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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Netwalker
작가 : HudmentJhinRaker
작품등록일 : 2019.9.6

프로급 마피아 조직원 르미데안느 드 블랑. 사이버 해킹 보안국 특수 요원 고준혁. 세계적인 대기업 제타 그룹의 회장 최문호. 가족을 잃고 사이버 킬러가 된 소년 서지환. 깊은 곳에서 부터 꼬이기 시작한 그들간의 과거가 기어코 실체를 드러낸다.

 
NetWalker - 2
작성일 : 19-10-14 21:20     조회 : 191     추천 : 0     분량 : 1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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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 이거 어떻게 생각하냐.”

 

 지환은 카페에서 건네받은 회사로의 초청장을 꺼내 보이며 함께 통화하고 있던 수현에게 물었다. 잠시 무언가를 곰곰히 생각하던 수현이 말했다.

 

 “글쎄다. 그나저나 그 여자 엄청 예쁘지 않았어?”

 

 “후… 그래. 일단 전화 끊을게 생각 좀 하다 자야겠어.”

 

 “잠시만…”

 

 지환은 갑작스럽게 아버지의 회사로부터 초청장을 받은 탓에 많이 혼란했던 나머지 수현의 다급한 부름을 듣지 못했다.

 

 지환은 아직까지 입고 있던 후드를 벗어 던지고 벽에 박혀있는 못에 모자를 걸었다. 그리고, 컴퓨터의 전원을 끈 다음 오랜만에 방의 전등을 켰다. 전등의 갑작스러운 빛에 눈을 질끈 감았다. 어둡게 지낸 덕분에 여태까지 깨끗하기 그지없어 보였지만, 빛을 비춰보니 이곳저곳 먼지 쌓인 물건이 널려 있었고 휴지통은 과자 봉투, 쓰고버린 휴지로 넘쳐나고 있었으며 방바닥은 평소 다니지 않는 쪽은 밟으면 발자국이 찍힐 정도로 먼지가 두껍게 쌓여 있었다.

 

 지환은 발로 바닥을 쓸어보고는 침대 마리맡에 놓은 물티슈로 발을 닦았다. 잘 닦이지 않는 것 같아 살펴보니 물티슈도 이미 일반 티슈처럼 바짝말라 있었다. 결국 적당히 먼지를 털고 물티슈는 휴지통 옆에 던져 놓았다.

 

 침대 속에 기어들어간 지환은 초청장의 의미를 떠올려 보았다.

 

 ‘그 여자가 회장님의 초청장이라고 했지? 옛날 우리 아버지의 죽음을 다시 들춰보여주려고? 아니야, 그래 봤자 저 쪽에서 좋을 거라곤 하나도 없어. 그리고 몇년이고 더 지난이야기인데 이제와서 옛날 이야기를 왜 하겠어. 그게 아니면 내게서 반도체 기술에 관련된 무언가가 보였나? 나는 그럴만한 재능을 이어받은 기억이 없는데.’ 실제로 지환은 반도체의 말뜻조차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너무 수상해. 애시당초 특별할 것도 없는 이 고급질 뿐인 편지가 그 대기업의 회장님이 보내주신 초청장이라니 너무 소박하지 않아?’

 

 지환은 이런생각을 하면서도 어째 초청장은 가짜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편지봉투에 찍혀 있는 인장이 진짜인지조차 구분할 수 없었지만, 그렇게 생각하면 할수록 이 편지를 전해준 그녀가 나타나 ‘이 초청장은 진짜다.’ 라며 귓바퀴에 대고 속삭이는 것 같았다.

 

 문득 서양인 느낌이 물씬 났던 그녀의 정체가 마음에 걸렸다. 비서나 일개 간부 쪽 사람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알맞지 않는 인상이었다. 무엇보다 눈에 너무 띄고 그녀라면 오히려 상관의 명령을 듣기 보다는 자기만의 방식으로 모든 것을 해결할 만한 분위기였다. 어쩌면 낮에도 상관은 그녀에게 편지를 건네주면서 ‘이걸 서지환에게 전해주게'라고 말했을 뿐이고 그녀는 그녀의 방식대로 일을 처리한 것일지도 모른다.

