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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Netwalker
작가 : HudmentJhinRaker
작품등록일 : 2019.9.6

프로급 마피아 조직원 르미데안느 드 블랑. 사이버 해킹 보안국 특수 요원 고준혁. 세계적인 대기업 제타 그룹의 회장 최문호. 가족을 잃고 사이버 킬러가 된 소년 서지환. 깊은 곳에서 부터 꼬이기 시작한 그들간의 과거가 기어코 실체를 드러낸다.

 
NetWalker - 1
작성일 : 19-10-14 21:17     조회 : 234     추천 : 0     분량 : 10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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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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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환은 어두컴컴한 방 한 켠에서 혼자 빛을 발하고 있는 모니터 앞에 앉아 화면에 떠있는 ‘승리’문구를 보며 한숨을 깊게 내쉬었다. 의자 등받이에 몸을 묻은 그는 이번 게임에서 아군에게 들었던 모든 모욕과 비꼼, 비난을 다시 한 번 머릿속에 떠올리고 수없이 되새김질해보아도 역시 짜증나리만큼 화가 나지 않았다. 설령 화가 나더라도 어머니가 겪었을 정신적 고문 수준의 고통에 비하면 발치에도 못 미치는 작은 불만에 불과할 터였다

 

 

 

 지환의 아버지는 국내 최고 반도체 기업 ‘제타(ZETA)‘에서 근무하는 연구 팀원이었다. 어머니는 제타의 부속품 공정을 맡은 산하기업에서 고객 상담일을 하였다. 그덕에 지환은 부유한 집에서 태어나 화목한 환경에서 자라 앞으로 무난하거나 행복한 미래를 맞이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지환의 아버지는 몇 년간 연구해왔던 반도체를 완성하기 위해 화학 실험의 최종단계를 거치는 도중 일어난 화학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그 모종의 사고가 어떠한 것인지는 어느 누구도 알지 못하였고, 그 실험에 참여했던 연구진은 단 한명도 살아남지 못하였으며 그들의 시신에서는 고농도의 방사능이 검출되어 즉시 격리되었다는 것뿐만이 사회가 그 사고에 대해 알고 있는 전부였다.

 

 그 사고를 기점으로 지환과 그의 어머니는 인생의 하락세를 맞이했다. 어머니는 매일매일 업무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지환은 늘 아버지의 그늘 밑에서 적당한 일만 해오던 어머니가 이제 집안의 주축이 되어 무리를 해서라도 부업을 늘려 그런 것으로만 알았지만, 실상은 달랐다.

 

 그의 어머니는 여전히 고객 상담일만을 하고 있었다. 언제나 비슷한 내용의 상담 전화가 쇄도하고, 각양각색의 불만과 오해를 상대하는 것은 고집불통에 잔소리꾼 남편을 둔 그녀에게 있어서 그다지 힘든 일은 아니였다. 그러나 갑작스러운 사고로 남편의 얼굴도 마지막으로 못 본 채 떠나보낸 이 안 좋은 시기에 설상가상으로 장난 전화나 폭언 등의 빈도가 이전보다 더 늘어나면서 그녀의 마음은 스트레스에 그대로 노출되었다.

 

 지환은 하루가 갈 때마다 야위어 가는 어머니를 보면서 위로해주고 싶었으나 그 나름대로 해줄 수 있는 것이라고는 지금 열심히 공부하여 추후에 효도하는 것뿐이었다.

 

 그리하여 지환은 중학교에 입학하면서 거의 모든 인맥을 끊고 공부에 열중했다. 조금씩은 친구와도 놀면서 겸사겸사 공부에 예열을 가하는 시기이거늘 지환에게 중학교에서의 3년은 종이와 흑연만이 그득한 암울한 시간이었다. 지환은 해본 적 없는 공부를 하면서 제법 피로함을 느꼈지만 아직 웃음을 잃지 않은 어머니를 보면서 늘 힘을 얻었다. 그는 매번 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어 오는 아들을 보고도 힘이 나지 않는 어머니는 세상에 없다고 확신하였다.

 

 하지만, 결국 어머니는 올해 여름, 지환의 고등학교 1학년 기말고사 성적표를 받는 날에 돌아가셨다.

