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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공포물
책벌레의 식사-괴담 코디네이터
작가 : 이른끝
작품등록일 : 2019.8.31

옛날 사관이 믿지 못할 상황을 목격하게 된다.
사초에 쓰기에는 어 없고, 또 안 쓰기에는 사관으로서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그래서 '책벌레가 이 부분만 갉아 먹었다.'고 백지로 놔뒀다.
그 당시에는.
사관들은 회의를 거쳐 그 백지 부분들을 뜯어내고 새로운 책 한 권을 만들었다.
그것이 바로 '책벌레의 식사.'다.

 
꽃무늬 원피스-12
작성일 : 19-09-30 23:25     조회 : 278     추천 : 0     분량 : 8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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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15 17 19 21

 오금이 저린다. 지금까지 이런 적은 없었다. 지건의 죽음을 목도 할 때도 시간이 멈춘 것 같았지, 오금이 저리지는 않았다.

  석환은 붉은 남자에게서 고개를 돌릴 수 없어서 보고 있었다. 그리고 붉은 남자는 상철이 패거리가 그랬던 것처럼 먹잇감을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이 상황을 부정하며 뒤로 물러나고 싶었다. 하지만 벽만이 그를 반긴다는 사실에 절망한다.

  그렇다면 기절이라도 하고 싶다! 마음속으로 처절하게 바랐으나, 정신은 옹골차게 버티고 있어 원망스럽기까지 하다.

  가슴이 터질 듯한 상황이 거짓 같지만, 지독한 현실이었다.

  “하아, 하아, 하아… 저게 뭐야?”

  희천이 번개처럼 머리를 들었다가 다시 땅바닥에 처박으며 외쳤다. 누구에게 묻는 걸까? 그 답은 저 자만 알고 있는데.

  석환은 격하게 머리를 가로저었다. 하지만 땅만 보고 있는 희천에게는 보이지 않는다. 그 정도로 정신이 없다.

  그 때 붉은 남자가 뒤로 물러난다. 그것이 시야에서 사라지자 석환은 숨을 몰아 쉴 수 있었다.

  “후….”

  “쿵! 쿵! 쿵…!”

  하지만 그것도 잠시, 거대한 것이 걸어오는 소리에 석환은 마음의 준비를 한다.

  괜히 이곳에 오자고 했다. 일중의 말마따나 할머니의 저주인 걸까? 시나브로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내린다. 그것뿐인가? 바지에 오줌도 지렸다.

  창피함 따위가 문제가 아니다. 살아 돌아 갈 수 없을 것 같다.

  발소리는 점차 가까워지더니, 이내 잦아들었다.

  쾅!

  엄청난 굉음과 함께 불투명한 유리문에 뭔가가 달라붙었다. 아니, 밀어 붙였다는 게 맞을 것이다.

  “엄마! 엄마! 나 좀 집에 데리고 가!!”

  희천이 머리를 땅에 찧으며 어린아이처럼 포효했다.

  석환은 마치 채집된 곤충이 핀에 박혀 있는 것처럼, 지상에서 떠올라 유리문에 밀착된 것을 마주한다.

  아무리 봐도, 눈을 씻고 봐도 바동거리는 벌거벗은 사람 같았다. 목은 붉은 손에 의해 아니, 손가락 두 개에 의해 잡혀 있었다. 사람은 발악하며 빠져 나가려 애쓰지만 소용없다.

  붉은 남자는 엄청난 완력으로 발가벗은 사람의 목을 잡은 것 외에 어떤 행동도 하지 않았다.

  “커거걱…!”

  숨을 쉬고 싶어 안달이난 발길질. 석환은 벌거벗은 사람이, 붉은 남자를 발과 손으로 때리는 걸 확인했다. 허나 붉은 남자는 요지부동이다. 마치 너희들의 미래이니 잘 보라고 정신적으로 고문하는 것 같았다.

  “그만!”

  쾅! 쾅! 쾅…! 석환이 유리문을 부서져라 쳐댔다. 주먹에서 피가 흘러도 개의치 않는다. 시도는 성공적이었다. 아주 잠시 고통은 공포를 잊게 만들고, 살고자 하는 마음을 깨우쳐줬다.

  “저거, 돼지야?”

  희천이 석환의 절규에 잠깐 고개를 들었다가 번개처럼 다시 숙이며 물었다.

  “그럴 리가 있냐? 돼지를 어떻게 한 손으로 들어? 아니지. 사람이 더 들기 힘든가?”

  “사람? 거짓말!”

