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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현대물
극악 교회
작가 : 멍덕꿀
작품등록일 : 2019.9.1

악이 상식이 된 사회에서 끝까지 선을 수호하며 살아가는 자들의 이야기

 
4장 5화
작성일 : 19-10-08 20:23     조회 : 217     추천 : 0     분량 : 9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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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장 5화

 

 

 

 

  “목사님……. 뭔가 알고 계신 거예요?”

 

 

 

 

 

 

 

 이세은은 심상치 않은 기색을 느끼고 덩달아 긴장했다.

 

 

 

 

 

 

 

 “신혜령 기자가 저에게 한 말이 있어요. 지금 조사 중이라 단정 지을 순 없지만, 살인 사건과 방주의 완성 사이에 상당한 연계성이 있다고요…….”

 

 

 

 

 

 

 

 이세은은 뒤통수를 세게 맞은 기분이었다. 짐작조차 해보지 않은 가정이었다. 예승아 목사는 살얼음판 위를 걷듯 조심스레 한 마디씩 꺼내었다.

 

 

 

 

 

 

 

 “구의민은 비밀리에 방주를 시범 운영하고 있어요. 아직 불완전한 상태인데도 사람의 뇌를 방주에 이식시킨 거예요. 말이 좋아 시범 운영이지 임상 실험이나 다름없어요. 그런데 그가 방주를 개방한 시기가 공교롭게도 피해자가 발견된 때와 일치된다더군요.”

 

 

 

 

 

 

 

 이세은은 숨이 턱 막혔다. 좀 전까지만 하더라도 구의민의 속셈을 알 것 같은 확신에 차 있었지만 자신이 알아낸 것은 빙산에 일각에 지나지 않은 셈이었다. 그러자 땅이 꺼지듯 자신감이 훅 떨어졌다.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은 구의민의 적수가 될 깜냥이 없었다. 착 가라앉은 그녀의 분위기를 감지한 예승아 목사는 걱정이 깔린 목소리로 말했다.

 

 

 

 

 

 

 

 “아무래도 신자님은 이 일에서 물러나는 게 좋겠어요. 만약 고지훈의 말이 사실이라면 신자님 또한 구의민의 표적이란 뜻이에요.”

 

 

 

 

 

 

 

 이세은은 말없이 생각에 잠겼다. 그러다 무겁게 입을 뗐다.

 

 

 

 

 

 

 

 “아니요. 전 놀이동산 사업에 초청된 적이 한 번도 없어요. 그러니 제가 당할 리는 없을 거예요. 고지훈의 말을 전적으로 신뢰할 수도 없고요.”

 

 

 

 

 

 

 

 “하지만 고지훈이 직접적으로 말했다면서요. 신자님이 방주의 완성에 이용될 거라고.”

 

 

 

 

 

 

 

 “뭔가 착각했겠죠. 걱정 마세요. 제가 한 번 만나볼게요.”

 

 

 

 

 

 

 

 이세은은 예승아 목사를 안심시키고 자리를 떴다.

 

 

 

 

 *

 

 

 

 

  이세은은 영성훈련실로 향하던 중 문판성 실장을 만났다. 방주에 대한 생각에 푹 빠져 있던 그녀는 속을 들킨 듯 깜짝 놀라서 과한 반응을 보이며 물러섰다. 문판성은 방주를 개발하는 모든 과정에 관여한 핵심 인물이었다. 순간 이세은은 문판성에게 시범 운영에 대해 묻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그러나 그 질문 자체로 의심을 살 수 있다고 판단하고 이내 충동을 잠재웠다. 더구나 그는 ‘데몬’ 시스템의 비밀을 알고 있는 몇 안 되는 인물 중 한 명이었다. 평생을 데몬교에 헌신하고 뼛속까지 충성심을 새긴 자에게 껄끄러운 말을 던져서 좋을 일이 생길 리가 없었다.

