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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월계수의 기억
작가 : 나호
작품등록일 : 2019.9.23

생일을 앞두고 자신의 모든 것을 잃어버린 한 소년의 이야기.
정통 판타지.

 
3화 잃어버리다(3)
작성일 : 19-09-28 19:08     조회 : 201     추천 : 0     분량 : 48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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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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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갑작스레 나타난 자는 아버지인 시자크를 보러왔다고 했다. 에녹스가 무슨 일이냐고 물어봤지만, 그는 그 질문에 답하지 않았고 아버지와 오랜 인연이 있다고만 말했다. 에르젠은 굳은 얼굴로 아무 말 하지 않고 그를 시자크에게로 데려갔다. 돌아올 때는 에르젠 혼자였다. 아마도 그 자는 지금쯤 아버지와 대화하고 있으리라. 에녹스는 주방으로 돌아가 음식들을 식당으로 옮기려했지만 벨킨과 줄리가 이미 주방에서 음식들을 옮기고 있었다. 엘도 그들을 도와주고 있었다.

 

 딱히 할 일도 없는 그는 저택을 둘러보았다. 역시 눈에 띄는 것은 2층 중앙의 어머니의 초상화였다. 에녹스의 어머니는 그가 태어나고 과다출혈로 돌아가셨다고 했다. 그래서 한 번도 어머니의 얼굴을 실제로 본 적이 없었다. 단지 저택 중앙에 커다랗게 그려져있는 어머니의 초상화만을 볼 수 있을 뿐이었다. 에녹스와 같은 연노랑의 머리에 작고 초연한 기색이 엿보이는 얼굴과 또렷한 이목구비. 그리고 에메랄드같은 짙고 맑은 눈동자. 시자크는 그녀와 꼭 닮은 에녹스를 보면 그녀의 생각이 난다고 한다. 생각해보면 그 자신은 아버지와 닮은 구석이 별로 없었다. 아버지의 넓은 사각턱에 반해 에녹스는 좀 더 갸름한 턱을 가졌고 머리도 아버지의 머리가 더 어둡고 짙은 색이었다. 하지만 에녹스는 그런 것에 별로 신경쓰지 않았다. 남빛 머리의 지티스가 와서 식사를 먼저 하는 게 어떻겠느냐고 권했지만 지금은 그냥 어머니의 초상화를 바라보고 싶었다. 검은 망토를 두른 의문의 남자와 함께 방에 있는 자신의 아버지, 시자크를 기다리면서 말이다.

 

 방안은 조용했다. 조용하다 못해 위압적인 분위기까지 흘렀다. 방은 여러 명이 들어올 수 있을 정도로 컸다. 천장에는 가지 끝마다 하얀 양초가 붙어있는 샹들리에가 있었다. 주로 밤에 켰기 때문에 지금은 불이 붙어있지 않은 상태였다. 조금 어두웠다.

 

 방 중앙의 상에는 노란빛을 띠고 있는 진저에일이 두 잔 놓여있었다. 시자크와 검은 망토는 양쪽에 마주앉았다.

 

 "들어라."

 

 시자크가 진저에일을 입술에 가져가며 말했다. 검은 망토는 고개를 살짝 들며 시자크와 마찬가지로 진저에일을 한 모금 마셨다. 한 점 흐트러짐없는 행동이었다.

 

 알코올이 첨가되어있지 않은 진저에일에서는 레몬향이 났다. 취할 정도로 진하진 않았지만 보통의 것보다는 조금 진한 향이었다. 시자크가 진저에일이 든 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그래, 그동안 어떻게 된 거였나, 켈른. 어디서 뭘 하고 지내면 왕실 기사단에서 실종신고까지 하냔 말이야."

 

 검은 망토를 두른 자의 얼굴의 낯빛은 어둡기도 했지만 좀 창백하기도 했다. 옅은 푸른빛 피부를 가진 그자는 핏기가 없다고 해야할까, 얼굴에서 감정이 드러나지 않았다. 어두운 회색빛을 가진 머리와 노란 보석같은 두 눈이 서로 대조를 이루었다. 검은 망토, 켈른이 답했다.

 

 "오랜만에 만난 후배에게 인사도 없이 바로 본론에 들어가는 겁니까? 성격이란 것은 몇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것이로군요."

 

 시자크는 다시 진저에일을 한 모금 마셨다.

 

 "지금 그런 것이 중요한 게 아니잖나. 자네가 사라진 요 십몇년간 기사단에서 자네 걱정을 얼마나 했는지 내가 보여줘야 알겠는가? 아니, 자넨 벌써 기사단에 돌아가봤을테니 말 하지 않아도 알겠군."