 

 ‘혹시 수상한 집단의 음모 아니야?’

 

 지환은 문뜩 떠오른 생각을 도로 집어넣었다. 확실히 그녀라면 살인청부업체 소속이라고 하여도 어느정도 믿음이 갔지만, 초청장은 이해할 수 없었다. 설령 그들이 지환의 과거를 캐내서 혼란을 준 다음 납치하거나 살해한다고 해서 그들 자신에게 무슨 이득이 되겠는가. 게다가 회장님을 사칭한다니 너무 무모하다. 그러나 막상 상상을 하니 조금 무서워졌다. 금방 집어넣었던 은밀한 집단의 음모설이 스멀스멀 다시 고개를 들었다.

 

 지환은 이불 속에서 고개를 가로 젓고는 다시 생각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비밀 집단이 나를 노릴 이유가 없어. 설령 납치된다 하더라도 그냥 죽어버리면 돼. 어짜피 내가 원하던 게 그거니까. 쓸데없이 시간만 미루고 있었는데 오히려 잘된거지, 뭐. 그것보다 검색한 바로는 회사까지 가는 길은 버스 한 번 환승하면 금방이니까 애시당초 노려질 틈도 없어. 엄마네 집은 사람이 북적이는 단지 아파트니까 거의 유일한 틈은 대기업 회사 앞 밖에 없는데 그런 도심 한복판에서 사람이 납치된다? 그것도 밝은 대낮에? …잠깐 대낮에?’

 

 지환은 문득 자신이 낮에 가는 것이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 초청장을 재차 열어보았다. 다행이도 약속시간은 오후 세 시, 낮이었다. 그러나 초청장은 언제봐도 수상했다. ‘저희 회사 앞으로 오시죠. 시월 이십 칠 일, 오후 세 시, 카운터에 본 초청장을 제출…. 서지환 님께.’ 한 대기업의 회장님이 보냈다고 하기에는 너무 소박한 편지에 간결한 내용이었다. 다시 한 번 의구심이 들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녀의 잔상이 다시 한 번 지환의 귓바퀴에 대고 속삭였다. ‘이 초청장은 진짜야'

 

 “아, 진짜! 알았어! 간다고 가! 가면 될 것 아니야!”

 

 결국 지환은 분에 못이겨 자신도 모르게 소리를 꽥 질렀다.

 

 ‘어차피 가는 길에 위험한 곳이 있으면 피해가면 되고 뭐 직접 건물의 어디까지 오라고 한 건 아니니까 슬쩍 카운터에 보여주고, 본적 없는 편지라고 대답하면 그대로 다시 이 곳으로 돌아와 언제 죽을지 그 고민이나 하면 되는거야.’

 

 이미 지환에게 있어서 과거는 무거운 짐덩어리일 뿐이었다. 지금은 그 과거에 발이 묶인 상황이니 다시한번 과거의 짐덩이가 자신의 최후를 앞당겨주고 있을 뿐이라고 생각했다. 과거하니 떠오르는 어머니의 따뜻했던 미소에 지환은 울적함을 느꼈다. 그때 누군가 방문을 조심스레 열고 말했다.

 

 “저기 자유로운 건 좋은게 조금만 조용히 해줘…”

 

 과로라도 한 것인지 많이 지쳐보이는 목소리였다.

 

 “네 죄송해요, 아빠.”

 

 훌쩍이던 지환은 최대한 목소리를 억눌러 떨리지 않게 말했다. 그날 지환은 그의 인생에서 두번째로 가장 심란한 밤을 보냈다.

 

 

 

 

 회사에 도착한 블랑은 규칙적인 걸음걸이로 또각또각 소리를 내며 엘리베이터를 향해 걸어갔다. 남성 직원들은 블랑의 미모에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힐끔거리며, 여성 직원들은 그런 블랑에 대한 시기와 질투가 담긴 눈빛으로 째려보며 지나치는 모든 직원들이 블랑에게 곁눈질을 보내며 지나갔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자신들이 다니는 회사의 회장이 단독 임명한 비서에게 감히 말도 붙이지 못했다. 그녀의 정체를 모르는 직원들도 소수 있었지만, 그들도 그녀의 이국적인 외모를 보고 어떻게 말을 걸어야할지 몰라 그냥 한 번 입맛을 다실 뿐이었다.