 

 사망사유는 약물 과다 복용이었다. 애시당초 불면증이 있었던 그녀였기에 수면제를 제법 예전부터 복용해 왔지만 남편이 죽은 후로는 종류를 바꿔 더 독한 것으로 바꾸었던 모양이었다. 허나 그녀가 침상에서 몸을 묻고 편히 잠든 그날, 작정하고 수면제를 입에 털어 넣은 것도 아니였다. 그저 여느때처럼 잠이 오질 않아서 수면제를 먹고 잠들었을 뿐이거늘 갑작스러운 부작용으로 숨을 거둔 것이었다.

 

 사실 중학교 3학년 2학기 중간고사부터는 아무리 지환의 시험 성적이 하늘을 찌를 듯이 높아져도 어머니는 무덤덤했다. 그때부터 지환은 깨달아 버린 것이다. 어머니께서는 이제 오래가지 못할 거라는 것을, 이제는 자신이 어머니께 해드릴 수 있는 것이 없어졌으며 어머니께서는 이제 혼자라는 것을. 그 사실을 알아버린 날에 지환은 방에 들어가 밤새 눈물을 흘렸다. 어머니가 돌아가시는 날 흘릴 눈물을 미리 흘리면서 마음의 준비를 다진 것이다. 그와 동시에 어머니가 없어지더라도 절대 좌절하거나 슬퍼하지 않기로 다짐한 지환이었지만, 막상 때가되니 무너져내려버리는 마음을 다잡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 이후로는 위탁 부모에게 맡겨지면서 공부를 놓을 생각은 없었지만 어째 집중은커녕 연필을 손에 쥐기도 싫었고, 그에따라 성적은 성적대로 떨어졌다. 다행이도 지환을 보살펴주던 위탁부모는 매우 심성이 착하고 금실도 좋았으며 경제적으로도 부족함 없는 이들이었기에 어머니를 잃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마음이 심란한 것일 뿐이라며 조바심을 내지 않고 지환을 격려를 해주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지환의 마음은 나아지지 않았고, 상실감은 아무리 기다려도 사라질 기미가 보이질 않았다. 점점 그들은 걱정이 되었지만, 지환은 자신의 성적이 계속해서 떨어지는 이유를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그에게 있어서 성적은 어머니의 행복이자 어머니를 위한 격려였으나 이제는 어머니가 계시질 않으니 궁극적인 목표를 잃어버린 마음은 자신의 의지가 결여된 ‘시간’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결국 지환은 더 이상 공부와 학교를 그만두고 그들에게 솔직하게 말했다. 긴 시간동안 자신을 믿어준 것은 정말 고맙지만, 자신은 더 이상 살아갈 이유를 찾지 못하겠으며 그런 세상과 자신이 너무 밉다. 앞으로 남은 인생은 짧은 시간이나마 무료하게, 그리고 자유롭게 보내고 어머니의 곁으로 가고 싶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너무 그립다. 믿음에 부흥하지 못하고 결국 파멸을 택한 자신을 용서해달라.

 

 평소 감정을 드러내지 않으며 생활해 왔던 지환이 그들에게 처음으로 내비친 격한 감정이었다. 인생을 포기하겠다는 것과 다름없는 내용이었기에 부모라면 당연히 받아들이지 못할 이야기였고, 그게 설령 양부모여도, 혹은 생판 남이라도 고개를 끄덕여 주기 힘든 이야기였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들을 배신한 것이나 다름없는 지환을 용서해주고는 흔쾌히 지환만을 위한 공간과 식사, 그리고 부탁을 들어주는 등 여태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모든 것을 부족함 없이 늘 따뜻한 미소와 함께 제공해 주었다.

 

 

 

 그때를 떠올리던 지환의 눈시울은 어느새 붉게 물들어 있었다. 어머니를 죽음으로 내몰았던 세상과 그것을 방관한 회사와 동료들, 어머니께 막말과 욕설을 퍼부었을 쓰레기같은 인간들과 그 시절에 공부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자기 자신이 다시 한 번 너무도 미웠다. 그래도 지금의 위탁 부모만은 미워할래야 미워할 수도 없었다. 지환은 그들을 실망시키고 뻔뻔스럽게 터무니없는 부탁을 했다.

