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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그 놈이 온다!
작가 : 알케이
작품등록일 : 2019.10.3

“ 이 세상에 마음대로 안 되는 게 두 가지가 있지.
내 마음과 네 마음. 내 거든 네 거든 사람 마음은 마음대로 안 되더라. “
- 본문 중에서

 
# 18. 그 여자의 시선 (9)
작성일 : 19-10-14 14:34     조회 : 270     추천 : 0     분량 : 10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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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소설에서 가장 신경 쓴 부분은 이야기 구조입니다.

 앞 부분에 조연처럼 등장했던 나왔던 인물이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중요 인물이 되는가 하면 인물과 인물의 관계가 거미줄처럼 엮어 전체적인 이야기를 풀어가는 구조입니다.

 또한 앞 부분에서 일어났던 일들이 나중에 일어날 일의 복선이 되기도 하는 등 전체적으로 이야기 구조를 짜임새 있게 엮었습니다.

 또한 남자의 시선과 여자의 시선으로 이야기가 나누어서 진행되며 중간에 교차되기도 하는 구성을 통해 마치 두 개의 이야기가 하나로 합쳐지는 극적 구성을 더하였습니다.

 따라서 항상 회차별 제목을 꼭 확인해 주세요!!!!!

 ======================================================================================================

 

 “오빠 나 이거 안 하고 싶은데.”

 진경은 두툼한 시나리오를 테이블에 올려 놓고는 홍구 쪽으로 밀며 하기 싫다는 표현을 전달했다.

 “왜?”

 홍구는 두 손을 짚업 후드 양쪽 주머니에 찔러 넣은 채 평소처럼 무표정한 얼굴로 물었다. 두 사람의 앞에는 각각 커피 잔이 놓여 있었다.

 “그냥 하기 싫어.”

 진경은 커피 잔을 양 손으로 감싸 쥐고는 창 밖을 바라보며 메마르게 대답했다.

 “그러지 말고 얘기해 봐. 네가 아무 이유 없이 작품을 거절하는 애는 아니잖아. 뭔가 이유가 있으니까 그러는 거 아니야?”

 홍구의 질문에 진경은 여전히 대답 없이 창 밖을 바라보다 천천히 커피 잔을 들어 한 모금 마시고는 다시 천천히 커피 잔을 내려 놓았다. 회사 로고가 박힌 주황색 머그잔이었다.

 “날씨 참 좋다. 그치, 오빠?”

 진경은 홍구의 질문에 대한 대답은 하지 않은 채 엉뚱한 얘기를 했고 홍구는 언제나 그랬듯이 아무 말없이 진경이 얘기할 때까지 그대로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 홍구를 바라 본 진경은 자신이 졌다는 듯 한숨을 푹 내쉬고는 말을 이었다.

 “그 영화 투자자 말이야. 마음에 안 들어.”

 “투자자가 왜?”

 “내 고등학교 동창 중에 한 명이 그 회사 대표거든. 완전히 아빠 빽으로 거기 있는 거지. 경영이라곤 눈곱만큼도 모르는 게. 그렇다고 영화를 알기를 하나. 아무튼 마음에 안 들어.”

 “그래?”

 진경의 얘기를 들은 홍구는 한 마디 짧게 대답하고는 아무 말이 없었다.

 “죄송합니다. 늦었습니다.”

 그 때 진희가 헐레벌떡 뛰어 들어오며 두 사람에게 사과했다. 그런 진희를 진경이 반갑게 맞으며 물었다.

 “진희 왔어? 오늘은 어쩐 일로 늦었어?”

 “아, 저 그게…늦잠을…”

 “혹시 어제 술 마셨니?”

 홍구가 특유의 저음으로 물었다.

 “아니요, 술은요. 그냥 요즘에 좀 피곤해서.”

 진희는 조금 과장된 동작과 함께 대답하면서 진경에게 도와달라는 눈 빛을 보냈다.