 

 블랑은 한 눈에 모든 관심을 받으며 중앙 로비를 가로질러가 마침내 발걸음이 좀체없는 구석진 복도로 걸어들어갔다. 관계자외 출입금지 표지판이 붙은 문을 과감하게 열어젖힌 그녀는 숨겨진 엘리베이터를 불렀다. 각 층에는 회장실까지 직결된 엘리베이터가 이렇게 하나씩 숨겨져 있는데, 이 사실을 아는 것은 회사내에선 최문호 회장과 블랑 뿐이었다. 다른 여자들이 모르는 비밀을 한가지 알고 있다는 것에 사소한 승리감을 느낀 블랑은 피식 웃어보였다.

 

 엘리베이터에 올라탄 그녀는 거울을 보며 입꼬리를 잡아 내리고, 마음을 가다듬었다.

 

  ‘이러면 안되지 좀 더 프로답게.’

 

 옷매무새까지 정리함으로써 모든 준비를 마친 그녀는 정면을 바라본 채 허리를 꼿꼿이 세웠다. 그녀의 모습은 누가 보아도 한 대기업 회장의 훌륭한 비서였다.

 

 마침내 엘리베이터가 도착했다. 블랑은 자신 특유의 규칙적인 구두소리를 내며 힘차게 걸었다. 이 행위는 일종의 자신이 왔다는 신호이기도 했다. 좁은 통로의 끝에 있는 문없는 방이 바로 그 저명한 제타그룹의 회장실이다. 허나 컨테이너처럼 생긴 넓을 뿐인 방에 있는 것이라고는 화장실하나와 서울 풍경이 훤히 보이는 유리벽과 바깥을 내다보게끔 배치된 편안한 쿠션 소파, 그리고 그 뒤에 놓인 컴퓨터 한 대와 최문호 회장뿐이었다. 한 대기업의 회장이 있는 회장실은커녕 도배마저 안 되어 있는 가난해 보이기까지 하는 방이었다.

 

 블랑은 이 방에 들어올 때마다 어김없이 이런 생각을 했다.

 

 ‘그렇게 돈도 많은 양반이 서민 행세라도 해보겠다는 건가?’

 

 그녀는 차마 입 밖으로 내뱉을 수 없는 비아냥을 속으로 외치면서도 발걸음에 흐트러짐은 없었다.

 

 늘 그랬던 것처럼 최문호 회장은 소파에 몸을 묻고 창 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블랑은 자연스레 그의 옆까지 걸어가 바깥을 내다보았다.

 

 “일은 깔끔하게 처리되었지?”

 

 최문호 회장이 넓은 창문을 통해 바깥의 야경을 내려다보며 블랑과는 얼굴도 마주하지 않고 말했다.

 

 일반인이 본다면 헉하고 숨을 삼킴과 동시에 눈알이 튀어나올 정도로 아름다운 서울의 야경은 언제봐도 절경이었다. 그러나 이 풍경을 매일보는 최문호 회장은 지겨운 듯 보였다.

 

 블랑은 사소한 아름다움마저 잊은 채로 살아가는 최문호 회장이 한순간 가엾어 보였다.

 

 ‘아니야. 그래봤자 곧 죽을 사람이야. 잡생각은 버리자.’

 

 블랑은 바깥 경치를 바라보며 그의 말에 고개만 끄덕였다. 최문호 회장은 창문에 비친 블랑을 보고는 ‘그렇군'하고 야경에서 눈을 떼었다. 걱정거리라도 떠올랐는지 한숨을 깊게 쉰 그가 입을 열었다.

 

 “연구는 잘 진행되고 있나?”

