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죽었다. 그것도 스스로 목을 매 죽었다. 나는 그 사실이 전혀 사실로 와 닿지 않아 한동안 멍하니 멍청한 눈으로 천장의 한 점을 우두커니 바라 볼 수밖에 없었다.
이제 고작 17살이다. 17살. 그런 애가 도대체 무슨 일을 겪으면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단 말인가. 믿을 수가 없었다. 저기 방 안에 놓인 시체가 정말 내 하나뿐인 동생인건지 믿기지가 않았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는 경찰서에 와 있었다. 형사들이 드라마에서나 할 법한 뻔한 질문들로 나를 취조 하고 있었다. 나는 있는 그대로 기계적인 대답을 하고 경찰들도 나를 안쓰러워하며 일단 조사를 더 해보고 연락을 드리겠다고 말했다. 나는 그제 서야 경찰서를 빠져 나와 내가 지내고 있는 원룸으로 돌아왔다. 오는 길에 편의점을 들러 4개 만원하는 맥주를 사서 왔다. 아버지에게 전화를 했다.
“여보세요.”
역시나 귀찮다는 듯 받는 저 목소리.
“죽었어요. 모두가.”
“뭐? 뭐라고?”
이 망할 놈의 인간은 당최 말 귀를 못 알아먹는다.
“죽었다구요. 모두가.”
“도대체 뭔 소리야. 누가 죽어. 너 지금 니 동생이 죽었다고 말 하는 거냐?”
“네. 오늘 집에 들렀는데 모두 방문이 잠겨 있었어요. 119 불러서 문을 열고 들어갔는데 모두가 방문에 목을 맨 채 죽어 있었어요. 됐어요?”
내 말이 그제 서야 실감이 됐던지 한동안 대꾸가 없었다.
“자살..이라는 얘기야?”
“네. 경찰서에 갔다 왔어요. 조만간 아버지한테도 경찰에서 연락 올 거예요. 놀라지 마세요.”
“그래. 알겠다.”
뚝.
나는 더 이상 말하기가 힘들어 최소한으로 할 말만 하고 전화를 뚝 끊었다. 갑자기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파왔다. 지긋지긋한 편두통이 또 찾아온 것이다. 거실 서랍을 뒤져 타이레놀 한 알을 꺼내 찬물과 함께 꿀꺽 삼키고 그대로 소파에 드러누웠다. 눈을 감았다. 모두가 목을 매고 있는 잔상이 끈임 없이 되풀이돼 머릿속을 헤집었다. 시체 상태로 보아선 죽은 지 얼마 안 돼 보였다. 내가 조금만 더 일찍 단 하루라도 일찍 모두를 보러 갔다면 이런 끔찍한 일을 막을 수 있었을까. 자책감이 온 몸을 휘감았다. 그때 불현 듯 최태환 이라는 이름이 떠올랐다. 모두의 남자친구라고 자신을 소개한. 내가 알고 있는 한 가장 최근까지 모두와 연락을 하고 지낸 사람. 길게 생각할 필요도 없이 곧 바로 최태환에게 문자를 남겼다. 모두의 죽음에 대해서. 얼마 지나지 않아(아마 3분쯤 흘렀던 것 같다.)전화가 왔다.
“여보세요.”
갑작스런 전화에 잠겨있던 목에서 삐끗하는 음성이 흘러나왔다. 쪽팔렸다.
“네. 문자보고 연락드리는데 그게 무슨 말씀인가요. 잘 이해가 되지 않아서요. 모두가 죽었다는 말인가요? 그것도 스스로?”
이 녀석도 아버지란 작자와 비슷한 과인가 보다. 사람 말 귀를 못 알아먹는다.
“네. 오늘 본가에 들러 봤는데 모두 방문이 잠겨있었어요. 계속 불러도 대답이 없어서 119 불러서 문을 따고 들어갔는데 그렇게 돼 있었어요.”
“아...”
많이 놀란 모양인지 말문이 막혔는지 한동안 대꾸가 없었다.
“많이 놀라셨죠? 저도 아직까지 이 상황이 현실이라고 믿기지가 않아요. 그런데 그쪽이 모두랑 일주일째 연락이 안 된다고 한 거 같은데 그럼 일주일 전에는 모두랑 만난 적이 있는 건가요?”
“아..네..일주일 전까지만 해도 제 화실에 와서 그림을 그렸어요. 아. 정확하게 말하자면 제가 그림을 그리고 모두가 모델로써..”
“네? 그림 모델을 섰다구요? 모두가?”
“네”
평소에 모두가 그림에 관심이 있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지만 본인이 그림을 그리는 것도 아니고 누군가의 모델을 했다는 게 잘 와 닿지 않았다.
“그럼 그때 모두한테서 뭔가 이상한 점 못 느끼셨나요? 예를 들면 지나치게 차분하다던가 아니면 반대로 지나치게 밝은 척을 한다던가..”
“전혀요. 굳이 말하자면 차분 했던 거 같아요. 평소랑 거의 다를 바 없었던 것 같아요.”
“아. 네..혹시 괜찮으시면 만나서 얘기를 나눠 볼 수 있을까요? 아무래도 전화로 할 얘긴 아닌 거 같아서요.”