 “오빠. 이따가 가는 길에 홍삼 파는 매장에 들러 줘. 안 그래도 진희가 요즘 고생하는 것 같아서 신경 쓰였는데 이 참에 진희 홍삼 좀 먹여야겠다. 물론 사는 김에 오빠 것도 살 거야. 이를 테면 날 위해 고생하는 식구들을 위한 선물이랄까.”

 진경은 자리에서 일어서며 홍구에게 얘기하고는 진희를 보며 살짝 윙크를 날렸고 진희는 고맙다는 듯이 살짝 고개를 숙였다.

 “그래, 홍삼이든 인삼이든 얼른 출발하자. 광고 촬영에 늦겠다.”

 

 

 지난 번 오지운과의 만남 이후 진경의 호원 그룹 광고 출연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지운이 얘기한 대로 자신이 다니는 회사의 매출을 위해 인맥을 활용해서 광고를 수주한 것이다. 그리고 진경은 딱 한 번 더 그를 만났다. 바로 광고 PPM (촬영 전 어떤 내용으로 촬영을 하는지에 대한 회의) 때였다. 보통은 매니저인 홍구와 스타일리스트인 진희만 참가하지만 그 날은 괜히 자신도 가겠다고 홍구에게 떼를 썼다.

 “네가 거기 직접 가서 뭐하게?”

 “뭐하긴? 어떤 내용으로 촬영하는지 미리 알아두면 좋지.”

 홍구의 핀잔 아닌 핀잔에 진경은 넉살 좋게 받아넘겼지만 이상하리만치 인상이 좋았던 지운을 한 번 보 보고 싶었다. 그리고 진경이 PPM 현장에 나타나자 지운의 회사에서는 난리가 났다. 전례 없던 일이라 웬만한 직원들이 모두 진경을 보겠다고 회의실 밖에서 서성거리거나 사진을 찍느라 정신이 없었다.

 “내용 좋네요. 그런데 옷을 좀 미리 볼 수 있을까요?”

 진경은 회의 내용을 듣다가 질문을 했다.

 “그럼요. 진경 씨를 위해 미리 다 준비 해놨습니다.”

 지운은 역시나 점잖은 말투로 환하게 웃으며 말하고는 회의실을 나갔다가 촬영할 의상이 가득 걸린 옷걸이를 끌고 나타났다.

 “세상에, 이 많은 옷을 다 입어야 해요?”

 진희가 놀라며 물었다.

 “아니요. TV 광고용은 몇 벌 안 되는데 카다로그나 화보용까지 모아놔서 그래요.”

 “그럼 그날 모두 다 촬영해야 되는 거죠?”

 친절한 지운의 대답에 홍구가 가방에서 계약서를 꺼내 훑어 보며 물었다.

 “계약서 상으로는 그렇습니다. 워낙 바쁘신 분이시니까. 그런데 그날 상황 봐서 여의치 않으시면 한 번 더 촬영을 해도 되긴 하는데 그렇게 되면 저희 촬영비가 올라가서요.”

 “그냥 그날 다 찍을게요.”

 지운의 얘기에 진경이 시원하게 대답했다.

 “그래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고개를 꾸벅 숙이며 인사하는 그의 표정엔 미소가 끊이질 않았다.

 

 

 “표정이 왜 그래?”

 촬영장으로 가는 차 안에서 룸 미러로 진경을 살피던 홍구가 물었다.

 “응? 내가 뭐?”

 “멍하니 평소 같지 않아서 말이야. 표정도 좀 어두워 보이고. 무슨 일 있어?”

 “무슨 일은. 아무 일도 없어.”

 진경은 창 밖을 바라본 채 건조하게 대답했지만 신경 쓰이는 일이 있었다. 지영과 일우가 호텔 커피 숖에 함께 있던 모습을 본 후로 계속 일우가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도대체 두 사람은 어떤 관계일까, 왜 두 사람이 호텔 커피 숖에 나타났을까, 왜 내가 소개팅을 하고 있을 때 두 사람이 나타났을까, 정말 우연일까와 같은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는 진경의 머리 속을 어지럽혔다.

