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4시.
오후나 새벽이나 4시는 없어도 좋을 시간이다. 도시의 새벽 4시는 집으로 들어가는 인간과 하루를 시작하는 사람이 공존하는 시간이다. 이상하고 또 이상한 시간이 새벽 4시다. 공기도 새벽에서 서서히 아침으로 바뀌려는 말도 안 되는 시간이 도시의 새벽 4시다. 편의점 앞 도로에 잡초처럼 수북한 쓰레기도 서서히 사라지는 시간이다. 한 남자가 들어왔다. 새벽 4시와는 어울리지 않는 복장이었다. 슈트는 이 근처의 남자들에게서는 볼 수 없는 고급품으로 아주 비싼 정장이었다. 남자는 편의점을 애용하는 인간이 아니다. 새벽에 편의점에 들어오는 사람은 자신이 뭘 집어야 할지 정확히 알고 있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남자는 가판대를 보고 있지만 꼭 가판대 너머의 무엇인가를 보는 사람처럼 물품을 보고 있다. 남자는 편의점 음식은 먹지 않는다. 그것은 보면 알 수 있다.
남자는 실컷 보던 가판대와는 상관없는 매대에서 컨디션을 들고 카운터로 왔다. 이 남자는 새벽 4시에 집으로 들어가는 인간인 것이다. 오만 원짜리를 받았다. 그리고 잔돈은 됐다고 했다. 늘 돈이 궁한 자들에게 이렇게 선심을 쓰는 척하는 인간이다. 그런 인간인 것이다. 그런 인간이 잔뜩 있는 곳이 여기 이 도시다.
“여기서 자라는 아이들을 보면 무슨 생각이 듭니까?”라고 남자가 물었다. 나는 잔뜩 의아한 얼굴로 남자를 빤히 쳐다보았다. 밤새 술을 마셨을 텐데도 얼굴에 수염자국이 나보다 덜했다. “도시에서 자라는 아이들이 삭막하다고들 말하지만 실은 더 정이 많습니다. 무엇보다 건강합니다. 누가 말했더라? 아이 하나를 키우려면 마을 전체가 노력을 해야 한다고 말이죠. 도시에서 자라는 아이들은 누릴 것은 누리고 건강에 관한 것을 케어 받기 때문에 체력이나 체격 적으로 시골의 아이들보다 더 건강합니다”라고 남자는 말했다. 나는 가만히 남자의 말을 듣고 있었다.
“하지만 제대로 태어나야 하는 아이들만이 그것을 누릴 수 있습니다. 행복하게, 축복받고 태어나야죠. 이 도시에서는 얼마나 많은 아이들이 준비도 안 된 상태에서 태어나 버림을 받는지 아십니까. 그렇게 버림을 받는다면 이 도시에서 살아남기가 점점 어렵습니다. 아시겠어요?“
남자는 컨디션을 6병 마셨다.
“내가 사준 비싼 옷보다 볼펜이 더 좋다고 하더군요. 볼펜이라니. 그걸로 글을 써서 신춘문예에 출품을 하고 싶답니다. 매년 하는 모양입니다. 쓸데없는 짓이라 말했지만 이번에는 그 볼펜이 있어서 예감이 좋다나요.”
남자는 잠시 틈을 두었다.
“리사와 함께 있으면 소리를 들을 수 있는데 그건 텅 빈 소리입니다. 리사는 나의 돈을 필요로 했습니다. 혼자서 벌어들이는 것으로는 소비가 몸에 밴 생활이 불가능했으니까요. 언젠가 리사의 굵은 목걸이를 풀어주십시오. 그건 멋으로 하는 게 아니니까요.“
남자는 그렇게 말을 하고 편의점을 나갔다.
다음날 밤 뉴스에 40세의 유능한 금융원이 투자자들의 투자 금을 빼돌린 사건과 그 금융원이 가족을 두고 목을 맨 기사를 뉴스로 내보냈다. 금융원에게는 아내와 어린 두 아들이 있었다. 이 도시는 그런 죽음이 가득하고 그런 사람들이 도사리고 있는 곳이다. 뉴스거리가 흘러넘치고 사람이 사람을 속이고 속인 사람 때문에 사람에게 치유를 받으려 하고 사람 때문에 사람을 죽이고 사람 덕분에 사람을 구해주는 그런 곳이 이 도시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