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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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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게임판타지
누에라(Nu-Era)
작가 : Ress
작품등록일 : 2016.10.1

뭣?! 내가 하던 게임이 흔적도 없이 공중분해 됐다고?!
내 정액권!! 내 아이템!!!

어느 날 세계 최고의 가상현실 게임 드컨이 망했다!
그리고 그 자리를 채우듯 나타난, 암묵적인 후속작 누에라.

"고검 씨를 살려드리지요. 대신 '누에라'를 하는 겁니다. 이건 '명령'입니다."

(모두의 어그로꾼) 방년 27세 게임 폐인 강현성은 비밀스러운 군수국가, 라프리에트의 제안에 휘말려 '누에라'를 시작하게 되고...
라프리에트의 농락에서 벗어나기 위해, 혹은 그들 뜻대로 움직이기 위해 이어지는 멘붕과 발악으로 물든 대서사시!


헌데 이 게임, 좀 요상하다. 그것도 많이!
어느 날부터 보이는 무언가 요상한 유저들.
아무리 버그 신고를 해도 돌아오는 답변은 전 유저가 같은 혜택을 받는 중인, 뭐?! 게임의 기본 서비스?


길드 마스터가 낄 수 없는 연합 회의, 어딘지 수상한 점이 가득한 연합 길드...
드컨의 유명 길드 '프르미에', 그들이 '체라 레조'를 앞세워 누에라의 이면에서 움직이기 시작한다!

"뭐시기?! 황제를 잡으라굽쇼?!"
"형, 그거 반역 아니야?"

대뜸 반역 퀘스트를 받게 된 체라 레조! 그것도 황제 본인한테!
바지 마스터 박의자와 엘리트 개그캐 김공복.
길드의 실세, 연합장 레빈과 그의 과격하고 예쁜(?) 친구 딜런.
이들이 택한 효율적인 황제 레이드 방법은?!

퀘스트를 따온 당사자인 유저 최고의 원소 마법사 솔과 그를 지켜봐 온 수 많은 눈들.
그리고 비밀로 넘쳐나는 누에라의 세계.

모험과 비밀이 넘치는 그곳에서 강현성과 윤도은은 각자의 방식으로 자신들을 둘러싼 비밀을 마주하게 된다!

 
1. 어느 게임 폐인 청년의 이야기
작성일 : 16-10-05 23:51     조회 : 476     추천 : 0     분량 : 6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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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와, 뭐 이딴 회사가 다 있냐? 이게 뭔 마른 하늘에 서비스 종료? 미친 거 아니야?"

 술에 반쯤 쩔은 승재가 버럭 소리를 지른다. 원래 얌전하게 먹는 놈은 아니었지만, 지금 저놈은 극도의 빡침 상태다. 드컨이라고, 우리가 즐겨 하던 가상현실 게임이 있었는데, 그게 며칠 전에 예고도 없이 갑자기 서비스 종료 한 탓이다.

 

 나 역시 그 게임의 유저였고, 현재 몹시 우울하다. 왜냐고? 그 망하기 바로 전날 6개월 정액권 질렀으니까! 한 마디로 자고 일어났더니 내 돈이 공중분해 됐단 소리다!

 게다가 그거 항의하려고 봤더니 이미 인터넷이 난리가 나있었다. 내 돈만 공중분해인 게 아니라, 회사도 공중분해라서 돈을 받을 수가 없다나. 단체 소송 건다는 카페도 생겼던데, 솔직히 난 이젠 뭐가 뭔지 모르겠다. 돈은 아까운데! 소송은 머리 아프고! 도대체 나 같은 선량한 시민은 어떻게 살라는 건지 모르겠다.

 

 지금 이 자리에서 술 퍼먹고 있는 놈들 대부분은 나름 이 게임 저 게임에서 한 가닥 하던 녀석들이다. 그러다가 요 몇 년 드컨에 뿌리 박고 재미 붙이면서 살고 있었는데, 자고 일어났더니 그게 갑자기 없어진 거다. 심지어 몇 놈은 게임을 업으로 삼은 놈들이라 할 것도 없고 갈 곳도 없어져 버렸다. 덕분에 지금 이렇게 모여서 방황하고 있는 중이다.

