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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Netwalker
작가 : HudmentJhinRaker
작품등록일 : 2019.9.6

프로급 마피아 조직원 르미데안느 드 블랑. 사이버 해킹 보안국 특수 요원 고준혁. 세계적인 대기업 제타 그룹의 회장 최문호. 가족을 잃고 사이버 킬러가 된 소년 서지환. 깊은 곳에서 부터 꼬이기 시작한 그들간의 과거가 기어코 실체를 드러낸다.

 
NetWalker - 4
작성일 : 19-10-14 21:26     조회 : 187     추천 : 0     분량 : 8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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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마침내 시간이 되었다. 일주일 정도 미루고 있었던 샤워를 마친 지환은 심호흡을 크게 한 번 하고는 먼지 쌓인 옷장을 열었다. 처음부터 기대는 안 했지만 막상 초라한 내용물을 직접 보니 가슴이 쓰라릴 지경이었다.

 

 실망섞인 한숨을 푹 내쉰 지환은 무난한 색감의 후드티를 골라 입고, 잘 맞지도 않는 청바지를 툭툭 털어 입었다. 생각한 것보다 작은 나머지 종아리가 저릴 지경이었지만, 정장을 입고 돌아다니는 회사원들 사이에 츄리닝을 입고 끼어들어가는 것보다는 아무렴 나았다.

 

 후드 위에는 마지막으로 입은 것이 언제인지도 기억 안 나는 바다색 자켓을 걸쳤다. 모자도 쓸까 생각은 했지만 정문에서 가로막힐 것 같아 쓰지 않았다. 대신 아버지의 은 시계를 손목에 찼다. 시계 보는 눈이 없는 지환도 한눈에 명품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정도로 고급진 시계였다. 아버지의 유품이나 다름없는 물건이었으나 아버지의 회사를 찾아간다고 생각하니 왜인지 차고 가야만 할 것 같았다.

 

 가는 길은 걱정했던 것보다 훨씬 순탄했다. 수상한 사람은 눈에 띄지도 않았고, 밝은 태양이 하늘에서 모든 것을 지켜봐 주고 있었다. 어머니께서는 저것이 예수님의 시선이라고 곧잘 말씀하셨지만, 지환은 그 말이 와닿지 않았다. 그래도 어머니는 늘 예수님을 좋아라 하셨으니 지환도 저절로 태양빛은 좋은 것이구나 하면서 살아왔다. 다만 그것도 어머니가 살아계시던 시절의 이야기였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시간을 때우고 있을 때 버스의 안내방송이 흘러나왔다.

 

 “이번 정류소는 제타역, 제타기업 정문입니다. 다음정류소는…”

 

 지환은 재빨리 하차벨을 누르고 교통카드를 찍었다. 얼마만에 듣는 경쾌한 소리인지 모르겠다. 버스에서 내린다음은 지도를 볼 것도 없이 버스의 진행방향으로 이 분 정도 걸어 드디어 제타그룹의 회사 앞에 도착했다.

 

 ‘이게 아버지가 다니시던 회사라고?’

 

 80층은 거뜬히 넘어 보이는 압도적인 높이의 고층 건물을 마주하고서야 제타 그룹이 대기업임을 새삼 실감했다. 이 주변의 건물들이 강남이라는 이름이 무색할 정도로 작게 보일 지경이었다. 정문에는 윤기나는 정장을 깨끗하게 차려입은 직원들이 점심시간이 끝났는지 하나 둘 건물 안으로 파묻히듯 들어갔다.

 

 정문만 해도 밖에서는 천장의 높이가 가늠이 안될 정도로 거대했다.

 

 침을 꿀떡 삼킨 지환은 비장하게 그들 사이에 끼어들어가 정문을 밀었다. 예상한대로 로비는 밖에서 본 것보다 훨씬 더 넓었다. 천장의 높이는 이십 미터는 훌쩍 넘어보였고, 편의점, 일식집, 중국집, 스타벅스, 던킨 도넛, 양주점 등 온갖 매장들이 중앙 안내데스크의 양옆으로 줄지어 있었다. 매장 안에는 아직많은 직원들이 남아 있었다. 여유로운 모습으로 보아 아직 점심시간이 끝난 것은 아닌 모양이었다.

