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ading...
1일간 안보이기 닫기
모바일페이지 바로가기 > 로그인  |  ID / PW찾기  |  회원가입  |  소셜로그인 
스토리야 로고
작품명 작가명
이미지로보기 한줄로보기
 1  2  3  4  >>
 1  2  3  4  >>
 
자유연재 > 기타
오블리비언
작가 : 강냉구
작품등록일 : 2019.8.26

가장 평범한 삶을 살고 싶었는데 바보 같은 짓으로 인해 종군기자가 되었다.
스탠포드 교내 기자로 취재하고 글을 쓰며 졸업 후 타임지 정치부기자가 되려고 했는데,
타임지 건물 앞에도 못 가보고 허망하게,
흔적도 없이 꿈이 사라졌다.

 
14
작성일 : 19-10-12 19:37     조회 : 243     추천 : 0     분량 : 4954
뷰어설정 열기
뷰어 기본값으로 현재 설정 저장 (로그인시에만 가능)
글자체
글자크기
배경색
글자색
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어느 날 갑자기였다.

  정말 어느 날 갑자기였다. 아무 예고도 없었다. 그렇다고 즉흥적인 것도 아니었다. 엄마는 아침 일찍부터 내 이름을 불렀다. 데이빗, 데이빗하며 나를 불러보기도 했고, 나를 흔들어 깨우기도 했다.

  나는 그런 엄마의 행동이 많이 수상했지만 엄마가 예전처럼 돌아간 기분이 들어서 금방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나는 손등으로 눈꺼풀을 비볐다. 눈곱이 떨어졌는지 모르겠지만, 잠을 금방 쫓아낼 수 있었다.

 

  “무슨 일 있어요?”

 

  무슨 일 있어요? 라니.

  아무 일도 없는 척 해야 되는데 첫 마디부터 무슨 일 있냐는 내 말에 나는 순간 아차 싶었다. 입을 틀어막았다. 물론, 행동으로 하진 않았고, 마음속으로 행동했다.

 

  “여기 가방 안에 짐 챙겨, 데이빗.”

 

  엄마는 침대 위에 커다란 가방 하나를 올려놓았다.

 

  “옷은 당장 입을 거만 챙겨. 다른 건 사면되니까, 필요한 거. 중요한 거만 안에 넣어.”

 

  엄마는 곧바로 내 방을 나가버렸다.

  나는 엄마의 행동이 무척이나 수상했다. 어딜 가는 걸까 의구심이 들었다. 왠지 멀리 떠날 거 같았다.

  혹시 아빠의 존재는 며칠 사이에 엄마의 머릿속에서 지워져버린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입 밖으로 아무 말도 꺼내지 않고 묵묵히 짐을 챙겼다.

 

  중요한 것들만 가방 안에 넣으니 가방은 텅 비어 보였다. 내 짐이 이렇게 없었나 생각이 들었다. 옷장을 열었다. 옷장을 열고 입고 갈 옷을 꺼냈다.

  나는 곧바로 옷을 갈아입었다. 짐을 다 싸기도 전에 나는 화장실로 들어갔다. 오줌이 마려웠다. 아침에 일어나면 곧바로 오줌을 싸야 되는데, 정신이 없어서 오줌을 싸지도 못했다.

 

  오줌 줄기가 얼어버렸는지 하찮다.

  긴장이 풀리니 오줌 줄기가 수류탄처럼 폭발해버렸다. 수류탄처럼 폭발해버린 오줌 줄기는 화장실 사방에 튀어버렸지만, 다신 이 집에 올 거 같지 않은 생각에 물을 뿌리면서까지 오줌을 닦아내지 않았다.

  어차피 1층에 있는 화장실을 쓰면 되니까. 나는 다시 내 방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난 옷장 앞에 섰다.

 

  “곧 추워질 테니까…… 겨울 옷 위주로 챙겨야 되나…….”

 

  고민이었다.

  지금이 가을이기도 하고, 낙엽이 바람에 흩날릴 정도인데, 무겁지만 겨울옷을 챙겨야 되는지, 아니면 지금 당장 입을 옷을 챙기고 나중에 옷을 사야 될지 고민 됐다.

