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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천사가 아니야
작가 : 판도라
작품등록일 : 2019.10.4

한 고양이의 시선으로 본 인간세상과, 사람과 고양이의 생성관계, 그리고 그들의 믿음과 사랑...그들은 천사였다. 아니, 천사가 아니었다.

 
천사의 전쟁
작성일 : 19-10-17 00:33     조회 : 216     추천 : 0     분량 : 8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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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

 

 포포는 못말리는 개구쟁이였다.

 

 포포는 이름 그대로 포동포동 살이 올라서 여자가 사이트에 업뎃한 포포의 사진밑에는 어느 지인이 강아지인지 돼지인지 모르겠다는 댓글이 달릴 정도였다. 포포는 죽은 쌍둥이 형제 몫까지 챙기려는 듯 걸탐스럽게 젖을 먹었고 한달이 채 안되었을 때에는 여자가 구석에 치워놓은 사료 주머니에 아주 몸채로 들어가 사료를 파먹기 시작했다. 남자는 여자의 집에 올때마다 혀를 끌끌 찼다.

 

 “저렇게 빨리 자라면 곧 썅썅을 따라잡겠는 걸.”

 “대신 투투가 너무 여위고 있어.”

 

 여자는 바싹 마른 내 몸을 보면서 살짝 이마를 찌푸렸다.

 

 “고양이는 크면 어미가 일방적으로 젖을 떼고 자식을 독립시킨다고 들었어. 그런데 투투는 그럴 기미가 보이지 않네.”

 

 여자의 말대로 고양이는 냉정한 동물이여서 새끼가 젖을 떼기만 하면 거의 혹독하게 곁에서 내쫓군 한다. 특히 길고양이 경우에는 일단 새끼고양이가 젖을 뗀 다음에는 자신을 낳아준 어미와는 길에서 스쳐지나도 서로 모르는 사이가 되고만다. 여자의 말대로라면 나는 더 이상 포포를 상관 말아야 했다. 이미 사료를 먹기 시작하는 포포는 전혀 한달된 고양이 답지 않게 몸집이 우람지고 발목도 굵었던 것이다. 하지만…

 

 아마 때이르게 저세상으로 간 엄마의 못다한 몫을 하고싶은 것일까…아니면 어릴때부터 젖을 마음껏 먹지 못한 내자신의 유감때문이였을까…나는 내게 메달리는 포포를 차마 무정하게 떼어버릴수 없었다. 포포는 썅썅의 크기를 따라잡는 두달이 될때까지, 아니 완연한 중고양이로 자라난 반년이란 시간을 뛰어넘어서도 틈만 나면 내 품을 파고들었다.

 

 식구가 보태진 집은 그나마 표면의 평화를 유지했다. 그동안 변화로 치자면 포포의 성장과 더불어 눈에 띄이게 과묵해진 썅썅의 태도였다. 굳이 또 한가지 더 보태자면 남자가 드디어 룸메이트와 결렬하고 여자가 사는 이 집에 자연스럽게 입주했다는 사실이었다.

 

 “정아는 이제 자네가 있으니 걱정하지 않겠네. 그래, 결혼은 언제쯤으로 생각하고있나?”

 

 여자의 아버지가 언젠가 여자의 집으로 찾아왔고 남자는 여자의 아버지가 묻는 말에 쓸쓸한 미소를 지었다. 여자의 아버지가 다녀간후 남자는 쏘파에 앉아 오래도록 침묵만 지켰다. 나와 썅썅은 다 큰 포포를 훈련시키느라 거실을 뛰어다니고 있었다.

 

 “정아야, 이 고양이들을 좀 어떻게 해봐. 신경 씌여 뭘 못하겠어.”

 

 남자가 머리를 돌려 여자를 불렀지만 여자는 못들었는지 방안에서 나오지 않았다. 그 틈을 타서 포포가 급작스레 남자의 슬리퍼를 덥썩 물었고 썅썅은 그런 포포에게 몸을 날렸다.

 

 “이놈의 고양이새끼들이!”

