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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현대물
여자들 끼리 술 마시면서 하는 말
작가 : 아브락사스
작품등록일 : 2019.9.11

누군가를 만나서 사랑한다는 건 참 어렵고도 험난한 여정과도 같은 것은 아닐까.

 
13화 그리운 그리움
작성일 : 19-09-23 17:21     조회 : 229     추천 : 0     분량 : 7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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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화 김치공장

 

 

 

 

 

 아직 뚜렷한 작업 구역을 할당 받지 못한 혜숙은 눈치껏 수레를 밀고 세척실과 속넣기실을 오가며 절임배추를 가져다놓거나 양념통에 양념을 채워주기도 한다.

 

 그리고 누군가 급히 자리를 비운 곳에 대신 들어가 양념을 버무려 컨베이어벨트에 올리는 일도 혜숙이 하는 일이다.

 

 가끔은 금속검출기 앞에 서 있다가 금속검출기를 통과한 배추김치를 내포장지에 담기도 한다.

 

 그러다보니 어떤 직원들은 혜숙을 땜빵이라고 부르는 일도 종종 있다.

 

 땜빵이라는 말의 뜻을 몰랐을 때나 그 뜻을 알게 되었을 때나 혜숙은 별로 개의치 않고 자기가 할 일을 찾아 꽤나 열심히 일한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넓고 깨끗한 김치공장을 분주히 오가며 자기 몫을 하려고 애를 쓰는 것이다.

 

 혜숙의 천성이 부지런하고 무슨 일이든 자발적으로 해야 직성이 풀리는 타고난 성질 탓도 있다.

 

 그러나 사실은 자괴감과 수치심으로 밤잠을 설치지 않으려고, 그 속으로 자꾸 파고드는 김현에 대한 알 수 없는 미련을 떨쳐내려고 자신의 몸을 고단하게 부리는 중이다.

 

 *

 

 오늘도 혜숙은 자기 몸을 괴롭히기 위해 일찌감치 출근해서 하얀 위생복과 귀까지 덮는 하얀 모자와 하얀 장화를 갖추고 위생전실로 들어가 손소독과 에어샤워를 한다.

 

 그리고 공장 안으로 들어가서 분주히 돌아다니며 혹시 바닥에 떨어져 있는 이물질이 있으면 치우고, 저장실 온도를 확인하고 포장된 김치를 담을 상자들을 정리하고 그것을 실어 나를 카트를 가져다 놓는다.

 

 처음엔 혜숙도 김치공장이 외부와 완전히 차단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철저하고 완벽하게 위생시설을 갖추고 있는 것에 감탄했다.

 

 바닥은 목욕탕처럼 깨끗하고 환기구로는 벌레 한 마리 드나들지 못하게 시설을 해놓아서 그야말로 무균실을 방불케 했다.

 

 배추가 들어오면 다듬는 전처리실과 배추를 씻는 세척실은 물론이고 탈의실과 양념을 버무리기 전에 개인위생을 관리하는 위생전실과 양념을 버무리는 속넣기실 그리고 저장실까지 모두 칸막이로 구획이 되어 있어서 이물질이나 나쁜 무언가가 김치 속으로 절대로 들어갈 수 없을 것 같았다.

 

 처음 공장에 왔을 때 혜숙은 수 많은 방들이 미로처럼 연결 돼서 나가는 곳을 찾지 못하고 당황하곤 했다.

 

 하지만 같은 아파트 사는 신자 씨가 기다리다 못해 데리러 들어오면 지금 막 정리가 끝난 것처럼 시치미를 떼고 따라 나갔다.

 

 유명하지도 않은 김치공장을 그토록 잘 지어놓고 또 깨끗하게 운영하는 일흔이 넘은 남자 사장의 신념이 남다른 것 같이 느껴져 저절로 존경심이 우러났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김치공장이 식약처에서 해썹인증을 받았고 그래야만 김치공장을 가동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러니까 김치공장이 현대화된 위생시설을 갖추게 된 것이 사장의 신념이라기보다는 법적인 의무였다는 걸 알게 된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하얀 장화를 신고 위생복으로 무장을 한 채 공장 안을 돌아다니며 생산과정을 관리하는 사장이 허투루이 보이는 건 아니다.

 

 사장은 일흔이 넘은 나이에도 여전히 허리가 꼿꼿하다. 그리고 젊은 사람 못지않게 생기가 넘칠 뿐만 아니라 매사에 적극적이고 긍정적이다. 그래서인지 사장은 직원들에게 존경 받는다.