 

 

 

 

 

 

 

 이세은은 침착하게 오른손의 새끼손가락을 왼쪽 어깨에 갖다 대며 시선을 내리깔았다. 데몬교 내에서 통용되는. 고위 성직자에게 존경을 표하는 손짓이었다. 그리고 문판성이 지나가도록 옆으로 비켜섰다. 문판성은 그대로 그녀를 지나치는 듯 하다가 뒷걸음질을 하며 그녀 옆에 우뚝 멈춰 섰다. 이세은은 심장이 벌렁거렸지만 슬쩍 고개를 들고 문판성과 눈을 맞추었다. 문판성이 여유 가득한 미소를 띠며 말했다.

 

 

 

 

 

 

 

 “여기서 다 보는군요.”

 

 

 

 

 

 

 

 “네. 실장님.”

 

 

 

 

 

 

 

 “무슨 볼일로 이곳을 찾으셨죠?”

 

 

 

 

 

 

 

 이세은은 쉽게 대답을 찾을 수 없었다. 교회 내에서 고지훈의 입지를 따져보면 그럴 수밖에 없었다. 고지훈을 고깝게 여기 않을 사람을 찾기가 힘들었으니. 그러나 그녀의 침묵에서 답을 읽어낸 듯 최판성이 아는 체를 해왔다.

 

 

 

 

 

 

 

 “고지훈에게 무슨 할 말이라도 있습니까?”

 

 

 

 

 

 

 

 이세은은 당혹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그녀는 흔들리는 눈빛으로 최판성을 바라보았다. 최판성이 단순히 떠보는 건지 확신을 갖고 묻는 건지 헷갈렸다. 그는 흔들림 없이 이세은을 바라보며 말했다.

 

 

 

 

 

 

 

 “신자님의 눈을 보니 상당히 다급한 모양이군요. 하긴 살인을 막아야 하는 신자님으로서는 지체할 시간이 없겠지요.”

 

 

 

 

 

 

 

 “무, 무슨 말씀이신지…….”

 

 

 

 

 

 

 

 “역시 신자님은 숨기는 데 서투시군요.”

 

 

 

 

 

 

 

 이세은은 마음을 단단히 먹고 문판성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문판성의 무뚝뚝한 눈빛에서는 어떤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다. 문판성은 총구를 겨누듯 이세은의 눈을 똑바로 노려보며 말했다.

 

 

 

 

 

 

 

 “제가 신자님을 지켜보고 있다는 걸 잊지 마십시오.”

 

 

 

 

 

 

 

 문판성은 냉랭한 경고를 마지막으로 자리를 떴다. 이세은은 갑자기 맞닥뜨린 상황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대비도 못하고 상대방에게 여러 방 얻어맞은 듯 얼떨떨했다.

 

 

 

 

 

 

 

 이세은은 심란한 상태로 영성훈련실로 들어갔다. 고지훈이 기다렸다는 듯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이세은은 심각한 표정으로 그에게 따졌다.

 

 

 

 

 

 

 

 “문판성 실장을 복도에서 만났어요. 당신이 나에 대해 얘기한 건가요?”

 

 

 

 

 

 

 

 “아아, 신경 쓸 거 없어요. 실장님은 당신을 해칠 수 없을 겁니다.”

 

 

 

 

 

 

 

 고지훈의 무성의한 대꾸에 이세은은 발끈 성을 냈다.

 

 

 

 

 

 

 

 “도대체 무슨 일을 꾸미는 거예요?”

 

 

 

 

 

 

 

 “과민하게 반응할 것 없다니까요. 문판성은 그저 데몬교의 차기 수장이 되고 싶은 것뿐이에요.”

 

 

 

 

 

 

 

 “당신이 문판성을 끌어들인 이유가 방주 때문인가요?”

 

 

 

 

 

 

 

 “가까이 둬서 나쁠 건 없죠.”

 

 

 

 

 

 

 

 “방주가 이번 살인 사건과 관련이 있는 게 확실하군요.”