 그렇다고 일우에게 전화를 할 수는 없었다. 이미 더 이상 생각하지 않겠다고 다짐했기 때문이었다. 다시 한 번 지난 번과 같은 일에 휘말리고 싶지 않아서였다. 그런데 전화를 하면, 그래서 목소리를 들으면 괜히 보고 싶어질 것 같았다. 그 애는 내 얘기를 잘 들어주었으니까.

 그래서 광고 PPM 현장에도 굳이 따라 간 것이었다. 오지운이라는 사람을 보면 괜히 기분이 좋아질 것 같아서, 그 순간만큼은 일우가 생각나지 않을 것 같아서였다. 하지만 그 때뿐이었다. 오지운을 만나고 돌아서자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일우와 지영이 호텔 커피 숍에 들어오던 순간이 떠 올랐다.

 “다 왔다.”

 진경이 한참 그 날 일을 생각하고 있을 때 홍구가 촬영장에 도착했음을 알렸다. 촬영장 안에 들어가니 스태프들이 동선과 조명을 확인하느라 촬영 감독의 지시 하에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오셨어요.”

 촬영 감독과 함께 모니터를 확인하던 지운이 촬영장으로 들어 오는 진경 일행을 보고는 뛰어와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지운을 본 진경과 홍구가 함께 인사를 했다. 소매를 접은 긴 팔의 하얀 색 셔츠에 청바지, 검은색 운동화를 신고 왁스로 단정하게 머리를 세팅한 지운의 모습은 깔끔 그 자체였다.

 “대기실은 2층이고요, 저 쪽으로 올라가시면 돼요. 촬영은 한 30분쯤 후에 시작할 것 같은데 시작 5분 전에 다시 한 번 말씀 드릴게요.”

 지운이 가리키는 쪽으로 진희가 먼저 바리바리 싸 온 짐을 들고 이동했고 진경과 홍구도 가볍게 목례를 하고는 진희를 따라 이동했다.

 “언니, 아까 그 사람 되게 멋있어 보여요.”

 “누구?”

 “언니랑 소개팅 했다던 대행사 사람이요. 완전 내 스타일이긴 한데.”

 진희가 진경의 머리를 만지면서 말했다.

 “그래? 한 번 만나볼래? 내가 얘기해 줄게.”

 “언니는. 자꾸 그런 농담하면 머리 엉망으로 만들어 줄 거에요.”

 진경의 농담에 진희가 샐쭉하니 대답했다. 그 때 노크소리가 들리더니 지운이 빼곰히 머리를 내밀며 물었다.

 “혹시 들어가도 되나요?”

 “네, 들어 오세요.”

 자리에 앉아 있던 홍구가 일어서며 대답했고, 그와 동시에 양손에 접시를 든 지운과 흰 머리가 무성한 정장 차림의 남자가 함께 들어 왔다.

 “자, 이건 촬영 전에 허기 지실까 봐 준비한 과일입니다. 바나나를 좋아하신다고 해서 사과랑 같이 좀 준비했으니까 드시고요. 그리고 이 분은 광고주 마케팅 이사님이세요.”

 지운이 테이블 위에 접시를 내려 놓으며 말하자 홍구는 이사라고 소개 받은 사람에게 다가가 명함을 건네며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이렇게 모델로 불러주셔서 감사합니다.”

 “반갑습니다. 오히려 저희 모델이 되어 주셔서 저희가 감사 드리죠.”

 그 때 진경도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를 했다.

 “아닙니다. 정말 감사 드려요. 오늘 잘 촬영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도진경 씨 같은 스타가 이렇게 겸손하신 줄 몰랐습니다. 오늘 잘 부탁 드립니다.”

 마케팅 인사는 홍구에 이어 진경과도 악수를 나누고는 지운과 함께 대기실을 빠져나갔다.

 “언니, 오늘 느낌 좋은 데요?”

 “왜?”

 “뭐 그냥 느낌적인 느낌이랄까. 광고주라는 분도 되게 점잖으시고요.”

 “그래? 진희 느낌은 대부분 맞으니까 오늘 촬영도 잘 될 것 같네.”

