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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Netwalker
작가 : HudmentJhinRaker
작품등록일 : 2019.9.6

프로급 마피아 조직원 르미데안느 드 블랑. 사이버 해킹 보안국 특수 요원 고준혁. 세계적인 대기업 제타 그룹의 회장 최문호. 가족을 잃고 사이버 킬러가 된 소년 서지환. 깊은 곳에서 부터 꼬이기 시작한 그들간의 과거가 기어코 실체를 드러낸다.

 
NetWalker - 6
작성일 : 19-10-14 21:30     조회 : 203     추천 : 0     분량 : 110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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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택시를 타고 어딘가에 도착한 블랑은 기사에게 5만원권 지폐를 툭 던져주었다. 재빨리 차에서 내린 그녀는 나머지는 팁이라 말했다. 택시기사가 당황하여 ‘손님!’하고 불렀지만 이미 블랑은 미로같은 골목길로 사라진 후였다.

 

 택시 안에서 충분히 분노를 삭인 블랑은 다시 평소대로의 규칙적인 구두 소리를 내며 오물이 가득한 골목을 지나쳐갔다. 보통사람이라면 구두와 하얀 정장에 땟국물을 묻히며 지나갔을 길이지만 블랑의 기민한 움직임은 마치 골목을 누비는 한 마리의 보아뱀 처럼 매끈했다. 그러면서도 특유의 규칙적인 걸음걸이는 속도에 일절 변화가 없었다.

 

 두 번 정도 코너를 돈 그녀는 마침내 벽돌로 이루어진 낮은 건물의 녹슨 철 문 앞에 도착했다. 문 앞에 선 그녀는 심호흡을 했다. 그러자 더러운 골목의 탁한 썩은새가 코를 찔렀다. 그녀는 약간 후회하며 얼굴을 찡그렸지만, 좋든 싫든 예전부터 일상처럼 들이쉬고 내쉬던 공기였기에 마냥 불쾌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집에 돌아온 듯한 편안함 마저 느껴졌다.

 

 다시 한 번 심호흡을 크게 한 블랑은 철문을 세 번 두드렸다. 출입이 통제되어 있는 곳인데다 허가를 받아내는 과정이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닌 탓에 과거의 기억을 되살려보려 했던 심호흡은 제법 도움이 되었다. 잠시후 건너편에서 문을 세번 두드렸다. 그러자 안에서 일사불란하게 다수의 인원이 이동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제부터가 시작이었다.

 

 그녀가 몸 담고 있는 조직에서는 여러가지 규칙이 있었다. 그중 하나는 블랑과 같은 프로는 프로끼리만 얼굴을 마주칠 수 있고, 절대 아마추어나 일개 잔업 처리반과는 얼굴을 마주쳐선 안된다는 것이었다. 이것은 사실상 아마추어와 잔업을 하는 녀석들에게만 불리하게 작용하는 규칙이었다. 그래서 블랑은 이목을 끄는 자신의 얼굴을 종종 앞에다 들이밀며 아마추어들을 괴롭히곤 했다. 장난을 너무 심하게 친 나머지 하루는 보스가 그녀에게 호통을 치며 규칙을 새로 만들었다.

 

 그날 그녀 탓에 만들어진 규칙이 바로 프로들은 각자에게 주어진 박자에 맞춰 노크를 함으로써 자신의 신원을 밝히며 출입 해야한다는 것이었다. 프로들이 문지기와 노크로 씨름을 하는 사이 내부에 있던 아마추어들은 각자의 방으로 들어가 몸을 숨기고, 프로가 3층으로 올라갈 때까지 나오지 못한다. 블랑은 그것으로도 나름 괴롭히는 재미가 있었다. 프로들도 처음에는 별로 개의치 않으며 마냥 즐겁다는듯이 떠들어 댔지만, 자주 들락거리는 이들은 은근히 귀찮은 과정이라며 핀잔을 두었다. 그러나 블랑이 해맑은 얼굴로 나타나면 모두들 입을 꾹 다물고는 그저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는 못말리는 여자라며 늘 입을 모아 말했다.

