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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기타
오블리비언
작가 : 강냉구
작품등록일 : 2019.8.26

가장 평범한 삶을 살고 싶었는데 바보 같은 짓으로 인해 종군기자가 되었다.
스탠포드 교내 기자로 취재하고 글을 쓰며 졸업 후 타임지 정치부기자가 되려고 했는데,
타임지 건물 앞에도 못 가보고 허망하게,
흔적도 없이 꿈이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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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9-10-04 07:34     조회 : 238     추천 : 0     분량 : 80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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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며칠이 지났다.

  며칠 만에 엄마는 더 늙어지고 추해졌다. 머리카락만 하야면 백발의 노인이라고 해도 이상할 거 없어 보였다.

 

  며칠 동안 난 두 가지의 고통을 겪었다.

  하나는 쥬디 할머니를 죽인 살인자라는 누명에 대한 고통과 나머지 하나는 탄광에 끌려가게 한 주범이 아빠라는 것에 대한 고통이었다.

  엄마는 방에서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귀를 막아버렸다. 하지만 나는 엄마와 달랐다. 귀를 더 활짝 열어버렸고, 숨지 않았다. 세상 모든 소리를 들으려고 했다.

 

  집 마당에 널린 쓰레기를 발로 밀어 길을 만들었다.

  이런 짓은 생각지도 못했는데 정말 유치했다. 마당에 널린 쓰레기 중 구겨진 종이 하나가 내 눈에 밟혔다. 난 그 종이를 집어 들었고, 구겨진 종이를 펼쳤다.

  종이에는 살인자 부모, 살인자 아들이라는 말이 적혀있었다. 나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우리는 살인을 저지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말 그대로 선동에 빠져버렸다.

  우리가 살인자가 아니란 걸 알면서도 주변 사람들이 아빠와 나에게 살인자라고 부르니까 자신도 그렇게 부르기 시작했다.

  군중심리였다.

  그건 정말 유치하기 짝이 없었다. 자기 뜻을 제대로 펼치지 못하는 건 정말 한심한 일이었다.

 

  나는 쓰레기를 치우지 않았다.

  처음에는 별로 없어서 마당에 보이는 쓰레기를 모두 다 치웠지만 날이 갈수록 많아졌고, 나는 그 쓰레기를 치워도 끝이 없다는 걸 얼마 되지 않은 후에야 깨달아버렸다.

  그래서 나는 쓰레기를 치우지 않았다.

  다행이었다. 여름이었다면 쓰레기 냄새가 집 안에 퍼져 억지로 손가락을 목구멍에 넣지 않아도 토를 할 정도로 구역질났을 텐데, 가을이라 냄새는 낙엽 향기에 덮여버렸다.

  하지만 보기에 좋지 않은 건 마찬가지였다.

 

  동네는 한적했다.

  보기 좋을 정도로 한적했으며 복잡한 내 심정을 놀릴 정도로 매우 한적했다.

  우리 집과는 전혀 반대였다. 딱 보기에도 외관 상 쓰레기장이나 마찬가지인 우리 집과는 달리 깨끗하고 한적했다. 나는 그런 한적한 동네에서 계속 걸었다.

  며칠 동안 먹을 걸 사야했다.

  엄마는 집안일에 손을 놓아버렸고, 집에는 먹을 게 완전히 떨어져버렸다.

  날리는 건 먼지 밖에 없었다. 간간히 로사 아줌마가 먹을 걸주긴 하는데, 난 그런 로사 아줌마의 행동이 매우 부담스러웠다.

  로사 아줌마의 동생인 로이 아저씨도 탄광에서 일을 하는 탄광 노동자였기 때문이다.

  로이 아저씨는 아빠와 댄 아저씨와 함께 파업을 하지 않았지만 그 때문에 탄광에 나가지도 못해서 일도 할 수 없었다.

  아빠랑 댄 아저씨는 도대체 몇 명의 생계를 곤란하게 했던 걸까, 아빠가 원망스러웠다.

  그래서 더 이상의 도움은 원하지 않았다.

 

  집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엔 피란츠 아저씨 빵집이 있고, 그 근처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타고 브룩클린 끝자락에서 내리면 식료품점이 있다.

  난 우리 동네 사람들을 마주치고 싶지 않아 버스정류장까지 고개를 푹 숙인채로 걸었다.

  버스는 얼마 지나지 않아 내 앞에 멈춰 섰다.

