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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더 슬레이어
작가 : 임우상
작품등록일 : 2016.9.30

이 땅위에서 가진 것이라곤

검 한 자루와 목걸이 뿐이었다.

아무것도 모른 채 태어나, 진실을 마주하다.

방랑 검사 루카, 그의 이야기.

 
09. 원죄(原罪) (3)
작성일 : 16-10-04 23:45     조회 : 371     추천 : 1     분량 : 7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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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알렉시스 경! 저건 대체 무슨 괴물.. ”

 “ 검을 드시오! 예나! ”

 

 괴물은 서서히 구부렸던 한 쪽 다리를 펴 일어나더니 자신의 앞에 쳐 박혀 있던 흑색의 거대한 망치를 들었다.

 

 - 쿠웅.

 

 괴물이 자신의 어깨에 망치를 올려놓는 소리가 방 안을 가득 메웠다. 괴물은 루카와 예나를 향해 서서히 고개를 돌리더니 망설임 없이 그들을 향해 발을 구르기 시작했다. 한가하게 담소나 나눌 기세는 아니었다.

 

 “ 예나, 피해야 하오! ”

 

 - 쿵. 쾅. 쿵. 쾅.

 

 괴물의 발자국 소리가 땅 속으로 메아리쳤다. 그 진동의 세기가 어찌나 강하던지 루카의 발목까지 쩌릿쩌릿했다. 놈은 순식간에 코앞으로 다가와 그들을 향해 망치를 내려찍었다.

 

 - 콰앙!

 

 어마어마한 일격이었다. 예나와 루카는 각각 왼쪽과 오른쪽으로 몸을 굴려 망치를 피했으나 망치는 예나와 루카가 있던 자리의 뒷벽을 후려쳐 벽돌을 우수수 무너뜨렸다.

 

 - 콰과과광!

 

 우연인지 괴물의 의도인지 충격으로 인해 쏟아져 내린 벽돌은 귀신같이 루카와 예나가 올라왔던 통로의 입구를 막아버렸다.

 

 “ 젠장! ”

 

 루카는 지체 없이 행동했다. 그는 곧바로 자세를 바로잡고 벽에 박힌 망치를 빼내는 괴물의 등을 향해 오른쪽에서 왼쪽 하단으로 크게 베어 내렸다.

 

 - 팅!

 

 놀랍게도 루카의 검은 괴물의 흑색 갑옷에 힘없이 튕겨나가고 말았다. 루카는 웬만한 중갑 정도는 손쉽게 베어내리는 검술의 소유자였다.

 

 “ 말도 안 돼! ”

 

 루카가 놀라고 있을 틈은 없었다. 괴물은 벽에 꽂힌 망치를 빼내기가 무섭게 루카를 향해 내리갈겼다.

 

 - 후웅!

 

 ‘ 신이시여! ’

 

 공기마저 힘차게 가르는 어마어마한 위력이었다. 루카는 몸을 구부려 자신을 노리는 망치를 피하고 괴물의 배를 향해 검을 힘차게 찔러 넣었다. 베어내지 못하면 뚫을 수밖에 없었다.

 

 - 팅!

 

 “ 뭐 이딴 게.. ”

 

 결과는 같았다. 검은 괴물의 단단한 갑옷을 뚫지 못하고 힘없이 튕겨져 나왔다. 놈은 이내 망치를 위로 들어 루카를 찍어 내리려 했다. 망치의 검은 그림자가 루카의 몸 위로 드리워졌다.

 

 “ 하앗! ”

 

 루카를 위기에서 구해낸 건 예나였다. 그녀는 자신의 검을 뽑아 놈의 오른쪽 목 부위를 강하게 타격했다.

 

 - 댕!

 

 그녀의 검은 괴물의 목을 단칼에 자르기엔 부족했지만 충격을 먹이기엔 충분했다. 괴물은 오른손에 든 망치를 찍어 내리지 못하고 흔들리더니, 왼손으로 목 부분을 움켜쥐었다. 그 곳이 분명 약점인 듯했다.