 

 가까운 마을에 살면서 농사도 짓고 가축도 키우는 나이 많은 아주머니들이 대부분인 직원들도 밝고 명랑하다. 김치공장에서 퇴근하면 농사일과 집안일을 하는 것이 당연한 일상이 되었는데도 그들은 불평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은 김치공장에 다니며 일하는 것을 즐기고 있고 힘들어 하거나 싫증내기는커녕 항상 감사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제 막 공장에 다니기 시작했지만 혜숙은 그렇게 느껴왔고 사장과 공장 사람들에게 삶에 대해 뭔가를 배우고 있다는 생각이 종종 든다. 그리고 새삼스럽게 사소한 일에도 감사함을 느끼곤 한다.

 

 *

 

 정리를 마친 혜숙이 탈수실에서 충분히 물을 뺀 절임배추를 수레에 실어 속넣기실로 옮긴다. 그리고 각 자리마다 양념통에 양념을 가득 채워 놓고, 금속검출기 앞으로 내포장재를 넉넉히 가져다 놓는다.

 

 무릎까지 오는 하얀 장화를 신고 위생복을 입고 마스크를 낀, 그러니까 마치 어떤 막중한 임무를 받고 투입된 정예 요원 같은 복장을 갖춘 직원들이 하나둘씩 공장 안으로 들어와서 자리를 잡기 시작한다.

 

 혜숙은 컨베이어벨트 앞에 줄지어선 여자들을 살펴본다. 하지만 자신과 친한 베트남 새댁과 같은 강우스파빌에 사는 신자 씨가 어디에 있는지 찾아내지를 못한다.

 

 김치공장에 들어서기 전에서는 베트남 새댁과 신자 씨의 신체 조건 즉 키와 몸매가 비슷하지만 헷갈려 하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일단 위생복으로 갈아입고 위생모를 쓰고 마스크를 끼고 그리고 하얀 장화까지 갖춰 신고 나면 누가 누구인지를 알아보기가 쉽지 않다.

 

 혜숙이 눈썰미가 둔해서인지 속넣기실에 들어서기만 하면 비록 베트남 새댁이나 신자 씨가 아니더라도 누가 누구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 것은 마찬가지다.

 

 그래서 혜숙은 속넣기실에서 물어볼 일이 생기거나 하면 그 사람이 그 사람 같아서 눈을 맞추고 나서야 말을 건네는 습관이 생겼다.

 

 *

 

 - 혜숙씨, 그러다 병나. 혼자 하지 말고 같이해. 그런다고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니고 월급을 더 주는 것도 아냐.

 

 혜숙보다 대여섯은 많은 신자 씨가 같은 강우스파빌에 산다고 다가와 걱정을 해준다.

 

 땜빵이나 하는 신입에다 아는 사람도 없는데 신자 씨가 다가와 아는 체를 하고 말을 걸어주면 혜숙은 반갑고 힘이 난다.

 

 - 괜찮아요. 제가 하고 싶어서 하는 건데요.

 

 혜숙은 눈만 빠끔히 내놓은 얼굴로 인사를 한다.

 

 - 공장에서 오래 일하려면 요령껏 해야 한다니까. 처음 와서 몸 안 아끼고 설쳐대는 여자들은 대부분 한두 달 만에 그만 둬. 힘들어서 못하는 거지.

 

 - 전 아직 잔병치레 한 번 안하고 살았어요.

 

 혜숙은 말해놓고 나니까 불현듯 신우신염으로 크게 고생한 일이 떠오른다.

 

 *

 

 태어나서 처음 얻은 병이었고 그 병으로 생전 처음 응급실을 찾았었다.

 

 응급실에서 피 검사라든지 소변 검사라도 해주었더라면 고생을 덜 했을 텐데, 경험 없는 인턴이 해열제만 주고 별거 아니라며 그냥 보내는 바람에 이틀씩이나 고열에 시달리며 집안일을 해야 했었다.

 

 고열도 고열이지만 인정머리 없는 남편 때문에 마음고생이 더 심했던 기억이 순간 혜숙의 해묵은 상처를 헤집어 놓는다.

 

 혜숙은 이틀 뒤에야 결국 입원을 해야 했었고 피검사와 소변 검사를 통해 신우신염을 일으킨 세균의 종류를 찾아냈었다.