  희천이 돼지 멱따는 소리를 낸다. 석환은 차라리 돼지를 드는 게 더 놀랍지 않을 것 같았다. 그 두툼한 목을 한 손으로 잡아 올리는 굉장한 광경이 눈에 그려진다.

  믿고 싶지 않은 진실 앞에 희천은 자신을 탓했다. 뭐가 그리 궁금하지? 사람이면 어떻게 할 건데? 이곳에서 빠져 나갈 수 있는 방법 따위는 없다는 결론에 도달한 희천은 아이처럼 울 뿐이다.

  죽을 때까지 먹을 수 있는 빵이 있는데!

  “저거…?”

  석환이 손짓하며 말했다.

  “으으으… 뭔데?”

  희천이 머리를 살짝 들어 석환을 본다. 그리고 석환의 손가락을 따라 불투명한 유리문 쪽으로 서서히 고개를 돌렸다.

  어찌된 것인지 유리문이, 정확히 벌거벗은 사람의 목 있는 부분을 기준으로 5cm 틈이 벌어졌다.

  그 바람에 희천은 미세한 틈으로 보이는 붉은 남자의 눈을 볼 수밖에 없었다. 검은자위는 없고, 오직 흰자위만 있는 눈이 희천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저절로 고개가 숙여지는 위압감에 몸이 떨린다.

  “욱, 욱…!”

  유리문이 벌어진 덕분에 벌거벗은 사람의 숨이 끊어질 것 같은 신음소리를 생생하게 들을 수 있었다.

  “숨 못 쉬겠지?”

  붉은 남자가 벌거벗은 사람에게 말했다. 아이들은 귀를 막고 싶었으나, 소용없음을 안다.

  “난 맞아 본적이 없어서 얼마나 아픈지 몰라. 그러니까 힘 조절이 안 돼. 이거 맞으면 숨이 막히나? 이거 맞으면 비명을 지르나? 이거 맞으며 눈물만 뚝뚝 흘리나? 그 정도만 알아. 지금은 딱 숨이 막히지. 그러면 이번에는 비명을 지르게 해 볼까?”

  익숙한 목소리? 희천과 석환은 전율을 느꼈다! 붉은 남자가 상철이의 목소리를 모사하고 있었다. 그것도 지건에게 했던 말을 그대로 따라하고 있었다.

  “그럼 이것부터!”

  쿵! 그가 벌거벗은 사람의 목을 놓았다.

  “커억, 커… 콜록! 콜록!”

  바닥에 떨어져 힘겹게 숨을 뱉어내는 모습이 안쓰럽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붉은 남자는 그 사람의 머리끄덩이를 잡아 채는 게 아닌가? 그리고 가볍게 유리문에 던졌다. 쾅!

  유리문이 용케 깨지지 않고 요동친다.

  “아아아… 살려 주세요! 살려 주세요!!”

  벌거벗은 사람이 재빨리 일어나서 손에 불이 나도록 빈다. 하지만 소용없다는 걸 그도 안다. 한 번, 두 번, 세 번… 오십 번까지 세다가 아이들은 세는 걸 포기했다. 처절한 비명 소리는 잦아든 지 오래다.

  “사……!”

  엄청난 고통에도 끈질긴 생명력은 포기하지 않았다. 아이들은 불투명한 유리문이라도 해도 벌거벗은 사람의 몸이 푸르게 멍들어 가고 있다는 것쯤은 알 수 있었다.

  벌거벗은 사람이 유리문에 붉은 피를 토해내 구분하기 어렵더라도 알 수 있었다.

  “그만, 그만해!”

  희천이 귀를 막고 비명을 질러 댔다.

  “비명 지르는 거 까지 들었고, 이제 눈물 흘리게 만들까나?”

  눈물이라면 흘릴 만큼 흘렸다. 이렇게나 많은 양을 인간의 몸이 배출할 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웠으나, 아직 끝나지 않았나 보다.

  붉은 남자는 벌거벗은 사람의 목을 잡고 땅바닥부터 유리문 틈까지 잡아 올렸다.

  조금 전처럼 거세게 저항하던 사람은 없다. 이번에는 전혀 미동도 하지 않고 시체처럼 늘어져, 아이들에게 자신이 흘린 붉은 피가 가짜가 아님을 확인시켜주는 붓일 뿐이다.

  “기회를 줄게.”

  붉은 남자는 작은 틈으로 유리로 만든 칼을 떨군다.

  “이 자의 목숨을 끊어. 그러면 너희들은 보내준다. 어때?”