 "예. 돌아갔었지요. 그런데 당신께서는 최근 기사단에 대해서 잘 모르고 있나보군요. 걱정은 무슨, 그런 건 다 옛날 일이란 걸 모르십니까? 제가 사라진 그 십몇년동안, 정확히는 올해로 십구 년이로군요. 그들은 바뀌었습니다. 왕이 바뀐 탓도 있겠지요. 그들 중 절 아는 사람은 한 명도 남아있지 않았더군요."

 

 시자크의 얼굴에 놀란 기색이 퍼졌다.

 

 "뭐라고? 단 한 명도?"

 "그렇습니다."

 

 턱을 짚고 생각했다. 진저에일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모두 잊어버린 것인가... 그래도 난 진심으로 환영하네. 지금까지 힘들지 않았나? 안색도 좋지 않군."

 

 켈른이 진저에일이 든 잔을 장난스럽게 오른손으로 돌렸다.

 

 "환영이요? 당신의 환영 따위는 받고 싶지 않습니다. 따지고 보면 제가 이렇게 된 것도 다 당신때문이 아닙니까? 또한 저는 이미 왕실의 하이렐리안 기사단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오히려 지금 볼일이 있는 곳은 이쪽이죠."

 

 시자크의 눈빛이 크게 흔들렸지만 이내 평정심을 갖고 입을 열었다.

 

 "후...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기에 이렇게 변한 것이냐. 원망과 증오에 사로잡혔군. 그 사건에 대한 일은 뼈저리게 후회하고 있고, 그 일로 피해를 본 너에게 죄를 지은 것은 인정한다. 기사단에서 사라진 후 네게 지금까지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한번 말해보거라."

 

 켈른이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다.

 

 "싫습니다."

 "뭐?"

 "싫다 하였습니다, 시자크. 제가 그 말에 답할 의무가 느껴지지 않았다는 겁니다. 저는 당신을 용서하지 않았으니. 반대로 제가 질문하죠. 대체 무슨 짓을 하셨길래 당신네 가문이 이 꼴이 됐죠? 원래 당신 가문은 이것보다 훨씬 크고 하인도 우글거리지 않았습니까. 왜 그런 곳을 버려두고 이런 외진 곳으로 온 건지 이해가 안되는군요. 이건 뭐 이름없는 상인들도 이것보다는 더 많은 것을 누리고 다니겠습니다. 물론 집사는 제외하고 말입니다. 그런 일등 집사는 어디서 쉽게 구할 수 없을 테니까요."

 

 시자크는 갑작스레 화가 치밀어오르는 것을 간신히 누르고 부릅 눈을 떴다.

 

 "원인은 같다. 이 역시 그 사건에 대한 여파지."

 "그렇담 그 일로 우리 둘은 하나씩 피해를 입은 셈이로군요. 저는 오른팔을, 당신은 본래의 영지를. 그럼 당신은 지금 몰락 귀족이겠군요."

 "나만 그런 것이다. 종가는 그렇지 않지."

 "아아. 그렇군, 그래. 그러고보니 애초에 그 영지는 당신의 것이 아니라 당신네 아버지 것이었지. 당신은 그 사건을 일으키고 당신이 속하던 종가에서 쫓겨났군요. 원래라면 지금쯤 그곳의 영지는 당신 것이 되고 진짜 가주도 되었을텐데. 이렇게 따로 분가 형태로 남은 것도 감사하게 생각해야겠군요. 이런, 불쌍해라. 바깥에 있는 당신 아들은 그런 사실을 알고는 있습니까?"

 

 시자크는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켈른은 그의 모습을 보고 쿡쿡 거리며 웃었다. 그는 진저에일을 두 모금 마시면서 입가의 미소를 점차 지웠다. 시자크는 그가 에일을 마시는 것을 기다리다가 분노를 참으며 말을 이었다.

 

 "이곳에 온 목적이나 말해라. 그렇게 불길한 기운을 계속 감추면 내가 못 알아볼 줄 알았나."

 

 켈른은 뜸을 드렸다. 좀 놀란 기색이 있었다. 시자크가 자신의 불길한 기운을 느낄 수 있다는 것에 당황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곧 피식, 하고 한번 웃었다. 그럼 지금까지는 그냥 떠본 거였나. 그래, 이 자는 내 옛 선배인 일검(一劍) 시자크 프라이넨스였지. 지금은 늙고 쇄한. 또한 어리석은.

