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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너에게 행운을
작가 : 로기
작품등록일 : 2019.9.19

 
이거는
작성일 : 19-10-01 12:34     조회 : 176     추천 : 0     분량 : 194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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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 날의 아침 해가 떠오르는 것을 보며 나는 어제 일을 곱씹었다. 갑작스러운 게이트의 생성으로 인해 사람들이 다치지 않기 위해서 한 행동은 내가 원해서 했고 무엇보다 하고 싶으니까 움직였다. 그러니까 친구들에게는 미안하지만 나는 내가 잘했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러고보니까 이번 체육대회 우승은 상이 뭐야?"

  "응? 모르겠어. 안 알려주시던 걸?"

  나는 오늘 아침도 같이 등교하는 유아와 수연이에게 이번 축제의 목표가 무엇인지 몰라 물었지만 두사람도 모르는 모양이었다.

  "아저씨가 안 알려주셨어?"

  "응. 작년까지만 해도 개회식때 알려주셨는데 이번에는 시상식때까지 기대하라는 말씀만 하셔서 다들 어느 체육대회 때보다도 대단한게 나올거라며 기대중이야."

  무엇을 준비하셨길래 그렇게까지 말씀하시는거지? 궁금하기는 하지만 그 아저씨께서 기대라하고 하셨으면 정말 기대해도 좋을만큼 대단한 상품을 준비하셨을 것이라고는 생각한다. 오늘로 마지막이고 오늘 우승을 하면 우리 반 1등도 될 수 있을거다. 그런 다짐을 하고 나는 친구들과 등교를 했다.

  오늘 경기의 종목은 아침에 아저씨가 직접 알려주는 것으로 되어있기 때문에 관객과 학생들은 전부 첫날 개회식이 있던 그 공원으로 모였다.

  "지금까지 즐겨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 인사부터 드립니다."

  개회식에는 교사 옥상에 올라가 잠을 자고 있어서 이곳에서 아저씨를 보는 것은 처음인데 어째서인지 아저씨는 나를 보신듯한 느낌이 들었다. 착각이겠지?

  "오늘 학생들이 펼쳐줄 멋진 경기에 대해서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아저씨가 그렇게 말씀하시고 손가락을 튕기시니 아저씨의 머리 위로 투명한 화면 하나가 띄워지고 영상이 재생되고 있었다. 그 영상에는 옛날에 찍은 듯한 영상이었는데 상의를 벗고 있는 남성들끼리 서로 치고 받고 있었다. 마치 대련을 하고 있는 거처럼 말이다.

  "이 영상에 나오는 사람들은 실제로 무술을 배운 사람들이며 그런 두 사람이 대련을 한 영상입니다. 그리고 오늘의 경기 내용은 영상으로 예상하셨겠지만 간단히 말해서 능력을 이용한 격투대회입니다."

  사람들은 학생, 선생님, 부외자를 포함해 모두가 놀랐고 나조차도 이런 경기가 진행될 것이라고 고는 생각도 못했다.

  "이번 체육대회는 정말로 말도 안되는 경기만 계속되네."

  내 뒤에서 아저씨의 말을 듣고 있던 무한이가 그렇게 혼잣말을 했다. 지금까지는 이런 경기가 없었던건가?

  오늘 경기에 대해서 이야기하기 위한 자리는 아저씨의 그 말로 모두 끝이 났다.

  "우리 아빠가 마지막 날은 자기가 보고 싶은 것으로 경기를 진행하고 싶었대."

  수연이는 경기가 무엇인지 알게되고 아저씨의 이야기가 끝나자 바로 찾아가 바로 항의를 했다고 하는데 그렇게 말씀하셨다고 한다. 게다가 친절한 설명조차도 없이 끝낸 것에 화가 잔뜩 나 있는 수연이였다.

  "처음으로 네가 체육대회에 참여하게 되어서 보고 싶으셨다나봐."

  예전에 아버지에게 들은 이야기에 따르면 유아의 아버지와 수연이의 아버지도 관장님과 친구사이라고 하셨다. 게다가 같이 배우기까지도 했다는데 아마 그래서 보고 싶으셨을지도 모른다. 정확한 아저씨의 마음은 모르겠지만 그래도 친구의 아들이 처음으로 나와서 걱정되셨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어떻게 되는건데?"

  "반에서 한 명이 선수가 되는데 성별, 능력의 유무도 상관없고, 무기와 능력의 사용에 제한은 없으며, 기절을 하거나 지정된 장소에서 벗어나거나 포기를 선언하면 경기가 중지된대."

  어디에서나 있을만한 경기의 룰이었고 매우 단순하기까지 했다. 그나저나 이거 왠지 나한테 맞춰져있는 것 같은 느낌이 강하게 들지만 그렇지만은 않을거다. 왜냐하면 이 학교는 헌터들을 육성하는 곳이고 무술을 배운사람, 무기 사용에 익숙한 사람은 얼마든지 있다. 학생들 중에서도 이 학교라면 그에 관련해서 강한 사람이 없을 수가 없다. 내가 모르는 것뿐이지 이미 길드에서 스카우트를 받은 사람이 있을 수도 있고 주변에서 인정을 받고 있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저번에 말했듯이 과장님에게 배운 것으로 웬만한 상대에게 지는건 상상조차 되지 않는다.

  "그럼 우리 반은 자동으로 운이가 나가는게 낫겠네."

  가람이는 아이들의 동의를 구하는 것처럼 주변을 둘러보며 그렇게 말했고 아이들은 모두 동의했다. 단 한 명도 빠짐없이 전부 말이다.

  "너는 불만없어?"

  지태는 동의를 했다는 것에 의외라는 듯이 한 명을 바라보았고 그녀석은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이 동의했다는 것을 긍정했다.

  "이미 실력은 확인했다."

  그녀석은 아린이의 오빠인 박민기였다. 이미 실력을 확인했다는 것은 언제인지 나도 모르겠으나 녀석이 불만이 없다면 우리반에서 내가 나가는 것에 불만있는 사람은 없었다. 우리 반 아이들은 전부 헌터를 지망하지 않는 친구들이라 운동은 잘해도 무엇과 싸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서 배운 것이다. 우리 반은 그런 반이다.

  "그럼 운이가 우리 반을 대표해서 나가는걸로 하자. 아쉽지만 우리는 구경하는 재미밖에 없네."

