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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Plume
작가 : 별하랑
작품등록일 : 2019.9.10

(오후 11시~00시)"신이 되어야만 해." "싫습니다." 단호히 거절한 소녀를 보며 높은 신은 비웃는다. 어차피 소녀에게 선택권은 없었다.

[네가 나고. 내가 너야.] 들려오는 기이한 소리.

"평생 함께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연인.

"살려주세요." 울부짖는 아이.

"너에게 기억을 잊을 수 있는 기회를 줄게." 매혹적인 신은 소녀에게 속닥거렸다.

"자, 어때? 결정은......

네 몫이야."

 
1부- 5회
작성일 : 19-09-23 23:05     조회 : 244     추천 : 0     분량 : 7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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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차가운 줄로만 알았던 신계에 푸근한 아침이 찾아왔다. 지구와 다를 것 없이 화창한 광망이 비추고 몽실몽실한 구름이 떠올랐다. 굳이 다른 것을 꼽아보라면 공기의 신선도와 풍경, 색다른 동식물들 뿐이었다.

 

  유독 일찍 해가 뜨는 신계인지라 벌써부터 낯선 손님이 유리창을 똑똑 두드렸다. 유리인 것을 망각하고 콩 부딪힌 빛의 조각들이, 그 속으로 스며들어 연두색 머리카락 위에 사뿐히 내려앉았다.

 

  "으음......"

 

  푹신한 이불 속에서 뒤척이던 진희가 짧은 소리를 내뱉고는 다시 안정을 찾아 잠들자, 안 되겠다는 듯 창문 사이로 선선한 바람이 불었다.

 

  "...... 어우씨, 추워."

 

  비몽사몽한 정신으로 몸을 살짝 일으켜 커튼을 쳐버리곤 다시 드러누워 버리자, 못마땅한 시선으로 바라보던 작은 빛의 요정들이 수군거렸다.

 

  "모셔올까?"

  "응. 모셔오자."

 

  옹기종기 모인 요정들이 빛의 조각을 타고 둥둥 떠다니다, 진희의 옆방으로 슝 날아갔다.

 

  똑똑-

 

  황금빛 조각들을 뚝뚝 떨어뜨리며 창문을 조심스레 두드린 요정들이 창문 속 남자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어서 자신들을 봐달라는 간절한 눈빛에, 방 안에서 조용히 책을 읽던 남자가 창밖으로 시야를 돌렸다.

 

  "......?"

 

  정원에서만 떠도는 요정들이 여긴 무슨 일일까, 다가가 창문을 열어주니 바로 쪼르르 날아와선 키미안의 귓가에 쫑알거렸다.

 

  "키미안 님, 진희 님이 아무리 깨워도 안 일어나는 거 있죠."

  "아, 그래?"

 

  작은 목소리를 애써 높여가며 키미안에게 이른 요정들이 신나서 꺄르륵 웃고는 창밖으로 나갔다. 텁-. 작은 소리와 함께 덮은 책을 책상 위에 가지런히 놔두고 거울 앞에 선 키미안이 제 모습을 살폈다.

 

  흐트러짐 하나 찾아볼 수 없는 단정한 옷 상태와 잘 정돈 된 머리를 확인하곤, 광 나는 신발로 갈아신은 키미안이 대문 같은 큰 방문을 열었다.

 

  끼이이......

 

  짙은 녹색 눈동자에 담긴 건 길게 쭉 늘어져 있는 복도와 그 아래 깔린 짙은 녹색의 카펫이었다. 호텔의 모습을 참고한 디자인의 거처는 참으로 잘 지었다 생각하면서 미소를 띄운 키미안이, 제 방문 옆에 바로 있는 진희의 방문 앞에 우뚝 멈춰서 팔만 들어올렸다.

 

  똑똑.

 

  지금 시간은 4시 50분. 아직 10분은 더 자도 되긴 하나, 신계의 하늘은 이미 아침을 알린 지 오래였다.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묻는 게 의미 없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한 번쯤은 예의상으로 물어본 키미안이 조심스레 문을 열었다.

 

  "......"

 

  짙은 녹색 눈동자에 들어온 건, 다름아닌 애벌레 마냥 이불을 돌돌 감싼 채로 숙면을 취하는 진희였다. 앞으로 깨울 때마다 고되겠다는 생각을 하며 서슴없이 다가가 진희의 어깨를 살며시 두드리려 뻗은 손이, 무언가에 충격을 받아 튕겨져 나갔다.

