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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현대물
극악 교회
작가 : 멍덕꿀
작품등록일 : 2019.9.1

악이 상식이 된 사회에서 끝까지 선을 수호하며 살아가는 자들의 이야기

 
4장 3화
작성일 : 19-10-08 20:21     조회 : 225     추천 : 0     분량 : 78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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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4장 3화

 

  식당을 빠져나온 이세은은 시체를 가매장해둔 묘지로 바쁘게 걸음을 옮겼다. 거기서 사체의 상태에 대해 매장꾼의 말을 들어볼 생각이었다. 이세은은 더 일찍 시체를 확인하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시체에 남아 있는 범인의 흔적을 간과할 수는 일이었다. 이제껏 사건 현장에서 본 시체는 피 웅덩이 위에 누워 있어 가까이서 상태를 살펴볼 수 없었다. 게다가 한치윤 신자의 주검은 직접 본 적도 없었다.

 

 

 

 

 

 

 

 그녀는 혹시 묘지에 발도 들이지 못할까봐 걱정했다. 묘지에 안장된 이들은 데몬교의 발전과 전파에 지대한 공헌을 세운 사람들이었고, 그만큼 관리가 철저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따로 출입증을 교부하는 것은 아니었고 정해진 시간 안에서 어떤 신자든 자유롭게 방문할 수 있었다. 교육적인 효과를 고려하여 정해진 방침이었다. 참배하러 왔다는 핑계를 둘러대면 어렵지 않게 통과할 수 있을 테지만 행여 최근 벌어진 일로 출입이 제한되지는 않을지 그녀는 걱정이었다.

 

 

 

 

 

 

 

 그녀의 걱정은 다행히도 기우에 그쳤다. 묘지를 지키는 파수꾼이 자리를 비운 상태였기 때문이다. 이세은은 속으로 쾌재를 부르고 살금살금 입구를 지나쳤다. 일정한 구획에 따라 배치되어 정기적으로 정성어린 손길을 받으며 잘 정돈된 무덤들과 달리, 통로에서 벗어난 구석에 최근 흙을 파헤쳤다 다시 덮어둔 흔적이 보이는 어수선한 자리가 그녀의 눈에 띄었다. 그녀는 천천히 그쪽으로 다가갔다. 기우뚱하게 앉은 누군가의 뒷모습이 덤불에 가려졌다가 나타났다. 그녀는 흠칫 놀라며 그 자리에 멈춰 섰다. 미지의 남자를 유심히 지켜보던 이세은은 그가 바로 파수꾼이라는 걸 눈치 챘다. 한줄기 바람이 불자 파수꾼의 희끗한 머리칼이 휭 떠올랐다 가라앉았다. 파수꾼의 옆에는 술병이 나뒹굴고 있었고 그의 손에도 가득 찬 병이 들려 있었다. 이세은은 살며시 그에게 다가갔다. 파수꾼은 힐끗 그녀를 올려다보더니 무심하게 술을 들이켰다. 그는 넋이 빠진 듯 바닥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무슨 일이오.”

 

 

 

 

 

 

 

 불콰한 얼굴과 달리 그는 비교적 정확한 발음으로 물었다. 이세은은 어려운 기색을 역력히 드러내며 말했다.

 

 

 

 

 

 

 

 “이 자리가 혹시 이번에 희생된 분들이 묻혀 있는 곳인가요?”

 

 

 

 

 

 

 

 “그렇소.”

 

 

 

 

 

 

 

 “가능하다면 주검을 매장한 분을 만나고 싶습니다.”

 

 

 

 

 

 

 

 파수꾼은 이렇다 저렇다 아무 말이 없다가 대뜸 자신의 옆자리를 손바닥으로 툭툭 쳤다. 이세은은 경계를 늦추지 않은 채 조심스레 그의 옆에 앉았다. 파수꾼이 여전히 땅바닥에 시선을 고정한 채 물었다.

 

 

 

 

 

 

 

 “이유를 물어도 되겠소?”

 

 

 

 

 

 

 

 “시체가 어떤 상태였는지 자세히 듣고 싶습니다.”

 

 

 

 

 

 

 

 “그걸 왜 들어야 하지?”