 

 

 

 

 

 

 

 고지훈은 의미심장한 웃음을 짓더니 어깨를 으쓱해보였다. 이세은은 날 선 눈빛으로 그를 똑바로 노려보았다.

 

 

 

 

 

 

 

 “그렇다면 살인은 방주가 완성될 때까지 계속되겠군요. 당신은 그걸 방치할 테고 말이죠.”

 

 

 

 

 

 

 

 고지훈은 답답하다는 듯 한숨을 푹 내쉬고 훈수를 두었다.

 

 

 

 

 

 

 

 “신자님. 제발 나서지 좀 말고 가만히 계시죠. 사람 좀 몇 명 죽는 게 무슨 대수입니까? 그것도 별 볼일 없는 작자들인데.”

 

 

 

 

 

 

 

 그는 쯧 소리를 내며 다리를 건들건들 흔들었다. 이세은은 치솟아 오르는 화를 억누르며 말했다.

 

 

 

 

 

 

 

 “다음 대상이 누군지 당장 말해요.”

 

 

 

 

 

 

 

 “그건 어렵겠는데요. 계획이 틀어지는 건 싫거든요. 게다가 제가 말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지금 분위기를 좀 보십시오. 자신이 다음 피해자가 될 거라고 자신해서 밝힐 거라고 생각합니까? 무슨 꼴을 당하라고? 어차피 죽을 거라면 곱게 죽는 게 낫죠.”

 

 

 

 

 

 

 

 “더러운 자식. 언젠가 당신도 무참하게 죽게 될 거야. 죽기 직전에야 알게 될 거야. 당신의 삶이 얼마나 추잡하고 저급했는지.”

 

 

 

 

 

 

 

 그러나 그녀의 말은 고지훈에게 아무런 타격도 가하지 못했다. 오히려 고지훈은 즐거운 듯 보였다.

 

 

 

 

 

 

 

 “이세은 신자님도 좀 발전했군요. 누군가에게 저주를 퍼부을 줄도 알고. 맞아요. 그렇게 좀 사는 겁니다. 이제 말에서 행동으로 발전하면 되겠군요.”

 

 

 

 

 

 

 

 “잘 들어. 데몬교는 인류를 멸망시키기 위해 탄생한 종교야. 지금부터 무슨 수를 써서라도 꼭 방주가 완성되지 않도록 막겠어.”

 

 

 

 

 

 

 

 “오, 불쌍한 세은 씨. 이보세요. 당신은 이미 지대한 공헌을 했어요. 상황이 이렇게 착착 풀리는 건 다 당신의 공이라 이 말입니다.”

 

 

 

 

 

 

 

 고지훈은 여유로운 발걸음으로 탁자 쪽으로 향한 후 임재준의 상반신 사진이 들어 있는 액자를 손가락으로 쓱 훑었다. 이세은은 그쪽으로 주춤주춤 걸음을 옮기며 물었다.

 

 

 

 

 

 

 

 “방금 뭐라고 지껄였지?”

 

 

 

 

 

 

 

 “당신이 찾는 성경학교 참가자 명단 말입니다. 정 얻고 싶다면 최태준 장로를 한 번 찾아가 보시죠. 아마 반가워할 겁니다.”

 

 

 

 

 

 

 

 “기어코 최 장로에게 팔아넘겼군.”

 

 

 

 

 

 

 

 “그게 중요한 게 아닙니다. 가서 한 번 빌어나 보세요. 최 장로가 당신이 원하는 걸 내어줄지도 몰라요. 그는 당신에게 큰 빚을 졌어요.”

 

 

 

 

 

 

 

 고지훈은 눈썹을 들어 올리며 기괴한 미소를 지었다. 이세은은 그가 명단을 내줄 마음이 전혀 없다는 확신이 들었고 그 순간 미련 없이 자리를 떴다.