  지태는 아이들을 둘러보며 정말로 아쉬운 듯이 얘기했고 아이들도 꽤 아쉬워 보였다. 내가 잘못한 것은 아니였지만 친구들의 아쉬운 표정을 보니 뭔가 미안했다.

  "우리 고등부는 초등부, 중등부가 모두 끝나면 하니까 아직 시간이 남아 있을거야."

  수혜는 내게 그렇게 말하며 유아와 수연이를 만나러 가자고 했다. 가서 조금 여유를 부리며 시간을 보내자고 말이다. 나도 그게 좋다고 생각해 수혜의 뒤를 따랐다. 언제 나타났는지 내 옆에는 아린이가 같이 걷고 있었다.

  "그래서 네가 하는거야?"

  "어, 그렇게 됐어."

  "하기사 네가 안하면 누가 하니. 능력만 써도 우리 학교에서 당할 사람이 거의 없을 것 같은데."

  수연이도 나와 생각이 비슷했는지 오히려 상대를 걱정하고 있었다. 아니 나도 좀 걱정해줘.

  "널 걱정해서 뭐해. 아무리 때려도 상처하나 입을 것 같지도 않는데."

  "그래도 날붙이 같은거면 나도 상처 입어."

  "거짓말 좀 하지마. 너 애초에 맨손으로 바위를 부순다는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유아가 내 생각을 읽고서는 걱정해주기는 커녕 오히려 필요없다며 나를 매몰차게 대했다. 능력을 쓰더라도 상처는 입고 정신은 그대로이니 비난을 받으면 역시 속이 상하는 것도 똑같다. 하지만 사실 검과 같은 날카로운 물건에 베인 적이 없으니 어떻게 되는지는 전혀 모르겠다. 그래도 유아의 말대로 건물의 파편을 몸에 맞고도 파편이 오히려 파괴되었으니 검은 들지 않을 것 같기는 하다.

  "유아야."

  수연이는 유아의 이름을 부르면서 째려보았다. 이제 그만 놀리라는 의미였다.

  "미안해. 너무 심했어."

  유아는 나를 보며 사과했다.

  "아니야. 오랜 친구사이에 무슨 사과야."

  적어도 나는 그렇게 느끼고 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유아나 수연이가 잘못을 하더라도 미안하다고 하지 않아도 괜찮았다. 오랜시간 알고지낸만큼 화내거나 짜증을 낸다면 그만큼의 이유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

  "뭐, 그렇지?"

  유아는 능글맞게 다시 장난을 쳤고 수연이도 결국은 내가 상처받지 않았다는 것에 한숨을 내쉬고 유아를 한 번 안아주었다. 수연이가 유아에게 사과를 하는 방식이었다. 자신도 너무 심하다고 생각했던 듯하다. 유아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했는지 아니라며 수연이에게 들러붙었다. 역시 저 둘은 자매처럼 있는게 제일 보기 좋다.

  "근데 오늘 경기가 능력이 없는 반이나 그런 쪽으로 약한 반이 하기에는 조금 불리하지 않아?"

  난데없이 한가지 문제점에 대해서 생각난 나는 아이들에게 물어봤다. 아무리 생각해도 강한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훨씬 유리할 것 같은데.

  "아빠 말로는 괜찮다고 하시던 걸. 우리 학교에도 능력이 없더라도 너처럼 무술이라든지 그런 것을 배운 사람은 많고, 약한 능력이라도 대응할 수 있는 학생들은 많다고 하더라."

  만약 대응할 능력이 있는 아이들이라면 괜찮겠지만서도 그래도 크게 다치기라도 하게 된다면 힘들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아저씨가 한 말씀이니 내가 생각한 것보다 깊은 뜻이 있으셨을 것이다. 이미 시작된 것이기도 하고 아저씨가 확신하셨다면 밸런스면에서도 치우치는 경향은 없을 것이다. 그럼 나도 조금 기대를 해봐도 되지 않을까 싶다. 우리 도장에서도 나름 자부심이 있는 나와 정면에서 비등비등하게 대련을 할 수 있는 사람이 학생 중에 있을까 하는 기대를 말이다.

  "할 것도 없는데 우리 좀 돌아다닐래? 요 며칠동안 돌아다니지를 못해서 아쉬웠는데."

  수혜가 그렇게 말하자 유아와 수연이도 찬성했고 아린이는 내가 간다면 가겠다고 말했다. 나도 체육대회 동안에 첫날을 제외하고 시간이 남는 경우가 없었기 때문에 조금 돌아보고 싶었다. 어떤 맛있는 음식들이 있을지 매우 궁금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같이 돌아다니면서 길에 즐비해 있는 노점들을 둘러보았다. 가면서 단골 빵집 부부를 다시 뵈었더니 빵을 하나 공짜로 내어주시며 재미있는 만담을 보여주셨다. 정말 금슬이 좋으신 분들이다.

  노점들과 손님으로 들리는 사람들의 얼굴에는 모두 미소가 피어있었다. 이렇게 사람이 많다면 한 번이라도 싸움이 벌어질만한데 오늘까지 그런 일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 축제의 효과가 이 정도로 뛰어날 줄은 몰랐다. 무엇보다 나와 같이 있는 친구들의 얼굴에도 미소가 떠날 줄을 모르고 있었다.

  "우리 저거 해보자!"

  "뭔데?"

  유아가 신나서 한 노점을 가리켰고 수혜가 바로 그 뒤를 따랐다. 나도 조금 궁금해서 노점을 들여다보니 웬 과녁들이 늘어져 있었고 우리 쪽에는 총이 놓여있었다.

  "이거 재밌어 보이지 않아?"

  유아가 매우 신나하며 총을 잡고 이리저리 살펴보고 있었다. 아무렇지 않게 들고 있는 것을 보면 가벼운 소재로 만들어진 것 같았다.

  "플라스틱으로 된 총알로 발사되는 건가보네. 아빠랑 예전에 해본 적 있어."

  수연이는 담담하게 유아가 든 총을 바라보며 그렇게 이야기 했다. 아저씨 수연이를 얼마나 데리고 다니신 거예요.

  "정말? 시범 한 번 보여줘!"

  수연이가 중얼거린 말을 수혜가 들었는지 유아처럼 들고 있던 총을 넘겨주며 눈을 빛내고 있었다. 이 애들 신기해하는게 꼭 어린애들 같다. 굳이 따지면 어린게 맞긴하지만.

  "응, 기다려봐."

  노점의 주인인 아저씨가 수연이가 계산을 하려고 하니 담담하게 가격을 알려주고 과녁을 맞춘 점수에 따라 나오는 상품을 알려주었다.

