찡하고 어지러웠지만, 향은 나의 아픔마저 치유해주고 있는 듯이 살랑 이며 천사의 투명한 옷처럼 나를 유혹했다.

 

  얼마 걷지 않았을 때, 넓은 들판이 눈에 보였고, 온통 그 안은 하얀 꽃으로 가득 채워져 향기가 사방에 휘감겨 있었다. 모양은 백합 비슷한 모습이었지만, 그 보다 더 섬세하고 아름다운 빛을 띄었고, 더욱 햇빛이 바로 내려쬐는 곳이어서 그런지 눈이 부셔서 제대로 바라볼 수조차 없었다. 더욱 놀라운 일은 그 꽃들 틈에 하얀 옷을 입은 천사가 가지런히 앉아 꽃들을 다듬고 있는 것이었다. 빛의 반사 때문인지 아니면 신비한 힘이 나오는 건지 그 하얀 천사의 온 몸에서 하얀빛이 뿜어져 나왔고, 아름답고 윤기가 나는 길고 검은 생머리가 바람에 사뿐히 넘실거렸다.

 

  그리고 하얀 피부는 어린아이의 것인 냥 뽀얗고 깨끗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바로 천사였다. 도저히 내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유스피아 섬에 이런 천사가 살고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한 일이었다. 그리고 나는 감겨지는 눈을 억지로 참으며 애썼지만, 이내 견디지 못하고 급격히 닥친 오한에 무릎꿇어야 했다.

 

  얼마정도 잠들었을까?

 

 천천히 눈을 떠보니, 나의 얼굴 바로 위에 좀전에 천사가 미소를 짓고 있는 것이 아닌가? 몸이 아파서 혹시 다른 여자를 보고 착각했을 거라고 판단했을지도 모른다고 여겨도 될 것을 이렇게 그 하얀 천사는 쓰러진 나를 자신의 가지런한 무릎에 올려놓고 간호하고 있었던 것이다. 놀라서 일어나려고 하자, 천사는 안 된다고 고개를 저으며 다시 나의 머리를 눌러 천사의 부드러운 무릎에 머리를 올려놓게 했다. 나의 타락한 때가 조금이라도 천사에게 묻어서 두 번 다시 하늘로 못 올라가는 것은 아닌지, 걱정으로 가득한 나를 아랑곳없이 천사는 미소 지으며 기뻐하는 것 같다.

 

 더욱이 히드레아 꽃이 분명한 그 흰 꽃을 나의 옆머리에 꽂으며 스스로 즐거워하고 있지 않은가? 조금은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지만, 아직도 어질 하는 머리로 인해 이러 지도 저러지도 못했다. 무슨 말이라도 해볼까했지만, 어느 나라 말이 통할지도 걱정이었다.

 

  “저, 저를 간호해주셔서 고마워요.”

 

 일단은 세계공통어인 영어로 대답을 해보았다. 설마 천사라고는 해도 영어는 알겠지 싶은 심정에 일단 말을 꺼내보았으나, 무슨 말이지? 라는 표정으로 갸웃거리며 나를 보았다. 그리고는 뭐가 즐거운지 혼자서 꺄르르 웃어넘기는 것이었다.

 

  ‘저, 여보세요?’

 

 난 당황해서 이 상황을 어떻게 모면할까 싶기도 했고, 지금쯤 회사사람들이 내가 없어진 것을 알고 찾느라 수선들을 피지는 않을까 심려되었다. 천사를 만난 것도 기적이고, 나같이 하찮은 인간이 황송하게도 천사의 무릎을 베고 있다는 것도 죄스러웠다. 하지만, 천사는 여전히 일어나려는 나를 막무가내로 막아내고 있었고, 얼굴은 곱고 연한 꽃같아서 꺾으면 바로 쓰러질 듯 보여도 천사인지라 인간과는 다른 힘이 있어서 매우 강하여 나의 버둥거림은 금세 제압 당하고 말았다.

 

  “전, 친구들이 기다리고 있어서 더 이상 당신과 함께 할 수 없어요.”