 

 “ 잘했소, 예나! ”

 

 틈을 놓칠 루카가 아니었다. 루카는 오른쪽으로 몸을 한 바퀴 회전하여 망치를 피하고 회전력을 그대로 살려 괴물의 왼쪽 목을 향해 검을 날렸다.

 

 - 댕!

 

 “ 쿠어어어악! ”

 

 확실한 유효타였다. 놈은 흉측한 목소리로 기괴한 음성을 내지르더니 분노한 듯 망치를 이리저리 휘둘렀다. 바람이 휙- 휙- 갈릴 정도로 엄청난 힘이었다.

 

 ‘ 한 방만 맞아도 골로 간다! ’

 

 루카는 뒤편으로 멀찍이 뛰어 무식하게 휘둘러지는 망치들을 피했다. 괴물의 안면에서 뿜어져 나오는 검은 연기가 방안 이리저리 흩날렸다. 예나는 가만있지 않았다. 예나는 괴물이 루카를 노린 틈을 타 놈의 목을 다시 한 번 가로로 베었다.

 

 “ 하앗! ”

 

 - 댕!

 

 “ 쿠아아아악! ”

 

 괴물은 순식간에 방향을 전환해 예나에게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가속을 붙여 망치를 내질렀다. 예나는 망치가 오는 방향으로 아주 조금 뒤편으로 움직여 가뿐히 망치의 범위를 벗어난 뒤 다시 오른손에 있던 검으로 놈의 오른쪽 목을 쳤다. 훌륭한 반격이었다.

 

 “ 나쁘지 않구만! ”

 

 이번엔 루카 차례였다. 루카는 예나에게 정신이 팔린 괴물의 오른쪽 목, 왼쪽 목, 오른쪽 목을 번갈아 타격했다.

 

 - 댕! 댕! 댕!

 

 “ 그아..악! 그아아악! ”

 

 괴물은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망치를 이리저리 휘둘러 봤지만 예나와 루카는 요리조리 잘 피하며 약점이라 생각되는 놈의 목 부분만 계속 후려치고 있었다.

 

 “ 다 됐다.. ”

 

 루카와 예나는 괴물 너머로 서로의 눈을 마주보았다. 그 둘은 슬슬 마무리를 해야 할 때가 왔음을 알고 있었다.

 

 “ 그와아아아악! ”

 

 괴물은 괴성과 함께 다시 한 번 더 망치를 루카에게 위력적으로 내려찍었다. 루카는 왼편으로 살짝 몸을 비틀어 망치를 피한 뒤 놈의 턱을 향해 검을 아래에서 위로 힘차게 차올렸다.

 

 - 탕!

 

 괴물은 팔을 쫙 벌린 채 뒷걸음쳤다. 아까와 다른 충격을 받은 것이 분명했다. 예나는 그 틈을 타 몸을 날려 놈의 목을 향해 자신의 검을 휘둘렀다.

 

 - 댕!

 

 루카 역시 마찬가지였다. 뒤에선 예나가 앞에선 루카가 놈의 목을 사정없이 후려갈기고 있었다.

 

 - 댕! 댕! 댕! 댕!

 

 앞뒤로 쳐대는 검 때문에 괴물은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결국 놈은 이리저리 흔들리더니 이내 망치를 손에서 놓쳐버렸다.

 

 - 쿵!

 

 괴물 역시 마찬가지였다. 망치가 떨어짐과 동시에 놈은 기력을 다한 듯 무릎을 땅에 쳐박고 그대로 무너져버렸다.

 

 “ 해냈어요! ”

 

 괴물이 쓰러지자 예나는 기쁜 마음을 주체하지 못하여 루카에게 달려와 그를 안았다. 그 다음 순간 예나는 루카가 오늘 처음 본 사람임을 인지했다. 화들짝 놀란 예나는 루카를 안았던 손을 풀었다.