 

 “생각외로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어요. 며칠 전까지만 해도 위험도는 80% 위를 웃돌았지만, 가장 최근에 가공한 것은 위험도가 극적으로 떨어져 20% 대까지 낮추는 데에 성공했어요. 서두른다면 감수해볼만 한 수치이죠.”

 

 최문호는 ‘역시'하고 작은 감탄을 내뱉었다.

 

 불랑이 여태 보아온 무뚝뚝한 회장의 이미지에 비하면 그것은 그가 낼 수 있는 최선의 칭찬이었다. 최문호 회장은 잠시 정적을 즐기는 듯하더니 이내 웃음을 터뜨렸다.

 

 그의 돌발행동에 블랑은 화들짝 놀랐지만, 그런 티를 내지는 않았다. 그러나 당황한 기색을 완전히 지울 수는 없었다. 그가 이렇게 껄껄 웃는 모습은 사 년간 그를 보좌해온 그녀조차 처음 보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순간 이 양반이 미쳤나 싶었지만 언제 그랬냐는듯 순식간에 웃음소리가 잦아들었다. 그리고, 말을 이었다.

 

 “르미데안느 드 블랑, 내가 왜 이런 무모한 연구를 한다고 생각하나?”

 

 자신의 본명을 불린 블랑은 내심 불쾌했다.

 

 그녀는 대뜸 ‘내 본명을 부를 수 있는 것은 우리 조직의 보스뿐이야' 라고 화를 낼 뻔했지만, 지금은 최문호가 자신의 보스였으므로 그 말을 꾹 삼키고 아무렇지 않은 듯 대답했다.

 

 “글쎄요. ‘부와 명예를 위해서’라고 하기에는 지금 생활하시는 모습으로 보아 그건 아닌 것 같고, 뭔가 과거의 미련이라도 있으신 거겠죠. 잠깐 이 이야기는 밀어두고, 저번에 말씀드린 공정회사 결제 서류 건이 말인데요.”

 

 블랑은 품에 끼고 있던 파일을 펼쳐서 결제 서류 사본에 펜으로 줄을 그으며 말을 이었다.

 

 “예산이 조금 이상하게 나온 것 같네요. 여기 이 부분, 전에 회장님께서 말씀해주신 예산범위를 두자릿수나 벗어나 있습니다. 그런데 이게 너무 눈에 띄어서 계산적 오류나 오타라고 보기에도 굉장히 터무니없는 실수인 데다 세개의 부서를 거쳐 검토 받아온 이 서류가 여기까지 올 때까지 아무도 손 대지 않았다는 것이 믿기지 않네요. 그것도 이 서류를 검토하신 분들은 단지 몇몇의 우수 사원이 아닌 사내에서도 유명한 간부들인데 말이죠. 어째서 이 부자연스러운 수치를 보고도 아무도 제게 보고하지 않은 것일까요?”

 

 블랑이 따지듯 묻자 최문호 회장은 씨익 웃어보이며 답했다.

 

 “내가 직접 전달한 사항이니 걱정 말게나. 어째서인지는 연구 때문이라고 해두면 자네도 알테니 그 건은 넘어가고, 내 질문에나 답해주게.”

 

 대기업 회장이나 되는 인간이 권위 따위 개나 준듯 값싼 저지를 입고 소파에 누운채 말하는 능글맞은 태도는 천하기 그지없었다. 결국 참다못한 블랑이 한마디 쏘아붙였다.

 

 “태도 면에 있어서 조금 더 자중해 주시죠, 회장님. 아무리 지금 이곳에는 저희 둘 밖에 없다 하더라도 지금 화장님의 태도를 제가 사내에 퍼트릴 경우 큰 문제가 될 수도 있습니다.”

 

 “뭐 어때, 자네는 그런 걸 함부로 떠벌리고 다닐만한 여자가 아닌란 것쯤은 잘 알아. 그리고, 자네의 말이 큰 파장을 불러올 만큼 무겁다는 것도 알지만, 소문이 퍼지게 되면 당연히 사회에 비춰지는 우리 기업의 이미지는 명성과 함께 타격을 입을 것이니 그에 상응하는 주권 하락도 빚을 수 있겠지. 허나 그것을 알고 있는 자네는 회사를 끔찍이도 사랑하니 오히려 나에 대해 말하지 않겠지. 단순히 날 겁주려고 말한 것이라면 조심해라. 내가 정말로 겁을 집어먹고 자네를 해고할 지도 모르니까 말이야.”

