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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ss
사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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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게임판타지
누에라(Nu-Era)
작가 : Ress
작품등록일 : 2016.10.1

뭣?! 내가 하던 게임이 흔적도 없이 공중분해 됐다고?!
내 정액권!! 내 아이템!!!

어느 날 세계 최고의 가상현실 게임 드컨이 망했다!
그리고 그 자리를 채우듯 나타난, 암묵적인 후속작 누에라.

"고검 씨를 살려드리지요. 대신 '누에라'를 하는 겁니다. 이건 '명령'입니다."

(모두의 어그로꾼) 방년 27세 게임 폐인 강현성은 비밀스러운 군수국가, 라프리에트의 제안에 휘말려 '누에라'를 시작하게 되고...
라프리에트의 농락에서 벗어나기 위해, 혹은 그들 뜻대로 움직이기 위해 이어지는 멘붕과 발악으로 물든 대서사시!


헌데 이 게임, 좀 요상하다. 그것도 많이!
어느 날부터 보이는 무언가 요상한 유저들.
아무리 버그 신고를 해도 돌아오는 답변은 전 유저가 같은 혜택을 받는 중인, 뭐?! 게임의 기본 서비스?


길드 마스터가 낄 수 없는 연합 회의, 어딘지 수상한 점이 가득한 연합 길드...
드컨의 유명 길드 '프르미에', 그들이 '체라 레조'를 앞세워 누에라의 이면에서 움직이기 시작한다!

"뭐시기?! 황제를 잡으라굽쇼?!"
"형, 그거 반역 아니야?"

대뜸 반역 퀘스트를 받게 된 체라 레조! 그것도 황제 본인한테!
바지 마스터 박의자와 엘리트 개그캐 김공복.
길드의 실세, 연합장 레빈과 그의 과격하고 예쁜(?) 친구 딜런.
이들이 택한 효율적인 황제 레이드 방법은?!

퀘스트를 따온 당사자인 유저 최고의 원소 마법사 솔과 그를 지켜봐 온 수 많은 눈들.
그리고 비밀로 넘쳐나는 누에라의 세계.

모험과 비밀이 넘치는 그곳에서 강현성과 윤도은은 각자의 방식으로 자신들을 둘러싼 비밀을 마주하게 된다!

 
1. 어느 게임 폐인 청년의 이야기
작성일 : 16-10-06 22:32     조회 : 419     추천 : 0     분량 : 8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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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결국, 나는 거머리 한 마리를 달고 떡이 된 인간 넷을 집에 돌려보내는 데 극적으로 성공했다. 그 극한 전쟁을 끝낸 승전보까지는 바라지도 않고, 혼자 평화롭게 집에 와서 드러누울 수만 있었다면 참 좋았겠지만.

 “아저씨, 어디가! 당신 지금 나 납치하는 거야? 신고할거야, 내가 신고할꺼라고!”

 불행히도 어느 정신 놓은 거머리 하나를 등에 고대로 붙이고 집에 돌아왔다. 거머리의 술버릇은 너무나도 강력해서 체크 남방만 보면 절대 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한 번은 지나가던 아저씨한테도 붙었고, 또 언젠가는 불 꺼진 옷가게 유리에 들러붙은 적도 있었다. 언제 생각해도 참으로 민폐스럽고 다이나믹한 술버릇이다.

 

 “이건, 뭐… 내가 술 마시러 간 건지, 뒤치다꺼리 하러 간 건지…”

 창 밖에선 어느새 날이 밝고 있다. 피곤하고 귀찮지만 내 뒤에 들러붙은 거머리 한 마리를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 북어계란국을 대충 끓여주고 잘 생각이었다. 그래도 이 웬수 같은 술거머리가 친구라고 나도, 참… 어휴, 사람이 너무 착해도 고생이다, 고생.

 

 내 등에 철썩 붙어 있던 고검은 계속 아저씨 신고할거야 내 돈 뺏고 납치했어 라며 한껏 주정을 부렸다. 실시간으로 헛소리를 해대는 고검을 뒤로하고 이 원수 같은 체크 남방을 벗어 저 멀리 던져버렸다. 아니나 다를까 고검견(犬)은 체크 남방을 따라 빛의 속도로 기어갔다. 어휴, 저놈, 내가 뭘 위해 북어국을 끓이는 걸까.