 

 블랑의 신원확인 노크의 순서는 다음과 같았다. 먼저 모든 프로들이 그렇듯 첫 시작은 세번을 두드리는 것으로 시작해 건너편에서도 맞두드린다. 그리고 블랑은 여성이니 한 번을 두드린다. 저쪽에서 한 번 두드리면 알았다는 의미와 같은 것이다. 세번 째부터는 무작위로 지정된 햇수만큼 띄어서 두드린다. 그러면 건너편의 문지기가 표를 확인해가며 맞춰서 두드림으로써 대답한다. 만일 두번 두드리면 햇수가 틀렸으니 내일 다시오라는 의미이다.

 

 블랑이 두 번을 두드리고, 건너편에서 한 번, 그다음 블랑이 여섯번, 건너편에서 한 번, 그다음 한 번, 건너편에서 한 번, 마지막으로 다섯번을 두드렸다. 하지만, 건너편에서는 틀렸다는 의미로 두번을 두드렸다.

 

 ‘어라?’

 

 블랑은 순간 당황하여 그대로 몸이 굳어버렸다.

 

 ‘다섯번이 아니였나?’

 

 블랑은 다시 한 번 철문을 세번 두드렸다. 하지만, 건너편의 반응은 똑같았다. ‘내일 다시 와라.’ 결국 열 받은 블랑이 소리쳤다.

 

 “야! 나 좀 들여보내줘!”

 

 그러자 안에서는 아까보다 거칠게 두번 두드렸다.

 

 ‘호오~ 해보자는 거지?’

 

 오기가 생긴 블랑이 소리쳤다.

 

 “야! 건너편에 너! 내가 누군지 알아? 이 바닥에서 유명한 ‘헤드커터’님이시다! 당장 문여는 게 좋을 걸?”

 

 건너편에선 잠시 대답이 없더니 누군가와 상의하는 듯한 대화가 오갔다. 그리고 신경질적으로 세 번을 두드려왔다. 그 의미는 ‘당장 사라지지 않으면 죽여버리겠다’였다. 순간 머리끝까지 화가 난 블랑은 두 손으로 마구 문을 두드리며 소리를 꽥 지르기 시작했다. 목청이 얼마나 좋은지 그 소리는 골목전체에 쩌렁쩌렁 울렸다.

 

 “나 4년 동안이나 여기 못 왔단 말이야! 한 번만 들여보내줘!”

 

 이제는 거의 떼쓰는 수준에 가까워지기 시작했을때 기어코 문이 열렸다. 그 순간 그녀는 좀 심했나 싶어 몸을 움츠렸다. 그리고, 문 건너에서 꽁지머리를 한 퀭한 얼굴의 남자가 얼굴을 내밀었다. 그는 블랑의 친한 동료, ‘듀마르트’였다.

 

 그는 잔뜩 찌푸린 얼굴로 블랑을 맞이했지만, 그녀와 눈이 마주치고나서는 얼굴이 풀어지면서 서로 피식하고 웃었다.

 

 “이걸 어쩌나. 보스가 떼쟁이는 받지 말라는데.”

 

 그가 굵직한 목소리로 하는 농담은 언제나 진담처럼 들리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거물을 상대로 자주 대화하는 블랑은 사람의 농담과 진담의 경계를 절묘하게 구분할 줄 알았다.

 

 “에이~ 오랜만에 보는 사이인데 귀엽게 봐주시겠지.”

 

 “치, 세상 어떤 남자가 너를 귀엽게 안 보겠냐?”

 

 다시 한 번 피식 웃어보인 블랑은 그가 열어준 철문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는 뽀뽀할 기세로 마른 그의 몸을 덥썩 안았다.

 

 “어어, 나 아직 일하고 안 씻었어, 인마.”

 

 그는 늘 같은 다크 슈트를 입고 일을 나갔다. 빼빼마른 몸을 가진 주제에 늘 정면의 선두에 서서 옷에 피를 묻히는 일을 주로 도맡기 때문이었다. 그의 몸을 꼭 껴안고 있던 블랑은 순간 향수에 빠져 그와 처음 임무를 나갔던 때를 떠올렸다.