 

 지환은 저도모르게 잠시 감탄에 빠져 어딘가로 바삐 걸어가는 직원과 어깨를 부딪혔다. 사과하려 했지만, 어깨를 부딪힌 직원이 먼저 정중히 사과하며 갈 길을 가버렸다. 이런 회사에 다니는 사람들은 종종 제대로 못차려 입은 사람과 마주치면 무작정 폄하하려 드는 줄로만 알고 있었던 지환에게는 제법 충격적인 경험이었다.

 

 덕분에 정신을 차린 지환은 부자연스러운 걸음걸이와 함께 깨끗하게 관리된 대리석 바닥 위에 이쁘장하게 깔린 자줏빛 카펫을 밟으며 중앙 안내 데스크의 앞에 도착했다.

 

 “안녕하세요. 무슨 용건으로 찾아오신 건가요?”

 

 정문을 바라보고 서있던 안내데스크의 예쁜 여직원 한 명이 자신에게로 오는 것을 어떻게 알았는지 저 멀리서부터 걸어오는 지환을 똑바로 바라보며 깍듯이 인사를 하고 말했다.

 

 지환은 제법 거리가 있지만 그자리에 멈춰서서 말할까 고민하다가 결국 자연스럽게 보이기 위해 바로 앞까지 걸어가며 대답하는 쪽을 택했다.

 

 “저… 회장님의… 초청으로 찾아왔는데요…”

 

 “누구의 초청으로 찾아오셨다고요?”

 

 “회장님…”

 

 “네?”

 

 건물 내의 분위기에 압도된 지환은 자신의 목소리가 작다는 것도 모른 채 대답했다. 결국 안내원은 지환이 코 앞까지 올 때까지 그의 말을 알아듣지 못했다.

 

 “최문호 회장님께서 초청하셨다는 말씀이신가요?”

 

 “네… 이걸 보여드리면 된다고 하셨어요…”

 

 지환은 편지봉투를 그녀에게 내밀었다.

 

 건네받은 안내원은 편지를 꺼내 살짝 읽어보고는 소형 정수기처럼 생긴 기계에 인장을 대보더니 돌려주며 말했다.

 

 “확인되었습니다. 회장님께 연락을 드려야하니 좌측 대기석에 앉아 계시면 저희 직원이 안내 해드릴겁니다.”

 

 “아, 네. 감사합니다.”

 

 뭐가 감사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감사하다고 말한 지환은 여전히 부자연스러운 걸음으로 줄줄이 나열된 티끌하나 없는 철제 의자에 앉았다.

 

 날씨가 상당히 추워 사내 로비도 은근히 쌀쌀한 편이었으나 의자만큼은 따땃했다.

 

 지환은 무슨 원리로 이리 따뜻한 것인지 문득 궁금했지만, 로비에 앉아 있는 것은 자신뿐이었기에 남들의 눈에 띈다는 것을 인지하고 경솔하게 행동하지 않았다.

 

 십 분쯤 지났을까 툭 튀어나온 배가 인상적인 중년의 경호원이 다가와 이름을 물으며 본인이 맞냐고 물었다. 지환은 그렇다 답했다. 그는 자신을 따라오라며 외진 곳으로 데려가 ‘관계자 외 출입 금지'라고 써붙여진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곳에는 로비에 곧잘 보이는 엘리베이터와는 다른 하나 엘리베이터가 숨겨져 있었다.

 

 “그런데 넌 여기에 왜 찾아왔니?”

 

 천천히 층을 내려오는 엘리베이터의 문 위에 적힌 숫자를 막연히 바라보던 경호원이 대뜸 지환에게 물었다.

 

 말해도 되는 것인지 몰라 그냥 불려서 왔다고만 대답했다. 공개적인 일이었다면 비밀스러운 느낌이 불붙인 향처럼 피어나는 소박한 편지를 전해주었을 리가 없었다. 정작 편지를 전해준 인물은 매우 이목을 끌었지만. 경호원은 더이상 묻지 않고 그렇구나 하며 짧은 대화가 끝났다.

