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병원 탈출 시도는 실패로 끝났다. 삼십여 미터를 전력질주 하여 목표에 도달하기는 했으나, 꽉 막힌 도로에 갇혀 택시가 움직이지 못했다. 우리는 얼마 못가 직원들에게 붙잡혔다. 연락을 받은 서의원이 달려왔고, 나와 오유미는 따귀를 한 대씩 맞았다. 어찌나 세게 맞았는지 반대쪽 벽까지 나가떨어졌다. 지오는 다시 병원으로 들어갔다. 다시는 지오에게 얼씬거리지 말라는 경고를 받았다.
며칠 후, 나는 뉴스를 통해 모기인간이 잡혔다는 소식을 들었다. 지오였다. 지오의 모습은 사람들을 놀라게 했고, 국회의원의 아들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충격이 더해졌다. 서의원은 국민들을 기만할 의도는 없었다며 저간의 사정을 해명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러나 국민들은 그에게 등을 돌렸다. 야당에서는 개인적인 감정에 사로잡혀 국민의 안전을 위협한 서의원에게 국회의원으로서 자격이 있는지 의심된다며 사퇴를 촉구했다. 당 내에서도 서의원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이 우세했다. 그러나 서의원은 사퇴하지 않겠다며 버텼다. 지오에 대해서는 관련 기관에서 체계적이고 심층적인 조사가 진행 중이라고 했다.
병원 탈출 실패 사건 이후에도 오유미는 한동안 청와대에 산책하러 다녔다. 그리고 지오가 잡혔다는 소식을 듣고 난 뒤에는, 언론사에 회색양복들에 대한 제보를 하겠다고 나섰다. 방송사 및 여러 언론사와 접촉을 시도했지만 그들 중에 선뜻 기사를 내보내겠다고 나서는 곳이 없었다. 겨우 찾은 곳은 소규모의 인터넷신문사였다. 오유미는 종이 신문은 20세기의 버리지 못한 미련이라며, 인터넷 기사로 충분하다고 큰소리를 탕탕 쳤다. 그 기사 하나로 세상이 발칵 뒤집힐 거라고 기대했다. 그러나 반응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기사는 하루도 지나지 않아 포털 사이트 메인에서 사라졌다. 기사를 작성했던 기자도 그 이유를 모르겠다며 울분을 터트렸다. 오유미는 무척 낙담했다. 더 이상 청와대 산책도 하지 않았다. 그러더니 느닷없이 여행을 떠났다. 어디로 갈지 정하지는 않았지만, 절대 파리에는 가지 않을 거라고 했다.
해주는 엄마 집으로 들어갔다. 나는 십년 만에 혼자 지낼 수 있게 되었다. 아무 때나 밥을 먹었고 아무 때나 잠을 잤다. 새벽에 자다 말고 일어나 영화를 보고 맨손체조를 했다. 하루 종일 한마디도 하지 않은 날도 있었다. 면접을 보러 가지 않거나, 면접 보러 오라는 전화가 오지 않는 날이 그랬다. 그런 날들이 점점 많아졌다. 그러다보니 혼잣말이 늘었다. 나중에는 내가 한 말들이 실제로 내 입에서 나온 말인지,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들을 말했다고 착각하는 것인지 헷갈렸다. 뒤죽박죽 헝클어진 시간이 내 방에 소리 없이 고여 있었다. 누군가 고여 있는 시간의 허리를 싹둑 잘라주었으면 싶었다.
어느 날, 전화가 울렸다. 잠결에 시간을 확인했다. 9시가 막 지난 시간이었다. 면접 보러오라는 전화인가 싶어 전화를 받았다. 휴가철이 끝나가고 있었다. 회사마다 붕 떴던 분위기를 가라앉히고 미뤄뒀던 채용을 하나둘씩 처리할 때였다. 그즈음 울리는 전화는 대부분 면접 관련된 것들이었다. 나에겐 아주 드문 일이긴 하지만.
“이은수씨 맞으십니까?”
나는 몸을 일으켜 전화기를 손으로 막고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백수라지만 이 시간까지 자고 있다는 티를 내는 것은 곤란했다.
“어디십니까?”
“서지오씨 아시죠? 혹시 이은수씨 찾아가지 않았습니까?”
이건 또 무슨 일인가. 나는 불길한 예감에 휩싸였다.
“그게……, 어젯밤에도 분명 방에 있는 걸 확인했는데 아침에 보니까 없어졌어요. 문은 잠겨 있고, 창문에도 창살이 있어서 나갈 수가 없는데……. 게다가 여긴 10층이란 말입니다. 그런데 감쪽같이 사라졌습니다.”
“날아갔을 겁니다.”
나는 놀라지 않았다. 이미 예상을 했던 일이었다. 날아갔어요. 나는 차분하게 되뇌었다. 마음속에서는 흥분의 기운이 거세게 몰아치고 있었다. 몸 안의 모세혈관과 세포들이 일제히 꿈틀거리며 몸 여기저기서 함부로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떨림은 내부에서 시작되고 있었다.
여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