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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천사가 아니야
작가 : 판도라
작품등록일 : 2019.10.4

한 고양이의 시선으로 본 인간세상과, 사람과 고양이의 생성관계, 그리고 그들의 믿음과 사랑...그들은 천사였다. 아니, 천사가 아니었다.

 
천사의 대결
작성일 : 19-10-06 01:07     조회 : 227     추천 : 0     분량 : 83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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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여자는 그날 밤 이후에도 썅썅이 나에게 실행하는 횡포를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몇일이 지난 주말 오전이였다. 여자가 나와서 사료를 주자 썅썅은 온순한 표정으로 점잖게 뒤에 앉아 기다렸고, 굶주림에 시달린 나는 여자가 방안에 들어가지 않은 틈을 타서 몇입이라도 더 먹으려고 허겁지겁 사료그릇에 달려들었다. 여자는 우리 모습을 지켜보면서 흐뭇한 웃음을 지었다.

 

 “역시 썅썅이 어른스러워. 작은 애라고 양보하는걸 봐.”

 

 여자가 방안에 들어가는 소리가 들리자 썅썅은 쌩하니 내 앞으로 달려와서 내쪽으로 머리를 들이밀었다. 내 머리 서너배 되는 썅썅의 머리가 사료그릇을 완전히 덮을 때 나는 어쩔수없이 입을 다시며 뒤로 물러서야만 했다. 그렇게 들이민 썅썅의 머리는 샤료를 다 먹을 때까지 위로 쳐들줄 몰랐고 나는 하는수없이 옆에 있는 물그릇에 살그머니 다가섰다. 물로 허기를 달래보려는 심사였다.

 

 탁!

 썅썅의 둔중한 한쪽 앞발이 물그릇을 뒤엎었고 방바닥에는 좌르르 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나는 너무 맹랑해서 바닥에 흐르는 물에 입을 살짝 대였다가 뗐다. 아무리 그래도 고양이에게도 자존심이 있는데 어떻게 바닥에 고인 물을 먹고 목을 추긴단 말인가. 나는 뒤로 멀찍히 물러서면서 화가 치밀어 입속으로 중얼거렸다.

 

 “이러면 네놈도 물을 먹을순 없겠지. 샤료 그리 많이 먹고 목 마르지 않나 보자.”

 

 썅썅은 그런 내 생각을 보기 좋게 뒤집고 말았다. 팔자걸음으로 정수기옆에 다가간 썅썅은 앞발로 정수기 버튼을 지긋이 내리눌렀다. 물이 주르륵 흐르기 시작했고 썅썅은 머리를 살짝 비틀고 날름날름 물을 받아먹기 시작했다.

 

 잠시후 하품을 하면서 정수기옆에서 물러난 썅썅은 몸을 늘구어 기지개를 펴더니 천천히 앞발을 들어 그루밍을 시작했다.

 

 나는 슬금슬금 정수기 옆으로 다가가 썅썅이 하던대로 정수기 버튼을 눌렀다. 하지만 내 미약한 힘으로는 도저히 물이 나오지 않았다. 한참 싱갱이질을 하고있는데 어느새 썅썅이 비웃는 듯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이 바보야. 누구나 다 할줄 아는가 생각한다면 그건 오산이야. 그런건 오로지 나 같은 비상한 머리를 가진 고양이만이 생각해낼수 있는 방법이란 말이야.”

 “이정도는 나도 생각해낼수 있어.”

 “생각만 해서 뭘하냐? 실천에 옮길수 있냐 말이다. 너 같은 애는 반년이 지나도 나처럼 못돼. 우린 신분등급 자체가 틀리니까.”

 

 나는 화가 나서 머리를 홱 돌렸고 썅썅은 쏘파위에 올라가 네각을 뻗고 누웠다. 주인앞에서는 온순한 고양이인척 하다가 주인이 보이지 않으면 자신의 진면모를 여과없이 드러내놓는 썅썅이 미웠지만 지금의 나로서는 어떻게 할 방법이 없었다. 체념한듯 구석에 몸을 말고 낮잠을 자려고 하는데 문득 썅썅이 쏘파위에서 몸을 일으키더니 머리를 쳐들었다. 해볕아래 그의 까만 코가 흰 털에 싸여 더없이 반짝거렸다.