 아, 이제 무슨 재미로 살지. 울적한 마음에 입을 꾹 다물고 술만 꼴꼴꼴 따른다. 솔직히 지금 난 떠들 기분 아니다. 쟤들은 입 털어서 슬픔을 달랜다면 나는 나 우울해요 하는 티를 내면서 슬픔을 달래는 타입이니까.

 

 "민원 넣을랬더니 아예 회사 닫았다며? 웹에는 공지 하나만 뜨고 댓글도 못쓴다더라?"

 그나마 덜 취한 한 놈이 궁시렁거린다. 건너편에 있던 거머리 년이 깔깔거리며 옆에 앉은 죄 없는 덕현이 놈 어깨 위에 팔을 툭 올린다.

 "뭐어- 포털도 완~전 그 얘기로 도배더만?"

 거머리 저 놈, 혀 한 번 제대로 꼬였네. 저거저거, 손 봐라, 손 봐. 누가 보면 파리 잡는 줄 알겠다. 오늘 절대 저놈 뒤처리는 안 해야지. 저 놈뿐만 아니라 돌아가는 꼴을 보니 정신머리 챙긴 놈이 하나 없다. 대충 눈치 보다가 중간에 일찍 취한 척 테이블에 얼굴 박아야 할 것 같다.

 

 

 "아야, 니 포럼 봤냐? 거기도 장난 아니더라. 뭔 별 같잖은 가설이 다 돌아."

 "헐? 포럼 살아있었음? 아아- 거긴 인터 꺼 아니었지?"

 

 좀 덜 취한 놈들 하는 소리를 듣는 순간 묘한 궁금증이 생겼다. 안 땐 굴뚝에 연기 안 난다 였나, 사연 없는 무덤 없다 였나? 아니, 이게 중요한 게 아니고, 가설 중에도 가끔은 진실에 가깝거나 진실을 포함한 이야기가 꽤 있었다. 특히 드컨 포럼에는 의외로 게임 쪽 사람도 꽤 활동해서인지 나중에 확인해 보면 맞는 말도 꽤 나돌곤 했다. 그 사실을 떠올리자마자 바로 인터넷을 켰다.

 

 포럼에 접속해 보니 아직까지 서버 다운 안 된 게 기적일 정도로 수 많은 불만글, 추측글이 올라오고 있다. 얼핏 본 실검에서도 드컨, 인터미디어 같은 검색어가 한 자리씩 꿰차고 있었다.

 실시간으로 페이지가 넘어가는 글리젠의 홍수 속에서 저런 걸 다 읽을 수도 없고, 읽기도 귀찮아서 가장 인기 있는 글만 모아놓는 핫 리스트를 열었다.

 

 

 [Hot! 인터미디어 니들 에미리스? [256848] 작성자: 칠성다내꺼]

 [Hot! 아놔 나 그저께 정액권 연장했음ㅡㅡ [195442] 작성자: 팹시도내꺼]

 [Hot! 책임감 없는 인터. 잠적 타는 거 보면 부끄러운 줄은 아는 듯? 걍 닥치고 보상이나 해주시길. [194938] 작성자: 환타는니꺼]

 

 

 제목만 봐도 별 영양가 없을 게 뻔하다. 홀로그램에서 시선을 떼니 저쪽에선 거머리 년이랑 설탕물 놈이 잘도 시시덕대고 있다. 아이고, 저 두 놈 짝짜꿍 잘 맞는 게 누가 보면 둘이 사귀는 줄 알겠네.

 미친 놈들 쇼 하는 꼴을 보며 제일 가까이 있는 안주 아무거나 집어다 입에 넣었다. 저 두 놈 쌍싸다구 때리고 싶은 심정을 담아 죄 없는 낙지만 자근자근 씹었다.

 “음… 낙지…. 낙지… 아 맞다! 음성 검색, 쵸밥의 신세계!”

 

 [인터미디어 잠적 사태에 대한 개인적인 소견[291] 작성자: 쵸밥의신세계]

 

 그래, 이거다. 홀로그램 따위가 막지 못하는, 뭔가 맞는 말이 가득할 거 같은 저 아우라! 저 이름만 봐도 신뢰감이 팍 오른다. 쵸밥의신세계, 유명한 포러머는 아니지만 맞아떨어지는 가설을 꽤 많이 올렸던 사람이다. 물론 누구나 다 아는 사람이 아니라 나 같은 소수의 팬들만 아는 그런 유저다.