 

  버스는 여느 때와 같이 한산했다.

  평일이었고, 마을 남자들 절반이 러시아로 끌려갔고, 학생들은 학교에 있기 때문에 버스에는 나와 기사아저씨를 포함 한 다섯 명뿐이었다. 난 맨 뒷좌석에 앉았다.

  그리곤 생각했다.

  이런 한산한 시간에 왜 버스를 탔고, 도대체 어디를 가는 걸까? 그들을 보며 생각해보았다. 그들은 서로 제각각이었다. 닮은 구석은 찾아볼 수 없을 정도였다.

  한 명은 50대 정도 돼 보이는 아저씨였고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았는지 원형 탈모가 심했다. 말이 좋아 원형 탈모가 심했지, 대머리나 마찬가지였다.

  그 아저씨는 조용히 신문지를 펼치고 무언가를 적으며 읽는 듯 해보였다.

  좀 더 자세히 보면 스도쿠를 풀고 있었다. 쉽게 풀리지 않는 건지 볼펜으로 머리를 긁적이다 양 손가락으로 관자놀이 부분에 큰 원을 굴렸다.

  스도쿠 아저씨 바로 반대편 창가 좌석에 앉은 아줌마는 넋 놓고 창밖을 보기 바빴다.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은 채로 창밖만 보고 있다.

  밖에 무슨 재미난 구경거리가 있는 것도 아니었고, 배경이 아름다운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왜 창밖을 넋 놓고 보는지 궁금하진 않았다.

 

  사진 속 에디 형과 또래로 보이는 한 여자가 있었다.

  나는 그녀의 얼굴을 더 가까이서 보기 위해 앞자리로 옮겼다. 뒤를 돌아보았다. 그녀와 눈이 마주치지 않을 정도로 자연스럽게 돌아보았다.

  그녀는 그녀에게서 풍기는 분위기처럼 아주 예뻤다. 옆모습도 예뻤고, 정면도 예뻤다. 그녀의 머리카락은 적갈색도 아닌 금발도 아닌 주황빛이 물든 붉은 머리였다. 따사로운 햇살을 받으니 그녀의 머리카락은 노을처럼 물들었다.

  난 순간 그녀의 머리카락 향기를 맡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혔다.

  나는 변태가 아니기 때문에 그 생각을 바로 떨쳐버릴 수가 있었다.

  그녀의 눈알은 흑색도 갈색도 아니었다. 이름 모를 색이라고 하면 더 정확하다. 파란색도 아니고 회색도 아니고 초록색도 아닌 여러 색이 섞여있는 이름 모를 색이였다.

  나는 그 색을 더 깊이 파고들고 싶진 않았다. 조금만 더 가면 식료품점이기 때문이다. 흔들거리는 버스에서 일어나 기둥을 잡고 흔들리는 몸을 지탱했다.

  버스는 빠르게 달렸고, 내 몸은 사정없이 흔들렸다.

 

  버스는 얼마 지나지 않아 식료품점에 도착했다.

 

  버스의 문이 열리자 나는 앞발을 내딛었고, 내 뒤에 서있던 그녀가 내 옆을 지나갔다.

  그녀는 나와 같이 버스에서 내렸고, 나는 순간 기대했다. 그녀는 키가 큰 편이 아니었지만 나보다 손 두 뼘은 컸다.

  나는 그런 그녀가 나와 같은 곳으로 향하지 않을까 기대를 했다.

  하지만 그 기대는 버스에서 내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끝나버렸다.

  나는 식료품점으로 향하던 발걸음을 멈췄다. 뒤에서는 어떠한 발걸음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그리고 그녀가 나와 반대편으로 가고 있다는 걸 확신했다.

  나는 뒤를 돌아보면서 까지 그녀의 뒷모습을 확인하지 않았다. 그녀는 버스에서 우연히 알게 된 사람도 아니었고, 말을 섞은 것도 아닌 영화 속 지나가는 사람1에 불과하기 때문이었다.

  식료품점에 들어서자마자 나도 모르게 주변을 두리번두리번 둘러보았다. 아는 사람이라도 만나면 도망 갈 기색이었다. 다행히 나를 아는 사람 하나 보이지 않았고, 버스처럼, 마을처럼 식료품점도 한산했다.

 

  나는 물건을 살 때 즉흥적으로 사는 것 보단 정해놓고 사는 편이었다.