 

 그런데도 그런 자신을 용서하여주고 이기적인 부탁까지 들어주는 그들을 어떻게 미워할 수 있겠는가. 지환은 자신이 그들을 소중하게 여기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요근래에 다시 공부에 손을 대보았지만, 역시나 어머니를 대신할 수는 없었다.

 

 지환은 촉촉하게 물든 자신의 눈가를 소매로 슥슥 닦아내고는 자세를 고쳐 잡고 모니터를 제대로 바라보았다. 화면을 넘겨 ‘승리’ 문구를 내렸다. 짧은 로딩을 거치고 완전히 로비가 동기화 되자 낯익은 닉네임을 가진 플레이어에게서 느닷없이 친구요청 메시지가 왔다. ‘전국 노래 좌랑’ 이번 판의 초반에 지환을 모욕한 녀석이 후반부에 달라지는 그의 실력을 보고는 자존심도 없이 친구요청을 한 것이었다. 거의 한 게임에 한 명 이상씩은 이렇게 지환에게 친구요청을 보내는 탓에 그는 이제 일일이 거부하는 것도 귀찮아 아예 보류해둔 채 방치했다.

 

 지환은 보통 게임을 할 때 초반부에는 일부러 전력을 내지 않았다. 그리고는 후반부에 가서 본 실력을 내는데, 지환의 유일한 친구, 수현의 말에 의하면 전력을 다하는 지환의 모습은 프로게이머 못지않는단다. 지환은 자신 나름대로의 전략이라며 수현에게 으스댔었지만, 본심은 아군에게 욕을 듣기 위해 초반부에 실력없어 보이는 연기를 하는 것뿐이었다. 처음에는 그 자신조차도 게임 초반에 나타나는 실력부진의 이유를 잘 몰랐지만, 이렇게 그 이유를 깨닫고도 계속해서 고의적 실수를 거듭하는 자신을 한심하다고 생각했다.

 

 남에게 피해를 주고 고의로 욕을 먹는 것은 아무 잘못도 없는 어머니가 느꼈을 억울함과 분노와는 비교도 안 될만큼 그 의미와 크기가 너무도 다르다는 것을 알고도 자신은 어머니가 느꼈던 감정을 조금이나마 느끼고자 무의식 중에 노력하고 있었다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약삭빠른 이유를 빌미로 어머니의 뒤를 따라갈 셈이었기 때문이었다.

 

 지환은 다시 우울함에 빠져들기 전에 이 감정을 자신에게 선사해준 자존심도 없으신 '전국 노래 좌랑'님의 친구요청은 특별히 거부해주었다. 그리곤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니 같은 놈들 때문에 우리 어머니가 돌아가신거다. 알았으면 당장 게임 삭제하고 창문 열고 뛰어내려.”

 

 당연히 이 말은 전해질 리 없었다.

 

 지환은 다음 게임에 임하기 위해 매칭을 돌리려했으나 밖에서 누군가 부르는 소리가 들려 문으로 성큼성큼 걸어가 문고리를 잡았다. 신경질적으로 문을 열어젖힌 탓에 너머에 서 있는 엄마와 부딪힐 뻔했다. 하지만, 그녀는 놀란 기색만 보이고 다시 밝은 미소를 보이며 커다란 쿠키가 담긴 그릇을 지환에게 내밀었다.

 

 “간식 먹어”

 

 “이렇게까지 안 해주셔도 괜찮다니까요.”

 

 지환이 그들에게 부탁한 것은 사생활에 일절 관여하지 않고 죽고 싶을 때 죽게 해달라는 것, 그리고 자신만의 공간과 최소한의 식사만을 제공해줄 것을 부탁했다. 얹혀사는 주제에 염치없는 부탁을 하는 것 같아 처음에는 식사와 개인 공간만을 부탁했지만, 오히려 그들이 지환에게 두가지 부탁을 더 들어주겠다고 제안하고 나섰다. 그 대신에 말을 걸 땐 ‘엄마’ ‘아빠’라고 자신들을 불러달라는 조건을 걸었다. 결국 하는 수 없이 지환은 조건을 받아들였다. 허나 거창했던 부탁의 내용이 무색할 정도로 이전까지의 생활과의 다른 점은 ‘아줌마', ‘아저씨’에서 ‘엄마’, ‘아빠’로 호칭이 바뀐 것과 학교에 가지 않게 된 것뿐이었다.