 

  나의 말은 이해 못했다해도 난처한 눈빛을 보고 알아들었는지, 더 이상 천사도 나를 막지는 않았다. 그리고 천천히 일어나 그 천사의 곁에서 멀어져 돌아온 길로 갈려고 하니, 눈앞에 히드레아 꽃이 펼쳐져 있었다. 돌아가려면 저 꽃틈새로 가지 않으면 안될 것 같아 꽃들 속으로 들어가 겨우 겨우 밟지 않고 헤쳐가던 중에 불안하던 걸음으로 그만 넘어지고 말았다.

 

 그러자 어디선가 들려오는 웃음소리에 빨리 자리를 털고 일어나 고개를 드니, 그 천사가 계속 나를 바라보고 있었는지 웃음을 마구 쏟아 놓고 있었다. 난 좀 당황하기도 하고, 또 화도 나서 바로 그 아름다운 사람 곁을 떠나갔다. 잘못하다가는 회사 사람과 헤어져 길을 잃을까 두려워 일단은 라미와 헤어진 길로 가려고 했다가 도저히 찾을 수가 없어 나를 찾으러 다시 해변가로 나왔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해 그 쪽으로 가기로 했다.

 

 그런데, 이것도 순탄치만은 않았다. 염려했던 일이 현실화되었고, 극심한 길치인 나는 다시 길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계속 걷고, 걸어도 해변은 나오지 않고 숲속의 우거진 수풀만이 눈에 띄었다. 그것도 들짐승이 우글거리는 깊은 숲속에 혼자 있다는 생각에 다리마저 후들거리기 시작했고, 심장도 빠른 속도로 곤두박질치고 있었다. 일단은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사방을 조심히 살펴보았다. 발은 이상하게도 내 말처럼 움직이지 않고 있었지만, 그건 무서워서 그런 것으로 넘어가고 다시 주변을 보았다.

 

 섬에 오후에 도착해서인지 해가 저물어 가는 듯 싶었고, 숲의 밤은 나무로 빽빽해서 달빛마저 비춰지지 않기 때문에 더 어둡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더욱 무서워져 갔다. 일단 깊이 심호흡을 하고 정신차리자고 스스로를 위로한 뒤 어떻게 이 난관을 이겨낼지 고심하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누군가 나의 어깨에 손을 얹었던 것이다.

 

 “으악!”

 

 난 순간 너무 놀라 괴성을 질렀고, 내 소리에 누군가도 놀란 듯 내 뒤에서 털썩하며 주저앉는 소리가 들려왔다. 천천히 고개를 돌려보니, 다름 아닌 좀 전에 보았던, 천사였던 것이다. 아직도 그 아름다운 외모를 지니고 있었고, 하얀 옷을 입고있기는 했지만, 조금 전처럼 빛이 발산되지는 않았다. 그리고 뭐라고 말까지 하는 것이었다. 내가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은 아니었지만, 낯익은 언어라서 혹시 하는 생각에 다시 천사를 찬찬히 훑어보니, 그녀는 천사가 아님을 알게 되었다. 바로 유스피아 섬에 살고 있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다른 이와 다르게 출중한 외모를 타고난 여자였다는 것을 깨달았고, 목소리는 얼굴과는 달리 약간의 굵은 것 같았고, 음색을 부드럽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결론은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듣는 다는 것이었다. 그녀도 말하다가 내가 못 알아듣는 다는 걸 깨달았는지, 그냥 입을 다물어 버렸다. 그리고 내가 내민 손을 잡고 자리에서 일어났는데, 천천히 일어나는 그녀의 키가 내 위로 곧게 뻗어져 올라갔다. 의외로 장신이었던 것이다. 그럼 키가 커서 힘도 쎘다는 건가? 하며 말이 안되면서도 납득하고 있는 나였다.

 

 그리고 그녀는 다시 내 발밑 쪽으로 앉고서 내 발을 살펴보고 있었다. 발이 너무 작아서 신기한가? 아니면 특이한 모양이라서 그런가? 하며 의구심에 빤히 쳐다봄과 동시에 발에 힘이 빠져 털썩 땅에 주저앉아 버렸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감이 오지 않았다. 그녀는 내 신발을 벗기고 드러난 발을 유심히 관찰하고 있었고, 난 어떻게 된 것인가 싶어 그녀가 보고 있는 곳에 같이 시선을 맞추었다.

 

  “앗!”

