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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현대물
사랑할 수 없는 우리
작가 : 현서
작품등록일 : 2016.10.4

39살의 인아. 실패한 유학 생활의 업적으로 영어학원 강사로 일하고 있다.
아직도 소박한 사랑을 꿈꾸고 있지만 얼마 전 실연까지 당했다.
그런 가운데 친구 선영의 결혼과 태라의 승진 소식은 인아를 더욱 움추려들게 만든다.
그런 인아에게 명문대생 훈남의 수현이 다가와 한없는 친절을 베푼다.
인아는 수현때문에 설레기도 하고, 잃어버린 청춘을 생각하며 슬프기도 하다.
수현은 왜 인아에게 다가온 것일까?

 
실연앞에서
작성일 : 16-10-05 12:09     조회 : 823     추천 : 0     분량 : 5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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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직 4월인데 한여름 같은 날씨다. 사람들이 봄꽃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어 대는 모습이 즐거워 보인다. 그 모습을 보며, 꽃을 주인공에 비유하는 수많은 표현들이 문득 우습게 느껴졌다. 꽃은 저렇게 배경뿐인 것을.

 

 그 존재감이 점점 희미해져가는 봄이란 놈이 자신의 존재를 알리려는 듯, 여기저기 무더기로 봄꽃들을 피워내고 있지만, 메마른 하늘과 빌딩숲 사이에 둘러싸인 그들이 봄이란 이름을 온전히 감당하기엔 왠지 버겁게 느껴지는 삭막한 도시의 풍경이다.

 

 토요일 오후, 도심은 유난히 데이트하는 연인들이 눈에 띤다. 뉴스에선 매일같이 청년 실업과 싱글족들의 얘기를 들먹이며 사회 문제를 논하건만, 같은 하늘 아래 너무 다른 종족들이 살고 있는 것 같아 서글퍼진다. 우리는 이대로 계속 같은 하늘아래 머물며 공존을 얘기해도 괜찮은 것일까?

 

 하늘하늘한 원피스를 차려 입은 여인들. 그들의 가벼운 옷차림을 둘러보며, 옷차림에 신경 좀 쓰라는 선영의 말을 떠올린다. 나를 훑어보며 오늘도 선영에게서 한소리 듣겠구나 하는 각오를 한다.

 

 약속시간에 이미 늦었는데도 좀처럼 발이 빨리 움직이지 않는다. 각자 바쁜 나날 속에 우리를 불러 모으는 건 대부분 선영의 몫이다. 그럴 때면 우리는 무슨 일이 있어도 약속장소에 꼭 나가야 한다. 감히 선영의 호출 앞에 야근이나 데이트 따위로 핑계를 대었다간 우리의 우정에 금을 내는 불순한 사상을 가졌다며 폭풍 잔소리를 듣게 될 것이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정도의 일이 아니라면 어떤 핑계도 통할 수 없다. 하지만 우리는 그런 날이 오더라도 그 자리에 함께 있을 테니, 결국 어떤 이유도 선영의 호출 앞엔 통하지 않는 셈이다.

 

 평소 그런 선영의 호출은 즐거운 부르심이건만 오늘은 정말, 정말 아닌데, 실연 따위의 이유 또한 선영의 부르심을 거절할 순 없는 일이다. 선영이 혹 약속 시간에 늦었다거나 옷차림으로 나무라면,

 

 - 내 나이 서른 아홉에, 이 잔인한 4월에 난 현성으로부터 이별통보를 받았노라고, 한참 꿈에 부풀어 있는 시간, 그를 만난 지 단 2개월 만에, 그것도 문자 한통으로, 그게 어젯밤이라고, 그러나 눈물 한 방울도 흘리지 않았노라고, 그래서 다행히 눈은 붓지 않았노라고, 뭐 익숙해진 건지 늙어서 그런 건지는 잘 모르겠노라고, 그래도 지금 내 기분이 어떻겠냐고 그래도 너의 전화에 이렇게 달려(아니 기어)나왔노라고 그러니 그냥 좀 봐 달라고

 

 이런 말을 이제 그만 해야겠다. 나이 서른 아홉에 실연은 동정을 받기에도 비참한 일 일테니 말이다.

 

 난 2, 3년에 한 번 연애를 하고 (선영의 말로는 그건 단지 썸에 불과한) 두 세 달 만에 차인다. 내가 애인 없이 홀로 지내는 시간은 남자들이 군대에 다녀오는 시간과 비슷하다.

 

 선영의 말에 의하면 난 연애대상이 생기면 갓 제대한 예비역처럼 남자에게 침을 흘리고 그러면 남자는 나에게 쉽게 흥미를 잃어 떠난다는 것이다. 갓 제대해서 좋아하고 있는데 다시 영장이 날아온다면 혹 이런 기분이지 않을까. 난 지금 일곱 번째 입대 전에 있다.

 

 

 또 다시 입대를 피해보려고 선영의 조언대로 나름 열심히 내숭도 떨어보았지만, 그 때에도 난 두 달 만에 차였다. 그러면 선영은 요즘 수컷들은 환경 호르몬과 먹고 사는 문제 덕에 야생성이 사라져 여자를 쟁취의 대상으로 보지 않는다며, 그러니 인내심 테스트 따위로 남자의 사기를 꺾지 말라고 또 나를 탓하곤 했다.

