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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더 슬레이어
작가 : 임우상
작품등록일 : 2016.9.30

이 땅위에서 가진 것이라곤

검 한 자루와 목걸이 뿐이었다.

아무것도 모른 채 태어나, 진실을 마주하다.

방랑 검사 루카, 그의 이야기.

 
02. 피의 기사.
작성일 : 16-10-03 17:28     조회 : 406     추천 : 1     분량 : 4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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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드디어 찾았군. ”

 

 싸늘한 정적을 깬 건 지금까지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던 에머릭이었다. 기사 셋의 시선은 전부 루카를 향하고 있었다. 그들은 뚫어져라 루카를 쳐다보며 무표정으로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루카는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전에 자신이 이들을 본 적이 있던가 하고 생각했다. 없었다. 분명 모두 처음 보는 이들이었다. 루카는 일단 상황을 모면해야겠다고 생각했다.

 

 “ 당신, 말할 줄 알았군요. ”

 “ 아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지. ”

 

 웨더가 루카의 의도를 꿰뚫고 있다는 듯 말을 끊었다. 브람 역시 아까의 친근한 표정은 거둔지 오래였다. 심지어 브람의 오른손은 이미 왼쪽 허리춤의 검 손잡이에 가있었다. 그의 검집은 흑색과 적색으로 뒤덮여 고풍스러운 느낌을 주었다.

 

 “ 잠시만, 당신들 지금 제 이름 때문에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겁니까? ”

 “ 그냥 이름이 아니지. ‘루카’는 그냥 이름이 아니야. ”

 

 웨더 역시 손을 검 손잡이에 가까이하며 말했다. 루카는 이해는 둘째 치고 일단 현 상황을 피할 수 없음을 깨달았다. 그는 슬며시 발끝을 장작더미에 갔다 대었다. 브람은 어느 샌가 고개를 이리 저리 돌리고 있었다. 마치 무언가를 찾는 듯했다. 그리고 아무것도 없단 걸 인지하곤 다시 루카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무표정의 얼굴은 이제 섬뜩해 보일 지경이었다.

 

 “ 어디에 있나. ”

 

 루카는 숨이 멎는 듯 했다. 이들은 분명히 엘레나의 존재까지 알고 있는 듯했다. 자신이 기사들에게 원한을 품을 일을 했던가. 없었다. 루카가 받던 의뢰는 몇몇 특이한 것들을 제외하고 대부분 괴물 사냥이나 도적 소탕 같은 것으로 오히려 기사들이 해야 할 것을 대신하지 않았던가. 그들의 면면을 다시 살펴보니 이들은 확실히 동부의 기사처럼 보이지 않았다.

 

 “ 뭐 말입니까? ”

 “ 아, 장난질을 하는군. 뭐 길게 말할 필요는 없겠지. ”

 

 - 스릉.

 

 브람이 끝장을 볼 기세로 일어서서 검을 뽑았다. 이제 상황은 극적인 순간으로 치닫고 있었다. 루카는 행동해야 할 순간이 왔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검에 관해서라면 누구보다 자신이 있던 루카였다.

 

 “ 어차피 말하게 될 걸세. ”

 “ 하아, 글쎄요. 그렇게 쉽진 않을 겁니다. ”

 

 말이 끝남과 동시에 루카는 발끝으로 장작을 차올렸다. 타오르던 장작은 세 기사들에게 날아갔다. 하지만 그들은 전혀 당황하지 않고 몸에 붙은 재와 불을 툭툭 털어내더니 다시 루카를 찾았다. 사실 루카 역시 알고 있었다. 그런 단순한 수작으로는 누구에게도 피해를 입힐 수 없다고. 그가 필요했던 건 단지 검을 뽑을 조금의 시간이었다.

 

 “ 후우. ”

 

 하지만 그들은 보통내기가 아니었다. 순식간에 브람은 루카에게 달려들어 검을 휘둘렀다. 오른쪽 상단에서 왼쪽 하단으로 쭉 베어내리는 일격이었다. 루카는 검을 하단에서 상단으로 하여 그대로 맞받아쳤다.

 

 - 캉!

 

 검과 검이 맞부딪힌 채 그들은 서로를 노려보았다. 루카는 자신이 잊은 원한이 있나 싶어 브람의 얼굴을 자세히 보았다. 아무리 자세히 보아도 기억나는 인물은 없었다.

