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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너무 밝은 곳의 그대
작가 : 드리민
작품등록일 : 2019.5.17
너무 밝은 곳의 그대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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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전의 인연을 끝으로, 사제가 된 남자.
5년 전의 사고를 끝으로, 흡혈귀가 된 남자.

너무 밝은 곳의 그대를 향한 이야기.

 
#28 언약과 고요 (3)
작성일 : 19-09-26 19:24     조회 : 305     추천 : 0     분량 : 45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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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가을비가 내리려는 것인지 하늘에 짙은 먹구름이 가득 깔렸다. 사제들은 늦가을부터 쓸 두꺼운 이불을 바지랑대에서 거둬 성소 안으로 옮겼다. 사제들 사이로 조지의 모습이 보였다. 그는 속죄의 기간이 끝나고도 계속 매일 성소를 찾아와 그렉의 옆에 있었다. 일손이 하나 늘어난 것은 좋은 일이었지만, 그를 바라보는 눈빛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아무리 그래도 성과 속의 경계는 분명하게 있는데. 체칠리아가 지나가는 말로 에어드부르가에게 그를 좀 어떻게 해보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그렇다고 해도 나 역시 숲에서 돼지나 치고 있지 않으냐.”

  “그것은 그렇지만, 조지는 좀 다르잖아요.”

  “네가 무엇을 걱정하고 있는지는 알고 있다.”

 

  에어드부르가는 그렇게 말할 뿐이었다. 체칠리아는 계속해서 금기를 생각했다. 그리고 그 금기가 존재하는 이유를. 불합리하다고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금기는 절대적인 법칙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체칠리아는 조지에게 언젠가 단단히 이야기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비가 오기 전에 빨래를 다 걷어서 다행이다.”

  “더 도와줄 일은 없어?”

  “지금은 괜찮을 거 같아. 아, 빗방울 떨어진다.”

  “그러면 나는 가볼게. 필요한 일이 있으면 불러줘.”

 

  조지는 자신의 형상을 반투명하게 흩뜨리더니 찬란한 빛줄기가 되어 숲으로 사라졌다. 그렉은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성소의 입구로 발을 돌렸다. 바람이 조금씩 거세지는 것이 큰비가 내릴 것이다.

 

  “그렉.”

 

  성소로 들어가려는 그의 발목을 붙잡은 목소리에 그렉의 얼굴이 굳었다. 그는 뒤를 돌아보았다. 나이가 좀 있는 부부가 서 있었다. 그렉은 힘겹게 두 사람을 불렀다. 여기에 왜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아버지, 어머니…?”

  “그렉, 안 들어오고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던스턴이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와 그렉을 불렀다.

 

  “지금 갑니다. 던스턴 사제님.”

  “그렉, 돌아오렴.”

 

  그의 부친, 레온이 낮은 음색으로 말했다. 화를 억누르는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그렉은 난처한 표정으로 던스턴을 바라보았다. 그는 성소의 문을 활짝 열고 찾아온 손님들에게 말했다.

 

  “가을비가 거셉니다. 안으로 들어오시지요.”

 

  누가 찾아왔다고 하셨나요. 던스턴의 보고를 들은 캐서린이 안경 너머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그렉의 양친이 오셨습니다. 던스턴은 담담하게 다시 말했다. 캐서린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들은 그렉이 홀로 이곳에 들어온 이래 단 한 번도 성소에 오지 않았다. 돌아올 것을 권하는 편지 몇 통이 전부였지 않은가. 그리고 그들은 결국 아르티제를 떠났다.

 

  “제가 직접 만나 뵈러 가야겠군요.”

 

  캐서린이 지하에서 올라오자, 공기는 삭막하게 식어 있었다. 은은한 촛불도 지금은 건조함만을 더할 뿐이었다. 그렉과 그의 양친은 의자 하나의 거리를 두고 멀찍이 떨어져 앉았다.

 

  “오랜만이에요. 레온, 그리고 이리나.”

  “오랜만입니다. 캐서린 사제님.”

 

  두 사람은 자리에서 일어나 캐서린에게 예를 표했다. 기사 가문의 예법이었다. 행색을 보아하니 아르티제를 떠나 어느 영주의 밑에 들어갔다는 말은 사실인 모양이다. 그렇다면 그 뒤에 이어진 소식도 사실일 터.

