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이가 내 마음에 있으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우주는 나만을 바라보고, 태양은 나를 향해 빛을 비추죠. 밤에 길을 잃어도 괜찮아요. 은근한 새벽 달빛이 괜찮다고 해줘요. 날 지나가는 매력적인 사람들, 타인일 뿐인걸요. 새롭게 찾아오는 사랑은 슬프죠. 꼭 내 것이 아닌 것 같으니까.
나는 길을 잃고 방황하죠. 그리고 나는 묻습니다. 언제 날 데리러 와요? 그러면, 답은 없어요. 봄바람만, 짧아서 아쉬운 봄바람만 불어. 슬프게요.」
나는, 내가 적은 글을 보고 있는 지료 형 옆에 선 채 부끄러운 얼굴을 했어요. 학생 때는 소설가가 장래희망이었고, 직업을 갖게 되자 에세이를 출간하는 게 꿈이 되었죠. 그것도 나의 삶보다는 내가 한 사랑에 대한 에세이를 출간하고 싶었어요. 사랑을 다들 하고 산다고 하지만 어떻게, 어떤 게 사랑인지는 모르잖아요. 어렵죠. 그래서 자꾸 얘기하고 듣고 봐야하는 것 같아요. 그래야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을 때 그 순간이 다신 없을 시간이라는 것을 알아차리고 그 순간에 내가 어떻게 해야 좋을지를 빠르게 생각하지 않을까요? 생각은 행동이 되고 행위는 습관이 되어 시간은 하루가 되면서 점점 소망이 늘어나죠.
“태완아. 너 제대로 글 써보지 않을래?”
나의 글을 읽다가, 지료 형이 묻습니다. 나는 당황한 얼굴이 되었죠.
“그게 제대로 쓴 글이에요 형. 뭘 더 어떻게….”
지료 형은 심각한 얼굴을 하다가 주머니를 뒤적거립니다. 환자복의 앞주머니는 깊어서 보기와는 다르게 많은 걸 넣을 수 있죠.
“이거….”
나는 뭘 꺼내나 싶었습니다. 편지지와 편지봉투가 있더라고요. 나 참.
“부탁한다, 태완아.”
지료 형은 슈렉의 장화신은 고양이가 되어 나를 바라보더라고요. 나는 기가 차고 코가 막혔죠. 하지만 낸들 어떡합니까.
사실, 연애 소설을 쓰고 싶기도 했고. 또 혼자 쓰면 재미가 없잖아요. 누가 봐주고, 호응도 해주고, 나와 함께 뭘 느끼면 더할 나위 없죠.
“한옥 여사라고 꼭 해야 해요? 한옥 씨라고 하는 게 더 좋지 않아?”
지료 형은 길게 미소 짓습니다.
“한옥 여사는 더 좋아할 거야. 하늘에 있는 자기 남편도 같이 기억해주는 말이라고 생각할 테니까.”
나는 가만히, 지그시 지료 형을 바라보다가 다시 오트밀 색의 편지지와 편지봉투에 시선을 두었습니다. 조금 낮은 숨이 흘러나왔어요. 짧은 기간의 연애편지가 아니었습니다. 편지를 주고, 돌려받는 일도 여성 환자들이 남성 병동의 자유 방에 찾아올 때나 할 수 있는 일이었죠. 나는 머리를 굴려봤습니다. 일주일에 세 번,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아참, 본인에게 그러니까 한옥 여사가 직접 편지를 받고 돌려주는지를 알아야합니다.
“형. 누가 비둘기해요? 직접 줘요?”
지료 형은 짧은 웃음을 그립니다.
“콩순 씨 있어. 짧은 파마머리를 했지. 한옥 씨 친구야.”
나는 어느 새 몰입이 되어있었는지 다행인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나는 다시 머리를 빠르게 회전 시켰습니다. 연애편지를 쓰려면, 받는 사람에 대한 정보가 많아야 합니다. 하다못해, 사진이라도 있어야하죠. 성격, 취향, 취미, 특기, 버릇, 습관 등을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심지어 그 사람과 함께 있었던 일들을 기억하고 이야기로 만드는 능력이 있어야하죠. 어려운 일입니다. 쉽지 않아요.
“형. 한옥 여사님 말이야. 예뻐요? 어느 정도로 예뻐요?”
나의 뜬금없는 질문에 지료 형이 주춤거립니다. 형은 고민하다가 진지한 얼굴로 이렇게 답하더라고요.
“앞으로 그런 여자는 없을 것처럼?”
나는 좀, 고민에 빠졌습니다. 진지해지는 겁니다. 사랑이라도 되는 것처럼. 그래서였습니다. 구분은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 여자가 한다고 하면 결혼까지 할 거야?”
지료 형은 피식 웃습니다.
“해줄까? 야…. 어떻게 나랑 해….”
그리고 숙연해진 두 눈으로 묻는 겁니다.
“…. 해줄까?”
나는 그 조용한 두 눈을 마주하다가 끝내 고개를 숙이고는 뒷머리를 긁적였습니다. 이거, 정말 진지해야할 것 같습니다. 원래, 가벼움이 있어야 진중함이 있는 법이죠. 본질은 같습니다. 진심이니까요. 언어의 뜻은 달라도 방향이 같으면 비슷해 보입니다. 사랑을 할 때는 서로의 언어가 그렇죠. 비슷해요.
나는, 고요해진 지료 형의 작은 어깨를 토닥여주지는 않았지만 그냥 대강 뱉어냈어요.
“할게. 얘기나 해줘요, 한옥 여사 이야기 말이야.”
지료 형은 놀란 얼굴로 나를 바라보다가 한참동안이나 웃었습니다. 고맙다는 듯이 웃었죠. 나도 내 글도 봐주고. 고마웠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