 

 남자가 발을 번쩍 들었고 동시에 썅썅이 새된 비명소리가 들렸다. 나는 구석으로 슬금슬금 기여들어가는 포포의 뒤모습을 멀거니 바라보다가 남자의 발길에 채운 썅썅을 찾아 베란다로 나섰다.썅썅이 베란다 창문가에 식빵 자세로 웅크리고 있는 것이 눈에 띄였다.

 

 “괜찮아?”

 

 나는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고 썅썅은 눈을 들어 나를 주시했다. 썅썅의 파란 눈동자에 언뜻 스치는 짙은 상처 비슷한 눈빛이 내 가슴을 저리게 하고있었고 나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요즘 반쪽 주인 기분이 다운되어서 그래. 너도 알잖아. 경제위기가 시작되니 인간들 기분도 다운된 걸. 우리가 먹을 사료, 화장실 모래가 끊겨도 이어댈 방법이 없다는 걸…우리가 이해하자.”

 “…”

 “지금 니가 무슨 생각 하는지 알아. 여길 떠나고 싶어하지. 포포가 태어난 다음부터 너는 쭉 그 생각을 해왔어. 나로서는 더 이상 너의 그 가출을 막을 힘도…막고싶은 생각도 없어졌어. 다만…”

 

 나는 말을 끊고 썅썅을 바라보다가 조용히 머리를 돌렸다.가을밤 어둠속에서 이름모를 벌레가 우는 소리가 청승맞게 들려오고 있었다.

 

 “다만 뭔데.“

 

 썅썅이 나지막하게 물어왔고 나는 또 한번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만일…만일 그게 확실하다면…문득 울고싶어 졌지만 고양이는 울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들어 나는 애써 뜨거운 것을 눈안으로 밀어넣었다.

 

 “나…두번째 임신이야. 그리고 이번엔 적어도 둘이상이야.”

 

 어둠속에서 썅썅의 눈길은 전에없이 슬픈 빛을 띄고 있었다.

 ......

 

 두번째 출산은 순조로왔다.

 

 이미 고양이 출산보조 경험이 있는 여자는 내가 복통이 시작되자마자 상자를 가져와서 털옷을 깔아준후 나를 조심히 들어서 상자안에 눕혀놓았다. 여자는 처음처럼 내 앞발을 잡아주었고 나는 여자의 응원속에서 배에 힘을 주었다. 한마리…두마리…세마리…

 

 이번 아기들의 출생은 여자와 남자에게 기쁨을 가져다주는 동시에 큰 시름거리도 안겨주었다는 것을 나는 둘의 표정에서 읽어낼수 있었다. 나는 썅썅을 바라보았고 썅썅은 묵묵히 자리를 떠나서 거실로 나갔다.

 

 “포포 혼자 외로왔는데 잘됐네. 이번엔 이름을 뭐라고 할까.”

 “내가 생각해놨어.”

 

 남자가 내 품의 아기들을 바라보며 빙그레 웃었다.

 

 “중간은 어룽어룽하니까 범같잖아. 버미라고 하자. 그리고 큰 아기와 작은 아기는 토미와 제리라고 하고.”

 “토미, 버미, 제리…입에 잘 붙는 이름이네.”

 

 여자는 희미하게 웃다가 뭔가 생각한듯 남자에게 시선을 돌리면서 입을 열었다.

 

 “있잖아...부탁이 있는데.”

 “니가 뭘 생각하는지 알어.”

 

 남자가 조용히 웃었다.

 

 “애기들 침대옆에 데리고 있고싶어?”

 “응…”

 

 여자의 눈이 반짝거렸고 남자는 잠깐 머리를 떨구고 사색에 잠겼다. 여자는 풀이 죽어서 목소리를 낮추었다.

 

 “안되는…거야?”

 “아니, 데리고있어. 침대안쪽에 털담요를 펴놔. 자리 마련해줄께.”

 “정말?”

 

 여자의 얼굴에 활짝 웃음꽃이 폈고 남자는 여자를 돌아보면서 못말린다는 듯 웃었다.

