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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블러디데이
작가 : 유월
작품등록일 : 2019.9.9

한이연, 세상에 가족이 없는 늘 혼자였던 그녀, 약혼자와 함께 가족을 꾸리고 행복해질 날만을 기다리는데.... 갑작스러운 약혼자의 죽음으로 모든 것은 무너져 내리고 만다. 그녀의 약혼자의 죽음과 연관 된 새로운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하고, 은오라는 정체불명의 아름답지만 속을 전혀 알 수 없는 남자가 나타난다.

 
005. 서로의 존재
작성일 : 19-09-27 01:32     조회 : 241     추천 : 0     분량 : 46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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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05.

 

  눈을 꽉 감은 채 죽을 순간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갑자기 시간이 멈추기라도 한 듯 주변이 잠잠해졌다. 다시 눈을 뜨자, 은오가 내 어깨 위로 고개를 힘없이 떨궜다.

 

 상황 종료.

 

 나는 죽지 않았다.

 

  배를 누르는 무게에 잠에서 깼다. 피 칠갑을 한 은오가 한쪽 팔은 내 목에, 다리는 내 배에 올린 채 자고 있었다. 나는 피투성이인 그의 품에서 벗어났다. 잘 알지도 못하는 남자와 한침대에서 잤다는 사실에 놀라지도 않았다. 어젯밤의 아찔한 고비를 넘기고 보니 세상이 다 아름답게 느껴질 지경이었으니까. 물론 잠든 그의 얼굴도 아름다웠다. 핏물에 젖어 있어도 창백한 얼굴은 어딘가 묘하게 빠져들 것만 같았다. 그의 긴 속눈썹은 아주 가끔씩, 그가 숨을 들이쉬고 내쉴 때 파르르 떨렸다. 그의 입술은 창백한 피부와 완벽히 대조되는 붉은 빛이었다. 나는 몇초간 넋을 놓은 채 그를 바라보다가 겨우겨우 정신을 차리고 방을 나섰다.

 

 화장실로 들어가 거울을 보는 순간 움찔했다. 은오의 피가 나 역시 피범벅으로 만들어 놓은 것이었다. 피의 축제란 말이 어디서 나왔는지 새삼 알 수 있었다. 뜨거운 물로 깨끗이 씻은 후, 세숫대야에 물을 한가득 담아 은오의 방으로 다시 들어갔다. 은오는 여전히 정신없이 자고 있었다. 나는 그의 얼굴을 수건으로 닦아냈다. 이곳저곳에 알 수 없는 흉터가 있었다. 얼굴을 다 닦아내고 그의 손을 잡았을 때, 그가 눈을 떴다.

 

  "일어났어요?"

 

 나는 어설픈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했다. 그는 안정된 붉은 빛의 눈동자를 느리게 깜빡였다.

 

  "좀 더 자요, 피곤할 텐데...."

 

 나는 잡고 있던 그의 손을 놓으며 말했다. 그러자 은오가 팔을 뻗어 차가운 손을 내 볼에 갖다 댔다. 그의 손이 닿은 곳이 쓰렸다. 아마도 어제 그와 부딪치며 긁힌 상처가 생긴 것 같았다.

 

  "별거 아니에요."

 

 나는 어색하게 말했다.

 

  "그만 가요."

 

 은오가 마른 입술을 뗐다.

 

  "네?"

 

  "이 집에서 나가라고요."

 

 은오는 내 볼에서 손을 거두고 천천히 뒤돌아 누웠다.

 

 

  가방을 끌고 방을 나서다가 마지막으로 한번 뒤를 돌아봤다. 이곳에 처음 왔을 때처럼 아무것도 없는 텅 빈 방으로 돌아왔다. 아래층으로 내려가자 거실 소파에 가만히 앉아있던 은오가 나를 쳐다봤다. 그는 여전히 상처투성이였지만 많이 좋아진 것 같았다. 나는 양손으로 가방 손잡이를 쥔 채 그의 앞에 섰다.

 

  "저 갈게요."

 

  "네."

 

 은오는 짧게 답하고 내게서 시선을 돌렸다. 허탈한 기분이 들었다. 그는 모든 것이 성가시다는 듯 행동하고 있었다. 나는 조금씩 차오르는 서운함을 감추며 현관 쪽으로 걸어갔다. 어차피 여기는 잠시만 있기로 했던 거였는데도. 몇 번이나 그가 힘들 때 곁에 있어줬는데, 고맙다는 말은 못 할지언정 꼴도 보기 싫다는 식으로 나가라니.