 

 자랑스럽게 떠든 최문호 회장은 기분 좋은듯 또 한번 껄껄 웃어댔다. 블랑은 4년 동안 보지 못한 최문호의 웃음과 높은 텐션을 하루안에 다 본다니 실감이 되질 않았다. 심지어 마지막 말은 그 나름대로의 농담이었다. 오늘의 최문호 회장은 어디로 보나 조금 이상했다.

 

 이제는 소름마저 돋기 시작한 블랑은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웃음과 함께 받아쳤다.

 

 “너무 놀리지 마세요, 회장님. 여기서 해고되면 전 갈 곳이 없다고요?”

 

 “자네만큼 유능한 여자를 어느 회사가 마다하겠나? 내가 만일 지금 당장 죽고 회사가 망하더라도 자네만큼은 해외의 대기업에 꽂아주고 죽을거라네.”

 

 블랑은 은근슬쩍 조소를 얼굴에 띄운 채 답했다.

 

 “절 너무 신용하지는 마세요.”

 

 언제 당신 목을 날릴지 모르니까. 당연히 뒷말은 뱉지 않았다.

 

 최문호 회장은 이미 블랑의 표정따위 안중에도 없었다.

 

 “자, 빨리 대답이나 해주게. 내가 왜 이 무모한 실험을 추진하려는 것 같지?”

 

 ‘얼씨구 아까는 연구라더니.’

 

 블랑은 아무래도 이상하다 싶어 주변의 휴지통을 힐끔 보았다. 역시나 꾸깃하게 버려진 종이와 허연 가루들이 주변에 널부러져 있었다.

 

 ‘이젠 아주 막나가시네? 확 이대로 언론사에 던져 버릴까? 충격, 제타그룹 회장 마약 거래 의심… 같은 제목으로 말이야. 그나저나 되게 독한 걸 가져다뒀는데 약한 사람치고는 제법 멀쩡하시네?’

 

 블랑은 빠르게 생각을 집어넣고 순순히 장단에 맞춰주었다.

 

 “저로써는 회장님의 깊은 생각을 헤아리기 어렵네요. 어째서 이 무모한 계획을 추진하신거죠?”

 

 블랑은 실험과 연구 중 무엇이라 골라 말할 지 망설이다 재빨리 계획으로 말을 바꾸었다.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이야.”

 

 최문호 회장은 잔뜩 상기된 목소리를 갑자기 낮추어 진지하게 말했다. 허나 블랑은 이미 그가 무슨 이야기를 하든 모든게 약쟁이의 헛소리처럼 들리기 시작했다.

 

 ‘이 늙은이 그 센걸 사용하고도 덜 취한거야? 대단하네.’

 

 “얼마 남지 않았어…”

 

 최문호 회장은 같은 소리를 반복했다. 그것도 아까 보다 더욱 정확한 발음으로 서울의 야경을 똑바로 내려다보며.

 

 블랑은 여전히 그의 말뜻을 이해하지 못했다. 다만 그의 상태가 단순히 약을 한 상태가 아님을 깨달았다. 그 사실을 깨달은 그녀는 자신이 프로임을 완전히 잊고, 결국 경악을 감출 수 없었다.

 

 최문호 회장은 약에 완전히 취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신력으로 약을 이겨내고 있었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이미 약의 기운에 푹 빠져 솜사탕이 흐르는 계곡을 헤엄치고 있을 정도로 강한 약이거늘 그는 억지로 정신을 가다듬으며 제정신을 놓지 않고 꽉 붙들고 있었던 것이다.

 

 블랑은 늙은이 주제에 건방지다고 생각 했지만, 그 이후 들려온 약의 기운에서 완전히 벗어난 그의 목소리에 두손두발 다 들었다.