 

 

 

 

 

 

 

 “……누가 이 분들을 죽인 건지 알고 싶어서요.”

 

 

 

 

 

 

 

 파수꾼은 한동안 말없이 허공을 주시하다가 술을 벌컥벌컥 들이켜고 다시 입을 열었다.

 

 

 

 

 

 

 

 “자네는 질문을 다시 생각하는 게 좋겠소.”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누가 죽였는지가 아니라 왜 죽을 수밖에 없었는지를 따져보면 답은 의외로 쉽게 나올 거요.”

 

 

 

 

 

 

 

 “혹시 이유를 알고 계시나요?”

 

 

 

 

 

 

 

 “그거야 죽은 사람이 잘 알겠지…….”

 

 

 

 

 

 

 

 이세은은 알쏭달쏭한 표정으로 파수꾼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그의 얼굴에 패인 주름이 그가 품고 있는 괴로움을 그대로 드러낸 무늬처럼 보였다. 파수꾼이 눈을 붉히며 말했다.

 

 

 

 

 

 

 

 “그러고 보면 양심은 참 거추장스러운 거야. 데몬의 말이 맞아. 양심은 삶을 거부하기도 하니까. 그런 건 될 수 있는 한 빨리 버려야지…….”

 

 

 

 

 

 

 

 이세은은 그가 무슨 말을 하는 지 도통 알아들을 수 없었다. 다만 그가 위태로워 보여서 쉽게 자리를 뜰 수 없었다. 파수꾼은 자신을 감추려는 듯 고개를 푹 숙이고 몸을 둥글게 말았다. 이내 등이 들썩이더니 흐느끼는 소리가 새어나왔다. 이세은은 그를 위로할 생각도 하지 못하고 조용히 기다렸다. 그녀는 그의 슬픔이 마음 깊은 곳에 숨겨져 있던 낯선 공간을 울리도록 내버려두었다. 그의 울음은 익히 알고 있던 그 어떤 것과 완전히 달랐다. 평소 들을 수 없는 주파수의 소리를 듣는 것처럼 오묘한 데가 있었다. 그녀는 그의 슬픔이 어디서 비롯된 것인지 감히 짐작할 수 도 없었다.

 

 

 

 

 

 

 

 마침내 그가 고개를 들었을 때 그녀는 그의 얼굴을 보고 눈물이 핑 돌았다. 그의 눈주름에 미처 흐르지 못한 눈물이 맺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의 표정만은 차갑게 식어 있었다. 그가 자조적인 웃음 흘리며 툭 질문을 던졌다.

 

 

 

 

 

 

 

 “이 밑에 몇 명이 묻혀 있다고 생각하세요?”

 

 

 

 

 

 

 

 이세은은 순간 등 뒤가 싸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의 육성이 섞이는 순간 공기의 온도가 낮아진 것 같았다. 그녀는 홀린 듯 대답했다.

 

 

 

 

 

 

 

 “그야 세 명…….”

 

 

 

 

 

 

 

 파수꾼은 무겁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리고 옹이가 박힌 듯 굽고 앙상한 검지를 들어보였다. 그가 회한이 서린 목소리로 말했다.

 

 

 

 

 

 

 

 “매장한 사람을 찾는다고 하셨소. 바로 내가 묻었소. 내 손으로 세 구를 모두 파묻었지. 그리고 그걸 파낸 사람도 바로 나오.”

 

 

 

 

 

 

 

 이세은은 눈이 동그래져서 파수꾼을 바라보았다.

 

 

 

 

 

 

 

 “파, 파내다뇨?”

 

 

 

 

 

 

 

 “최 장로가 시켰소. 소각장에 모두 태워버리라고.”

 

 

 

 

 

 

 

 이세은은 말문이 막혔다. 최 장로의 일처리에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 파수꾼은 고개를 넘듯 힘겹게 말을 이어갔다.

 

 

 

 

  “하지만 난 한치윤 신자의 시신을 태우지 않았소. 그럴 수 없었소. 그가 내게 베푼 호의를 생각하면 차마…….”

 

 

 

 

 

 

 

 이세은은 비로소 그가 쭉 응시하던 곳에 누구의 주검이 묻혀 있는지 알아챘다. 파수꾼은 괴로운 듯 얼굴을 찌푸리며 숨겨온 사정을 털어놓았다.