 

  “이곳은 어언 일로 오셨나요?”

  “캐서린 사제님, 괜찮다면 그렉을 저희가 데려가도 될까요?”

  “세속의 가족과 다시 만나 시간을 보내는 것 정도는 괜찮습니다.”

  “아니요.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레온은 강경하게 고개를 젓고 말을 이었다.

 

  “그렉의 환속을 말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렉의 얼굴에 그림자가 짙게 깔렸다. 캐서린은 침착하게 레온에게 말했다.

 

  “그렉은 이미 정식으로 서품을 받은 사제입니다. 그의 환속은 지금처럼 이렇게 오셔서 정할 수 있는 게 아니죠.”

  “그렇다면 얼마나 기다리면 되겠습니까?”

  “일단 그렉의 의사가 중요하겠죠.”

  “그렉의 의사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이리나가 반문했다.

 

  “그렉은 기사가 될 겁니다.”

  “양자를 들여 대를 이어나갔다는 소식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만.”

  “그랬지요. 그렇지만 역시 그렉도 기사가 되는 쪽이 더 좋다고 생각합니다.”

  “싫어요.”

 

  그렉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레온은 뒤를 돌아 그렉을 깔아 내리듯 바라보았다. 그렉의 두 손에 힘이 잔뜩 들어갔다.

 

  “왜 싫지? 기사가 되는 것은 너도 원했던 일이었잖니.”

  “그건 그랬지만.”

  “애당초 나는 네가 왜 갑자기 사제가 되기로 한 것인지 모르겠구나. 변덕은 이만하면 되었다. 환속 기간 정도는 기다려줄 수 있다. 오늘부터 당장 절차를….”

  “아니요. 저는 돌아가지 않을 거예요.”

  “그렉!”

 

  레온은 소리를 높였다.

 

  “나는 이해할 수가 없다. 그 사고는 네 잘못이 아니야. 그건 그들의 운명이었다고! 그들의 운명에 연민을 품을 수는 있어도, 그들의 운명을 따라갈 생각을 하다니!”

  “하지만 저는 그 아이를 사랑하고 있었다고요!”

  “사랑? 불쌍하고 안쓰러워서 보듬어주는 것이 말이냐. 그게 바로 연민이다. 너는 그 둘을 헷갈릴 정도로 멍청한 아이였느냐? 네가 여기 있어야 할 이유가 있느냐는 말이다!”

  “네. 왜냐하면 그 아이, 조지와 약속했으니까요! 여기에서 그 아이를 위해 기도하겠다고!”

  “그 보잘것없는 약속 때문에 네 인생을 송두리째 낭비한다고?”

  “레온, 일단 좀 진정하시지요.”

  “당신도 마찬가지입니다. 캐서린 사제님.”

 

  레온의 격정은 캐서린으로 넘어갔다.

 

  “당신이 그렉을 제대로 이끌어줄 생각이었다면, 이 아이를 사제가 아니라 기사로 만들어주셨어야죠. 하다못해 교단의 성기사로라도!”

  “그렉의 의지를 꺾을 수는 없는 법이에요. 그 누구도 자식의 앞을 완전히 막을 수는 없어요.”

  “자식이 없으니까 그런 말을 하는 거겠죠, 당신은!”

 

  레온의 폭언과 함께 올라가는 그의 손목을 붙잡은 것은 던스턴과 체칠리아였다. 레온은 그들의 손아귀를 뿌리쳤다.

 

  “뭡니까.”

  “사과하세요. 캐서린 본당 사제님은 여기 있는 모든 사제의 스승이자 어버이이십니다.”

  “지금 기사가 사제에게 무례를 범하는 겁니까?”

 

  레온은 굳은 얼굴로 그렉을 바라보았다. 보다 못한 이리나가 그렉에게 다가갔다.

 

  “그렉, 아무리 그래도 사제가 될 필요는 없어. 기사가 되어서도 그 아이를 마음에 품고 기릴 수 있단다.”

  “아뇨. 이 방법밖에 없어요. 그 아이의 곁에 있으려면.”

  “그게 무슨 말이니?”

  “왜냐하면 그 아이는, 지금 영원한 빛인걸요.”

 

  그 말에 이리나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레온이 비웃듯이 말했다.