 

 

 

 

  *

 

 

 

 

 그녀가 밖으로 나오자 기다렸다는 듯 싸늘한 정적이 그녀를 감쌌다. 근방에 인기척이라곤 전혀 없었다. 홀로 버려진 듯한 불안감에 그녀는 다급히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 때 한 무리의 신도가 우르르 한 곳으로 몰려가는 것을 발견했다. 그들의 흥분은 이세은에게 알 수 없는 불길함을 불러일으켰다. 그녀는 서둘러 그들의 뒤를 따랐다.

 

 

 

 

 

 

 

 거리를 유지하고 갔음에도 그녀의 귀에 앞선 신자들의 대화가 간간이 들려왔다. 그들은 거친 욕설을 섞어가며 누군가를 향한 강한 혐오를 드러냈다. 그 대상은 구의민의 표적물로 짐작되는 위장 신자였다.

 

 

 

 

 

 

 

 “그런 새끼는 발견 즉시 죽여 버려야 해. 구의민이 죽이기 전에 우리 손으로 끝장내야 한다고.”

 

 

 

 

 

 

 

 “구의민은 왜 쓰레기 같은 작자를 이 신성한 공간에 끌고 온 거지?”

 

 

 

 

 

 

 

 “알게 뭐야. 분명한 건 구의민이 그 모자라고 덜떨어진 것들을 싸고돈다는 거지. 수치스러워서 못 견디겠네, 정말.”

 

 

 

 

 

 

 

 이세은의 안색은 급격히 어두워졌다. 설사 고지훈에게서 명단을 받아 다음 희생자를 미리 알았던들, 이런 상황에서라면 도무지 그들을 지킬 자신이 없었다. 일단, 그들로부터 신뢰를 얻는 것부터 어려웠다. 자신이 다음 희생자가 될 거라는 걸 알면서도 누구에게 감히 마음을 연단 말인가. 이세은은 착잡한 마음으로 걸음을 옮기면서 여전히 귀를 쫑긋 세웠다.

 

 

 

 

 

 

 

 “근데 말이야, 난 이해가 잘 안 되는데. 구의민이 뒤에서 선의 명맥을 이어왔다면, 왜 연쇄 살인을 저지른 거지? 오히려 보호해야 하는 거 아닌가?”

 

 

 

 

 

 

 

 “미련하긴. 그게 연기라는 거야. 일종의 이미지 세탁이지. 그간 자신의 행적이 들통 날 것 같으니까 보란 듯이 처단을 한 거야. 이념을 의심받던 전적이 있으니 제 발 저린 거지, 뭐. 그리고 항간의 말로는 사실 그가 살인자가 아니라…….”

 

 

 

 

 

 

 

 갑자기 화자가 목소리를 확 낮추는 바람에 이세은은 뒷말을 미처 듣지 못했다. 하지만 그보다 더 그녀의 집중을 빼앗는 상황이 있었으니, 바로 눈앞에서 박물관을 점령한 수많은 군중이었다.

 

 

 

 

 

 

 

 박물관을 에워싼 신도들은 때 아닌 궐기 대회를 열고 있었다. 주최자가 단상에 올라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구호를 선창했고 수많은 신도들이 주먹을 불끈 쥐고 팔을 하늘로 뻗치며 따라 외쳤다. 이세은이 주목한 것은 사람들이 아니라 박물관 외벽의 조각이었다. 인류가 악의 본성을 가감 없이 드러낸 역사적 사건과 관련된 유물과 자료를 보관하고 전시하는 공간인 그곳은, 분노에 가득 찬 사람들이 전쟁을 벌이는 장면이 건물의 세 면에 걸쳐 양각으로 부조되어 있었다.

 

 

 

 

 

 

 

 이세은은 바쁘게 주위를 살폈다. 설마, 그 사이에 또 시체가 발견된 것인가, 하는 마음에 조급함이 밀려왔다. 하지만 분위기를 살피던 그녀는 이내 자신이 성급한 결과를 내린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군중이 집결한 이유는 시체가 발견되어서가 아니라 구의민과 그의 표적물에게 경고를 던지기 위해서였다.