 

 혹시나 하는 마음에 거실 쪽을 돌아봤지만 은오의 뒷모습엔 움직임이 없었다. 부츠를 신고 터벅터벅 밖으로 나왔다. 며칠 새에 익숙해진 드넓고 한적한 길을 걷고 또 걸었다. 버스 정류장에 도착해서야 정말로 억울한 기분이 들었다. 제대로 작별인사도 하지 않고 냉정하게 가라고 했던 은오가 원망스러웠다.

 

  맥없이 서 있는 내 앞에 버스가 멈춰섰다. 나는 두 짐을 끌고 뒤뚱뒤뚱 버스에 올라탔다. 맨 뒷좌석에 앉아 무심코 돌아본 뒷 창에 이곳을 향해 미친 듯이 달려오는 은오가 보였다.

 

  "아저씨! 잠깐만요! 저 내릴게요!"

 

 나는 버스 아저씨의 욕을 한 바가지 먹으며 두 짐을 끌고 내렸다. 내 앞으로 다가온 은오가 숨을 몰아쉬었다.

 

  "왜요? 할 말 남았어요?"

 

 나는 버스에서 도로 내린 자존심 없는 사람처럼 보이는 게 쪽팔려 괜히 까칠하게 물었다. 상처투성이의 은오가 나를 쳐다보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갈 곳은 있어요?"

 

  "있을 리가 있겠어요?"

 

 내 톡 쏘는 대답에 그가 한숨 비슷한 것을 내뱉으며 말했다.

 

  "나와 있으면 어제와 같은 일이 또 일어날 수도 있어요. 다음엔 더 위험할 수 있어요."

 

  "네."

 

  "죽을 수도 있어요."

 

 은오의 눈은 힘없이 흔들렸다. 그의 목소리도.

 

  "그때는 도망쳐요."

 

 나는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도망치는 거 잘하니까."

 

 내가 얼굴을 팍 찡그리자 은오가 소리 없이 웃었다. 은오는 내게서 가방을 집어 들고 앞서 걸었다. 나는 열심히 그의 뒤를 따라 걸었다. 참 이상했다. 단지 짐 한 개를 던 것 뿐인데 몸이 날아갈 듯 가벼워졌다. 아까는 아무리 봐도 꽉 막혔던 안개 사이로 옅은 햇빛이 새어 나왔다.

 

 *

 

  "맛 좀 볼래요?"

 

 스파게티 소스를 한 스푼 들며 묻자 식탁에 앉아있던 은오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결국, 소스는 내 입으로 들어왔다.

 

  "진짜 맛있는데, 정말로 대박인데."

 

 은오는 내 과장 된 감탄에 의심 섞인 눈길을 보냈다. 그는 내가 요리를 시작하는 순간부터 한순간도 놓치지 않고 지켜봤다. 마치 강아지 한 마리가 주인을 졸졸 따라다니듯이. 내 요리를 먹지 않는 대신에 내가 요리하는 모습을 관찰하는 것 같아서 괜히 긴장됐다.

 

  "이건 마저 썰어서 고기랑 볶을 거예요."

 

 본의 아니게 요리 프로를 생중계하는 기분이 들었다. 그러다가 문득 궁금해졌다.

 

  "지금 만약에 내가 손을 베기라도 하면 어떻게 되는 거죠?"

 

  "그 정도는 참을 수 있어요. 인간들과 살아가면서 익숙해졌어요."

 

 은오가 말했다.

 

  "내 피가 너무 더러워서 먹기 싫은 건 아니고요?"

 

 농담처럼 말했지만 은오는 웃지 않았다.

 

  "내가 죽고 싶어지면 은오씨가 날 죽여주면 되겠네요."

 

 나는 한술 더 떠서 말했다. 이번에는 나 역시 웃음기 없는 말투였다. 은오는 나를 가만히 응시하다 부엌을 나가버렸다. 화가 난 것이 틀림없었다. 은오를 알게 된지 얼마 되지는 않았지만, 자조적인 농담을 좋아하는 것 같지 않다.

 

 휑한 부엌 식탁에 홀로 앉아 천천히 스파게티를 음미했다. 이 집은 이게 문제였다. 단 한 순간이라도 혼자 있게 되면 미칠 듯이 허전하다.

 

  은오는 거실 발코니에 있는 하얀 의자에 앉아있었다. 그의 앞 식탁엔 붉은 액체가 조금 남은 와인 잔이 놓여있었다. 그는 식사 중인 모양이었다.

 

  "아까는...미안해요."

 

 내가 어정쩡한 자세로 서서 말하자 은오가 텅 빈 것 같은 눈을 들었다.

 

  "내가 한 말 불쾌했죠?"