 

 입원해 있던 열흘이 혜숙으로서는 고통의 나날이었지만 남편은 단 한 번도 얼굴을 내밀지 않았고 오히려 병원 측에 전화를 걸어 죽을병도 아닌데 빨리 퇴원시키지 않는다고 항의하기까지 했었다. 남편은 혜숙의 병보다 자신의 불편함을 견디기 힘들어 했던 것이다.

 

 *

 

 혜숙은 그렇게 며칠 동안이나 고열에 시달리며 죽을 고생을 해놓고도 까맣게 잊어버리고 잔병치레 한 번 안 했다고 한 것이 씁쓸하고 겸연쩍다. 그렇다고 수다스럽게 변명하고 싶지 않다.

 

 마침내 컨베이어벨트가 돌아가기 시작하자 공장 안을 떠돌던 말소리와 간간이 울려 퍼지던 웃음소리가 사라지고 여자들의 손놀림이 바빠진다.

 

 오늘 혜숙은 월차를 낸 여자를 대신해서 금속검출기 앞에 자리를 잡는다.

 

 여자들이 절임배추를 양념으로 버무려 컨베이어벨트에 올려놓으면 금속검출기를 통과해 혜숙의 앞으로 온다.

 

 혜숙은 고무장갑 낀 손으로 막 양념으로 버무린 배추김치를 집어서 내포장지에 담는다.

 

 *

 

 회사 식당에서 배추 겉절이 하고 된장찌개로 점심을 먹고 나서다.

 

 혜숙은 휴게실 의자에 기대앉아서 베트남 새댁이 서투른 한국말로 전화하는 소리를 들으며 카스에 들어가 오래 전에 올려놓은 사진들을 하나씩 위로 밀어 올리며 본다.

 

 그날 이후로 김현에게서는 연락이 없다. 연구소에는 아예 오지 않는 것 같다.

 

 혜숙은 김현과 찍은 사진들을 성급하게 삭제해버린 것이 후회된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결별 선언까지 한 마당에 김현이 들어와 볼 걸 뻔히 알면서 김현의 사진들을 가지고 있을 수는 없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끝내 자신이 호텔과 화장실에서의 추태 혹은 추함에 대해 부끄러움도 모르고 자존심도 없는 뻔뻔한 여자로 비칠 것 같았던 것이다.

 

 김현에게 자존심도 없고 부끄러움도 모르는 뻔뻔한 여자로 여겨지느니 헤어지길 잘했다고 혜숙은 스스로를 다독인다.

 

 차라리 죽는 게 낫지. 혜숙은 또다시 마음속으로 중얼거리며 그러나 쓸쓸한 마음으로 카스의 사진과 글을 휙휙 위로 넘긴다.

 

 요즘도 습관처럼 순간 순간 사진도 찍어 올리고 일기처럼 글을 남기곤 하지만 왠지 예전 같지가 않다.

 

 카스에 사진을 올리거나 글을 쓸 때 김현을 의식하지는 않지만, 사실은 그 어느 누구도 염두에 두거나 의식하지 않지만, 카스가 빈 상자 같을 때가 종종 있다.

 

 뭔가를 잃어버린 것 같은 느낌, 그 자리에 있어야 할 무언가가 사라져버린 허전함.

 

 그것이 김현의 얼굴이라는 걸 혜숙은 안다. 그러나 이제 그곳을 다른 그 무엇으로 채워야 한다. 꼭 남자가 아니어도 그 자리를 대신할 수 있는 그 무엇이 있었으면 하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세상 어디에 채울 그 무언가가 있을 것 같지 않다.

 

 혜숙은 갑자기 슬픔이 차오르는 것을 느끼고 카스에서 빠져나온다.

 

 일하지 않는 시간은 이내 김현에 대한 생각으로 치닫는다. 혜숙은 무슨 일이든 해야 할 것 같아 자리에서 일어선다.

 

 오늘 오후엔 배추를 다듬고 씻어야 한다. 혜숙은 일찌감치 비닐 앞치마를 하고 전처리실에 들어가 배추 다듬는 작업을 시작하려고 탈의실로 향한다.

 

 *

 

 - 혜숙이 언니, 사장님이 사무실로 좀 오시래요.

 

 어느새 사무실까지 다녀온 베트남 새댁이 뒤쫓아 와 말한다.