 

  "...... 방어막?"

 

  전혀 느끼지 못 했던 마나의 입자들이 모여 만든 방어막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침묵했다. 이렇게 방어막을 쳐놨다는 건 평소에 습격을 많이 당했다는 증거일 지도 모르니까.

 

  잔뜩 경계한 푸른빛의 마나들이, 키미안의 손이 닿은 곳에서만 모습을 드러내 불처럼 일렁이는 것을 바라보다 한숨을 푹 내쉬었다.

 

  아무리 외쳐도 잠에서 안 깰 것이 분명하고, 제 상사의 마나들은 멍청해서 저를 알아보지 못 하고, 정말 무슨 일인 지 알 수가 없었다.

 

  "뭐...... 별 수 없나."

 

  우우웅-...

 

  키미안의 손 위로 밝은 빛의 결정들이 모이기 시작했고, 이내 그것은 야구공 정도의 사이즈로 뭉쳐졌다. 밝은 빛에 잠시 움츠린 푸른 마나가 더욱 견고하게 굳어져갔다.

 

  쾅!

 

  "와악!"

 

  요란스러운 굉음에 소스라치게 놀라며 몸을 일으켜 세운 진희가 입만 떡 벌리고 있었다. 누군가 자신의 방어막을 산산조각 냈다. 그것도 단 한 번만에.

 

  "윽......!"

 

  방어막이 깨지는 바람에 마나 소실로 약간의 두통이 찾아왔다. 도대체 누굴까, 하는 의문은 금방 풀 수 있었다.

 

  고개를 돌리니 보이는 익숙한 짙은 녹색 눈동자가 순진무구한 눈빛으러 저를 내려다 봤다.

 

  "... 키미안 너가 부쉈어?"

  "네. 도통 안 일어나시길래."

 

  와우.

 

  황당함과 감탄에서 파생된 한숨이 흘러나온다. 신의 부하, 그러니까 직원들도 직책에 따른 힘이 주어진다고는 했지만 이정도일 줄이야.

 

  보통 천관 정도면 행성 두, 세 개는 심호흡도 안 하고 그냥 부신다고 하니 말 다 하긴 했다.

 

  그럼 내 힘은 어느 정도야, 도대체.

 

  꼼지락 거리던 제 손을 내려다 본 녹색 눈동자가 호기심을 담았다. 우주 하나는 날릴 수 있을까. 아니다, 그건 너무 많이 갔나.

 

  "제 스무 배 정도 되십니다."

  "오... 알려줘서 고맙... 뭐야, 어떻게 알았어."

 

  얘 텔레파시라도 쓰나?

 

  눈이 휘둥그레져서 하는 물음에 키미안은 말 없이 제 반지를 손가락으로 톡톡 치며 가리켰다. 그에 쪼르르 따라간 시선은 반짝이는 녹색 보석을 담아냈다.

 

  "아."

 

  맞다, 이거 있었지.

 

  깨달음을 얻은 진희의 시야가 제 반지에게로 향했다. 끼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면 정말 불편하기 짝이 없는데, 왜 그동안은 느끼지 못 했을까.

 

  당장 빼버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지만 이걸 뺐다가 르레이스비에게 한 소리 들을 게 뻔했다.

 

  "진희님."

  "응? 왜?"

  "나갈 준비 해야죠."

  "아......"

 

  뭘 당연한 걸 묻냐는 듯 고개를 갸웃거린 키미안이 옅은 미소를 보였다. 어제의 약속을 까마득히 잊고 있던 진희에겐 날벼락 같은 소식이었다. 생각해 보니 옷이라곤 이 교복 한 벌이었는데, 이 차림으로 쭉 지내야 하는 것일까.

 

  안 돼. 끔찍해.

 

  "저, 키미안."

  "네. 말씀하세요."

  "혹시 여기 옷 같은 건 없어?"

  "옷이라면......"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며 주변을 살피던 키미안이 유독 살짝 튀어나온 벽을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저기에 다 있어요. 인간계에 있는 옷, 다른 세계에 있는 옷, 전부 보유하고 있는 옷장입니다."

 

  예?

 

  자신이 지금 뭘 들은 건지 귀를 의심하다, 당황함에 말을 더듬어가며 앵두 같은 입술을 뗐다.