 

 마침내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고 지환은 그 위에 올라탔다. 경호원은 자신에게는 올라갈 권한이 없다며 지환만을 위로 올려보냈다. 엘리베이터 내부는 숨겨진 것 치고는 먼지 한톨 없이 깔끔했다. 매일 쓸고 닦고 해도 엘리베이터 내부의 거울을 이 정도로 윤기나게 만들기는 힘들 것 같았다.

 

 엘리베이터가 빠른 속도로 한 층, 한 층 올라갈수록 지환은 잊고 있었던 불안감이 서서히 고개를 드는 것을 느꼈다. 회장을 만난다면 무슨 태도를 보여야 할까. 도대체 무슨 용건으로 자신을 부른 걸까. 첫마디를 뭐라고 할까. 나를 시험하기 위해 부른걸까. 지환이 여러 생각을 떠올리며 머리를 싸매고 있을 때, 엘리베이터는 이미 60층을 지나치고 있었다.

 

 결국 최종 층인 87층에 도달할 때까지 지환은 생각을 정리하지 못하고,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는 순간까지 도착했다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했다.

 

 ‘어쩌지? 아직 마음의 준비가 안됐는데.’

 

 부딪혀보자는 마인드로 별생각없이 여기까지 전진해 온 지환은 뒤늦게 후회했다. 하지만, 다시 돌아갈 길도 없어 지환은 고심끝에 그럴싸하게 허리를 쭉펴고 당당하게 걸어나왔다. 그러나 잔뜩 긴장한 탓인지 그 폼이 영 부자연스러웠다.

 

 그대로 좁고 어둑한 통로를 통해 뚜벅뚜벅 걸어가던 지환은 문득 이상한 낌새를 느꼈다.

 

 ‘회장님이 초대하신게 얼굴을 보자는 의미가 아니였나?’

 

 야밤에 도시 전체가 정전이되었을 때처럼 정면에는 그저 답답한 어둠만이 깔려 있을 뿐이었다.

 

 도저히 이곳은 회장님이 계실만한 곳이 아님을 깨달은 지환은 재빨리 모든 생각을 집어 던지고 뒤를 돌아 이 층의 유일한 빛이나 다름없는 엘리베이터 내부로 돌아가려 했다. 그러나 엘리베이터는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을 닫아버렸다.

 

 어둠속에 갇힌 지환은 너무 놀란 나머지 뒤를 돌아선 그 자세 그대로 얼어버렸다. 지환은 어둠을 무서워하는 편은 아니지만, 막상 낯선 장소에서 어둠에 발이 묶여버리니 오만가지 생각이 다들었다.

 

 ‘뭐지? 무슨 일이 일어난거지? 난 어쩌면 좋지? 갇힌건가?’

 

 거대한 코끼리의 엉덩이 밑에 깔린 것처럼 극한의 압박이 온몸을 짓눌렀다. 한치 앞도 보이지 않고, 몸도 움직이질 않으니 모든 감각을 상실한 기분이었다. 평소 어두운 곳에서 생활한 덕분에 이미 어둠에는 익숙하다고 자부해온 자신이 무색할 만큼 이 순간을 버티기 힘들었다.

 

 점점 패닉에 빠져 이제는 어둠속에서 인간을 잡아 먹는 괴물의 기괴한 환청이 키에엑하고 들려올 무렵, 구원의 빛이 철컹거리는 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가 있는 곳 부터 하나 둘 차례대로 어둠을 몰아내었다. 이내 그 빛은 내부의 모든 어둠을 몰아내고 지환을 따뜻하게 보듬어 주었다.

 

 빛을 보고 안심한 지환은 그대로 자리에 주저앉았다.

 

 “사…살았다…”

 

 지환은 참고 있었던 숨을 거칠게 내쉬며 눈부심이 사라질 때까지 기다렸다. 한숨 돌린 지환은 자리에서 일어나 주변을 둘러보았다.