 “아, 내 입 안에서 희생되며 이렇게 좋은 생각을 떠올리게 해준 고 낙지군을 위해 묵념…”

 “강현성 드디어 미쳤냐? 케케케, 병신!”

 기뻐서 눈물이 날 것 같은 심정인데 저 밉상 같은 설탕물 새끼가 딴지를 건다. 아오, 저 새끼 저거 어디 동해에 팔아먹어 버릴까 보다!

 

 “덕현~ 말이 너무 심하잖아!”

 그래, 그래도 날 생각해 주는 건 이러니저러니 해도 고검 네놈 밖에 없구나. 감동스런 우리 우정에 눈물이…눈물… 눈….

 “쟤 원래 미쳤잖아! 쟤한테 지가 한 순간이라도 정상일거라는 희망 같은 거 주지마! 너무 잔인해!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저…저.. 썅누무새끼! 내가 니 그 감격스런 우정 때문에 피눈물이 난다! 이 거머리 같은 놈아!

 

 저놈들하고 말하면 연약한 내 마음만 더 다칠 것 같아서 그냥 홀로그램으로 고개를 돌렸다. 어쩐지 어구 우리 현성이 삐져쪄여? 강현성이 아니라 약현성이네~ 하는 윤덕현 썅년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지만 애써 무시했다.

 

 

 [제목: 인터미디어 잠적 사태에 대한 개인적인 소견

 안녕 여러분. 나 쵸밥이야.

 솔직히 나도 이번 잠적 사태에 대해서 화도 나고 어이도 없긴 해.

 근데 우리 업계에 꽤 흥미로운 소문이 하나 돌아다니더라고?

 예전에 한창 떠돌던 소문 있잖아, 드컨 가상현실 기술이 인터 꺼가 아니라는 거.

 그거 때문에 그 기술 주인들이 빡쳐서 드컨 싹 밀어버렸다더라고.

 

 솔직히 거기까진 나도 그냥 뜬소문인줄 알았지. 근데 이게 다른 소문하고 또 묘하게 맞물려.

 인터 애들이 드컨 밀리고 잠적했는데 가상현실 만든 애들도 그걸 아직 못 찾았대.

 근데 그게 라프리에트랑 연관이 있다는 소문도 있고… 확실히 그거면 못 찾긴 하지.

 여튼 그래서 인터 애들이 드컨 2? 여튼 어떤 가상 현실 게임으로 돌아올 거라던데? 이번 기술은 라프리에트 측에서 제공해준다던가.

 자세한 건 모르지, 뭐. 소문이란 와전되기 마련이니까.

 

 그치만 내 개인적인 바람은 인터가 드컨 2든 뭐든으로 돌아오는 거야.

 드컨 2 나오면 드컨 정액권 그쪽으로 넘겨준다던 말도 있더라고. 아이템이나 그런 건 어쩌는지 모르겠지만.

 나도 1년치 끊은 거 거의 9개월인가 남았다구.

 소송 카페 가입하려고 했는데 솔직히 난 거기 카페지기 마음에 안 들어. 그래서 더 이 소문 믿고 싶은걸지도?ㅋ

 

 그래 나도 내 글 묻힐 거 알아. 근데 차라리 그게 낫지.

 솔직히 포럼에 멋 모르고 설치는 초글링 많단 말이야? 걔들이 보고 초글초글 울어대면서 잉여짓만 안 했으면 좋겠어.

 그럼 여러분. 인터 돌아올 때까지 수고해!

 

 ps. 소견이랄 것도 없는 소문 나열이지만 이쪽 업계 소문 믿을만했잖아?]

 

 

 오오, 역시 나의 사랑 쵸밥님! 어쩜 그렇게 영양가 있는 소문들만 딱딱 물어오실까! 게다가 그걸 나누고자 하는 그 아름다운 홍익인간 정신이란!

 

 그나저나 나도 그 카페 매니저가 한스라서 가입 안 한 것도 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나는 딜런 때문에 치에스 성 이주할 정도로 팬이었다. 근데 그 미친 놈이 자꾸 자유국 털러 오니까 진짜진짜 싫었다! 하필 나서도 그런 놈이 나서서 소송 카페 꾸리니까 그냥 될 대로 되라는 심정이었다. 6개월 정도면 적은 돈은 아니지만 그 놈이랑 한 배를 타긴 좀 그래서 그냥 돈 버렸다 생각하고 말까 고민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런 꿀소문이라니! 이게 사실이라면, 아니 난 이미 한 80%는 사실이라고 믿고 있다. 그러니까 이건 하늘이 아직 날 버리지 않았다는 증거다. 역시 난 대한의 선아!