 

  "그, 그럼 너무 많아서 모, 못 차, 찾지 않을까...?"

  "염려 마세요. 원하는 종류별로 선택해서 찾는 게 가능하니."

  "오."

 

  대박이네.

 

  영화에서 본 것처럼 길고 큰 옷장을 지나다니면서 힘들게 찾는 걸 잠시 생각했었는데, 아마 인간계에서 미래에 이런 옷장이 생길 것이다, 라는 확신이 든 진희가 실내화도 신지 않은 채로 오도도도 달려갔다.

 

  일할 땐 어때야 된다? 무조건 편해야 된다.

 

  튀어나온 벽면을 꾹 누르니 갑자기 벽에 스크린이 뜨는 바람에 화들짝 놀라며 뒤로 넘어질 뻔 했지만, 오히려 더 호기심에 찬 눈빛으로 손가락을 가져갔다.

 

  "오호오......"

 

  키미안의 말대로 종류별로 칸이 나뉘어져 있었다. 후드 종류, 셔츠나 블라우스, 원피스, 드레스, 크롭티, 가디건 등 정말 다양하게 나뉘어진 걸 보고 든 생각은 딱 하나였다.

 

  세상 진짜 좋아졌다.

 

  미래에 지구에도 생길 것을 내심 기대하며 단 한 번의 망설임도 없이 후드를 꾹 누르자마자 벽이 옆으로 천천히 움직이더니, 새로운 방이 생겼다. 분명 옆방은 키미안이 쓰는 방일 텐데 어떻게 방이 있는 것인 지에 대해 궁금해 할 겨를도 없었다.

 

  왜냐? 신나니까.

 

  "와... 와아......"

 

  이곳이 바로 파라다이스.

 

  진희의 방보다 한참 더 큰 옷방엔 색깔별, 종류별로 후드가 다 나뉘어진 채, 정갈하게 진열되어 있었다. 진희가 상상하던 커다란 옷방처럼 위엔 화려한 샹들리에가 제 빛을 뚝뚝 떨어뜨렸다.

 

  입구에서 내부를 눈으로 천천히 뜯어보다, 시간은 기다려주지 않음을 깨닫고 망설임 없이 검은색으로 가득찬 곳에 달려간 진희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엥?"

 

  검은색 후드티를 집었는데 들리지 않았다. 그 상태로 고정되어 들리지도 않고 만져도 딱딱하기만 했다.

 

  뭐야, 이거. 설마 돈 내야 만져볼 수 있고 그런 거 아니지. 에이, 설마... 신계가 그렇게 쪼잔할 리가...

 

  "진희님, 옷걸이에 버튼 하나 있을 거예요! 그거 누르면 자동적으로 입혀지니까 원하는 거 있으면 누르세요!"

  "어, 어! 알았어!"

 

  혹시라도 안 들릴까, 격양된 목소리로 크게 말하는 키미안에게 고마움에 똑같이 대답하다 이상한 점을 느꼈다.

 

  아니, 자동으로 입혀지면 들어와도 될텐데 굳이 저렇게 소리를 질러가면서...?

 

  키미안은 가끔 가다보면 참 어린아이 같다고 생각하며 고개를 갸웃거린 진희가 버튼을 살며시 눌렀다.

 

  "오오."

 

  그의 말대로 옷이 자동적으로 입혀지긴 했는데 확실히 신계라서 그런가, 센스가 좋았다. 하의를 따로 고르지 않았음에도 알아서 어울리는 것으로 입혀졌다.

 

  쓰읍... 이거 어디서 많이 봤더라... 어릴 때 애니메이션에서 본 것 같긴 한데.

 

  "악!"

 

  르레이스비 개새끼.

 

  전신거울 앞에서 여유롭게 구경하다 갑자기 게임에서 튕기는 것마냥 튕겨져서 바닥에 뚝 떨어졌다. 이것은 르레이스비가 만든 시스템인 것이 틀림없다 생각하며 속으로 칼을 갈았다.

 

  "괜찮으세요? 잡아요."

 

  온갖 욕을 다 퍼부으며 그 놈을 기필코 죽이리라, 다짐하고 있었는데 한걸음에 다가온 키미안이 손을 내밀었다.

 

  그래, 키미안을 위해서라도 르레이스비를 죽여버리는 거야.

 

  키미안의 손를 잡고 일어난 진희가 음모를 품은 채 생글생글 웃었다.