 진경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잠시 후 지운으로부터 촬영 5분 전이라는 얘기를 전달 받은 진경은 홍구와 함께 1층 촬영장으로 내려가서는 콘티를 다시 한 번 숙지하고는 촬영을 시작했다.

 타이트 샷, 풀 샷, 다양한 표정, 멘트의 톤을 다양하게 하면서 지속적으로 모니터로 확인하느라 시간이 꽤 오래 걸렸지만 촬영은 순조롭게 진행됐다.

 “CM 촬영은 이걸로 마치겠습니다. 모두 수고하셨고요 쉬었다가 스틸 촬영 하겠습니다.”

 촬영 감독과 진경, 지운 모두가 OK를 하자 TV 광고 촬영이 마무리 됐다며 지운이 모든 스태프들에게 소리쳤다.

 “진경 씨도 수고하셨어요.”

 “제가 뭘요. 감독님이랑 다른 스태프 분들이 더 수고하셨죠.”

 지운의 얘기에 진경이 손사래를 하며 대답했다.

 “그나저나 배고프시죠? 저 쪽에 밥 차가 와 있으니까 조금이라도 드세요. 앞으로 몇 시간은 더 촬영해야 하니까.”

 “아, 네. 감사합니다.”

 “언니, 밥 갖다 드릴까요?”

 진희가 너무 배 고프다는 표정으로 진경에게 물었다.

 “아니, 난 괜찮아. 이따 스틸 촬영해야 하는데 배 나오면 안 되니까. 과일이나 좀 먹을게.”

 “그래도 조금이라도 좀 먹는 게 낫지 않겠어?”

 홍구가 물었다.

 “아니, 괜찮아. 좀 쉴래.”

 진경은 대답과 함께 혼자 천천히 대기실로 움직였고 홍구와 진희는 그런 진경을 보며 밥 차로 이동했다.

 “진경아, 아까 그 영화.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는 게 어때?”

 눈을 감은 채 음악을 듣고 있는 진경에게 홍구가 밥을 먹으며 물었다.

 “별로 하고 싶지 않아.”

 “그런데 투자자가 그 회사만 있는 게 아니라 다른 회사도 있으니까 관계를 생각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 봐.”

 홍구가 부드럽게 얘기하자 진경은 아무 말 없이 눈을 감은 채 생각에 잠겼다. 여태까지 자기가 싫다고 한 일에 대해서 홍구가 두 번 권유한 적은 없었기 때문이었다. 항상 자기 결정에 따라줬고 회사에도 잘 얘기해 줬었다.

 그런데 이번엔 그 놈의 관계가 문제였다. 사람이란 게 하고 싶다고 다 할 수 없고, 하기 싫다고 모두 안 할 수 없는 건 모두 그 놈의 관계 때문이다. 개인이건 조직이건. 진경이 처음 연기자로 데뷔했을 때 진경과 소속사를 밀어준 회사가 이번 영화 투자자 중 한 곳이었다.

 “좋아, 대신 조건이 있어.”

 한참 후에 진경이 눈은 그대로 감은 채 입을 열었다.

 “뭔데?”

 “효진 언니도 같이 출연하는 거. 적당한 배역으로라도 같이 출연했으면 좋겠는데.”

 “그래? 그건 내가 한 번 제작사 쪽에 물어볼게. 우리 회사 연기자는 아니지만 그래서 어쩌면 더 부탁을 들어줄 수도 있을지도 모르지.”

 홍구는 좀처럼 보기 힘든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똑똑. 그 때 노크 소리가 들렸다.

 “들어 오세요.”

 진희가 출입문 쪽으로 다가서며 말하자 문이 살짝 열리고는 지운이 커피를 든 채 들어섰다.

 “진경 씨, 쉬시면서 커피 좀 드세요. 아무래도 좀 더 촬영해야 하니까 카페인을 조금 드시는 게 낫지 않을까 해서요. 두 분 것도 가져왔으니까 같이 드세요.”

 언제나처럼 얼굴에 미소를 띈 채 지운은 커피를 테이블 위에 내려 놓았다.

 “감사합니다. 잘 마실게요.”

 홍구와 진경 그리고 진희가 같이 감사의 인사를 했다.