  그리고 여러 번 왔던 식료품점이라 돌아다니며 필요한 물건을 찾지 않고, 한 번에 바로 찾을 수가 있었다. 포장지 겉 박스를 살펴보며 바쁜 척 온갖 척을 다 해댔다.

  덕분에 나에게 말을 거는 직원 따위 없었다. 짐 한가득 바구니에 담았다. 주머니에는 모츠가 있었다.

  바구니 안에 담아둔 물건들을 세워서 일렬로 올려놓으면 내 키랑 맞먹을 것만 같았다.

 

  식료품점을 벗어나기 싫어졌다.

  밖에서 아는 사람이라도 마주치지 않을까 손가락질이라도 당하지 않을까 초조해하는 게 싫다.

 

  장바구니는 산처럼 쌓여갔다.

  장바구니 안에 들어있는 건 레토르트식품뿐이었다. 음식을 만들어 먹고 싶진 않았다. 어차피 엄마는 그 상태로 요리를 하다가 태워먹을 게 뻔했고, 나는 양파를 써는 법도 모른다.

  사실 알지만 하기 싫다. 귀찮은 것보단 내가 만든 음식을 먹을 바에 굶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요즘 레토르트식품 되게 맛있다.

  로사 아줌마한텐 미안하지만 로사 아줌마가 만들어 준 음식 보다 레토르트식품이 훨씬 더 맛있다. 그건 어쩔 수 없는 그리고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부족함 따위 없는 바구니 위로 하나의 산봉우리가 만들어졌다. 도저히 내 힘으로는 들고 가지 못 할 거 같아 나는 바구니를 발로 끌었다.

  보기에 좋지 않지만, 손으로 바구니를 든 것 보단 훨씬 편했다. 결정적으로 손에 빨간 자국 따위 생기지 않았다.

 

  울상을 지으며 양 손에 음식을 담은 비닐봉투를 들고 식료품점을 겨우 빠져나온 내가 불쌍하거나 안쓰럽거나 가엾게 보였는지 열두 살 인생을 살며 처음 본 아저씨가 내게 관심을 보였다.

 

  “거기 꼬마야. 혼자니?”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데려다 줄까? 탈래?”

 

  그 아저씨는 내게 손짓을 했다.

  그 순간, 나는 저 손짓을 악마의 손짓으로 착각했다. 내가 저 아저씨를 따라가면 분명 난 죽거나 살거나 둘 중 하나겠지.

  내가 죽으면 패트릭 은 죄책감에 괴로워하겠지. 그리고 죽지 않고 살아서 무사히 도착 한다면…… 저녁엔 맛있는 레토르트 음식을 먹을 수 있을 테지.

 

  어쩔 땐 악마가 천사보다 더 낫다고 생각했기에 아주 잠깐 망설이다가 아저씨의 차에 올라탔다.

 

  “어디로 가니?”

  “브룩클린 헤이빌드요.”

  “헤이빌드? 거기가 어딘지 모르겠는데 방향을 알려주면 좋을 거 같아, 이름이 뭐니?”

  “데…… 데보라요.”

 

  데보라래.

  데보라래. 데보라가 뭐야. 무슨 여자도 아니고 남자가 데보라라는 이름을 쓰면 우습잖아. ‘데보라는 내 동생이에요. 저는 데이브예요.’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차마 말할 수가 없었다.

  분명 이상하게 볼 게 뻔했다. 아니면 이렇게 말하겠지. ‘꼬마야. 나는 너를 납치하는 게 아니란다.’

 

  “데보라, 아저씨는 제이크야.”

 

  결국 나는 제이크 아저씨에게 내 이름을 알려주지 못했다. 제이크 아저씨 이름은 나처럼 가짜 이름은 아니겠지 생각했다.

 

  “지금 학교 갈 시간 같은데 왜 학교에 가지 않고 혼자서 여기까지 왔니?”

  “심부름이에요.”

  “심부름하기엔 양이 많은 거 같은데…….”

 

  제이크 아저씨는 내 눈치를 살폈다. 나쁜 사람 같지 않아 보였다.

 

  “아저씨는 그냥 데보라를 집에 데려다 주면서 어색할까봐 말 거는 거야. 이상하게 생각할 필요 없어. 말하기 싫으면 안 해도 돼.”

 

  제이크 아저씨는 묵묵히 운전을 했다.

 

  제이크 아저씨가 나를 위해 한 행동이었는데 대답을 하지 않는 건 예의에 어긋난 행동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더군나나 아직까진 집에 데려다 주는 착한 아저씨나 다름없다.