  그러나 그 고민을 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옷을 사줄 사람이 과연 존재하긴 하는 걸까 생각이 들었고, 나는 겨울옷 여러 벌을 꺼내어 가방에 구겨 넣었다.

  역시 부피가 큰 겨울옷을 집어넣으니 가방은 곧 빵빵해졌다. 뽀빠이 근육보다 훨씬 더 빵빵하다. 지금 날씨에는 살짝 더울 수도 있지만, 곧 추워질 테니까.

 

  “데이빗, 다 했니?”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목소리가 울리는 걸 보니 1층에 있는 거 같다.

  엄마의 목소리는 정말 오랜만에 생기가 돌았다.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엄마가 1층에서 계단을 올라 내 방으로 오는 소리였다.

  엄마는 내 생각 그대로 내 방으로 들어왔고, 나를 보며 다시 한 번 더 말했다. “다 했니?” 나는 엄마의 말에 고개를 저었다.

  엄마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살만 붙은 시체에서 생기가 차오른 거 같았다. 난 그런 엄마를 보고 기분이 좋아졌다.

 

  “뭐 챙겼니?”

  “겨울 옷 이것저것이요. 곧 추워질 테니까…….”

  “데이빗, 엄마가 말 안했구나. 우린 동부 어딘가로 가는 게 아니야. 서부로 갈 거야. 그래서 겨울옷은 필요 없어.”

  “서부요?”

  “응, 서부로. 캐서린 이모한테 갈 거야. 이제 우린 거기 가서 살 거야.”

 

  나는 엄마의 말에 대답을 하지 않았다.

  캐서린 이모에게 가는 건 정말 좋은 일이었다.

  캐서린 이모는 나를 정말 예뻐했다. 캐서린 이모의 집에 한 번 가본 적이 있는데, 우리와는 다르게 정말 부자였다.

  패트릭 보다 더 부자일 것이다.

  캐서린 이모는 부자 남자랑 결혼해서 얼마 전에 이혼 했다. 그래서 위자료로 지금 살고 있는 커다란 집을 받았다고 한다. 그렇게 커다란 집을 갖고도 캐서린 이모의 친구들은 작은 집을 얻고 쫓겨났다고 비아냥거린다.

  그래봤자, 그 아줌마들은 남편이 바람피워도 돈 때문에 옆에 들러붙어 기생하는 속물일 뿐이다.

 

  “옷은 다 빼, 다 빼고 얼른 가자. 기차 시간 놓치겠어.”

 

  나는 엄마의 말을 듣고 가방을 들고 다시 방으로 올라갔다. 엄마의 말대로 겨울옷을 다 빼 침대 위에 아무렇게나 던져놓았다.

  겨울옷을 빼고, 요 며칠간 입을 옷과 잠옷을 챙기니 두둑했던 가방은 며칠 전 엄마의 모습처럼 홀쭉해졌다. 그리고 나는 깜빡했던 책상 서랍 속 모츠를 한가득 챙겼다.

 

 

 

  기차를 놓치지 않았다.

  기차가 도착하기 한참 전에 기차역에 도착했다. 나랑 엄마는 아무 말도 하지도 서로 시선을 마주보지도 않은 채 멍하니 새빨간 의자에 앉아있었다.

  서로 다른 곳을 보고 있었다.

  엄마가 기차를 볼 때 나는 사람들을 봤고, 엄마가 사람들을 볼 때 나는 하늘을 봤다. 사소한 거라도 겹치지 않기 위해 온갖 신경을 곤두 세웠다. 생기 오른 엄마가 반갑고 좋았지만, 그 며칠 사이에 엄마와의 거리가 멀어짐을 느껴버렸다.

 

  저 멀리서 기차가 달려왔다.

  나는 그런 기차를 보곤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이 적막한 상황에서 탈출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나는 한껏 가벼워진 가방을 들고 엄마 뒤를 따라 기차에 올라탔다.

  엄마는 곧바로 우리가 앉을 좌석을 찾았다.

 

  “창가자리에 앉을 거지?”

 

  엄마가 말했다.