 

 “무슨 냄새지?”

 

 나도 뭔가 구수한 냄새를 맡았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딱히 알수 없었다. 잠시 코를 벌렁거리던 썅썅의 동공이 눈부신 햇살속에서 조금씩 가늘어지고 있었다.

 

 “저건, 소고기 냄새야.”

 ......

 

 만일 우리 고양이들이 좋아하는 음식을 순서대로 꼽으라면 사람들은 흔히 1순위를 물고기라고 할 것이다. 만화책 같은데에 고양이가 나오게 되면 항상 고양이 옆에는 물고기뼈가 있는 그림을 그려넣을 정도로 어리석은 사람들은 우리가 물고기라면 환장을 하는줄 안다.

 

 2순위가 닭고기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그래도 고양이에 대해 어느정도 애정과 관심을 갖고있는 사람이다. 이쯤에서 정답을 공개하자면 고양이는 닭고기를 제일 좋아하고 그 다음이 바로 소고기와 계란, 생선류라고 할수 있다.

 

 우리 고양이들은 예민한 후각과 타고난 절대미각의 소유자이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신선하지 못하거나 맛이 없는 음식은 입에 대지 않는다. 생선은 신선도가 떨어지기 쉽기때문에 우리 고양이에게 가급적이면 숙성이 가능한 닭고기와 소고기로 만든 간식을 제공하는 것이 애묘인(고양이를 사랑하는 사람들에 대한 호칭)의 현명한 처사일 것이다.

 

 특히 나같은 천재 고양이들은 절대 날생선을 먹지 않는다. 그 이유는 날생선은 날계란과 같이 식중독을 일으키는 박테리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또 날생선 안에 있는 효소는 티아민이라는 비타민 B성분을 파괴시키는데 그 성분은 우리 고양이들의 필수 비타민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고양이에게 좋은 음식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 바로 호박, 오이, 멸치, 닭가슴살, 시금치, 브로클리, 소고기 등이다. 특히 소고기는 사람들이 즐겨 먹는 고기였지만 우리 고양이들에게도 예외가 아니였던 것이다.

 

 여자가 위에 나열한 음식들을 인터넷으로 찾아 체크를 할때 나는 은근히 궁시렁거렸다. 호박, 오이, 시금치, 브로클리로 간식을 주면 당장 가출을 해버리겠다고 말이다. 다행이 여자는 사료이외에 참치 통조림과 닭가슴살로만 간식을 준비했다. 오늘같이 주방에서 풍기는 소고기냄새는 아마 여자가 아침부터 끓이는 곰탕 냄새 같았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소고기…”

 

 여자에게서 간식으로 소고기를 받아먹은적 있는 썅썅이 쏜살같이 주방으로 달려들어갔다. 나는 머리를 갸웃했다. 멸치나 닭가슴살 같은 담백한 음식을 좋아하는 나와는 달리 썅썅은 기름기 있는 육류나 참치 통조림을 좋아하는 듯 싶었다. 또 어쩌면 그것이 바로 썅썅이 지금처럼 건실하게 자란 이유일지도 몰랐다.

 

 “흥, 저러다 비만 될라.”

 

 중얼거리며 주방으로 따라 들어간 나는 눈앞의 광경에 그만 헉 하고 큰 숨을 들이켰다. 어느새 싱크대에 뛰어오른 썅썅이 머리로 솥 두껑을 밀더니 국에 앞발을 들이밀어 소고기를 건져내고 있었던 것이다. 썅썅은 뜨겁지도 않은지 국속의 소고기들을 건져내어 걸탐스레 먹고있었고 나는 썅썅의 도둑행실에 멍하니 그를 쳐다보기만 했다.

 

 “너도 먹고싶냐?”