 

 그 술짐승 같은 뒷모습을 보며 귀찮은데 저 놈 그냥 놔두고 잘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체크 남방을 낚아챈 고검이 이미 내 침대로 기어들어가서 자고 있었다. 그게 너무나 자연스러워서 순간 나도 모르게 불 끄고 나가면서 우리 집 가야지라고 생각 해버렸다. 근데 방문을 나서보니 여기가 우리집이던걸. 그렇게 내 침대를 되찾기 위한 분노의 계란국을 끓이게 된 거다.

 

 “흐흐흐, 이 망할 환형동물 같은 놈… 네놈 카드로 파를 사왔다, 내가.”

 돈 없는 가난한 자취생의 소심한 복수라고 들어는 봤냐? 어차피 거머리 뱃속에 들어가는 거니까 상관 없지 않을까 싶다.

 

 거머리 카드의 도움으로 환상의(?) 북어 계란국을 조합해낸 나는 이 아름다운 음식을 섭취할 환형동물 한 마리를 찾아 방문을 열어 재꼈다. 그런데 이놈이 방에 없다?

 "화장실 갔나?"

 

 보는 사람도 뭐라 할 사람도 없는데 괜시리 머슥해져서 뒤통수를 긁적였다. 뭐, 이놈이 갈 데가 화장실 밖에 더 있을 리가 없다. 그 믿음을 가지고 방에 딸린 화장실을 슥 들여다 보았다.

 "엥. 여기도 없네. 밖으로 갔나?"

 하지만 거실 쪽 화장실에도 거머리는 없다.

 

 

 이쯤 되자 뭔가 불길하고 알싸한 기분이 든다. 그렇게 퍼 마셨는데 속은 당연히 쓰릴 테고, 정신이 돌아왔다면 모를까, 안 돌아왔을 수도 있어서 걱정이 밀려온다.

  "야 거머리! 거머리! 고검! 고검! 검아, 어딨냐! 야, 고검!"

 

 거머리가 갈 만한 곳을 고민하며 몸을 돌리는데, 순간 등줄기를 타고 서늘한 바람이 느껴진다.

 '바람?'

 여기는 실내다. 딱히 에어컨도 히터도 틀어놓지 않은 지금 바람이 느껴질 이유가 없다. 아니, 딱 하나 가능성이 있긴 있는데… 설마…? 불길한 예감에 뒤를 돌아보았다. 설마가 거머리 잡았다. 베란다 문이 열려 있다.

 

 "에이 씨, 깜짝이야. 밖에 나가있던 거였냐? 괜히 쫄았네."

 거머리의 소재를 파악한 덕에 안도의 한숨이 나온다. 갑자기 사라져서 사람을 놀라게 하다니. 거머리 이 망할 새끼를 위해 특별히 북어국에 고춧가루랑 소금을 듬뿍 첨가해주기로 했다. 분노의 향신료병 쉐이킹을 마친 나는 북어계란국을 식탁에 올려놓으며 베란다를 향해 외쳤다.

 "야, 거머리! 해장해라! 얼른 들어와! 바람 차! 나 춥다고! 문 닫아, 임마!"

 

 그런데 답이 없다. 불안하게 답이 없다. 순간 얼굴에 솜털이 쫙 서는 느낌이 든다. 싸한 느낌에 거머리의 이름을 부르며 베란다로 달려나갔다.

 "고검! 고검! 검아! 고검!"

 베란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니, 최악의 사태에 직면했음이 본능적으로 느껴진다. 없다. 고검이, 진짜로 고검이 없다!

 

 "고…고검…? 너 어디 간 거야… 장난치지 말고 나와봐 새끼야…"

 하필 이 순간 머릿속에 스치는 과거가 있다. 그게 너무 끔찍해서, 그 장면을 애써 부정하며 안쪽을 향해 소리쳤다.

 "야, 고검! 너 나 낚으려고 베란다 문 열어 논거지? 어딨냐 새꺄! 나와봐!"

 여전히 답은 없다. 마치 이 모든 게 나의 꿈이라고 말하기라도 하려는 듯. 그래. 차라리 꿈이라면. 어디서부터든 상관 없으니 꿈이기만 한다면야.