 

 “오올~ 강현성이~ 미쳤냐? 크큭.. 왜 오징어 잘근잘근 씹으면서 쳐웃어- 오징어 불쌍해, 뱉어어!”

 한참 감격에 겨워 웃고 있었는데 언제 온 건지 승재 놈이 꼬장을 부린다.

 “이 미친놈아.. 이거 오징어 아니고 낙지야… 정신차려…”

 “낙지, 난 널 낚지!”

 그러면서 내 뒷목 카라를 잡아 올리는데, 이건 뭐 미친 놈이 따로 없다.

 

 “승재야, 니가 술기운이 과해 정신을 놓았구나. 정신 차리렴. 정신 차리고 이거나 봐봐, 쵸밥 글이야, 좀 봐.”

 불쌍한 미친놈 하나에게 홀로그램을 들이밀었다. 이 놈도 평소에 나와 같은 쵸밥 신봉자였던 탓에 이 은혜로운 소문을 전하고 싶었다. 근데 그게 내 욕심이었나 보다.

 “초바압~? 초밥은 먹는 거고오 임마~ 큭큭…”

 이미 승재 놈 멘탈은 술나라 저 멀리 휴가간 상태 같다. 심지어는 내 이마를 톡톡 손가락으로 두들기는 게 마치 딱밤 같아서 기분 나쁘다. 어휴, 이 원수 같은 놈.

 

 “아 씨바!!! 난 못 참겠다! 난 소송 걸 거야!”

 내가 쵸밥쵸밥 거리면서 드컨 얘기를 한 거에 자극이라도 받았는지, 갑자기 재현이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소리쳤다. 어쩐지 사람들 시선이 이쪽으로 몰리는 것 같다. 아오, 저 미친놈이 쪽팔리게!

 

 “야, 현성아.”

 술이 깬 건지, 잠꼬대인지, 어쨌든 고검 놈이 똘망똘망한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나를 그렇게 개고생 시킨 게 억울하고 분해서 내일 아침에 좀 놀려주려고 했는데, 지금 정신이 들면 다 물거품이 될 것 같다. 하여튼, 오늘은 끝까지 날 괴롭게 만드는구나, 고거머리!

 

 “오냐, 고검 썩을 놈아. 이제 좀 정신 드냐?”

 기분이 절대 좋지만은 않아 퉁명스럽게 답했다.

 “있잖냐, 전쟁 나서 밖은 어지러운데, 딱 내가 우연히 벙커를 발견한 거야.”

 뜬금 없는 말에 고검을 돌아보니 눈이 맛이 가있다. 뭐야, 아직 덜 깬 거잖아. 안심이다. 내일 아침에 계획대로 고검 놀려먹기를 실행할 수 있을 것 같다.

 

 “딱 거기 숨었어. 밖이 어떻든 벙커 안은 견딜 만 했다?”

 “뭔 개소리냐, 우리가 전쟁 세대도 아니고.”

 계속되는 개소리에 진지하게 이 놈이 단단히 취한 게 아닌가 걱정이 된다. 보통 몇 시간 자고 나면 정신 차리던 놈이었는데. 이젠 슬슬 걱정까지 되려고 한다. 내가 지 걱정을 하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고검 놈은 계속 헛소리를 지껄이고 있다.

 

 “근데 있잖냐. 어느 날 그게 갑자기 펑! 펑 터져버린 거야.”

 개뿔, 그랬으면 니가 지금 이 자리에 살아 있겠냐! 정신차려 병신아! 라고 소리지르면서 고검 얼굴에 쌍싸대기를 갈길 뻔 했다. 근데, 그게 완전히 개소리는 아닐 수 있는 경우가 생각났다. 현대는 22세기, 최첨단의 시대다.

 “너, 설마 드컨 얘기냐.”

 아니라고 하면 당장 정신병원에 전화할 생각이었다. 아무리 취했어도 이건 좀 심한 거 같으니까.

 

 “어머, 검 자기, 나 두고 바람 피는 거야아아?”

 갑작스럽게 저쪽에서 나타난 윤덕현 썅놈이 끼어든다. 결국 고검의 답은 듣지도 못하고 덩치도 큰 두 사내 놈의 애정행각에 신물이 나서 고개를 돌려버렸다.