 

 “ 아 죄송해요.. 그만.. ”

 “ 아니, 괜찮소. ”

 

 루카는 투구를 벗었다. 얼굴은 땀범벅이었다. 그는 손에 든 투구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예나는 루카의 얼굴을 보고 깜짝 놀랐다. 적당히 반반한 외모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의 나이가 자기 또래 수준으로 생각보다 더 어렸기 때문이다.

 

 “ 잘 생기셨네요. ”

 

 루카는 자신의 등 뒤를 바라봤다. 쇠창살 안. 괴물이 가리고 있어 보이지 않던 곳에 웬 노인 한 명이 단단히 묶여있었다. 루카는 쇠창살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의뢰를 해결해야만 했다. 그리고 쇠창살을 향하여 한 걸음. 두 걸음. 세 걸음.

 

 “ 알렉시스!! ”

 

 예나의 목소리가 루카의 귓전을 때리자마자 루카는 직감했다. 방심했구나. 루카는 자신의 고개를 뒤로 돌리는 와중에도 수백 번 후회했다. 적의 목숨이 확실히 끊어지기 전에는 결코 검을 거두지 말라. 자신을 20년 가까이 가르쳐왔던 달팽이 가장 강조하던 것 아니었던가.

 

 “ 알렉.. ”

 “ 그와아아아아! ”

 

 괴물은 다시 일어나 예나의 왼쪽 다리를 붙잡은 채 그녀를 거꾸로 들고 있었다. 이내 놈은 괴성을 내지르며 예나를 자신의 발밑에 내동댕이쳤다.

 

 “ 아앗! ”

 

 예나는 고통에 소리 질렀다. 그것은 떨어진 망치를 주웠다. 그리고 그녀가 다시 자세를 고쳐 잡기도 전에 그것은 망치를 쓰러진 그녀의 몸을 향해 아무 망설임 없이 내려찍었다. 그녀의 평갑 중심에 있던 사자문양이 박살났고 그녀의 몸은 반동으로 인해 공중으로 뛰어 올려졌다.

 

 - 쾅!

 

 “ 안 돼!!! ”

 

 루카는 달렸다. 빌어먹을. 빌어먹을. 그녀는 자신이 낸 희생자였다. 맙소사. 그녀는 결코 죽어서는 안됐다. 루카는 검을 뽑아 괴물에게 달려들었다.

 

 - 댕!

 

 루카는 거침이 없었다. 놈의 오른쪽 목을 한 번 후려치더니 그대로 몸을 회전시켜 괴물의 뒤로 돌았다. 그는 다시 왼쪽 목을 한 번 후려쳤다. 그리고 다시 오른쪽. 왼쪽. 오른쪽. 왼쪽.

 

 - 댕! 댕! 댕! 댕!

 

 “ 그와아아아악! ”

 

 괴물은 몸을 돌려 루카에게 망치를 8자 모양으로 돌리며 다가왔다. 부웅- 부웅- 엄청난 괴력이었다. 루카는 계속해서 거리를 벌렸다. 그 자신보다는 쓰러져 있는 예나에게 2차 피해가 가게 해선 결코 안됐다.

 

 “ 빌어먹을 자식! ”

 

 루카는 다시 괴물의 뒤편으로 몸을 회전시켰다. 놈은 몸을 돌려 루카에게 망치를 내려찍었다. 루카는 다가오는 망치를 뒤쪽으로 살짝 피하고 다시금 괴물의 턱을 향해 검을 쳐올렸다. 하지만 괴물은 놀랍게도 학습 능력을 보유한 듯했다. 놈은 알고 있었다는 듯 왼손으로 루카의 검을 튕겨내고 그대로 루카의 가슴팍을 향해 주먹을 뻗었다.

 

 - 쾅!