 

 이렇듯 일관성 없는 선영의 연애 강의는 나를 더 헷갈리게 했지만, 선영의 연애 강의가 잘못된 것은 아닐 거다. 선영은 한 번도 남자를 만나 차이거나 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정말,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정말, 나의 무신경한 얼굴과 엉성한 옷차림이 문제인 걸까? 그냥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며 사랑할 순 없는 걸까? 선영에게 반론을 하려다가 멈추었던 기억이 난다. 나도 배 나온 남자를, 머리가 벗겨 남자를, 말투가 촌스러운 남자를 있는 그대로 사랑해주진 않았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이번엔 정말 다르다고 생각했다. 현성은 나의 무신경한 외모보다 따뜻한 마음을 좋아해 주었고, 화려한 옷차림 대신 순박한 말씨 속에 가끔 터지는 유머가 기분좋다고 했다. 이유도 모른 채 가족들에게 외면당하는 나를 감싸주고 싶어했고, 그 외로움을 자기가 씻어 주고 싶다고도 했다.

 

 난 이 나이 먹도록 사람을 보는 혜안도 갖추지 못한 걸까? 그런 거라면 이런 실연 따위는 감수해 싸다 여기련다.

 따스한 햇살 데이트하기 정말 좋은 날씨다. 그러나 이별하기에 좋은 날씨는 없다. 현성 또한 내 무신경한 외모가 싫어진 걸까.

 

 이런 생각들이 엉켜 머릿속엔 지진이 일어나고 있었건만, 발은 또 제 멋대로 움직여 난 약속장소에 도착해 있었다.

 

 카페 문을 열고 들어서니, 선영과 영주가 마주 앉아 있다. 영주가 나를 보고 반갑게 손을 흔드니, 선영이 뒤를 돌아본다.

 

 “어서 와. 차 많이 막히지?”

 

 영주는 늦은 내가 미안할까봐 누구나 다 아는 토요일 오후 서울시내 교통상황을 시 한 번 집어준다.

 

 “응, 좀..”

 

 예상대로 선영은 내가 늦은 것보다 나의 옷차림이 마음에 안 드는 눈치다. 하지만 웬일인지 별다른 말을 하지는 않는다. 늘 화려한 선영이지만 오늘은 한결 더 힘을 주었다. 백이 바뀐 것을 보니 그 새 남자도 바뀐 모양이다. 당연히 가장 늦었을 줄 알았는데 아닌가 보다. ‘태라는 아직이야?’ 라고 말하려는데 맞은편에서 태라가 걸어온다. 오랜만에 태라의 손에 담배가 들려 있는 걸 본다.

 

 “끊었었잖아?”

 

 이번엔 제법 오랜만에 얼굴을 보는 건데 인사도 없이 불쑥 내뱉고는 이내 후회가 됐다.

 

 “승진 시험 때문에 머리가 아프시단다. 그래도 아깝다. 어렵게 끊었는데. 그치?”

 

 영주는 태라의 금연 실패에 못내 아쉬운가 보다.

 

 “아, 몰라. 난 왜 끊어야 하는지도 모르겠어. 담배 못 펴서 스트레스 받아 병 생기 면, 담배 피우다 병 생기는 거보다 더 억울할 것 같아.”

 

 승진 시험인지 뭔지가 태라를 영 힘들게 하나보다. 태라의 목소리가 한결 예민하게 느껴져 우린 더 이상 말하지 않기로 짧은 시간에 무언의 합의를 마쳤다.

 

 “이제 다 모였으니, 얘기해 봐.”

 

 영주가 선영을 바라보며 재빠르게 화제를 돌린다. 선영이 무슨 중대 발표가 있는지 모두 모일 때까지 모임의 이유를 말하지 않고 있었다고 한다.

 

 “나, 날 잡았어.”

 

 선영의 발언은 태라의 금연 실패로부터 화제를 돌리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잠깐, 오늘이 4월 며칠...? 만우절은 지났지?”

 

 영주의 반응에 선영은 손뼉을 치며 큰소리로 웃어댄다.

 

 “우리가 애니? 만우절 맞춰 농담하게?”

 

 이번엔 진짜 할 거냐고 묻고 싶었지만, 선영이 또 한 번 박장대소를 할 거 같아 참기로 했다.

 

 “이건 아니지, 우리한테 신고식도 없이? 만난 지 두 달 밖에 안 됐잖아? 너무 성급한 거 아냐?”

 

 진지한 걸 싫어하는 태라가 오랜만에 진지한 표정을 한다.

 

 “그래서 신고식 하려구 부른거야. 저녁 사기로 했어. 그 사람이. 두 달이면 기본적인 스캔은 충분해. 서로 나이두 있고, 더 질질 끓어봤자 서로 더러운 성질 들통나는 것 밖에 더 있겠어? 그럼, 또 못한다구. 그냥 이 사람이다 싶으면 확 질러야지.”