  "잘 봐. 이렇게 자세를 잡고 호흡을 멈춘 다음 쏘는거야."

  어쩐지 고양되어 있는 듯한 수연이는 자세를 약간 구부정하게 한 뒤 총이 놓여진 곳에 팔꿈치를 대고 총 끝을 자신의 어깨에 둔 뒤 호흡을 하고 그대로 쐈다. 결과는 정확하게 제일 작았던 과녁에 맞았다.

  "오오."

  아저씨도 놀랐는지 유아와 수혜처럼 감탄하고 있었다. 나도 솔직히 말하면 놀라고 있었다.

  "저도 잘할 수 있어요."

  이번에는 아린이가 나섰다. 이런거에는 흥미가 없어보였는데 수연이가 쏘고 난 뒤로 승부욕이 샘솟은 모양이다.

  아린이는 수연이와 비슷한 자세를 취한 뒤 총을 쏘았다. 결과는 수연이와 같았는데 이걸 시작으로 둘은 경쟁을 벌이기 시작했다. 이렇게 보니 냉정하다고 소문이 나 있는 두사람이 서로 불이 붙어서 경쟁을 하고 있다는게 매우 신선했다. 참고로 아린이는 학교에서 꽤 냉철한 아이로 소문이 나 있는 아이이다. 나한테는 어째서 이런 모습을 보여주는지 몰라도 나름 귀여우니 괜찮다고 본다. 저렇게 진지한 모습도 멋져서 좋기는 하지만.

  의외로 내가 가면 간다는 말을 하며 이런데 흥미가 없어보였던 아린이와 그저 친구들과 같이 행동하는 것이 좋아서 있는 수연이의 경쟁을 보고 있자니 제대로 즐기고 있는 것 같아서 보기 좋았다.

  그 승부의 결과는 무승부였다. 둘 다 비슷한 속도로 쏘며 똑같은 과녁을 맞춰서 이런 결과가 나왔다. 두 사람의 점수에 맞는 상품은 인형이었다. 이제 고등학생이라 싫어하려나 생각했지만 두사람은 서로의 얼굴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승부도 재미있었고 상품도 마음에 들었는지 미소가 떠나지 않고 있었다.

  "나도 할래!"

  "그럼 나랑 같이 하자!"

  유아와 수혜는 두사람에게서 영향을 받았는지 둘이 끝나자마자 바로 아저씨에게 돈을 낸 뒤 총을 쏘았지만 결과는 처참했다. 유아와 수혜는 서로 과녁을 하나씩밖에 맞추지 못했다. 어쩌면 이렇게 둘이 똑같은지.

  그런식으로 그 노점을 벗어난 뒤 비슷한 곳을 찾아다니며 우리는 게임을 즐겼다. 게임센터에서 했던 디지털게임이 아니였지만 매우 재미도 있었고 무엇보다 다트가 있었다는게 나는 가장 마음에 들었다.

  "배고프다. 점심 먹자."

  "어떤거 먹을래?"

  실컷 놀던 수혜가 배가 고픈지 허리를 굽히고 의욕이 없어진 모습을 보이자 유아도 비슷했는지 바로 무엇을 먹을지 보기 위해서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고 있었다. 딱히 마음에 드는 것은 없었는지 다른곳으로 가자며 우리를 이끌고 갔다. 나도 마침 배가 허전했고 오늘은 도시락을 준비해오지 않았기 때문에 주변을 둘러보며 무엇을 먹을까 고민하고 있었다. 그러다 우리는 한 곳에 눈길이 끌렸다.

  "카레?"

  "괜찮지 않아? 밥이기도 하고."

  "보니까 면 종류도 있는거 같은데."

  "사람도 많아보이잖아. 맛있는거 같은데 냄새도 좋구."

  카레를 전문적으로 만들어서 파는 노점이었는데 냄새에 이끌린 우리는 그곳에 자리잡고 각자 먹을만한 것을 시켰다. 매운 맛이 5단계로 나뉘어져 있었는데 나는 3단계로 무난한 맛을 골랐고, 옛날부터 매운 것을 못먹는 수연이와 의외로 매운 음식을 못 먹는 아린이는 1단계와 2단계를 골랐고, 수혜도 나와 같은 무난한 3단계였다.

  "나 제일 매운거 먹어볼래!"

  유아는 5단계를 시켰다. 모두 면이 있었지만 밥으로 골랐다. 역시 밥이 든든하기는 하다.

  "못 먹을 것 같은데. 괜찮겠어?"

  "걱정마! 남기지 않고 다 먹을게!"

  자신만만한 유아의 모습에서 매우 불안함을 느꼈지만 그래도 자신이 한다는 것을 어기지는 않는 아이이니 믿기로 했다. 하지만 불안은 언제나 틀리지 않는 법이었다.

  "너무 매워. 운아 도와줘."

  유아는 한 입을 대더니 너무 맵다며 한번 떠 먹을 때마다 눈물이 날 정도로 얼굴을 찌푸리며 땀을 뻘뻘 흘렸다.

  "조심하라니까."

  나는 어쩔 수 없이 이미 먹은 내 그릇에 유아의 카레를 넘겨 받아 한 입 가져갔고 나는 넣자마자 정신이 찢겨져 나가는 줄 알았다.

  "이건 너무 심하네."

  제대로 말을 할 수 없을정도로 매웠다. 매운맛은 통증이라고 하지만 이건 매워서 통증이 아니라 그냥 카레가 내 혀를 때리는 것 같았다. 맹렬한 카레의 공격에 나는 휘청거릴 뻔했지만 정신을 차리고 그릇에 담아져 있는 카레를 모두 비웠다. 이렇게 한 번에 먹지 않으면 너무 힘들 것 같았다.

  "선배 여기 물이요."

  나는 아린이가 건내주는 물을 고맙다는 인사를 하지도 못하고 바로 벌컥벌컥 마시며 억지로 넘겼다. 하지만 물로는 전혀 내 혀를 진정시킬 수 없었고 카레의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었다. 유아도 자신에게 남은 카레를 다 먹고 나서 물을 받아 마셨지만 나보다도 심해보였다. 아까부터 땀을 심상치 않게 흘리고 있다. 아직 한여름이 아니지만 이미 유아는 햇볕 아래에서 직접적으로 더위를 느끼는 모습처럼 보였다.