 

 “그래서 서지환 군은 제대로 불렀나?”

 

 블랑은 이 상황에서 떨리는 목소리를 숨길 자신이 없어 그저 고개만 까딱거렸다.

 

 이번에도 역시 유리창을 통해 블랑의 움직임을 확인한 최문호 회장은 덩달아 고개만 끄덕였다. 그렇게 잠시 동안의 정적이 흘렀다. 3분도 채 안되는 그 짧은 시간 동안 놀란 마음을 프로답게 정리한 블랑은 떨리지 않는 목소리로 한 음도 흐트러짐 없이 물었다.

 

 “그런데 그 소년은 왜 부르신 거죠? 임상시험이라도 하시려는 건가요?”

 

 “뭐, 그런 셈이지.”

 

 블랑은 최문호 회장이 영등포구에 거주하는 한 소년을 회사로 초청하라며 대뜸 편지 봉투를 내밀었을 땐 이게 무슨소리인가 싶어 그 소년의 과거를 알아보았다.

 

 의외로 소년의 신분을 알아내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과거에 제타의 연구팀 하나가 화학실험 사고로 괴멸했을 때 그 팀의 팀장이었던 자가 소년의 아버지였다. 이 내용은 5년도 더 된 기사에서 알아낼 수 있었다. 하지만, 그를 불러오라한 이유라기에는 그것만으론 부족해 자료를 더 찾아보던 중 약 서너달 전 자살한 제타의 부속품 주문 공정을 맡은 산하기업의 제법 짬 있는 고객 상담원에 대한 기사가 눈에 띄어 읽어보니 그녀는 화학 실험 중 사고로 사망한 연구팀 팀장의 아내였단다. 즉, 서지환이라는 소년의 부모는 모두 이 회사에 뼈를 묻은 것이다.

 

 그런데 지금 최문호 회장의 말마따나 이 기업에 좋은 인상따위 가지고 있을리 없는 소년의 마음을 이용해 자신의 연구에 끌어들여 그를 위험도 높은 임상시험 대상으로 쓰겠다고 한 것이다. 그말인 즉슨, 일가족 하나를 자신의 회사에 매장시켜버리겠다는 의미나 다름없었다.

 

 블랑은 그의 숨겨진 잔인함을 볼 때면 늘 치가 떨렸다. 그녀가 조폭단 소굴에 갔을 때 웃으면서 다른 이의 피를 뒤집어쓰던 동료의 모습은 이 늙은이의 잔혹함에 비하면 새발의 피도 아니였다.

 

 블랑은 바들바들 떨리는 손을 부여잡고 아무렇지도 않게 사람을 죽이겠다고 선언한 것이나 다름없는 늙은이 앞에서 스스로 프로의식을 내세워 자신을 다스렸다. 이내 손의 떨림이 멈추고 제법 침착하게 대응했다.

 

 “그래도 이 프로젝트와 연관이 없는 일반인을 가장 위험한 첫번째 임상시험체로 사용하면 비공식적으로 일을 진행한다 쳐도 추후에 꼬리가 밟혔을 때 후폭풍이 거대할 것이고, 공식적으로 하자니 사회적 반향도 클 텐데요.”

 

 ‘좋아 잘 말했어. 기특하다 내 혓바닥아. 생긴거랑 다르게 기지배처럼 베베 꼬이질 않아서 다행이야.’

 

 블랑은 비서로써 할 말을 다한 자신의 용기와 침착함에 자찬하며 최문호 회장의 답만을 기다렸다. 이미 그녀의 역할은 끝났기에 나흘 뒤 그 소년을 이 방까지 배달 해주기만 하면 된다. 얼굴에 안심의 미소를 희미하게 띄고 있던 블랑의 면전에 회장은 의아해하며 말했다.

 

 “자네, 큰 착각을 하고 있군.”

 

 “에?”

 

 블랑은 생각지도 못한 대답에 얼빠진 목소리로 대답했다. 평소 완벽하기만 하던 비서가 제법 귀여운 목소리를 냄으로써 이미지가 엉뚱하게 망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최문호 회장은 일절 신경쓰지 않는 투로 말을 이었다.