 

 

 

 그날은 어지간히도 추운 러시아의 겨울이었다. 당시에는 블랑과 듀마르트 둘다 그 명성이 널리 퍼지기 이전이었기에 아직 아마추어로써 잡일이나 다름 없는 조달임무를 하던 때였다. 처음으로 조직에서 팀을 짜게 된 듀마르트와 블랑은 한 마디도 섞지않고 두껍게 입은 옷을 감싸쥐며 모스크바의 골목에 앉아 있었다.

 

 블랑은 여섯겹이나 싸맨 옷을 모두 뚫고 들어오는 찌르는 듯한 추위에 몸을 떨고 있었다. 체면이라도 지키자고 보온 내의에 청바지 하나를 입고, 위쪽은 셔츠와 조끼, 가디건, 코트 위주로 걸치고 나왔던 것이다. 그녀는 결국 북방의 추위를 얕본 대가를 맛보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에 반면, 듀마르트는 중무장이라도 한 사람처럼 껴입은 옷의 두께가 어마무시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블랑은 그가 뚱뚱한 줄로만 알았다.

 

 하염없이 물건이 올 때까지 기다리던 중, 그가 바들바들 떠는 블랑의 옷차림을 보고는 한심하다는듯 한숨을 내쉬었다. 그 소리를 들은 블랑은 추위에 예민해져 있었던 탓에 그 별 것도 아닌 숨 하나로 자존심이 상해 그를 쏘아붙였다.

 

 ‘그렇게 내 옷차림이 마음에 안 들면 그 두터운 뱃가죽이라도 뜯어다 주던가!’

 

 그녀의 말을 들은 그는 벌떡 일어났다. 블랑은 순간 말이 너무 심했나 싶어 사과하려했지만, 그는 돌연 옷을 한 겹, 한 겹 벗기 시작했다. 순간 그가 미친 건가 싶었으나 하나를 벗을 수록 그의 몸이 사시나무처럼 얇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는 마침내 아홉번째 패딩까지 모조리 벗어던지고, 마지막으로 벗은 패딩을 블랑에게 입혀주며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이번 임무는 별 것 아닌 것 같다. 하지만, 실패하면 생각보다 타격이 크다. 그런데 네가 감기라도 들어서 걸림돌이 된다면 일이 엄청 복잡해진다. 몸 간수 잘해라.’

 

 그때 블랑은 세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절망적일 정도로 말주변이 없었다. 그리고, 그의 몸은 이쪽 바닥에는 안 어울릴 만큼 말랐으면서도 그는 반자동 산탄총을 두자루 씩이나 사용한다는 것이었다. 그녀가 듀마르트를 주욱 훑어보는 사이 그는 이미 블랑에게 패딩을 다 입히고 벗어던진 패딩들을 벗은 순서대로 다시 껴입고 있었다.

 

 블랑은 그의 체온이 남아 있는 패딩을 꼬옥 안으면서 체온을 유지했다. 그리고 한 가지 사실을 더 깨달았다. 그는 의외로 세심한 배려를 갖추고 있었다.

 

 그에 대한 좋은 인상이 블랑에게 심어지고 있을 무렵 패딩을 껴입고 있는 듀마르트의 뒤에서 철컥 소리와 함께 누군가 러시아어로 소리쳤다. 적대 조직의 일원에게 위치를 들킨 모양이었다. 그 모습을 본 블랑은 당황하여 어쩔줄 몰랐지만, 오히려 머리에 총구를 겨눠지고 있는 듀마르트가 더 차분하게 행동했다. 그는 손을 들고 서서히 뒤를 돌았다.