 

 다리가 후들후들 떨려서 제대로 서있을 수가 없다. 그게 너무 꼴 사나워서 베란다 바닥에 털썩 주저 앉았다. 세상의 모든 소리가 점점 멀어지는 것 같다. 멍했다. 너무나도 멍했다. 아무 생각도 들지 않는다. 분명히 장난일 수도 있겠지만, 없어진 놈이 고검이다. 하필 고검이었다. 이럴 수는 없었다. 정지 버튼을 누른 것처럼 모든 게 멈춘 것 같다. 그게 아니라는 걸, 불어오는 바람만 알려주었다.

 

 위용~ 위용~ 위용~ 위용~ 멈춰 버린 것 같은 내 세상을, 듣기 싫은 소리가 침범한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엠뷸런스 소리였다. 동시에 음소거라도 시킨 듯 들리지 않던 주변의 소리가 다시 들린다. 닫혔던 귀가 열린다. 어쩌면, 차라리 들리지 않을 때가 나았던 걸지도 모르겠다. '사람이 떨어졌어'라던가, '죽은 것 아니야?' 따위의 말들이 귓가를 어지럽게 맴돈다.

 "고검…? 설마… 고검? 고검!"

 

 베란다 난간을 잡고 일어서 난간 너머를 바라보았다. 사람들이 몰려있고 누군가 연락했는지 앰뷸런스가 사람을 실어 나르고 있다. 우리 집은 5층. 하지만 4층과 13층이 없는, 동서 혼합 미신을 반영한 요상한 오피스텔이라 실제로는 4층 높이다. 엠뷸런스에 실려가는 사람이, 내가 애타게 찾던 거머리, 고검이라는 것을 알아보기엔 너무나도 충분했다.

 

 

 3

 검이가 떨어진 곳이 우리 집인 탓에 참고인 신분으로 조서를 쓰고 검이 신원 확인도 해줬다. 이놈 신분증이니 지갑이니 다 가방에 들어있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그렇게 경찰서에서의 일이 끝나고 곧장 고검에게 향했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병원이다. 우리 집에서는, 경찰서보다 차라리 더 가까운, 그래서 참 다행인 거리였다. 그래봐야 항상 문제인 그놈의 교통 체증 덕에 20분 가까이 걸렸다던가.

 

 착잡한 마음으로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고 병원 안으로 들어섰다. 손에 뭔가 잡힌다. 고검이 방에 두고 간 옷에서 발견된 종이 쪼가리, 유서다. 나는 이 종이를 경찰에게 넘기지 않았다. 어쩐지, 그렇게 되면 정말 검이가 죽을 것 같았으니까.

 

 "에휴… 이걸 어째야 하나…"

 꼬깃꼬깃 많이도 구겨진 게 몇 날 며칠을 가지고 다녔는지도 모르겠다. 하도 구겨져서 바스락바스락한 촉감이 손끝을 타고 느껴진다. 왠지 고검이 달고 살던 약봉지가 떠오른다.

 

 고검은, 내가 녀석을 처음 만났던 고2 때부터 이미 항우울제를 복용하고 있었다. 현대인의 3/4이 우울증을 앓고 있을 만큼 우울증이 흔한 시대라지만, 고검은 적어도 10년 이상 그 독한 약을 먹어온 것이다.

 

 사실, 나나 친구놈들은 고검이 시야에서 갑자기 사라지면 일단 불안하다. 손목에 아직 아물지도 않은 상처가 그득하고 목에도 쓸린 자국이 꽤 많을 만큼, 녀석은 한두 번 자살기도를 한 게 아니기 때문이다.

 요즘 시대엔 자살을 막기 위해 옥상이 금고마냥 이중삼중으로 보안 되어 있고, 엘레베이터도 집 주인의 확인이 없으면 올라가지도 못한다. 그럼에도 여전히 자살률은 줄지 않는 걸 보면 별 효과 없는 짓인 것 같다. 한편으로는 그만큼 세상이 각박한 게 아닐까 싶을 때도 있고.