 

 “누가 그 소년을 첫번째 임상시험체로 낭비한다 그랬지?”

 

 블랑은 그의 목소리가 특별히 추궁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힌트를 얻었다. 그녀는 설마 했던 일이 실제로 벌어졌음을 직감하고 프로의식따윈 내다버린 채 입을 떡 벌렸다.

 

 ‘이 인간 자기가 직접 임상시험체가 되려 하고 있어!’

 

 “그말씀은...”

 

 “그렇게나 놀랄 일이었나? 르미데안느? 아니지 자네 세계에선 이렇게 부르던가?” 최문호 회장은 이 상황을 즐기는 듯 짧은 정적을 만들어 내었고 긴장감을 고조시켰다. 블랑은 피가 마를 지경이었다.

 

 “헤드 커터"

 

 블랑은 자신의 ‘진짜’ 조직에서 사용하는 별명을 그의 입을 통해 듣게 될 줄은 몰랐다. 허나 블랑은 지금 하루만에 수많은 충격을 동시에 받아서 그런지 큰 놀라움을 느끼지 못했다. 정신적으로 피로해진 지금, 그녀의 뇌는 오늘 이 상황을 제대로 정리할 여력이 없다는 뜻이었다. 최문호 회장은 사악한 웃음을 엷게 내고는 말했다.

 

 “생각한 것보다 반응이 싱겁구만, 오늘 이 소리를 하기 위해 몇년을 벼르고 별렀는데 그 설레임에 잠못자던 나날들을 보상받지 못한 기분이군.”

 

 ‘미친 영감탱이!’

 

 그는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시고는 말을 이었다.

 

 “들킨 김에 말이네. 연구를 내일 중에 끝내고 서지환군이 회사에 찾아오는 그날 까지만 근무해 주게나. 퇴직금은 내 두둑히 챙겨주지. 자네의 의뢰인이 낸 선금의 두배만큼 불려서 말이야.”

 

 블랑은 피식 웃어보이려다 포기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그녀는 이미 몇년도 전부터 정체를 들킨 상태였다. 그런데 최문호 회장은 그녀의 정체를 알고도 오직 회사의 이익을 위해 그녀의 업무실적만을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도 까딱하면 자신이 살해당하거나 회사가 기울어질 수도 있는 상황 속에서 꼬박꼬박 그녀에게 막대한 봉급도 쥐여주면서 말이다.

 

 블랑은 최문호 회장의 담력에 감탄하고 역으로 이용당했다는 사실에 격분했다. 하지만, 본업에서의 블랑은 프로로 통했기에 아마추어처럼 정체를 들켰다고 마구 달려들거나 하진 않았다. 오로지 거물만을 상대하는 그녀는 오히려 이럴 때 일수록 침착함과 평정심을 유지했다. 사실은 정신적으로 피곤해 아무 생각도 안 들었을 뿐이었다.

 

 ‘이 늙은이, 보통내기가 아니야. 사 년이라는 시간을 낭비한 건 뼈아프지만, 섣불리 건드리기라도 했다면 큰일 났겠어.’

 

 블랑은 자신의 앞에서 당당하게 말하는 이 영악한 늙은이라면 충분히 뭔가 함정을 준비해두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것도 아주 오래전부터 준비해온 놈으로 말이다.

 

 잠시 벙쪄 있던 그녀는 결국 최문호 회장의 손해 볼 것 없는 협상에 응하며 손을 맞잡았다.

 

 블랑은 최문호 회장과 마지막 의논을 하고 엘리베이터에 또각또각 걸어가 올라탔다. 그때 최문호 회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선물 받은 마약은 잘 썼네. 덕분에 임상 시험은 내게 전혀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었지. 사실 그 임상 시험을 통과하려면 보통 정신력을 요하는 게 아니거든. 마약 정도는 이겨내야지. 마침 잘될까 불안하던 참이었는데 내마음을 어떻게 알았는지 누군가 여기에 두고 갔더군. 냉큼 시험해 봤지. 하마터면 푹 빠질 뻔했지만, 전기 뱀장어가 내 눈앞을 지나갈 때 즈음 정신을 차렸네. 아, 중독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말게나. 난 금방 실증을 내는 늙은이니 말이네.”