 

 썅썅이 핑크색 혀를 날름거리며 나를 내려다보았고 나는 입술을 옥물고 머리를 가로저었다.

 

 “왜? 도둑질이라고 생각해서 그래? 어차피 주인이 날 줄 음식이야. 내가 미리 먹는데 그게 어때서.”

 

 썅썅은 놀랍게도 내 마음속을 꿰뚫고 있었다. 나는 잠자코 있다가 몸을 돌려 주방을 빠져나왔다. 뒤에서 썅썅의 코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흥…도둑고양이 출신 주제에 고상한척 하기는…지금 누굴 비웃고있어. 코숏이 바로 도둑고양이야, 알어?”

 

 나는 잠시 걸음을 멈추었다가 다시 발을 움직였다. 사실 나는 썅썅을 비난하고싶은 생각은 꼬물만치도 없었다. 맛있는 음식을 앞에 두고 아무리 큰 자제력을 갖춘 고양이라 할지라도 그 유혹을 이겨내기란 어려운 일이라는 걸 나는 잘 알고있었다. 어쩌면 식탐은 인간도 가지고있는 동물근성중의 하나였으니 하물며 우리 고양이들이야…

 

 하지만 지금 썅썅은 한가지 실수를 했던 것이다. 내가 제일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은 바로 우리 코리안숏헤어가 도둑고양이라는 썅썅의 편견이였다. 오빠의 말을 듣고 내가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생존능력이 제일 강한 코숏을 길고양이, 야생고양이라고 하는 것은 상관이 없지만 도둑고양이라고 비난하는 것까진 더 이상 참을수 없었다. 그것도 자기 자신이 오히려 번연한 도둑질을 하면서 말이다.

 

 소고기를 배불리 먹은 썅썅은 앞발을 깨끗이 핥은후 해볕이 쬐이는 베란다 창문곁에 대자로 누워서 코를 골며 잠이 들었다. 그 가증스러운 모습을 지켜보던 나는 문득 한가지 생각이 뇌리를 스치자 저도 모르게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

 

 나는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우선 싱크대에 뛰어올라가 썅썅이 하던대로 솥 두껑을 머리로 떠밀었다. 두껑은 꿈쩍도 하지 않았고 오히려 내가 숨이 턱에 닿아 헐떡거렸다. 한참 숨을 고르게 한뒤 나는 젖먹던 힘까지 다 내여 내 머리에서 제일 단단한 이마 윗부분으로 두껑을 힘껏 떠밀었다. 겨우 두껑이 밀리면서 가느다란 틈새가 생기자 나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약한 내 앞발을 들이밀기엔 충분한 틈새였던 것이다.

 

 뒤이어 나는 내가 생각했던 것들을 행동에 옮기기 시작했다. 썅썅에게 다가선 나는 대자로 누워자는 그의 왼쪽 앞발에 내 입으로 물어온 곰국을 듬뿍 묻혀놓은후 기진맥진한 몸으로 쏘파위에 올라가 몸을 동그랗게 말고 잠에 빠져들었다.

 

 내가 깨여났을 때는 어느덧 땅거미가 어둑어둑 지기 시작했고 여자는 배가 고팠는지 방문을 열고 나와 주방으로 향했다. 썅썅도 금방 깨어났는지 몸을 늘구어 길게 기지개를 켜고있었다. 나는 그런 썅썅의 모습을 주시하다가 주방에 들어간 여자가 새된 소리를 지르자 슬그머니 입꼬리를 치켜올렸다.

 

 “이거 누가 이랬어! 세상에! 이 발자국은 뭐고 뚜껑은 또 뭐야?”

 

 잠시후 여자는 두팔을 걷고 주방을 나와 썅썅을 향해 다가서며 말했다.

 

 “내가 깜빡 하고 잠들어버렸는데 싱크대가 지금 엉망이야. 솥두껑도 열려있고 싱크대도 국물 투성이고. 썅썅 너지?”

 

 썅썅의 날카로운 눈이 나를 향하고 있었고 여자는 잠깐 침묵하다가 나에게 다가왔다.

