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ading...
1일간 안보이기 닫기
모바일페이지 바로가기 > 로그인  |  ID / PW찾기  |  회원가입  |  소셜로그인 
스토리야 로고
작품명 작가명
이미지로보기 한줄로보기
 
 
자유연재 > 판타지/SF
살루스 : 여정의 마법사
작가 : 치르비
작품등록일 : 2019.10.1

마법사 살루스의 다른 세계 여행기

 
Chapter 0 - 여행의 시작 (2)
작성일 : 19-10-01 15:32     조회 : 214     추천 : 0     분량 : 7486
뷰어설정 열기
뷰어 기본값으로 현재 설정 저장 (로그인시에만 가능)
글자체
글자크기
배경색
글자색
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날카로운 바람이 어디선가 훅 불어오는 초가을 밤이었다. 날이 점점 추워지는 가운데, 메마른 공기가 높다란 건물들 사이를 채워나갔다.

 

 일을 끝마치고 돌아온 살루스는 가족들과 저녁 식사를 했다. 식사 후에 설거지를 하고, 허브로 목욕제계를 하고는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었다. 그런 다음 가족들에게 내일 아침까지 자신을 찾지 말라고 신신당부하고는 방으로 향했다.

 

 적당히 넓고 신전 분위기를 풍기는 방이 어둡게 그를 맞이했다. 살루스가 가볍게 손짓하자, 아홉 개의 자줏빛 초가 저절로 타올랐다. 향로에 꽂힌 샌달우드 스틱향에도 불이 붙었다. 향로에서 스틱향이 연기를 꾸역꾸역 내뱉는 동안, 그는 책상 앞에 앉아 마법일지를-

 

 “야, 잠시만.”

 

 무슨 문제 있어?

 

 “너 지금 음소거 안하고 있어.”

 

 뭐라고?? 잠깐만 잠깐만.

 

 아, 진짜 음소거 안 해놨네. 내가 언제부터 안 해놨었지?

 

 “내가 일하고 있을 때부터.”

 

 아이 참, 빨리 좀 말해주지. 난 그런 줄도 모르고 주절주절 떠들고 있었네.

 

 자, 이제 됐다. 소리 들리는지 확인해봐.

 

 “알았어.”

 

 살루스는 ‘내 말’을 들으려고 귀를 기울였다. 이따금 탁탁 타오르는 초, 펄럭이며 우는 종이, 가을바람의 나지막한 발소리. 세상을 이루는 그 모든 것들 사이에서 안개처럼 깔려있던 관찰자 ‘나’의 목소리는 이제 들리지 않았다.

 

 어때, 들렸어?

 

 “아니. 아무것도. 뭐라고 했는데?”

 

 네가 주변에 귀 기울여서 내 말을 들으려고 한다고 했어. 안 들렸다면 다행이네.

 

 “그럼 하는 김에 존재감도 좀 줄여줄 수 있어? 나 좀 있다가 훈련할 건데 네가 옆에 있다는 게 느껴지면 잘 안 될 것 같거든.”

 

 그 정도야 얼마든지. 그나저나, 오늘도 고생 많았어, 살루스.

 

 “이 정도는 고생이라고 할 수도 없지. 오히려 너가 고생이 많아. 척추 치료 작업이 지루해서 볼 것도 없었을 텐데.”

 

 글쎄, 지켜보는 건 내 주특기니까 별로 상관은 없어. 어차피 내 일이기도 하고. 고생은 네가 했지. 내가 묘사하는 거 다 들으면서도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척추를 재조립하던데.

 

 “의학 공부를 했으니 그 정도인 거야. 치료활동하는데 의학을 모르면 안 되지.”

 

 그럼 그 사람의 병이 다시 재발할까요, 치료사님?

 

 “남은 생 전부를 비틀어진 자세로 지내지 않는 한 그럴 일은 없을 거야.”

 

 대단한 자신이네.