 

 

 

 

 

 

 

 “나는 평생을 밑바닥 인생을 전전하며 살아왔소. 변변한 재산 하나 지키지 못하고 강자에게 뺏기고 또 뺏겼소. 그러다 ‘놀이동산 사업’의 시범 운행에 강제 동원되었소. 아니 문서상으론 자발적인 지원으로 처리되었을 것이오. 데몬교가 세운 수직적 구조에 기꺼이 편입되겠다는 입장문을 작성했으니까. 나와 비슷한 처지의 이들이 동일한 과정을 거쳐 은밀한 공간에 집결되었소. 그곳에서 우리의 역할은 ‘이용객’에게 즐거움을 선사하는 것이었소.”

 

 

 

 

 

 

 

 그는 술병을 기울여 목을 축인 후 말을 이어갔다.

 

 

 

 

 

 

 

 “나는 탐욕 구역에 배정되었소. 입장 전 진행자가 우리를 줄 세운 후 모형 화폐를 건넸소. 나는 영문도 모른 채 그것을 받아들었소. 진행자는 우리에게 그것을 잘 간수하라고 당부했소. 설명은 그게 전부였소. 이후 우리는 암전된 공간 속에 떠밀려 들어갔소. 발을 떼기도 어려울 만큼 사람들로 가득 찬 곳이었소. 얼마나 천장이 높은지 웅성거리는 소리가 메아리쳤소. 그러다 갑자기 불이 들어왔고 지옥이 펼쳐졌소. 이용객들은 우리를 보자마자 폭력을 휘두르며 마구잡이로 화폐를 뺏어갔소.”

 

 

 

 

 

 

 

 이세은은 그의 말을 들으며 자연스레 한 그림을 떠올렸다. 기업홍보관 외벽을 장식하고 있는, 칠계명 중 세 번째 계명을 주제로 한 벽화였다. 그녀는 그가 설명하기도 전에 그가 어떤 말을 할지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었고 미리 전율했다.

 

 

 

 

 

 

 

 “그제야 화폐의 의미를 알았소. 화폐를 뺏은 자의 노예가 되는 것이었소. 혼비백산한 사람들은 화폐를 지키려 서로를 뭉개고 짓밟았소. 그 광경은 거기 있는 게 사람이 아니라 벌레로 보이게 했소. 사람들은 자신이 벌레로 변모한 것도 모른 채 달아나기 바빴소. 그러나 종국엔 모두가 누군가의 노예가 되었소. 애초 그러기 위해 만들어진 판이었으니까. 이용객들 눈엔 우리의 발악이 한없이 우스꽝스럽게 보였을 테지.”

 

 

 

 

 

 

 

 그는 허허 맥없는 웃음소리를 흘렸다. 그러나 그의 눈은 웃기는커녕 허망스레 허공을 응시할 뿐이었다. 탈피한 뒤 남겨진 허물처럼 주름이 자글자글한 그의 입술은 또 오물오물 말했다.

 

 

 

 

 

 

 

 “제각각 노예를 확보한 자들은 사람들을 물건처럼 쌓아올려 그 위로 기어올랐소. 발판이 된 사람들은 마구잡이로 뒤엉켰고 그 와중에 사지가 꺾였소. 사람들은 목청이 터져라 비명을 질렀지만 이용객들은 변함없이 낄낄댔소. 내 눈엔 사람들의 비명이 눈이 먼 새처럼 보였소. 일직선으로 돌진하다 벽에 머리를 박고 툭툭 추락하는 새 말이오.”

 

 

 

 

 

 

 

 “죽은 사람들이……있었나요?”

 

 

 

 

 

 

 

 “매일 죽어나갔소.”

 

 

 

 

 

 

 

 “…….”

 

 

 

 

 

 

 

 “죽어도 아무도 모르는 자들이었소.”

 

 

 

 

 

 

 

 이세은은 파수꾼의 담담한 목소리가 더 아프게 다가왔다.

 

 

 

 

 

 

 

 “천장 가까이에는 진귀한 보물이 달려 있었소. 더 높은 산을 만드는 자가 그것을 차지했지.”

