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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언하모닉 베네딕투스
작가 : 대홍수
작품등록일 : 2019.9.22

제국의 멸망 이후 120년. 전란 속에서 사람들은 황제의 귀환을 꿈꾼다.

 
Ep.2 일각수(2)
작성일 : 19-10-04 20:39     조회 : 199     추천 : 0     분량 : 73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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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불붙은 서까래가 떨어져 노아에게 달려오는 여자의 다리를 부러뜨렸다.

 여자를 구하러 다가갔지만, 전각(殿閣)은 그 화려했던 과거만큼이나 화려하게 폭발해 사방을 휘감았다. 노아는 폭발에 휘말려 계단을 굴렀다. 여자의 몸뚱이는 더는 남아 있지 않았다.

 노아는 몸을 돌려 폭발을 피해 도망쳤다. 물론 소용이 없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웅퉁몸으로 이루어진 자랑스러운 금군은 오른팔은 동쪽 하늘을, 왼팔은 서쪽 하늘을 향해 날아가는 식이었고, 화마는 이미 노아를 둘러싸고 있었다.

 생명을 탐욕스럽게 빨아먹으면서도 만족하지 못해 허기의 군무를 추던 불꽃은 갈수록 그 규모를 키워가며 노아를 둘러쌌다.

 한 마리의 거대한 뱀처럼, 혹은 한 무리의 혼란스러운 춤꾼처럼 노아를 둥글게 포위한 불꽃은 마침내 누군가에게 노아의 살점을 빼앗길세라 노아에게 달라붙어 살점을 파먹기 시작했다.

 

 “괜찮아?”

 

 눈을 뜨자 거대한 머리통이 걱정 섞인 얼굴로 노아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노아는 100만 년짜리 숙취를 느끼며 기억을 되새겼다.

 

 나는 누구지?

 나는 노아다.

 수비대의 일원이었고,

 탐 가문의 척살 대상이며,

 이름 없는 작은 마을의 주민이다.

 

 “큰일 나는 줄 알았어. 미안해. 나도 너무 당황해서......”

 

 힌돌이 초조한 목소리로 말했다.

 

 ‘혹시 내가 비명을 질렀나? 들었나?’

 

 기억이 나지 않았다. 노아는 기억을 더듬었다. 외부인이 나타났고, 그를 불태우려 했다. 머리에 불이 붙자 그는 비명을 지르며 눈을 떴고 그다음에는...... 머리가 깨질 것 같은 건 숙취 때문은 아니다.

 머리에 손을 대자 찢어진 상처가 쓰라렸다.

 

 “주먹이 맵군요. 더 평화로운 방법은 없었습니까?”

 

 힌돌은 미안함에 입을 꾹 다물었다가 눈을 찌푸렸다.

 

 “너야말로 더 평화로운 방법은 없었냐? 다짜고짜 온 손님을 죽이려 들다니 말이 돼?”

 “손님? 아, 그 사람. 그자는 어디 있죠?”

 

 힌돌이 사말의 집 방향을 가리켰다.

 

 “일단 눈씨 형제네 집에 그대로 뒀어. 다행히 파말이 흙을 부어서 크게 다치지는 않았어. 너랑 떨어뜨려 놔야 할 것 같아서. 대체 왜 그런 거야?”

 “그자와 떨어져야 할 사람은 저뿐만이 아닙니다. 격리하고, 태워 죽여야 해요.”

 

 결국, 힌돌이 소리를 빽 질렀다.

 

 “야, 이 미친놈아! 다짜고짜 처음 보는 사람을 가지고 ‘태워 죽여!’ 하면 옳다구나 하고 아궁이에 쳐넣을 수 있을 줄 알아? 이유를 설명해야 할 것 아니야, 이유를!”

 

 노아가 눈을 감았다 떴다. 여전히 충격이 덜 가신 듯 세상이 혼란스럽게 보였다. 어지럽다.

 

 “아궁이에 넣으면 안 돼요. 격리해야 한다고요. 팔다리를 묶은 후, 우리에 가둔 다음에 마른 나뭇가지를 올리고 불을 붙여요.”

 “노아!”

 

 노아는 힌돌을 바라보았다.

 

 ‘뭐야, 왜 저렇게 화가 났지? 내 말이 안 들려?’