  아무래도 점심을 심하게 매운 것을 먹은터라 입을 식히고 싶던 유아와 나는 아이들을 데리고 커피를 마시러 갔다. 우리가 단골로 다니는 카페에서도 노점을 냈는지 자리를 잡고 있기에 가서 시원한 커피를 마셨다.

  "와~. 이제 진정되는 것 같아."

  유아는 이제서야 살 것 같다며 이마의 땀을 훔쳤다. 나도 어지간히 매워서 온몸에서 땀이 나고 있었는데 이러면 워밍업은 안해도 될 것 같았다. 으으, 아직도 혀가 아픈 것 같아.

  "의외로 우리 중에 한사람도 매운 걸 못먹네. 난 수연이나 아린이가 매운거 좋아할 줄 알았어."

  수혜는 정말 그렇게 생각했는지 자신이 시킨 라떼를 마시며 두사람을 보았다.

  "예전에 매운거 먹다가 탈이 난 적이 있거든. 그때 너무 힘들어서 이젠 안먹어."

  수연이는 그렇게 말하며 블랙을 마셨다. 아무래도 매운걸 먹으면 그럴 수 있기는 하다.

  "저는 싫어하는건 아니지만 옆에 선배가 계시니까 풀어진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는 않아서요."

  아주 대놓고 내 얘기를 하는 아린이는 예쁜 미소를 지으며 나를 보고 있었다. 근데 이미 너 내 앞에서 열심히 풀어진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 같은데. 그럼 지금 이 모습도 풀어진게 아니라는건가? 얼마나 더 충격적인 모습인거야? 상상을 하려고 했으나 도저히 떠오르는 것은 없어 포기했다.

  그렇게 우리는 점점 이 노점에도 사람이 모이기 시작해 빠르게 이젠 얼굴이 익숙해진 누나에게 인사를 하고 항상 가는 공원으로 향했다. 공원은 오늘도 절찬 손님 모집중이었다.

  "어? 저기 사람."

  아무도 없다고 생각했지만 누군가가 있었는지 앞서 걷던 유아는 누군가를 가리키며 우릴 보고 있었다.

  "어디?"

  이 공원에 누가 있다고 하면 거의 관리를 하는 아저씨일텐데 하며 고개를 돌려 유아가 가리킨 곳을 바라보자 거기에는 시훈이 형이 있었다.

  "어? 형!"

  나는 바로 달려가 형을 불렀다. 형의 옆에는 첫 만남때 보았던 에시나트라는 아이가 형의 손을 잡고 있었다. 여전히 하얀 모습에 발에는 신발조차 신고 있지 않았다. 게다가 행운은 여전히 보이지 않았다.

  어? 시훈이 형, 오늘은 하얀색의 귀걸이도 하고 오지 않은 모양이다.

  "아, 운이구나. 안녕~."

  느릿한 속도로 나를 돌아보며 손을 흔드는 형에게 똑같이 손을 흔들어 인사했다. 에시나트라는 아이는 내게 무관심한지 아무런 표정도 없이 나를 보고 있기만 했다.

  "뭐야? 아는 사람이야?"

  친구들은 내가 갑자기 달려나가 깜짝 놀랐는지 바로 뒤를 따라왔고 누군지 확실하게 보기 위해서 고개를 돌리자 네사람은 일제히 숨을 삼켰다. 그런 반응이 나올 수밖에 없는 사람이기는 했다.

  "그 소문의?"

  "아, 응. 맞는거 같아."

  "우와, 나 처음 봐."

  "저도요."

  아이들은 무슨 신기한 생물이라도 만난 듯이 그렇게 서로 이야기 하기 시작했다. 나는 친구들이 실례하는 것이 아닌가 해서 형에게 사과했지만

  "괜찮아. 어딜가든 비슷한 반응이라 적응했어."

  그렇다고 한다. 약간 무슨 느낌인지는 나도 알 것 같았다. 나와는 조금 다른 종류이겠지만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었다. 나도 오랜시간동안 경멸의 시선을 받아 보았고 그것에 일일이 반응했다가는 내가 힘들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적당한 선에서 무시하는 방법을 터득했다. 그 느낌이 형에게서도 느껴졌다. 왠지 알면 알수록 신기하다는 느낌이 사라지고 정말 친한 형과 같은 느낌이 났다.

  "친구들이니?"

  "응."

  "안녕하세요. 김시훈이라고 해요. 잘 부탁해요."

  형은 친구들에게 공손하게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고 그렇게 나올 줄은 꿈에도 몰랐을 아이들은 자신들도 고개를 숙이며 한명 한명 자신의 소개를 했다. 에시나트라는 아이는 끝까지 형의 손을 놓지 않고 지켜보고 있기만 했다. 처음 만났을 때 형에게 말을 하는 것을 생각해보면 서툰 느낌은 아니지만 애초에 과묵한 모양이었다.

  "그러고보니 운이가 여기 학생이었구나?"

  "응, 그런데 형은 여기 웬일이야? 바쁘지 않아?"

  이 시간에는 매니저가 본업인 형은 매우 바쁠 것 같아 물어보았다.

  "맞아. 여기에 온 이유도 일 때문이야."

  형은 미소를 지으며 내게 대답해주었고 그 미소를 본 친구들이 숨을 삼키는 것을 들었다. 그렇지. 이 형의 미소는 그만큼의 공격력이 있어.

  "무슨 일?"

  "여기 교복이 곧 바뀐다고 해서 내가 맡은 두사람이 홍보모델로 왔어."

  "정말? 근데 형이 매니저로 있는 사람은 여성뿐이잖아."

  "그래서 나도 모델로 쓰신다나봐."

  그러면 납득이다. 형이 모델로 발탁되면 아마 그 이상을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훤칠하게 큰 키에 작은 얼굴, 몸도 관리한 것 같고 게다가 비율까지 완벽한 것을 보면 정말 누가 빚어서 만든 사람이 아닌가 싶다.

  "아, 이만 가봐야겠다. 운아 나중에 또 봐~."

  형은 우리 뒤쪽을 잠시 보더니 나에게 미소와 함께 인사를 하고 우리 뒤쪽으로 뛰어갔다. 시선을 따라 가보니 멀리서 보아도 매우 아름다운 여성 둘이 있었고 형이 그 사이에 들어가자 둘은 형에게 팔짱을 꼈다. 매우 자연스러운 모습에서 아마 매니저와 모델의 관계가 아니라 그보다 더 가까운 사이가 아닐까 짐작했다. 뭐, 형이라면 저런 사람 둘이 있더라도 이상하지 않았다. 나는 거기까지 생각하고 고개를 저었다. 형에게 실례되는 것이고 더 이상 생각하면 사생활적인 것까지 상상할 것 같아 그만두기로 하고 친구들을 바라보니 모두 형이 사라진 방향을 보며 넋을 놓고 있었다.

