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 나뭇가지를 꺾는다.
1. 불나방
화단에 있는 나뭇가지를 툭 꺾었다. 강삼식 이사장은 낮에 화단을 직접 가꿨다. 특별히 할 일이 많지도 않은데도 매일 학교를 출근했다. 오로지 화단을 가꾸기 위해서였다. 학생들 중에는 그를 화단을 가꾸는 정원사로 알고 있는 아이들도 있었다. 케이에프씨 치킨 할배로 더 잘 통했지만 정원사 할배도 만만치 않았다. 바람이 심해서 하루 쉴까 하다가 그냥 도구를 들고 화단으로 나왔다. 바람이 조금 잦아드는 기색이 보여 나왔는데 다시 심해졌다. 이사장은 눈살을 찌푸리며 결국 집무실로 다시 들어왔다.
문을 똑똑 노크하는 소리가 들렸다.
“들어오세요.”
이사장이 쉰 목소리로 대답했다. 며칠 전부터 감기 기운이 있어 목소리가 가라앉아 있었다. 연구부장 주동원이 문을 열고 들어와 인사를 꾸벅 했다.
“몸은 좀 괜찮으십니까?”
주동원이 진심으로 걱정하는 표정을 하고 물었다. 지난 주 이사장이 감기에 걸린 거 같다는 말을 듣는 순간 기회를 포착했다고 생각했다. 근래 들어 학교 내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고 생각하고 있는 차였다. 겉으로 보기에는 가족처럼 지내는 곳이었다. 그러나 한 꺼풀만 벗기면 서로를 향한 음해가 난무하고 파벌을 형성하고 있었다. 몇 명되지 않는 작은 조직이었지만 권력 암투가 존재하고 있었다. 권력을 향한 의지가 결국 불빛을 보고 달려드는 불나방처럼 사람들을 모으고 있었다. 자신의 머리가 터져나가는지도 모르고 불빛의 중심부를 향해 부딪치고 또 부딪혔다.
“별로 안 좋아. 약을 먹었는데도 그러네.”
“병원에 다녀오셔야죠. 제가 모시겠습니다.”
주동원은 미리 시나리오를 짜고 시간표도 바꿔 놓았다. 병원에 갔다가 밖에서 식사 대접을 하며 자신의 이야기를 하려고 마음먹었다. 이사장은 주동원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작년에 교무회의에 들어가 고충 사항이 있으면 언제든지 이야기하라고 말한 이후 주동원이 가장 많이 집무실 문을 두들겼다. 신변잡기에 대한 이야기도 했지만 이야기 내용은 거의 다른 교사에 대한 험담이었다. 처음에는 솔직하게 모든 것을 말해주는 정보통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 피곤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 들어 이사장은 주동원이 이야기하려고 하면 핑계를 대고 만나주지 않고 있었다.
“괜찮아. 가더라도 내가 운전해서 가면 되. 연구부장은 수업해야지.”
“아닙니다. 이사장님 아프시면서 어떻게 운전을 하시려고 하십니까. 못하세요. 저랑 잠깐 나갔다 오십시오.”
“괜찮으니까 다른 특별한 일 없으면 가봐. 나 할 일이 좀 있어서.”
“아, 네. 알겠습니다. 혹시 병원 가실 거면 저한테 전화 주십시오. 나가 보겠습니다.”
주동원은 이사장실의 문을 닫고 나오면서 이를 악 물었다. 저 인간이 요즘 나를 멀리하네. 이사장의 달라진 태도에 주동원은 기분이 상했다.
교무부장 공성구가 마침 교무실을 나오다 이사장실의 문을 닫고 있는 주동원을 보았다.
“연구부장님. 이사장님한테 무...무슨 볼일이라도 있으셨어요?”
공성구가 빈정거리는 말투로 말했다. 그러면서도 말을 더듬었다. 주동원은 그런 공성구를 평상시 혐오하고 있었다. 그냥 싫었다. 신기하게도 어떤 정책도 같이 이야기해보면 안 맞았다. 겉으로 친절한 척 다가오는 모습도 재수 없다고 생각했다. 공성구의 말은 네가 왜 이사장님 방에 들어가느냐 따지는 걸로 들렸다. 주동원은 대꾸를 하지 않으려다가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모르셨어요? 아프다고 하시네요. 교무부장님이 좀 챙기셔야죠.”
“아...아프 시다고요? 몰랐습니다.”
“잘 좀 하세요. 잘 좀.”