 

 켈른은 이내 말했다.

 

 "뭐, 그러죠 그럼. 목적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시자크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그를 쏘아보았다.

 

 "당신의 아들, 그 에녹스라는 놈을 내놓으시죠."

 

 시자크의 눈빛이 흔들렸다. 얼굴이 화끈거리기 시작하고 이마에서는 어느샌가 식은땀이 한 방울 흘러내렸다. 그는 혼란스러웠다. 어째서 켈른이 에녹스를 내놓으라는 것이지? 전부터 그가 목적이었다고 말하는듯한 말투는 또 뭐고?

 

 시자크는 에르젠이나 에녹스의 검술 스승말고는 에녹스에 대해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에르젠이나 검술 스승은 그런 얘길 떠벌리고 다닐 사람들이 아니란 것은 시자크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켈른은 오늘 에녹스를 처음 보았다. 물론 시자크의 아들이라고 볼 수도 있었을 것이다. 아니면 그를 직접 시자크에게 데려온 에녹스가 스스로 말했을 수도 있었다. 그런데 처음부터 그가 목적이었다고? 옛 기사단 후배인 켈른이 영지에서 자주 나가본 일조차 없는 에녹스에 대해 알고 있다니?

 

 "...그에 대해선 어떻게 알고 있던 것이냐. 그 아이를 어떻게 할 셈이야!"

 

 시자크는 이윽고 상을 주먹으로 내리치며 소리쳤다.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했다. 그의 분노가 눈빛 너머에서 느껴지고 있었다. 켈른은 그의 반응을 보고 미소 지을 뻔 했지만 득이 될 것이 없는 것 같아서 꾹 눌러 참았다. 그것은 힘든 일이었다.

 

 "이런, 흥분하셨군요. 근데 이걸 어째. 전 이번 질문에도 답을 할 수가 없겠군요. 볼일이 끝났으니 이만 돌아가도록 하겠습니다. 일단은요. 진저에일은 잘 마셨습니다."

 

 켈른은 자리에서 일어나 시자크를 지나치고 응접실의 문으로 향했다. 얼핏 본 시자크의 눈동자에 힘이 없어 다시 한 번 미소를 머금고 중얼거렸다.

 

 "나약한 인간같으니."

 

 시자크는 일어날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에녹스가 위험하다. 그가 위험하다. 안 돼, 안 돼.

 

 켈른이 문을 열고 나오자 연노랑 머리의 녹색 눈을 한 청년이 커다란 초상화를 보고 있는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그도 눈동자를 굴려 초상화를 들여다봤다. 초연하지만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켈른은 초상화앞에서 그것을 감상하고 있는 청년 옆에 섰다. 그 또한 여인의 모습을 어느새 감상하고 있었다. 에녹스는 옆에 선 켈른의 기척을 느끼지 못했다. 팔만 뻗어도 닿을 거리인데도 말이다.

 

 "꼭 닮았군."

 

 에녹스는 갑자기 들린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인기척없이 다가온 켈른을 보고 놀란 기색은 없었지만 묘하는 느낌은 들었다. 발소리 하나 들리지 않은 그가 곁에 올 때까지 알아채지 못했다. 본래 그는 민감했다. 초상화에 너무 집중한 탓이었을까?

 

 "예?"

 

 켈른은 말없이 어머니의 초상화를 보고 있었다. 생각에 잠긴 듯한 얼굴이었다. 시간이 지나도 답을 얻지 못해 에녹스는 화제를 바꾸기로 했다.

 

 "아버지와의 대화는 끝나신 겁니까?"

 

 켈른은 그의 말을 듣고 있지 않았다. 그가 고개를 돌렸다. 시선은 머리에서부터 허리에까지 훓다가 멈췄다. 그는 허리춤에 있는 에녹스의 검인 세화를 보고 있었다.

 

 "좋은 검이군."

 

 에녹스는 손으로 세화를 어루만졌다.

 

 "감사합니다."

 

 에녹스가 세화를 잡으며 말했다. 켈른은 그의 말을 듣지도 않고 몸을 돌려 저택의 문으로 갔다. 의미심장한 말을 남기고서.

 

 "밤에 조심해라, 꼬마야."

 

 에녹스는 그 말을 듣고 눈가를 약간 찌푸렸다.

 

 이윽고 그는 저택의 문을 나섰다. 영지밖까지 안내를 해야겠다는 생각에 지티스를 불러 명령을 내렸지만 지티스는 그가 사라졌다고만 답할 뿐이었다.

 

 

 -계속

 
작가의 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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