 

 총을 겨눈 사람은 체구가 거대한 곰같은 사내였다. 그 외에 두명 정도가 더 있었는데 그들은 총이 아닌 칼을 들고 있었다. 총을 겨눈 사내가 골목의 깊숙한 쪽으로 고개를 까딱이자 듀마르트는 말없이 따랐다. 그때 블랑이 기다리라며 불쑥 영어로 소리쳤다. 사실 죽을 수도 있는 조심성 없는 행동이었지만, 그녀는 러시아어를 할 줄 몰랐다.

 

 다행이도 그들은 영어를 할 줄 아는 모양이었다. 블랑은 재빨리 그들에게 다가가 말했다. ‘그는 잠깐 와서 말을 건 일반인이다. 나와는 관계 없으니 그는 풀어주고 나를 데려가라.’ 여자라면 사정을 못쓰는 그들은 잠시 고민하는 눈치더니 듀마르트를 걷어차 저쪽으로 밀었다. 그리고는 기분나쁜 웃음 소리를 내며 블랑에게 총구를 겨누더니 따라오라 지시했다. 빚을 지고는 못사는 블랑은 자신의 몸으로 은혜를 갚았다는 의미로 듀마르트에게 눈을 찡긋 감아주고는 굳은 표정으로 바라보는 그를 뒤로한 채 깊은 골목으로 들어갔다. 코너를 돌기 전에 그녀가 마지막으로 뒤를 돌아 봤을 때 그는 이미 그 자리에 없었다. 아마 임무에 실패했음을 알리기 위해 연락하려는 것이리라.

 

 골목을 몇번 돌아 들어갈수록 골목은 더욱더 어둑해져 갔다. 그리고, 그만큼 추위도 강해졌다. 그녀를 끌고가는 그들도 그 추위가 익숙하진 않은지 조금씩 몸을 떨었다. 마침내 그들은 한 철문 앞에 멈춰서더니 총을 겨눈 남자가 뭐라고 소리쳤다. 그러자 안에서 꾀죄죄한 남자가 문을 열어 그들을 맞이했다. 그는 제일 앞에서 들어오는 블랑을 보더니 얼굴에 화색이 돌면서 휘파람을 얄밉게 불어댔다. 마침내 문이 닫히고, 블랑은 2층으로 옮겨졌다.

 

 그곳에는 블랑을 데려온 일행의 우두머리보다 더 큰 몸집을 가진 사내가 거만한 자세로 블랑을 맞이했다. 양옆으로는 그의 쫄따구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그 모습을 본 블랑은 자신이 나선 것을 후회했다.

 

 ‘오늘 밤은 내 인생 최악의 밤이 되겠네.’

 

 이 건물 내의 우두머리처럼 보이는 그 거대한 사내가 일어서더니 러시아어로 뭐라고 떠들어 댔다. 블랑은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주변녀석들이 낄낄대는 것으로보아 각오한 일이 시작되리라는 전조임을 알 수 있었다.

 

 창 밖은 어두운 밤인 것에 더불어 옆건물에 달빛마저 가려져 랜턴이나 손전등이 없으면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을 만큼 컴컴했다. 이런 곳에 여성의 비명이 가미된다면, 을씨년스럽다못해 공포의 골목으로 돌변하기에 분위기가 딱 알맞았다. 그리고, 블랑은 여유롭게 탈의하는 열네 명의 사내들을 보며 부디 골목길에 겁많은 사람이 지나가지 않기를 빌었다.

 

 블랑은 천천히 마음의 준비를 하였다. 가장 덩치가 큰 우두머리의 사내가 상의를 다 벗자 수북한 가슴털이 한 눈에 들어왔다.