  "저 두 사람 요즘 유명한 모델들이지? 아이엘과 라크사샤라고 했던가?"

  "응, 나도 그렇게 봤어."

  유아와 수혜는 서로 마주보며 자신이 무엇을 본 것인가 하며 얘기하더니 의견이 맞았는지 둘은 방방뛰며 좋아하고 있었다. 둘의 반응을 보니까 매우 유명한 모델들인 모양이었다.

  "운아 저분하고 아는 사이야?"

  "응, 얼마전이지만 친해졌어."

  "흐응."

  수연이가 시훈이 형에게 흥미를 가졌는지 질문해왔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 웬만해서는 흥미가 없는 수연이치고는 의외였다.

  "저는 선배뿐이에요."

  아린이는 무슨 소리를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지만 아무렇지 않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지났는지 시계를 보니 고등부의 경기가 진행될 때가 되어 우리는 체육관으로 향했다. 이번 경기는 학교에서 가장 넓은 고등부의 체육관에서 모든 경기가 치뤄져 동시에 이루어지는 경기는 없었다. 한 곳에 관객을 모으려고 하는 생각도 있었겠지만 말이다.

  "오, 왔어?"

  "이제 준비해야지."

  천막 아래로 도착한 나를 무한이가 반겨주었다. 무한이의 목소리에 내가 왔다는 것을 안 반 친구들은 한 명씩 와서 내게 힘내라는 등의 말을 해주고 어딘가로 갔다. 이제 할 일이 없으니 각자 하고 싶은 것을 하러 가는 모양이었다.

  "이런 거는 네가 더 익숙할테니까 조언 같은 것은 하지 않을게. 재미있게 하고 와."

  가람이는 나에게 다가와 그렇게 말하고는 친구들을 따라갔다. 도장에서도 관장님과 대련을 하면 형들에게 응원을 받기는 하지만 친구들에게 받는 것은 또 다른 느낌이었다. 왠지 비워져있던 것이 채워지는 느낌이랄까? 아니 그보다 부끄러웠다. 전날까지 응원해줬지만 그렇게 느끼는 것은 오늘이 처음이었다. 친구들과 헤어지고 나는 체육관 안으로 들어가 아린이와 헤어진 뒤 옷을 갈아입고는 대기실에 들어가 앉아 있었다. 대기실에는 많은 아이들이 있었고 모두 긴장한 것처럼 보였다. 그 중 몇몇 아이들이 경험이 있는지 적당히 몸을 풀고 있거나 딴짓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주변을 둘러보며 언제 시작되나 시간을 떼우고 있자 대기실의 문이 열렸고 유아네 아버지와 수연이네 아버지가 밖에서 나를 부르셨다. 아이들은 이사장이신 아저씨가 오셔서 나를 부르신다는게 신기했는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었다.

  "네?"

  "너를 이용하는 것 같아서 미안하지만 해줄 수 있겠니?"

  유아네 아저씨가 내게 사정을 이야기 해주면서 부탁을 하셨다. 물론 들어드리기는 한데 내용이 조금 이상했다.

  "이 렌즈를 착용하고 경기에 참여해줘."

  아저씨가 말씀하시며 내 손에 얹은 케이스에는 자그마한 렌즈가 있었다. 거기다 컬러렌즈인지 앞쪽이 파랗게 보였다.

  내용은 이러했다. 지금 학교에 범죄 조직에 관련된 사람이 침입해 있고 그들은 이상한 표식을 몸에 새기고 있는데 그것을 포착하기 위해서 이 안경을 쓰라는 것이었다. 문제는 몸 어딘가에 새겨진 것이라 그것을 보기 위해서는 이 렌즈를 착용하면 보이는데 상대의 옷이 비쳐보이기 때문에 말 그대로 알몸으로 보인다는 것이었다.

  "아, 안돼요!"

  "운아, 제발 너밖에 부탁할 수 있는 애가 없어."

  나는 얼굴을 붉히며 아저씨에게 애원했지만 아저씨도 잘 알고는 있지만 자신이 수사하고 있는 조직의 일이라서 어쩔 수 없다는 것이었다.

  "앗! 그럼 그 렌즈 아저씨가 끼시고 알려주시면 되는거 아닌가요?"

  "그렇게 하고 싶지만 이 렌즈 나는 못 껴."

  "왜요?"

  "난 눈에 뭘 넣는걸 좋아하지 않거든. 게다가 이거 하나뿐이야."

  아저씨는 머리를 긁적이시며 부끄러워 하셨다. 약간 유아와 비슷한 반응을 하시는게 역시 부녀지간……. 아니 그게 아니라.

  "괜찮아. 너라면 할 수 있어."

  큰 신뢰를 받고 있어 좋기는 하지만 안되는건 안됩니다!

  "음, 안되나 역시."

  "그러니까 자세하게 얘기를 하고 부탁하라고 했잖나."

  유아네 아버지가 상심한 듯 고개를 떨구자 옆에 계시던 수연이네 아버지가 설명을 덧붙여 주셨다.

  "내가 조금 건드려서 옷이 아닌 몸에 그려져 있는 곳만 보일 수 있도록 해줄테니 걱정말거라."

  "그럼 진작에 말씀해주셨어야죠."

  그렇게 나는 렌즈를 받아들고 경기에 나섰다.

  고등부의 첫 경기가 나였기 때문에 대기실을 나가 체육관 중앙으로 향했다. 주변에는 많은 사람들이 몰려있었고 중앙에는 큰 매트가 깔려져 있어 그 위에 조명이 매트만을 비추고 있었다. 이렇게 보니 왠지 옛날 복싱경기를 보는 것 같았다.

  나는 경기가 시작하기 전에 케이스에서 렌즈를 꺼내든 뒤 주변을 살펴보았다. 아저씨가 말하길 몇 명이 들어왔는지까지 파악되지 않았기 때문에 시작전에 주변을 둘러보라고 하셨다. 아저씨가 렌즈에 추가해주신 기능으로는 몸에 새겨진 문양이 어디 있는지 빛을 내며 알려주신다고 했는데 일단 관객석에는 아무도 없었다. 다행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수가 많았다면 움직이게 된 순간 일제히 사라졌을 것이 분명했으니까 말이다.