 

 - 응, 그래! 고마워.

 

 혜숙은 혹시 일을 못해서 자르려고 하나 싶으면서도 별다른 걱정 없이 사무실로 들어선다.

 항상 황 대리가 앉아 있던 자리에 사장이 앉아 있다. 황 대리는 어디에 갔는지 보이지 않는다.

 

 황 대리 책상 위에도 이것저것 펼쳐져 있고 어질러져 있다.

 

 - 혜숙씨, 컴퓨터 좀 다룰 줄 안다고 했죠?

 

 책상 앞에 앉아 있던 사장이 혜숙을 올려다본다.

 

 - 사장님, 저 정도는 누구나 하죠. 쇼핑몰에 돌아다니면서 필요한 물건을 사고 포털에서 검색하는 정도인데요.

 

 이력서를 내고 면접을 보던 날 사장이 사무실에서 인터넷 판매하는 걸 도와주었으면 하고 이것저것 물어왔을 때와 똑 같은 대답이다.

 

 - 황 대리가 갑자기 출근을 못한다고 연락이 왔어요. 아니 사실은 출근을 안 해서 내가 전화를 했더니 연락도 안 되다가 이제야 전화해서 출근 못하겠다고 하는 겁니다. 택배 나갈 게 좀 있을 텐데..........

 

 사장의 표정이 난감하다.

 

 - 제가 도움이 될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한 번도 안 해본 일이라서........

 

 혜숙은 당황스럽다. 그렇다고 그냥 모른 체 하고 나가버릴 수도 없다.

 

 - 혜숙씨는 대학도 나왔으니까 이해가 좀 빠를 거 아니에요. 그리고 에스엔에스도 하고 있고 카스도 사용한다고 했었잖아요. 우선 여기 책상 앞에 앉아 봐요.

 

 컴퓨터 앞에 앉아 있던 사장이 일어나서 혜숙에게 앉으라고 권한다.

 

 - 저도 아무것도 모르는데 뭘 어떻게 하라고 하시는지 모르겠네요!

 

 혜숙은 어쩔 수 없이 의자를 당겨 앉고 본다. 컴퓨터 화면엔 이것저것 많은 것이 겹쳐 열려 있어서 책상 위보다 더 어지럽고 정신이 하나도 없다.

 

 - 우선 스마트스토어에 들어가 보세요.

 

 사장이 말한다.

 

 - 네이버 스마트스토어요!

 

 종종 네이버에서 쇼핑을 하는 혜숙이다.

 

 - 아, 예. 네이버 스마트스토어 바로 그것예요.

 

 사장은 지푸라기도 잡은 것처럼 좋아한다.

 

 - 아, 거기서 물건을 사긴 사봤지만.......

 

 - 황 대리 말로는 여기에 모든 게 다 있다고 했어요. 아이디 비밀번호 이런 거요.

 

 사장은 책상 위에 있던 노트를 혜숙 앞으로 당겨놓는다.

 

 - 아무래도 전 안 될 것 같아요. 전혀 아는 게 없는데 이 노트 가지고 뭘 어쩌겠어요. 빨리 다른 사람 알아보세요.

 

 혜숙은 그렇게 말하면서도 노트를 살펴본다. 스마트스토어, 지마켓, 옥션, 쿠팡 따위의 아이디와 비밀번호 등이 적혀 있다.

 

 - 사장님 이 화면들 다 내려도 될까요?

 

 - 예, 다 내려도 돼요.

 

 혜숙은 화면을 전부 내리고 바탕화면을 찬찬히 살핀다. 좌측에 수많은 앱과 폴더 ,아이콘 따위들이 깔려 있다.

 

 혜숙은 한참만에야 통신판매 폴더를 발견하고 클릭을 한다. 폴더 안에 스마트스토어 바로가기 아이콘이 있다.

 

 혜숙은 스마트스토어 아이콘을 클릭한다. 그리고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넣고 로그인을 한다.

 

 열린 화면 왼쪽 상단에 김치공장 로고가 있고 그 아래 ‘초정리 김치’ 라고 쓰여 있다.

 

 - 잘 하시네요.

 

 사장이 뒤에 서서 환호성을 지른다.

 

 - 신규주문이 13건이고 오늘 출발이 7건인데요. 그리고는 더 이상 어떻게 하는지 모르겠어요.

 

 말은 그렇게 하지만 혜숙은 커서로 여기저기를 자꾸 찍어본다.