 

 “일단 진정해요. 우리 급한 것부터 합시다. 그자를 태우고, 당신이 화가 난 이유는 그 뒤에 천천히 이야기해요. 사말네 집에 있다고 했죠?”

 

 노아는 땅을 밀었고, 땅은 노아를 잡아당겼다.

 노아는 힌돌이 자신의 머리를 잡고 땅에 짓누르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힌돌은 팔짱을 낀 채 불쾌감을 드러낼 뿐,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었다.

 힌돌은 화를 가라앉히려고 애쓰며 한 마디, 한 마디 꾹꾹 눌러 말했다.

 

 “노아, 사람을 죽이는 일이 급한 일이 될 수는 없어. 일단 말해봐. 그 사람이 왜 죽어야 하지? 그것도 그렇게 끔찍하게? 또 흉악범이야? 그러면 그냥 목을 치기만 해도 되잖아.”

 

 힌돌의 말에 잊고 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때도 마찬가지였다. 100명도 안 되는 작은 마을에 감옥이 있을 리 없다. 그렇다고 제대로 된 관청에 보낼 수도 없고. 결국, 마을 밖으로 쫓아낸 그놈은 마을 밖에 꽃을 따러 나간 할이를 죽였다.

 일곱 살밖에 안 된 어린아이를.

 

 오늘의 손님이 죽어 마땅한 놈이라고 말하면 그것만으로 이 웅퉁몸은 한 주먹에 그자의 머리를 부술 것이다.

 그리고 힌돌은 죽을 것이다.

 

 노아는 벽에 기대고 앉았다. 아직도 가라앉지 않은 현기증에 힌돌이 사선으로 앉아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말을 하는 것에는 정확한 조준이 필요하지 않으니 상관없었다.

 

 “정신이 돌아왔다고 했죠. 대화는 나눠 봤어요?”

 “일단은. 많이는 못 나눴어. 널 여기에 데려다주느라.”

 “그자의 이름은?”

 “아린. 사공씨의 아린 이라고 하던데.”

 “어떻게 동쪽에서 올 수 있었다고 하는지 들었나요?”

 

 힌돌이 다시 눈을 찌푸리고 손을 비볐다. 돌가루가 바닥에 깔렸다.

 

 “전혀. 기억을 못 하더라고. 아, 넌 알겠나? 그렇게 죽이고 싶으니 누군지 잘 알고 있겠지.”

 

 마지막 문장은 약간의 비꼼이 들어 있었다.

 

 “모릅니다. 하지만 죽여야 하는 건 압니다.”

 

 노아는 벽을 짚고 일어났다. 힌돌이 바닥을 때렸다. 가벼운 지진 비슷한 것이 일어나 노아를 다시 주저앉혔다.

 

 “살해 이유는? 방법 말고. 이유를 말하지 않으면 널 곳간에 처박고 한숨 자고 깨워주지. 너 때문에 밤을 샜거든.”

 

 밤을 새웠다? 노아는 뒤늦게 바깥이 밝은 것을 알고 고개를 흔들며 “어쩐지 밝더라니......” 넋두리했다.

 노아는 눈을 감고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 어지럼증이 충분히 완화된 뒤에야 눈을 뜨고 힌돌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치매는 잠복기가 끝나고 생기는 첫 증상이죠. 갈수록 기억력이 나빠지고, 본래 성격보다 과하게 난폭하거나, 유순해집니다.”

 

 힌돌이 깜짝 놀라 천장을 뚫을 듯 뛰어올랐다.

 

 “뭐? 지금 그자가 전염병 환자라는 거야?”

 

 ‘뭐라는 거야. 내가 말 안 했나? 분명히 바둑 두면서 지금까지 나눈 대화 주제가...... 아!’

 

 노아는 그제야 자신이 하나로 생각하던 대화가 힌돌의 기억 속에서 둘로 나뉘었음을 깨달았다.

 

 “일각수요. 그자는 일각수입니다!”

 

 힌돌은 멍한 얼굴로 노아를 바라보며 눈을 찌푸렸다. 잠깐의 의미를 알 수 없는 눈빛 교환 끝에 힌돌이 힘겹게 입을 열었다.

 

 “뿔이 없던데?”

 

 *****

 

 무린은 노아를 업고 고함을 지르며 달려오는 힌돌을 멍한 얼굴로 바라보았다.