 

 ‘털많은 남자는 싫은데…’

 

 그는 블랑의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싱긋 웃어보이며 누런이를 보여줬다. 그런 그를 보며 넌더리가 난 블랑은 애써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그곳에선 남은 열세 명의 사내들이 상의를 전부 벗어던진 채 블랑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블랑은 생각한 것보다 일이 빨리 진행되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들은 멧돼지 사냥을 마친 부족민처럼 블랑을 들어다 침대 위로 훌쩍 던졌다. 맥없이 던져진 블랑은 자기 나름대로 마음을 굳게 먹고 있었으나 막상 침대 위에 입성하니 덜컥 겁이났다. 얼굴과 몸이 굳어버렸다. 그러는 사이 두명이 블랑의 손을 노끈으로 감고, 가장 덩치큰 사내가 그녀의 허벅다리 위에 올라타 그녀의 허리에 손을 가져다 대었다. 끝내 완전히 공포에 질려버린 그녀는 눈을 질끈 감았다. 제발 조직 쪽에서 기적적인 지원이라도 오길 기도했다. 누구든지 좋으니 이 지옥의 문 앞에서 자신을 끄집어내 주었으면 하고 애처롭게 마음속으로 빌었다. 순간 자신에게 패딩을 벗어준 그의 얼굴이 눈앞을 스쳐갔다. 그리고, 그의 온기가 전신을 감싸고 있는 것처럼 아련해졌다.

 

 기어코 그녀의 눈가에는 눈물이 맺혔고, 가녀린 블랑의 얼굴을 본 그들은 한껏 불타올라 벨트에 손을 가져갔다. 블랑은 이제 끝났다 싶었던 그때, 밑에 층에서 무언가 커다란 물건이 쿵하고 쓰러지는 소리와 함께 누군가 괴성을 질렀다. 그리고는 단 한 번의 거친 총성이 들리더니 이내 정적이 흘렀다.

 

 블랑과 사내들은 모두 놀라 순간 경직되었다. 그것도 잠시, 모두 블랑을 잊은 것처럼 그녀에게서 떨어져 나와 각자 옷가지를 하나씩 걸치고, 각자의 무기를 챙겨 계단쪽으로 급히 달려갔다. 가장 먼저 1층 중간 계단참에 도착한 왜소한 사내가 엄청난 굉음과 함께 나가떨어졌다. 동료의 죽음에 놀란 사내들은 뒤로 조금씩 물러섰다. 그리고, 마침내 모습을 들어낸 구원자는 바로 패딩을 벗어준 그였다. 우두머리가 크게 뭐라고 소리를 지르더니 쿵쾅거리며 그에게 달려들었다. 그러자 귀가 찢어질 듯한 총성이 들려왔다. 그는 커다란 마체테를 높이 치켜든 채 쓰러졌고, 이를 시작으로 피의 축제가 막을 열었다. 그 이후는 피와 살점, 비명과 괴성만이 가득한 생지옥의 생생한 현장이었다.

 

 침대 위에 어안이벙벙해 멍하니 앉아 있는 블랑에게 피를 뒤집어쓴 듀마르트가 다가왔다. 당시의 그녀는 아직 살인을 저질러 본 적도 없는 아마추어였는데다 공포가 완전히 사라진 것도 아니였기에 듀마르트가 그녀에게 피묻은 손을 뻗었을 때, 본능적으로 몸을 움츠리며 부르르 떨었다. 그러나 그는 피묻은 손을 물리지 않고, 그대로 블랑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그의 손은 피에 젖어 따뜻한 온기가 감돌고 있었다.

 

 그 감각에 정신을 차린 블랑은 그를 똑바로 올려다보았다. 사내들의 피를 뒤집어 쓰고 있어 제법 공포스러운 모습이었으며 비릿한 피냄새가 진동했다. 그런데도 그녀는 어째서인지 그 모습이 멋있다고 생각했다. 방금 전투에서 보였던 그의 화려한 총놀림 탓일까 하고 생각하던 블랑은 점차 알 수 없는 기분에 휩싸였다. 잠시 어색한 정적이 흐르더니 피를 뒤집어쓴 모습과 상반되게 차분한 얼굴의 듀마르트가 먼저 입을 열었다.

 

 “뒤따라가다가 중간에 어두워서 놓쳤다. 늦어서 미안하다. 조금만 더 늦었으면 큰 일 날 뻔했다. 그리고… 옷에 묻은 피는 잘 닦아야한다.”