 

  “그 아이는 형리의 자식이다. 더러운 혈통에 주변의 멸시로부터 저주를 받는 아이였지. 그런 존재가 영원한 빛이 된다니.”

  “영원한 빛을 모독하지 마시지요.”

  “하지만 사제님들, 눈으로 직접 보지 않으면 믿을 수 없지 않습니까?”

 

  그렉은 잘 알고 있었다. 기사의 역할은 등 뒤에 서 있는 이를 지키기 위해 눈앞의 존재를 베는 것이다. 그렇기에 눈앞에 보이는 것이 없다면 믿을 수 없다. 레온은 형리의 아들이라는 것만 알고 조지를 한 번도 직접 본 적이 없었다. 그러니까 그는 조지가 어떤 아이였는지 알지 못했다. 단 하나도.

 

  “조지, 내 옆으로 와줘.”

 

  그렉의 말에 숲에서 성소로 빛줄기가 떨어졌다. 그의 옆에서 갑자기 나타난 영원한 빛이 정말로 그 형리의 아들이라는 것을 알아챈 그렉의 부모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저는 여기서 영원한 빛인 조지를 섬기고 기도할 거예요. 그게 제가 지켜야 할 약속이고, 사제로서 지켜야 할 의무니까요.”

 

  그의 말이 끝나자 레온의 손이 높게 올라갔다. 레온의 손목을 붙잡은 조지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돌아가세요.”

  “이게, 어서 손 놓지 못해!”

 

  레온의 얼굴이 크게 일그러졌다. 조지의 무표정한 얼굴 사이로 그렉의 표정이 당혹으로 물들었다.

 

  “그렉 형은 살아생전에 이루지 못한 행복을 여기서 이루었어. 그가 진심으로 기사가 되고 싶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어. 그저 평범하게 살고 싶었지.”

  “네가 뭘 안다고!”

  “적어도 당신이 알고 있는 것보다는 더 잘 알아.”

 

  그러니까 여기서 그렉 형을 방해하는 것은 허락하지 않아. 조지는 촛불을 태워 빛으로 만든 검들을 치켜세웠다. 레온과 이리나는 빛의 검이 만든 우리에 갇혀버렸다.

 

  “나는 영원한 빛 조지, 생전에 지키지 못한 사랑을 지키는 자. 내가 지키고자 하는 자는 이 세상에 오직 하나뿐이니. 그 혈육이라고 해도 내 신성한 의무를 막을 수는 없으리라.”

 

  레온의 손목을 붙잡은 조지의 손아귀에 힘이 들어갔다. 레온의 고통스러운 신음이 낮게 깔렸다.

 

  “조지, 그거면 괜찮아.”

 

  그렉의 말에 조지가 손을 놓았다. 이리나는 붙잡혔던 레온의 손목을 어루만졌다. 레온과 이리나는 그렉에게 무어라 따지려다가 조지의 서슬 퍼런 눈빛을 보고 입을 열 수 없었다.

 

  “그래, 알겠다. 포기하마.”

 

  레온의 말에 조지는 빛의 우리를 거두었다. 레온은 무례를 사과하며 뒤돌아섰다. 하지만 성소를 나가기 전에 레온은 고개를 돌려 그렉에게 말했다.

 

  “하지만 그렉, 어쩌면 기사가 되어 옛 인연과의 추억을 베어버리는 게 나았을지도 모를 날이 올 수도 있다. 그래도 괜찮겠냐.”

 

  그렉은 제단과 그 앞의 조지를 바라보며 레온과 이리나에게 등을 보인 채 답했다.

 

  “저를 연민하시는 건가요?”

 

  그게 사랑이 아니라고 당신은 답했어요. 그렉의 말에 레온은 다시 발걸음을 이어나갔다. 성소의 문이 닫히자, 긴장이 풀린 그렉이 주저앉았다. 조지가 그를 일으켜 세웠다.

 

  “난 괜찮아.”

 

  그렉은 조지의 품에 얼굴을 묻고 끊어진 실에서 터져 나오려는 것을 억누르며 말했다.

 

  “나는 괜찮아.”

 

  조지는 그를 토닥이며 말했다.

 

  “괜찮아. 나는 언제 어디서든, 영원히 형의 곁에 있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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