 

 그리고 나서 나는 외마디를 질러 버렸다. 어느 샌가 두려움에 길을 헤매다가 나도 모르게 뱀에게 물렸나 보다. 나의 발등에는 선명하게 뱀의 이빨자국이 새겨져 있었고, 발에는 감각이 없었다. 누군가 내 발이 아닌 고무로 만든 것을 끼어 넣은 듯 했다. 독사라면 언제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정신이 아찔했다.

 

 도대체 무슨 원수진 일이 많아 이렇게 죽다 살아나는 일이 많은지 운명이 기구함에 더 이상 눈물도 나지 않았다. 그녀가 유심히 내 발을 보고 난 뒤, 나를 두고 어디론가 가려고 해서 불쌍한 나를 두고 집에 가는 구나 싶어 갑자기 겁이 덜컹나 그녀의 치맛자락을 움켜잡았다. 무의식적으로 뻗은 손이기에 그녀가 나를 바라봐 난 미안함에 천천히 손을 놓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녀가 내 눈에서 사라진지 얼마 되지 않아 바로 나타났고, 손에는 이름 모를 식물을 들고 있었다.

 

 한국의 식물의 이름을 맞추라면 어느 정도 자신이 있는 식물학자인 나에게 한번도 사람의 손을 타지 않는 무인도의 식물이나 난생처음 보는 종으로 가득한 유스피아 섬의 식물은 매우 생소해서 아무 것도 알 수가 없었다. 그렇지만, 그녀는 이 곳 사람인 만큼 무슨 뱀에 물리면 어느 약초가 좋다는 정도는 쉽게 아는 듯 했다. 그녀가 들고 있던 약초를 주변에 놓여진 돌로 빻아서 나의 발등에 곱게 펴 바르고, 진땀에 범벅이 된 나의 이마를 훔치며 미소지었다. 마치 안심해도 좋다는 표현 같았다.

 

  생각해보니, 최율이를 만날 때도 뱀과의 인연이 있었는데, 이번에도 뱀이 등장하다니, 뱀과 나는 전생에 무슨 인연이 있었나 싶었다. 다행인 것은 그리 맹독이 아니어서 쉽게 쓰러지거나 강한 열과 함께 바로 피를 토하지 않은 것이다. 그리고 약초가 내 둥근 내 발등에서 흘러내리지 않도록 그녀는 자신의 곱고 하얀 옷을 뜯어내어 내 발을 돌돌 동여매었다. 이제야 독의 효과가 오는지 정신이 혼미해져 갔고, 더 이상 버틸 수 없어 픽하며 옆으로 쓰러지면서 정신을 잃어버렸다. 한번도 병원의 문턱을 밟지 않았을 만큼 튼튼한 건강을 지닌 내가 이렇게 낯선 나라에 와서 병치레를 하게 되었다는 것이 자존심이 상해버렸지만, 모든 건 필연이 아니라 우연히 발생된 고난이었기에 나는 할말이 없었다.

 

 그냥 다음부터는 한국지사에서 외견근무 가라고 해도 절레절레 고래를 젖기로 했다. 신기한 것은 히드레아 꽃 덕분인지 아무런 꿈도 꾸지 않고 깊고 편안함 잠을 청했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꿈을 꾸지 않고 잠을 든 적은 한국을 떠나고 한번도 없었는데, 놀라운 일이었다. 안타까운 것은 폭신하고 부드러운 침대가 아니라 풀숲에서 잠을 자고 있을 나라는 것이었지만, 그것도 편안하게 잠자리에서 눈을 떴을 때 그렇지 않음을 알았다.

 

  ‘대체 여기가 어디지’

 

 눈을 뜨자마자 눈에 보인 것은 하얀 천장이었다. 이 천장은 말로만 듣던 천장이 있는 침대의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하얗고 야들야들한 천이 모기장처럼 사방을 둘러싸고 있어 마치 내가 공주님이 된 것 같은 기분마저 들게 했다.

 

  ‘이상한데, 분명 나는 아까 그녀랑 같이 숲에 있었어야 했는데..참, 그녀는 어떻게 됐지?’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였다. 다시 내 코를 간지럽히는 은은한 것이 있었으니, 유스피아 섬에 떠돌고 있던 히드레아의 향기였다. 얼마나 많이 피어있으면 이렇게 방에서까지 향이 날까 싶었다. 어쨌든 나를 도와준 그녀의 안부가 걱정되기도 하고, 내가 어디에 왔는지 여러 가지로 심난해서 일단 침대에서 일어났다.