  나를 납치하거나 죽이거나 하지 않을 사람 같았다. 그래서 나는 마음 놓이기 시작했다.

 

  “사실 심부름이 아니고 혼자 나온 거예요. 아빠는 잡혀갔지 엄마는 실성했지. 그래서 멀쩡한 사람이 저밖에 없어요. 여기 있는 거, 다, 집 안에 있는 돈 다 긁어모아서 산거거든요. 이거 다 떨어지면 아마 굶어죽을 거예요. 전 이제 힘들어서 마을 밖으로 나가지도 못할 거예요. 굶어 죽기 전 하는 마지막 외출이고, 아저씨가 굶어 죽기 전 마지막으로 보는 사람일 거예요. 그리고 학교는 재수 없는 녀석들 때문에 정학 당했어요. 말이 좋아 정학이지 이주 뒤 다시 학교 가면 퇴학당할 걸요? 분명히 누가 저한테 나쁜 말을 짓거릴 테고, 저는 그에 화가 나서 그 애를 죽도록 패겠죠. 그리고 퇴학당하는 거예요. 더한 폭력을 쓴 나쁜 놈들도 안 당하는 퇴학, 저는 바로 당하는 거예요. 이게 제 인생이에요. 참 불쌍하죠. 재수 없는 녀석들한테 배신당한 것도 불쌍하고, 곧 굶어죽는 것도 불쌍하고 이젠 부모도 없는 사람들과 다름없다는 게 저로서는 제 자신이 너무 불쌍하거든요.”

 

  내가 말했다.

 

  제이크 아저씨는 운전대를 잡고 운전만 했다. 내가 방향을 알려주지 않아도 표지판을 보고 헤이빌드를 찾아갔다.

  나는 그런 아저씨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지 관심이 없었고 그저 나에게만 관심이 있었다.

 

  “근데 그 재수 없는 녀석이 하나가 아니고 둘이란 거죠. 원래는 하나였는데, 이젠 다른 바보 같은 녀석도 재수 없어요. 빌어먹을 놈들. 제일 재수 없는 녀석은 이름이…… 패트릭인데 아무튼 그 녀석은 정말 재수 없는 놈이에요.”

  “데보라……?”

  “원래 그 녀석이 정학에 퇴학당하는 게…….”

  “데보라!”

 

  제이크 아저씨는 내게 소리쳤다. 나는 그 목소리에 깜짝 놀라 말하는 걸 멈춰버렸다. 차도 달리지 않고 멈춰버렸다. 아저씨가 날 보며 말했다.

 

  “헤이빌드 다 왔는데, 여기서 어떻게 가면 되는 거니?”

 

  나는 제이크 아저씨에게 방향을 알려주었다. 그 다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차는 천천히 달렸다.

  이 시간이 존 선생님과 심문하는 시간처럼 답답하고 길게 만 느껴졌다.

 

  “조금만 가면 빵집이 나와요. 전 그 앞에서 내릴 게요.”

  “알았다.”

 

  난 일부러 패트릭 아저씨 빵집 앞에서 내리겠다고 말했다. 집 앞에서 내리고 싶었지만, 난 제이크 아저씨에게 내 집을 알려주는 것 보단 낙엽에 가려진 집 앞마당의 쓰레기들이 보일까봐 더 겁났다.

 

  얼마 지나지 않아 피란츠 아저씨 빵집 앞에 도착했고, 나는 차 문을 열었다. 문을 열고, 짐을 들고 차에서 내렸을 때 악마보다 천사가 더 낫다는 걸 다시 또 깨달아버렸다.

 

  “데보라.”

 

  제이크 아저씨는 열린 문 사이로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불평만 하지 말고, 싫으면 싫다고 말 해. 널 배신한 재수 없는 친구 녀석들한테 말 해. 억울한 게 있으면 억울하다, 속에 썩혀놓지도 말고. 그러면 병 생겨.”

 

  나는 제이크 아저씨에게 별 다른 말없이 인사를 한 뒤 차 문을 있는 힘껏 닫아버렸다.

  아저씨가 찬 타는 저 멀리 작은 점이 되어 사라졌고, 나는 그대로 고개를 푹 숙인 채 무거운 짐을 들고 아주 힘겹게 집으로 향했다.

 

  낮선 차에 타면 죽거나 살거나 둘 중 하나이다. 정말 운이 좋아야 살아남고 대부분 죽는다고 생각한다.