 

 “확신이지. 경험에 의거한.”

 

 그래서 난 네가 참 마음에 들어. 그런데 그건 그렇다 치고, 오늘은 웬일이야? 훈련부터 안 하고.

 

 “그게 말이지, 저번부터 일지 정리를 미루고 있었어. 출장 업무가 엄청 밀려 있어서 말이야.”

 

 그러다가 더는 미룰 수가 없는 순간이 왔구나. 그게 바로 지금이고.

 

 “그래도 오늘은 의뢰가 하나 뿐이어서 다행이야. 요즘 희귀병 고쳐달라 풍수 봐달라 엄청 난리라니까? 각자 사정이 있는 건 이해하는데, 나도 내 시간을 가지고 싶거든. 이거 하고 훈련해야지.”

 

 그럼 베르타는?

 

 “어제 내가 부탁한 일이 있었거든. 아마 지금쯤이면 해결을-”

 

 그때 아치형의 큰 창문이 거칠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살루스와 ‘나’는 뒤에 있던 아치형 창문을 봤다. 어디선가 불어오는 거센 바람에 유리가 깨질 것처럼 맹렬하게 요동쳤다. 창문 너머 달빛 구름 사이에서 무언가가 이쪽으로 날아오고 있었다.

 

 매끈한 검은 비늘과 거대한 날개, 근육질의 육신, 9개의 황금뿔.

 

 위계 높은 영적 존재 중 하나인 블랙 드래곤이었다.

 

 영적인 형태의 블랙 드래곤은 거센 바람을 일으키며 집 가까이에 안착하더니 무시무시한 황금눈을 굴리며 방안을 살폈다. 그 눈이 살루스를 발견하자 더욱 크게 떠지더니 즉각 입에서 브레스를 내뿜었다. 검은 연기의 브레스는 집이 아닌 드래곤의 몸을 감쌌다.

 

 드래곤의 몸을 감싼 연기가 인간 크기에 맞게 줄어든 것은 그때였다. 잠시 후 연기 안에서 키가 2m쯤 되는, 보디빌더처럼 거대하고 선명한 근육질의 인간 남성이 튀어나왔다. 구릿빛 피부와 반들거리는 황금 머리칼이 무척 인상적인 젊은 남자였다.

 

 검은 가죽자켓과 청바지를 입고 있는 그는 머리카락을 뒤로 쓸어넘기며 방 창문으로 휙 들어왔다. 여전히 쏘아보듯 눈을 찌푸리는 가운데, 그대로 살루스에게 성큼성큼 다가가더니…….

 

 “나 왔어, 살루스.”

 

 뒤에서 그를 부드럽게 와락 안았다. 드래곤이 그의 볼에 가볍게 키스를 하자, 그도 화답하듯 볼에 입을 맞추고는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어서와 베르타.”

 

 어휴, 끈적끈적해라. 보기는 좋네.

 

 살루스는 대답 대신 작게 웃었다.

 

 “부탁한 건 잘 처리하고 왔어?”

 “당연한 말을. 따라가서 혼 좀 내줬지.”

 

 살루스는 베르타를 쳐다봤다. 쏘아보듯 무시무시하던 눈빛도 어느새 많이 풀어진 상태였다. 이제 그곳에 있는 것은 사랑으로 가득찬 황금눈 뿐이었다.

 

 물론 그 말 그대로 진짜로 혼만 좀 내고 온 건 아니겠지. 베르타 성격이라면 아마-

 

 “그 검은 벌레가 살던 소굴까지 박살내고 온 게 아니라?”

 

 안 봐도 고화질 동영상이다. 도망간 놈을 붙잡아 그 자리에서 소멸시키고, 겸겸 그 놈이 살던 소굴 자체를 통째로 제거하고 왔으리라.

 

 “그 정도는 되어야 다시는 할 생각을 안 하지.”

 “그건 할 생각을 못 하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못하는 거잖아. 말은 똑바로 해야지.”