  나는 엄마의 말에 ‘네’라고 짧게 대답한 뒤 창가자리에 앉았다. 엄마는 뒤이어 통로자리에 앉았다.

  나는 엄마가 아무 말 하지 않기를 바라며 창밖을 보았다. 엄마랑 둘이서 이렇게 멀리 가는 건 처음이었다. 늘 아빠와 함께 갔는데……. 나는 엄마에게 아빠는 어떻게 됐냐고 물을 수가 없었다.

  그냥 엄마가 대답해주길 바랄 뿐이었다.

 

  “데이빗.”

 

  엄마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데이빗.”

 

  내가 대답이 없자 엄마가 다시 한 번 더 나를 불렀다.

 

  “네.”

  “데이빗한테 미안해. 아무 말도 없이 이렇게 갑자기 떠나게 돼서 미안해. 며칠 동안 데이빗한테 신경 못 써서 미안하고, 엄마가 다 미안해.”

 

  엄마가 말했다.

  엄마의 말에 나는 대답할 수가 없었다. 괜찮다는 생각 따위도 하지 않았다. 미안하단 말에 동정하기 싫었다. 어찌 보면 버릇없다고 생각하겠지만, 이런 상황에 닥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행동이었다.

 

  “아빠는…… 엄마도 잘 모르겠네. 로사한테 말했는데, 아빠한테 전해질지 모르겠다. 돌아올지도 모르겠고……. 러시아잖아. 미국도 아니고 러시아잖아.”

 

  엄마가 말했다.

 

  나는 사실 역사 따위 잘 모른다. 역사도 모르고 전쟁도 잘 모른다.

  그리고 탄광에서 파업 하다가 소련으로 끌려가면 어떤 상황에 처하게 되는지도 모르고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 그 이유는 딱 하나이다.

  무섭기 때문이다.

  난 아빠가 죽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확신이 생기는 게 무섭기 때문이다. 절대 좋은 꼴은 날 수가 없다는 걸 잘 알고 있다. 소련이 됐던, 어느 나라가 됐던 아빠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버렸다.

  난 다른 건 모르지만 추방이라는 건,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학교는……”

 

  엄마의 말에 화살이 하나 스쳐갔다.

  학교를 잊고 있었다.

  너무 정신이 없었다. 이틀 후면 정학이 풀린다는 것도 잊고 있었고, 내가 정학 당한 이유도 다 잊고 있었다. 물론 지미와 패트릭의 존재 자체도 잊고 있었다. 쥬디 할머니도 잊고 있었고, 범인이 누구인지도 잊고 있었다. 난, 나와 엄마 이외의 것들을 내 머릿속에서 모두 지워버렸다.

 

  “괜찮아요. 안가도 돼요.”

 

  내가 말했다.

  나는 끔찍한 학교 얘기를 하기도 전에 엄마의 말을 막아버렸다. 말을 하지 못하게, 말을 가로채 버렸다. 끔찍했다.

  나는 이제 그 끔찍한 악몽에서 탈출했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패트릭 녀석도 지미도 쥬디 할머니도 더 이상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범인은 언젠가 밝혀질 게 뻔했다.

  난 그 범인을 십년 뒤, 라디오나 지역 신문으로 접해도 괜찮았다.

 

  기차는 바람처럼 달렸다. 너무 빨랐다. 창 밖 풍경을 하나하나 천천히 감상할 틈조차 주지 않았다.

 

  “한참 달릴 거야. 그리고 다른 기차로 갈아타야 되니까 피곤하면 바로 자. 깨워줄게.”

 

  엄마가 말했다.

  아주 침착한 목소리였다. 목소리에는 어떠한 수상한 점이 없었고, 그저 평소와 별반 다를 거 없는 목소리였다. 하지만 평소와 다를 거 없다고 해서 의심을 그치지는 않았다.

  괜찮은 척 하는 거겠지. 그런 거겠지. 마음이 놓이지 않는다. 마음을 놓은 척 할 뿐이다.

 

  오랜 시간 달린 끝에 서부에 도착하게 되었다.