 

 “아니다. 투투일수도 있으니 앞발을 보면 알거 아니야.”

 

 나는 꼼짝달싹 않은채 여자에게 잡혔고 한참 고개를 숙여 내 앞발을 들여다보던 여자는 머리를 가로저었다.

 

 “투투가 아니야. 하긴 얘 힘으로 두껑을 열리는 없어.”

 

 아까 잠들기전 내가 이미 세수를 깨끗이 한 것을 여자는 알리 없었다. 슬쩍 썅썅을 바라보았더니 그는 잠시 멍해있다가 자기 앞발을 내려다보더니 그제야 상황파악을 한듯 슬금슬금 구석을 찾기 시작했다.

 

 “썅썅, 거기 서!”

 

 여자가 호통을 치자 썅썅은 몸을 흠칫하더니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뒤이어 여자에게 잡힌 썅썅의 앞발에는 보기 좋게 허연 국물이 말라붙어 있었다.

 

 만일 여자가 놀라지만 않는다면 나는 진짜 소리내여 웃고싶었다. 나는 이제 곧 썅썅에게 떨어질 여자의 매 세례를 기다리며 눈앞의 상황을 흥미진진하게 바라보았다.

 

 “넌 정말 천재야.”

 

 여자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썅썅은 여자의 시선을 피해 몸을 움츠리고 있었다. 바로 그때 여자의 손이 썅썅의 머리에 닿았다. 썅썅은 귀를 한껏 붙이고 눈을 감았다.

 

 “뭘 줄까? 저 소고기 다 줄까? 너 소고기 좋아하잖아.”

 

 뭐지...눈앞의 반전 전개에 나는 눈이 휘둥그래졌다. 여자는 썅썅을 들어올려 품에 안고 그의 털을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었다.

 

 “썅썅 니가 아니었으면 큰일날뻔 했어. 가스불을 끄느라 주방이 그 모양이 되었구나. 곰탕은 졸아서 못먹게 되었지만 그안의 소고기는 먹을수 있어. 그거 다 너 줄께.”

 

 나는 가만히 눈을 감았다가 다시 떴다. 썅썅이 나를 보았지만 이제는 득의양양한 눈길이었다. 나는 슬며시 고개를 돌려 그의 시선을 피했다.

 ......

 

 그날 저녁 썅썅은 여자가 준 소고기로 만포식을 한후 전에없는 무서운 기세로 내게 달려들었다.

 

 “투투 너였지? 내가 모를줄 알어? 네가 그렇게 간악한 방법을 쓸줄 몰랐어!”

 “그래서. 약하다고 비웃지 마. 코숏이라고 무시하지도 말고. 아니면 끝까지 너랑 맞서 싸울거야.”

 “네가 무슨 힘으로 나랑 싸워 이길건데? 심지어 운명의 신도 내 편인데.”

 

 미처 손쓸 사이도 없이 썅썅에게 깔린 나는 온몸의 힘을 모아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예상대로 벌컥 방문이 열렸고 썅썅이 주춤하는 사이로 나는 그의 몸밑에서 빠져나와 몸을 움츠리고 열려진 방문으로 새여들어갔다.

 

 “투투, 왜 그래? 안에 들어오면 안돼. 너넨 거실에서 자야 해.”

 

 나는 여자의 말을 아랑곳하지 않고 침대로 뛰어올라가 여자에게 몸을 기대고 숨었다. 썅썅이 문에 부딪칠 기세로 달려들어왔고 나는 펄쩍 뛰면서 하악 소리를 냈다.

 

 “썅썅, 왜 아직도 투투 괴롭히냐. 하루 굶고싶어?”

 

 여자가 썅썅을 막았지만 눈에 달이 오른 썅썅은 그대로 여자를 뛰어넘어 나에게 달려들었다. 나는 방바닥까지 내리드리운 창문커튼을 발견했고 몸을 날려 커튼에 발톱을 박은후 위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여자는 억이 막혀하다가 곧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나를 구경하고 있었다. 애초에 여자의 힘을 빌려던 내 자신이 우스워지는 순간이였다.