 “일만 잘 해결되면 된다. 애초에 네가 그렇게 부탁했지 않은가? 없애달라고 말이야.”

 

 음, 그건 맞는 말이네.

 

 살루스도 그 사실 정도는 당연히 알기에 딱히 부정하지는 않았다. 어쨌든, 의뢰를 받았으니 그걸 해결해야 마땅했다.

 

 그건 바로 어제 일이었다. 의뢰자는 어떤 영존재에게 빙의 당하여 십년 간 온갖 수모를 겪었다. 환청에 시달리는 건 물론이요 꿈에서조차 괴롭힘을 당해 일상생활을 못할 정도였다. 그렇게 망가지는 몸에는 수많은 틈새가 생기는 법이니, 영존재는 이를 통해 희생자의 생기를 빨아먹었다. 때로는 몸을 차지하여 집안을 난장판으로 만들었다.

 

 물론 그들도 나름대로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했었다. 정신병원을 수시로 찾아다니고, 민간요법도 사용해봤다. 하지만 그 모두가 결국 쓸모없음을 깨닫고 마지막으로 살루스를 찾아왔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그 영존재가 죽은 사람, 즉 귀신이 아니었다는 점이었다. 그건 부정적인 힘의 흐름 속에서 태어난 존재였다. 이름조차 불분명한 그것을 살루스는 임시로나마 ‘검은벌레’라 불렀다.

 

 인간은 영원한 존재이다. 그 탓에 없애거나 소멸시키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다. 그래서 다행이었다. 빙의령이 인간이 아닌 검은 벌레 같은 저급한 영존재라면, 마법사 재량에 따라 마음대로 없앨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직접 처리하는 대신 일부러 베르타를 시켰다.

 

 흠, 경험을 쌓게 해줄 요량이었나보지?

 

 ‘그런 것도 있는데, 그때 내가 조금 피곤했거든.’

 

 ……그럼 그냥 떠넘긴거야?

 

 ‘설마, 그럴 리가 있나.’

 

 전혀 못 미더운데.

 

 ‘내가 그렇게 못미더운가?’

 

 어……너 지금까지 한 거 보면 솔직히?

 

 ‘나 원 참.’

 

 살루스는 헛웃음을 지었다. 우리가 이러는 동안, 베르타는 살루스에게 마냥 얼굴을 부비며 기분 좋은 듯 그르렁거렸다. 꼬리가 있었다면 살랑살랑 흔들고 있었으리라. 일지를 정리하던 살루스는 그르렁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미소를 짓다가 문득 입을 열었다.

 

 “베르타, 피곤하지 않아?”

 “응.”

 “정말로?”

 

 살루스는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그를 살폈다. 언뜻 보면 멀쩡해보였지만, 자세히 들여다 보니 오라의 흐름이 상당히 흐트러진 상태였다. 겉으로만 괜찮은 척할 뿐 실은 좀 힘들다는 증거였다.

 

 그럼에도 베르타는 피곤하지 않다고 떼를 썼다. 살루스는 그런 그를 잠시 쳐다보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럼 이거 정리 다 한 다음에 같이 훈련할래?”

 

 그 말에 베르타가 더욱 눈을 반짝였다. 바로 알겠다고 대답한 그는 차를 가져다 달라는 살루스의 부탁에 바로 방을 나섰다. 다시 방 안으로 환한 침묵이 감돌았다.

 

 보아하니 베르타한테 내 이야기는…….

 

 “안 했어. 아직 할 이유도 없고 해서. 애초에 쟤는 널 인지조차 못하잖아. 성년된 지 얼마 안 되기도 했으니 어쩔 수 없지. 나중에 타이밍 되면 알려줄거야.”

 

 그래, 네 마음대로 해. 비밀엄수인 것도 아닌데 뭘. 아무튼 우리 대화는 이쯤에서 하고, 난 관찰이나 더 해야겠다.