“네. 알겠습니다. 오늘은 크리스마스니 너무 사람들이 붐빌 것 같고 내일 뵙는 게 어떨까요? 언제 괜찮으세요? 저는 언니분 시간에 맞추면 되거든요.”
“오전 11시 괜찮으세요? 좀 이른 시간이긴 한데..”
“네 알겠습니다. 장소는?”
“강남역 교보문고 근처에 있는 투썸플레이스에서..”
“네.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전화를 끊고 곰곰이 생각해보니 오늘이 크리스마스였다. 그리고 오늘은 모두의 생일이었다. 생일 축하한다는 말도 이럴 땐 버겁기만 하다.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닌 아이에게 무슨 말을 더 할 수 있을까. 그래도 작게 읖조려 본다.
“모두야. 생일 축하해. 그리고 너무 늦어서 미안해..”
비겁한 자기 위로다. 조금만 더 일찍 찾아갔더라면.. 평소에 연락이라도 자주 주고받았더라면. 그래서 모두가 평소에 무슨 생각을 하고 지내는지 조금이라도 알았더라면..이미 후회해도 늦었다는 걸 알면서도 자꾸만 그런 생각들로 머릿속이 꽉 찼다. 그때 휴대폰 벨소리가 울렸다. 조금 잠긴 목을 아아 소리를 내며 풀고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네 경찰입니다. 이모두씨 언니분 되시죠?”
“그런데요.”
“저희들이 조사해본 결과 유서를 남긴 것과 숨을 거둔 시간을 봐서 자살이 확실합니다. 장례 절차를 바로 밟으시면 될 것 같습니다.”
“유서가 있었다구요?”
“네. 평소에 우울증 약을 복용하고 있었구요. 뭐 뻔한 얘기죠.”
“혹시 그 유서를 제가 좀 볼 수 있을까요?”
“아.. 뭐 보고 말고 할 것도 없습니다. 딱 세 줄이 다거든요. 나는 더 이상 살아야 할 이유를 모르겠다. 누구도 탓하고 싶지 않다. 그저 이제 그만 조용히 눈 감고 싶다.
뭐 여기까지 입니다만..”
“아...네 알겠습니다.”
“네. 그럼 이만..”
단 세 줄에 한 사람의 인생이 끝이 났다. 하긴 긴 말을 구구절절 해봐야 모두가 죽었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갑자기 목이 너무 말랐다. 오자마자 냉장고에 넣어 차게 해 둔 맥주를 하나 꺼내 쉬지 않고 벌컥벌컥 마셨다. 맥주의 탄산이 목구멍을 시원하게 타고 흘러 내려갔다. 한 캔을 순식간에 다 비웠다. 생각해보니 하루 종일 한 끼도 안 먹고 이리 저리 쏘다녔다. 심한 공복감이 찾아왔다. 평소에 집에서 음식을 잘 해먹지 않아 냉장고 문을 열어봐도 맥주와 생수 먹다 남은 치킨이 전부였다. 나가서 뭐 라도 사먹으려다 모든 게 귀찮아져서 소파에 드러누웠다. 맥주를 너무 빨리 마신 탓인지 취기가 금방 올라와 머리가 순간 멍해졌다. 일단 내일은 최태환을 만나고 장례절차를 밟아야 한다. 목소리로는 나이가 전혀 가늠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빨리 만나 물어보고 싶었다. 남자친구라면 모두 나이의 또래인가? 아마도 아닐 것이다. 모두 나이 치고는 말투가 너무 어른스럽다. 그리고 지나치게 정중했다. 최태환. 모두가 마지막으로 만난 사람. 그거 하나만으로도 뭔가 큰 의미가 생겨나는 것 같았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는 틈에 나도 모르는 사이 잠이 들었다. 꿈을 꿨다. 꿈속에서 모두가 벌거벗은 채로 의자에 앉아 다리를 쫙 벌리고 포즈를 취하고 있었다. 그리고 어떤 남자의 뒷모습이 보였다. 아마도 남자는 모두의 모습을 스케치 하고 있는 듯 했다. 왜인지 몰래 숨어서 그 모습을 보고 있던 나는 보는 내내 가슴이 너무 뛰어 숨이 차오를 지경이었다. 그때 남자가 고개를 돌려 내 얼굴을 봤다. 순간 잠에서 깼다.
거실에 걸린 벽시계가 오전 9시를 가르키고 있었다. 그제서야 최태환과의 약속시간이 떠오른 나는 서둘러 샤워를 하고 옷을 입고 강남역으로 갔다. 어제부터 한 끼도 안 먹고 있었기 때문에 배가 너무 고파서 최태환을 만나기전에 요기를 하고 싶었다. 오므라이스 가게에 들어가 베스트라는 글귀가 한 귀퉁이에 적힌 음식을 주문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음식이 나왔다. 베스트라는 글귀가 적힌 음식답게 꽤 먹음직스러워 보였다. 순식간에 음식을 바닥내고 휴대폰으로 시간을 보니 10시 30분 이였다. 자리를 옮겨 약속장소인 카페로 갔다. 혹시라도 최태환이 먼저 와 있을까봐 주변을 둘러보았다. 여자 손님 뿐이었다. 한 십분 쯤 지났을까 카페 문으로 한 남자가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