 

  ***

 

  "차라리 막노동을 시켜줘......"

 

  책상에 힘없이 엎드린 진희가 나지막이 중얼거린다. 산처럼 쌓인 서류들이 커다란 방을 가득 채웠고, 이걸 빠른 시일 이내로 끝내야 한다는 말에 좌절했다.

 

  "이걸 어떻게 해. 어? 이건 의지의 한국인이라 해도 못 해."

 

  암암, 그렇고 말고!

 

  자기 혼자 말하고 자기 혼자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인 진희가 만년필을 냅다 집어 던졌다. 안 해. 때려쳐.

 

  "여기요."

  "...... 너 일부로 그러는 거지, 지금."

 

  던진 걸 또 그대로 주워 온 키미안이 원망스럽긴 처음이다. 몇 일 안 잔 사람처럼 넋이 나간 진희가 엎드린 채로 고개만 들어 올려 키미안을 노려 봤다.

 

  어? 눈치라는 게 있으면 어? 줍지 말았어야지! 그걸 굳이 친절하게 주워다 줄 필요는 없잖아!

 

  제 생각이 키미안에게 그대로 들린다는 걸 망각한 채 잔뜩 투덜거린 진희가 다시 펜을 손에 쥐었다.

 

  그래. 이건 키미안에게 탓할 게 아니다.

 

  "르레이스비... 르레이시발......."

  "네?"

  "어머."

 

  무의식적으로 중얼거린 말에 모두가 하던 일을 멈추고 진희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멍하니 툭 내뱉은 것이 자신이라는 걸 깨달은 진희는 그제서야 입을 살포시 가리며 떨리는 동공을 진정시켰다.

 

  "왜, 왜...! 하던 일 마저 해!"

  "푸흡......"

 

  방귀 뀐 놈이 성낸다더니, 발끈해서 언성을 높인 진희를 물끄러미 보던 하웰이 옅은 웃음을 터트렸다. 진희에게서 파생된 이상, 진희가 싫어하는 것, 좋아하는 것은 똑같이 싫어하고 좋아하기에 웃을 수 있었다.

 

  그 무뚝뚝한 루키아 마저 애써 웃음을 참으며 서류를 잡았고, 워낙 발랄한 키레스는 대놓고 웃음을 터트리며 바닥에 자빠졌다.

 

  "아! 웃지 마!"

  "죄, 죄송합니다... 큽...!"

 

  나 놀리는 거지, 응?

 

  놀린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이상하게 기분이 나쁘지 않은 진희가 떨리는 입꼬리를 차분히 가라앉혔다. 하지만 이건 가라앉힌 것이 아니었다.

 

  본인은 가라앉혔다고 생각하지만, 남들이 보기엔 승천하기 직전의 애처로운 부들거림이었다.

 

  "그냥 웃으세요, 진희님......"

 

  보다 못한 도스의 말에 녹색 눈동자가 처절하게 흔들렸다.

 

  "아! 안 웃는다니까!"

  "웃고 계신데요."

  "아, 좀!"

 

  아침에 새로 만든 천우, 세디나가 조곤조곤하게 반박했다. 가슴까지 오는 곱슬한 갈색 머리카락에, 진희의 머리카락과 똑 닮은 연두색 눈동자가 초롱초롱한 귀여운 아이였다.

 

  특유의 휘어진 눈꼬리와 큰 눈동자 때문인지, 하웰이 끔찍하게 아꼈다.

 

  "세디나, 그냥 조용히 해. 진희님은 지금 현실도피 중이니까."

  "아... 그런 거였군요."

  "아니, 이것들이 진짜. 너희들 적이지. 솔직히 말 해. 스파이지, 너네."

 

  세디나의 머리를 조용히 토닥이며 내뱉은 하웰의 말에 녹색 눈동자가 번뜩였다.

 

  내 이것들을 다 혼쭐 내주리라, 생각하며 자리에서 일어나자 키미안이 진희의 어깨를 꾹 눌렀다.

 

  "다들 진정하고 마저 일 하세요. 오늘 안에 다 끝낼 자신 있나보네요?"

 

  말이 끝나기 무섭게 방 안에 고요한 침묵이 흘렀다. 바닥에서부터 천장까지 높이 솟은 서류가 한 두 줄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기에 아무런 말도 하지 못 했다.