 

 “내가 고양이들한테 순위 밀려나는 게 어디 한두번이여야 말이지.”

 “미안해...내가 잘할께.”

 “됐어. 아부는 그만하고 돌아누울 때 깔지 않게 조심하기나 해. 너 좋을대로 다 해봐.”

 

 남자의 말속에는 뭔가 다른 의미가 있었지만 여자는 눈치채지 못한 듯 신나게 자리를 폈다. 나는 여자가 우리 자리를 옮기는 틈을 타 잠깐 몸을 일으켜 거실로 나갔다. 썅썅이 묵묵히 베란다 창문옆에 앉아 창밖을 하염없이 바라보는 것이 눈에 띄였고 나는 조용히 썅썅의 옆에 가 앉은후 그가 시선을 고정한 창밖 농구장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미안해.”

 “뭐가.”

 “나 때문에 니 생각을 행동에 옮기지 못하게 해서…”

 “바보 같은 소리.”

 “이제 한달만 지나면…니 마음대로 해.”

 “투투…”

 

 썅썅이 가볍게 내 말을 잘랐다.

 

 “넌…같이 가지 않을거니?”

 

 나는 대답을 하지 못했고 썅썅의 눈빛에는 언뜻 비아냥이 스쳐지나갔다.

 

 “넌 나를, 사랑하기나 한 거니?”

 “…어떻게 그런 말을...”

 “어쩌면 넌 나보다 주인을 더 사랑하는거 같아서 말이야.”

 

 썅썅은 방금전 남자랑 비슷한 말을 하고있었다.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난 말이야…”

 

 나는 잠시 머리를 숙였다가 줄곧 생각해왔던 말을 입밖으로 내뱉었다.

 

 “그래도 우린 여기 같이 있었으면 좋겠어.”

 

 썅썅의 표정에 언뜻 허구픈 웃음이 스쳐지났지만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고집스레 말을 이었다.

 

 “그게 왜 안되는 거야? 너랑 나랑…우리 아기랑 주인이랑…다 같이 사는게 왜 안되는 거야?”

 “세상에는 영원한 거란 없다고 했지.”

 “영원을 바라지 않았어. 그냥 지금을 소중히 여기고 즐기자는 건데 그것도 안돼?”

 “그건 맹목적인 낙관주의야.”

 “그런 너는 지나친 비관주의고 비겁한 도피야.”

 

 나는 이를 갈면서 말했고 그런 내 말은 썅썅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우리는 서로를 잡아먹을 듯이 노려보았고 썅썅은 그런 나를 한참 보다가 단념한 듯 머리를 돌렸다. 방안에서 애기들이 낑낑 울어대는 소리가 들렸고 나는 귀를 쫑긋 세우며 몸을 일으켰다. 뒤에서 썅썅의 목소리가 내 발목을 잡았다.

 

 “만일…지금 니 고집이 만회할수 없는 결과를 빚어냈을 때는…그땐 내 말을 따르겠니?”

 “결과? 그게 어떤 건데?”

 

 나는 머리를 돌리지 않고 물었고 썅썅은 잠깐 침묵을 지키다가 나지막하게 대답했다.

 

 “우리 힘으로는 되돌릴수 없는, 평생을 두고 감당해야 하는 결과…”

 “만일 그런 결과라면…”

 

 나는 머리를 돌리고 썅썅을 보면서 또박또박 말을 이었다.

 

 “내 운명으로 받아들이겠어. 하지만 그런 결과가 나타나지 않게 난 최선을 다할 거야.”

 

 나는 머리를 홱 돌려 방안으로 걸어들어갔다. 등뒤에서 썅썅의 착잡한 한숨소리가 들려왔고 나는 그 어떤 비장한 기분에 천천히 몸을 떨었다.

 

 또 한해의 가을이 붉은 석양속에서 조용히 지고있었다.

 ......