 

 바닥과 천장이은햐얀 대리석으로 이루어져 있었고 사방이 거울로 된 의외로 넓은 공간이었다. 그러나 높이는 넓이에 비해 당장이라도 머리가 천장에 닿을 것처럼 낮았다.

 

 ‘무슨 정신병자라도 가둘 법한 분위기네...’

 

 넓기는 미친듯이 넓은 이 공간과 저멀리 거울에 신기루처럼 비춰지는 자신과 새하얀 바닥과 천장, 그리고 게이밍 의자를 본뜬 기계가 중앙에 배치되어 있을 뿐이었다.

 

 황망한 이 공간 속에서 지환은 무엇을 해야할지 몰라 멍하니 서 있었다. 그때, 어디에 있는지 모를 스피커에서 걸걸한 노인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잘 왔네 서지환군."

 

 지환은 몽환적인 고요와 숨막히는 정적의 흐름을 깨고 드리운 갑작스러운 소리에 심장이 멎는 것 같았다. 스피커의 볼륨을 크게 맞춰놓았는지 음질이 깨질 정도로 그 소리가 컸다. 목소리의 주인도 그 사실을 깨달았는지 스피커의 소리를 반 정도 줄여 말을 이었다.

 

 "나는 제타그룹의 회장, 최문호라네. 일단은 중앙의 의자 위에 누워, 옆에 놓인 헬멧을 머리에 써주게나. 그리고 헬멧과 의자의 전원을 키고 잠시 기다려주게. 참고로 전원 버튼은 헬멧의 오른쪽 귀를 덮은 부분에, 의자의 오른손 팔걸이에 있다네."

 

 이 말을 끝으로 아무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상황이 이해가 되질않아 최문호 회장이 자신의 말을 듣고 있어주길 바라며 이 상황에 대해 물었지만, 방금들려온 음성이 재촉하듯 한 번 더 되풀이될 뿐이었다. 즉각적으로 대응해주고 있는 것이 아닌 그저 녹음된 내용을 재생하고 있는 것임을 깨달은 지환은 하는 수 없이 그 말에 따랐다.

 

 느린걸음으로 중앙의 의자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한 발 한 발 내딛을 수록 어째 위험한 감촉이 등골을 훑는 것 같았지만, 단지 예민한 탓이라 여기며 걸음을 이이상 늦추지 않았다. 그런데 의자는 보이는 것보다 멀리 있는지 좀처럼 가까워지지를 않았다. 일종의 착시일까. 조금 이상하다고 생각한 지환은 작은 의문을 품은 채 일단은 걸었다.

 

 뭔가 잘못됐다. 정문을 열고 들어가 제일 넓은 1층 로비에서 중앙 안내 데스크까지 걸어갈 때에도 이 정도로 오래 걸리지 않았다. 애시당초 5분은 족히 넘은 것 같은데 여전히 의자는 가까워질 생각이 없었다. 게다가 건물이 고층 건물일수록 위 쪽이 구조상 가늘어지는 것이 안전한 건축학의 기본인데다 실제로 정문 앞에서 건물을 보았을 때에도 그렇게 지어져 있었다.

 

 그런데 87층에서 층의 중앙에 도달하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로비에서 걸리는 시간보다 더 오래 걸린다는 것은 말도 안되는 이야기였다.

 

 지환은 자신의 발 밑에 거꾸로 가는 무빙워크라도 작동중인 것인지 혹시 몰라 발을 멈춰서 보기도 하고 트릭이 숨겨져 있는 것인지 주변을 살펴보기도 했다. 역시 이상한 느낌이 들어 되돌아가자고 생각한 지환은 가던 발걸음을 멈추고 뒤로 홱 돌아섰다. 그리고, 어둠에 감싸였을 때와 같이 숨이 턱 막혔다. 엘리베이터 문은 이미 저멀리 떨어져 있었다. 지환은 크게 놀라 입을 떡 벌린채 멍하니 서있는 것밖에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그와 동시에 한가지 깨달음을 얻었다.

 

 ‘처음부터 함정이었어.’