 

 시간은 사람마다 다르게 흘러간다. 두 달이란 시간은 어떤 남녀에게는 결혼을 결심할 만큼의 시간인데, 어떤 남녀에게는 문자 메시지 한 통으로 이별을 고할 만큼 아무것도 아닌 시간인 것이다.

 

 

 선영이 이번엔 정말 결혼을 하려나 보다. 그 동안 선영의 남자들을 많이 봐왔지만, 이렇게 우리를 먼저 불러 모아 자신의 애인 앞에서 하지 말아야 할 말들에 대해 당조짐을 하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더구나 우리에게 보이지도 않고 결혼을 결심했다는 부분이 놀라움과 배신감마저 들게 했지만, 똑똑한 선영이 어련히 알아서 했을까?

 

 “그 사람 사랑하니?”

 

 영주의 물음에 선영이 또 박장대소를 한다. 카페 안에 사람들이 힐끔거리자, 태라가 그만 좀 하라고 면박을 줬지만, 선영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뭐 그리 웃긴 일이라고 질문을 한 영주가 오히려 민망해진다. 워낙 활달한 성격의 선영이지만, 오늘은 좀 유난하다. 결혼이라는 대사를 직면한 선영이는 평소보다 좀 더 들떠 있었다.

 

 “당연히 사랑하지. 고객님도 사랑하는 세상인데, 내가 결혼할 사람 사랑 안 하겠어?”

 

 영주의 질문이 잘못되었다는 건 나도 알겠다. 선영이에겐 섹스가 잘 맞느냐, 혹은 그 사람의 직업이나 재력이 어느 정도인지를 묻는 게 더 나을 일이었다.

 

 “세상에 완벽한 남자는 없더라구. 더 고르다가는...”

 

 선영은 말을 잠시 멈추었다가 사랑이란 말에 깔깔대던 때와 전혀 다른 표정으로

 

 “확실한 노후대비 하나는 필요하잖아.”

 

 이걸 철이 들었다고 해야 하는지, 속물이 되었다고 해야할 지 잘 모르겠다.

 

 그 동안 선영은 만나던 남자가 어느 날 신고 나온 운동화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그 사람과 헤어졌고, 한 번은 영화를 보다가 남자가 눈물을 흘렸다는 게 헤어지는 이유였다. 어쩌면 선영이 그 남자들과 진짜 헤어진 이유는 그게 다가 아닌지도 모른다. 헤어지는 이유는 하나만이 아니니까.

 

 갑자기 현성이 나와 헤어지는 이유가 궁금해졌다. 이유라도 알면 조금은 덜 슬플 것 같기도 하다. 선영의 결혼을 앞두고 모인 자리에서 난 자꾸만 딴 생각을 한다.

 

 

 선영의 예비 신랑은 피부과 의사다. 나이가 좀 많고 한 번 갔다왔다는 게 흠이라면 흠이지만, 그만큼 자상하고 안정적이다. 외모도 그만하면 준수했다. 그는 선영을 많이 좋아하고 아끼는 것 같았으나, 우리가 아는 선영의 매력을 제대로 알지는 못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선영이 혹 그 사람의 나이나 결혼 경력을 문제 삼아 이번에도 결혼을 깨버리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은 안하기로 했다. 그 사람의 재력이, 선영의 나이가 이제 선영을 결혼으로부터 도망치는 걸 막아줄 것이다.

 

 이제 친구의 새로운 애인을 놀려 먹는 재미도 시들해져 버린 나이가 되어 버렸나. 이미 날을 잡았다는 데, 우리는 친구의 애인 앞에 더 이상 갑이 아니었다. 더구나 선영으로부터 할 말 안 할 말 가리라고 사전 경고까지 듣지 않았던가. 서울의 야경이 한 눈에 보이는 분위기 있는 고급 레스토랑에서 값비싼 스테이크를 먹고 있었지만, 지금 이 자리에서 스테이크 맛을 제대로 즐기고 있는 것은 영주뿐인 것 같았다. 그렇게 밋밋한 신고식을 치르고 나서 우리는 헤어졌다.

 

 어색함을 지우려 홀짝거린 와인에 제법 취기가 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현성에게 전화를 하고 싶어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다 가방에 도로 넣었다. 일주일 전에 만해도 집으로 가는 길 꼭 그에게 전화를 했었다. 하루의 일과를 보고하고, 서러웠던 일들은 토해내고, 그의 부드러운 목소리에 위로 받고, 그렇게 고된 하루의 서러움을 가라앉혔다.

 

 

 짧은 시간이지만 그와 함께였던 그 땐 이렇게 사는 것도 그렇게 나쁘진 않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다 갑자기 그는 일주일 동안 연락이 되지 않았고, 초조함에 오그라든 내 심장에 문자 한 통으로 비수를 꽂았다. 그리움과 원망을 제쳐 두고라도 아주 짧은 시간 몸에 베인 습관을 떼어버리는 것조차 쉽지 않을 거 같다.

 

 내가 실연을 할 때마다 친구들은 결혼을 하는 것 같다. 그나마 친구가 많지 않은 게 다행이라고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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