 

 - 됐어요. 신규주문자 명단이 열렸어요. 주소, 전화번호, 다 있네요.

 

 사장도 혜숙도 환호성을 지른다. 혜숙이 우연히 신규주문자 숫자를 클릭했는데 주문자 명단이 펼쳐진 것이다.

 

 - 저기, 주문자 명단을 출력하고 그리고 아이스박스 위에 붙일 기표지, 그러니까 송장을 뽑아야 돼요. 택배로 보낼 거니까.

 

 사장이 말한다.

 

 - 여기까지는 운이 좋아서 했는데 더는 모르겠어요. 다른 사람 찾아보세요. 사장님, 전화! 전화 어딨어요?

 

 혜숙은 화면을 아래로 내리다가 하단에 있는 고객센터 전화번호를 발견하고 소리친다.

 

 - 전화는 왜? 여기 있어요.

 

 사장은 재빠르게 자기 책상 위에 있던 전화를 가져다준다.

 

 - 고객센터로 전화 한 번 해볼게요.

 

 한참만에야 고객센터 직원이 전화를 받는다.

 

 - 갑자기 담당자가 결근을 해서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서 전화드렸어요. 네네, 거기까지는 들어왔어요. 발주 확인요. 체크를 하고. 네네 발주 확인했어요. 굿스플로 송장출력 눌렀어요. 인쇄기는 설정이 되어 있는 것 같아요. 확인했어요. 네네. 전체합포장 선택했어요. 합포장 할 것들이 모아진 것 같아요. 네네 또 체크했어요. 고맙습니다.

 

 송장이 인쇄되어 나오는 것을 확인한 혜숙은 전화를 끊는다. 지마켓과 옥션, 쿠팡 등도 고객센터에 전화해서 알아보고 송장출력을 한다. 사장은 기뻐서 어쩔 줄을 모른다. 혜숙도 뿌듯하다.

 

 - 사람 구할 거도 없겠네. 앞으로 혜숙씨가 사무실에서 일하세요.

 

 사장이 말한다.

 

 - 아니에요. 젊은 사람 구하세요. 사람 구할 때까지만 제가 해볼게요.

 

 - 여긴 시골이어서 사람 구하기가 힘들어요. 혜숙씬 집이 가까우니까 좋잖아요. 황 대리도 집이 청주라서 힘들어 했어요.

 

 - 그래도 젊은 사람이 인터넷에 밝죠. sns도 활발히 하고. 처음에도 말씀 드렸지만 전 겨우 인스타하고 카스에 사진 좀 올려본 게 다예요.

 

 - 혜숙씨 감각이면 돼요. 젊은 애들보다 훨씬 나을지도 모르고요. 아무튼 혜숙씨는 사무실로 출근하세요. 혜숙씨가 해보고 안 되면 그때 가서 다시 의논합니다. 사람을 구하든지 다른 방법을 찾든지 그때 가서........

 

 *

 

 - 응 아들. 엄마 근무 시간인데.......

 

 혜숙은 사무실에서 나와서 전화를 받는다.

 

 - 엄마, 아빠가 다쳤어요.

 

 아들의 목소리가 심란하다.

 

 - 뭐! 왜? 뭐하다? 갑자기 왜 다쳐.

 

 혜숙은 자기도 모르게 소리친다. 화가 나기도 하고 걱정이 되기도 한다.

 

 - 등산 갔다가 발을 헛디뎌서 떨어졌대.

 

 - 그래서?

 

 - 지금 병원에 있어. 119가 출동해서 헬기로 모셔왔대.

 

 - 무슨 병원인데. 많이 다쳤니?

 

 - 한양대 병원인데. 나도 지금 연락 받고 그쪽으로 가고 있어.

 

 - 생전 안 가던 등산은 갑자기 왜........ 심심하면 붓글씨나 쓰지 않고.

 

 - ........

 

 아들은 말없이 듣고만 있다. 짧은 침묵 속으로 전해지는 어색한 기운을 혜숙은 느낀다. 혜숙이 간다는 말을 하지 않아서인지 아들이 서운해 하는 눈치다.

 

 - 엄마는 가기 싫어. 아들이 가서 잘 보살펴드려.

 

 하지만 혜숙은 아들 때문에, 아들 눈치 보느라 남편 병문안을 가고 싶지는 않아서 아들에게 미뤄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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