 

 어째서 자신은 이 공간의 어둠을 빛이 모조리 씻어낸 그 순간부터 눈치채지 못했을까. 이 곳이 1층 로비보다 두배는 더 넓다는 사실을.

 

 밖에서 건물을 올려다보았을 때 유난히 툭 튀어나온 층은 눈 씻고 봐도 찾아볼 수 없이 그저 높이 솟아 있는 밋밋한 사각형의 건물일 뿐이었다. 그런데 자신은 어째서 그 사실을 알고도 1층의 로비보다 더 넓은 이 곳을 보자마자 이상하다는 것을 느끼지 못했을까. 그 사실이 한탄스러울 따름이었다.

 

 지환은 자신을 원망하면서도 이 말도 안되는 상황에서 벗어날 궁리를 하였다. 그러나 듣도보도 못한 이 기괴한 상황 속에서 어떻게 벗어나야 좋을지 전혀 떠오르는 게 없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마음이 초조해지고, 이미 낮은 천장이 서서히 더 낮아지는 듯한 압박감이 생겨났다. 이 극한의 상황속에서 드는 생각이라고는 온통 비관적인 것들뿐이었다.

 

 지환은 점점 이 공간과 상황이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인가 노인의 목소리가 계속해서 반복되고 있었다.

 

 "잘왔네 서지환군."

 

 그 한 문장이 계속해서 반복되고 있었다. 계속해서 또 계속해서 그리고 또 계속… 계속…. 그리고 또… 그리고… 영원히… 계속해서…

 이제 지환의 머릿속에는 계속해서 울려퍼지는 노인의 목소리와 영원히 이곳에 갇히게 될지도 모른다는 공포심과 불안과 초조함만이 남아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노인의 목소리는 더욱 커져만 갔다. 누군가 볼륨을 조금씩 높이고 있는 것인지 의식이 극대화되면서 그 소리에 모든 신경이 집중되고 있는 것인지 구분이 되질 않았다. 그저 이 악몽같은 순간의 반복이 사라지기만을 조용히 기도하고 싶었다.

 

 한 평생 앞만 보고 달려온 인생이었다. 과거따윈 짐덩이이며 후회라고는 단 한 번도 해본적이 없는 그였다. 그런데 지금 지환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이 공간에 들어온 것을 후회하고 있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실때 마저 나약했던 자신을 원망했을 뿐이지 후회만큼은 하지 않았던 자신이 겨우 이상한 일에 휘말린 것 가지고 과거의 그때처럼 나약해지려 하고 있었다.

 

 ‘아무 힘도 없는 쓰레기.’

 

 하나밖에 없는 어머니도 지키지 못한 과거의 자신에게 항상 해주던 말이었다. 그런데 이제와서 그때처럼 아무것도 못한다? 말도안된다.

 

 끝없는 악몽의 굴레 속에 쭈그려 앉아 있던 지환은 문득 이대로는 안되겠다 싶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러자 노인의 목소리가 호통이라도 치는 것처럼 음량이 커지며 고막을 간질였다. 허나 마음을 굳게 먹은 지환은 굴하지 않고 앞으로 한발짝씩 내딛었다. 모두 쓸데없는 발악이란 것쯤은 알고 있었지만, 지환은 멈추지 않았다.

 

 이미 고막은 갈가리 찢어져 아무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노인의 기분나쁜 환영인사는 계속되고 있었지만, 그것은 더이상 지환을 막을 수 없게 되었다. 드디어 정면을 향해 다섯발짝이나 기어오다시피 한 지환은 주머니를 뒤져 지갑을 손에 움켜 쥐었다. 그 순간, 그의 안에 남아 있던 과거의 자신을 향한 저주와 응어리들이 하나의 형체를 만들어 내었다.

 

 분노

 

 그것이 지환의 힘의 원천이 되어주었다.

 

 지갑을 움켜진 손을 서서히 들어 올려 뒤로 당겼다. 그리고, 크게 팔매질 하며 소리쳤다.

 

 “시끄러워!”