 

 “ 네놈들은 누구냐.. ”

 

 브람의 대답을 듣기도 전에 루카는 오른쪽에서 살기를 느꼈다. 그는 방어 자세를 유지하며 검을 떼어 뒤로 세 보 가량을 한 번에 뛰었다. 그리고 자신의 바로 눈앞을 스치는 검 한 자루. 웨더였다. 루카는 들고 있던 검으로 찔러 들어온 웨더의 검을 강하게 내리 찍었다.

 

 - 캉!

 

 루카는 웨더가 못 버티고 검을 놓치기를 바랐다. 하지만 웨더는 완력으로 루카가 찍어 누른 검을 들어 올리려 하더니 순간 힘을 풀어 루카의 균형이 흐트러지게 유도했다. 나쁘지 않은 심리전이었지만 루카는 애송이가 아니었다. 루카는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 검을 미리 들어 올렸고 힘을 푸느라 몸통이 비어있는 웨더를 향해 세로로 검을 베어 내렸다. 웨더는 놀라 몸을 한 바퀴 돌려 루카의 공격 범위를 신속하게 벗어났으나 그의 팔에선 피가 뚝뚝 흘렀다. 웨더는 뜨거운 통증을 느꼈다. 검으로 베인 곳에서 불씨가 타오르고 있었다.

 

 “ 마법 부여로군. 하필이면 화염석이라. ”

 “ 쉽지 않을 거라 했잖아. ”

 

 하지만 루카에게 쉴 틈은 없었다. 웨더가 물러난 사이 브람은 때를 놓치지 않고 다시금 파고들었다. 그는 연속으로 오른쪽 상단에서 왼쪽 하단으로, 왼쪽 상단에서 오른쪽 하단으로 검을 빠르게 휘둘렀다.

 

 캉-! 캉-! 캉-!

 

 브람의 검과 루카의 검이 맞부딪히는 소리가 연이어 들렸다. 루카는 브람의 검을 뒷걸음질 치며 맞받아쳤다. 브람의 검은 너무나 빨랐다. 하지만 루카는 분명 그가 약점을 노출하리라 생각했다. 그리고 검이 맞부딪히는 4번째 순간. 브람의 검이 반동으로 인해 약간 밀려난 순간. 루카는 맞받아침과 동시에 오른손으로 검을 빠르게 쭉 빼었다가 찔렀다. 하지만 브람은 순식간에 자신의 검을 오른손으로만 부여잡고 왼쪽 손등으로 찔러 들어오는 루카의 검 옆면을 후려쳤다.

 

 - 탕!

 

 ‘ 말도 안 돼! ’

 

 브람의 반응속도는 인간의 것이라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빨랐다. 그리고 루카는 자신이 브람의 칼날 바로 아래에 놓였음을 깨달았다.

 

 “ 제길! ”

 

 루카는 반동을 이용해 뒤편으로 뛰었다. 하지만 브람의 검은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그는 오른손으로 든 검을 왼쪽 아래로 쭉 베어 내렸다.

 

 - 스겅

 

 “ 크으윽... ”

 

 루카는 가슴에 통증을 느꼈다. 빠른 판단 덕에 큰 부상을 입진 않았지만 가슴을 베인 것만은 분명했다. 루카는 왼손으로 가슴을 잡고 오른손으로 자신 앞의 그들을 바라보았다. 브람이 검을 쥐고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웨더는 아까의 타격이 꽤 유효했는지 팔을 붙잡고 있었다. 그의 손가락 사이로 불길이 치솟았다. 하지만 그 역시도 검을 놓지 않고 루카에게 다가 오고 있었다. 오직 에머릭. 에머릭만이 그저 아까 그 자리에 앉아 루카를 지긋이 응시하고 있었다. 루카는 왠지 모르게 자신에게 다가오는 두 기사보다 그의 시선에 더 큰 압박을 느꼈다.

 

 “ 제기랄, 너희들의 정체는 뭐냐. ”

 “ 맞춰봐라. ”

 

 브람은 다시 루카에게 뛰어들었다. 검을 쭉 뻗는 찌르기 동작이었다. 루카는 정석적으로 검을 세로로 세워 찔러 들어오는 브람의 검을 튕겨내려 시도했다. 하지만 브람은 루카가 검을 세우는 것을 보자마자 자신의 검을 한 번 빼고 루카의 옆구리를 찔러 들어갔다. 믿을 수 없는 반응 속도였다.