 

  특히나 곧 있으면 픽 쓰러질 것 같은 진희가 입술을 앙 다물었다.

 

  이걸... 이걸 어떻게 하라고......

 

  하얀 것은 종이요, 검은 것은 글씨니.

 

  모든 생명체의 정보들이 쫙 적힌 걸 전부 확인하고 날짜와 시간별로 정리하고, 그 안에서 특별히 죄가 있는 이들은 심판의 권능 소유자인 제 2대 신, 리니아에게로 전달해야 한다.

 

  들려오는 소문으로 리니아는 아주 차갑고 정이 없다, 이것뿐이었다. 자신이 제일 좋아하는 정원이나 방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는 것으로도 유명하다던데.

 

  "흠......"

 

  키레스 보내면 앞으로 영원히 못 보게 될 수도 있겠네.

 

  팔랑-. 종이 넘기는 소리만이 공간을 가득 채우니 정말 욕 나올 것 같았지만 열심히 참았다. 이 익숙함을 어디서 느꼈나, 생각해보니 시험 볼 때의 그 느낌이다.

 

  너무 따분해서 주위를 둘러보는데 직원들은 서류에 가려져 보이지도 않았다. 키미안에게 말을 걸자니 일에 제대로 집중하고 있고, 놀자니 바로 걸릴 것이고.

 

  속으로 짧게 한숨을 내뱉은 진희가 녹색 눈동자에 서류를 담았다.

 

  출생, 신분, 성별, 국가, 거주지, 무엇 하나 빠진 것 없이 다 들어가 있는 서류 가장 아래쪽엔...

 

  [죄명 : 살인죄]

 

  보기 꺼려지는 것들이 적혀있었다.

 

  이건 무조건 지옥행이구만. 잘 가시게.

 

  망설임 없이 사각사각 소리를 내며 제 사인을 남긴 진희가 판결을 맡기는 쪽에 사뿐히 얹어두었다.

 

  "와우."

 

  다들 집중하는 것 같아 조용히 하려 했으나 이건 놀랄 수밖에 없었다. 판결을 맡기는 종이가 가장 많은 비중을 찾이하고 있었으니까.

 

  거짓말이나 작은 다툼 정도는 판결에 속하지 않는다. 판결에 들어가는 죄의 무게는 꽤 무거운 편이었음에도 산처럼 쌓인 종이를 보니 마음이 쓰라려 녹색 눈동자를 잠시 숨겼다.

 

  서류 정리법이 적힌 종이엔 분명 무거운 죄들만이 실려있었다.

 

  • 살인을 했을 경우

  • 강간을 했을 경우

  • 타인의 마음에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겼을 경우

  • 고의로 누군가를 따돌렸을 경우

  • 악의로 폭행을 가했을 경우

  • 방관했을 경우

  • 동물을 버렸을 경우

  • 타인의 물품을 갈취 했을 경우

  • 제 죄를 반성하지 않을 경우

 

  이정도 뿐... 이 아니구나.

 

  하긴, 필르야티엘에 다녔을 때만 해도 학교폭력만 몇 건이 일어났었고, 살인은 밥 먹듯이 일어났다.

 

  나중에 필르야티엘 교사들이 명단에 올라오면 전부 제일 고통스러운 곳에 보내질 것이 분명하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진희 님."

  "응?"

  "놀지 말고 얼른 하세요. 진희님이 한 장 하실 때 다들 스무 장 정도는 합니다."

  "아, 응......"

 

  너무 맞는 말이라 반박할 수가 없네.

 

  신계에서 태어난 자들은 기본적으로 모든 면이 인간보다 월등해서 이 일도 하루 만에 끝낼 가능성이 있는 거였다. 스무 명의 사람이 할 수당을 여기 직원들은 혼자서 더 빨리 해내니까.

 

  아무리 그래도 스무 장은 진짜 심했다.

 

  "일단 이거 줄테니 이거라도 해주세요."

  "으응......."

 

  제 직원들은 다 열심히 하고 있는데, 정작 상사가 놀고 있었다니. 이게 르레이스비와 다를 것이 뭐가 있는가.

 

  키미안이 건넨 서류를 받아든 진희가 속으로 눈물을 머금으며 펜을 쥐었다. 17년 인생 중에서 가장 펜을 오래 쥐고 있는 순간일 것임이 틀림 없었다.

 

  신 되기 전에 혀 깨물고 세상을 떠났어야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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