 

 

 

 

 

 

 

 그렇다고 마음을 놓기엔 일렀다. 군중의 흥분이 절정에 이르자 간부들의 주도로 난데없이 화형대가 세워졌다. 이세은은 그 의미를 이해할 수 없었다. 설사 화형식을 거행한들 인형을 세워두고 시늉만 하겠거니 짐작했다. 이렇게 빠른 시간 안에 다음 표적을 찾았다는 게 아무래도 비현실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녀의 생각을 정면으로 위반하는 장면이 곧 눈앞에서 벌어졌다. 멀쩡히 살아 있는 사람이 사람들에게 이끌려 화형대 위로 끌려왔기 때문이다. 그 사람이 누구인지는 알 수 없었다. 머리통이 검은 천으로 씌워져 있었고 헐거운 수도복 차림이어서 체형을 분간하기 어려웠다.

 

 

 

 

 

 

 

 그 새 군중은 더 불어나 있었고 이세은은 어느 새 무리 한가운데로 밀려들어갔다. 그녀는 정신없이 사람들을 헤치며 어떻게든 가장자리로 몸을 빼내려 했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은 조그만 틈도 내주지 않고 그녀를 꼼짝달싹도 못하게 만들었다. 곧이어 주최자의 낭독이 이어졌다.

 

 

 

 

 

 

 

 “지금부터 처형자의 신상과 죄목을 여러분께 낱낱이 고해바치겠습니다. 그전에 신도 여러분께 진심어린 감사의 말씀 올립니다. 여러분의 열정 덕에 빠른 시간 내에 다섯 번째 위장 신도를 찾아낼 수 있었습니다. 이로써 데몬교의 진정한 주인은 신도라는 것을 만방에 알렸다고 생각합니다. 자, 이제 시작하겠습니다. 데몬교의 교리를 거스르면서 버젓이 데몬교 신자로 행세해온 이 자는 바로 영광 교회의 김은미입니다.”

 

 

 

 

 

 

 

 이세은은 눈이 번쩍 뜨였다. 그럴 리 없다고 서둘러 자신을 다독여보았지만 심장은 이미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쿵쾅거리고 있었다. 낭독자가 읊는 정보를 들으면 들을수록 이세은은 현실을 부정할 의욕조차 잃고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었다. 노주원 신자의 죽음에 누구보다 가슴 아파하던 그의 연인, 자신이 아는 그 김은미가 맞았다. 생각해보면 늘 다음 표적으로 염두하고 지켜보았어야 했다. 사랑의 감정은 두 사람이 키워온 것인데 처형은 노주원 신자만 당했으니 당연했다. 하지만 이세은은 칠계명에 대응되어 살인이 진행된다는 가정에 사로잡혀, 색욕 조항이 지나간 이상 김은미가 처형당할 일은 없을 거라고 속단했던 것이다. 이세은은 자책과 절망에 휩싸인 채 눈을 질끈 감았다. 그녀는 낭독자의 말이 하나하나 날카로운 비수로 변해 가슴에 쿡쿡 박히는 것을 느꼈다. 그녀는 그 통증을 자신의 어리석음이 불러들인 대가로 받아들였다.

 

 

 

 

 

 

 

 “김은미 신자는 놀랍게도 놀이동산에 초청된 이력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 당시 이 여자는 자신이 얼마나 영광스런 대접을 받는 건지 조금도 알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참석을 거부하기까지 했습니다. 여차여차한 과정을 거쳐 겨우 참석한 후에는 소극적인 태도로 다른 이용객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습니다. 김은미 신자가 참석한 놀이동산은 일명 ‘분노의 역사’라고도 불리는 이 박물관이 표방하는 덕목, 그렇습니다, 분노를 주제로 한 시설이었습니다. 자연스레 구상이 떠오르지 않습니까? 맞습니다, 그곳에서는 어떤 제한도 없이 살상이 가능합니다. 백병전의 천국이지요. 그곳에서는 무차별한 폭력이 완전히 개방되어 우리 안의 악을 일깨우고 단련하는 데 아주 유익하지요. 게다가 원초적인 즐거움을 선사한다는 점에서 유쾌하기까지 한 더할 나위 없는 최상의 시설입니다. 일곱 가지의 놀이 중 가장 선호도가 높았다는 점만 보아도 그 위대함을 짐작할 수 있겠지요. 전쟁! 말만 들어도 짜릿하지 않습니까? 단연코 그것보다 화려한 악행은 없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현실에서는 우리의 욕망을 채워줄 만큼 충분한 전쟁을 벌일 수 없지요. 너무 많은 약자들이 죽으면 그만큼 착취할 수 있는 인력 또한 줄어들고 결국 부와 권위가 축소되기 때문입니다.”