 

 토미, 버미, 제리중에서 그래도 토미가 제일 예뻤다. 희고 노란 털로 뒤덮인 몸은 날씬하고 유연했으며 겁에 질린 동그란 눈은 항상 비취색 영롱한 빛을 뿜고있었다. 버미는 이름 그대로 영특한 얼굴에 어룽어룽한 얼룩무늬를 하고있었는데 그 무늬는 멀리서 얼핏 보기에 킹을 닮아있어서 언젠가 내가 한번 깜짝 놀란 적도 있었다.

 

 제리는 셋가운데서도 제일 못생긴 아이였다. 넓은 얼굴에 얼룩무늬의 푸석푸석한 털, 게다가 코옆에 자리잡은 커다란 점무늬가 얼굴의 조화를 깨뜨리고 있어서 여자와 남자는 처음에는 제리를 썩 귀여워하지 않았다. 셋은 여자의 잠자리 옆에서 내 품을 파고들었고 가끔 포포가 뛰어올라와서 놀래키면 바들바들 떨면서도 캬악 소리를 지르군 했다.

 

 포포는 새롭게 태어난 세 어린 생명이 신기한 모양이였다. 가끔 어미 흉내를 내면서 여자의 잠자리옆에 자리를 틀고 누워있기도 했고 내가 돌보지 않는 틈을 타서 토미를 슬슬 몰아 침대 가장자리로 밀어내기도 했다. 여자는 그때마다 새된 소리를 질렀다.

 

 “포포! 이 개구쟁이야. 넌 큰형이야. 왜 애들을 못살게 구는거니.”

 “야옹~”

 

 포포는 여자의 말을 부정하는 뜻으로 가느다란 울음소리를 냈고 여자는 손을 휘둘러 포포를 방문밖으로 내쫓았다.

 

 “넌 들어오지 마. 이제부터 이 방 출입금지야.”

 

 포포는 머리를 털면서 방문밖으로 유유히 걸어나갔다. 잠시후 문틈으로 이름모를 역한 냄새가 풍겨들어왔고 남자는 테이블앞에서 머리를 돌리고 이마를 찌푸렸다.

 

 “무슨 냄새야.”

 

 여자가 방문을 열어젖히자 포포가 냅다 달아나는 뒷모습이 우리 눈에 포착되었다. 여자는 방문틈에 지저분하게 고여있는 누런 액체에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었다. 숫코양이들의 영역 표시 냄새가 역하기 그지없다는 걸 나는 그때 처음 알았다. 여자는 발을 구르더니 밀걸레를 가져와 방바닥을 닦기 시작했고 남자는 컴퓨터 모니터에서 눈을 떼더니 버럭 역증을 냈다.

 

 “아, 그 참 역해서 못살겠어.”

 “어쩔수 없지머. 포포가 숫코양이여서 벌써 발정기인가봐. 썅썅은 안그랬는데…아니면 중성화 수술 시켜줄까?”

 “중성화...그건 너무 잔인하지 않나.”

 “그러면 어쩔수 없어. 감안해야 해.”

 “정아야.”

 

 남자는 의자에서 일어서더니 잠깐 눈살을 찌푸렸다.

 

 “우리 얘네를 언제까지 기르겠니.”

 “또 그 화제야?”

 “언젠가는 마주해야 하는 문제잖아.”

 “그 언젠가는…이 지금은 아니잖아.”

 “그냥 이렇게 억지 부릴래? 나 더 이상 막아낼 힘이 없을 거 같다. 아버님한테 불려가면 항상 결혼 얘긴줄 니가 몰라서 그러니?”

 “…결혼이 얘네랑 무슨 상관이지?”

 “만일 결혼하면 여기 집은 더이상 못있게 돼. 결혼을 하게 되면 일단 대출로 원룸 같은 걸 구매할 예정인데 얘네까지 데리고 가기엔 무리야.”

 “알았어! 다 버리면 될거 아니야!”

 

 여자는 화를 벌컥 냈고 남자는 눈살이 꼿꼿해졌다.

 

 “왜 나하고 화를 내냐? 내가 버리라고 했어?”