 

 엄청난 힘이었다. 루카는 저편으로 순식간에 날아갔다. 털썩-. 하지만 쉴 틈은 없었다. 루카는 곧바로 일어나 자신의 가슴을 바라보았다. 무려 그 단단한 중갑이 찌그러질 정도의 주먹질이었다. 만약 루카가 중갑을 입지 않았다면 충분히 죽을 수도 있는 위력이었다.

 

 “ 빌어먹을 놈.. ”

 

 괴물은 기세를 놓치지 않고 달려오고 있었다. 루카는 자신 뒤편에 쓰러져 있는 예나를 보았다. 검은 루카가 날아가면서 떨어뜨려 괴물과 루카의 중간 부분에 위치하고 있었다. 루카는 자신의 혁대에 묶인 주머니를 뒤졌다. 그리고 그는 아스파에게 받은 조그만 쇠공을 꺼냈다.

 

 “ 아스파.. 이거 물어볼 게 한두 가지가 아니군.. ”

 

 루카는 쇠공을 달려오는 괴물을 향해 던졌다. 폭발의 위력이 어느 정도인지는 전혀 몰랐다. 하지만 지금은 도박수가 필요한 시기였다. 놈은 자신에게 날아오는 쇠공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계속 달려들었다. 루카는 뒤돌아 예나를 안았다. 그녀의 입에서 피가 흘러나오고, 정신을 잃은 상태였지만 죽지는 않은 것 같았다.

 

 - 꽈과과광!!

 

 루카의 뒤편에서 어마어마한 굉음과 열기가 터져 나왔다. 다행히 폭탄의 위력은 루카에게까지 미치지 않았다. 루카는 예나를 놓고 순식간에 몸을 돌려서 달렸다. 괴물이 있던 곳은 폭탄에서 발생한 검은 연기들로 자욱해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루카는 알고 있었다. 놈은 아직 쓰러지지 않았단 걸. 루카는 바닥에 떨어져 있던 검을 다시 줍곤 그대로 가속도를 높였다.

 

 “ 그아아아아악! ”

 “ 제발 좀.. 닥쳐라! ”

 

 이내 폭탄의 검은 연기를 뚫고 괴물이 한쪽 다리만 무릎을 꿇은 채로 기괴한 적색 눈동자를 드러냈다. 놈의 갑주는 폭탄이 제 역할을 제대로 해낸 셈인지 이곳저곳이 파손된 상태였다. 루카는 두려워하지 않았다. 질세라 괴물은 달려오는 루카를 향해 망치를 휘둘렀다. 루카는 알고 있었다는 듯 공중으로 뛰어올라 망치를 피했다. 이내 그는 검을 거꾸로 잡았다. 마지막 일격. 루카는 자신의 검을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는 괴물의 안면을 향해 찍어 눌렀다.

 

 - 푸직.

 

 “ 구와아아악! 그아아아아아아악! ”

 

 망치를 놓친 채 괴물은 엄청난 소음을 내며 뒤로 무너졌다. 루카는 검을 놓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괴물의 몸에 올라탄 채 힘을 최대로 가해 놈의 안면에 쑤셔 박혀진 검을 계속해 밀어 넣었다. 괴물의 안면에서 튄 검은 피가 루카의 검에 묻었다.

 

 “ 그아아아아아악! ”

 

  괴물은 엄청난 고통을 느끼는 듯했다. 적색 눈동자는 흔들렸고, 뿜어져 나오는 검은 연기가 이리저리 퍼지고 있었다.

 

 “ 하아.. 하아.. ”

 

 놈의 적색 눈동자는 슬슬 빛을 잃어가고 있었다. 더 이상 듣기 싫은 소음도 내지 못했다. 오직 놈이 할 수 있던 것은 자신의 오른손을 들어 손가락으로 루카를 가리키는 것 뿐이었다.