 

 

 

 

 

 

 

 넋 놓고 연설을 듣던 이세은은 불쑥 뒤에서 뻗친 손을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 그 팔의 주인은 신혜령 기자였다. 그녀는 다급하게 이세은의 팔을 낚아채며 말했다.

 

 

 

 

 

 

 

 “어서 여기서 벗어나야 해요.”

 

 

 

 

 

 

 

 신혜령은 무지막지하게 사람들을 헤집고 뒤로 향했다. 이세은은 영문도 모른 채 그녀의 손에 끌려갔다. 무리에서 한참 떨어진 후에야 신혜령은 이세은을 놓아주었다. 신혜령이 붙잡고 있던 팔목이 벌겋게 변해 있었다. 하지만 이세은은 고통을 느낄 새도 없이 참았던 말을 빠르게 내뱉었다.

 

 

 

 

 

 

 

 “저기 김은미 신자가 붙들려 있어요. 이 미친 작자들이 김은미 신자를 불태울 작정인가 봐요. 어떻게 알았는지 모르겠지만 김은미 신자의 이력이 모두 들통 나고 말았어요.”

 

 

 

 

 

 

 

 신혜령은 놀란 기색 없이 냉철하게 말했다.

 

 

 

 

 

 

 

 “잘 들어요. 곧 손잡이 세력이 이곳으로 쳐들어올 겁니다. 혼전 상황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몰라요. 어서 이곳을 떠나야 해요.”

 

 

 

 

 

 

 

 “그게 무슨 소리세요?”

 

 

 

 

 

 

 

 “엄중한 경계 태세인 이곳을 제가 어떻게 뚫고 들어왔을 것 같아요? 손잡이 세력이 이미 출입 체계를 무력화시켰어요. 예승아 목사님도 이미 피신하신 상태입니다. 김은미 신자는 손잡이 세력이 구출할 거예요. 그러니 빨리 움직여요!”

 

 

 

 

 

 

 

 신혜령의 다급한 외침에 이세은은 지체할 시간이 없는 위급 상황이라는 것을 눈치 챘다. 그리고 신혜령을 따라 도서관 쪽으로 대피했다. 이세은은 물어보진 않았지만 그곳을 대피처로 선택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곧 격전지가 될 박물관과 안전거리를 유지하면서도 상황을 살피며 대처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였다.

 

 

 

 

 

 

 

 도서관은 텅 비어 있었다. 신혜령은 6층 전자 자료실로 이세은을 데려갔다. 심각한 얼굴로 컴퓨터 화면을 들여다보고 있는 예승아 목사가 거기 있었다. 예승아 목사는 안도의 한숨을 가볍게 내쉬며 이세은을 맞았다.

 

 

 

 

 

 

 

 “늦지 않아서 다행이네요.”

 

 

 

 

 

 

 

 “목사님, 도대체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죠?”

 

 

 

 

 

 

 

 예승아 목사는 다시 컴퓨터로 시선을 옮기며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구의민이 작성한 자료가, 그러니까 표적으로 삼은 신자의 신상과 이력이 담긴 자료가 고스란히 유출됐어요.”

 

 

 

 

 

 

 

 “뭐라고요?”