 

 

 

 

 

 

 

 “벽화 그대로군요.”

 

 

 

 

 

 

 

 파수꾼은 느리게 고개를 끄덕이며 힘없이 대답했다.

 

 

 

 

 

 

 

 “이후로 내 삶은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망가졌소. 죽느니만 못한 삶이었소. 한치윤 신자만 아니었더라도 나는 진작 죽음을 택했을 거요.”

 

 

 

 

 

 

 

 이세은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리고 그가 맨땅에 덩그러니 앉아있던 이유를 깨달았다. 파수꾼은 희미하게 입가에 미소를 띠며 말했다.

 

 

 

 

 

 

 

 “그는 이용객 중 한 명이었소. 다만 그는 누구의 금화도 빼앗지 않았소. 자꾸 그가 신경 쓰였소. 그는 다른 이용객들의 눈을 피해 자꾸 가장자리로 숨어들었소. 놀이가 끝난 후에도 그는 끝까지 자리를 떠나지 않았소. 그가 숨어서 지켜보는 걸 알면서도 나는 모른 척 했소. 나를 비롯한 살아남은 자들은 남아서 죽은 자들의 시체를 정리했소. 그리고 모두 떠난 후 나는 그에게 다가가 물었소. 도대체 왜 이러는 거냐고.”

 

 

 

 

 

 

 

 파수꾼은 한치윤 신자와 마주앉은 듯 정면을 똑바로 바라보며 처음으로 생기가 느껴지는 음성으로 말했다.

 

 

 

 

 

 

 

 “그랬더니 그 자가 뭐라고 했는지 아시오? 오히려 날더러 따집디다. 왜 이런 취급을 받으며 사느냐고.”

 

 

 

 

 

 

 

 파수꾼은 실성한 사람처럼 기괴한 웃음소리를 내뱉더니 혼잣말을 하며 더 크게 웃었다.

 

 

 

 

 

 

 

 “왜 이런 취급을 받느냐고? 하하하……. 그게 억지로 끌려온 사람에게 할 말이야……. 하하하하.”

 

 

 

 

 

 

 

 이세은은 그가 아무리 유쾌하게 웃어도 비장하다는 인상 외에 다른 것은 느끼지 못했다.

 

 

 

 

 

 

 

 “정말 순박한 질문이지 뭐요. 몰라서 묻느냐고 묻고 싶었지만 나는 넋이 나간 채 그를 빤히 볼 수밖에 없었소. 그의 얼굴이 거의 울 것 같았거든. 나는 기가 차서 당신이 왜 그런 표정을 하느냐고 따졌소. 나는 먹고 살 길이 없어서, 무능하기 짝이 없어서 인생이 이 모양 이 꼴이지만 당신이야 데몬교에 딸린 사람이 아니오, 그러니 지위에 맞게 누리고 살면 그만이지 않느냐고. 그랬더니 한치윤 신자가 이렇게 말했소. 이런 식으로밖에 살지 못하는 세상에서 왜 살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이세은은 마지막 말을 곱씹으며 그 말이 품고 있는 감정을 하나씩 맛보았다. 그러자 기분이 저 밑까지 가라앉을 정도로 마음이 무거워졌다.

 

 

 

 

 

 

 

 “이런 작자가 어쩌다 이런 놀이에 초청이 되었는지 의문이 들었소. 그를 만나는 횟수가 늘어날수록 나는 그가 위장 신자라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알아채었소. 그걸 증명이라도 하듯 어느 순간부터 그는 참여 명단에서 배제되었소. 그로부터 며칠 뒤 나 또한 동원 명단에서 제외되었소. 그리고 돌연 이곳으로 발령이 떨어졌소. 뒷조사를 해보니 한치윤 신자가 손을 써서 나를 빼냈음을 알게 되었소.”

 

 

 

 

 

 

 

 그러다 파수꾼이 홱 고개를 돌려 이세은을 바라보았다.

 

 

 

 

 

 

 

 “‘악의 갱생기’를 기억하시오?”

 

 

 

 

 

 

 

 이세은은 의외의 말을 들은 듯 눈을 크게 뜨고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렇다면 그것이 폐지된 이유도 기억하시오?”

 

 

 

 

 

 

 

 “물론입니다.”