 

 “마침내 세상이 끝나려나? 그 정도가 아니라면 수탉 흉내를 내며 아침을 깨울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

 “제기랄! 이 말랑말랑한 놈들아! 말장난할 때가 아니야. 모두 떨어져! 비키라구!”

 

 힌돌은 무린을 힘껏 밀어 자빠뜨리고, 방으로 들어가 잠이 덜 깬 사말과 파말을 붙잡고 집어던졌다. 속옷 차림으로 땅바닥을 나뒹군 파말이 외쳤다.

 

 “힌돌! 이게 대체 무슨 짓입니까!”

 “설명은 나중에! 어제 온 사람 어딨어?”

 “아린씨는 집 안에 있습니다. 잠이 덜 깬 집 주인은 여기 있고요.”

 

 사말이 짜증 섞인 목소리로 먼지를 털며 일어났다. 그때 방 안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일이죠?”

 “문에서 손 떼고 움직이지 마!”

 

 겁에 질린 목소리와 그림자는 힌돌의 고함에 단번에 얼어붙었다.

 

 “감옥입니까? 다행이군요.”

 

 사말이 말했다. 힌돌이 이 끔찍한 상황에 어떻게 그런 말을 하냐며 길길이 날뛰려 하자 사말은 덧붙였다.

 

 “집주인을 바꾸려는 게 아니라 집 용도를 바꾸는 거잖습니까. 저는 노아가 드디어 힌돌씨를 포섭해 이 집 주인을 더 젊은 피로 갈아치우는 것으로 복수를 시작하려는 건가 생각했습니다."

 

 노아는 거북곰 퇴치제를 떠올렸고, 덕분에 사말에게 비보를 전하면서도 미안함을 덜 수 있었다.

 

 “미안하지만 그러기는 힘들 거야. 역할이 끝나면 집을 태워야 하거든.”

 “아.”

 

 노아의 대답에 사말이 시무룩한 얼굴로 입을 삐죽였다.

 

 “저기......”

 

 아린이 말했다.

 

 “감옥이라니요? 제게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목소리가 젊다. 아니, 어리다. 노아는 그가 20대도 넘기지 못했을 수도 있겠다 생각했다.

 힌돌이 노아를 바라보았다. 힘쓰는 건 했으니 정보 전달은 맡긴다는 투다. 노아는 힌돌에게 가볍게 눈짓하고 마루에 앉았다.

 

 “너는 동쪽에서 왔어. 하지만 동쪽으로 넘어오려면 원용의 세력권을 지나야 해.”

 

 아린이 탄성 같은 비명을 내뱉었다.

 

 “용이 있다고요? 하지만, 저는 용을 본 적이 없어요.”

 “그래. 원용은 사람보다 똑똑하고, 동물보다 예민하니까. 왜 원용이 네 앞에 나타나지 않았을까? 세력권을 태연하게 침범한 너인데.”

 “모, 모르겠어요. 기억이 나지 않아요...... 하지만 그렇다면 오히려 여러분들이 저를 이렇게 대하면 안 되지 않나요? 저는 원용도 해치지 않는 무언가가 있다는 말이잖아요. 제 기억이 돌아오면 여러분께 사례하겠습니다.”

 

 노아는 무린을 바라보았다.

 

 “촌장님, 리운이 지난날 일각수를 발견했다고 했죠.”

 “그래, 헛소리라고 생각했지만. 뿔난 다람쥐가 어디론가 미친 듯이 달려가는 것을 봤다고 했지...... 저 소년이 일각수라고 말하려는 건가? 하지만 뿔도 없고, 둔갑한 다람쥐로 보이지도 않는걸?”

 “전설 속의 일각수는 신비로운 동물이죠. 때로는 다람쥐로, 때로는 말로, 때로는 개구리나 뱀의 모습으로 나타나며, 그 단단한 뿔은 보검이 된다고 하죠. 제국이 남아 있던 시절에 과도한 남획으로 지금은 멸종한 종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래. 다음은?”

 

 사말이 한 걸음 앞으로 나가 노아의 말을 끊으며 문을 가리켰다. 중요한 말을 하려는 모양인데, 그게 문 안쪽의 사람이 들어도 괜찮은 내용이겠냐는 의미다. 노아는 아린의 그림자를 바라보았다.