 

 

 

 

 

 

 

 이세은은 믿을 수 없다는 듯 컴퓨터 앞으로 달려갔다. 이미 사망한 네 신자는 물론, 김은미 신자와 또 다른 신자까지 총 여섯 명의 선발 근거에 대한 내용이 원본 통째로 공개되어 있었다.

 

 

 

 

 

 

 

 “말도 안 돼……. 설마 고지훈이 벌인 짓인가요?”

 

 

 

 

 

 

 

 “그럴 가능성은 낮아요. 이 정보를 게시한 곳이 데몬교 내부 전산망인 걸 보면 데몬교 중역일 가능성이 더 높아요. 더구나 고지훈으로서는 이 정보를 공개할 이유가 전혀 없고요.”

 

 

 

 

 

 

 

 “혹시 최판성 실장은 아닐까요? 아까 우연히 만났는데 말하는 게 아무래도 고지훈과 결탁한 것 같아요.”

 

 

 

 

 

 

 

 “중요한 건 이 자료가 몰고 올 여파예요. 일단 당장 벌어진 일을 보세요. 김은미 신자 다음은 효광 교회의 하동훈 신자가 위험에 처할 거예요. 일단 그의 신변을 확보하는 게 최우선이에요.”

 

 

 

 

 

 

 

 신혜령 기자가 말을 받아 설명을 덧붙였다.

 

 

 

 

 

 

 

 “찾아야 할 사람들이 또 있어요. 바로 표적이 된 신자들의 소속 교회의 담당 목사입니다. 저번 징계위원회 때 소환된 외부 위원이 누구였는지 기억하세요?”

 

 

 

 

 

 

 

 이세은은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예승아 목사가 거기 앉아있었다는 것 말고는 또렷이 떠오르는 게 없었다. 양하섭과 기호진에게 신경을 쏟느라 그다지 주의 깊게 보지 않았던 것이다.

 

 

 

 

 

 

 

 “글쎄요, 잘…….”

 

 

 

 

 

 

 

 그러다 신혜령의 말뜻을 이해하고 탄성을 내뱉었다.

 

 

 

 

 

 

 

 “그럼 그 때 초청된 여섯 명이, 구의민에게 위장 신자를 제물로 바친 교회의 수장들…….”

 

 

 

 

 

 

 

 “맞아요. 이미 그 때부터 최태준은 누가 죽을지 알고 있던 겁니다. 우리는 이미 변을 당한 신자의 담당 목사에만 집중했지만 사실은 나머지 목사들이 더 중요했어요. 저도 자료를 본 뒤 많이 당황했습니다. 이게 이런 식으로 일치할 줄은…….”

 

 

 

 

 

 

 

 신혜령 씁쓸한 패배감을 악물고 뒷말을 흐렸다. 예승아가 애써 냉철함을 유지하며 말했다.

 

 

 

 

 

 

 

 “반성이나 후회는 나중에 합시다. 일단은 그 목사들이 한꺼번에 자취를 감췄다는 것만 생각해요. 조사해보니 여섯 명이 교회를 나선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어요. 자진해서 몸을 숨긴 게 아니라면 누군가 그들을 감금했다는 뜻이겠죠. 정황상 후자일 가능성이 높고요. 그리고 가장 유력한 용의자는 아무래도……최 장로가 되겠죠.”

 

 

 

 

 

 

 

 신혜령이 고개를 무겁게 끄덕이다 입을 열었다.

 

 

 

 

 

 

 

 “주목할 점은 한 가지 더 있어요. 공개된 정보에 따르면 구의민의 표적이 단 여섯 명이라는 겁니다. 하지만 이제껏 7계명에 맞춰 살인을 해온 사람이 굳이 희생자를 한 명 줄일 리 없어요. 마지막 한 명에 관한 정보가 왜 누락되었는지를 밝혀야 합니다.”

 

 

 

 

 

 

 

 그 순간 바깥에서 허공을 뒤흔드는 함성이 들려왔다. 세 사람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창가로 달려갔다. 철저히 무장한 세력이 무방비 상태의 데몬교 신자들을 향해 무섭게 돌진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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