  아니면 어지간히 자신이 있다거나 하는 것이겠지.

  내 상대인 아이가 내 앞까지 나오자 해설을 하는 학생이 작은 단말기를 들고 말하고 있지만 우리에게는 들리지 않았다. 이 매트를 기준으로 소리를 차단하는 기능이 있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그것은 일방통행으로 밖에서 안으로 들어오는 소리는 들리지 않지만 안에서 밖으로는 들린다고 한다. 참 신기한 기능이다.

  "이 운 선배죠? 소문을 들어 잘 알고 있습니다. 살인범씨."

  상대는 나처럼 경험이 많은 아이인가 아니면 원래 성격이 그런지는 모르지만 자세를 잡으며 내 멘탈을 흔들기 위한 말을 했다. 그러나 나도 허투루 지금까지 아이들의 시선을 버틴 것은 아니며 저런 말에 일일이 멘탈에 대미지를 받는다고 생각하면 섭하다.

  내가 원하던 반응을 보이지 않자 아이는 혀를 한차례 차고는 자신의 무기를 꺼냈다. 일반적인 검이지만 애초에 무기를 가지고 이 경기에 참여했다는것 자체가 검 실력에 대한 자신감이 있는 것일테다.

  그렇게 상대에 대해서 파악하고 있자 심판으로 와주신 양호선생님께서 나를 보시고는 윙크를 하신 뒤 가지고 계신 호루라기를 불으시고는 빠르게 매트에서 나가셨다. 윙크는 왜하신거지?

  넋을 놓고 양호선생님을 보고 있자 상대인 후배는 그때를 놓치지 않고 검을 내게로 뻗어왔다. 하지만 역시 생각만큼 빠르지 않아 나는 가볍게 피하고 검을 잡은 손을 힘껏 잡아 검을 떨군 뒤 발을 휘둘러 배에 적중시켰다. 아이는 다리로 배를 맞고 충격이 컸는지 날라갔고 그대로 누워 있었다. 에이 그래도 좀 운동을 한 아이일텐데 이걸로 기절을 한다고? 말도 안돼.

  "운아, 아무래도 네가 이긴 듯 해."

  양호선생님은 쓰러진 아이를 보고 나에게 다가오신 뒤 팔을 잡고 들어올리셨다. 이게 뭐지……. 전혀 소득이 없는 경기였다. 검은 내가 써보지 못해서 조금 배워볼라고 했는데 말이다. 참고로 아이의 몸에서 빛이 나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첫게임이라서 그런지 나는 그 뒤로 대기하는 시간이 길어 대기실에 멍하니 있었다. 그렇게 멍하니 있으려니 주변에 사람이 사라지는 것은 당연했고 돌아오기는 했으나 지쳐보이는 사람도 많았다. 이거 나만 상대가 쉬웠던건가? 싶을 정도였다. 학년을 불문하고 치뤄지는 경기라 많은 반이 있는만큼 내 경기가 돌아오는 시간은 길었다. 그동안 대진표를 보면서 나는 몇번 이기면 우승인가를 계산해봤더니 의외로 금방이었다. 6 경기만 더 이기면 우승이었다. 생각보다 간단하다.

  긴 시간을 기다리고 드디어 나는 다음 경기를 치뤘는데 결과가 비슷했다.

  "네가 소문의 살인범이냐? 마음에 드는데."

  단검을 혀에 갖다대며 날을 닦는 아이는 나보다 한 학년 선배였다. 겉모습은 멀쩡한데 행동이 영 아니였다. 저런 사람을 대표로 내보낼 생각을 하다니 저 사람 반은 어떻게 되어먹은 걸까.

  나중에 상대인 선배가 나를 찾아왔고 듣고 보니 강하게 보이기 위해서 한 일이라고 한다.

  그렇게 쓸데없는 생각을 하고 있자 경기는 시작됐고 선배는 내게 덤벼들었다. 그리고 결과는 마찬가지로 한 대였다. 달려오는 모습이 너무나 허점투성이이길래 그대로 주먹을 내리 꽂자 매트에 얼굴이 꽂힌채 움직이지 않았다.

  너무 허무하다. 분명 아저씨도 대단한 사람들이 많다고 했는데 내 대진표가 좋지 않은걸까. 기다리면서 경기를 볼 수없으니 조금 답답했다.

  대기실로 돌아온 나는 또다시 대기를 했고 아까보다는 빠르게 경기를 시작했다. 이번 상대는 그래도 좋은 경험이 될 것 같았다.

  "회장, 안녕하세요."

  "운아 안녕?"

  우리 학교의 회장이었다. 외모는 물론이고 공부도 잘하며 운동도 상위권에 해당하고 무엇보다 능력이 없음에도 뛰어난 검도실력은 그의 인기를 가속시켰다. 학교에서도 지나다니다보면 우진이 형처럼 여성들이 많이 둘러싸고 있는데 그곳의 중심에는 항상 회장이 있다고 봐도 무관할 정도였다.

  회장은 자신이 가지고 있던 긴 무언가가 담긴 주머니를 열며 목검을 꺼내들었다. 지금까지 내가 상대한 사람들은 모두 날붙이였지만 회장은 목검을 들고 나온 것이다. 그것을 보고 나는 회장의 성격에 웃음 지었다. 어떤 무기를 써도 되지만 날붙이를 쓰지 않겠다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회장은 검이 없는 것은 아니였다. 어제만 해도 게이트가 갑자기 나타났을 때 회장은 검을 들고 뛰쳐나왔으니까.

  "즐거운 경기가 되었으면 하네요."

  "그래."

  그리고 양호선생님의 호루라기 소리가 울려퍼졌고 회장은 자세를 잡고 나를 노려보았다. 나도 허투루 그를 상대할 생각이 없어 자세를 잡고 허점을 찾고 있었는데 이제는 무시할 수 없을만큼 확실하게 보이는 푸른색의 문양을 보고 나는 숨을 삼켰다.

  처음부터 회장의 오른쪽 어깨쪽이 계속 눈에 밟혔고 결국 나는 인정해버렸다. 처음 봤을 때는 설마했다. 그리고 아니라며 무시하려고 했으나 빛을 잃지 않고 내 눈에 띄는 푸른색으로 빛나는 저 문양은 틀림없다고 자기 주장을 하고 있었다.