 

 “그래, 오늘도 잘 부탁해.”

 

 살루스는 웃으며 화답했다. ‘내’가 존재감을 그 공간에서 완전히 지울 무렵, 베르타가 차를 들고 방으로 돌아왔다. 그들은 차를 마시며 작업에 열중하기 시작했다.

 

 

 ****

 

 

 그 뒤로 한 시간이 흘렀다. 살루스는 드디어 모든 일지 정리를 마쳤다.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일지를 확인한 그는 다른 자료들을 상자에 담고, 실험도구를 마저 선반 위로 치운 뒤, 바닥을 조심스럽게 쓸었다.

 

 자리가 어느 정도 정리되자, 그는 방 중앙에 놓인 카펫에 결가부좌를 튼채 앉았다. 이제 본격적인 훈련을 할 시간이었다.

 

 살루스는 손가락을 튕겼다. 그의 마력이 주변의 마나와 공명하며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공명이 비활성화되어있던 방의 모든 방어술식에 불을 지폈고, 곧 보이지 않은 강건한 벽이 세워졌다.

 

 그 즈음 베르타는 입에서 검은 연기를 뿜어 자기 몸을 둘렀다. 다시 몸을 둘러싼 연기가 더 작게 줄어들었다.

 

 다시 연기가 걷혔을 때, 그는 다시 드래곤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다만 이번에는 아까보다 더 작은, 대형견 정도의 크기였다. 베르타는 이리저리 스트레칭 하듯 몸을 쭉 펴며 하품을 하더니 살루스 옆에 꼬리를 말고 털썩 앉았다.

 

 그들은 동시에 명상 상태에 들어갔다. 순식간에 깊은 명상 상태에 빠지자, 그들의 의식이 인식하는 모든 것이 느리게 흘러가기 시작했다.

 

 “호라누엘, 프라모빌레, 자드카, 가미엘…….”

 

 그때 살루스가 신성한 신들의 이름들을 하나하나 외우기 시작했다.그의 입술에서 흘러나온 이름은 신성하고 거대한 힘이 되어 방 전체를 감쌌다.

 

 소환된 신의 힘들은 감히 자신들을 부른 용감한 마법사의 뜻대로 조그마한 방안으로 모여들었다. 갑작스러운 에너지 집중 현상으로 방 전체가 점점 뜨거워졌다.

 

 “저는 그대들을 감히 이 땅위로 부르나이다. 저의 영은 그대들의 것이며, 또한 그대들은 저와 함께 하는 자들입니다.”

 

 살루스가 짧게 기도를 읊조렸다. 그 기도문이 일종의 힘의 통로가 되어 신성한 힘과 그의 영혼을 하나로 연결했다.

 

 연결이 이루어지자 통로를 따라 신들의 힘이 그의 몸으로 흘러들어갔다. 그는 정신을 꽉 붙잡고 신의 힘을 받아들였다. 곧 그의 영혼이 담아낼 수 있을 만큼의 양이 차자, 그는 즉시 연결을 끊고 나머지 힘을 비활성화시켰다.

 

 신의 힘이란 순수 원형으로서 가장 추상적이고 애매한 진동. 그는 그것들을 감각할 수 있는 형태로 뭉쳤다. 마침내 신성한 어둠 속에서부터 한 줄기 분명한 실마리가 잡히자, 그의 영혼은 그것을 꽉 움켜쥐고는 신성 너머로 날아올랐다.

 

 그 순간 살루스는 우주적 통일 상태로 들어갔다.

 

 그의 모든 존재 구조가 온 세상을 안에서 밖으로, 그리고 밖에서 안으로 숨을 쉬듯 받아들였다. 집, 시계소리, 육신과 영혼, 소울메이트, 미생물, 우주, 생명 에너지. 그리고 근원.

