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윤은 손톱을 깨물며 발로 바닥을 두드렸다. 거의 바닥을 다지려는 기세였다.
손톱이 잇새로 바싹 깎여나갔다. 공윤이 살점을 깨물려는 순간 키론이 손을 잡았다. 공윤은 그걸 거의 느끼지도 못했다.
“공윤 씨, 그만 깨물어요.”
공윤은 분명하지 않은 초점으로 키론을 봤다. 그녀는 순간 울 것처럼 얼굴을 온통 일그러뜨렸다가, 숨을 한 차례 들이마시고 다시 폈다.
“네.”
“계속 숨 쉬어 봐요. 침착하게.”
공윤은 눈을 질끈 감고 라마즈 호흡법을 떠올렸다. 키론은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괜찮아요. 주희 씨가 지금 당장 위험한 건 아니에요. 그녀는 지금 꿈꾸고 있는 것뿐이에요. 불가사리는 자신에게 쇠를 준 사람에게 꿈으로 보답하니까요. 그건 대체로 무해해요.”
공윤은 주희를 내려다봤다. 그녀는 움찔거리지도 않고 깊게 잠들어 있었다. 마치 수면제라도 삼킨 것 같았다.
그녀는 메마른 입술을 축였다.
“그러니까, 키론은 주희가 누군가에게 조종당했을 거라고 보는 거예요?”
키론은 목걸이를 들어올렸다. 은빛 체인이 차르륵 소리를 내며 아래로 흘러내렸다.
파란 모조 보석이 박힌 목걸이는 시중에 파는 것과 별 다를 바 없어 보였다. 그 목걸이에 비현실적이거나 사악한 힘이 숨어있다고 상상하기는 힘들었다.
“네, 일반적인 사람은 결코 이런 걸 가지고 있을 수 없으니까요. 상당히 악의적이고 집요한 주술이 걸려있어요. 아미 같은 영수까지도 쉽게 이성을 잃어버릴 만큼.”
그는 생각에 잠긴 것 같았다.
“이걸 계속 걸고 있었다면 훨씬 현혹당하기 쉬웠을 거예요. 어쩌면 더 있을지도......”
키론은 중얼거리더니, 공윤을 바라봤다.
“공윤 씨, 혹시 주희 씨가 걸친 것 중에 못 보던 거나 특이한 게 있나요?”
공윤은 즉시 주희를 스캔했다. 주희는 워낙 꾸미는 걸 좋아하고 화려한 스타일을 선호해서, 빨리 알아채기 힘들었다.
문득 그녀의 눈에 머리카락 사이로 반쯤 드러난 파란 모조 보석이 보였다.
“귀걸이.”
공윤이 중얼거렸다. 그녀는 주희의 핑크블론드를 귀 뒤로 쓸어 넘겼다.
무기질적인 광택을 뿌리는 드롭 귀걸이가 보였다.
“이거, 목걸이랑 한 세트 같지 않아요?”
키론은 눈썹을 찡그렸다. 그는 조심스럽게 귀걸이를 빼냈다.
오팔색 눈이 번득였다. 그는 한 차례 귀걸이를 뚫어져라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맞군요. 잘 찾았어요.”
그는 손을 저어 공간을 열더니, 뭔가 뒤적거리다가 손수건을 꺼냈다. 팔이 반쯤 사라진 것처럼 보였기 때문에 약간 오싹한 광경이었다.
그는 손수건으로 목걸이와 귀걸이를 감싼 뒤 다시 공간에 집어넣었다.
그는 반듯한 미간을 짓누르며 한동안 뭔가를 고민했다.
“저건 나중에 좀 더 조사해봐야겠어요. 확실해지도록......”
공윤은 재빨리 말했다.
“나도 같이 할래요.”
키론은 그녀를 봤다. 그가 그런 시선으로 볼 때는 멈춰야 할 때라는 걸 알았지만, 그녀는 그냥 밀어붙였다.
“내 친구란 말이에요. 내 친구가 이런 꼴이 됐는데 나더러 가만있으라고요? 도대체 어떤 호로잡놈이 이딴 거지같은 수작을 부렸는지 알아내서, 반드시.”
공윤의 이를 꾹 물고 목구멍까지 올라온 울음을 꿀꺽 삼켰다. 키론은 형언하기 힘든 표정을 지었다.
“알았어요.”
공윤은 마르고 뜨거운 눈가를 거칠게 문질렀다. 키론은 한숨을 쉬었다.
“울어도 돼요.”
“안 울어요.”
“네.”
공윤은 코만 약간 훌쩍거렸을 뿐, 결국 울지 않았다.
21.
그들은 포모나를 타고 주희의 아파트로 날아갔다. 공윤이 다행히도 주희 집에 설치된 도어락의 비밀번호를 알고 있었던 것이다.
키론이 주희의 집이 어디 있는지 몰랐기 때문에 공간이동이라는 편리하고도 간편한 수단을 이용할 수는 없었다.
졸지에 세 명과 한 마리를 한꺼번에 태우게 된 포모나는 불만스럽게 끙끙거렸지만, 거의 무리 없이 날아올랐다.
공윤은 왠지 미안해져서 포모나의 옆구리를 토닥거렸다.
그들은 아파트 입구에 들어가는 절차를 생략하고 곧바로 현관을 침입했다. 포모나의 등에서 건물 외벽으로 건너갈 때 아찔하긴 했다.
공윤은 CCTV에 찍힐 그들의 행적이 염려스러웠지만, 키론은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공윤은 그냥 그 말을 믿기로 했다. 전자기기를 혼란시키는 파장이라도 내뿜을 수 있나보지.
어쨌든 집주인을 동행했으니 완전히 불법은 아니었다. 공윤은 덜렁거리는 주희의 어깨를 힘겹게 부축하며 생각했다.
임무를 완수한 포모나는 날개를 몇 번 퍼덕이더니, 검은 하늘 너머로 순식간에 사라졌다.
공윤은 반드시 주희를 자기가 부축하겠노라고 부득부득 우겼다. 키론이 주희에게 닿는 것도 꺼려졌고, 주희가 키론에게 닿는 것도 싫었기 때문이었다.
공윤은 주희를 침대에 눕히느라 숨을 헐떡거리며 물었다. 아, 허리야.
“이대로 놔둬도 괜찮아요?”
키론은 그녀를 도와 이불을 펼치며 말했다.
“아직 잘 모르겠어요. 근원적인 목걸이와 귀걸이는 차단했지만, 내부에 어떤 암시가 새겨져 있을지도 모르고. 가장 중요한 건 입수한 루트...... 그걸 알아야 해요.”
그는 중얼거렸다.
그러더니 기묘한 발언을 했다.
“아무래도 친구 분의 의식을 좀 살펴봐야겠어요.”
공윤은 잠깐 귀를 의심했다. 그녀는 의미 없는 걸 알면서도, 본능에 따라 현실적으로 고려했다.
“...... 의사 면허 있어요?”
정신과나 심리 쪽으로.
키론은 고개를 저었다.
“없어요. 그리고 제가 말하는 건 더 직접적인 수단이에요. 제가 주희 씨의 의식으로 들어갈 거예요.”
공윤은 이제 어떤 식으로 반응하기도 지쳤다.
“전 뭘 하면 될까요?”
키론은 그녀의 역량을 가늠해보는 것 같았다. 그는 묘한 표정을 짓더니, 아미를 넘겨주었다.
아미가 먕먕 소리를 냈다. 아미는 이제 약간 기운을 회복한 것 같았다.
“잘 안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