  희천과 석환은 서로를 바라보고, 다시 유리칼을 쳐다봤다.

  “저건 사람이잖아? 나 보고 살인을 저지르라는 거야!” 희천은 입을 앙 다물었고, 석환이 열변을 토한다.

  “그게 문제가 돼?”

  붉은 남자는 소름끼치게 정돈된 목소리로 반문했다.

  “안 그러면 너희가 죽는데?”

  죽음. 그 짧은 단어의 공허함은 이 세상 그 어느 것으로도 채울 수 없었다. 하지만 이미 지건을 한 번 죽여 본 석환은 그 고통이 상상도 못할 것이라는 걸 잘 알았다.

  그런데 한 번 더 하라고? 그것도 장난치듯!

  난 못해. 아니 하면 안 돼!

  부정하고 부정한다.

  “너희들 가만히 보면 코미디언이 따로 없어. 절대로 웃지 않은 관객을 웃기려고 노력하는 코미디언. 하지만 난 웃어 줄게. 너희들이 재미있으니까. 그리고 이 사람의 목을 따면, 너희들을 내가 재미있게 해줄게.”

  “왜 우리에게 이러는 거야?”

  소름 돋는 농담에 희천이, 퉁퉁 부은 눈에서 쉴 새 없이 눈물을 떨구며 외쳤다.

  “저런, 우쭈쭈쭈… 겁먹었어요? 불쌍한 아이들을 위해 이 어른이 설명을 해 줄게. 알기 쉽게.”

  인자한 목소리에 석환과 희천은 심장이 쪼그라든다.

  “이유는 없어. 살인마가 살인을 하는데 이유가 있겠어?”

  냉랭한 말투가 그들이 서 있는 공간의 공기를 전부 빼앗아가는 것 같았다. 질린다! 저 눈은 진짜다. 피할 수가 없다. 하지만 비탄에 잠길 수도 없다. 그럴 시간이 그들에게는 없었다.

  “나는…!”

  “파하하하… 농담이야. 난 살인마가 아니야.”

  석환이 목소리를 간신히 쥐어짜내려 할 때, 붉은 남자가 폭소한다.

  “너희들 얼굴을 봤어야 하는데… 크크크.”

  붉은 남자는 남은 한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가리며 좋아했다.

  “내가 살인마라고 잘라 말하니까, 세상 다 잃은 표정이란… 유쾌하네! 다만 삶은 서바이벌이야. 현실에서도 남을 짓밟고 살아남잖아? 그게 자신들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 놓는 결정이라는 걸 모른다는 건, 유감이지만… 너희들은 알지? 한 번 해봤으니까.”

  무의식중에 아이들은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걸 뒤늦게 알아채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하하하… 뭘 놀라고 그래? 우린 똑같아. 살기 위해선 남을 죽여야 할 때가 있어… 지금처럼. 너희들 왜 울까? 이 사람이 걱정 돼서 우는 걸까? 아니면 이 사람이 죽으면 다음에 너희들 차래여서 지레 겁먹은 걸까? 내가 봤을 때는 후자야. 이 사람은 죽는다! 벌써 머릿속에는 그렇게 판단했어. 그러면 그 다음은 당연히 너희라고 생각하겠지. 솔직히 너희들은 결코 남을 위해 울어줄 위인이 아니잖아? 자신들에게 닥칠 공포를 나약한 눈물로 방어하고 있을 뿐이야. 어때? 반박해봐.”

  완벽했다. 석환은 그가 지신들을 완벽하게 통찰하고 있음을 침묵으로 시인했다.

  “그리고 특히 너!” 붉은 남자의 길쭉한 손가락이 희천을 가리킨다. 순간 희천은 손톱 안으로 바늘이 파고드는 것 같았다.

  “엄마를 거론했지? 지금 그 곳에 너와 엄마가 함께 있었고, 한 명만 살아남는다고 해보자. 넌 살고 싶을까? 죽고 싶을까?”

  “그,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아!”

  희천이 힘겹게 반박한다.

  “아니지. 어떤 일이든 준비를 해야지. 너희들은 준비돼있어야 해. 왜냐고? 과정은 중요하지 않거든. 언제나 결과만이 중요하니까. 모든 결과는 준비되지 않은 사람한테는 크나큰 손실로 남게 되거든. 하지만 준비된 자에게 결과는 언제나 따뜻하지.”

  “너 누구야?!”

  석환이 유리칼을 집어 들며 가슴 앞으로 뻗는다. 희천은 그런 석환의 뒤로 몸을 숨겼다.

  “오, 잡았네. 잡았어!”