 

 그런데도 매일 간식을 챙겨주는 것처럼 조건에 포함되어 있지 않은 행동들은 지환의 입장에서는 그저 부담스러웠다.

 

 “괜찮아, 엄마의 단순한 호의니까 부담없이 먹어.”

 

 엄마가 지환의 턱에 그릇을 가져다 대며 말했다.

 

 지환이 마지못해 그릇을 넘겨받자 엄마는 맑은 음으로 콧노래를 흥얼거리면서 주방으로 사라졌다. 지환은 방문을 닫고 자리로 돌아와 쿠키가 담긴 그릇을 컴퓨터 옆에 두고 메신저를 확인했다. 수현이 온라인으로 표시되어 있는 것을 확인하고는 전화를 걸려는 순간 수현 쪽에서 먼저 통화 연결 신호가 왔다.

 

 “기다리고 있었냐?”

 

 통화를 받자마자 수현이 얄궂은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치, 내가 너 말고 기다릴 사람이 누가 있냐.”

 

 “그 왜, 너 랜선친구 많잖아.”

 

 “오늘 평일이야, 인마. 아저씨들 다 일하러 나가셨지.”

 

 지환의 말을 들은 수현이 ‘아‘하고 짧게 탄식했다.

 

 “야, 그나저나 지금 나올 수 있냐?”

 

 “왜.”

 

 “아니, 뭐, 얼굴 안 본지도 꽤 됐고, 나 용돈도 탔겠다 밥이라도 한 번 같이 먹자고.”

 

 “흥, 그래 알았어. 어디로 나갈까.”

 

 “어... 내가 지금 일어났으니까... 옷 입고 씻고 하면 시간 좀 걸릴거야. 슬슬 지금 나와서 우리집 쪽으로 와.”

 

 지환은 알겠다고 대꾸하며 전화를 끊었다.

 

 수현과 지환은 걸어서 이십 분 거리내에 살고 있기 때문에 서로 만날 수 있으면서 한동안 게임만 같이 했을 뿐이지 직접 얼굴을 보는 것은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세 달 만인 지금이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첫 한 달 동안은 학교를 쉬어버린 탓에 다시 학교에 나올 무렵엔 이미 학교 전체에 소문이 퍼져 있었다. 덕분에 아무도 지환에게 말을 함부로 하거나 놀리거나 몰상식한 행동을 하지는 않았다. 다만 지환은 혼자 예민해진 나머지 오히려 자신의 쪽에서 물어버릴 기세로 그들을 거부했다. 공부는 손에 잡히질 않고, 잠깐이나마 스트레스 해소에 도움을 주던 친구들도 떠나가면서 가족도 없이 결국 혼자가 되어버린 지환에게 남은 것은 게임과 수현, 엄마, 아빠뿐이었다.

 

 게임을 다시 킨 것은 중학교 생활이 끝나갈 무렵 점점 어머니의 미소가 엷어지기 시작했을 때, 마음이 영 찝찝해서였다. 그때 처음으로 말을 걸어준 것은 초등학교 시절에 알고지낸 수현이었다.

 

 수현은 딱히 지환과 친한 사이가 아니였다. 오히려 예전에 친구추가만 해놓고 서로가 게임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그 날 알았을 정도로 말조차 몇 번 안 섞어 본 둘이었다.

 

 지환이 가진 초등학교 시절의 기억 속 수현은 항상 반 내에서 요주의 인물이었다. 특하면 반 친구를 괴롭히고, 선생님께 대들고, 침을 뱉고 다니면서 아무렇지 않게 욕을 하는, 그닥 친해지고 싶지 않은 이미지였다. 하지만, 유독 지환만 보면 겁이라도 집어먹은 것처럼 굽히고 들어오는 경향이 있었다. 함께 게임을 하면서 느낀 바로는 중학교에 입학하고 나서는 사정이 많이 바뀐 모양이었다. 조금만 화가나도 서슴없이 욕을 뱉던 수현이었거늘 게임하는 내내 화를 내는 법이 없었다. 수현의 말로는 게임 할 때에는 처벌이 두려워 조심하는 것뿐이라지만, 통화하면서 실수가 나왔을 때 조금 아쉬워할 뿐 예전처럼 불같이 화를 내거나 하지는 않았다.