 

 “커튼 망가지겠는 걸…”

 

 커튼에는 내 발톱자리가 났고 여자는 걱정어린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나는 여자의 걱정따윈 아랑곳하지 않고 순식간에 위로 톺아올라 창문 제일 꼭대기에 이르자 커튼 가름대에 몸을 실었다.

 

 “투투 너 써커스 하냐.”

 

 여자의 커튼에 대한 걱정은 나에 대한 탄복으로 이어졌고 나는 잠깐 주위를 살피다가 창문곁에 놓인 옷장을 발견했다. 가름대를 앞발로 잡고 나는 옷장을 향해 앞으로 전진하기 시작했다. 커튼이 내 몸을 따라 한쪽으로 끌리면서 열리기 시작했고 잠옷차림의 여자는 급히 몸을 일으켜 침대옆의 가디건을 걸쳤다.

 

 “투투…이젠 그만하고 내려와.”

 

 여자가 권고했지만 나는 옷장곁에 다가가자 몸을 빼여 가름대위에서 잠시 평형을 잡은후 그대로 옷장위로 몸을 날렸다. 옷장위에는 흰종이가 한벌 깔려있었고 나는 천정과 거의 붙은 그 공간에서 몸을 늘인후 한결 여유로운 태도로 아래로 내려다보았다. 썅썅의 멍해진 눈길이 내 눈안에 들어왔다.

 

 “재간있으면 어디 올라와봐.”

 

 나는 높은 곳에 편하게 앉아 썅썅을 약올리기 시작했다. 부드득 이를 갈던 썅썅은 나처럼 커튼에 발톱을 박고 둬걸음 올라오다가 자기 몸무게를 못이겨 툭 하고 방바닥에 떨어졌다. 여자가 그 모습에 소리내어 웃었고 나는 옷장위에 드러누워 입을 벌리고 길게 하품을 했다.

 

 “안올라올테냐? 아...졸려.”

 “재간있으면 어디 한평생 그 위에서 살아봐!”

 

 썅썅이 밑에서 풀쩍풀쩍 뛰면서 분노에 찬 소리를 질렀다. 나는 느긋한 표정을 지으며 잠을 청했다. 썅썅과 나의 본격적인 전쟁이 드디어 막을 올리고 있었다.

 ......

 

 썅썅은 꼬박 하루밤을 밑에서 내가 내려오길 기다렸지만 나는 그렇게 호락호락 넘어가지 않았다. 옷장위에서 나는 고양이들이 높은 곳을 좋아하는 이유를 비로소 알수 있었다. 높은 곳은 적들에게 공격받을 위험이 없었고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느낌이 꼭 마치 누구위로 군림하는 것 같았던 것이다. 옛날 우리 고양이 조상이 호랑이에게 다른 재간은 다 배워주면서 유독 나무에 올라가는것만은 배워주지 않았다는 것이 결코 근거없는 이야기는 아니였다. 높은 곳으로 오를수 있는 것이 이렇게 좋은 재간이라는 것을 나도 오늘 처음 알았으니까.

 

 바보같은 썅썅은 한참 밑에서 으르렁거리다가 커튼뒤에 몸을 숨기고 드러누웠고 나는 눈을 반쯤 뜨고 커튼밑으로 비죽 나온 썅썅의 수북한 꼬리를 보면서 슬쩍 입꼬리를 치켜올렸다. 바로 그때 배에서 꾸르륵 소리가 허기를 전해왔다. 그제서야 나는 어제 저녁을 얼마 먹지 않았다는 것을 기억해내고 삽시에 김빠진 공처럼 되어버렸다. 어렴풋한 새벽빛속에서 썅썅의 꼬리를 내려다보던 나는 고개를 돌려 깊이 잠든 여자의 얼굴을 보자 슬며시 몸을 일으켰다.