 

 

 

 

 

 

 

 “남몰래 자선 사업을 벌이다 발각된 그 자가 바로 한치윤 신자이오.”

 

 

 

 

 

 

 

 이세은은 놀라서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파수꾼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한치윤 신자는 그런 자였소. 나 이외에도 구제해준 이가 많았지. 교인들의 눈을 피해 남을 돕는 그를 보고 있자면 그렇게 조마조마했소. 그는 한 명이라도 더 많은 자들을 돕기 위해서 누구보다 충실히 신자의 의무를 이행했소. 그러나 이중생활이 길어질수록 그는 눈에 띄게 피폐해져갔소. 그의 성향을 고려하면 나는 그가 하루라도 빨리 데몬교에서 벗어나야 마땅하다고 생각했소. 실제로 충고도 여러 번 했소. 그러나 그는 끝내 내 충고를 받아들이지 않았소. 버틸 수 있을 때까지 버티겠다며…….”

 

 

 

 

 

 

 

 파수꾼은 한동안 입을 다물다 비틀비틀 몸을 일으켰다. 이세은도 덩달아 자리에서 일어섰다.

 

 

 

 

 

 

 

 “당신이 이번 일에 대단히 열의를 품고 파고드는 걸 알고 있소. 그러나 이쯤 해두시오. 자네의 노력으로 바로잡을 수 있는 일이 아니오.”

 

 

 

 

 

 

 

 “알고 있는 걸 말씀해주세요. 감당은 제 몫입니다.”

 

 

 

 

 

 

 

 이세은은 각오를 드러내듯 뜨거운 눈빛을 보내며 호소했다. 파수꾼은 그녀를 물끄러미 건너다볼 뿐 침묵을 지켰다. 금방이라도 스러져 사라질 것 같은 모습이었다. 이세은은 간절한 마음을 담아 그에게 물었다.

 

 

 

 

 

 

 

 “시체에서 어떤 흔적을 발견하진 않으셨나요?”

 

 

 

 

 

 

 

 파수꾼은 골똘히 생각에 잠기더니 불쑥 이렇게 말했다.

 

 

 

 

 

 

 

 “……범인을 찾으려 하지 마시오.”

 

 

 

 

 

 

 

 “왜 그런 말을 하시죠?”

 

 

 

 

 

 

 

 “나는 이제 이곳을 떠날 것이오. 한치윤 신자를 태우지 않았다는 걸 들키면 최태준 장로가 날 가만두지 않겠지. 한치윤 신자의 시신을 잘 수습하는 게 내가 생전에 할 마지막 소임이오. 그리고 나는 그가 죽음으로써 지키려던 치부가 세상에 드러나길 원하지 않소.”

 

 

 

 

 

 

 

 “치부라뇨?”

 

 

 

 

 

 

 

 “내가 당신에게 앞선 이야기를 해준 것은 당신을 돕기 위해서가 아니오. 희생당한 자들이 어떤 자들인지 똑똑히 알아야 당신이 범인을 찾는 행위를 멈출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오.”

 

 

 

 

 

 

 

 “도대체 무슨 말인지…….”

 

 

 

 

 

 

 

 파수꾼은 눈을 부릅뜨며 버럭 화를 내었다.

 

 

 

 

 

 

 

 “아직도 모르겠소! 당신은 결국 희생자들의 이름을 더럽히게 될 거란 말이오!”

 

 

 

 

 

 

 

 “왜 그런 소리를 하시는 거죠? 솔직히 털어놓자면, 저 또한 한치윤 신자처럼 위장 신자예요. 현실에 굴복해서 입교했을 뿐 당신이 목격한 ‘이용객’들과 같은 무리는 아니에요. 그러니 제발 이 사건의 진상을 알려주세요. 저는, 저는 더 이상의 희생자가 나올까봐 두려워요.”

 

 

 

 

 

 

 

 이세은의 목소리는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녀의 말을 들은 파수꾼은 동요한 듯 주춤거렸다. 그리고 동정하듯 그녀를 건너다보며 입을 뗐다.