 

 지금 그는 모든 것의 중심이자 전체가 되어 신으로서 거했다. 그 옛날, 비의를 전수받은 사제들이 신을 초환하기 위해 쓴 방식이기도 했다.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살루스는 이 통일된 의식 상태에 오랫동안 머무리라. 여기까지가 밤이 되면 이루어지는 살루스의 마법훈련 중 하나였다.

 

 그 후로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신성과의 합일로 시공에 대한 감각마저도 흐려졌을 무렵이었다.

 

 = …….

 

 아주 미세한 진동이 나타났다가 이내 가라앉았다. 살루스 쪽에서 도통 반응이 없자, 잠시 후 좀 더 큰 진동이 울려퍼졌다.

 

 = ……루스.

 ‘음?’

 

 그 진동에 순간 의식이 돌아온 그는 의아함을 느끼며 신성으로 접어든 영혼을 다시 개인 차원의 레벨로 내렸다. 누군가의 목소리가 저 멀리 영혼우주에서부터 들려오고 있었다.

 

 그의 두 번째 스승인 영혼 수호자였다.

 

 ‘이 시간에 무슨 일이시지?’

 

 의아함을 느낀 그는 명상 상태에서 빠져나와 잠깐 시계를 확인했다. 11시 54분.

 

 ‘이렇게 늦은 시간에 연락을 하신다고?’

 

 그 시간에? 참 의외네. 무슨 일 있나.

 

 ‘글쎄, 나도 잘 모르겠어.’

 

 살루스는 눈살을 찌푸렸다. 확실한 건, 스승이 불렀으니 어찌되었든 가야한다는 것이었다.

 

 다시 눈을 감은 살루스는 신들의 힘을 모두 퇴거한 뒤, 이번에는 육체와 모든 연결을 끊고 영혼에만 집중했다. 그 순간 지진이 난 듯 육체가 이리저리 흔들리기 시작했다. 살루스는 균형을 잡으려고 애썼다.

 

 잠시 후 흔들거림이 완전히 멈추고 안정을 되찾았다. 살루스는 살며시 ‘눈을 떴다.’ 그는 어느새 육체를 빠져나와 영혼만으로 방안을 떠다니고 있었다.

 

 그는 주변을 둘러봤다. 영혼우주의 방은 물질계의 방을 그대로 복사한 듯 한 모양새였다. 다른 점이 있다면 그보다 수십배는 더 크고 밝다는 것이었다. 이를 두터운 결계가 감싸고 있었다.

 

 “베르타?”

 

 살루스는 베르타 쪽으로 다가갔다. 어느새 그는 고개를 떨군 채 침까지 질질 흘리며 졸고 있었다. 그가 다시 큰 목소리로 부르자, 그 소리에 화들짝 놀란 베르타가 고개를 휙 들었다.

 

 “졸고 있었어?”

 “나…나 안 잤다! 봐라, 이렇게 멀쩡한데!”

 

 침을 슥 닦은 베르타는 하품이 나오려는 걸 억지로 참았다. 하지만 검은 연기가 뿜어져 나오는 것 까지는 막지 못했다. 그 모습에 살루스는 기어코 웃음을 터뜨렸다.

 

 “피곤하면 그냥 둥지로 돌아가서 좀 자.”

 “괜찮다. 나도 명색에 용인데 이 정도는 상관없다. 그나저나 무슨 일이길래 육체 밖을 빠져나온 건가?”

 ‘하여튼 저놈의 자존심은.’

 

 살루스는 속으로 한숨을 내뱉으며 베르타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이제 막 성년된 애가 무리하긴. 나 잠시만 수호자님께 다녀올게.”

 “내가 뒤에서 케어 안 해도 되는 건가?”

 “졸고 있는 애한테 케어 부탁하는 것만큼 불안한 것도 없어. 그리고 결계도 건재한 걸. 그러니까 그만 인정하고, 얼른 가서 좀 자.”