 

 피칠갑을 하여 무시무시한 모습과 상반되는 그의 세심함에 블랑은 풋하고 웃었다. 듀마르트는 영문을 알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억누르던 웃음이 새어나가는 것을 참지 못한 그녀는 결국 웃음보따리를 빵 터뜨려버렸다. 그제서야 그녀의 반응에 어리둥절해하던 그도 솔직히 자신도 좀 웃겼는지 풉 하고 웃어보였다.

 

 정신없이 웃어대던 블랑이 그의 이름을 물었다.

 

 “알렉산더 듀마르트다.”

 

 그녀는 듀마르트의 이름을 듣고 한 번 곱씹어보고는 지체 없이 말했다.

 

 “나랑 사귀자, 듀마르트.”

 

 듀마르트는 잔뜩 놀란 얼굴로 그녀의 얼굴을 바라봤다. 그리고 그의 대답은… 기억이 나질 않았다.

 

 

 

 “야, 듀마르트.”

 

 블랑이 앞서 계단을 올라가던 듀마르트를 불러세웠다. 그는 그때처럼 고개를 갸웃거리며 블랑을 돌아봤다.

 

 ‘언제봐도 잘생긴 얼굴 같아. 건강미 없기는 하지만, 그게 또 듀마르트의 매력이지.’

 

 오랜만에 보는 그의 얼굴을 보고 무의식적으로 떠올린 생각을 한켠에 치우며 하려던 말을 이었다.

 

 “그때 기억나?”

 

 “그때가 언제인데?”

 

 “그때 있잖아 너랑 나랑 처음 만났을 때.”

 

 “아, 네가 나 대신 간다고 까불다가 나한테 구해졌을 때?”

 

 자존심 센 블랑은 평소같았으면 그의 목에 칼을 가저다 대며 함부로 입 나불거리지 말라며 협박했겠지만, 듀마르트는 예외였다. 블랑은 그저 볼을 부풀리며 ‘아니거든!’하고 소리칠 뿐이었다.

 

 “알았어. 그래그래, 우리 블랑, 화 많이 나셨어요?”

 

 듀마르트가 거뭇한 장갑을 벗고는 뼈마디가 보일 정도로 마른 하얀 손으로 그녀의 뺨을 살며시 잡아당겼다. 다른 사람이 봤을 땐 그의 손은 흉하기 그지없겠지만, 블랑은 그만큼이나 매력적인 손이 또 있을까 하고 생각했다. 기분이 풀린 블랑은 하려던 말을 이었다.

 

 “내가 너한테 고백했을 때 네가 뭐라 그랬더라? 그때가 떠올라서 회상 중이었는데 잘가다가 갑자기 기억이 안 나네.”

 

 그녀의 말을 들은 듀마르트는 잠시 생각하는 눈치더니 이내 대답했다.

 

 “’지금은 못사귄다. 내가 은퇴하고 나서 결혼하자.’였을 걸? 이걸 다시 말하니 또 낯 부끄럽네.”

 

 블랑은 바로 퍼뜩 기억이 나면서 웃음을 터뜨렸다. 듀마르트는 눈살을 찌푸리며 소리쳤다.

 

 “너, 다시 듣고싶어가지고 일부러 기억 안 나는 척 한거지!”

 

 한참을 배꼽을 부여잡고 웃음을 터뜨리던 그녀가 변명했다.

 

 “아니야, 진짜 기억 안 나서 물어본 거야. 그런데 다시 들으니 그때의 너 되게 건방졌다. 크흡. 난 사귈 생각만 했지 결혼까진 생각도 못 했는데, 그때 네 머릿속에서 도대체 나랑 어디까지 갔던거야?”

 

 “자식들이… 결혼하는 것까지…”

 

 얼굴을 붉히던 그가 수줍게 대답했다. 블랑은 결국 참지 못하고 다시 웃음을 터뜨렸다.

 

 “몰라! 일단 보스한테나 가!”