 

 무엇이 시끄럽다는 것인지 지환 자기자신도 그 이유를 알지 못했다. 약한 소리만을 내뱉던 과거의 자신, 사이버 상에서 자신을 욕했던 저급 유저들, 노인의 목소리, 그리고 늘 지환에게는 괜찮다고만 말씀하시던 어머니. 이 중 하나를 특정지어서 누구에게 정확히 소리친 것일 수도 있고 그 모두에게 한 것일 수도 있으며 혹은 그 어느 누구도 아닐 수 있었다. 다만 지환은 그것들을 떠올리며 시끄럽다고 소리를 질렀고, 지갑을 던졌다.

 

 내던져진 지갑은 십원, 오십원, 백원짜리 동전들을 흩뿌리며 거세게 날아갔다. 마치 지환의 추한 과거를 탈탈 털어내는 것처럼. 그렇게 기세 좋게 날아가던 지갑이 갑작스레 퉁 하는 소리와 함께 보이지 않는 벽에 부딪혔다. 그 방면의 거울이 깨지고, 이내 공간마저도 일부 무너져내렸다. 그 사이에서 아까와도 같은 칠흑같은 어둠이 엿보였지만, 이미 어둠은 분노한 지환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

 

 사방으로 흩어진 동전을 집어든 지환은 하나씩 주변에 내던졌다. 내던져진 동전들이 지갑처럼 보이지 않는 벽에 부딪히면서 찬찬히 모든 거짓과 과거의 녹을 벗겼다. 지환은 계속해서 사방으로 동전을 던졌다. 벽에 부딪힐 때마다 나는 동전의 경쾌한 소리덕에 지갑을 내던졌을 때 보다도 몇배는 더 속이 후련했다.

 

 그렇게 수많은 동전들이 벽에 부딪히고 조금씩 공간이 무너지기를 반복하면서 이내 현실에 들러붙은 모든 거짓이 떨어져 나갔다.

 

 지환은 다시 칠흑같은 어둠에 갇혔다. 그러나 이번에는 두렵지 않았다. 이미 그는 마음 속의 분노의 성화를 피어올려 모든 어둠을 내면에서부터 무찌르고 있었다.

 

 그때였다. 어둠 속에서 거대한 짐승의 입김 같은 불쾌한 바람이 지환을 덮쳤다. 그 입김은 따스하면서도 차가워 마음 속의 불씨를 모조리 꺼버리고 그를 따스하게 감싸주었다.

 

 지환이 제정신을 차렸을 때 그의 마음속에서 분노는 이미 뿌리채 사라져 있었고, 그저 개운함만이 남아 있었다. 아직 상황파악이 안되어 어리둥절한 지환의 발치에는 낮에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올 때에는 분명 밝았을 터인 서울의 야경이 펼쳐져 있었다. 지환은 어느새 최문호 회장의 회장실에 설치된 유리창 앞에 뒷짐을 지고 서 있었다.

 

 현실로 돌아왔음을 직감한 지환은 기어코 다리 힘이 풀려 그자리에 주저 앉았다.

 

 “돌아왔다…”

 

 그의 눈에서는 감동도, 분노도, 슬픔도 그 무엇도 아닌 후련함의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그리고, 최문호 회장이 말했다.

 

 “인간은 어둠 속에서 극한의 공포를 느끼지. 그 안에서 극도로 신경이 예민해진 인간이 갑작스럽게 큰 소리를 듣거나 위협적인 무언가의 기척을 느낀다면, 실신을 하거나 심장마비에 걸리기도 하며 심하면 쇼크도 일으키지.”

 

 스피커 속의 목소리와 같은 목소리였으나 들리는 음질의 차이가 굉장히 컸다. 지환은 천천히 소리가 들리는 방향으로 고개를 틀었다.

 

 “그런데, 서지환군. 자네는 나처럼 벽을 깨고 스스로의 족쇄를 벗어던졌네. 자네는 나와 자네의 아버지, 서장희가 쌓아 올린 모든 것을 가질 자격이 있어.”

 

 그곳에서는 푸른 빛을 내는 반투명한 최문호 회장의 잔상이 소파에 앉아 지환에게 말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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