 

 그 말에 베르타는 곤란한 듯 눈알을 굴렸다. 입맛만 자꾸 다시던 그는 십 분 정도가 흘렀을 무렵에야 한숨을 푹 내쉬며 입을 열었다.

 

 “그래, 알았다. 하지만 무슨 일 있으면 바로 연락해라. 또 혼자서 해결하려 들지 말고.”

 

 베르타는 천천히 몸을 일으키더니 천장을 스르륵 뚫고 하늘로 날아올랐다. 어쨌든 드래곤도 영적인 존재이니 별 문제는 되지 않았다. 살루스는 그 모습을 하염없이 지켜봤다.

 

 베르타도 갔고, 이제 슬슬 출발해야지.

 

 “그 전에, 먼저 할 게 있어.”

 

 뭔데?

 

 살루스는 대답 대신 자신의 모습을 살폈다. 영혼 육체보다 허리가 더 잘록하고 가슴이 나오는 등, 훨씬 더 유연한 형태를 하고 있었다. 머리카락도 분홍색에 허벅지까지 내려올 만큼 길어졌다.

 

 손가락을 튕기자 입고 있던 하얀 옷이 노란 롱원피스와 하얀 재킷, 카노티에 형태로 재구성되었다. 마음에 든 듯 흡족한 미소를 지은 그는 마력으로 짜낸 하얀 장갑을 꼈다.

 

 “이 정도면 되겠지?”

 

 그거 늘 입던 거 아니야?

 

 “뭐 어때? 스승님도 뭐라 안 하시는데.”

 

 살루스는 씨익 웃으며 허공을 향해 손짓했다. 즉시 황금빛 마나가 바람결처럼 움직이며 한곳으로 뭉치더니 잠시 후 지팡이가 되었다.

 

 그는 지팡이로 한쪽 벽을 가리켰다. 벽 전체가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하더니 이내 구름으로 된 문으로 화(化)했다. 문이 활짝 열리면서 그 너머로 천국의 빛이 흘러들어왔다.

 

 살루스가 지팡이를 흔들자 문 너머의 무한한 빛이 밤안개가 낀 강가로 바뀌었다. 보름달만이 지상을 비추는 가운데, 벌레 울음소리를 머금은 거대한 강을 따라 울창한 숲이 펼쳐져 있었다. 천국의 영역 중 하나였다.

 

 문은 금으로 장식된 화려한 하얀색 곤돌라가 정박한 작은 선착장으로 이어져 있었다. 그는 망설임 없이 선착장으로 걸어가 배에 올라탔다. 그때 곤돌라 앞뒤로 등불이 켜졌다. 뱃사공 없이 세워져 있던 노가 저절로 움직여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NO 제목 날짜 조회 추천 글자
6 Chapter 0 - 여행의 시작 (5) 2019 / 10 / 8 183 0 11127   
5 Chapter 0 - 여행의 시작 (4) 2019 / 10 / 4 200 0 6563   
4 Chapter 0 - 여행의 시작 (3) 2019 / 10 / 2 223 0 7843   
3 Chapter 0 - 여행의 시작 (2) 2019 / 10 / 1 215 0 7486   
2 Chapter 0 - 여행의 시작 (1) 2019 / 10 / 1 205 0 6094   
1 Prologue 2019 / 10 / 1 366 0 1079   
이 작가의 다른 연재 작품
차우의 마을 이
치르비
       

    이용약관   |   개인정보취급방침   |   이메일주소 무단수집거부   |   신고/의견    
※ 스토리야에 등록된 모든 작품은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 본사이트는 구글 크롬 / 익스플로러 10이상에 최적화 되어 있습니다.
(주)스토리야 | 대표이사: 성인규 | 사업자번호: 304-87-00261 | 대표전화 : 02-2615-0406 | FAX : 02-2615-0066
주소 : 서울 구로구 부일로 1길 26-13 (온수동) 2F
Copyright 2016. (사)한국창작스토리작가협회 All Right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