주동원은 당황해하는 공성구를 지나면서 계속 빈정거렸다. 말을 더듬거려서 모자라 보이는 공성구였다. 물론 실제 그렇지는 않았다. 기본적으로 날카로운 분석력을 가지고 있었다. 특히 기억력이 매우 뛰어났다. 몇 년 전에 나왔던 말들도 장소와 시간과 누가 했는지 다 기억하고 있었다. 주동원은 가끔 공성구의 뛰어난 머리를 느낄 때마다 소름이 돋는 거 같았다. 어리버리해 보이는 모습 뒤로 호박씨를 까고 있다고 생각하니 더 싫어졌다.
주동원은 교무실로 가지 않고 학생부실로 갔다. 학생부는 생활지도를 이유로 별실을 쓰고 있었다. 마침 학생부장 권순필이 혼자 있었다.
“연구부장님, 어쩐 일이십니까? 커피 안 드셨으면 한 잔 드릴까요?”
“그럽시다. 한 잔 줘요.”
권순필이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나 커피를 탔다. 평상시에도 키는 작지만 동작이 빠른 편이었다. 자신보다 나이나 직책이 윗사람이면 더 빨라졌다.
“여기 있습니다. 뜨거우니까 조심하셔요.”
“고마워요. 권 부장.”
주동원은 커피를 홀짝 한입 들이키고는 다리를 꼬고 앉았다. 평상시 자신이 가장 윗사람이라고 생각될 때 나오는 행동이었다.
“어쩐 일이세요? 최근에 여기 뜸하셨던 거 같아요.”
“그래요. 학생부실에 오랜만이네. 오랜만에 권 부장도 보고 좋네.”
“자주 좀 오십쇼. 커피는 언제나 준비되어 있습니다.”
“권 부장, 요즘 좀 이상한 거 못 느꼈어? 공성구 쪽 라인이 움직이고 있는 거 같던데.”
“그런가요?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어떻게 움직이고 있나요?”
“점심시간에도 다 안보이고. 술자리도 몇 번 있었나봐.”
“그래요? 그러고 보니 어제 컴퓨터실에 들어갔을 때 모여서 쑥덕거리고 있긴 했어요.”
“심상치 않다니까. 뭔 일인지 좀 알아야 되겠는데. 권 부장이 채널 좀 가동해 봐요.”
“알겠습니다. 저도 궁금하네요.”
“그래요. 역시 권 부장이야. 조만간 술 한 잔 합시다. 나 일어납니다.”
주동원이 커피 잔을 내려놓고 일어섰다. 학생부실을 나서려는데 교감 심원택이 들어왔다.
“연구부장이 학생부실에 웬 일이신가.”
“커피 한 잔 하러 왔습니다. 교감 선생님은 웬일이세요?”
“선생님들 뭐하나 하고 순찰 돌고 있지.”
“저희 감시하고 계시는 군요. 걱정 마세요. 다 잘하고 있습니다.”
“연구부장하고 학생부장이야 내가 걱정 안하지. 근데 걱정되는 양반들이 있잖아.”
“있죠. 제가 걸리는 대로 바로 신고하겠습니다.”
“날 신고하는 건 아니겠지? 앞으로 똑바로 하겠습니다요.”
심원택이 허리를 조금 숙이며 말했다. 평상시에도 이들은 만나면 가장 많이 하는 일이 뒷담화하기와 잘난 척 하는 일이였다. 그리고 끊임없이 말을 많이 했다. 허세가 가장 많고 의미 없는 농담이 나머지를 채우고 있었다.
“아이고 왜 이러십니까. 교감 선생님. 제가 잘 하겠습니다.”
주동원이 과장된 몸짓으로 심원택을 말리는 시늉을 했다.
“연구부장이야 잘하고 있지. 학생부장이랑은 다르지. 학생부 요즘 좀 문제가 있어. 연구부장이 잘 좀 교육시켜 봐.”
“아, 네, 알겠습니다. 걱정 마십시오. 하하하.”
“그래. 좋아. 이번 주 금요일에 시간 되면 셋이 한 잔 하자고. 아주 센 걸로.”
“그러시죠. 장소는 제가 예약 해놓겠습니다.”
“학생들과 마주칠 일 없는 대로 예약하는 거 알지?”
“그럼요, 당연히 그래야죠. 하루 종일 보고 지겹게 또 볼 순 없잖아요.”
둘은 크게 너털웃음을 웃었다. 이 모습을 멀리서 지나가던 이사장이 보았다. 이사장의 표정이 싸늘하게 식었다. 저것들이 또 작당모의하고 있네. 이사장은 몇 달 전 까지만 해도 저들의 말을 주로 듣고 있었다. 최근 들어 이들이 하는 험담에 지쳐 멀리 하고 있었다. 이사장은 계단을 내려가며 생각에 잠겼다. 변화가 필요한 시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 변화를 어떻게 주도할 건지 고민이 더 필요하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