 

 “ 크아아악! ”

 

 루카는 뒤로 굴렀다. 영 보기 좋은 모습은 아니었지만 뒤로 구르지 않으면 분명 연달아 베일 것이 분명했다. 루카는 빨리 일어나 방어 자세를 잡았다. 루카는 자신의 눈앞에 있는 브람이 자신보다 나은 검사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 누구인지 짐작은 가나? ”

 

 브람은 잠시 멈춰 검을 아래로 내리곤 루카에게 물었다. 그의 얼굴에서 비웃음이 묻어 나왔다. 루카의 머릿속엔 오만가지 생각이 빗발쳤다. 확실한 건 이들은 결코 동부의 기사 따위는 아니였다.

 

 “ 일단 빌어먹을 동부 기사들은 아니겠군. 너 같은 놈들이 기사 따위를 했으면 동부는 진즉에 세계를 정복했을거다. ”

 

 루카의 말은 진심이었다. 마을을 떠난 뒤 6년 째, 그의 목숨을 이정도로 뒤흔든 검사는 그 어디에도 없었다.

 

 “ 오만하군. 너보다 강한 자가 세상에 더 이상 없으리라 생각했나? ”

 “ 응, 내 스승이 한 성깔 했거든. 하지만 한참 잘못 생각했군. 물음에 답해, 네놈들은 누구냐. ”

 “ 피의 기사. ”

 “ 뭐? ”

 

 물음에 답해준 건 에머릭이었다. 루카와 그는 멀찍이 떨어져있는데도 그의 말은 루카의 귀에 똑똑히 들렸다. 어조는 나지막하게. 루카는 이 자들의 정체를 가늠 할 수조차 없었다.

 

 “ 됐다. 이제, 그 정도면 충분해. ”

 

 브람은 검을 양손으로 잡고 아까와 같은 공격 자세를 취했다. 루카는 고민했다. 어떡하지. 어떡하지. 자신의 검술은 저 자에게 고작 몇 번 칼을 맞받아치는 게 한계임을 알고 있었다. 무언가 방도를 마련해야만 했다. 그리고 그 순간.

 

 “ 루카! 눈을 감아요! ”

 

 - 콰앙!

 

 어마어마한 굉음과 함께 발생한 빛이 공중으로 솟구쳤다. 루카는 재빠르게 몸을 돌려 눈을 감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루카는 엄청난 양의 빛과 열을 등 뒤편으로 느낄 수 있었다.

 

 “ 루카! ”

 

 루카는 다시 몸을 돌려 눈을 떴다. 깊은 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늘은 엄청난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세 기사들은 전혀 예상치 못한 공격에 당황했는지 손으로 눈을 가리고 있었다. 루카에게 시간은 없었다. 무언가 해야만 했다. 그는 판단이 서자마자 행동으로 옮겼다.

 

 “ 엘레나! 뛰어! 말 쪽으로! ”

 

 루카는 기사들이 헤매는 사이 재빠르게 그들을 지나쳐 그들이 묶어놓은 말 쪽으로 달렸다. 그는 말에 묶여 있는 밧줄을 단칼에 자르고는 순식간에 올라타 자세를 잡았다. 기사들은 섬광불꽃에 적잖이 당황한 듯싶었다. 그들은 아직도 시야를 회복하지 못한 듯 손으로 눈을 가린 채 두리번거렸다. 그리고 엘레나. 그녀는 루카에게 헐레벌떡 달려오고 있었다. 지체할 틈 없이 루카는 말을 몰았다.

 

 - 히이이이잉!

 

 “ 엘레나! 잡아! ”

 

 루카는 엘레나에게 왼손을 쭉 내밀었다. 그리고 번쩍. 엘레나의 손을 잡자마자 루카는 그녀를 그대로 들어올렸다. 엘레나는 루카의 등 뒤에 올라타 그의 허리를 꽉 안았다. 속도를 늦출 필요는 전혀 없었다. 대신 루카는 뒤를 돌아보았다. 세 기사들. 그들은 하늘의 섬광을 뒤로한 채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까와 같은 무표정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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