 

 ‘사람의 미래는 어떻게되는 건지 통 알 수가 없어’

 

 수현을 보면서 한 생각이기도 하였고 지환 자신을 보면서도 한 생각이었다.

 

 잠시 다른 생각을 하는 중 다시 수현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출발했냐? 나 벌써 옷 다입고 신발 신으려는데.”

 

 지환은 다급하게 대답했다.

 

 “어, 나도 거의 다 입어가. 슬슬 나갈게"

 

 짧은 통화를 마친 지환은 방 한켠에 꾸깃하게 벗어놓은 회색 후드티를 집어 몸에 씌우듯 입었다. 원래부터 입고 있던 츄리닝 바지는 살짝 올려 입었다. 한껏 길게 자라난 구불구불한 머리칼은 대충 가다듬고 ‘N’이라는 문자가 큼지막하게 박음질된 야구모자를 눌러썼다. 그리곤 거실에 있는 거울에 다가가 얼굴을 살폈다.

 

 한동안 빛을 보지 못해 창백해진 피부와 퀭한 눈, 그 밑에는 다크서클이 두줄은 더 늘어나 있었다. 마치 큰병에 걸려 투병중인 사람처럼 전체적으로 비실비실한 인상이었다. 그래도 얼굴만큼은 언제 봐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공부만 잘됐어도 죽을 생각 없이 연예인이나 하면서 잘 살았을텐데…”

 

 “아하하하하하!”

 

 지환이 자신의 턱을 쓰다듬으며 혼자 중얼거리는 것을 들은 엄마는 빨래를 널다 말고 얄망궂게 웃음을 터뜨렸다. 은근히 빈정이 상한 지환은 빠르게 운동화를 구겨신고는 현관을 나섰다.

 

 

 

 “미안. 좀 늦었다.”

 

 수현과 자주 만나던 카페에 도착한 지환이 그의 앞에 앉아 숨을 고르며 말했다. 수현은 살짝 웃어보였다.

 

 “이야 이게 얼마만이야.”

 

 “되게 오랜만에 보는 것 같네. 아니, 오랜만 맞구나. 세 달 만에 보는 거니까,”

 

 문득 그 세 달의 앞에 어머니의 죽음이 끼어 있다는 것이 떠올라 약간 동요했지만 수현은 눈치채지 못한 듯했다.

 

 “음… 난 녹차라떼나 마셔야지. 너는 뭐 마실래?”

 

 “나는… 아메리카노.”

 

 “카라멜마끼아또 안 마시고? 안 본 사이에 입맛도 변한거냐?”

 

 “그래봤자 게임한다고 매일 통화하면서.”

 

 “그건 그렇지만 게임이랑 직접 보는 건 또 다르잖아? 목소리만으로 그 사람 입맛이 변했는지 어떤지는 알 수 없잖아. 아, 일단 주문하고 올게.”

 

 주문 줄이 밀려 있는 것을 본 수현이 재빨리 걸어가 그 뒤에 붙었다. 수현은 줄에 서서도 뭔가 할 말이 남은듯 계속 지환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지환을 보는 그 표정은 방금처럼 은근히 능글맞은 느낌도, 웃음기도 없었다. 이전까지는 생기 있고 에너지 넘치는 그런 기운이 있었다면 지금의 표정은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 그저 밋밋한 무표정이었다.

 

 지환은 어렴풋이 저 얼굴을 한 번 보았던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지환은 자신의 기억을 더듬어 어디서 본 것인지 떠올렸다.

 

 그때도 여느때와 같이 친구를 괴롭히던 수현이 지환과 눈이 마주치고는 피하던 날이었다. 수현의 발에 밟힌 채 버둥거리던 반의 남자애 하나가 자기는 이렇게 괴롭혀 대면서 지환은 왜 건드리지도 않냐고 불만을 토했다.

 

 ‘좋아하니까’

 수현의 대답이었다.

 

 이 대답을 들은 지환은 무심코 ‘너 게이였냐?’라고 하며 대놓고 식겁했다. 하지만, 수현은 그 말에 화를 내기는커녕 수줍게 쭈뼛쭈뼛거리다가 ‘나 게이아니거든!’ 하고 버럭 소리를 치고는 교실을 뛰쳐나가 그대로 귀가해버렸다.