  “누군데, 상철이 말을 따라하는 거야?”

  “상철이? 상철이! 하하하하….”

  붉은 남자의 웃음소리가 좁은 공간에 카랑카랑하게 울려 퍼졌다. 웃음소리만으로도 아이들은 온 몸이 찢어발겨지는 것 같았다.

  “아직 준비되지 못한 쫄보 얘기는 그만하자.”

  그러면서 자신이 잡고 있는 벌거벗은 사람을 유리문에 한 번 부딪혔다. 석환은 그 언행에 벌거벗은 사람이 상철이 같이 느껴졌다. 하지만 아까 목소리를 들었을 때는 아니었다.

  저게 만약 상철이라면, 그들의 미래는 이미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석환아, 석환!”

  “윽!”

  소름끼치도록 닮은 상철의 목소리에 석환의 관념은 통제된다. 더불어 심장이 오그라든다.

  “딴 생각 할 시간에 눈앞에 직면한 과제나 끝마치자고. 나는 너희들이 크나큰 손실을 안기고 싶지 않아. 그러니까 칼을 든 김에, 어서 해! 안 그러면 결과는 불 보듯 뻔하니까.”

  그는 결단코 아이들이 다른 생각을 하게 할 마음이 없었다. 그래서 말을 마치자마자, 작은 틈으로 미세하게 수축과 팽창을 반복하고 벌거벗은 남자의 목을 들이 밀었다. 목 줄기에 선명한 핏줄이 도드라진다.

  “어서. 안 그러면 너희들이 죽어!”

  그의 으름장에 석환은 어찌 할 바를 몰랐다. 죽는다는 게 뭐지? 아주 멍청한 자문이 아닐 수 없다. 이미 답은 알고 있었으나, 명확한 결론에 도달하지 못했다.

  정말로 목숨을 잃는 것인가? 그렇다면 저 자를 죽여야 한다. 하지만 붉은 남자가 자신들을 살려준다는 보장은 없었다. 거짓말일 확률도 생각해야 했다.

  석환은 붉은 남자에게 자신을 대입해 판단했다. 그러자 아주 쉽게 결정할 수 있었다.

  붉은 남자가 약속을 지킨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어차피 죽는 것이라면, 살인을 하지 않겠다.

  석환은 그렇게 마음을 정리하고 유리칼을 내려놓았다. 쨍그랑!

  “호오, 네 결정은 그거란 말이지. 겁쟁이.”

  “그렇게 말해도 난….”

  “으아아아아!”

  석환의 말하는 도중에 희천이 전광석화처럼 유리칼을 집어 들고, 벌거벗은 남자의 목덜미에 꽂아 넣었다. 예상치 못한 일이라 석환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한 번 했던 걸 왜 못해? 병신아!”

  “쿨럭! 쿨럭…!” 희천이 칼을 빼자 벌거벗은 남자의 목덜미에서 피가 터져 나왔다. 뜨거운 피는 희천을 덮쳤고, 이내 그들이 있는 공간을 적신다.

  “하아, 하아… 내가 사람을 죽였어! 그런데 어쩌라고? 약한 게 나쁜 거야. 강한 건 살아남는 거라고!”

  희천이 피 묻은 유리칼을 내려다보며 변명하기 바빴다.

  하지만 그런 희천의 말이 석환의 귀에 들어올 리 만무했다. 땅바닥에 떨어져 최후의 경련을 일으키고 있는 벌거벗은 남자의 발작을 눈에 가득 채웠기 때문이다.

  그는 경련을 일으키는가 싶더니 그대로 숨이 멎는다.

  “너, 너… 대체 뭐하는 짓이야!”

  석환이 광기에 휩싸인 희천을 향해 분노를 표출했다.

  “난 잘못 없어. 잘못 없다고! 이제 엄마한테 갈 거야. 그리고 빵은 내가 구워 먹을 거야. 남한테 시키지 않을 거야. 가능하겠지? 그렇지?!”

  희천이 괴성을 지르는 가운데, 석환은 이상함을 느낀다. 바닥에 널브러진 벌거벗은 남자 흘리는 피의 양이 혀를 내두를 정도로 엄청 났다.

  그것은 점차 유리문 저편을 가득 채우는 가 싶더니, 이내 틈 아래까지 차올랐다.

  “뭐야, 이거?”

  희천은 감당할 자신이 없다는 듯이 석환의 등 뒤에 숨었다. 그의 모습에 석환은 헛웃음이 나온다.