 

 “ 셰라.. 셰라마스.. ”

 

 투구의 안면에서 뿜어져 나오는 검은 연기는 그치지 않았지만 연기 속의 적색 눈동자는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죽은 것이 분명했다. 셰라마스. 그것이 놈의 마지막 말이었다.

 

 “ 하아.. 하아.. ”

 

 루카는 서서히 괴물의 몸에서 일어났다. 예나에게 가야했다. 그녀는 결코 죽어선 안됐다.

 

 “ 안 돼. 안 돼. 제발. 제발. ”

 

 예나는 쓰러진 채 움직이질 못했다. 숨은 가까스로 쉬고 있었지만 언제 그쳐도 이상하지 않았다. 루카는 자신이 올라온 통로를 바라보았다. 무너져 내린 벽돌의 잔해가 통로의 입구를 잔인하게 틀어막고 있었다. 루카는 고개를 반대로 돌려 쇠창살 안을 보았다. 웬 노인 하나가 흑색 줄에 묶인 채 앉아있었다. 마법사. 루카는 이것저것 가릴 처지가 못 되었다. 분명 마법사라면 사람 하나쯤은 가뿐히 살릴 것만 같았다. 그는 쇠창살을 향해 달렸다.

 

 “ 하아. 하아. ”

 

 쇠창살의 문은 너무도 손쉽게 열렸다. 애초에 잠겨있지도 않았다. 루카는 앉아있는 노인에게 달려가 노인의 몸을 흔들었다. 노인의 목에 걸려 있는 별 목걸이가 흔들렸다.

 

 “ 노인장. 노인장. ”

 

 노인은 루카의 음성에 고개를 조금 흔들더니 고개를 들었다. 맙소사. 그는 자고 있었다. 바로 옆에서 그렇게 치열한 전투를 벌였음에도 그는 이제야 깬 것이다.

 

 “ 흐아아아. 뭐고. 이건. ”

 

 그는 시원하게 한 번 하품을 하더니 루카의 얼굴을 보았다. 그리고 그는 잠시 미간을 찌푸리다 자신이 제대로 보고 있다는 게 확실하단 걸 깨닫고 이내 얼굴에 인자한 미소를 띠웠다.

 

 “ 아, 왔느냐. 제 시간에 왔구나. ”

 “ 뭐.. 뭐요? 아니, 그게 문제가 아니오. 노인장. 혹시.. ”

 “ 잠깐. ”

 

 노인은 갑자기 정색을 하더니 자신의 시선을 몸에 묶인 줄로 향했다.

 

 “ 이것 좀 풀 거라. ”

 

 루카는 노인장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희끗희끗한 머리털과 연결된 수북한 턱수염은 마치 눈처럼 깨끗했다. 하지만 그보다 루카의 시선을 끄는 건 그의 눈이었다. 노인의 눈은 너무나 깊었다. 노인의 눈을 바라보던 루카는 마치 자신이 깊은 바다 속에 빠진 것만 같았다.

 

 “ 에..? 예. 예. ”

 

 루카는 혁대에 묶인 단검을 집어 노인에 몸에 묶인 밧줄을 단칼에 잘라냈다. 갈색 누더기를 몸에 걸친 노인은 허리를 한 번 쫙 피더니 일어섰다. 그는 허리를 한 번 돌리고 뒤 한번 안 돌아보고 쇠창살 밖으로 나왔다.

 

 “ 아, 얼마만의 자유인가. ”

 

 루카는 잠시 얼이 빠져 노인을 지켜보았다. 노인은 아무 말 없이 쓰러진 예나에게 가더니 무릎을 꿇어 예나의 배에 손을 갖다 대었다.