  서부는 엄마의 말처럼 날씨가 정말 좋았다. 분명 집에서 나올 때, 그리고 기차를 기다릴 때 많이 추웠던 걸로 기억하는데 여기는 가을인데도 햇빛이 셌다.

  센 수준을 넘어 내리쬐고 있었다. 햇빛으로 달걀도 익혀먹을 것만 같았다. 아니, 베이컨도 익을 거 같았다. 서부의 따사로운 햇살은 날 기분 좋게 만들었다.

 

  기차에서 내리고 엄마를 뒤따라 버스를 탔다. 동부와 다를 거 없는 버스 안이지만 더 달라 보였다.

  내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서부에 왔던 건 아주 어렸을 때였다.

  내가 지금 열 두 살 이니까 정확히 칠 년 전이었다. 그때 내가 무엇을 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버스를 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버스는 할리우드 부근에 들어섰다. 여기가 그 유명한 할리우드구나. 나는 새로운 것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었다.

 

  “여기서 내리면 될 거야.”

 

  엄마가 말했다.

 

  나는 엄마의 말에 내 짐을 들고 버스에서 내렸다. 엄마는 아무 말 없이 예전 기억을 되 뇌이며 캐서린 이모의 집을 찾는다.

 

  “저기다!”

 

  엄마가 말했다. 나는 엄마의 시선이 향한 집으로 시선을 돌렸다.

 

  내 시선 끝자락에는 캐서린 이모가 있었고, 캐서린 이모는 미소를 지으며 엄마와 나를 향해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다.

 

  캐서린 이모를 보자 기분이 좋아졌다.

 

  우울함에서 벗어날 수 있다. 이제 엄마의 우울함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다.

 
 

NO 제목 날짜 조회 추천 글자
31 31 2019 / 12 / 10 254 0 3421   
30 30 2019 / 12 / 8 259 0 3871   
29 29 2019 / 12 / 2 252 0 5608   
28 28 2019 / 12 / 2 282 0 7223   
27 27 2019 / 11 / 23 266 0 6413   
26 26 2019 / 11 / 18 256 0 4654   
25 25 2019 / 11 / 14 260 0 1644   
24 24 2019 / 11 / 11 261 0 5461   
23 23 2019 / 11 / 10 264 0 4000   
22 22 2019 / 11 / 5 256 0 5341   
21 21 2019 / 11 / 2 225 0 5752   
20 20 2019 / 10 / 31 241 0 5134   
19 19 2019 / 10 / 25 232 0 6963   
18 18 2019 / 10 / 25 261 0 4830   
17 17 2019 / 10 / 18 254 0 7056   
16 16 2019 / 10 / 15 254 0 6136   
15 15 2019 / 10 / 12 234 0 6802   
14 14 2019 / 10 / 12 244 0 4954   
13 13 2019 / 10 / 4 239 0 8098   
12 12 2019 / 10 / 4 256 0 3946   
11 11 2019 / 9 / 26 238 0 3356   
10 10 2019 / 9 / 26 232 0 3317   
9 9 2019 / 9 / 22 259 0 3890   
8 8 2019 / 9 / 16 246 0 4058   
7 7 2019 / 9 / 14 269 0 6457   
6 6 2019 / 9 / 7 246 0 5204   
5 5 2019 / 9 / 7 259 0 4699   
4 4 2019 / 9 / 2 250 0 6544   
3 3 2019 / 8 / 31 258 0 5200   
2 2 2019 / 8 / 28 253 0 5818   
 1  2  
이 작가의 다른 연재 작품
아스트랄 휴먼
강냉구
[완] 딕
강냉구
[완] 벙커
강냉구
     

    이용약관   |   개인정보취급방침   |   이메일주소 무단수집거부   |   신고/의견    
※ 스토리야에 등록된 모든 작품은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 본사이트는 구글 크롬 / 익스플로러 10이상에 최적화 되어 있습니다.
(주)스토리야 | 대표이사: 성인규 | 사업자번호: 304-87-00261 | 대표전화 : 02-2615-0406 | FAX : 02-2615-0066
주소 : 서울 구로구 부일로 1길 26-13 (온수동) 2F
Copyright 2016. (사)한국창작스토리작가협회 All Right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