 “지금 간접적으로 버리라고 협박하는 거 아니야? 그렇게 오랜 시간 요구하지도 않아. 그냥 1년만, 딱 1년만 같이 더 있겠다는데 뭐가 잘못된 거야? 영원히 같이 있겠다고 한 것도 아니야. 왜 다들…왜 다들 나한테 이러는 거냐구…”

 

 여자는 그만 울음을 터뜨렸다. 남자의 눈에서 힘이 빠지고 있었고 여자는 그대로 쭈크리고 앉아 포포를 끌어안았다.

 

 “다 너때문이야. 왜 오줌을 싸고, 왜 영역표시를 한거야…썅썅은 그러지 않았어. 왜 너만 그러는거야, 왜!”

 “야옹~”

 

 포포는 여자의 원망이 이해 안된다는 듯 꼬리를 살살 저었고 남자는 머리를 떨구고 한참 침묵하다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

 

 “정아야.”

 “응?”

 “우리…여행 갈까?”

 

 남자의 뜬금없는 소리에 여자는 눈물에 젖은 눈길로 남자를 바라보았다. 남자는 긴 한숨을 내쉬면서 쭈크리고 앉은 여자를 일으켰다.

 

 “우리…요즘 집에서 너무 갑갑하게 박혀있는거 같다. 어디 가까운데 여행이라도 다녀오자. 그리고…기분전환 하고 정리해서 새롭게 출발하는 거야. 어떻게 생각해?”

 “…”

 “일박이일만 다녀올 테니 애들 걱정은 안해도 돼. 어때?”

 

 여자는 말없이 머리를 끄덕였다.

 ......

 

 남자와 여자는 이튿날 집을 나섰다. 여자가 통화하는 내용을 들어보니 인근 도시로 1박2일 여행코스를 잡는 것 같아서 나는 저번처럼 오래 걸릴가봐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그동안 둘사이 모순을 마음을 졸이면서 지켜본 나로서는 이번 여행이 남자와 여자에게는 화해의 기회일수도 있다는 생각에 오히려 마음의 탕개가 풀리는 감을 느꼈다.

 

 집이 조용해져서 나는 간만에 늘어지게 낮잠을 잘수 있었다. 잠결에 투닥거리는 소리에 나는 언뜻 눈을 떴고 쌕쌕거리며 자는 애들의 곁에서 몸을 일으켜 거실로 향했다. 방문어구에 이르렀을 때, 나는 나지막하게 들려오는 그 어떤 목소리에 흠칫 몸을 떨었다.

 

 “아직도 항복 안할거야? 이 늙다리야.”

 “항복? 나에겐 그런 낱말이 없다.”

 

 썅썅의 목소리는 분노를 억누르는 안깐힘이 들어있었고 처음에 들리던 그 나지막한 목소리는 기분나쁘게 재차 울렸다.

 

 “이젠 이 집안 서열의 최고 자리를 내놓을때도 되지 않았을까.”

 “꿈 깨. 이마에 피도 안마른 놈이 너무 때이르게 서열에 집착하는 거 아니냐?”

 “그건 당신 생각이고.”

 

 나지막한 목소리에는 잔뜩 비아냥이 섞였다.

 

 “솔직히 당신은 이젠 힘도 안되고 몸집도 나보단 작아졌잖아. 때가 되면 자연히 그 자리를 내놓아야 하는 건데 아직도 이렇게 뻐기는 그 이유를 나는 도저히 모르겠어.”

 “네놈의 심사를 내가 모를줄 아냐? 네놈이 노리는게 지금 단순한 서열 자리는 아니잖아.”

 

 썅썅의 목소리가 한옥타브 높아졌고 나지막한 목소리는 잠깐 침묵하는 듯 했다.

 

 “그래…역시 터키시 앙고라와 페르시안 고양이의 후대는 아이큐도 높다는 걸 내가 미처 생각을 못했네. 하지만 당신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몰라. 나처럼 터키시 앙고라는 페르시안 고양이처럼 단순한 애완고양이가 아니야. 고양이 품종중에서 터키시 앙고라가 제일 영리하고 용감하다는 걸 당신도 들은적 있겠지?”