 “별말씀을요. 좀 더 쉬고 계시다 촬영 준비가 다 되면 제가 말씀 드릴게요.”

 지운은 사람 좋은 목소리로 얘기를 하고는 대기실을 나갔다.

 “언니, 아무리 생각해 봐도 저분 언니랑 잘 어울리는 것 같아요.”

 진희가 진경에 테이블 위에 있는 커피를 갖다 주며 말했다.

 “또 그 얘기니?”

 “아무리 봐도 재벌 느낌도 없고 또 착해 보이고 자상해 보이기도 하고. 언니랑 잘 됐으면 좋겠는데요?”

 진경은 진희의 얘기에 아무 말 없이 눈을 감은 채로 있었고 홍구가 진희의 어깨를 손가락으로 톡톡 건드리며 눈짓을 했다. 건드리지 말라는 신호였다. 나랑 잘 어울린다고.

 하긴 나를 오랜 시간 봐 온 진희의 얘기니까 그럴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스스로도 처음 만났을 때부터 나쁜 감정은 아니었고, 아니 오히려 기존에 봐 왔던 돈 많은 부잣집 자식들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에 호감이 생겼으니까. 그리고 이따금씩 생각나기도 했으니까. 특히 일우가 생각날 때면 자연스럽게 떠오른 사람도 지운이라는 사람이었으니까.

 촬영은 이후로도 몇 시간이 계속 됐고 모델과 스태프들 모두 지쳐갈 때쯤 ‘컷’ 소리가 촬영장을 울렸다.

 “모두 고생하셨습니다.”

 지운의 외침으로 스태프들은 서로 고생했다고 인사하고 장비를 정리하는 등 분주하게 움직였고 지운은 진경에게 다가갔다.

 “진경 씨 오늘 너무 고생 많으셨어요.”

 “별말씀을요. 다 같이 고생한 건데요 뭐.”

 “두 분도 고생 많으셨습니다.”

 지운은 홍구와 진희를 보면서도 인사를 했고 두 사람 역시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했다.

 “TV 광고는 광고주 최종 시사하고 방영 전에 보내드릴게요. 기한이 촉박해서 급하게 진행될 듯 하네요. 그럼 전 마무리 정리를 해야 해서 여기서 인사 드리겠습니다. 조심해서 들어가세요.”

 지운은 마무리 인사를 하고는 현장을 정리하러 돌아섰고 진경을 비롯한 두 사람도 차로 이동했다.

 “정말 긴 촬영이었어요, 언니.”

 차에 올라타며 진희가 말했다.

 “그래 진희 너도 고생했다. 오빠도 고생했어요.”

 진경은 온 몸이 녹아 내릴 정도로 피곤했지만 일부러 톤을 높여 말했다.

 “우리야 뭐 한 게 있나.”

 홍구가 퉁명스럽게 대답하고는 차를 출발시켰다.

 “아 참, 진경아. 얼마 후에 백상예술대상 있는 거 알지? 너 거기 TV부분 여자 최우수 연기상 후보니까 알고 있어.”

 운전을 하던 홍구가 문득 생각났다는 듯이 말했다.

 “그럼 그날 거기 가야 하는 거지?”

 “그래야 하지 않겠어?”

 “알았어. 나중에 다시 알려줘.”

 진경은 피곤한 듯 눈을 감은 채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리고 얼마 후 진경은 예상대로 백상 예술대상에서 TV 여자 최우수 연기상을 수상했다. 하얀색 롱 드레스를 입은 진경은 상을 받고는 수상 소감을 얘기했다.

 “우리가 옷을 고를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가격이나 품질이 아니라 나에게 꼭 맞는 옷인가일 겁니다. 아무로 좋은 옷도 나에게 너무 작거나 크면 입지 못하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연기를 시작한 이후 상을 받을 때마다 항상 이 상이 나에게 맞는 옷인가라는 생각을 늘 하곤 하는데요, 오늘 이상은 저에게 너무 큰, 과분한 상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만큼 이 상이라는 옷에 맞도록 더 열심히 연기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토록 과분한 상을 주신 관계자 여러분 그리고 팬 여러분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 드립니다.”