 ......괜찮을 것 같지 않다.

 

 노아는 마루에서 일어나 아린에게서 최대한 떨어졌다.

 

 “힌돌 씨. 아무래도 약초를 조금 구해야겠습니다. 그때까지 저 아이가 밖으로 나가지 못하도록 해주세요.”

 “어? 내가? 알겠어.”

 

 힌돌이 살짝 겁먹은 목소리로 고개를 끄덕였다. 무린은 노아의 말을 눈치채고 따라나섰고, 사말도 노아의 반대편에 서서 따라갔다.

 형만큼의 대담함을 갖추지 못한 파말만이 속옷 차림을 숨기기 위해 부엌으로 들어갔다.

 돌아올 때 옷도 한 벌 가져오라는 파말의 애처로운 목소리를 무시하며 노아는 말을 이어갔다.

 

 “일각수는 동물이 아닙니다."

 "하지만 일각'수(獸)'잖아."

 "일각수는 사람이 아니라 기생충입니다. 정확히는 기생당한 숙주를 부르는 이름이지요.”

 

 무린은 거칠게 기침했다. 사말도 처음 듣는 이야기에 눈을 휘둥그레 뜨고 노아를 바라보았다.

 노아는 알려지지 않은 전설을 풀기 시작했다.

 

 일각수는 제국에서 계량한 살인벌레인 미각충(尾角蟲)에 감염된 사람들을 부르는 말이다. 미각충은 숙주의 몸에 파고든 뒤, 뇌를 찾아 올라가 파먹기 시작한다.

 

 "뇌가 아프다는 과장된 말장난이 있지만, 사실 뇌에는 통각이 없습니다. 따라서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죠. 하지만 뇌가 조금씩 손실되면서 사람은 치매 증상을 보이거나, 극단적인 성격 변화를 보이기도 합니다."

 

 노아는 사말의 집을 가리켰다. 지금 저 집에 있는 환자는 딱 이 단계에 도달해 있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일각수의 전설이 시작되는 건 그다음 단계부터다.

 

 "시간이 흘러 숙주가 죽어간다고 느끼면 미각충은 그 송곳 같은 꼬리로 숙주의 정수리를 부수고 나옵니다. 그렇게 되면 숙주는 고통에 발광하게 되는데, 기억을 거의 잃은 채 고통에 발광하는 것만이 삶의 목적이 되어버린 만큼, 죽이지 않고 진정하기는 불가능합니다. 성질 더러운 일각수의 전설도 여기서 나온 것이죠. 결국, 숙주가 죽으며 미각충도 죽지만, 무성생식을 하는 그 벌레는 꼬리에서 알을 쏘아 올려 같은 희생자를 만들어냅니다. 과거 제국에서는 죽일 사람에게는 미각충의 알이 들어있는 다과를 선물했죠. 제국이 무너지며 멸종했으리라 생각했는데, 어떻게든 살아남은 모양입니다."

 

 사말이 자신의 집을 돌아보았다. 끔찍한 고통에 시달릴 소년을 동정하기 위해서일 수도 있지만, 사말은 그런 것과는 거리가 있는 인물이다.

 

 "아, 그래. 제국이 만든 살인충이라 그 뿔을 검으로 쓰는 제국병이라는 전설이 나온 거구나. 하지만 이상한데?"

 "뭐가?"

 

 사말이 정수리를 긁으며 말했다.

 

 "두 가지 의문이 있어. 첫 번째는 미각충 자체가 비효율적인 살인법이 아니냐는 거지. 이런 계량하기도 힘들고, 다루기도 어려운 생물병기보다는 그냥 암살자나 처형이 좋지 않겠어?"

 "네 말대로 반란이나 전쟁에는 효과가 떨어지지만, 일각수는 단순히 죽이는 물건이 아니야. 이렇게 말하면 어떨까? 어느 속국의 왕자가 미각충에 감염되었어. 그러면 왕이 황제에게 항의할 수 있을까? 공공연한 비밀도 비밀이기에 왕이 저항한다면 황제는 당장에 제국의 비밀을 누설한 왕의 목을 칠 수 있어. 그리고 왕은 추가적인 감염을 막기 위해 자기 아들을 산채로 불태워야 해. 고통을 덜어주려 해도 미각충은 숙주가 죽는 순간 무리해서라도 알을 뿌리기에 쉽지 않지. 운 좋게 돌관이라도 만들어둔 게 있다면 미리 매장하는 방법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죽음보다는 공포에 집중한 병기지. ‘네 가족을 산채로 태워 죽이기 싫다면 알아서 꿇어라.’ 하는 식의."