 

  "...“

 

  ”내가 그런 죽음 얘기를 막 해서 실망했어요?“

 

 내 말에 은오가 눈을 느리게 깜빡였다.

 

  ”그 말은 이연씨가 한 때 사랑했던 분에게 실례가 되는 말이잖아요.“

 

 그가 천천히 말했다. 아차 싶었다. 내가 무슨 말을 내뱉었나 싶었다. 그토록 사랑했던 약혼자가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서 그 상실을 경험한 당사자인 내가 그런 농담을 한 거구나.

 

  "은오씨 도와볼게요. 준현씨를 죽인 살인자 찾는 거요.“

 

 내가 잠시 뒤 죄책감을 덜어보고자 꺼낸 얘기에, 은오는 조금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은오씨가 날 구하려다 저주에 걸린 거나 다름없는데...도울게요."

 

  "정말 할 수 있겠어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그의 옆 빈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나는 한참동안 은오에게 준현의 주변인들, 평소에 그가 자주 가는 곳들, 가족관계, 마지막 모습 등 내가 아는 모든 것들을 이야기하려고 노력했다. 내 얘기가 은오가 찾고 있는 살인마와 어떻게 관련이 있는지 알 수 없었지만.

 

 *

 

  밤새 작업한 번역 문서를 전송하고 침대에 누웠다. 이제 점점 이 생활에 적응하고 있었다. 모든 현실 세계에서 동떨어진 것 같은 흡혈귀의 집에 사는 것. 은오는 전보다 자주 집을 비워서 커다란 집을 내가 혼자 차지할 때가 많았다. 그럴 때면 나는 은오의 서재에 있는 오래 된 책들을 읽으며 시간을 보냈다. 은오는 저녁무렵 집에 도착했다.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를 듣자마자 나는 서재에서 뛰어나와 막 집에 들어서는 은오에게로 달려갔다.

 

  "사 왔어요? 순대 떡볶이?"

 

  "이런 건 직접 사러 가지 그래요."

 

 은오가 봉투를 내게 건네며 약간 피곤하다는 듯 말했다.

 

  "난 이 주변을 잘 모르잖아요."

 

 나는 신나게 봉투를 열었다. 푸짐하게 담긴 떡볶이와 순대가 내 코와 혀를 자극했다. 나는 식탁으로 가져간 그것들을 열심히 먹어대기 시작했다.

 

  "그렇게 맛있어요?"

 

 내 앞에 앉은 은오가 여전히 피곤한 표정을 한 채 물었다. 나는 입안 가득 순대를 넣은 채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긍데 응오이"

 

  "다 삼키고 말해요."

 

 나는 얼른 음식을 삼키며 웃었다.

 

  "미안해요. 근데 은오씨 오늘따라 더 피곤해 보여요."

 

  "그럴만한 일이 있었어요."

 

 은오가 한 손으로 눈을 비비적거리며 말했다.

 

  "스트레스는 먹는 거로 풀어야 하는데. 가서 피 좀 먹어요."

 

 내 말에 그는 힘없이 웃었다. 나는 다시 순대를 포크로 찔렀다. 바로 그때, 은오가 무언가에 홀린 듯 내 손을 잡아챘다.

 

  "왜...왜요?"

 

 당황한 내가 묻자 은오는 뒤늦게 정신을 차렸는지 황급히 내 손을 놔주고 일어나 방으로 들어갔다. 은오의 방 문이 쿵 소리를 내며 닫혔다. 나는 그가 잡았던 내 손을 살펴봤다. 좀 전에 책 페이지를 넘기다 생긴 듯한 작은 상처에 피가 고여있었다. 너무나 미세한 크기여서 미처 생긴지도 몰랐다.

 

  "괜찮아요?"

 

 방문에 노크를 해도 응답이 들려오지 않았다. 나는 조심스럽게 은오의 방 손잡이를 돌렸다. 잠겨 있었다.

 

  "아픈 거 아니에요? 문 좀 열어봐요."

 

 ...

 

  "이렇게 문을 잠그면 어떡해요. 은오씨 아프면 내가 돌봐야 하잖아요…."

 

 나는 문 앞에 주저앉았다. 반대편에는 마치 아무도 없는 것처럼 고요했다.

 

  "은오씨 나는 괜찮아요."

 

 나는 손의 작은 상처를 바라봤다.

 

 문은 끝끝내 열리지 않았다. 나는 천천히 몸을 일으켜 내 방으로 돌아갔다. 창밖에선 비가 퍼붓는 소리가 들렸다. 방이 지나치게 넓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크고 텅 빈 집에서 살았던 은오는 어떤 기분이었을지 궁금해졌다.

 

 지금의 나처럼 무척이나 쓸쓸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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