 수상 소감을 마치자 많은 박수가 쏟아졌고 사무실에서 모니터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지영은 생각했다.

 ‘수상 소감은 번드르하네. 어디 그 번드르함이 얼마나 가나 두고 보자.’

 시상식을 마친 진경은 많은 팬들의 환호에 미소로 화답하며 인사를 하고는 차에 올라탔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진희가 생일 축하 때 쓰는 폭죽을 터트리며 축하했다.

 “언니, 축하해요!”

 “어우, 깜짝이야. 놀랐다, 얘.”

 “이 정도는 해야 축하하는 느낌이 들죠. 그나저나 언니 오늘 한 턱 쏘는 거에요?”

 “한 턱? 그래 일단 옷부터 갈아 입고. 그 동안 먹고 싶은 거 생각해 놔.”

 진희의 애교 섞인 물음에 진경이 반갑게 대답할 때 저음의 홍구가 말을 받았다.

 “이사님이 자리 마련해 두셨다니까 거기로 가자.”

 “유도진 이사님이? 갑자기 왜?”

 “왜긴. 고생도 했고 상도 받았으니 식사라도 같이 하자는 거겠지.”

 홍구는 담담하게 운전을 하며 말했다.

 “근데 이사님 계시면 우린 못 가는 거 아니에요? 다른 높은 분들이랑도 올 텐데 우리는 아무래도…”

 진희가 풀이 죽은 듯한 목소리로 끼어들었다.

 “괜찮아. 같이 먹자고 하시니까.”

 “그래도 불편할텐데…”

 “그래, 오빠. 이사님이랑은 내일이나 다음에 먹자고 하고 오늘은 우리 셋이서 먹자. 그래야 마음 편하게 먹을 수 있지. 술도 한 잔 하면서.”

 진경이 진희를 보며 살짝 윙크를 하면서 말하자 진희는 혓바닥을 살짝 내밀며 웃었다.

 “그래도 이사님이 마련하신 자린데…”

 “오빠가 얘기하기 어려우면 내가 할게. 같이 고생하는 사람들이 먼저지. 이사님 생색은 나중에 받아도 상관없으니까.”

 “아니야, 내가 말씀 드려볼게.”

 홍구의 얘기에 진경과 진희는 마주보며 웃었다. 그리고 그날 세 사람은 함께 저녁을 먹고 즐거운시간을 보내다 헤어졌다. 그리고 집에 혼자 남게 된 진경은 몸은 피곤했지만 자고 싶은 생각이 없어 소파에 앉아 맥주를 마시며 TV를 보기 시작했다.

 ‘상을 받으면 뭐하냐. 함께 축하해 줄 사람도 없는데.’

 홍구, 진희와 함께 저녁을 먹을 때 효진 언니로부터 축하 전화를 받긴 했지만 친한 언니였기 때문에 함께 기뻐해 줄 내 사람이 없다는 외로움이 발끝에서부터 차 올라 눈은 TV를 보고 있지만 집중에 되질 않았다. 많은 팬들이 있고 수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으며 지내지만, 시상식에서 상을 받으면 수 많은 축하 연락을 받지만 막상 ‘내 사람’이 없다는 허전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 허전함의 끝에 두 명의 남자가 떠올랐다. 오지운과 서일우. 지운으로부터도 축하 메시지를 받긴 했지만 답장을 아직 못했고 일우로부터는 그 어떤 연락도 없었다. 지운에게 고맙다는 답장이라도 해볼까라고 시계를 보니 11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라 너무 늦은 듯해서 포기하려는 찰나 문자가 도착했다.

 ‘통화 가능해요?’

 서일우였다. 전화번호를 삭제했지만 번호 자체는 잊혀지지가 않았다. 진경은 자기도 모르게 심장박동이 빨라지는 걸 느끼며 뭐라고 답장을 해야 할까 고민하다가 짧게 메시지를 보냈다.

 ‘응’

 그러자 바로 전화가 걸려왔다. 그렇게 잊고자 했던 서일우로부터.