 

 그때 지환은 평소 친구들을 괴롭히던 수현의 모습과 자신의 앞에서 소녀처럼 굴은 수현의 모습이 교차하며 역겨움과 소름이 돋았던 것이 떠올랐다. 그리고 발에 밟혀 있던 반 친구가 한동안 얼빠진 표정으로 쓰러져 있다가 곧 울음을 터뜨린 것 또한 기억났다.

 

 그 이후로 수현은 지환에게 말 한 마디 하지 않았고, 주변에 다가오거나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 그리고 내년이 되어 다음학년으로 넘어가면서 수현과 마주치는 일이 없었다.

 

 아마 게이냐는 말을 듣자마자 받았던 약간의 상처 탓에 무심코 그런 표정을 보였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한데 그 수현과는 어울리지 않는 표정을 정확히 그때 처음 본 것인지 확실치 않았다. 단지 쭈뼛거리다 달려나가는 수현의 모습이 고장난 비디오 테이프처럼 머릿속에서 여러번 반복재생될 뿐이었다.

 

 “주문하고 왔다. 계속 보고 있었는데 무슨 생각하고 있는거냐?”

 

 멍하니 주문 줄을 응시하고 있는 지환의 눈 앞에 수현이 진동벨을 휘저으며 말했다.

 

 “야, 너 그때 기억하냐.”

 

 “그때?”

 

 수현은 전혀 모르겠다는 듯이 순진한 얼굴을 했다.

 

 “그 뭐냐, 초등학교에서 같은 반이었을 때 네가 나 좋아한다 그랬었잖아.”

 

 갑작스레 일그러지는 수현의 얼굴을 보고는 지환은 이 이야기를 끄집어낸 것을 후회했다. 무언가 말해주려는 것만 같았던 수현이 다시 입을 꾹 다물었다.

 

 지환은 묘한 공기가 감돌고 있음을 느끼고 주변을 돌아보자 황급히 우리쪽으로 부터 고개를 돌리는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내가 그렇게 크게 말했나?’

 

 “어… 내가 괜한 이야기를 꺼낸 것 같네, 미안.”

 

 이어지는 지환의 사과에 수현은 손사래를 쳤다.

 

 “아아 그건 아니야. 그냥 초딩 때는 내가 하도 성격이 괴팍했으니까 뭐랄까 좀 달갑지 않았달까. 전적으로 네 탓은 아니야.”

 

 “그, 그래…”

 

 초등학교 시절에 친구를 괴롭히는 수현의 인상이 강해서 그런지 이전에 몇 번 만났음에도 불구하고, 지환은 수현이 굽히고 들어오는 것을 볼 때마다 어째 환멸감마저 느껴졌다.

 

 “그건 그렇고 내가 왜 너한테 좋아한다고 말했는지 물었었지? 그걸 뭐라 표현해야 할까.”

 

 지환은 곰곰히 고민하는 수현을 보면서 자리에서 일어나고 싶은 충동이 커져가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 지환은 제발 수현의 대답이 ‘좋아하는 게 아니라’로 시작해서 매끄러운 마무리가 되길 빌었고, 주변 자리에 앉은 사람들은 숨을 죽이고 침을 꼴깍 삼켰다.

 

 솔직히 말해 과거라면 몰랐을까 지금의 수현에 대한 지환의 평가는 나쁘지 않았고, 오히려 좋은 쪽에 가까웠다. 그렇다고 해서 수현의 ‘좋아해’가 ‘우정으로써의 좋아해’가 아닌 ‘성적으로써의 좋아해’라면 아마 지환은 수현과의 연을 끊을 것이다. 동성애를 혐오한다거나 개인적으로 앙심이 있는 것은 아니다. 단지 지환은 동성애자가 아니기에 동성에게 성적인 사랑을 받는 것이 거북할 뿐이다. 만약 이대로 대답을 어물쩡 넘기거나 대답을 꺼려한다면, 수현을 대하는 지환의 입장은 제법 난처할 것이었다.

 

 지환은 연애를 한 번도 해본적이 없지만, 가끔 전 여자친구랑 마주쳤을 때 인상을 찌푸리는 녀석들의 마음을 알 것 같기도 했다.