 “착각하지 마라. 넌 터키시 앙고라가 아니라 페르시안 고양이와 코숏의 후대야. 자신의 정체성마저 망각하는 이 후레자식 같으니라구.”

 

 썅썅의 분노는 드디여 그 분출구를 찾고 있었고 나는 더 이상 듣고만 있을수 없어 후닥닥 거실로 뛰쳐나갔다. 썅썅의 그 마지막 한마디는 나의 의심을 증명해주고도 남음이 있었다.

 

 “어쩌면…어쩌면 이런 일이! 포포! 네가 어찌 이럴수 있니!”

 

 거실의 두 숫코양이는 어지간히 놀란 기색이였다. 얼굴이 피투성이가 된 썅썅이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고 포포는 상처 한군데 없는 깨끗한 얼굴로 잠깐 멍해있다가 금세 천연덕스럽게 꼬리를 저으며 내앞으로 다가왔다.

 

 “엄마.”

 “엄마라고 부르지 마!”

 

 나는 믿기 어렵다는 듯 눈앞의 포포를 바라보면서 방금전 들은 충격적인 대화내용을 되새겼다. 솔직히 처음에는 내 귀를 의심했지만 지금 포포의 카멜레온 같은 얼굴을 보는 순간 나는 그동안 썅썅이 불안해하고 의기소침한 이유를 알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화가 치밀어 포포를 지긋이 노려보았다.

 

 “네가 어찌 네 아빠한테 그럴수 있니.”

 “아빠?”

 

 포포는 씁쓸한 표정으로 썅썅에게 눈길을 주다가 다시 나에게로 머리를 돌렸다.

 

 “나에겐 아빠가 없어. 난 저런 무기력한 아빠가 필요하지 않아. 나를 이기지도 못하는 늙다리가 어떻게 내 아빠야.”

 “너!...”

 

 나는 몸이 부들부들 떨려서 미처 말을 잇지 못했다. 내 시선은 썅썅의 상처투성이 얼굴에 멎었다가 다시 포포에게로 돌려졌다.

 

 “네 생각엔, 아빠가 너를 못이겨서 상처를 입은거 같니?”

 “그러면? 엄마 생각엔 아빠가 날 자식이라고 인정하고 양보해줄거 같아? 고양이들 수컷은 자식 개념이 없어. 이건 나보다 엄마가 더 잘 알건데. 아빠뿐만아니라 엄마까지도 내가 젖을 떼면 더 이상 나를 아는척 하지도 않을거잖아. 그게 바로 내가 아직도 엄마 품을 집착하는 이유야. 버려지는 게 싫어서…엄마가 날 상관 안하는게 싫어서 젖을 안떼고 있는거라고…”

 

 포포는 이를 갈면서 한마디한마디 내뱉었고 나는 포포의 말에 숨이 꺽 멎는 것만 같았다.

 

 “난 널…버리려고 생각한적 없어!”

 “그렇게 고상한척 하지 마. 누가 머래도 엄마는 평범한 코숏이야…다른 고양이들처럼 자식이 자립하면 버리고, 그다음부턴 자식과 생면부지의 사이로 살아갈거라고. 그걸 부정하려 해도 소용없어.”

 “지금 넌 생기지도 않은 일을 니 억측대로 판단하는 거냐?”

 “그러면 일이 생겼을 때에야 후회하라고? 그리고 이 세상이 꺼지도록 슬퍼하라고? 난 그러지 않을거야. 내가 세상을 저버릴지언정 세상이 나를 저버리게 할수는 없으니까.”

 “이기적인 새끼!”

 “그래…난 이기적이야. 우리 고양이들은 다 이기적이야. 엄마야말로 지금 자기 정체성을 망각하고있어. 엄마가 아무리 사람처럼 살면서 생각하려고 해도 사람들은 그냥 우리를 한낱 미개한 동물로 생각할뿐이라고.”

 

 포포의 말은 비수처럼 내 가슴을 찔렀고 방안은 숨막힐 듯 갑갑한 침묵이 흘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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