 

  ‘앗참, 나 뱀에게 물렸었지?’

 

 그제야 내가 정상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지만, 그렇지도 않은 것 같았다. 아무 말끔히 다 나아서 멀쩡하게 두 발로 서 있었던 것이다. 굉장하다 싶었고, 이렇게 깔끔히 나게 해준 그녀에게 더욱 감사할 따름이었다. 그리고 시선을 돌리자, 아니나 다를까, 침대 옆 미니 화장대 위에 히드레아를 담아둔 화병이 턱하니 놓여 있었다. 어쩐지 향이 섬 쪽보다 더 심하다했는데, 내 눈앞에 한가득 자신의 얼굴을 뽐내듯 그렇게 놓여 있었다. 향이 은은하기도 하고 따뜻하기도 하며 부드러운 감촉이 느껴질 것 같았다. 향수회사라면 확실히 탐내고도 남을 것 같았지만, 이 섬밖에 피지 않는 다고 하니, 애석하기도 했다.

 

  그리고 계속 맡아보니 약간의 환각작용도 있어서 마음의 안정을 주고, 진통을 완화하는 기능도 있는 것 같았다. 향이 가진 기능은 하늘을 찌를 만큼 굉장한데, 심지어는 불치병에 걸린 사람도 낫게 했다는 설도 있다. 그것이 가능한지도 모르겠지만, 그 비슷한 효능은 확실히 있다. 피로를 풀어주거나 마음의 안정을 주거나 슬픔을 달랠 수 있으며 건강 적으로 활발하게 해주는 향은 많이 개발되어 있기 때문이다. 아로마 향이나 허브향 도 이들과 매한가지의 작용이 있다. 히드레아도 이들처럼 효능을 가진 향이 분명했다. 그래서 더 조사하려고 히드레아에 코를 박고 있을 때, 누군가가 방문을 두드렸다. 놀라서 히드레아에서 떨어지며 시선을 문 쪽으로 보냈다.

 

  “누구세요?”

 

 유스피아어를 모르기 때문에 나의 말에 대답할 사람을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무의식적으로 내뱉어져 버렸다.

 

  ‘앗차, 이 놈의 돌 머리는. ’

 

 그런데 뜻밖의 신호가 내 귀에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전 이몬디아라고 합니다.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잠시 들어갈까 합니다만.”

 

 영어로 회답하는 맑고 또렷한 목소리에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이제 살았다. 그리고 바로 문 쪽으로 걸어가 문을 열어 주었다. 그러자 피부가 구릿빛이며 빨간 옷을 걸친 여자가 나를 향해 미소를 건네었다. 눈동자는 매우 검고 빛났으며 이목구비도 또렷한 미인형이었다.

 

  “안, 안녕하세요. 전 은제린이라고 합니다.”

 

 비로소 나를 소개하고, 인사를 건네었고, 이몬디아는 살며시 웃으며 손에 들고 있던 복숭아를 침대 앞에 놓여진 탁자위로 가져갔다.

 

  “식사 전이시라 배고프실 것 같아서 가져왔어요. ”

 

  “다행이네요. 영어를 하실 수 있어서요. 앗, 그리고 복숭아도 감사합니다.”

 

  “후후. 영어는 부모님이 어릴 적부터 시키셔서 배웠었죠. 그리고 더 필요하신 것이 있으면 말해주세요. 지금 제린님과 같이 온 분들은 무도회장에서 즐거운 유희를 즐기고 계시죠. 왕궁에 오셔서 다행이에요.”

 

 이몬디아의 말을 듣고 모두와 떨어지지 않고 제대로 오게 되어서 더욱 마음이 놓였다. 게다가 이곳이 왕궁이었다니. 그럼 나는 극빈한 대접을 받고 있다는 건가? 하긴 모두와 함께 그렇겠지만. 그렇다면 나를 이곳으로 데려온 것은 설마 그녀일까? 키도 컸으니, 힘도 센 것이 맞겠지만.

 

  “저, 나를 이곳으로 데려온 것은 누구죠?”