 

 “ 허허, 이건 또 무슨 변수란 말인가. ”

 

 노인은 한 번 실실 웃더니, 이내 눈을 감았다. 루카는 가만히 그 장면을 지켜보았다. 노인이 뿜어내는 기운은 보통 사람의 것과 확연히 달랐다. 놀랍게도 노인이 예나의 배에 손을 댄 채로 조금의 시간이 지나자 예나의 입에서 흐르던 피가 거꾸로 입 안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옅은 숨을 쉬던 예나는 이내 안정된 숨을 쉬었고, 안색도 방금 전과 달리 훨씬 밝아진 것 같았다.

 

 “ 자아, 됐네. ”

 “ 이게 무슨.. ”

 “ 자네가 그러지 않았나. 이 여인을 살려달라고. ”

 

 노인은 손을 거두고 일어나서 얼이 빠져 있는 루카를 향해 씩 웃었다. 맙소사. 이 노인은 대체 뭐란 말인가.

 

 “ 자, 그럼 이제 갈 때가 되었군. 오래도 기다렸어. ”

 “ 가는.. 가는 길은 막혔습니다만.. ”

 

 노인은 루카를 향해 걸어와 그의 어깨를 두 번 툭툭 쳤다. 묵직한 느낌이었다.

 

 “ 아스파가 뭐라 하던가? ”

 “ 에? ”

 “ 어떻게 건물을 나오라고 했냐는 말일세. ”

 

 루카는 기억했다. 분명 그는 일이 잘못되면 벽에 폭탄을 던져 나오라고 하지 않았던가.

 

 “ 그.. 벽에 폭탄을 던져.. ”

 “ 아하, 그렇구만. ”

 

 노인은 뒷짐을 진 채 루카의 등 뒤를 스쳐 지나갔다. 루카는 뒤로 돌아 노인을 바라보았다. 이윽고 노인은 쇠창살 안에 있던 외벽을 손등으로 두 번 툭툭- 두드렸다.

 

 - 쿠르릉..

 

 노인이 벽을 두 번 두드리자 외벽은 손쉽게 무너져 내렸다. 감옥 뒤편의 강으로 벽돌이 떨어져 첨벙- 첨벙- 소리를 냈다. 루카는 더 이상 노인의 정체에 대해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그는 기이한 경험을 어제오늘 이미 충분히 하고 있었다.

 

 “ 나도 더 좋게 보내주고 싶지만 계약은 계약이니. ”

 

 노인은 다시 뒷짐을 지고 루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는 루카의 눈앞까지 걸어오더니 나지막이 말했다.

 

 “ 원죄의 쇠사슬에 묶인 아이여, 앞으로 오늘보다 훨씬 힘든 여정이 펼쳐 질 걸세. ”

 

 노인은 루카의 목에 걸린 목걸이의 별 부분을 한손으로 꼭 쥐었다. 노인은 아까와 마찬가지로 눈을 한 번 감더니, 이내 눈을 뜨고 별을 쥐고 있던 손을 풀었다. 루카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 노인은 아까부터 알 수 없는 기운을 뿜어내고 있었다.

 

 “ 그럼 또 봄 세. ”

 

 노인은 루카의 등 뒤로 향했다. 루카는 즉시 뒤를 돌아보았다. 궁금한 것이 너무도 많았다.

 

 “ 잠깐.. 잠깐만.. 아니.. 이럴 수가.. ”

 

 하지만 놀랍게도 노인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다. 루카는 자신의 눈을 비볐다. 자신이 꿈이라도 꾼 것인가 생각해보았지만 무너진 벽은 그대로였다. 루카는 무너진 벽 쪽으로 달려가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네멘을 가로지르는 강이 콸콸콸 흐르고 있었다. 루카는 한숨을 내쉬었다. 어차피 해야 할 일은 해야 할 일이었다. 그는 여전히 기절한 상태인 예나를 안아 들곤 벽 끄트머리에 서 하늘을 바라보았다. 밖에선 서서히 동이 트고 있었다.

 

 “ 엘레나.. ”

 

 남은 일은 아스파를 믿는 것밖에 없었다. 그는 예나를 꼭 안은 채로 아래로 뛰어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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