 “오랜만이에요.”

 전화기 너머로 익숙했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래, 오랜만이야.”

 진경은 짐짓 아무렇지도 않은 듯 건조하게 대답했다.

 “오늘 상 받았다면서요. 축하해요.”

 “고마워. 그 얘기 하려고 전화했어?”

 진경은 마음과는 다르게 차갑게 말했다.

 “음, 지난 번 호텔에서 만났을 때 했던 얘기에 대해 많이 생각했었어요. 무슨 뜻일까 하고.”

 “그래서?”

 차가웠다. 진경 스스로 생각해도 차가운 반응이었다. 질투였을까. 일우가 오지영과 함께, 본인이 가장 싫어하는 오지영과 함께 하필이면 그 때 그 호텔 커피숍에 나타난 걸 질투하는 것일까. 따지고 보면 진경이 질투할 이유는 하나도 없다. 자신과 일우의 만남은 손님과 접대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가끔 연락하고 함께 놀이공원도 갔었지만 그 관계에 변함이 있었던 적은 없었다.

 물론 그 시간들이 오히려 더 일우를 생각나게 하고 또 지영이가 자신을 괴롭힐 명분이 되었지만, 그래서 일우를 더 이상 생각하지 않기로 했지만 그럴수록 일우는 처음의 관계를 넘어 진경의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이 이상하리만치 그림자처럼 천천히 안으로 들어와 버렸다.

 그렇다. 질투였다. 진경 본인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그건 질투였다. 그래서 자기도 모르게 차가워질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만나서 얘기했으면 좋겠어요, 우리.”

 일우의 갑작스러운 만나자는 말에 진경은 심장이 더 빨리 뛰는 걸 느꼈지만 지금까지 애써 참아온 걸 생각하며 역시 차갑게 대답했다.

 “굳이 만날 필요 있나? 전화로 하면 될 걸.”

 “내가 누님한테 뭐 잘못한 거 있어요? 목소리가 너무 차가운데.”

 진경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기 때문이었다.

 “여보세요, 거기 있어요?”

 진경은 한참만에야 다시 입을 뗐다.

 “만나서 무슨 얘길 듣고 싶은데?”

 “사람 가려가면서 만나라는 얘기, 무슨 뜻인가 하고요. 사실 오지영씨는 그날 처음 본 거거든요.”

 일우의 얘기에 진경은 자기도 모르게 안도감이 드는 걸 느꼈다. 일우와 지영은 아무 사이도 아닌 게 확실하다.

 “그래, 만나서 얘기하자.”

 그리고 두 사람은 날짜와 시간을 정하고 통화를 끝냈다.

 ‘여태까지 잘 참아 왔는데. 만나서 마음이 바뀌면 어떡하지?’

 통화를 끝내고 진경은 뛰는 가슴을 쉽게 진정시키지 못한 채 집 안을 서성이며 생각에 잠겼다. 스스로에 대한 다짐이 본인에 의해 무너지게 되는 것이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다음 날 지영은 흥신소 사장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다음 주에 도진경이 서일우를 만날 예정입니다.”

 “그래요? 어디서요? 알았어요. 고생했어요.”

 간단하게 통화를 마친 지영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곧바로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기자님, 안녕하세요. 오지영이에요. 네네, 오랜만이에요. 별일 없으시죠?”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폭풍 수다에 지영은 얼굴을 찌푸리며 전화기를 잠시 전화기를 귀에서 뗐다가 다시 대고는 말을 이었다.

 “다름 아니고 특종 건 하나 알려 드리려고요. 취재원 보호만 해주신다면요. 그럼요, 특종 중의 특종이죠.”

 지영은 진경과 일우의 약속 시간과 장소를 알려주며 간략하게나마 자기가 알고 있는 내용을 전달하고는 통화를 끝냈다.

 ‘지난 번엔 내가 미숙했지. 나를 직접 드러낼 필요가 전혀 없었는데 바보같이. 원래 하던 대로 하면 되는 건데. 도진경, 이번엔 정말 끝내줄게.’

 

 - 다음 편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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