 

 무린이 끔찍한 상상에 진저리를 쳤다. 노아는 무린을 부축하고 앞장서 걸었다. 사말이 거친 수염이 막 올라온 자신의 턱을 주무르며 말했다.

 

 "좋......아, 그때 사람들은 미치광이였다고 치자. 그럼 두 번째 의문. 왜 너는 저 아이가 바위에 머리를 박고 기억을 잃었다는 가설 대신 100여 년 전에 멸종됐다고 여겨지는 벌레가 어거지로 살아남아 몸속에 파고들었다고 믿는 거지?"

 

 노아는 걸음을 멈추고 사말을 바라보았다. 질문의 의도가 뭘까? 노아는 사말의 의도를 파악하려 했지만, 사말은 언제나처럼 탐구자의 눈으로 노아를 바라볼 뿐이었다.

 

 "일각수의 특징 중 하나는 사람이 아닌 존재의 공포심 자극이야. 황제가 사슴에게 미각충을 보낼 이유는 없기도 하고, 자칫 야생동물에게 전염되면 미각충이 대륙에 퍼질지 모르니까 필요한 부분이었지. 사냥당하던 멧돼지가 도망치거나, 세력권을 침범당한 원용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거나. 기억상실증 환자에게 일어나는 증상은 아니지. 그리고 보따리에 묻은 보라색 피도."

 "보라색? 아, 그거! 포도 껍질이라고 생각했는데. 하긴, 포도치고는 색이 옅군. 보라색은 황제의 색. 눈앞에 두고도 몰랐단 말이네."

 

 사말이 깨달았다는 얼굴로 손뼉을 쳤다. 이게 다인가? 노아가 안심했다. 시골 사람들은 역시 좋다.

 

 "그러면 자네 말은 우리가 저 소년을 태워 죽여야 한다는 말인가?"

 "어쩔 수 없습니다. 전염병에 걸린 사람을 격리하는 것처럼요. 물론 그냥 쫓아내기만 하는 수도 있지만, 우리 모두 그렇게 해서 죽은 아이를 기억하지 않습니까?"

 

 무린이 작게 신음했다.

 

 "일각수는 스스로 불 속으로 들어갈 정도로 고통스러운 병입니다."

 "그게 살인을 정당화하지는 않아."

 "살인은 부당합니다. 우연히 찾아온 살인마에게 잡힌 소녀나, 멸종한 줄 알았던 살인충에 뇌를 빼앗긴 소년처럼, 혹은 이 세상처럼요. 물속에서 헤엄치고, 땅 위를 걷는 것처럼, 부당한 세상에서 부당하게 행동하는 것 말고 방법이 있습니까."

 "할이 이야기는 그만하게. 충분히 알아들었으니."

 

 그때 사말이 말했다.

 

 "노아. 일각수는 기생충에 감염된 사람을 일컫는 말이라는 거지?"

 "사람만은 아니지만, 아무튼 그렇다고 할 수 있지. 왜?"

 

 사말이 마을 밖을 가리켰다.

 

 "우리 중에 제일 벌레에 가까운 사람이 누구지?"

 

 무린과 노아가 동시에 눈을 찌푸렸다. 일반적으로는 '벌레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을 찾아야 마땅하지만, 사말은 '제일 벌레에 가까운' 사람을 물었다.

 

 "소용없어. 벌레가 벌레를 제일 잘 안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인간과 웅퉁몸 중에 한 사람에게 인간을 없애 달라 의뢰할 수 있다면 난 언제나 웅퉁몸에게 요청할 거야."

 

 노아가 반론했다. 웅퉁몸 암살자가 있다면, 그리고 가격이 합리적이라면 당연한 말이다. 사말은 어깨를 가볍게 으쓱하고 말했다.

 

 "보통은 그렇지. 하지만 시도해 볼 가치는 있잖아?"

 

 그것도 맞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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