 

 밀려나오는 한숨을 푹 내쉬고 주위를 둘러보니 폐허가 따로 없다. 누구는 테이블에 엎어져서 알 수 없는 언어를 구사하고 있고, 누구는 허리가 양궁 선수 활마냥 휘어있지를 않나, 고검과 윤덕현은 여전히 커플 코스프레를 하고 있다. 어휴, 저 정신 나간 놈들.

 

 테이블 위에선 빈 소주병과 맥주병과 갖은 미친 짓을 해놓은 안주그릇이 처참함을 더한다. 어휴, 이 미친 놈들, 공대 출신인 걸 그렇게 티 내고 싶은가. 테이블 위에서 무슨 4차 대전이라도 치른 것처럼 난장판이다.

 

 “쉣. 오늘 정리는 내 차지냐.”

 결국 피하고 싶던 일을 직면하게 되었다. 또 다시 한숨이 나온다. 어휴, 내가 두 번 다시 이놈들하고 술 먹나 봐라. 드컨도 안 하니까 이제 흥칫뿡이다. 에라이 술고래 놈들아.

 

 “야, 야 일어나 미친놈아. 윤덕현, 뻗더라도 술값 내고 뻗어 이 병신아.”

 계산서를 보고 다른 놈들 지갑 대충 뒤져서 돈을 그러모았는데 설탕물 지갑이 실종상태다. 괜시리 짜증이 나서 퍽퍽 치면서 돈 내놓으라고 요구했다. 그랬더니 이 미친 놈이 한다는 소리가 가관이다.

 “내 돈은 검이가♥”

 내 친구가 게이가 되었다? 게이가 된 거 같다? 어휴, 게이 스멜.

 

 “미친, 떨어져 설탕탄산가스물 같은 놈아!”

 철썩 달라붙는 덕현이 놈을 털어내며 고검이 소리친다. 저 놈 드디어 정신 차린 건가? 음, 그나마 다행이다. 이제 사망자 처리의 반은 저놈한테 떠넘겨야겠다.

 “왜여, 너 나한테 빚 있잖아? 고오~거머리! 요오~ 깍쟁이!”

 아아, 그렇구나. 그럼 고검 지갑에서 내면 되는 구나. 고검 가방을 뒤져서 지갑을 다시 꺼냈다. 가방 가득 매운 사법고시 기출문제니 뭐니 하는 책들 때문에 약간 안쓰러운 마음이 든다. 그래도 그건 그거고, 뒤처리 분담은 다른 문제다.

 

 “강현성 옷 상표 핑크핑크해여! 얘 게이 같아!”

 저..저 병신이! 갑자기 가만히 테이블 위에 뻗어있던 승재 놈이 고개를 벌떡 들며 외친다. 아오, 깜짝이야! 심장 떨어지는 줄 알았다.

 “강현성 게이! 옷 게이! 옼게이! 오옼케이!”

 뭐라는 거야 저 병신이. 아, 쪽팔리니까 제발 좀 조용히 하면 좋겠다. 저놈이 아까 내 옷 낚아채더니, 그때 봤나 보다. 아놔, 이놈의 상표는 또 왜 분홍색이야! 그보다 느려! 자극에 대한 반응이 너무 느려! 니가 식물이냐고! 최승재 너 타이밍 이상해!

 

 “이보세요, 거기 당신. 왜 남의 가방 뒤져요?”

 심지어 설상가상으로 공식 거머리 고검이 내 다리를 붙잡고 따진다. 눈이 반쯤 맛이 간 게 제정신으로 돌아온 게 아니었나 보다. 그러고 보니까 이 놈이 술만 먹으면 제일 좋아하는 게 체크 면남방이었는데…

 대충 거머리 놈을 떠넘기려고 지금 체크 남방 입은 놈이 누가 있나 쭉 훑어보았다.

 

 '젠장! 그 제물이 나였냐!'

 왜 이놈의 옷을 입고 고검과 함께하는 술자리에 나온 건지, 내 자신이 원망스러워지는 순간이다. 하… 내 멍청함을 누굴 탓할까. 근데 일단 집은 가야겠고, 그러려면 계산도 해야겠다. 나는 구원의 손길을 기다리며 외쳤다.

 “형! 여기 계산해 주세요!”

 제발요, 라는 간절한 심정을 담은 말은 속으로 삼켜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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