 

 고검은 사연이 많은 녀석이다. 언젠가 그리 가깝지만은 않았을 날에 녀석이 썼을 유서 쪼가리에도 적혀있었다. 되도 않는 사법고시 언제까지 봐야 하냐고.

 고검의 꿈은 프로그래머가 되는 거였다. 말 그대로 '였다'. 지금은 그저 사법고시 안 보는 게 꿈이라던가.

 

 아들 이름을 고검사로 지으려고 했을 만큼 고검 아버지는 검사에 집착하셨다. 고검은 반항도 해보고 대화도 해보고 자기 아버지를 어르고 달래도 보고 별 짓을 다 해봤지만 도저히 아버지만큼은 설득할 수가 없었다고 한다. 결국 녀석은 서울 변두리 법대를 갔다.

 법대를 갔지만 그래도 녀석은 게임을 접지는 못했다. 외려 그 잘난 머리로 독특한 플레이를 구사해 몇몇 게임에서 잘 나가는 스타게이머로 등극했었다. 스타 게이머 시절 수입도 꽤 됐지만 아버지는 죽어도 인정 같은 거 안 해주셨단다. 검사가 아니면 무엇으로 어떻게 성공해도 안 된다 하셨다.

 

 불행하게도 게임하면서 대학은 어찌 졸업했다지만 녀석도 사법고시만큼은 안 됐나 보다. 올해가 벌써 네 번째든가, 세 번째든가. 덕분에 해가 갈수록 고검 아버지의 히스테리는 강해져만 가고 있다.

 한 번은 고검이 방송사에 인터뷰 갔다가 아버지한테 발각된 적이 있었다. 고검 아버지는 니가 이래서 여태껏 검사가 못 된 거라고 난리를 치셨다. 그 결과 녀석의 덩치를 수용하기 위한 대형 사이즈(참고로 3m쯤 된다)의 캡슐이 2m 짜리 고철덩어리로 변신하는 일도 생겼다.

 

 그 사건 이후로 녀석은 실제 얼굴은 노출 안 하려고 애 쓰고 있다. 물론, 그런 일이 있었는데도 게임 못 접고 드컨에서 또 한 번 난리를 피워주셨으니, 고검 놈도 지독하긴 지독하다. 하지만 그놈의 독한 성질머리가 지 혼자 생긴 건 당연히 아니다. 고검 아버지는 더 장난 아닌 분이시다. 그 탓에 고검이 죽고 싶다고 그 생난리를 치는 거겠지.

 오늘도 뭐, 그렇다. 고검네 아버지는 오지 않으셨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고검 병실을 찾아 걸었다. 벽에 적힌 안내판을 보며 승재가 알려준 병실을 찾아가니 고검 이름이 떠있는 문이 있었다. 대충 보니 1인실인 것 같은데, 그 밑에는 위중한 환자라고 절대 안정이라고 적혀 있었다. 와, 입원비 더럽게 비싼 이유가 있었네.

 고검 병원비를 일단 우리끼리 모아서 내자고 해서 1/n을 했는데, 어째 생각보다 많이 나온다 싶더니 승재 놈이 1인실 씩이나 되는데다가 입원시켰었구나. 나중에 고검 정신 차리면 받아내기로 했다지만 어쩐지 생 돈 나가듯 가슴이 아팠다.

 

 물론, 나중에 갚을 때 일시불로 청구할 생각이긴 하다. 고검 놈은 스타 게이머 중에서도 손 꼽을 정도로 수입이 좋은 놈이니까, 별로 큰 타격 없을 거다. 그리고 놀라게 만든 게 조금 괘씸하기도 하고. 우리 머릿속엔, 고검이 깨어나지 못하는 경우는 처음부터 존재하지도 않았다. 늦게 깨어나는 경우도 사실 거의 생각 안 했다. 그때쯤 가면 가난한 나는 파산해있을 테고, 승재 놈이랑 PS존 사시는 도련님이 부담해 주시겠지. 그래도 그런 경우는 안 올 거라고 애써 위안하며 병실 문을 열었다.

 

 “왔냐.”