 

  “그건 차차 말해드리죠. 피곤하실 테니, 오늘은 푹 쉬시고 내일부터 일에 착수하시면 된다고 마쿼스님이 전해드리라고 했습니다. 그럼 저는 이만.”

 

 이몬디아의 입에서 사장님의 이름이 나와서 조금 움찔거렸다. 그녀는 마치 마쿼스사장과 친분이 있는 듯 손쉽게 이름을 부르는 것이었다. 나와 같이 있던 라미나 체커스조차 이름을 언급하지 않아서 나 또한 이름을 대지 않았는데, 이몬디아는 아무렇지 않게 이름을 말하다니. 점점 미궁으로 빠져드는 것 같았다. 아론의 정체도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G&B의 사장이 직접 타고 온 헬리콥터로 일개의 연구소 직원을 태우지는 않을 테고, 게다가 그는 이곳 섬의 귀족이지 않은가? 더욱 의심스러운 것은 샤린도 아론에 대해 매우 친숙한 사이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장도 좀처럼 연구원과 같이 행동한 적이 없었다고 했는데, 어째서 이 섬만은 같이 오게 된 것인지 모든 것이 의문투성이었다.

 

  하지만, 이런 의문들이 내게는 그리 중요하지 않은 일임을 알기에 차차 알아가기로 하고 탁자에 밑에 깔려진 방석 위에 몸을 앉히고 탐스럽게 울긋불긋한 복숭아를 집어들어 껍질을 벗기고 깊이 한 입 물어 보았다. 톡하고 입안에 퍼지는 달콤함에 혀가 만족스런 반응을 보였다. 그리고 나니 최율과 연락하지 않은지 벌써 한 달이 되어간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혹시 이곳에 공중전화가 있을까 해서 누군가를 불렀지만, 다들 영어를 모르는 것 같았다. 이몬디아는 보통의 시녀가 아닌 모양이었다. 다시 우울한 기분에 나머지 복숭아를 먹어 치우고 있을 즈음 다시 누구나 내 방문을 두드렸다.

 

  “저, 이몬디아입니다. ”

 

 맑고 청량한 목소리를 듣고 반가움에 문을 활짝 열자, 이몬디아도 다시 미소로 화답을 해왔다.

 

 그리고 두 손에는 은접시가 놓여져 있었고, 그 접시 위에는 이곳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현대문명의 핸드폰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이게 뭐예요?”

 

 “어머, 모르세요? 마쿼스님이 전화기라고 하셨는데요. 저도 잘 모르겠지만, 제린님은 아실 거라고 하셨는데요.”

 

  “그럼, 이건 사장님이 주신 건가요?”

 

  “예. 필요하실 거라고 하시며 잠시 빌려 드리겠다고 하셨어요. 낼 전해주셔도 된다고요.”

 

  “하지만, 어째서 제게.”

 

  “제린님은 그 동안 힘든 일도 겪으시고 다른 분과 달리 외국에서 오셔서 더욱 외롭고 집이 그리울 것이라고 하셨어요. 그러니, 전화비 신경 쓰지 말고 맘껏 쓰라고 하셨어요.”

 

  이몬디아를 통해 마쿼스 사장의 마음이 전해지자, 나도 모르게 뭉클해졌다. 전화기가 필요한 것을 단번에 파악하다니, 35살의 나이였지만, 속은 70세의 노인처럼 인자하고 배려 깊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핸드폰을 집어들었다.

 

  “그럼 이만, 좋은 밤 보내세요.”

 

 이몬디아는 정중히 인사하며 갈 길이 바쁜 듯 바로 이곳에서 나가버렸다. 난 안정적인 기분으로 일단 나를 길러내신 큰아버지와 큰어머니에게 전화를 해서 안부를 전했다. 다들 최율에게 전화해도 내 소식을 알길 없어 걱정했다고 했다. 큰어머니는 아무 탈없이 돌아오라고 했으며 큰아버지도 건강하게 맛있는 것만 먹고 잘 지내라고 했다. 한없이 곱고 마음이 따뜻한 분들을 만났소 있음에 깊이 감사했고, 그 동안의 역경 때문인지 그런 고마운 말에 눈물이 흘렀다. 그리고 나서 가장 걱정되는 최율이에게 조심스레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최율이야?”