 

 “일단 본론부터 말하자면 그때 좋아한다고 말했던 것은 단어 선택의 오류였어.”

 

 ‘오케이 쭉 친구로 지내자 이녀석아.’

 

 “그 때의…”

 

 말을 이어가려던 수현의 말꼬리가 늘어지길래 지환은 또 그가 다음 말을 고민하고 있는 줄만 알았지만, 그는 창밖을 넋놓고 바라보고 있었다. 수현의 시선이 닿아 있는 카페 문 앞에는 금발의 포니테일을 한 여성이 말끔한 흰색 정과 통 넓은 흰색 롱팬츠를 차려입고, 아담한 얼굴 위에는 상대적으로 커보이는 선글라스를 쓰고 서있었다. 그녀는 이윽고 카페 문을 열고 들어와 내부를 두리번거렸다. 그녀의 차림은 삼십 대 초반쯤 되어보였지만, 굉장한 미인이었기에 언뜻보면 이십 대 초반으로도 보였다. 카페 내부를 두리번거리며 누군가를 열심히 찾는 그녀의 모습은 카페의 모든 손님들의 이목을 끌었다.

 

 그녀는 자체적으로 사람의 이목을 끄는 매력이 있는 것 같았지만, 지환은 그것을 정확히 알아차리지 못했다. 재빨리 그녀에게서 눈을 뗀 지환은 수현을 보았다. 수현은 여전히 그녀를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다. 수현뿐만 아니라 우리가 있는 자리의 건너편에 앉아 노트북을 통해 알 수 없는 대화를 하던 잘 차려입은 셀러리맨도, 카운터 앞자리에서 수다를 떨던 여중생들도, 카페의 안쪽 제일 끝자리에 앉아 말싸움을 하던 중년 부부도, 심지어는 주문을 받던 카운터의 예쁜 여직원과 그 앞의 주문을 하던 젊은 남성도 모두 하나 같이 그녀를 빤히 바라보고 있는 광경은 제법 이질적이었다.

 

 한데 모아 묶어놓은 뒷머리를 이리저리 휘두르며 누군가를 찾던 그녀의 발걸음이 향한 곳은 지환의 앞이었다. 또각또각 구두굽 소리가 명쾌하게 울려퍼졌다. 그녀는 긴다리를 쭉쭉 뻗어 금방 지환의 앞에 다다랐고, 규칙적이고 힘찬 구두굽 소리가 멈췄다. 그녀의 발걸음은 소리만으로 누구인지 구별할 수 있을 것 같을 정도로 개성 있는 소리였다.

 

 지환의 앞에 우뚝 선 그녀의 키는 180cm는 훨씬 넘어보였다. 그리고, 정장 왼쪽 가슴께의 속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마침내 새빨간 립스틱을 말끔하게 바른 입을 열어 사무적인 투로 말했다.

 

 “서지환 씨, 맞으시죠?”

 

 그녀의 목소리는 들떠보이는 외형와 다르게 매우 차분했다. 지환은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 또한 확인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고, 주머니에 넣은 손을 빼내었다. 그녀의 하얀 손에는 예쁘게 포장된 새하얀 편지봉투가 들려 있었다. 그것을 지환의 테이블 위에 내려놓은 그녀는 다시 한 번 입을 열었다.

 

 “회장님의 초청장입니다. 날짜와 시간에 맞춰 저희 회사로 찾아와 주세요.”

 

 이번에도 지환은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화를 마무리하려 했지만, 그녀는 지환의 대답따위 듣기 싫다는 듯 빠른 걸음으로 카페문을 열고 나갔다. 문에 달린 방울이 큰소리를 내며 울렸다. 모두의 시선은 그녀에게서 떨어져나와 지환에게 달라붙어 있었다. 하지만, 지환은 그들의 시선을 눈치채지 못하고 초청장을 들여다본 채 얼어붙어 있었다.

 

 금테로 정성스럽게 장식된 하얀 편지봉투의 한 구석에 지환의 아버지가 일하셨던 회사의 마크가 그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제타…”

 

 지환은 숨 막히는 목소리로 나지막하게 그 회사의 이름을 불렀다. 그리고, 카페의 신비로운 기류는 지환이 카페를 뛰쳐나가고 문에 달린 방울 소리가 잦아들 때까지 지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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