 병실 안에 있던 승재가 나를 돌아보았다. 간병인 의자에 앉아있던 놈은 일어서기도 힘들다는 양 지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저렇게 지칠 만한 일을 한 게 있나 의문이 든다. 그리고 약간 짜증도 났다. 진짜 피곤한 일은 내가 다 했구만, 내 앞에서 어디 지친 척이야? 물론 그 생각도 금방 사라졌다.

 

 “아저씨한테 전화 왔었어. 고검 무슨 짓 했는데 병원이냐고.”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승재가 핸드폰을 들이밀었다. 최근 통화기록에 나와 고검 아저씨가 있었다. 한숨이 밀려 나왔다. 이래서였구나. 아이고, 불쌍한 최승재.

 

 고검은 사시 준비를 하면서 거의 모든 친구들과 연락이 끊겼다. 나 역시 반 년 정도 소식이 끊겼지만 드컨에서 다시 만나 가끔 만나게 되었다. 반가운 마음에 승재와 삼자 대면을 했고, 그렇게 함께 드컨을 즐겼다.

 고검은 우리 외에 연락하는 친구가 없다. 물론 윤덕현처럼 게임에서 만난 친구는 꽤 있지만, 고검 부모님이 아는 친구는 우리뿐이다. 정확히는, 그 분들이 아는 애들 중 아직까지 연락이 닿는 게 나랑 승재 밖에 없는 거다.

 

 우리는, 어느 순간부터 검이의 그 많은 자살시도를 부모님께 알리지 않게 되었다. 아주머니와 할머니는 많이 힘들어 하실 게 뻔하고, 아저씨는 되려 검이를 질책할 게 분명했으니까.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경찰이 친인척 연락처를 요구했고, 어차피 내가 말하지 않았어도 조회하면 다 나올 상황이었다. 그리고… 이번만큼은 정말 죽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으니까.

 

 “떨어졌다곤 안 했지?”

 “잘 모른다고 그랬어.”

 고검의 수 많은 자살시도 중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건 어제까지만 해도 딱 한 번 밖에 없었다. 고3 때 법대 합격 소식을 들은 뒤였다. 검이는 학교 옥상에서 떨어졌지만, 다행히도 우리 학교가 3층 건물이었고, 선생님들과 애들이 기적적으로 고검을 구했다.

 고검은 그때 선생님들이 자기를 살리려던 속내를 욕하면서도, 가끔씩은 고마워하고 있다. 하지만, 검이가 그때 일에 대해 한 가지 변하지 않는 입장을 취하는 게 있다면.

 

 “에휴… 아주머니랑 할머니 걱정하시겠다. 충격 받으시면 안 되는데…”

 승재가 창 밖을 보면서 한숨을 쉰다.

 검이가 학교 옥상에서 떨어졌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검이네 할머니가 쓰러지셨다. 그 때 이후로 검이는 두 번 다시 건물에서 떨어지는 짓은 하지 않았다. 높은 데서 떨어지는 기분이 정말 더러웠다고 말하긴 하지만, 내 생각엔 할머니 때문도 있는 것 같다.

 무엇보다도,

 

 “고검은 진짜 죽을 놈은 아니야.”

 승재가 나를 돌아보았다.

 “최승재, 넌 얘가 그렇게 많이 죽는다 죽는다 하면서 왜 아직 안 죽은 줄 알아?”

 승재는 나를 빤히 쳐다본다. 너는 뭔가 알고 있냐는 눈이다. 잠깐 숨을 고르고 답을 내놓았다.

 “고검은 아직 진심으로 죽을 용기가 없어.”

 내 추측일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언젠가 얼핏 들은 기억이 난다. 죽는다 해도 죽은 다음 일이 걱정된다고 했다. 또, 평생 이렇게 산 기억뿐이면 억울해서 죽지도 못할 것 같다고 했다. 고검이 그날 이후로 높은 데서 떨어지지 않는 이유가 또 한 가지 있다면, 아직은 진짜 죽긴 억울해서일 것이다.

 

 바스락. 주머니 안에서 또 구겨진 종이가 느껴진다. 그럼 이건 뭐라고 설명할까. 역시 나 혼자만의 생각이었던 걸까?