 

  “어? 야, 은제린! 어떻게 된 거야? 전화를 매일매일 해도 모자란 판에 대체 한달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엇? 제린아, 왜 울고 그래? 무슨일 있었어? 어디 아파? 내가 지금 미국 갈까?”

 

  오랜만에 듣는 최율이의 다정한 말을 들으니, 눈물이 왈칵 쏟아져 버렸다. 아론하고 행했던 비도덕적인 행위가 고개를 쳐들어 미안함이 들었고, 속죄의 눈물이라 매우 쓰게 느껴졌다. 뭐라고 해도 지강지처가 최고라는 말을 실감하고 있었다.

 

  “괜찮아. 그냥 네 목소리 들으니까, 좋아서 그래. 빨리 한국에 가고 싶어. 네가 너무 보고 싶다.”

 

 “어? 웬일이야, 네가 그런 말도 할 줄 알고. 헤어져봐야 나의 소중함을 알지? 여러 가지로 힘들겠지만, 조금만 견뎌. 도저히 외롭고 괴로워서 못 참겠으면 대신 내가 가있을 테니까, 전화해! 널 힘들게 하는 일이라면 내가 용서 못하니까. 이렇게 든든한 남자가 버티고 있으니까, 걱정 말고 힘들 땐 기대라고요, 아가씨.”

 

 “후후. 알았네요. 왕자님. ”

 

 “어어? 은제린, 울다가 웃었어? 얼레리 꼴레리...어디어디에 털 난대요?”

 

 “야~ 김최율! 너 장난칠래?”

 

 최율이랑 통화하면서 예전의 나로 돌아온 기분이었다. 그 동안 힘들었던 일이나 괴로웠던 것이 한순간 날아가 버린 것 같았고, 스트레스나 힘겨운 싸움도 모두 사라진 것 같았다. 그래서 더욱 최율이에게 미안하게 느껴졌지만, 다음부터는 절대로 한눈 팔지 않기로 결심했다.

 

  “에구. 이제야 은제린같네. 하지만, 아까 말한 건 진심이야. 힘들면 다 버리고 내게 달려오란 말야. 내가 다 해결해 줄께. 약혼자는 이럴 때 써먹는 거야! 알았지? ”

 

  “알았어. 고마워.”

 

  “오~ 진짜 은제린 맞냐? 완전히 새사람 됐는데, 나 몰래 범죄라도 저지른 건 아니겠지?”

 

 “글세.”

 

  “야, 그런 짓 하지마. 우리 아기의 앞날도 생각해 줘야지. 부모가 빨 간줄 있으며 장래에 힘들다고. 범죄 저질러도 몰래하란 말야! 알았지? 밥은 제대로 먹고 있는 거야? 한국에서처럼 빵으로 때워서는 힘도 안 나니까, 먹을 수 있는 한 가득 채워두고, 잠도 푹 자고, 멋진 곳도 시간 있을 때 돌아다니고 그래. 또 일한답시고 식물원에만 쳐 박혀 있지 말고. ”

 

  “알았어. 너도 건강하게 잘 있어.”

 

  “그래. 또 연락줘야해.”

 

  “응. 섬에서 나가는 데로 바로 연락할게.”

 

  “그래. 잘 지내고, 건강해라~!!”

 

 기분 좋게 최율이와 통화를 마쳐서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이렇게 좋은 것을 진작에 통화할 걸하고 생각했다. 이제 모든 것이 순조롭게 돌아갈 듯 싶었다. 이제는 유스피아 섬에서 히드레아 꽃만 채취해서 무사히 연구소로 돌아가기만 하면 되었기에 그 어떤 걱정도 이제는 없었다. 궁금한 것이 없지 않아 있었지만, 그건 나와 상관없는 일이라서 그리 관심 갖지 않기로 했다. 폭신하고 부드러운 침대에 몸을 누이고 천장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 한국에 돌아가서 최율과 결혼하고 아기 낳고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머릿속으로 그려보았다. 결혼식에는 친구도 초대해야지. 누굴 초대하지? 조금씩 친구들의 얼굴을 떠올리며 이름을 말하니, 양 100마리를 읊을 때처럼 눈이 감겨졌고, 흐뭇한 미소 속에서 서서히 잠결로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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