  나는 운이 정말 더럽게도 없는 편에 속해서 내 열 두 살 인생 중 최악의 일이 하루 만에 두 개나 일어났는데도 살아있는 걸로 봐선 내 생명에 대해선 운이 좋은 편인 거 같다.

 

  “데이빗…….”

 

  집 앞에 도착했다.

  문을 열려고 문 앞에서 멈춰 주머니 깊숙이 숨어있는 열쇠를 꺼내려고 하자 나를 부르는 목소리에 나는 하던 행동을 멈췄다. 순간 영화처럼 제이크 아저씨의 말이 생각이 났고, 나는 뒤를 돌아보았다.

 

  “지미, 네가 웬일이야?”

  “데이빗, 미안해. 나도 그렇고 패트릭도 그렇고. 아저씨 일은 정말 유감이야.”

  “탄광 얘기 하려면 너도 저리 꺼져.”

 

  다른 얘기, 특히 나에 대한 얘기는 할 생각이 아주 많았다.

  그러나 아빠의 얘기를 듣는 순간 나는 화가 치밀어 올랐다. 아저씨 일은 정말 유감이야라고 걱정을 해줬지만, 나는 그마저도 듣기 싫었다.

  패트릭이나 지미나 값싼 동정일거라고 굳게 믿었기 때문이다.

 

  “아니, 끝까지 들어 줘. 우리는 정말 진심으로 너한테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어. 우리 친구잖아 데이빗…….”

  “친구라고? 시발. 너희가 그 빌어먹을 친구라고? 웃기지 말라고 해! 친구가 어떻게 친구한테 모든 일을 덮어씌울 수가 있어? 어?”

 

  난 소리 질렀다.

  지미는 내게 다가왔고, 나는 지미를 밀쳐버렸다.

  세 칸짜리 계단뿐이었지만, 지미는 그 계단에 굴러 떨어졌다. 나는 순간의 죄책감이 들었지만, 그마저도 모른 척 하고 싶었기에 문을 열고 집 안으로 들어왔다.

 

  문 밖에 있는 지미를 볼 마음은 없었다. 순간의 죄책감이 퍼져 지미를 용서해줄 게 뻔했기 때문이다. 사실 지미는 아무 잘못도 없는데, 나는 괜히 심술이 났다.

 

  장바구니를 얼마나 세게 쥔 건지 손은 빨간 자국이 나있었다.

 

  누구는 잡혀가서 살아있는지도 죽었는지도 모르는데. 빌어먹을 헤이빌드! 빌어먹을 개츠비! 아무 죄 없는 헤이빌드와 개츠비를 곱씹으며 신발에 묻은 흙을 털어냈다.

  헤이빌드 좆까라고 해! 개츠비도 좆까고, 미국도 뉴욕도 브룩클린도 허버트 후버도 좆까!

 

  짐은 여전히 무거웠다.

  작은 손으로 이 무거운 짐을 다 들기는 너무 힘들었다. 나는 발로 짐을 끌었다. 그래도 무거운 느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무거운 보따리에서 하나하나 꺼내 냉장고 안에 넣었다. 선반 밑에도 넣어 놓고, 손이 닿는 모든 곳에 넣어놓았다.

  어느새 냉장고와 선반이 꽉 차버렸다.

  내가 이 많은 걸 들고 집으로 온 것도 참 신기했다. 비록 제이크 아저씨의 차를 빌려 타긴 했지만…….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아 먼지 쌓인 선반은 레토르트 음식들로 가득 찼고, 냉기만 흐르던 냉장고는 유제품들로 가득 찼다.

  아이스크림과 요구르트 그리고 모츠로 가득 찬 냉장고를 보자 나도 모르게 웃음이 새어나왔다.

  지금보다 더 어렸을 때 먹고 싶은 걸로 냉장고를 꽉 채워넣고 싶었었는데, 오늘 그 꿈을 이루다니.

  그것도 가장 최악의 상황에서.

  아마 새어나왔던 웃음은 기쁜 게 아닌 어이없어서 나오는 코웃음 정도일 것이다.

 

  부엌을 나왔다.

  이제 제법 사람의 손을 탄 정말 평범한 가정의 주방 같다. 저 정도면 이주는 버틸 수 있겠다. 하루 한 끼 먹는다면 한 달은 버틸 수 있겠다, 그 전까지 살아있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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