 

 

 

 

 

 

 

 “당신에게 당부하고 싶은 게 있소. 우리는 언제 처분 당할지 모르는 인생을 살면서도 꿋꿋이 버텨왔지만, 한치윤 신자는 그 반대의 입장에 서 있으면서도 삶을 못 견뎌했소. 그리고 끝내 자신을 용서하지 못했소. 부디 버티시오. 자신을 용서하시오. 당신이 어떤 짓을 하게 될지언정…….”

 

 

 

 

 

 

 

 그는 몇 발짝 걸어가더니 멈칫하더니 끝까지 물고 있던 마지막 말을 뱉어냈다.

 

 

 

 

 

 

 

 “죽은 자들은 모두 목 맨 자국이 있었소. 그걸 보면 데몬교의 말도 영 틀린 건 아니오. 그들이 삶을 포기한 건 모두 그들이 선하다는 증거이니…….”

 

 

 

 

 

 

 

 그의 목소리는 파도에 쓸려 지워지는 모래 위 글씨처럼 바람 한 줄기에 멀리 날아가 버렸다.

 

 

 

 

 *

 

 

 

 

 이세은은 심란한 마음으로 다용도 경기장으로 갔다. 극악 교회 사령부에서 뒤숭숭한 분위기를 일신하는 일환으로 체육대회를 열겠다고 급작스럽게 공지했기 때문이다. 간부들은 직위를 막론하고 의무적 참여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세은은 여러모로 체육대회가 꺼려졌으나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그녀는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를 했다. 경기장에는 칠계명 중 네 번째 계명 나태의 덕목을 나타낸 벽화가 있었다.

 

 

 

 

 

 

 

 이세은은 다른 신자들 속에 섞여 정해진 좌석에 착석했다. 몸은 묘지를 떠나왔지만 그녀는 여전히 파수꾼의 말에서 놓이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마치 죽은 자들이 자살한 것처럼 말했어. 위장 신자들이 갑자기 이곳에 와서 죽음을 선택할 이유가 없잖아. 마치 누군가 짜인 판에 놓인 말들처럼…….’

 

 

 

 

 

 

 

 그녀는 애써 그의 말에서 오류를 찾아내려 했다. 만약 그의 말이 사실이라면 지금보다 더 소름끼치는 시나리오가 펼쳐질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죽은 자들의 목을 자른 자는……, 그 자가 얻는 것은…….’

 

 

 

 

 

 

 

 무엇보다 그녀가 불안한 것은 자신을 바라보던 파수꾼의 눈빛이었다. 그녀의 귓전엔 그의 육성이 좀처럼 떨어지지 않고 매달려 있었다.

 

 

 

 

 

 

 

 “부디 버티시오. 자신을 용서하시오. 당신이 어떤 짓을 하게 될지언정…….”

 

 

 

 

 

 

 

 이세은은 왜 자신을 용서해야 하는 상황이 온다는 건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그가 단서로 내건 ‘어떤 짓’이란 도대체 무엇일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그녀의 입장에서 용서 받아야 할 쪽은 구의민이나 최태진 무리였다. 물론 그들이 용서를 구하지도 않겠지만.

 

 

 

 

 

 

 

 자신만의 세계에 침잠해 있던 그녀는 어느 덧 두려움 속에 빠져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그의 말이 예언으로 밝혀지고 말 것 같은 두려움은 그녀의 심장에 콱 박혀 온 몸으로 불안함을 퍼뜨리고 있었다.

 

 

 

 

 

 

 

 그 사이 경기 준비는 착착 진행되었다. 그녀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벽화 속 세상이 경기장에 그대로 재현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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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2장 5화 2019 / 9 / 1 225 0 6989   
11 2장 4화 2019 / 9 / 1 226 0 6991   
10 2장 3화 2019 / 9 / 1 224 0 5141   
9 2장 2화 2019 / 9 / 1 213 0 7355   
8 2장 1화 2019 / 9 / 1 238 0 6647   
7 1장 7화 2019 / 9 / 1 233 0 7854   
6 1장 6화 2019 / 9 / 1 228 0 5722   
5 1장 5화 2019 / 9 / 1 225 0 6969   
4 1장 4화 2019 / 9 / 1 218 0 6686   
3 1장 3화 2019 / 9 / 1 221 0 7237   
2 1장 2화 2019 / 9 / 1 218 0 7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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