 

 “냥~~~”

 

 나는 다른 고양이들처럼 야옹 하고 우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간단히 냥이라는 소리를 내기 좋아했다. 요즘 사람들이 자주 사용하는 고양이 줄임말이 바로 냥이기도 했고 또 나처럼 천재 고양이가 다른 고양이들과 똑같은 울음소리를 낸다는 것은 내 자존심이 허락하는 범위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여자는 내 울음소리를 듣자마자 벌떡 일어나서 전등을 켰다. 삽시에 집안이 환해지자 나는 동공을 가늘게 줄였다.

 

 “투투…배고파?”

 

 여자는 짐작했다는 듯 나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하지만 나는 여자의 눈길을 마주한채 비실비실 뒤로 물러섰다.

 

 “냥…”

 “썅썅 때문에 그러는구나? 그럼 내가 사료를 집안에 들여다주고 썅썅 거실에 내보내면 되는거지?”

 

 썅썅은 여자의 말에 불만을 표시하느라 꼬리를 홱홱 저었고 그바람에 커튼이 펄럭거렸다. 여자가 썅썅을 커튼뒤에서 끄집어내자 썅썅은 눈살을 잔뜩 찌프리고 질질 끌려나왔다.

 

 “썅썅…넌 나가있어.”

 

 여자는 썅썅을 방문밖으로 내보낸후 사료그릇을 챙겨들고 옷장 앞으로 다가왔다. 나는 물끄러미 여자의 손을 내려다보면서 미동도 하지 않았다. 여자가 알았다는 듯 선한 미소를 지었다.

 

 “물이 없다고 그러는구나? 먹은 다음 물을 갖다줄 테니까 걱정하지 마. 당분간 화장실도 내가 안고 가줄테니.”

 

 나는 그제야 안심을 하고 옷장위에서 내려갈 준비를 하다가 갑자기 눈앞이 아찔해나서 모든 동작을 멈추었다. 올라올 때는 몰랐는데 지금 보니 옷장 높이는 내 키의 15배를 훨씬 초과하는 듯 했다. 만일 이대로 뛰어내린다면 발을 접지르거나 뼈를 다치기라도 해서 앞으로 제대로 걸어다닐수나 있을지 하는 걱정이 앞섰다.

 

 우리 고양이들은 아무리 날렵하다 해도 자기 키의 13배를 초과하는 높이는 절대 도전하지 않는 법이다. 내가 주저하자 여자는 의자를 가져다 놓고 그 위에 올라서서 옷장변두리에 걸쳐진 내 앞발을 불쑥 잡아당겼다.

 

 나는 뒤로 뻗대면서 힘을 주었고 여자는 나를 끌어당기고 있어서 우리는 그렇게 서로 대치하고 있다가 드디여 힘이 약한 내가 아래로 끌려내려가게 되었다. 순간 나는 학 소리를 내면서 여자의 팔에 발톱을 박았고 여자는 움찔하다가 나를 품에 껴안고 천천히 바닥에 내려섰다.

 

 “아침부터 이건 무슨 시츄에이션?”

 

 언제 왔는지 문가에서 여자의 남자친구가 쿡쿡 웃고있었다.

 

 “고양이가 사람을 길들이는 과정이 바로 이런거였구나. 항상 늦잠만 자던 네가 이른 아침부터 이러고 있으니.”

 

 여자는 침대에 나를 내려놓았고 남자의 시선은 잠시 여자의 팔에 와 닿았다. 문득 남자가 미간을 찌푸렸다.

 

 “피!”

 “아...괜찮아.”

 

 여자가 잠옷 소매를 내려 팔의 상처를 감췄다.

 

 “살짝 긁혔을뿐이야.”

 

 남자는 버럭 언성을 높였다.

 

 “괜찮긴 뭐가 괜찮아!”

 

 남자는 앞으로 다가오더니 여자의 소매를 걷었다. 여자의 팔에 난 상처에는 어느새 점점의 피가 맺혔고 그것을 본 남자의 눈에는 순식간에 분노의 불길이 일었다.

 

 그 눈빛을 마주한 나는 저도 모르게 흠칫 몸을 떨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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