  나는 괴로운 표정을 지었다. 존경해마지 않는 회장이 범법자라니 생각도 하기 싫었다. 하지만 지금 내 눈에는 현실을 직시하라며 푸른색의 문양이 빛나고 있었다.

  "봐드리지는 않을거예요."

  "그래. 어서와."

  나는 그대로 매트를 발로 차 나아가 주먹을 뻗었고 그대로 한 번에 기절을 시키려고 했으나 회장의 검에 흘려져 내 주먹은 목적을 잃고 허공을 갈랐다. 회장은 바로 내게 목검을 찔러왔고 나는 허리를 숙여 피한 뒤 바로 다리를 걸려고 했다. 그러나 그것은 찌르려던 목검이 내 머리 위로 떨어지고 있어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다리를 거둔 뒤 뒤로 살짝 뛰어 거리를 두었다.

  "역시 대단한걸?"

  "회장님이야말로요."

  능력이 없다는 회장이 내 움직임에 따라오는 것도 그렇지만 바로 반격에 나서는 것도 정상은 아니였다. 하지만 나는 아저씨에게 부탁을 받았기 때문에 최대한 빠르게 끝내기 위해 연속으로 회장을 공격했지만 모든 공격이 회피당하고 말았다.

  "능력을 쓰면 간단할텐데 안쓰니?"

  "회장은 못쓰시는걸 제가 쓸리가 없잖아요."

  "역시 넌 바보지만 상냥해."

  받아치기만 하던 회장이 이번에 먼저 움직였다. 회장은 목검을 위로 들어올려 내려치는 큰 동작을 취했고 나는 뻔히 보이기 때문에 그것을 피하려고 했는데 중간에 궤도가 바뀐것을 보고 몸을 굴려 피했다.

  "계속 간다."

  회장은 비슷한 공격을 빠르게 해왔으며 나는 피하기 바빴다. 하지만 몇 번을 보게되자 익숙해져 나는 반격에 나섰다. 어깨를 노리고 내려오던 목검을 피하고 중간에 궤도가 바뀐 목검을 발로 걸쳐서 매트에 내려 꽂은 뒤 부러트렸다. 그리고 회장의 몸에 주먹을 때려넣었고 회장은 기절했다. 나는 생각보다 쉽게 끝난 이 경기에 위화감이 들었지만 회장이 범인이라는 것을 알게되어 낙심하고 있어 무시했다.

  이번에도 승리하기는 했지만 조금 씁쓸했다. 그렇게 느끼고 대기실로 향하는 내게 유아네 아버지가 다가왔다.

  "그 아이냐?"

  "네."

  "그러면 안심해라."

  "네?"

  나는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고 되물었다.

  "너와 상대한 그거 인형이야."

  그렇게 말하시며 아저씨가 손짓하자 뒤에서 회장이 나타났다.

  "살펴봐라."

  나는 아저씨가 말하기도 전에 이미 눈을 회장에게 향해 살펴보았지만 전혀 빛이 나는 곳은 없었다.

  "아마도 인형을 부리는 능력자가 있는 것 같은데 그 능력을 쓴 인형에게는 방금 네가 본 문양이 나타는 것 같더구나."

  아저씨의 말에 나는 깊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저씨가 문양에 대해서 알게된 것은 수연이네 아버지가 만드신 물건으로 볼 수 있게 되었고 확인을 하신 것이라고 한다.

  "다행이다."

  "걱정시켜 미안하다. 내가 당하는 바람에."

  "그게 또 무슨 말이에요?"

  "이 아이 누군가에게 억지로 재워진 모양이야. 순찰하던 내 동료가 발견했고."

  그렇게 된 것이었다. 실제로 회장은 경기에 참여하기 위해서 체육관으로 오려고 했었는데 중간에 누군가에 의해서 재워져 가둬진 모양이었다.

  "그런 사람이 더 있나요?"

  "아직 발견은 되지 않았지만 아마 몇 명 더 있을거다. 조심하렴."

  그리고 아저씨는 내 어깨를 두드려주시며 잘했다고 칭찬해주셨다.

  "경기 잘봤어. 역시나던걸."

  "아니예요. 진짜 회장이었으면 능력을 썼을거예요."

  사실이 그랬다. 경기가 끝나고 느낀 위화감은 원래 회장보다 약했다는 것이었는데 그 이유가 인형이었다면 납득했을 것이다.

  "그래도 진다고는 안하는구나?"

  회장은 살짝 웃으며 내게 장난을 쳐왔다. 나 또한

  "당연하죠. 아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그건 양보 못해요."

  장난으로 받아쳤다.

  사건에 대해 알게되자 조금 마음이 놓여 여유가 생겼다. 하지만 그 뒤로 이어지는 경기에서는 모두가 푸른빛을 내는 문양을 가지고 있었고 모두가 인형이었다. 다행이라고 하면 다행이지만 지금 이 상황을 보면 학교에 침입했다고 봐야했다.

  지금까지 인형이었던 사람들은 나와 같이 대기실에 있었을때만 해도 인형이 아니였으니까 말이다. 한마디로 진행하기 직전에 바꿔치기를 당했다는 것이었는데 그것을 알지만 침입해 있는 범인은 보이지도 않으니 아저씨는 화가 나는 모양이었다.

  "도저히 흔적조차 보이질 않는군."

  아저씨는 답답하신지 밖으로 나가시며 심호흡을 하셨다. 나도 답답하기는 매한가지였다. 바꿔치기를 당한 학생들이랑 제일 가까이 있었음에도 눈치채지 못했고 도와주지 못했으니까 말이다. 그렇게 어느덧 결승이 다가왔고 나는 경기장으로 나와 대기하고 있었고 상대가 걸어나오고 있었다.

  이번에는 렌즈에 문양이 잡히지 않았고 다행히 당한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이때만 해도 나는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상대는 아무말 없이 자세를 잡았고 나도 그에 응해 자세를 잡았다. 바깥의 소리가 들리지 않으니 교복을 보고 선배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덩치가 꽤나 컸는데 자세를 잡고 있는 것이 실력자 같아 보였다.