  눈 깜짝 할 사이에 피는 작은 틈을 넘어 아이들의 목까지 차오른다. 그것은 마치 하늘에서 땅으로 떨어져 내리는 폭우 같았다.

  “어어어어?”

  희천이 피 속에서 미친 듯이 발을 채며 당황했다. 보통 사람이 흘리는 피의 양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수준이었다.

  이 상황을 붉은 남자는 그저 바라만 보고 있었다. 역시 석환은 자신의 판단이 옳았다고 생각했다. 그는 애초에 우릴 살려 줄 생각이 없던 것이다.

  “이게 뭐야? 저 사람을 죽이면 살려 준다며!”

  첨벙! 첨벙! 희천이 피 속에서 허우적대며 부르짖었다. 하지만 그건 그의 체력만 빼는 일이었다.

  “그렇지 약속은 지켜야지. 너와 난 다르니까.”

  붉은 남자가 피 인지, 피부인지 구분 할 수 없는 피 속에서 두 눈만 껌뻑이며 말했다. 희천의 얼굴이 밝아지고, 석환의 얼굴은 어두워진다.

  “나는…?”

  “넌 안 돼. 이것을 죽인 건, 저 인간말종이니까.”

  “히히히… 병신 새끼. 목숨이 걸려 있는데, 고민을 왜해!”

  희천은 뭐가 그리 즐거운지 조소를 삼켰다. 석환은 지건의 목에서 병조각을 뺀 것처럼, 자신이 실수했음을 알았다. 하지만 돌이킬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말이야.” 붉은 사람이 유리문 틈 사이로 두 손을 집어넣는다. 오른손은 아래를 잡고 왼손을 위쪽을 잡았다. 그 모습은 열리지 않는 것을 억지로 벌리려는 것 같았다.

  마치 멧돼지 잡는 덫처럼.

  석환은 무슨 일이 벌어질지 예의 주시하는 반면에 희천은 성공했다는 듯이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희천아.”

  붉은 남자가 희천을 부른다.

  “어? 어서 날 살려줘. 이 지옥 같은 곳에서 빼줘!”

  붉은 남자는 희천의 말에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넌 나에게 모욕감을 줬어!”

  붉은 남자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유리문이 두 손에 의해 이빨처럼 벌려진다. 그리고 목까지 차올랐던 피가 붉은 혀처럼 희천을 감싸 안았다.

  “안녕!”

  희천은 뭐가 그리 즐거운지 만면에 미소를 지었고, 그 모습 그대로 혀에 이끌려 활짝 열린 유리문 앞까지 갔다. 그런데 방금 전까지 있었던 붉은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그 점이 석환을 매우 불안하게 만들었다.

  희천의 모습이 흡사 길로틴 안으로 끌려 들어가는 죄인 같았기 때문이다. 그의 환한 미소만 빼면.

  “희천아!”

  석환이 발작처럼 희천의 이름을 부르자, 그는 혀를 쑥 빼고, 한 쪽 눈을 한 손으로 크게 벌린다.

  “바보야, 여기서 죽어라!”

  희천의 조롱과 함께 유리문이 한 치의 망설임 없이 그의 머리를 물어뜯었다.

  와그작! 불투명한 유리문은 문이 아니었다. 아니, 문이긴 했다. 붉은 사람의 아가리 안과 밖의 경계였다.

  삽시간에 희천의 머리는 사라지고, 머리가 있던 자리에서는 피가 용솟음 쳤다. 벌거벗은 남자처럼 그것은 격류처럼 석환을 휩쓸어 버린다.

  숨을 쉴 수가 없다. 폐에 피가 들어차며 정신이 희미해진다. 이대로 죽나? 심연으로, 피의 심연으로 곤두박질친다.

  “으아아아아!”

  괴성을 지르며 석환이 몸을 일으켰다.

  따스한 아침햇살이 그를 맞이한다. 폐가였다. 더러운 바닥에서 잠이 깬 것이다.

  “이게 어떻게?”

  석환은 자신이 몸에 이상이 없다는 걸 확인한 순간 문을 향해 달렸다. 옆에 희천이 있거나 말거나 상관없었다.

  철컥! 열렸다.

  “살았다!”

  철컥! 하지만 곧바로 등 뒤에서도 똑같은 소리가 들려왔다. 석환은 문 밖으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못했다. 왜냐하면 목덜미를 잡아채는 붉은 손이 그것을 용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안 돼!”

  문은 닫히고, 그곳에서 나오는 이 없었다.

 

 

 

 

 

 
작가의 말
 

 1장 끝. 2장의 새로운 시작으로 찾아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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