 

 여전히 유리창 밖을 내다보고 있는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엘리베이터 문이 닫혔다.

 

 평소 블랑은 완벽한 연기를 위해 혼자 타는 이 엘리베이터에서도 늘 허리를 곧추세우며 자신을 과시했다. 그러나 오늘은 사정이 달랐다. 자신이 처음으로 의뢰에 실패했음을 깨닫고 그 사실이 너무 부끄러웠다. 그리고, 최문호 회장과의 기나긴 신경전에서 패배했다는 사실이 너무도 허무했으며 자신이 여태까지 준비해온 계획과 그를 시험하기 위해 몰래 가져다 놓았던 마약마저 모조리 역이용 당했다는 사실이 분했다.

 

 그녀는 그자리에 쭈그려 앉아 선글라스 밑으로 손을 집어넣어 눈을 가렸다. 한 평생 실패 한 번 없이 살아왔던 자신이 한 번의 실패에 이 정도로 작아진다는 사실에 크게 낙심했다. 엘리베이터가 로비층에 도착했지만, 어짜피 숨겨진 공간에 설치되어 있는 엘리베이터이다.

 

 블랑은 아무도 없을 것으로 알고 쭈그려 앉은 채 마음을 다스리는 데에 집중했다. 허나 문이 열리는 순간 경호원 둘이 쭈그려 앉아 있는 그녀를 발견했다. 두명의 기척에 화들짝 놀란 블랑은 벌떡 일어나 아무 일 없었다는 양 그들을 째려보았다.

 

 “당신들이 왜 여기 있는거죠?”

 

 항상 흐트러짐 없기로 유명했던 그녀가 숨겨진 엘리베이터 안에서 쭈그려 앉아 흐느끼고 있는 것을 발견한 두 경호원은 잠시 벙찐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어… 비서님께서 많이 피곤하셔서 일찍 귀가하실 테니 마중나와 드리라는 상부의 지시가 있었습니다. 이런 공간에 엘리베이터가 있는 줄은 십 년 가까이 근무하면서 처음 알았습니다.”

 

 대답한 것은 뚱뚱한 남자 경호원이었다. 그리고, 그의 옆에 멍청히 서 있는 한 명은 여자였다. 그녀의 몸매는 균형이 잘 짜여 있었고 블랑 만큼이나 남자들의 이목을 끌 수 있는 미모를 가지고 있었다.

 

 아무리보아도 외관상으로는 절대 경호원이 아니였다. 잠시 의아해하던 블랑은 곧 그녀의 복장을 발견하고, 그녀가 안내데스크에서 일하는 직원임을 깨달았다. 블랑은 참지 못하고 이를 빠득빠득 갈았다.

 

 “그 영감탱이가 아주 제대로 물을 먹여주는구나!”

 

 최문호 회장은 블랑이 숨겨진 엘리베이터의 비밀을 알고 있는 여성이 자신뿐이라는 것에 우월감을 느낀다는 것 또한 꿰뚫어 보고 있었던 것이다.

 

 블랑은 자신을 엘리베이터에서 손수 끄집어내주려는 그들을 뿌리치고 성큼성큼 회사밖으로 걸어 나갔다. 그녀는 이미 특유의 규칙적인 걸음걸이 따위 잊어버린지 오래였다. 잔뜩 성이 난 그녀는 불붙은 성냥처럼 분노 외에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다. 그리곤 길 한복판에서 차마 소리칠 수 없어 속으로 최문호 회장을 저주하고 또 저주했다.

 

 ‘오냐, 이 영악한 영감탱이야 내가 언젠가 네 놈 모가지를 분지르러 돌아오마.’

 

 화가 머리 끝까지 난 그녀가 택시를 타고 어딘가로 떠나고 나흘 뒤, 지환이 회사에 찾아올 때까지도 그녀는 나타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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