  자세를 잡고 기다리는 동안 어김없이 양호선생님의 호루라기가 울려퍼졌고 동시에 상대쪽에서 내게 달려왔다. 빠르기는 했으나 내 눈에 보인다고 생각하고 피하려는 순간 나는 바닥에 엎드려져 있었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나는 알지 못했고 생각하기도 전에 나는 멱살을 잡혀 그대로 끌어올려져 얼굴을 계속해서 맞았다. 코가 깨져 피가 났고 입 안도 찢어져 피가 입 안에 맴돌았다. 양호선생님께서 옆에서 그만하라는 듯이 매트 밖에서 벽을 두르리는 것처럼 행동했다. 상대는 듣지도 않고 나를 계속해서 때렸다. 매트 바깥에서는 사람들은 몰려드는 것이 보였지만 어째서인지 양호선생님처럼 들어오지 못했다.

  맞으면서도 정신을 차릴 때 쯤 상대의 손이 멈추고 내 귀에 입을 가져다대며 말을 했다.

  "하얀머리 꼬마애는 어디로 갔지?"

  나는 그 말을 듣고 잠시 멍해졌다. 내가 아는 하얀 머리의 아이라면 백화점 사건때 보았던 할아버지와 함께 있던 그 아이뿐이었다.

  "그래. 지금 니가 생각하고 있는 그 꼬맹이."

  어떻게 내 생각을 알았는지는 모르지만 나는 그의 말로 확신했다. 이 사람은 우리 학교 학생도 아니거니와 그때 그 인형을 직접 조종해 아이와 할아버지를 노린 사람이거나 그의 동료라는 것을 말이다. 그것을 깨달은 나는 곧바로 손을 휘둘러 40의 행운을 양호선생님께 드렸고 85가 되는 것을 확인한 뒤 내 멱살을 잡고 있는 손목을 쥐었다. 하지만 그 손에서 힘이 빠지기는 커녕 점점 더 강해져만 갔다.

  "장난치지 말고 말해라."

  그렇게 말하고는 멱살을 놓자마자 내 배를 발로 걷어찼다. 엄청난 힘으로 차여진 나는 매트의 끝까지 밀려났고 원래라면 밖으로 떨어져야했지만 어떤 벽에 막힌 것처럼 몸이 부딪쳤다. 나는 그 충격으로 숨이 폐에서 터져나왔다.

  처음이었다. 행운을 40을 넘겨주었는데도 내 신체능력으로도 통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는 것에 말이다. 웬만해선 헌터정도야 힘으로 지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의외의 장소에서 비슷한 능력을 가진 사람에게 힘에서 밀린 것이다. 그 사실에 적잖이 충격을 받은 나는 고통에 비명을 지르는 몸을 억지로 일으켰고 상대를 노려보았다.

  "당신이 인형을 조종한거야?"

  "그건 알 바가 아니다."

  상대는 빠르게 내게 달려와 다리를 휘둘렀다. 이번에는 피하지 않고 막으려고 했지만 반대쪽에서 맞았다. 이번에도 심각한 고통과 함께 숨이 터져나왔다.

  "능력을 쓴건가? 신체강화라면 내 상대는 아니다."

  날려진 내게 다시 달려오는 상대를 보고 있던 나는 내 행운의 20을 다시 날렸고 그것은 유아네 아버지로 향했다. 변했는지 어땠는지는 확인하지 않았다. 나는 지금 달려오는 상대를 보는 것이 더 중요했고 아까보다도 느리게 보이는 것으로 확인이 가능했다. 그 순간 내 안에서 무언가가 가라앉는 듯한 느낌이 든 순간 머릿속에 있던 잡생각이 모두 날아갔다.

  이번에도 다리를 이용해 나를 날리려고 하는 상대의 모습을 모두 포착했고 내 몸을 향해 휘둘러오는 다리를 피하려고 움직이자 그 다리가 갑자기 궤도를 바꾸며 피하려는 곳으로 왔다. 나는 그것을 보자마자 주먹으로 맞부딪쳤다. 그리고

  "크아아악!"

  상대의 무릎이 부숴지는 것을 느꼈다. 그대로 나는 상대에게 다가가 다리로 걷어차 매트의 끝에 있는 벽에 부딪치게 한 뒤 그대로 달려가 무방비가 된 상대에게 주먹을 여러번 내리 찍었다. 그렇게 무차별한 공격을 하는 도중에도 나는 머릿속으로는 안된다고 하고 있었지만 그 신호가 약해 손을 멈추지 않았다.

  상대의 얼굴이 뭉개져 피가 내 손에 묻을 때까지 때렸고 그대로 기절했지만 나는 계속해서 주먹을 만족했다고 생각이 들때까지 휘둘렀다. 그리고 벽이 사라진 것인지 상대의 몸이 뒤로 넘어갔고 그 순간 관객석쪽에서 폭발이 일어났다. 폭풍에 얼굴을 가리기 위해 팔을 들어올렸고 가려진 시야 사이로 눕혀진 상대를 데리고 가는 문양을 가진 인형 둘이 보였다. 그대로 쫓아가려고 했으나 폭발에 의해 비명을 지르는 사람들에게 다가가 도와주려고 했지만 오히려 나를 보고 기겁을 하며 도망치는 사람들을 보고 나는 빠르게 다가오는 아저씨의 동료들 분들에게 맡긴 채 물러났다.

  나는 그곳에서 등을 돌려 밖으로 나갔고 밖에는 유아네 아버지와 수연이네 아버지가 있었다.

  "괜찮니?"

  "네."

  나는 내 목소리에 깜짝 놀랐다. 내 목소리임에도 너무나 매말라있어 내 것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그래. 고생했다."

  "고생했구나."

  두 분은 나에게 고생했다고 하시며 나를 데려가셨고 사건은 정리가 되었다. 나중에 들어보니 내가 쓰러트린 사람이 아저씨가 쫓고 있던 사람 중 한 명이었다고 한다.

  흉흉한 사건이 있었지만 예정대로 시상식은 진행되었고 우리 반은 내가 우승을 했기 때문에 1위를 차지했다. 1위 상품은 우리 반 아이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지급한다고 하셨다. 나는 아무것도 필요없었고 아무것도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거절했다.

  그리고 대망의 학생 1위도 어쩌다보니 내가 하게 되었는데 상품으로 지급된 것은 한 기계였다. 그것은 이른바 '시스템'을 사용할 수 있게 해주는 기계였다. 헌터라면 누구나 사용하고 쓸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는 지급하기 매우 어려운 물건이라고 한다. 하지만 나는

  "죄송합니다. 이런거 필요없어요."

  다시 아저씨에게 돌려드렸다. 그것도 모두가 보는 시상식에서 말이다.

  그렇게 모두가 납득하지 못하는 시상식을 마치고 체육대회는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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