 아니. 이건 동화 속 대나무 숲 같은 거다. 누구에게라도 말하지 않으면 답답해서 미칠 것 같으니까! 그래서 힘들다고 끄적인 거다. 그리고, 혹시라도 정말 죽게 된다면, 아니면 그만큼 위험해 진다면. 그땐 이 걸 보고 자기가 이렇게 힘들었다는 걸 알아달라고, 누구라도 좋으니 알아달라고 하려던 건 아닐까.

 

 “병원에서 뭐래? 가족 아니니까 안 알려주나?”

 난 고검 입으로 들은 말을 믿기로 했다. 상황이 어떻게 변해도, 나는 그놈의 억울해서 못 죽을 거라는 말을 믿을 것이다. 그러니 이 종이쪼가리는 잊기로 했다.

 “고검 아저씨가 안 온다고 우리한테 맡겼다나 봐. 내가 검이 보호자야.”

 승재가 힘 없이 웃었다.

 

 “장담하기 힘들다고, 거의 혼수상태라고 봐도 될 거래.”

 “그…그… 검이 그거 된 거야? 그…”

 갑자기 말이 생각이 안 났다. 충격을 받아서 그런가. 새하얀 머릿속에서 계속 그 단어를 찾아내려고 노력했다. 고검 있었으면 또 국어 공부 제대로 하지 그랬냐고 구박했을 거다. 아, 검이 여기 있구나. 정정해야겠다. 고검이 깨어있었다면으로.

 

 “야채인그어얿?!”

 “이 미친놈아!”

 기억을 더듬거리다가 간신히 말이 생각났는데 갑자기 승재 놈이 등짝을 후려갈겼다. 오, 어머니의 등짝스매싱이 생각나게 하는 엄청난 한 방! 맨손으로 때린 게 맞나 싶을 만큼 얼얼해서 맞은 곳을 비비면서 승재 놈에게 항의하려 했지만 돌아온 건 잔소리뿐이었다.

 

 “아, 왜 때려!”

 “개새꺄 지금 장난칠 때냐!”

 아예 멱살까지 잡으려는 기세다. 진정하라는 의미 반, 항복한다는 의미 반 해서 양 손을 살짝 들어 승재 놈을 방어하며 천천히 뒤로 물러섰다. 하지만 승재는 전혀 진정하지 않고 내 쪽으로 달려들었다. 그리고 결국 내 멱살을 잡고야 말았다.

 

 “이 미친놈아! 야채인간? 야채인간?! 니 친구 야채로 만들어서 좋겠다!”

 아이고 골이야. 승재가 나를 짤짤짤 흔드는 탓에 머릿속까지 제대로 흔들렸다. 제발 진정하라고 말이라도 하고 싶은데, 여기엔 큰 문제가 있다. 첫째는 저놈이 더 지랄할 게 뻔한 거고, 둘째는 너무 어지러워서 말도 안 나온다! 아이고, 사람이 목소리를 어떻게 냈더라.

 

 “어휴, 저딴 걸 친구라고..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죽다 살아난 친구한테… 저 개새끼가, 어휴.”

 내 멱살을 팽개치다시피 놔준 승재가 병실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면서 열을 냈다. 정신사납긴 하지만 뭐라고 할 입장도 아니고, 저놈 히스테리가 무서워서 구석에 가만히 처박혀 있었다. 승재는 어머니 표 잔소리를 기관총처럼 쏘아댄다. 한참을 그러는데도 아무도 와보는 사람도 없다. 절대안정이라고 방음이 좀 된다더니, 병실 안에서 큰소리 나면 오히려 독이구나.

 

 “안 되겠다. 넌 그냥 꺼져라. 너 때문에 나까지 병들게 생겼어! 있어봐야 도움도 안 되는 망할 놈! 에라이, 세상의 찌끄레기 같은 자식아!”

 으아아 최승재 미쳤다! 저놈 다혈질인데! 피.. 피해야… 하는데 이미 늦어버렸다. 사방에서 최승재의 찰진 손바닥이 날아온다. 으앙, 엄마!

 

 “넌 두 번 다신 이 병실 못 들어올 줄 알아 또라이 새꺄!”

 승재놈이 소리를 꽥 지르며 나를 방 밖으로 쫓아냈다. 어휴, 앞으로 고검 얼굴 보러 오기 힘들겠다. 승재놈 없을 때나 와야 할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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