 

 “아, 삐졌다. 듀마르트 아저씨 삐졌다~”

 

 그는 블랑의 놀림을 뒤로한 채 낡은 나무계단을 부술기세로 쿵쾅거리며 올라갔다. 도대체 그 마른 몸 어디에서 저런 힘이 나오는 것일까 새삼 궁금했다. 처음에는 깔깔대던 블랑도 점점 멀어지는 그의 뒤에 서둘러 바짝 따라붙었다.

 

 둘은 3층 까지 단숨에 올라왔다. 그리고, 듀마르트를 선두로 문을 열고 함께 들어갔다.

 

 “오, 이게 얼마만인가, 르미데안느.”

 

 방 안의 테이블 앞에 앉아 있던 우람한 남자, 조직의 보스가 둘을 반겼다. 프로들은 보스의 방에 자유롭게 들락날락 할 수 있다. 그래서 늘 보스의 방에는 적어도 세명 이상의 사람이 있었지만, 오늘은 어째서인지 보스의 옆에는 아무도 없었다.

 

 “게뎅은 어디가고 혼자 계셔요?”

 

 항상 보스의 옆을 지키게 되어 있는 호위 무사나 다름없는 ‘타운 디펜더', ‘게뎅’이 보이지 않자 듀마르트가 대뜸 그의 행방을 물었다.

 

 ‘그 녀석 아직도 디펜더구나…’

 

 “아, 그녀석은 배탈이 나가지고 화장실에 갔다. 유통기한이 지난 치즈를 먹은 것 같다나 뭐라나.”

 

 “으… 그건 좀 끔찍한데…”

 

 최근에 우유로 비슷한 경험을 한 블랑이 치를 떨었다.

 

 “어이쿠, 일단 거기 앞에 앉아라. 오랜만에 반가운 얼굴을 봤는데 세워놓고 이야기를 하다니. 어지간히도 내가 정신이 없었나보군.”

 

 보스는 덥수룩하게 자란 턱수염 사이로 손을 집어넣고는 턱을 긁으며 말했다.

 

 그는 거의 온몸의 털을 키우고 사는 남자라서 털을 싫어하는 블랑은 처음에는 거부감을 느꼈지만, 그의 친근하고 포근한 성격덕에 금방 그녀가 잘 따르는 남자 2호로 거듭난 사람이었다. 직위상으로도 그가 더 높은 위치에 있었으므로 따르는 데에 별 거부감이 들지 않았다.

 

 블랑과 듀마르트는 살짝 고개를 숙여보이며 각자의 자리에 앉았다. 그런 둘을 사랑스럽게 바라보던 보스는 블랑의 임무에 대해 말을 꺼냈다.

 

 “르미데안느, 네 보고는 잘 들었다. 임무를 실패했다는 것은 안타깝지만, 이것도 경험이라 생각해라. 여태까지 주욱 잘 임무를 해내왔던 네가 이번 한 번의 실패로 그 명예가 실추 된다는 것은 말도 안되는 것이니 너무 낙담하지는 마라.”

 

 “네, 보스"

 

 늘 임무를 마친 후 그의 칭찬만 듣던 블랑이 이렇게 위로를 받으니 새삼 마음 한켠이 답답했다. 그러면서도 그의 위로가 싫지는 않았다.

 

 “그래도 제법 공들인 모양이었는데, 경험이라 생각하고 넘어가기에는 확실히 시간이 아깝구나. 그것도 사 년이나 이어 온 임무인데. 그래도 이 정도면 잘한거다. 우리 조직 역사상 가장 긴 임무가 얼마 전에 마친 듀마르트와 양나빈이 펼친 이 년간의 공동 임무였다. 그런데 르미데안느, 너는 그 두배나 되는 시간동안 그 괴팍한 늙은이 옆에 참을성 있게 잘 들러붙어 있었지. 그것만으로도 대단한거야.”

 

 그의 말에 블랑은 살며시 미소가 떠오르다가 최문호의 이야기가 나오자 인상이 구겨지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결국 블랑은 쌓여 있던 울분을 토해냈다.

 

 “그 영감탱이 진짜 독종이에요. 적어도 이 년 전 부터 이미 제가 고용된 암살자라는 것을 알고도 저를 비서직에서 끌어내리지 않고 그대로 두고 있었어요.”

 

 “뭐?!”

 

 정작 보고를 듣는 입장인 보스는 묵묵하게 듣고만 있었지만, 옆에 있던 듀마르트가 괜히 소스라치게 놀랐다. 생김새와 다르게 마음이 약한 보스가 가슴을 쓸어내리며 그를 째려보았다. 그가 사과하자 보스는 장난이었다며 호쾌하게 용서해주었다. 그리고는 블랑의 말에 맞장구 쳐줬다.

 

 “어지간히도 힘들었겠군. 그나저나 이해가 되질 않는데? 네가 도중에 암살자라는 사실을 알아낸 것도 그렇고, 어떻게 네가 암살자라는 것을 알고도 그대로 둘 수가 있는거지?”

 

 블랑은 ‘그러니까요.’라고 말하려다가 어느정도의 품위를 위해 헛기침을 한 번 하고는 제대로 대답했다. 듀마르트와 함께 있는 이상 품위 따위 땅바닥에 버린 것과 다름 없지만.

 

 “최문호 회장은 제 실질적인 업무처리능력만을 보고 그대로 둔 겁니다. 살해의 위협을 옆에 두고 아무렇지 않게 생활해 온 것이었죠. 그리고 얼마전에 밑밥용으로 공수해간 마약마저 이용당했어요.”

 

 “듣던 대로 독한 늙은이로고…”

 

 보스는 자신의 턱수염을 잠시 쓰다듬더니 말을 이었다.

 

 “그런데, 그 늙은이가 어떻게 네가 고용된 암살자라는 걸 안거지? 혹시 내부에 배신자가 있는 건가?”

 

 늘 친근하던 그의 목소리가 낮게 깔리는 순간 등골이 오싹할 정도로 분위기가 싸늘해졌다. 순간 겁먹은 블랑이 재빨리 그의 말을 부정하며 답했다.

 

 “그건 아닌 것 같아요. 오늘 제가 회사를 나왔을 때, 그 영악한 늙은이는 제 심리 상태까지 파악하고 있던 것으로 보아 직접적인 정보수집을 했거나 그런 조짐을 느끼고 있었던 것 같아요. 아마 배신자가 있는 것은 아닐겁니다. 아니, 배신자의 소행이 아닙니다.”

 

 보스는 잠시 차가운 눈빛으로 블랑을 빤히 응시했다. 그리고는 다시 인상 좋은 와플가게 아저씨같은 얼굴로 돌아왔다.

 

 “네가 그렇게 확답한다면, 그런 것이겠지. 그나저나 뭔가 말해줄 게 있었는데…”

 

 보스는 다시 한 번 자신의 턱수염을 쓰다듬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예전에 게뎅이 했던 농담이 떠올랐다. 보스의 모든 기억과 판단력은 저 수북한 수염 속에 저장 된다는 어처구니 없는 농담이었다. 보스가 수염을 쓰다듬는 동안은 래리킹이 와도 토크에서는 그를 이길 수 없다며 신나게 떠들어 대다 보스에게 뒤통수를 얻어 맞고는 한 동안 머리를 부여잡고 끙끙대던 게뎅의 모습이 눈 앞에 그려졌다. 그리고, 게뎅의 농담처럼 한참동안 수염을 만지작거리던 보스가 기억 났다는 듯 얼른 수염에서 손을 떼고 말했다.

 

 “르미데안느, 네가 없는 동안 프로 동료가 둘 늘었다!”

 

 한참을 심란하게 생각하길래 심각한 일인줄 알았거늘 제법 즐거운 소식이었다. 그 말에 이어 보스가 누군가를 불렀다.

 

 “키! 이리 와 봐!”

 

 방의 한구석에 놓여 있는 컴퓨터 앞에 기척 없이 앉아 있던 한 왜소한 남자가 맨발로 그들에게 다가왔다. 키라고 불린 그는 블랑이 오늘 최문호의 편지를 건네주기 위해 만났던 소년보다 더 어려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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